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브로엄

 


GM대우 플래그십 라인업
임페리얼

'''브로엄'''

아카디아
[image]
F/L 모델[1]
1. 개요
2. 상세
3. 여담
4. 둘러보기

'''DAEWOO BROUGHAM'''[2]

1. 개요



1992년 당시의 CF 영상.[3]

'''귀하의 명성을 위한 고품격 네오-클래식 세단ㅡ 브로엄'''

대우자동차에서 1991년 10월에 출시된 FR 방식의 고급 준대형차. [4]

2. 상세


프린스와 함께 V-카 프로젝트로 개발되었으며, 대우 로얄 시리즈의 최고급 차종인 수퍼살롱[5]의 뒤를 잇는 모델로 출시되었다. 프린스의 상위호환. 출시 당시에는 2.0ℓ SOHC, 2.0ℓ DOHC 가솔린 엔진 트림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1993년 6월부터는 1994년형이 선보이면서 알루미늄 휠 디자인 변경 및 파워 안테나의 위치를 조수석 앞 펜더 근처에서 운전석 뒷 펜더 근처로 옮겨지고, 직렬 6기통 3.0ℓ SOHC[6][7]엔진 트림도 추가되어 사실상 대우의 플래그쉽 모델로 잠깐 활약하기도 했지만, 이듬해 아카디아의 출시로 8개월 만에 조기 단종되었다.
하지만 1996년에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뉴 브로엄으로 개편되면서부터는 2.2ℓ DOHC 엔진 트림이 추가되기도 했다.[8] 또 프린스의 엔진을 유용한 2.0 SOHC LPG 택시도 있었다.
프린스처럼 엔진에 따라 4단 자동변속기의 타입이 달랐다. DOHC에는 전자식, SOHC 및 LPG에는 유압식이 달렸다. SOHC 모델에는 5단 수동변속기도 있었다.
차의 족보가 상당히 복잡한데, 이 차의 근원은 대우 로얄 시리즈의 고급형인 1987년의 수퍼 살롱에서 시작한다. 대우 로얄 시리즈가 1991년 일제히 마이너 체인지되며 라인 업이 대폭 정리되었는데, 중형 세단인 프린스, 그리고 내외관을 고급스럽게 꾸민 수퍼살롱(나중에 브로엄이 된다)으로 나뉘게 된다. 대형차인 로얄 살롱은 임페리얼이 승계했지만 4 년도 안 되어 단종되고 아카디아가 등장하기 전까지 공백으로 남았었다. 브로엄의 경우 시기마다의 이름이 다른데, 1991년부터 1994년까지는 수퍼살롱/수퍼살롱 브로엄[9], 1994년부터 1996년까지는 브로엄, 1996년부터 1999년까지는 뉴 브로엄이라고 불리웠다. 1994년에 이름이 최종 정리되기 전까지 브로엄은 수퍼살롱 고급 트림의 명칭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후륜구동 플랫폼은 알다시피 레코드(...).
