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루토코 신지

 

'''일본 중의원 (오사카 12구)'''
''선거제도 개편''

'''제41~43대
다루토코 신지'''

'''제44대'''
기타가와 도모카쓰
'''제44대'''
기타가와 도모카쓰

'''제45대
다루토코 신지'''

'''제46~48대'''
기타가와 도모카쓰

'''일본 제16대 총무대신
(たる(とこ(しん(
다루토코 신지
'''
'''이름'''
<colbgcolor=#ffffff>다루토코 신지 ((たる(とこ(しん()
'''출생일'''
1959년 8월 6일 (64세)
'''출생지'''
시마네현 이이시군 미토야초 (現 운난시)
'''학력'''
오사카대학 경제학부 졸업
'''정당'''

'''의원 선수'''
'''6''' (중)
'''의원 대수'''
40, 41, 42, 43, 45, 48
'''지역구'''
오사카 12구
'''약력'''
오사카부 제12구 중의원
중의원 환경위원장
민주당 국회대책위원장
중의원 국가기본정책위원장
민주당 간사장 대행
총무대신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다루토코 종합 연구소 소장
주식회사 야마네 메디컬 이사
희망의 당 긴키 권역 비례대표 중의원
희망의 당 대표 대행
1. 개요
2. 생애 및 정치 활동
3. 소속 정당
4. 기타


1. 개요


일본의 정치인. 오사카부 제12구 중의원, 제16대 총무대신,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등을 역임했다.

2. 생애 및 정치 활동


1959년 시마네현 운난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오사카부로 이사왔는지, 네야가와시립 니시 소학교 시절에는 야구부, 다이고 중학교 시절에는 다니던 학교에 야구부가 없어서 축구부에서 활동했으며, 축구부에서 캡틴을 맡기도 했다. 축구를 잘했는지 추천 입학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지만, 본인은 축구보다 야구가 더 좋았었는지 고시엔 출장을 꿈꾸며 고교 야구 명문 학교인 오사카의 메이세이 고등학교[1]에 진학한다. 당연히 진학 후 학교에서 야구부에 들어가 활동하지만 허리와 어깨 부상으로 탈퇴했다. 고교 졸업 후 오사카대학 경제학부에 진학했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야구부에 들어가지만 이번에는 팔꿈치 부상으로 탈퇴하게 되었다. 결국 야구의 꿈을 사실상 접고 요양을 하던 중 마쓰시타 정경숙 광고를 신문을 통해 접한 뒤, 정치인을 지망해 대학 졸업 후 마쓰시타 정경숙에 들어가 3기생으로 수료한다.[2]
그 후 1990년 제3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구 오사카부 제7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지만 낙선한다. 낙선 후 자민당의 에토 세이시로의 비서로 근무했었는데, 주위로부터 "너는 세습도 아닌데 어떻게 정치인이 되느냐"라는 소리를 들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1992년 호소카와 모리히로가 창당한 일본신당에 입당한다. 입당 후 1993년 제4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일본신당 소속으로 구 오사카부 제7구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하게 된다.
이후 신진당에 합류하고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오사카부 제12구에 출마해 당선된다. 당선 후 호소카와를 따라 프롬 파이브, 민정당을 거친 뒤 민주당에 합류했으며,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때까지 지역구인 오사카부 제12구에서 당선된다. 그러나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자민당 기타가와 도모카쓰에 밀려 낙선한다. 이후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지역구인 오사카부 제12구에 재출마해 다시 당선된다. 당선 후 민주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지만 낙선하고, 당 내에서 국회대책위원장, 간사장 대행 등의 당직을 맡는다. 그러다가 2012년 9월 경에 가와바타 다쓰오의 뒤를 이어 노다 요시히코 내각에서 총무대신 겸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을 맡게 되면서 입각한다. 그런데 동년 12월에 중의원을 해산하게 되면서 입각한지 고작 3개월 만에(...) 대신직에서 내려오게 되었고, 총무대신은 신도 요시타카가 되었다.
그 뒤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낙선하면서 다시 원외 생활을 하게 된다. 이 당시 연구소를 차리거나 기업의 임원을 맡기도 했다. 그러다가 민진당으로 개칭한 후 2016년 4월 30일 당은 정권운영에 실패해 민심을 잃었다며 당을 탈당하고 무소속 활동을 했다. 2017년 희망의 당에 합류해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지역구에서 떨어지고 희망의 당 긴키 권역 비례대표 중의원으로 당선되어 5년 만에 원내로 복귀했다.[3] 선거 기간 당시 고이케 유리코의 지명으로 희망의 당 대표대행을 맡았으며 다마키 유이치로가 새 대표로 선출될 때까지 역임했다. 그 후 국민민주당에 합류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남아 있다가 비례대표 의원직을 사퇴하고[4] 2019년 일본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자신의 지역구였던 오사카부 제12구에 무소속으로 다시 출마하지만, 후지타 후미타케에게 패배하면서 자신의 옛 지역구에서 2위도 아닌 3위로 낙선하는 굴욕을 겪었다. 덧붙여 지역구에서 5번째로 낙선한 기록을 세웠다(...).

3.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90 - 1992
정계 입문

1992 - 1994
창당

1994 - 1997
합당

1997
호소카와 모리히로를 따라서 탈당

1997 - 1998
창당

1998
합당

1998 - 2016
합당

2016
당명 변경

2016 - 2017
탈당

2017 - 2018
입당

2018 -
정당 해산

4. 기타


  • 다루토코의 할머니는 히로시마현 출신으로,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로 인한 피폭자다. 다루토코 본인은 피폭 3세대인 셈.
  • 유년기 시절 여동생이 교통사고로 요절했으며, 당시 여동생의 교통사고 장면을 직접 목격한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1] 무라이 요시히로의 출신 고등학교.[2] 당시 마쓰시타 정경숙 동기로 사사키 류조, 마쓰자와 시게후미가 있다.[3] 당시 2위로 당선된 사람이 교토부 제5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이노우에 가즈노리였다.[4] 사퇴한 의원직은 희망의 당 소속으로 나라현 제1구에 출마했다가 아깝게 낙선했던 마부치 스미오가 승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