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가와 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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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축구 선수. 현재는 PAOK FC 소속이다.
포지션은 미드필더로 위르겐 클롭 감독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폭발적인 활약으로 전성기를 보내며 총 세 번의 리그 우승[4] 에 기여했고, ESM 올해의 팀[5] 에 1회,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에 총 3회[6] 선정되는 등 아시아 선수들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훌륭한 커리어를 보유한 축구선수 중 한 명이다.
2. 클럽 경력
2.1. 세레소 오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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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에 J리그의 세레소 오사카에 입단하였다. 팀이 2부 리그로 강등당한 2007년부터 주전 선수로 뛰기 시작했고 2009시즌 2부 리그 득점왕에 등극하는 등 맹활약을 펼쳐 팀이 1부 리그로 승격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130경기(113) 57골'''
이를 본 독일 분데스리가 클럽들로부터 오퍼가 들어왔으며 2010년 7월에 도르트문트로 이적료 €350,000(0.35m)에 이적했다.[7]
'''2006시즌 -''' (출전 기록 없음)
J1리그: -
'''2007시즌 35경기(선발 29경기) 5골'''
J2리그: 35(29)경기 5골
'''2008시즌 35경기(선발 34경기) 16골'''
J2리그: 35경기(34) 16골
'''2009시즌 44경기(선발 37경기) 27골'''
J2리그: 44경기(37) 27골
'''2010시즌 12경기 7골'''
J1리그: 11경기 7골
르방컵: 1경기
2.2.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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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가와의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시기이다.
2.2.1. 201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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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경기 데뷔전인 부르크하우젠전에서 선발 출전하여 1도움을 기록하고 유로파 리그 플레이 오프 1차전 카라바흐 FK를 상대로 데뷔골을 포함한 멀티골을 기록했다. 그리고 분데스리가 3라운드 볼프스부르크전에서 리그경기 데뷔골을 넣었으며 다음 4라운드 레비어 더비에서는 무려 멀티골에 키커로부터 가장 높은 평점인 1점을 받으며 3:1의 대승을 이끄는 등 첫 시즌부터 좋은 경기력과 많은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주전으로 도약한다.
2010년 12월 기준으로 리그 8골 1도움, 시즌 전반기에 10골 2도움으로 리그 득점 상위권에 랭크돼 있었고, 유럽에 진출한 아시아 선수 중에서 득점 1위였으며 출전한 리그경기 1/3에서 MOM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빅클럽들의 러브콜을 받은건 덤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과의 아시안컵 4강 경기에서 당한 부상이 시즌아웃으로 이어졌다. 결국 마지막 경기에 교체 출전을 하며 다음 시즌을 기약하였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분데스리가 공식 홈페이지에서 발표한 전반기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오피셜 선정 과정은 분데스리가 사무국에서 선정한 후보들을 홈페이지 팬 투표로 결정했으며 분데스리가 공식 베스트 11과 동일한 방식이다.# 그러나 실제로 분데스리가가 홈페이지로 발표했음에도 사무국이 주기적으로 뽑는 부문이 아니었기에 인지도가 낮았고 이 선정이 실재했는지 한국과 자국인 일본에서도 논란이 되었다.##
많은 공격 포인트뿐만 아니라 레비어 더비에서의 멀티골, UEFA 유로파 리그 조별리그 6차전 세비야전 득점, FC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도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주는 등 강팀들을 상대로도 쏠쏠한 활약을 보이고 소속팀 도르트문트도 9년만에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했다. 비록 부상으로 시즌을 조기에 마감했지만 도르트문트의 핵심선수로서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11 아시안컵에서의 부상을 당해 후반기는 단 한 경기 출전에 그쳤다. 그래도 키커가 발표한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에 선정되며 활약을 인정받았다. 키커는 1년의 전체적인 활약상을 한번에 총평하는 것이 아닌 통계적인 관점으로 시즌 베스트 11을 선정하는데, 11/12 시즌까지는 엘프 데스 타게스(Elf des Tages) 즉, 주간 베스트 11 횟수로 뽑았고 12/13 시즌부터는 평점으로 바뀌었다. 카가와는 시즌의 절반 만을 소화했음에도 주간 베스트 11 횟수가 다른 미드필더들 보다 많아서 선정되었다. 또한 키커 시즌 평점은 2.62점으로 전체 2위, 미드필더 부문 1위에 올랐다. 물론 표본이 17경기로 적어서 이 평점은 크게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야구의 규정타석처럼 턱걸이로 규정타석만 채우고 타격왕을 먹은 셈. 하지만 17라운드 기준으로 봐도 전체 3위에 올랐기에 뛴 경기만 본다면 리그 최고 수준 활약을 한 건 사실이다.
