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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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m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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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내놓은 역사적인 데뷔 앨범 Ramones의 앨범 자켓.
왼쪽부터 조니 라몬(Johnny Ramone[2] , 기타), 토미 라몬(Tommy Ramone[3] , 드럼), 조이 라몬(Joey Ramone[4] , 보컬), 디 디 라몬(Dee Dee Ramone[5] , 베이스).
2014년 7월 11일 데뷔 멤버 중 마지막 생존 멤버였던 토미 라몬이 사망하면서 '''모두가 고인이 되었다.'''[6]
1. 개요
미국의 펑크록 밴드. '''미국 펑크를 상징하는 밴드이자 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 중 하나'''다.
특유의 매력과 단순하면서도 직설적이고 파워풀한 스타일로 많은 인기를 얻었고, 바다 건너 런던 펑크 록의 탄생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빈티지 패션으로 인식되는 가죽 자켓 + 청바지 + 스니커즈 + 장발 패션의 원조이다. 멤버들의 이름의 성(Last Name)을 라몬(Ramone)으로 통일시킨 걸로도 유명하다.[7]
한국에선 한때 '레이먼즈', '라모네즈' 등으로 잘못 표기되기도 했지만, 현지 발음을 근거로 외래어 표기법에 맞춰 표기하면 '''러몬스'''[8] 가 맞다. 다만 이 표기가 쓰이는 곳은 없으므로(...) 그나마 현지발음에 가깝고 쓰이는 곳이 많은 '라몬즈'로 작성한다.[9]
2. 역사
1974년 뉴욕에서 결성되었다. 이 밴드의 베이시스트인 더글러스 콜빈(디 디 라몬의 본명)의 제안으로 밴드 멤버들의 이름을 모두 Ramone이란 성으로 통일시킨 가명을 쓰고 밴드 이름도 Ramones라고 지었다. 멤버들이 좋아했던 밴드인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가 비틀즈의 초창기인 Silver Beetles 시절 장난 삼아 Paul Ramon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던 것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그 해 8월에 뉴욕 CBGB 클럽에서 공연하기 시작해 인기를 얻어 1975년 사이어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다음 해 역사적인 데뷔 앨범 Ramones를 내놓았다. 1978년 드러머 토미 라몬이 드러머를 그만두고[10] 마키 라몬(Marky Ramone)[11] 이 드러머가 되었다. 70년대 말 펑크 록의 전성기가 짧게 끝난 뒤에는 필 스펙터를 프로듀서로 맞아 더 많은 팝적인 요소들을 가미한 음악을 만들었다.
그러나 팀은 80년대 내내 멤버 변동을 겪었고, 90년대에도 음악 활동을 계속했으나 결국 1996년 롤라팔루자 페스티벌을 끝으로 해산했다. 2002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12] 조이는 2001년 림프종으로 세상을 떠났고, 디 디는 2002년 헌액 몇 달 뒤에 헤로인 과용으로 사망했다. 조니는 2004년 암으로 세상을 떴다. 토미도 2014년 암으로 세상을 떴다. 2014년 현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멤버 중 살아 있는 사람은 마키뿐이다.
3. 후대의 영향력과 음악적 평가
군더더기 없고 단순하며 파워풀한 쓰리코드, 직설적이고 질주하는 듯한 사운드, 추상성/관념성을 배제한 쉽고 구체적인 가사, 거물인 척 하는 허세와 가식이 없는 애티튜드... 이런 펑크록의 주요 특징으로 자리 잡게 되는 전형을 가장 대표적으로 제시한 밴드이기에 동시대와 후세대의 록밴드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후대 뮤지션들에게 끼친 영향이 상당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수의 밴드들이 라몬즈의 곡을 커버하고 트리뷰트 앨범을 녹음할 정도이다. We're A Happy Family[13] 라는 타이틀의 이 앨범에는 메탈리카, U2, 레드 핫 칠리 페퍼스, 키스, 그린데이, 오프스프링, 마릴린 맨슨, 랜시드, 에디 베더, 롭 좀비 등 쟁쟁한 밴드들이 참여했다.
