네덜란드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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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네덜란드 지역에 있던 공화국으로 스페인령 네덜란드의 지배에서 벗어나면서 생겨났다. 나중에 바타비아 공화국이 되었다.
2. 명칭
네덜란드어: Republiek der Zeven Verenigde Nederlanden
프랑스어: République des Sept Provinces-Unies des Pays-Bas, Provinces-Unies 혹은 Pays-Bas septentrionaux(북네덜란드)
라틴어: Belgica Foederata/Belgium Foederatum
네덜란드어로는 Republiek der Zeven Verenigde Nederlanden, 일곱 저지대 연합 공화국이라는 뜻이다. 네덜란드 국토 대부분의 해발고도가 해수면보다 아래에 있기 때문에 저지대(neder land - 낮은 땅)라는 명칭으로 불렸으며 이는 네덜란드라는 국명의 유래가 된다.
한편 이 네덜란드 공화국은 라틴어로는 Belgium Foederatum(벨기에 연방)라는 명칭으로 언급되기도 하는데 하버드대 도서관 카탈로그를 보면 네덜란드 7개주 연합공화국(Seven Dutch Provinces)관련 서적명에 Belgium Foederatum이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구분은 벨기에 혁명 후에 생긴 것이다. 이전에는 벨기에와 네덜란드를 구분하지 않았다. 즉, 벨기에가 네덜란드이기도 했고 네덜란드가 벨기에이기도 했다. 이는 이 지역이 고대 로마시대 갈리아 벨기카 속주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3.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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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란트 백국
- 제일란트 백국
- 오버레이설
- 프리슬란트
- 흐로닝언과 오멜란던
- 헬러 공국
- 위트레흐트
브라반트, 플란데런, 오베르마스, 상부 헬러, 베스테르볼더[3] 의 경우 일반 지역(Generaliteitslanden)이라고 해서 네덜란드 독립전쟁 당시 저지대 17개 주 중에서 7개 주를 제외한 나머지 10개 주 중 네덜란드 공화국군이 점령하는데 성공한 지역으로 7개 주 어디에 속하지 않고 공화국 총독의 직접 통치를 받는 공화국 직할지였다. '일반 지역'은 자체적인 주 정부가 없었으며 가톨릭 신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으로 개신교를 믿는 공화국 당국으로부터 기본권이나 세금 부과 등에서 여러가지 차별을 받으며 사실상 식민지 취급을 당했다.
4. 독립과 네덜란드 공화국의 탄생
지금은 흔히 네덜란드 공화국이라고 하나의 국가인것같은 명칭으로 부르지만 본래 네덜란드라는 하나의 통일된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고 단지 합스부르크 가문의 군주가 현재 네덜란드 지역에 있던 여러 작은 나라들의 군주 자리를 겸임하고 있던 동군연합일 뿐이었다. 이후 합스부르크의 카를 5세가 신성 로마 제국 황위는 동생 페르디난트 1세에게, 저지대(네덜란드)와 스페인은 자신의 장남 펠리페 2세에게 각각 물려주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분할상속을 시전하면서(...) 저지대 나라들은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국왕 펠리페 2세와 동군연합 상태가 되고 스페인의 간섭을 받게 된다.
이 저지대 나라들(low countries) 중 북부의 7개 나라들은 네덜란드 독립전쟁을 통해 동군연합으로 재위하던 펠리페 2세의 군주 자리를 폐지해버리고 공화국이 되는데 독립전쟁에서 공을 세웠던 오라녀 공 빌럼이 군주가 아닌 스타트하우더르(통령, 총독)로서 이 저지대 7개 나라들의 명목상 국가원수 직책을 겸임하는 형태로 재임하게 된 것이다. 명목상 네덜란드 공화국은 하나의 통일된 국가가 아니라 한 사람이 동시에 7개국 각각의 통령(스타트하우더르)이라는 직책들을 겸직하고 있는 상태라는 독특한 정치체였기 때문에 일곱 네덜란드(저지대) 연합 공화국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후로도 빌럼의 후손들이 대대손손 네덜란드 공화국의 국가원수(Stadthouder/스타트하우더르)를 맡았다. 이름은 국가원수이지만 합법적으로 자리를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으므로 사실상 (제한된) 실권까지 있는 국왕이나 다름없었다. 사실 명색이 공화국인데 이런 세습에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주로 계승이 이루어질 때 지지하는 주와 반대하는 공화파 주가 갈려 대치하다가, 오라녜 공이 회유와 협박으로 스타트하우더르 직을 얻어내거나, 외교 형세가 불리해지면 통합된 리더십을 제공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세력인 오라녜 공을 공화파주가 울며 겨자먹기로 추대하는 식이었다.
