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존

 

1. 개요
2. 내용
3. 등장인물
4. 평가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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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3년 개봉한 미국 영화. 조셉 고든레빗이 각본, 감독, 주연까지 맡았고 스칼렛 요한슨이 극중 존의 여자친구로 나온다. 사실 줄리앤 무어 역시 출연했고 영화를 보면 사실상 요한슨보다도 중요한 역할이지만 대한민국 포스터에는 얼굴은커녕 이름도 올라가 있지 않다.[1] 안습.
한국에서 번역은 황석희가 맡았다. 걸쭉한 비속어들이 백미.
고든레빗의 성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배우 본인의 팬들, 요한슨이 의외로 저예산 예술 영화에 출연하는 걸 즐겨 왔다는 걸 기억하는 팬들, 무어의 《새비지 그레이스》와 《부기 나이트》를 기억하고 있는 팬들은 예상할 수 있었겠지만, 이 영화는 대한민국에 홍보했던 바와는 달리 전혀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다. 전혀 대중적인 내용도 아니고, 전혀 할리우드 스타일의 영화도 아니다. 오히려 블랙 코미디, 저예산 장편 영화에 가깝고 선댄스 영화제의 테이스트가 짙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고든레빗의 출세작인 《500일의 썸머》와 일견 비슷한 느낌이지만 《돈 존》의 연출이 중간까지는 훨씬 냉소적이고 염세적이며 풍자적이다.



2. 내용



뉴저지에 살고있는 존(조셉 고든레빗)은 잘생긴 외모에 꾸준한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질 몸매를 갖춘 잘 나가는 클럽의 바텐더. 그의 여자 꼬시기는 가히 백발백중이기에 친구들 사이에서 그는 호색가 '돈 후안'[2]의 이름을 따서 '돈 존'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하지만 사실 존은 야동에 푹 빠져 있었다. 기브 앤 테이크에 전희도 없고 천편일률적인 원나잇 섹스보다는 다양한 환상을 충족시켜 주는 포르노에서는 '스스로를 놓아 버릴 수' 있었던 것.
그런 그가 클럽에서 아름다운 여성 '바버라 슈거먼'(스칼렛 요한슨)을 만나며 변하기 시작한다. 여태까지 만나온 그 어떤 여자보다도 아름다운 그녀는 단순히 원 나잇을 찾는 게 아닌 로맨스 영화의 사랑과도 같은 운명적인 사랑을 원하고 있었고, 그런 그녀에게 빠져버린 존은 그녀의 사랑에 맞춰 주기 위해 원나잇을 그만두고, 바텐더를 하면서도 야간 대학교에 나가기 시작한다. 언제나 뚱해있는 여동생을 빼면 존의 어머니와 아버지 역시 바버라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하며 은근히 결혼을 바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존은 지쳐가기 시작한다. 자신이 야동 보는 것에 질색을 하고, 남자가 청소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존의 삶의 낙인 청소를 못 하게 막고 별로 원하지도 않는 야간 학교에 다니도록 강요하는 바바라, 그리고 정작 꿈꿔왔던 그녀와의 섹스도 별 건 없었다. 결국 다시 야동에 탐닉하게 되는 존은 바버라에게 들키지 않도록 핸드폰을 이용해서 바깥에서 야동을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야간 학교에서 만나게 된 '에스터'라는 한 중년 여성(줄리앤 무어)에게 그것을 들키게 된다. 흐느껴 울고 있던 여성을 지나쳐 간 게 첫 만남이었는데 그 이후 존을 귀찮게 하면서도 은근히 존의 깊은 곳을 꿰뚫어보는 그녀. 존은 결국 짜증을 내고 그녀에게 한 번 크게 화를 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버라는 존이 야동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면서 그녀는 존과 헤어지게 된다. 다시 화려한 독신의 삶을 즐기게 된 존이지만 운전 중 시비가 붙은 차의 창문을 깨고 11번 폭딸을 치는 등(...) 자제력을 점점 잃어가기 시작한다.
그런 존은 친구들과의 대화, 그리고 야간 학교에서 만나던 에스터와의 대화 그리고 섹스를 통해 그의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항상 그는 상대방을 신경쓰지 않는 섹스, 연애만을 해 왔던 것. '자신을 놓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온전히 집중해야 상대 역시 당신에게 온전히 집중하며 자신을 놓을 수 있다' 는 에스터의 말에 존은 섹스의 새로운 경지를 깨닫게 되고 비로소 바버라와의 이별에서도 자유로워진다. 부모님은 그 이별에 화를 내지만, 언제나 뚱해 있던 여동생 모니카가 '그 여자는 오빠를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라면서 존을 두둔해 준다.[3]
마지막에 바버라로부터도, 야동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진 존은 친구들과의 우정, 그리고 에스터와의 사랑으로 삶을 즐긴다.

