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포텐샤
KIA POTENTIA[3]
1. 개요
마쓰다 루체 5세대[4] 의 세단 버전 및 수출형 모델 929[5][6] 를 기반으로 만든 기아자동차의 후륜구동 준대형 세단으로, 당시 중형차 라인업을 책임지던 콩코드와 크레도스의 윗급 라인업으로 출시.
1980년대 당시 그라나다의 후속인 그랜저가 큰 인기를 끌자 기아자동차는 산업합리화 조치로 인하여 푸조 604를 강제로 단종당한 이후 자사 대형 승용차의 부재에 대한 고민이 심했다. 그래서 포드의 머큐리 세이블[7] 을 수입해서 OEM으로 판매하는 등 아쉬움을 달래다가, 당시 제휴 관계였던 마쓰다의 최고급 세단인 루체의 5세대 세단 버전과 929를 손봐서 포텐샤를 출시했다.[8] 엔진은 V6 2.0과 로터리(!) 엔진을 제외하고는 다 들여왔다. 전륜구동에 오로지 승차감에만 치중한 그랜저에 비해 상당히 스포티하면서도 균형잡힌 운동성능이 비교되어 자동차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나름대로의 선전이 기대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체는 1986년에 5세대로 풀체인지를 거쳤기 때문에 1990년대 중후반을 거쳐 2000년대로 흘러갈수록 플랫폼은 이미 노후화된 상태. 1980년대 차량의 플랫폼이다보니 안전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설상가상으로 고질적인 연비 문제, 가장 강력한 경쟁차량인 그랜저 XG의 선전과 내구성으로 무장한 SM5 V시리즈의 파상공세[9] , 엄격해진 환경 규제로 인해 2002년에 후속 차종 없이 단종되었다. 이후 포텐샤의 자리는 전륜구동 고급 중형차인 옵티마 리갈이 일부 대체했고, 2009년에 쏘나타[10] 의 플랫폼으로 제작된 K7이 이어받게 된다.[11] 이후 2017년과 2021년에는 각각 스팅어와 K8이 이어받는다.[12]
2. 제원
3. 상세
3.1. 전기형(1992년)
1992년 국내 판매 초기 당시에는 V형 6기통 3.0과 직렬 4기통 2.2 두 가지 엔진 바리에이션을 가지고 판매를 시작했다. 초기형의 2.2리터 엔진은 기아자동차 최초로 3밸브 형식을 채용했고(흡기 2밸브, 배기 1밸브), 기본형은 수동변속기를 채용했다.
3.2. 중기형(1994년)
1994년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투톤 컬러를 생략하고 원톤으로 출시되기 시작했으며, 최저사양인 직렬 4기통 2.0 아너(Honour)[14] 와 최고사양인 V형 6기통 3.0 프레지던트 클래스를 추가했다.
전기형은 본네트가 라디에이터 그릴과 분리되어 열리도록 설계하였는데, 중기형은 본네트와 라디에이터 그릴이 일체로 열리도록 변경하였다.[15][16] 테일 램프는 적색과 백색이 어우러진 산뜻한 디자인으로 변경되었다. 일자형으로 된 트렁크 덮개 아랫단에는 약간의 굴곡을 넣고[17] 비녀 몰딩[18] 을 추가하였다.
중기형은 중간에 세미 F/L를 하였는데, 편의상 1기와 2기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 1기형: 맨 위의 이미지처럼 라디에이터 그릴의 베젤이 굵게 디자인 되었고, 그릴 중앙에 Kia 엠블럼이 부착되어 있었다.[19] 트렁크 좌측의 차명 로고와 중앙의 키 오너먼트는 전기형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였고, 우측에는 Kia 엠블럼이 부착되다가 94년 중반부터 새로 바뀐 타원형의 KIA 엠블럼이 부착되었다.
- 2기형: 라디에이터 그릴의 베젤 전체가 헤드램프 부품과 합쳐지는 형태로 바뀌면서 굵기가 가늘어졌고, 그릴 중앙의 KIA 엠블럼이 삭제되었다. 트렁크의 엠블럼 폰트가 필기체로 변경되었고, 키 오너먼트가 타원형으로 새로 디자인되었다. 트렁크 우측에는 KIA엠블럼 대신 등급 명칭(Honour, Classic, President)을 부착하였다. 또한, 전후 범퍼와 사이드 몰딩에 들어갔던 크롬 스트라이프가 삭제되었다.[20] 머플러 팁이 원형에서 타원형으로 변경되었다.