평단에서의 평가도 무척 높아서, 90년대를 중심으로 미국에서 상당한 영향력이 있던 록음악 매거진인 '스핀'지에서 2002년에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록밴드 Top 50'''을 선정했는데, 라몬즈는 비틀즈에 이어 무려 2위에 랭크되었을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14]
밴드 전체로서뿐만 아니라 각 멤버들의 개별 실력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기타리스트 조니 라몬 (Johnny Ramone)은 롤링 스톤 선정 100대 기타리스트에서 '''28위'''에 선정되었을 정도로 그 영향력을 인정받고 있는데[15] , 이는 앞서 설명했듯 다운스트로크 주법만을 사용해 단순하면서도 파워풀한 밴드의 사운드를 만들어낸 주축이었기 때문이다.[16]
원년 베이시스트 디 디 라몬 (Dee Dee Ramone)은 Blitzkrieg Bop을 비롯해 유명한 곡들 다수를 작곡한 유능한 송라이터인데, 놀랍게도 솔로 프로젝트에서는 힙합을 시도하기도 했다! 록 뮤지션들이 힙합을 좋지 않게 보던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시도라는 평. 이외 호러 소설을 출간하기도 하는 등 상당히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드러냈다.
그런데, 이들이 데뷔 앨범을 섹스 피스톨즈보다 1년 먼저 발매했고, 많은 런던 펑크 뮤지션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런던 펑크 뮤지션들에 비해 펑크 록 특유의 사회 저항 정신이 부족해 보인다는 이유로[17] [18] 상대적으로 묻히는 안습함이 있다. 하지만 그건 옛날 얘기고, 시간이 갈수록 라몬즈의 인기가 높아져서 현재는 라몬즈의 인기, 평가, 위상이 모든 펑크록 밴드들 중에 최고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또한 우리 나라엔 펑크 록이 많이 알려지지 못했고, 펑크 록 밴드라고 해 봤자 섹스 피스톨즈나 그린데이 정도가 알려진 상황이라, 사실 후대의 뮤지션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 밴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록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펑크 록을 언급할 때 이 밴드를 무시하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안습.
원조 펑크록 밴드이면서도 멜로디 감각도 은근히 뛰어나서, 외국에선 비단 펑크록 계열의 뮤지션과 팬들 뿐 아니라 폭넓은 스펙트럼의 팬층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펑크록이 한창 만개하던 1970년대 후반경엔 후발주자인 섹스 피스톨즈,[19] 더 클래시가 라몬즈보다 훨씬 더 세간의 주목을 많이 받고 화제를 모았으며, 음악사적으로도 더 중요한 밴드들로 취급받았었다. 그러나 그 후로 시간이 많이 흐르면서 섹피 등을 비롯한 많은 펑크록 밴드들은 점차 잊혀져가는 편인 반면, 라몬즈는 새로운 세대의 음악팬들에게도 끊임없이 재발견되고 매력이 어필되어서 현재는 라몬즈의 인기와 위상이 섹피와 클래시를 능가할 정도로 우뚝 올라선 상태다.[20] 또한 라몬즈는 간결한 연주로 뛰어난 멜로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웠다는 점에서 펑크록의 역사에서 중요한 선구자인 동시에 펑크록 밴드들 중 가장 시대를 초월해서 음악팬들의 사랑과 인정을 받고 있다.
심슨 가족에도 등장한다. 시즌 5의 네번째 에피소드 "로즈버드"에 잠시 출연했다. 번즈 사장의 생일 파티에 초청되어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공연 시작과 끝에 하는 멘트들이 펑크 정신에 입각한건지, 죄다 악의적으로 도발하는 시비조다.[21] 그러자 번즈 사장은 "당장 저 롤링 스톤즈를 죽여버려라" 라고 지시한다.(...)동영상
보글보글 네모바지 스폰지밥에도 등장한다.다만 최악의 에피소드인 섞어랜드에 출현한다...
4. 멤버들의 변동 내역
* 보컬(vocal) - 조이 라몬(Joey Ramone) : 1974(결성) ~ 1996(해체)
* 기타(guitar) - 조니 라몬(Johnny Ramone) : 1974(결성) ~ 1996(해체)
* 베이스(bass) - 디 디 라몬(Dee Dee Ramone) : 1974(결성) ~ 1989 / C.J.라몬(C. J. Ramone) : 1989 ~ 1996(해체)
* 드럼(drum) - 토미 라몬(Tommy Ramone) : 1974(결성)~1978 / 마키 라몬(Marky Ramone) : 1978~1983 , 1987~1996(해체) / 리치 라몬(Richie Ramone) : 1983~1987[22]
멤버 간 불화가 심각했던 밴드로도 유명하다.