위 사진상의 모습, 즉 21세기 들어 브로엄 하면 떠오르는 저 디자인은 1991년에 나온 신형 수퍼살롱[10]부터의 이야기다.
초기형은 라디에이터 그릴이 촘촘한 세로형이었고, 하나의 큰 원 안에 작은 원 3개가 나란히 있는 모양의 엠블럼[11]이 그릴 중앙에 있었다.초기형 라디에이터 그릴 모습 보기 측면 윈도우 라인은 프린스와 판박이처럼 똑같지만, 앞뒤 범퍼를 늘리고 크롬 도금 장식을 잔뜩 발라 보다 화려해 보인다. 외형도 프린스와 다르게 곡선 형태의 유선형 디자인이 특징이며, 뒷 번호판 자리도 범퍼 아랫쪽으로 내렸다. 하지만 나중에 뉴 프린스도 그렇게 디자인을 변경한 건 아이러니.
중형급인 프린스와 차별화된 럭셔리 이미지를 표방했지만, 시장에서는 '''프린스의 가지치기 모델'''에 불과하다는 평가[12]를 받으며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베이스 모델인 프린스쏘나타로 인해 고전하고 있었기에 프린스의 외장만 달랐던 브로엄은 사정이 더더욱 나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당시에 한국 자동차 럭셔리 세단에서 중요시되는 차체 크기가 프린스와 완벽히 똑같은 중형급에 지나지 않았기에 브로엄 구입할 돈으로 차라리 조금 더 보태서 뉴 그랜저포텐샤 등의 대형 모델로 가는 편이 낫다는 인식이 많았기 때문이다.
1996년에 페이스리프트했을 때 센터페시아와 계기판 모양이 달라졌다. 이후 또 한 번의 변경 때 더블 D 모양의 후드 탑 엠블렘을 버리고 대우의 신형 엠블렘을 달았으며, 97년 5월에 98년형이 출시되면서 처음으로 아웃사이드 미러가 접이식으로 변경됐다.
레간자가 나온 후에도 생산했지만, 대우그룹이 망하기 일보 직전이던 1999년 4월부터는 아카디아와 함게 특가로 재고 처분했다가 결국 8개월 뒤인 1999년 12월 프린스와 함께 단종되고, 매그너스가 출시되며 브로엄의 후속을 이어가는 듯 했다가 매그너스가 중형급인 레간자의 후속 모델로 포지션이 변경되면서 '''19년 3개월 동안 우려먹던''' 로얄 살롱 - 수퍼 살롱 - 브로엄 시리즈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동시에 GM V-플랫폼 역시 대한민국에서 완전히 퇴역하면서 대한민국후륜구동 준대형 세단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대우 계열 준대형차의 계보는 신형 V-플랫폼을 이용한 스테이츠맨[13] 과 제타 플랫폼의 베리타스가 이어졌으나, 수입판매밖에 할 수 없었던 이들은 자연스레 망했어요가 되었고, 2010년에는 알페온이 출시되었지만 경쟁 차량 대비 부진한다. 그 후에 나온 임팔라는 성공하나 싶더니 또 그랜저와 K7에게 밀리다가 2020년 단종을 맞았다(...).