3.3. 뉴 포텐샤(1997년)
1997년 5월에 '뉴 포텐샤'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리프트 버전 모델을 선보였다. 그 해 3월에 상위 클래스의 FR 모델인 엔터프라이즈가 기아의 새로운 기함으로 등장함에 따라 포텐샤는 엔터프라이즈에게 기함 자리를 넘겨 주고 준대형급 모델로 판매되었다. 2.2리터 엔진과 V6 3.0리터 DOHC 엔진 모델이 단종되었고 4기통2.0/V6 2.5 모델로 재편되었다. [21][22] 큰 변경폭의 페이스 리프트를 통해 전기형과 중기형의 앞범퍼 처짐 현상도 함께 개선했다. 이때부터는 수동변속기가 삭제되고 4단 자동변속기만 탑재했다. 조수석 에어백과 내비게이션 시스템도 추가되었다. 또한 LPG 택시도 나왔다.
4. 모형화
세창기업과 크로바완구에서 1/35 스케일의 미니카로 발매하였다.[23] 발매된 지 오래됐기 때문에 두 제품 모두 구하기가 어려운 편이다.
5. 여담
- 사족으로, 기아 포텐샤는 TV광고를 하지 않은 고급차 중 하나였다. 각그랜저나 포텐샤 등 7~80년대의 일부 자동차 기함들은 TV광고는 하지 않고 신문광고만 한 경우가 많았다. 이에 대해서는 대중들 앞에 나가기보다는 고상한 신문이나 입소문 등을 통해 전해지는 "신비주의"를 모티브로 삼아서 TV광고를 만들지 않았던 것이라는 말도 있다. 기아의 기함들 중 TV 광고를 처음 찍은 차는 기아 엔터프라이즈이다.
- 기아차에서는 유일하게 주유구가 오른쪽에 위치해 있는 특징도 있었다.
- 주차브레이크가 페달식으로 되어 있었는데, 국내 최초로 적용된 방식이었다. 단, 수동변속기 사양에는 수동식[24] 이 적용되었다.
- 차량에 타 보면 기본적으로 낮고 넓게 뻗은 계기판이 정말로 인상적이다. 계기판 모습 보기 과거 콩코드나 엔터프라이즈에서나 볼 수 있는 전자식 계기판도 있었고(V6 3.0),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계기판이라 하더라도 길고 긴 계기판에서 오는 위압감은 실로 대단했다. 계기판 내에 전압계까지 장비된 점 또한 독특했다.[25] 1992~2002년까지 모든 모델이 이런 독특한 계기판을 사용한 것은 포텐샤만의 개성이다. 공조장치 역시 자동위치에 놓아두면 벤트가 좌우로 알아서 움직이는 스윙루버 기능을 콩코드과 함께 선보인 바 있다. 현재 길쭉한 계기판은 벤츠 S클래스에도 있다. 이쪽 역시 디지털 계기판이다.
- 2010년대 후반 이후로는 더 이상 중고차 시장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아끼는 매니아들은 공들여 관리하며 타고, 일반 소유자들은 대충 타다가 팔아버리거나 폐차해 버렸기 때문이다.
- 특유의 구동 방식과 각진 디자인, 기아의 기함으로써 출시되었다가 1997년부터는 한 단계 낮아지며 2등 자리를 차지했던 모델은 이젠 찾아볼 수는 없지만, 특유의 클래식한 디자인과 기아자동차 특유의 기계적인 느낌으로 자기 개성은 확실한 차이다.
- 실질적 후속은 한동안 없었지만, 후륜구동 세단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기아 스팅어를 정신적 후속작으로 치는 사람들도 드물게 있다.
- 마쓰다 RX-7의 미션이 볼트온으로 완전 호환된다는 것이 밝혀져 국내 일부 포텐샤 오너들이 FC~FD계의 수동미션을 스왑하는일이 많아졌다. (만약 기아자동차에서 지속적으로 정비부속을 생산하였다면, 국내 FD 오너들은 싼값에 수동스왑을 마쳤을것이다.) 그래서 현재는 국내의 웬만한 순정 미션들은 FD 외에도 포텐샤에도 많이 올라갔다고 한다.[29]
- 사람들 사이에서 완전히 상반된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는데, 하나는 그랜저가 가지고 있는 것과 똑같은 '깡패들 차'란 오명이고[30] , 또 다른 하나는 시너(신나) 떼고[31] 마구잡이로 드리프트나 해대는 불법 레이싱 자동차라는 오명이다.[32] 그리고 이 두 가지 안 좋은 이미지의 공통점은 결국 포텐샤 = 막 쓰는 차라는, 원래의 고급차 컨셉과는 정반대이다. 그래도 다행이랄까 요즘에는 그냥 아재들과 할배들의 좋은 친구이자 옛부터 계속 타는 차(...)의 이미지가 되었다.
