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건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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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의 작은형,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에서는 언론 등에서 '봉하대군'으로 불렸다.
2. 상세
1973년 일찍 세상을 뜬 큰형 노영현을 대신하여 노무현의 뒷바라지를 해주었다고 한다. 노무현에게 있어서 노건평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라고 저서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대통령이 된 이후론 여러 구설수에 휘말려 오히려 그의 발목을 잡아버렸다.
경상남도 최고의 명문고등학교인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군대로 끌려가 병장으로 제대한 뒤 바로 5급 공무원이 되었다.[4] 이후 약 10년간 세무서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세무공무원 교육시험에서 전국 1등을 차지한 적도 있다고 한다. 1977년, 마산세무서 행정주사보로 재직 중, 수뢰 혐의가 드러나, 1978년 6월에 국세청에서 징계파면되었다. 즉 노무현 '''당선 25년 전부터 싹수가 노란 사람이었다.''' 7-80년대는 세무공무원을 비롯하여 공무원들이 암암리에 적당히 비리를 해먹고 서로들 눈 감아주는 시대였다.[5] 그런데도 불구하고 징계 파면을 당할 정도라는 것은 뒤탈이 날 정도로 사정 봐주지 않고 해먹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말인 2006~2008년쯤부터 박연차 게이트에 얽혀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박연차와 얽힌 세종캐피탈이라는 회사로부터 30여억 원을 받고 농협이 세종증권을 인수할 수 있게끔(현 NH농협증권) 청탁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 최종적으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과 2심 판결문에서 판사는 노건평에게 '''"평범한 세무공무원이 동생의 대통령 당선 이후로 로열패밀리가 됐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에는 애초 관심이 없었다."'''며 강하게 질타했다. 그리고 이어서 '''"'내가 키웠다’고 자랑하던 동생이 자살했고, 이제는 해가 떨어지면 동네 어귀에서 술을 마시며 신세 한탄을 하는 초라한 시골 늙은이의 외양을 하고 있다"'''며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었다. 마지막으로 감형을 해주면서도 '''"동생을 죽게 만든 못난 형으로 전락한 노씨를 감형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끝까지 폭풍디스를 가했다.#
징역 생활을 하다가 2009년에 남동생 노무현이 자살로 인해 사망함으로써 노무현의 상주 노릇을 해야 돼서[6][7] 임시로 가석방됐고, 다시 징역 생활을 하다가 2010년에 광복절 특사로 사면됐다.
2015년에는 성완종과 연루되어 다시 한번 이름이 오르내렸다. 성완종의 청탁을 받고, 대통령 특사를 알선한 대가로 금품 5억 원을 수수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받지는 않았다.
성격적으로 제법 한성깔 했던 사람이며, 이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노무현이 중학교 시험에 합격하고 그 중학교에 원서를 넣으러 엄마와 함께 갔는데 그 교장한테 되려 욕을 먹고 "노무현 학생은 집안이 가난해서 이 학교에 못 다닌다."는 등 온갖 조롱을 일삼았는데, 노무현의 엄마는 울면서 한 번만 우리 무현이 입학시켜 달라고 사정했지만 노무현은 "어머니, 지는예 이딴 드러운 학교 안 다니겠습니더!"라고 교장이 보는 자리에서 원서를 찢어버릴 정도의 패기를 보였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노건평은 그 중학교에 쳐들어가 노무현 및 모친에게 모욕을 준 그 교장의 멱살을 잡고 협박을 함과 동시에 니 잘못을 인정하고 우리 무현이 입학시켜 달라는 말을 하자 그때 교장이 꼬리를 내리고 항복을 했다고 한다.
3.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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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박연차 게이트
박연차 게이트 문서로. 본인과 동생인 노무현 前 대통령이 연루된 정치적 사건이다. 어찌 보면 박연차 게이트는 노무현 前 대통령의 서거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으니 노건평의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이런 점에서 이상득과도 일치한다.
3.2. 성완종 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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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타
현재 노무현의 형제들 중 누나와 함께 살아있는 단 두명의 인물 중 하나이다.
5. 이후
2017년 노무현8주기 추도식때 참석함으로서 얼굴을 들어낸 이후 행적을 찾을수 없다. 이규연의 스포라이트에서 피아제시계와 논두렁 관련 편에서 음성 인터뷰 이후로는 단 1번도 들어낸적 없다.
6. 관련 문서
[1] 족보에는 항렬을 따라 문현(文鉉)으로 올라가 있다.[2] 광주군계 31세손 현(鉉) 항렬이다.[3] 세 명의 부인에게서 얻은 자녀들이다.[4] 이 당시의 5급 공무원은 지금의 사무관이 아니다. 이 당시 고등고시 합격자는 3급으로 임용되었다.[5] 이는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에 잘 묘사되어 있다.[6] 지금처럼 핵가족이 아닌 당시 대가족 시절에는 사자(死者)의 아들이 상주를 하는 게 아니라 사자의 맏형, 이마저도 사자의 맏형이 그 전에 사망했을 경우 사자의 막냇동생이 하는 게 일반적.[7] 다만 국민적인 민심이 무서웠는지 봉하마을에서 상주는 문재인이, 서울지역 상주는 유시민이 맡는 등 노무현의 최측근들이 아들인 노건호와 함께 상주 역할을 맡으며 국민장을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