3. 등장인물



4. 평가


남자의 기대, 여자의 기대, 가족의 기대, 교회의 기대, 그리고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사회에서 개인에게 어떠한 역할을 기대하고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개인은 노력하지만 그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박탈감, 좌절, 절망 등을 남자와 여자 사이의 섹스로 단순화해서 표현한 영화라는 평을 듣는다. 물론 여기에서 말한 것들이 다 조금씩 표현되지만 - 존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환상을 충족시켜 주기만을 바라는 바버라, 그리고 그와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존의 어머니, 존의 개인적인 사정이나 성취감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기준에만 맞춰 기도문 낭독 횟수를 정해주는 고해성사 등등 - 결국 이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남녀 사이의 섹스다.
고든레빗이 실존주의에 은근히 꽂혀 있었는지 실존주의 철학과 연관짓기 좋은 작품이다. 그 중에서도 키르케고르의 철학 중 심미주의에 대한 비판과 연관짓기 쉬운데, 일단 제목과 주인공의 별명부터가 스페인의 유명한 호색가 '돈 후안[4]'의 패러디인 '돈 존'이고, 키르케고르가 저서 《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 심미주의자를 비판하며 사용한 캐릭터가 바로 돈 후안이다. 그리고 존이 보여주는 모습은 키르케고르가 비판한 전형적인 심미주의자의 모습이다. 또한 존이 작중 계속 고해성사를 하는데 키르케고르 철학은 '인간은 무한한 자유를 통해 얻어지는 괴로움을 신의 의지로 회귀해 극복해야 한다' 고 말했으며, 중간에 존이 고해성사에 대해 의문을 품는 장면이 나오는데 키르케고르는 '신을 단순히 믿고 따르는 것은 맹종이요 신에 대해 의심을 품는 것 역시 신에 대한 믿음의 일종이다' 라고 했던 적이 있다. 물론 과잉해석일 수도 있으니 꼭 '아, 돈 존은 키르케고르의 철학을 나타낸 영화구나!'라고 철썩같이 믿을 필요는 없다.
평론가들의 평가는 대체로 호평이지만 약간 갈라지는 편. 대체로 수작범작 사이에서 작품의 평이 결정된다. 현란한 컷의 사용이나 섬세한 카메라 연출,[5] 커다란 주제를 하나의 행위에 집중하여 나타내려 했던 세련된 이야기 구조와 플롯은 호평을 받지만 약간 급작스럽게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결말부, 결국 '진정한 사랑이 모든 걸 해결 해 준다'는 식의 김새는 결말은 혹평을 받는다. 특히 앞부분과 뒷부분의 분위기가 좀 달라서 혹평하는 사람들은 타란티노 영화를 80분 보다가 마지막 10분은 스필버그 영화로 끝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 작품을 키르케고르와 실존주의 철학이 반영된 것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의 평은 여러 가지로 갈리는데, '도대체 언제적 키르케고르냐'면서 까는 사람, 전반부는 실존주의 철학을 참 재기발랄하게 풀어나갔는데 후반부는 좀 아쉬웠다고 평하는 사람, 후반부가 아쉽긴 해도 전반부의 그 재기발랄함이 아무나 보여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람 등이 있다.
그래도 공통적인 평은 '조셉 고든레빗의 다음 작품이 더 기대된다'라는 것이니 그의 장편 연출 데뷔작으로써는 나름대로 성공적이라고 봐야 될 듯.

5. 여담


  • 영화에 실제로 출연한 것은 아니지만 존이 보는 포르노 영상들을 통해 미국의 포르노 배우들이 다수 출연한다. 포르노를 좀 파 봤다면 알아볼 만한 배우들이 제법 있다. 내용이 내용인지라 돈이 보는 무수한 영상들에 미국의 포르노배우부터 섹시스타들이 영화속에서 주르륵 등장한다.
  • 소재와는 달리 노출의 강도는 아주 약한 편이다. 존의 섹스와 자위 장면이 시도때도 없이 나오지만 상징적으로만 보여주는 데서 끝난다. 그나마 포르노 장면이 자주 나오지만 그 역시도 적정 선에 머무르는 수준.
  • 영화속 극장에 상영하는 로맨틱 영화의 주인공으로 채닝 테이텀앤 해서웨이가 카메오 출연을 한다. 이들은 모두 고든레빗과 같이 영화에 나왔던 적이 있다.
  • 클레멘타인네이버 영화 평점에서 아주 신박한 드립의 주인공이 되었다. 네이버 영화 페이지의 '연관 영화' 부분에 등장했는데 그 한 마디는 바로 "돈 존나 아까워"(...) 이후 조선미녀삼총사리얼 등 여러 망작들의 연관 영화에도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1] 미국에서도 고든 레빗과 요한슨만 올린 해당 포스터가 사용되긴 했는데 무어 얼굴까지 올려서 쓰리톱으로 내세운 포스터가 주류였다.[2] 스페인 문학에 등장하는 유명한 호색한. Don은 상류층 남성의 이름 앞에 붙이는 경칭.[3] 여담으로 이 영화에서 첫 대사이자 유일한 대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직한 팩트를 시전한다[4] 다만 실존 인물은 아니고 가공의 인물이다. 17세기 프랑스의 극작가인 몰리에르(Molière)의 희곡에서 처음 등장한 캐릭터로 모차르트돈 조반니의 주인공이기도 하다.[5] 이를테면 작 중 핸드헬드를 절대 사용하지 않다가 존이 해방되는 후반부 이후 핸드헬드가 오히려 주를 이룬다던가, 항상 같은 구도로만 보여주던 존의 체육관 입장 씬이 구도가 달라진다던가. 너무 티가 나서 유치했다는 평도 있는데 어차피 이런 거는 뭘 해도 싫어하는 사람은 욕하기 마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