- 현역 시절에도 그다지 좋은 소리 많이 못 들었던 차량인데 이래저래 지금까지도 사람들 사이에서의 취급이 참 안습한 편이라 할 수 있다. 옵션도 그 시절의 자동차 치고는 제법 충실했고 고급 FR로서의 품격도 갖추고 있었건만 현역 시절 경쟁상대였던 그랜저와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
- 올드카 리스토어 열풍이 불면서, 입문하기 좋은 고급 올드카로 유명하기도 했었다. 사실 유지관리도 쉬운 편에 부속값은 동시대의 뉴 그랜져, 엔터프라이즈, 체어맨, 에쿠스와 비교해보면 제일 저렴한 편에 속하고, 추가로 기름까지 덜 먹는건 덤이었므로 꽤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올드카로 장사하려는 사람들 때문인지 차량의 시세가 각그랜저를 아득히 넘어 스텔라나 포니2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지경에 이르러버린 지금은 이제 입문 조차도 불가능한 올드카가 되었다. 더불어 부속값이 저렴한데도 불구하고 차를 험하게 굴리는 사람들이 많은 탓인지, 엔터프라이즈와 더불어 국산차 보험등급 최고순위까지 찍은 적이 있다...
- 1호차를 당시 민주자유당 최고위원이던 김종필이 탔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 뉴 포텐샤 이전까지의 헤드램프가 대형버스인 기아 그랜버드와 호환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초기형은 아예 똑같은 걸 사용했다. 정확하게는 포텐샤에 먼저 사용하고 2년 뒤에 그랜버드에 사용된 것이지만... 그래서 포텐샤 오너들은 그랜버드의 헤드램프를 구해서 장착하기도 한다.[33]
- 전 프로게이머인 강민이 개인방송에서 언급하길, 전 KTF 매직엔스(현 KT 롤스터) 정수영 감독이 오랜 기간 운전했던 차량이였으며, 그래서 방송 중에도 자주 "포텐형"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 1996년 허재가 음주운전 적발될 당시 이 차를 몰고 가다 접촉사고를 낸 후 뺑소니를 쳤다.
- 군용으로 개조된 일명 "군토나"가 포텐샤의 마쓰다 2.0 FE 엔진을 사용한다.
- 구형 한정으로 후륜 현가장치에 토우각을 물리적으로 변경시켜 코너링 성능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토우 컨트롤 암'이 장착되어 있다. 무려 RX-7 FC3S에 장착되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다만 정비성이 좋지 않아서 현재 잔존해 있는 포텐샤의 일부는 토우 컨트롤 암이 없는 뉴 포텐샤용 리어 멤버로 교체된 상태라고 한다.
6. 둘러보기
[1] 1~2세대[2] 전기형 한정. 후기형부터는 엔터프라이즈의 출시로 준대형으로 분류되었다.[3] 이름의 유래는 포텐셜(potential)에서 L을 뺀 것(...). 무한한 잠재능력이 집결된 최고의 차'라는 뜻에서 이런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4] 일본 내수 사양에는 마쯔다 RX-7에 실린 13B 로타리 터보엔진을 얹은 그레이드도 존재했다. 그리고 겉모습을 보면 알겠지만 사실 마쓰다에서 벤츠를 대놓고 베낀 디자인이고, 별명도 '''히로시마 벤츠'''였다.(마쓰다 본사가 히로시마에 있기 때문)[5] 루체에는 세단 버전과 하드탑 버전의 두 가지가 있었다. 1980년대의 일본 고급차들은 윈도우 프레임이 있는 '세단'과 프레임리스 도어 사양인 '하드탑'이라는 두 가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보통이었고, 당연히 루체도 세단과 하드탑의 두 종류가 존재한다. 포텐샤의 기본이 된 것은 루체의 세단형이다.(물론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일부 차종들은 세단형이 만들어지지 않고 하드탑만 만들어지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시가 루체의 후속 모델이자 엔터프라이즈의 기본이 된 센티아와 미쓰비시 디아망테.) 