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자치노동조합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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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idarność''' (Niezależny Samorządny Związek Zawodowy "Solidarność", NSZZ "Solidarność")
독립자치노동조합 '연대'
1. 개요
2. 한국어 번역 문제: 폴란드 자유노조
3. 배경
4. 설립
5. 탄압
6. 재기
7. 멸망
8. 의의
9. 대중 매체에서
9.1. 게임


1. 개요


1980년 9월 17일 그단스크의 조선소 노동자였던 레흐 바웬사 주도로 창립된 폴란드 인민 공화국 사상 '''최초의 비공산계열 자유노조'''. 1980년대 초 폴란드의 자유화 운동을 이끌면서 공산 정권의 강력한 탄압을 받았지만 굴복하지 않고 계속 활동하여 결국 폴란드에 바르샤바 조약기구 소속 국가 중 처음으로 민주 정부를 탄생시키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2. 한국어 번역 문제: 폴란드 자유노조


창립 당시 냉전 시대라 대한민국에서는 이 단체에 대한 정보가 극히 제한돼 있었다. 공산권 여행금지가 풀린게 1988 서울 올림픽 때부터이다. 1980년 당시에는 러시아어조차 한국에서 제대로 교육을 못 해가지고 러시아인 인명조차 영어식으로 쓰던 시대이다. 폴란드어 따위(...)는 1980년대 초반 한국에 권위자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 결과, 한국에는 이 단체를 폴란드 현지 기사가 아닌, 제3국인 영어권 기사들을, 그것도 일본어를 통해 3중역하여 들어온 단어인 '''폴란드 자유노조'''라고 불렀다. 이 단체가 세워졌을 때 마침 전두환 정권이었던 터라 전두환 정권 측에서 자유노조라는 이름을 밀기도 했고.. 어쨌거나 덕분에 한국에서는 폴란드 자유노조라고 통칭하고 있으며, 한국 언론 기사에서도 ‘폴란드 자유노조’라고 검색해야 이 단체에 대한 정보가 많이 나온다.

3. 배경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한 폴란드 내에서는 지속적으로 공산 정권에 대항한 쟁의들이 빈발했다.
1956년 포즈난 항쟁 이후 민족주의 성향을 지니고 있던 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가 집권하면서 어느정도 자유화가 이루어졌으나 1970년의 권위주의적 통치 및 경제난에 따른 생필품 가격의 기습 인상으로 인해 민심을 잃게 되어 고무우카가 물러나고 에드바르트 기에레크(Edward Gierek)가 집권하게 된다. 기에레크의 외채 도입을 통한 성장으로 한 동안 폴란드의 경제가 나아지는 듯 하였으나 오일쇼크의 여파로 70년대 말에 들어서면서 폴란드의 경제 상황은 다시 최악의 상황으로 몰린다. 이 경제난으로 인해 폴란드 내부, 특히 노동자의 불만은 더욱더 높아졌으나 공산권의 노동조합은 사실상 당의 어용 단체에 불과해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진정으로 대변할 수 없다는 점에 착안, 1979년 말부터 공산당의 통제에 놓여있지 않은 독립된 노조를 창립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기 시작한다.

4. 설립


1980년 8월 7일 이러한 움직임의 주동자 중 하나였던 그단스크의 여공 안나 발렌티노비치(Anna Walentynowicz)[1] 가 독립 노조 설립 사실이 정부에 의해 발각되어 해고당하면서 그단스크를 중심으로 여기에 반발한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난 대규모 노동 쟁의가 발생한다. 투쟁이 격화되던 8월 31일 마침내 '''단결''', '''연대'''를 뜻하는 솔리다르노시치라는 구호가 시위대 사이에서 등장하면서 이 단어는 곧 폴란드 노동 투쟁의 상징이 된다. 여기서 산발적으로 일어나던 쟁의를 단결시켜 조직화된 단체로 결성시킨 자가 바로 레흐 바웬사였으며 바웬사는 단순 노동 투쟁에서 그치지 않고 이를 가톨릭 교회와 연계해 비폭력 반 소련 운동으로 확장시킨다. 이러한 움직임이 대규모로 확산되어 통제 범위를 벗어나자 1980년 9월 기에레크가 사임하고 들어선 새 공산당 지도부는 솔리다르노시치를 인정하고 11월 10일 이를 공식적으로 등록시킨다.

5. 탄압


그러나 이러한 자유화 움직임이 1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폴란드가 공산권에서 이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브레즈네프를 위시한 소련 정부는 이를 가만두지 않았다. 1981년 후반에 들어서면서 폴란드 공산당 내 온건파들이 대거 파면되고 당 서기장 자리에 강경파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 장군이 임명되어 1981년 12월 13일 폴란드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레흐 바웬사를 포함한 솔리다르노시치 지도자들이 대거 체포된다. 계엄령은 1983년까지 지속되었으며 레흐 바웬사는 가택 연금 와중에도 비밀리에 서방과의 서신 교환을 통해 폴란드 내부의 상황을 알린다. 같은해 바웬사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다.

