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 바이덴펠러
1. 개요
독일의 전 골키퍼. 커리어 대부분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뛰었다. 마누엘 노이어, 레네 아들러와 함께 분데스리가 최고의 골키퍼라고 평해졌다. 도르트문트의 주장인 제바스티안 켈이 주전 경쟁에서 밀려 실질적인 주장 역할을 했고 12-13 시즌을 통해 분데스리가 뿐만 아니라 세계 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하는 실력을 입증하였다.
국가대표팀 경력은 전무하다시피 한데, 이는 부상 기간이 잦았고 올리버 칸과 옌스 레만의 계보를 바이덴펠러가 아닌 로베르트 엔케와 레네 아들러, 마누엘 노이어가 계승했기 때문이다.[2]
2. 클럽 경력
2.1.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5살 때부터 스포르트프로인트 아이스바흐탈이라는 작은 유소년 팀에서 훈련을 했고, 16살이던 96년, 분데스리가의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이적하여 그곳에서 유스 생활을 했다. 그 당시부터 유망주 골키퍼로써 주목을 많이 받았고, 97년도에 열린 FIFA U-17 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골키퍼 상도 수상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1999년, 19살의 어린 나이에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프로 데뷔를 했으나 대부분의 시간을 2군에서 보냈는데 이는 당시 골키퍼로 분데스리가에서 잔뼈가 굵던 게오르크 코흐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2년도에 PSV 에인트호번과의 UEFA컵에 출전해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었고 당시 골키퍼 보강을 생각하고 있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눈에 들어왔고 계약이 만료되자마자 자유이적으로 도르트문트로 이적했다.
2.2.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이적 첫시즌인 02-03시즌은 부상 등의 악재가 겹쳐 통째로 날려 먹었고 실패한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주전 골키퍼였던 옌스 레만이 아스날로 떠나자 주전으로 뛰며 약진된 모습을 보여줬다. 05-06시즌엔 정상급 골키퍼의 모습을 보여주며 활약했지만 또 부상을 당하고 말았고, 도르트문트 팀 자체도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부진한 모습 중에 07-08시즌엔 인종차별 문제로도 얽히게 되어 1만유로라는 벌금을 내기도 하는 등[3] , 암흑기를 보냈다.'''453경기 510실점 148클린시트'''
그러나 10년대에 들어 카가와 신지, 누리 사힌, 마리오 괴체등의 활약에 힘입어 다시 부흥하기 시작하는 도르트문트의 골문엔 든든한 장벽 주전인 바이든펠러의 모습이 있었고 10-11, 11-12 시즌, 분데스리가 2연패를 달성하는 등 그 동안의 암흑기를 떨쳐낸다. 특히, 12-13시즌이 최고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데, 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을 이끌었고, 키커지 평점에서 골키퍼 중 4위를 기록했고, 키커지가 내리는 골키퍼 등급에서 마누엘 노이어와 함께 월드 클래스 평점을 받았다.
13-14시즌에도 주전으로 나섰다. 챔피언스리그 나폴리와 경기서 골키퍼 라인 바깥에서 나와 손을 쳐내면서 퇴장당했고, 팀도 1-2로 패했다.
14-15 시즌부터는 노쇠한 피지컬과 떨어진 시력탓에 부진하는 경기를 매우 많이 연출하였고[4] 도르트문트도 부진하면서 강등권까지 추락했다. 후반기 시작 후 한동안은 미첼 랑거락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었다. 시즌이 끝나고 마티아스 긴터, 치로 임모빌레와 함께 워스트 일레븐에 이름을 올렸다.
15-16 시즌 새로 이적해온 로만 뷔르키에게 주전자리를 내주면서 후보로 밀렸다. 2016년 2월에 2017년 여름까지 재계약을 체결했다.# 후반기 다름슈타트전에서 시즌 첫 리그 선발출전을 기록했고,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16-17시즌에는 뷔르키의 부상으로 선발로 간간히 출전하였다. 2017년 5월에 1년 재계약에 성공하였다.# 바이덴펠러는 이번 재계약의 이유로 경쟁자의 성장과 젊고 유능한 골키퍼 양성을 위해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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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4일,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이번 17-18 시즌을 끝으로 그라운드에서 물러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은퇴식이 장관이다#
로만의 친구들과 도르트문트 올스타 친선매치에서 페널티 1골과 필드골 1개를 득점하였다. 전반전은 로만의 친구들 진영에서, 후반전은 도르트문트 올스타에서 경기를 치뤘는데, 후반전에 골키퍼를 보다가 페널티박스를 나와 필드에서 활약하고 프리킥을 차기도했다. 얀 콜러와 상의 유니폼을 갈아입고 콜러가 골키퍼를 보고 자신은 필드를 뛰어다녔다.