그리고, 그 세단 버전의 해외 수출형의 이름이 929였다. 1991년에 센티아의 출시로 루체의 자가용 사양이 단종되면서 하드탑도 같이 단종된 반면 루체 세단의 경우는 1995년 까지 택시 및 교습차량 사양으로 4년간 연장생산 되었다.[6] 다만 범퍼 디자인이나 헤드램프 실루엣 등을 볼 때 디자인 요소는 929의 것을 더 많이 담아낸 듯 하다.[7] 토러스의 형제차다. 따라서 세이블까지 합한다면 토러스는 대한민국에서 팔리는 수입차 중에서 꽤 오래 전부터 들어온 셈.[8] 단, 포텐샤가 출시된 1992년에는 루체 5세대의 자가용 사양은 일본내에서 이미 단종되었고, 이미 그 전 해인 1991년부터 후속 모델인 센티아가 판매 중이었다. 기아가 들여온 루체 5세대는 일본에서 1986년에 출시되었던 것인데, 같은 해에 미쓰비시와 현대에서는 1세대 그랜저와 데보네어V를 출시하였다. 또 포텐샤가 출시된 해인 1992년에 현대는 다음 세대 모델인 뉴그랜저를 출시하였다. 즉, 기아는 현대 그랜저의 한 세대 전 모델과 같은 세대의 차를 들여와서 만들기 시작한 것이 된다. 다만 이는 기아 입장에서 억울할 수도 있는게, 기아가 포텐샤를 출시했던 바로 그 시기에는 아직 뉴그랜저가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던 때였다. 또한 메카니즘과 성능 면에서 포텐샤는 각그랜저를 압도하였기에 각그랜저의 대항마가 되기에는 아주 적합한 모델이라 판단해 시장에 내놓았던 것이고 실제로 몇 달간은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그런데 몇 달 뒤 뉴그랜저가 출시되면서 입장이 애매해지게 된 것이다. 콩코드도 마찬가지로 콩코드가 나왔을 때에는 아직 y2쏘나타가 나오지도 않았었다. 또한 y2가 나오고 나서도 콩코드는 성능으로 쏘나타를 따돌렸기에 충분히 쏘나타의 적수가 될 수 있었다.[9] SM5 V시리즈의 파상공세는 포텐샤의 기세를 제대로 꺽었을 뿐만 아니라 그랜저 XG의 아성을 위협하기까지 했다.[10] 당시 쏘나타는 6세대 YF였다.[11] 차이점이 있다면 후륜구동인 포텐샤와 달리 K7은 전륜구동이다.[12] 스팅어는 특히 차급이 비슷하고 같은 후륜구동이기도 하다.[13] 뉴포텐샤는 4,955[A] A B C D E 자동 4단[B] A B 수동 5단[14] 필기체로 양각된 엠블럼이 부착되어 있었는데, 이 영어단어 자체가 그리 자주 쓰이는 단어가 아니어서인지, 그 단어를 생소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15] [16] 이러한 구조는 뉴 포텐샤에도 계속 적용되었다.[17] 트렁크 덮개의 프레스 금형을 수정한 것이 아니라 스테인리스 몰딩을 구부려서 부착한 '눈속임' 에 불과하였다. 따라서, 트렁크 덮개 아랫쪽으로 내려 온 스테인리스 몰딩은 허공에 떠 있는(!) 상태로 부착되어 있다.(...) 물론, 트렁크를 여닫을 때 손가락에 상처가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몰딩의 뒷쪽을 고무로 감싸 놓는 배려를 해 놓긴 했지만, 이만한 급의 차로서는 다소 충공깽 스러운 설계다. 이후에 뉴포텐샤로 F/L 하면서 스테인리스 몰딩을 모두 삭제하였다.[18] 기아차 내부에서 붙인 이름으로, 모양이 비슷하다고 해서 붙인 듯하다.[19] 맨 위 이미지의 라디에이터 그릴 중앙에 부착되어 있는 엠블럼이 타원형에 적색 바탕이기는 하여도, 초기에는 내부 글씨는 KIA가 아니라 깃발형 Kia였다. 94년 중반부터 저 모양 그대로 글씨체만 현행 기아 마크와 동일한 KIA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시기는 미상이나, 도중에 헤드램프의 내부 구조가 바뀌었다.[20] 전후 범퍼는 크롬 스트라이프를 삭제하면서 남는 브라켓 고정용 구멍을 메우는 금형 수정을 하였는데, 이전 모델 1,000대 분의 A/S용 범퍼를 미리 생산한 후에 금형 수정을 하였다고 한다.(고작 1,000대...)