6. 재기


1989년 동유럽에 자유화바람이 불면서 야루젤스키 정권도 솔리다르노시치를 계속 탄압할 수 없었고 마침내 솔리다르노시치와의 원탁 회의를 통해 민주화 논의를 시작해야 했다. 자세한 내용은 1989년 동유럽 혁명 참조. 이를 통해 솔리다르노시치가 상원에서 압승을 거둠으로서 폴란드는 동구권 최초로 비공산계열 정권을 탄생시킨다.

7. 멸망


공산주의 붕괴 이후 경제난 속에 자유노조는 인기가 하락하여 1993년 총선과 1995년 대선에서 잇따라 패배하고 말았다.
폴란드는 이원집정부제라서 총선과 대선이 둘 다 중요하다. 1993년 총선에서 폴란드 통일노동자당(폴란드 공산당)의 후신인 사회당이 정권을 잡았고, 1995년 대선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한 레흐 바웬사의 재선 도전을 지원했지만 바웬사가 경제를 말아먹어서 결국 사회당이 대권까지 잡게 된다.
1993년 총선-1995년 대선에서 사회당이 정권을 잡자, 선거 패배로 큰 충격을 받아, 연대노조 내부에서 내분을 빚던 바웬사 계파와 카친스키 계파는 '''공산당 놈들[2]이 다시 정권을 잡는 꼴은 못 본다'''며 1997년 총선을 앞두고 극적으로 화해한다. 1997년 총선에서 연대노조는 33.1%를 득표, 201석을 차지한 다음 폴란드 자유연합과 폴란드 인민당 등을 합쳐 연립정부를 구성, 의석 수의 58%를 차지하는 대승을 거뒀다.
하지만 정권을 다시 잡은 연대노조 인사들은 또다시 계파 갈등을 벌인다. 계파 갈등을 버티지 못한 인사들은 1998년부터 탈당을 준비했고 가장 먼저 레흐 카친스키 등 강경 우파가 1999년 5월 먼저 자유노조를 탈퇴, 2000년 초반 법과 정의당을 세운다. 이후 레흐 바웬사 등 리버럴 성향 우파가 2000년 4월 연대에서 탈퇴하여 2000년 하반기 시민 연단을 설립했다. 연대노조의 운명은 여기서 끝장났다. 연대노조의 핵심인 바웬사와 카친스키가 나가버렸는데 제대로 유지될 턱이 있나. 2000년 대선, 2001년 총선에서 연대노조는 궤멸적으로 참패한다.
2001년 총선 참패 이후 잔류 연대노조 인사 대부분은 시민 연단에 참가하게 된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2003년 자유노조를 해산하고 잔여 인원과 재산을 시민 연단에 이전하게 된다. 결국 2020년 지금, 폴란드 정계에서 폴란드 민주화를 이끌었던 연대노조의 직접 후신은 시민 연단으로 보고 있다.
2005년 총대선으로 사회민주당이 부패 스캔들로 몰락하고 그 자리를 PO와 PIS가 메우면서 보수양당제로 전환되었는데 이 두 정당의 출신기반이 연대노조라는 점에서 정치적인 영향력은 적지 않다. 그렇지만 둘다 본래 연대노조의 성향과는 좀 동 떨어지는 편이라 할 수 있다.[3] PO는 PIS보다는 성향 면에서 리버럴하지만 경제자유주의 성향이 있는데다가, PIS는 복지정당을 주장하기는 하지만 2010년대 중반 이후로 배타적인 성향이 강해져서 그렇다.

8. 의의


구호와 투쟁 자체는 폴란드, 나아가 동유럽의 민주화를 상징하며 지금도 폴란드 내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수도 바르샤바의 대통령 궁 앞에는 솔리다르노시치의 엠블럼이 붙어있다.

9. 대중 매체에서



9.1. 게임


문명 5에 등장하는 폴란드 문명의 특성 '연대'는 바로 여기서 따 왔다.

[1] 1929 ~ 2010, 당시 크레인 기사로 일하고 있었으며 공산 정권 붕괴 이후에도 활발한 사회 활동을 지속했다. 2010년 폴란드 공군 Tu-154 추락사고 당시 정부 고위 인사들과 함께 카틴 학살 추모단에 합류했다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별세했다.[2] 폴란드인들은 폴란드 인민 공화국 시절을 '''빨간 러시아놈들이 우리를 털어먹는 식민지 기간'''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혐오한다. 당장 현재 폴란드를 가리키는 폴란드 제3공화국이라는 용어 자체가 폴란드 인민 공화국을 '''폴란드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폴란드의 반러 감정은 무시무시하다. 그래서 폴란드 사회당이 정권을 잡자 자유노조 인사들이 충격을 받은 것. 이후 사회당은 부패 스캔들로 자멸(...)하고 민주좌파연합으로 이름을 바꿨다. 폴란드 공산당의 후신이라는 점 때문에 군소정당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3] 사실 이건 1990년대 폴란드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연대노조가 우경화된 것도 있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