3. 여담


[image]
[14]
  • 폴란드를 비롯한 구 동구권 국가들과 남미에서는 관공서용으로 소량 수입해 형제 모델인 프린스와 함께 장관용 임용차로 사용하였다(...).
  • 브로엄 2.2의 경우에는 레간자의 매니아들이 굉장히 눈독을 들이는데, 그 이유는 레간자 2.2와 엔진이 같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2.2 모델을 시승했던 레간자 매니아들 중에 브로엄의 엔진을 스왑해 국내에 얼마 없던 레간자 2.2를 뚝딱 만들어(...) 주위를 놀라게 하기도 하는 경우가 과거 심심치 않게 있었다.
  • 최근 올드카들의 레이싱 대회인 '언더100 레이스'에는 모 오너의 튜닝된 브로엄이 대우차 중 거의 유일하다시피 출전 중이다.
  • 영화 범죄의 재구성 첫 장면에서 최창혁 (박신양 扮)이 한국은행에서 50억원을 훔친 후 이 차를 타고 경찰과 추격전을 벌인 끝에 낭떠러지에 추락 및 폭발한다(...).

4. 둘러보기



[1] 최후기형은 아웃사이드 미러가 접이식이었다. 사진은 최후기형 이전의 모델.[2] 차명인 '브로엄'은 옛 영국의 고급 마차로, 런던의 좁은 길에서도 잘 다닐 수 있도록 작고 날렵하게 만들어진 쿠페의 일종이다. 참고로 브로엄 공식광고와 브로엄 카탈로그에 나와 있다.[3] 나레이션 성우는 드라마 야인시대의 나레이션으로 유명한 이강식이 맡았다.[4] 그리고 10년 뒤, 옆 동네 기아차에서도 옵티마 - 리갈 사례가 나왔다.[5] '슈퍼 살롱'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식 명칭은 '수퍼살롱'이었다.[6] 임페리얼에 들어간 엔진을 약간 개량하고, 임페리얼에 들어간 아이신의 4단 전자식 자동변속기를 활용하였다. 그 외에도 임페리얼의 내장 부품 일부를 적용하기도 하였다. 생산 기간도 8개월로 매우 짧은 데다가 생산량도 매우 적어서 현재로써는 잔존개체가 한자릿수에 불과하다고 하며 오너들에게 찾아가서 팔아달라고 애원했으나 거절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초레어급 차량으로 남아 버렸다.[7] 브로엄 3.0 모습 휠이 다르고 브로엄 3000이라 적혀있다.[8] 해당 엔진은 레간자의 최고급 트림인 2.2에 들어간다.[9] 수퍼살롱의 상위 버전이 수퍼살롱 브로엄이었다. 이후 하위 버전이 사라지고 상위 버전만 남으면서 이름에서 수퍼살롱이 빠지게 된다.[10] 등장할 때부터 '브로엄'이었던 것이 아니다. 1991년 등장시는 그냥 이전 모델과 같은 '수퍼살롱'이었고, 이후 '수퍼살롱 브로엄'이라는 상위트림이 추가되었다가 1994년부터는 아예 모델 이름에서 '수퍼살롱'을 떼어내고 '브로엄'이 모델명으로 변경된 것이다. 이 과정이 아주 짧은 기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과정을 모르고 '브로엄'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쟁사의 그랜저에 밀리고 자사의 프린스에 밀려서 워낙 존재감이 없던 모델이었던 탓도 있다.[11] 로얄 살롱 및 수퍼 살롱의 라디에이터 그릴 중앙에 붙였던 왕관 뱃지에서 나란히 붙은 작은 원 3개만 가져온 듯하다. 이 뱃지는 스티어링 휠 중간에도 달렸었다. [12] 애초에 1980년대 로얄시리즈의 로얄살롱과 로얄프린스가 그런 관계였고, 1986년에 페이스리프트된 후의 수퍼살롱과 로얄프린스도 마찬가지 관계였다. 그리고, 1991년의 수퍼살롱(브로엄)과 프린스 역시 마찬가지 관계였는데 옛 모델들에서는 괜찮았다가 이제 와서 그런 평가를 받은 것이니 대우자동차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1980년대와는 달리 자동차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바뀌었던 것이 문제였다. 소형차와 중형차 정도로 구별되던 1980년대 초~중반에는 로얄살롱과 로얄프린스의 바디가 사실상 같아도 문제가 없었다. (원형인 로얄 자체가 이미 고급차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1986년 현대 그랜저 등장 이후 중형차와 대형(준대형)차의 구별이 철저해지기 시작했으며, 중형차와 바디가 같은 상위 모델, 즉 중형차의 가지치기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위 모델은 시장에서 인정을 받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런 시대에 거의 같은 스타일로 수퍼살롱(나중에 브로엄으로 명칭 변경)과 프린스를 내놓았으니 시장에서 제대로 먹힐 리가 없었다. 그런데, 바로 얼마 후 현대자동차도 쏘나타 3의 가지치기에 불과한 것이 뻔한 마르샤를 내놓는 뻘짓을 벌였고 당연히 처절하게 말아먹었다. 이때의 교훈을 바탕으로 현대자동차는 EF 쏘나타의 상위 모델인 그랜저 XG를 만들 때는 철저히 다른 스타일을 적용하게 된다. 대우자동차 역시 레간자의 상위 차종으로 매그너스를 개발했지만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제대로 상위 차종으로 인식되지 못했다.[13] 당시 자동차생활 지에서는 스테이츠맨을 소개하면서 '브로엄의 먼 후손'이라고 소개하기도 하였다.[14] 브로엄이 수출되거나 중고차로 팔린 국가(러시아나 동남아시아)에서 리무진으로 튜닝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