[21] 이건 포텐샤의 단종을 맞아서 자동차생활에서 작성한 기사이다. 로버와 공동개발한 2.5 엔진이 바로 GV6 엔진이며, 동시기 엔터프라이즈 2.5도 이 엔진으로 교체했다. 자세한 내용은 기아 엔터프라이즈|엔터프라이즈 참조.[22] 뉴포텐샤는 페이스리프트 모델의 특성상 XG의 상품성과 경쟁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1997년 외환 위기로 인해 V6 2.5 모델을 선택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전 모델부터 보더라도 고배기량인 3.0이나 2.2도 수요가 적었고 이것은 동시대 대부분의 고급차들에게 공통된 고민이기도 했다. 당대 가장 인기모델이었던 XG만 하더라도 중간급 2.5가 주력이었지만 엔트리급인 2.0의 판매대수도 만만치 않았다. 뉴 포텐샤의 주력인 2.0은 예전에 출시되던 포텐샤와 같은 파워트레인이었기에 주행 성능에서 차이를 보여주지 못했고, FR 차량은 이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 입장에서는 운전하기 어렵고 빗길이나 눈길에서 위험하다는 인식으로 인해서 XG에 압살당했다. 여기에 기아가 부도가 나면서 메이커 이미지의 추락도 크게 발목을 잡았다. 따라서 뉴 포텐샤는 단종될 때까지 사실상 136마력 2.0리터 DOHC 엔진으로만 버텼다.[23] 두 제품은 스케일이 동일하나 외관에서 차이점을 보인다.[24] 흔히 볼 수 있는, 센터 콘솔에 있는 레버를 손으로 당겨서 사용하는 방식.[25] 계기판의 전압계 자체는 90년대 초까지 쏘나타 등의 차량에 남아있었다.[26] 그리고 그 검색결과 중에는 진짜로 드리프트 머신을 만든 것도 있다! 2012년 5월쯤에 완성! 2012 서울오토살롱에도 전시된 차. 참고로 2009년부터 개조시작. 그 전까지는 공도 드리프트 머신이였다고 한다. 차량 말소 후 뒷좌석쪽 루프를 잘랐다고 한다. 현역 드리프트 머신이며 싱크로지에서 개최하는 넥서스 드리프트마스터 대회에 참가중. 다만 포텐샤 드리프트 머신은 2007년 DDGT 1차전때 검은색 차량이 , 2008년에 외장 컬러가 다른 포텐샤 한대가 DDGT 드리프트전에 출전했었으니 그 전부터 간혹 나오긴 했었다.[27] 차주 말로는 1JZ-GTE VVTi 엔진에 R154 수동미션 스왑이라고. 구변불가라 말소차량이며, 같은 년식 중신형 순정 포텐샤를 한 대 더 소유한 뒤 경찰 단속이 느슨한 밤 시간대에 번호판을 스왑하고 공도에 나온다고 한다 . 참고로 어디서 튜닝했는지는 보안이라 말할 수 없다고 한다.[28] 아주 간혹 강원도 동해시 일대에서도 새벽 시간대에 무광 검정의 포텐샤 드리프트 머신이 튀어나온다. 문제는 이게 번호판도 가려놓고 공도에서 드리프트를 하고 사라지기 때문에...여담으로 엔진 소리가 수프라의 그것이다! 엔진 스왑을 한 것으로 추정.[27][29] 그 이유는 포텐샤의 원형인 마쓰다 929에 로터리 엔진이 올라갔었기 때문이다.[30] 이제는 이런 시각도 거의 없다. 포텐샤가 깍두기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것은 90년대까지이다. 90년대 말만 되어도 체어맨과 에쿠스, 엔터프라이즈 등으로 옮겨갔다.[31] 사실 이 부분은 비단 포텐샤 뿐만이 아닌 기아자동차 전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특히 구형 기아 프라이드 베타의 경우가 대표적.[32] 당시 국내 후륜구동 승용차는 포텐샤와 프린스 2대뿐이었다. 그러나 프린스는 튜닝 호환성이 매우 나빠서 프린스 튜닝카를 찾기 어려웠었다.[33] 현대자동차는 1991년부터 1995년까지 생산한 에어로 고속버스(각에어로)도 1991년 페이스리프트 출시 당시 헤드램프를 각그랜저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대우버스의 경우도, 2003년 이전의 BH115E, BH116, BH117H 등의 고속버스에는 대우 브로엄의 헤드램프를 그대로 장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