원년 멤버인 조이 (키다리 보컬)와 조니 (기타)는 음악적으론 동지였지만 그 외의 성향은 너무 대조적이라서 서로 끊임없이 갈등을 겪었다. 유대인이었던 조이는 자유분방하고 진보적인 성향이었고 전쟁을 혐오했으나, 조니는 정치적으로 철저한 보수파였고 밀리터리 매니아[23] 였으며 심지어 필요에 따른 독재정치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도 했을 정도였다. 게다가 조이의 정신병 문제와 여자 문제가 얽히면서 사이가 끊임없이 벌어져 해체 이후론 절연했다고 한다. 심지어 조이 사망할때까지 교류가 없었다고. [24] 조니는 이외 인성과 품행 문제로 까이는 일이 있다. 활동 당시에도 디디나 여자친구를 패고 다녔음에도 무서워서 못 말렸다는 조이의 증언이 있을 정도.
여기다 디디가 조울증과 알콜 중독 문제에 시달려서 활동 내내 밴드 분위기는 엉망진창였다고 한다. 그나마 멀쩡했던 토미 라몬 역시 '조이에게 무시당하고, 조니에게 물리적으로 협박받고, 디디에게 경멸받는' 분위기에 견디지 못하고 밴드를 떠났다. 안좋은 기억이 있지만 그래도 아주 연을 끊진 않아서,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트리뷰트 공연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2015년 현재 고인이 된 조이, 조니, 디디, 토미 라몬을 제외한 모든 멤버들 각자 음악활동에 전념하고 있는중이다.
앨범작업은 CJ라몬만 하고있는듯 하다. 작년에 나온 CJ라몬 앨범 https://www.youtube.com/watch?v=REG75pFucRQ
마키 라몬은 라몬즈와 마찬가지로 레전설급 펑크록 밴드인 미스피츠에 잠시 몸담기도 했고, Marky Ramone's Blitzkrieg라는 본인의 밴드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CJ 라몬과 마키 라몬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한다. 마키가 해체 직후 CJ 디스를 했을 정도. 마키의 조카딸이 CJ의 전 부인이라서 이와 관련된게 아니냐는 말이 많았는데 CJ는 부정했다. 마키는 조이하고도 사이가 좋지 않았고 말기엔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서로 싸울 지경까지 되었다. 그나마 마키랑 조이는 조이가 투병하고 있었을 당시 조니에게 '친구인데 병문안이라도 가보지 그러냐'라고 하는걸 보면 어느정도 화해한 걸로 보인다. [25]
5. 둘러보기
[1]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5가지 헌액 카테고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문이자 공신력이 인정되는 '공연자(Performers)' 명단에 한하여 기록하도록 함. 나머지 부문의 헌액자들은 따로 문서 내 헌액명단에 수록해주길.[2] 1948~2004. 본명은 존 커밍스(John Cummings).[3] 1949~2014. 본명은 터마시 에르데이(Tamás Erdelyi). 헝가리 출신이다.[4] 1951~2001. 본명은 제프리 하이먼(Jeffrey Hyman). 성에서도 눈치챌 수 있듯이 유대인이다.[5] 1951~2002. 본명은 더글러스 콜빈(Douglas Colvin).[6] 사실 1970년대 밴드인데도 멤버들이 2000년대 즈음 전원 사망했다. 당장 60년대를 풍미한 밴드인 롤링 스톤즈만 해도 거쳐간 멤버들 중 이안 스튜어트, 브라이언 존스 제외 전원 생존한 상태이다. 라몬즈랑 동세대 뉴욕 펑크 밴드인 텔레비전(밴드)나 패티 스미스, Blondie 멤버들은 2020년대 들어서도 건재하며 라이브도 다닌다.[7] 라몬즈 밖에서 활동할 때는 그닥 제약이 없는 모양. 베이시스트인 디 디 라몬(Dee Dee Ramone)은 힙합 뮤지션으로 활동할 때는 D.D 킹이란 예명을 썼다.[8] 실제 발음에선 a의 모음을 약하게, o를 장음으로 발음하여 '''르모운즈'''에 가깝게 들린다. '레이먼즈'는 강세의 위치를 잘못 파악한 표기다.[9] 위키백과에서는 '라몬스'로 작성되어 있다.[10] 앨범 작업에는 계속 참여했다.[11] 본명은 마크 벨(Marc Bell).[12] 헌액된 멤버는 조이, 조니, 디 디, 토미, 마키[13] 라몬즈의 동명의 곡에서 착안한 듯하다.