두세기 후 독립하게 되는 미합중국 또한 군주가 없는 공화국+여러 구성국들로 이루어진 연방제라는 이 네덜란드 공화국과 상당히 비슷한 국가 체제를 수립하게 된다. 실제 미국(미합중국)과 네덜란드 공화국의 독립과 국가수립 과정은 상당히 비슷한 특징이 많은데 제국(네덜란드-스페인 제국, 미국-대영제국)의 지배를 받던 여러 속국들이 단합해 독립전쟁을 일으켜 외국의 지원을 받아 승리한 후 연합 형태의 공화국이 되었다는 것, 독립전쟁의 발단에 세금 문제로 인한 지배국과 현지의 부유한 상인 계층간의 갈등이 주요한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는 것, 국가 수립 과정에서 칼뱅주의 개신교도들(네덜란드-개혁교회, 미국-청교도)과 기존 교회(가톨릭, 성공회) 간의 갈등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 독립 과정에서 한명의 지도자가 큰 역할을 했고 초대 국가원수가 되었다는 것(네덜란드-빌럼 판 오라녜, 미국-조지 워싱턴)이다.
5. 네덜란드 황금기
네덜란드 공화국 시대의 전반기(17세기)는 네덜란드 역사의 최전성기로 여겨지며 네덜란드 황금기(Dutch Golden Age)라고도 불린다. 실제로 그 당시 네덜란드 공화국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와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로 대표되는 상업과 금융의 번영도 유명했지만 스피노자, 렘브란트, 요하네스 베르메르 등으로 대표되는 학문과 문화의 발전까지 모든 부문에서 진정 황금기라 할 만했다.
데지마 상관을 통해 일본의 에도 막부와 유럽 사이의 무역을 독점했던 것 또한 유명하고 당시 에도 막부에서도 데지마의 네덜란드 상관을 통해 서구의 학문과 문물이 유입되어 난학이라는 신학문이 발생하기도 했다. 헨드릭 하멜, 벨테브레를 통해 당시 조선과도 접촉한 바 있다. 다만 벨테브레는 당시 네덜란드 공화국이 일부를 지배하고 있던 타이완 섬으로 가려다가, 하멜은 일본에 가려다 풍랑에 휩쓸려 제주도로 표류한 사람들로 네덜란드 공화국과 조선 사이에 정식 무역관계는 없었다.
6. 네덜란드 공화국의 해체
하지만 이러한 네덜란드의 전성기는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이 지정한 항해조례로 인해 쇠퇴를 맞게 되었다. 이후에는 영란전쟁[4] 에서 패배하면서 해상 주도권을 잃게 되었고 영국과 프랑스와 같은 후발주자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이며 경제력에도 어느 정도 타격을 입는다. 그러던 타격에 결정타를 가했던 것이 바로 프랑스 혁명이다.
프랑스 혁명 때 프랑스 제1공화국이 벨기에를 합방한 이후 네덜란드까지 넘보게 되었고, 결국 손 쉽게 네덜란드는 정복당하게 된다. 왕당파 세력들이 내쫓겨나게 되고 새롭게 바타비아 공화국이 성립되면서 네덜란드 공화국은 해체하게 된다.
7. 무역
- 네덜란드/무역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