'''2010/11 시즌 28경기(선발 27경기) 12골 2도움'''(출처: 키커)
분데스리가: 18경기(17) 8골 1도움
DFB 포칼컵: 2경기 1도움
유로파 리그: 6경기 2골
유로파 리그 플레이 오프: 2경기 2골
2.2.2. 2011-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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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스 누리 사힌이 떠난 2011/12 시즌에서는 마리오 괴체와 함께 팀 공격의 중심이 되었다. 팀내에서의 입지는 매우 탄탄한 상태. 하지만 팀의 주포인 바리오스마저 부상으로 이탈하며 도르트문트의 전체적인 공격력이 약화되어 고전하였다. 카가와 본인은 움직임이나 드리블은 여전했지만 장기 부상 이후 저번 시즌에 보여줬던 골감각을 잃어버린 모습이다.
시즌 초반, 리그 11위까지 하락할 정도로 팀의 극심한 부진은 계속되었고 카가와 또한 매 경기 적어도 2번씩 찾아오는 결정적인 기회를 계속 놓치자 팬들의 질타를 받았다. 게다가 이 부진이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시기에도 겹쳤다는 것. 결국 선발 자리도 몇 번씩 내주면서 붙박이 주전자리도 잃고 가끔씩 나와도 개선되지 않자 독일 언론에서는 감독이 결단을 내려야 할 선수중 한 명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그러나 몇 번 선발 명단에서 제외된 후 기량을 만개, 시즌 전반기 중반부터 맹활약을 하며 도르트문트의 급상승에 일조하게 된다.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에서 아스날을 상대로 데뷔골을 기록한 것은 덤이었다. 이후 팀의 에이스이자 주축 플레이 메이커인 마리오 괴체까지 사타구니 부상으로 4달이나 빠지게 되어 공백이 클 것으로 예상됐지만 오히려 괴체와 사힌의 공백을 혼자서 메꿔버리고[8] 득점, 도움 가리지 않고 엄청난 공격포인트를 쌓아올리고 매 경기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며 2년차 징크스라는 단어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당시 카가와는 골을 넣기 위한 움직임에 제한되지 않고 왕성한 활동량[9] 을 기반으로 중원을 장악한채 템포를 죽이지 않고 볼을 빠르게 배급해주는 덕분에 도르트문트의 칼날은 오히려 예전보다 날카로워졌고 당시 카가와는 팀에 없어서는 안될 에이스로 등극했다. 이 활약에 힘입어 2011/12 시즌 키커가 선정한 1월 유럽 베스트 11에 선정되었으며 심지어 독일 언론은 그 리오넬 메시와 비교까지 했다. 물론 카가와 본인은 노코멘트했다.
이후 도르트문트는 홈에서 열린 32라운드 묀헨 글라드바흐전에서 우승을 확정 지었고, 이 경기에서 카가와는 쐐기골로 분데스리가 우승을 위한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으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였다. 동시에 유럽 주요 15개 미디어 회원의 ESM(유럽 스포츠 미디어)에서 선정한 2, 3, 4월 유럽 월간 베스트11에 선정되었다.