[14] 다만 이 리스트는 다른 리스트들에서는 최소 3위 안에는 무조건 드는 롤링 스톤스가 9위밖에 안되고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어리언스가 15위, 더 후가 39위라는 예상외로 낮은 순위에 있는 등 당시 스핀 집필진들의 주관이 강하게 반영된 편이므로 어느 정도는 걸러서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어쨌든간에 라몬즈의 영향력이 대단함을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임은 틀림없다.[15] 펑크 록 기타리스트로서는 가장 높은 순위이다. [16] 현대에 들어 펑크 록과 메탈 팬들은 은근히 서로가 좋아하는 장르를 라이벌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조니 라몬의 기타 플레잉은 제임스 헷필드를 비롯 무수한 메탈 기타리스트들이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하고 있다.[17] 이것은 뉴욕 펑크와 런던 펑크의 근본적인 차이 때문이다. 런던 펑크는 보다 노동계급적 가치나 사회에 관한 노래를 많이 했다면, 뉴욕 펑크는 훨씬 개인적이거나 내면적인 것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 색깔이나 사회적인 관심같은 것들은 뮤지션들마다 제각기 성향이 다 달랐다. 심지어 조니 라몬은 1980년대 중반 '''"나는 레이건을 사람들이 왜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생각할때는 참 좋은 대통령이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조니 라몬은 정치적으로 보수주의자였고 조이 라몬은 반대로 진보적인 입장이었다. 2000년대 중반에는 당시의 라몬즈 멤버들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낸 적도 있다. 근데 이땐 원조 멤버들은 거의 다 죽은 후이고 새로운 멤버들로 구성된 이름 뿐인 라몬즈라서 별 의미는 없다.[18] 비슷한 예로 NBC판 존 콘스탄틴은 바에서 라몬즈보단 섹스 피스톨즈가 더 위험한 놈들이었다고 우겼다. 대개 이런 시선. [19] 시기 상으로 봐서 섹스 피스톨즈가 라몬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기 쉽겠지만, 섹피의 보컬리스트인 존 라이든은 라몬즈의 영향을 거듭 부정했다. 그들을 처음 본 것도 섹피 결성 뒤에 라몬즈가 영국 공연을 했을 때였다고. 음악 자체를 들어도 간결하지만 강렬한 연주라는 방법론을 제외하고 의외로 유사점을 느끼기가 쉽지 않은 편이다. 굳이 공통점을 뽑자면 두 밴드 모두 '펑크 록의 대부' 이기 팝의 밴드인 스투지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 정도.[20] 물론 섹피와 더 클래시가 후대 음악계에 끼친 영향이 매우 커서 이들에 대한 언급이 일종의 클리셰로 굳어졌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21] 공연 전에 보컬은 "I'd just like to say, This gig SUCKS!", 이어서 기타는 "Hey, Up yours Springfield...", 공연 후에 베이스는 "Go to hell, You old bastard!" 이라고 말한다... 드럼은 한술 더 떠서 "Hey, I think they liked us!" 이런다.[22] 1987년 리치라몬의 갑작스러운 탈퇴로 인해 엘비스 라몬(Elvis Ramone)과 함께 이틀간 공연, 이후 마키라몬이 재합류하였다. 엘비스 라몬은 블론디의 드러머가 라몬즈에 대타로 뛰어 주면서 임시로 사용한 가명.[23] 이러한 조니의 밀덕스러운 성향이 드러난 곡이 바로 그 명곡 '''Blitzkrieg Bop'''이다.[24] 그러나 조이는 조니를 친구라 생각했는지 죽을때까지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냈다고 한다.[25] 조니는 '친구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