3. 국가대표
국가대표와는 지지리도 연이 없었는데, 어릴 때엔 올리버 칸과 옌스 레만이 있었고 그들이 은퇴할 때 쯔음이면 부상으로 폼이 떨어졌고, 폼이 다시 올라오면 다른 유망주의 등장 등이 반복되었었다.
12-13 시즌의 엄청난 활약을 바탕으로 노이어에 이은 제 2의 골키퍼로 대표팀에 승선되어야 한다는 말이 나왔고, 2013년 11월 19일 잉글랜드와의 친선 경기에서 노이어와 람 등 주축 멤버가 결장함에 따라 바이덴펠러가 국가대표팀에 승선되었다. 이날은 A매치 데뷔전이었고 결과는 1-0의 승리로 첫 국가대표 경기를 클린시트와 승리로 장식했다.
월드컵을 앞둔 2014년 6월 1일 카메룬과의 친선경기와 2014년 6월 6일 아르메니아와의 친선경기에서 연달아 선발출전하였다.
3.1.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참고로 위의 3명은 모두 도르트문트 동료들이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국가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1경기도 출전하지 못했지만 자신의 국대 커리어 첫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14년 9월 3일 아르헨티나와의 친선경기에서 후반전 시작 전에 교체출전하였다. 출전 2분만에 페데리코 페르난데스에게 팀의 세 번째 골을 내주었고, 3분 뒤 디마리아에게 실점하였다.
UEFA 유로 2016 예선 경기때마다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나, 노이어에게 밀려 출전하지 못했다.
UEFA 유로 2016 예선 6차전 지브롤터 원정 경기에 선발출전해 풀타임을 뛰었고, 무실점을 기록했다. 이 경기가 바이덴펠러의 A매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
https://youtu.be/qsWgQUxP4ik
뛰어난 신체조건에 빠른 반응속도를 지니고 있다. 특히 바이덴펠러가 가장 손꼽히는 장점은 반사신경이 굉장히 뛰어나다는 점인데 이는 12-13시즌 레알 마드리드 CF와 FC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서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그 덕에 위에 서술되어있듯 1대1 상황에서 굉장히 강한 모습을 보인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02-2018)
-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2012–13
- 분데스리가 우승: 2010-11, 2011-12
- 분데스리가 준우승 : 2012-13, 2013-14, 2015-16
- DFB-포칼 우승: 2011-12
- DFL-슈퍼컵 우승: 2008, 2013
-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 FIFA 월드컵 우승: 2014
5.2. 개인 수상
6. 기타
도르트문트와의 은퇴후에 삶에 대해 인터뷰 중 주방에서 제일 잘하는게 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자신이 주방에서 제일 잘하는건 고기요리라고 한다. 코로나로 밖에 못나가는동안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은퇴후에는 현역때 보다 친구들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낼수 있게 되었고 생일축하도 함께 할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현역생활을 더 하고싶었으나 은퇴후에 삶이 상당히 마음에 든다고 한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라는 이름을 전세계에 알리고 여러곳을 여행하며 다양한 곳을 체험해보는 삶도 재밌다고 한다.
피파시리즈,피파온라인4에서는 능력치가 낮아 사용하기가 상당히 힘들다, 선방을 보기 어려울 정도.
[1] 2014년 FIFA 월드컵 수훈, 독일 은월계수 잎 최고 훈장 Silbernes Lorbeerblatt[2] 엔케는 폼이 올라오고 이제 국가대표팀에 차출되어 활약 하려는 그 순간에 안타깝게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아들러는 월드컵 전까지는 노이어보다 우세했으나, 부상으로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 하고 그 사이 노이어가 아들러의 자리를 완전히 밀어냈다.[3] 인종차별을 받은 대상은 게랄트 아사모아. 아사모아에게 "검은 돼지(schwarzes Schwein)"라는 인종차별 발언을 하며 3경기 출장 징계를 받은 바 있다.[4] 특히 경기 시작 1분만에 골을 먹힌 경기가 네 경기나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