시즌 막판, 카가와는 도르트문트와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이적 의지를 확실하게 했다. 그리고 DFB-포칼 결승전 FC 바이에른 뮌헨전에 선발 출전해 알렉스 퍼거슨[10] 이 보는 앞에서 단 3분만의 선취득점 포함 1골 1도움으로 팀의 5-2 완승을 이끌었다. 도르트문트의 5골 중 4골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며 이 경기로 그간 나오던 큰경기에 약하다는 비판마저 잠재워버렸고 도르트문트가 창단 첫 더블을 달성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또한 VDV, SPOX 채널, 빌트, 키커, 골닷컴 등 온갖 미디어에서 선정한 분데스리가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렸으며 아시아 최초로 ESM(유럽 스포츠 미디어)이 선정하는 유럽 올해의 팀 미드필더 부문에 사비, 피를로와 함께 뽑히게 된다. 공격수 자리엔 호날두, 메시, 반 페르시가 이름을 올렸다.[11] 2011/12 시즌 후반기 키커 랑리스테에서도 전체 분데스리가 선수들 중 '''유일하게''' WK(월드 클래스)로 평가받았다. 아시아인 분데스리거가 키커 랑리스테에서 월드 클래스로 분류된건 1979-80 시즌 전반기 차범근이 최초로 선정된 이후 32년 만의 일이었다.[12] 이 시즌이 카가와의 커리어 하이 시즌으로 아시아 축구 역사 전체를 따져도 이만한 활약을 보여준 선수는 한 손에 꼽는다.
'''2011/12 시즌 43경기(선발 39경기) 17골 13도움'''(출처: 키커)
분데스리가: 31경기(29) 13골 11도움
DFB 포칼컵: 5경기 3골 2도움
챔피언스 리그: 6경기(4) 1골
DFL 슈퍼컵 1경기
2.2.3. 이적 표명
2012년 4월말, 도르트문트는 연봉 2배 상승 조건을 걸고 5년 장기 계약연장을 시도 했으나 카가와는 거절한 후 EPL에서 뛰고 싶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도르트문트의 감독인 위르겐 클롭은 일본에서는 프리미어리그만 최고로 쳐준다며 카가와 신지를 잡기 어려울 것이라고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5월 15일, 포칼 결승전이 도르트문트의 승리로 끝난 직후 구단 측은 카가와에게 다시 재계약을 요청했지만 결국 이마저도 거부한 채 에이전트와 함께 영국 맨체스터로 날아가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경과 대화를 나누었다. #
5월 24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도르트문트에 공식적으로 €16m을 제시했으나 도르트문트는 자신들이 원하는 최소금액인 €17m에 못 미친다면서 퇴짜를 놓았다.# 이에 맨유는 금액을 €22m[13][14] 으로 상향해 다시 제시했고 도르트문트가 이를 수락하면서 클럽 간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6월 5일, 맨유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카가와 신지의 이적 협상이 성사되었음을 알렸다(링크). 카가와 측에서는 월드컵 지역 예선에 집중하고 싶다며 공식적인 언급을 꺼렸으나, 오스트레일리아전이 끝난 직후인 6월 13일 정식으로 이적에 합의했다는 사실을 공표했다. 그 와중에 영국언론에서는 퍼거슨 감독이 맨유의 포메이션을 종래의 기본 포메이션인 4-4-2가 아닌 카가와를 중심으로 한 4-4-1-1로 변경한다든가, 카가와가 맨유의 7번을 물려받게 되었다는 보도까지 나왔으나 실제로 받은 번호는 26번. 참고로 7번은 안토니오 발렌시아가 받았다.
2012년 6월 23일 메디컬도 통과하며 입단이 확정되었다.
2.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카가와는 박지성이 떠난 맨유에게 아시아 시장을 공략할 선수이자 전력에도 유용한 옵션으로 보여졌었다. 도르트문트에서의 놀라운 활약상을 바탕으로 맨유 선수로서도 좋은 활약을 선보이며 주전 자리를 꿰찰 수 있으리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로빈 반 페르시가 맨유로 이적해오면서 팀의 슈퍼스타인 웨인 루니가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게 되었다. 그럼에도 퍼거슨은 카가와를 기용했고 초반엔 그 기대에 어느 정도 부응을 했지만 이후 부상이 잦아지고 주전 선수들이나 부상에서 복귀한 선수들이 준수한 활약을 보이자 점차 밀려났으며 자신을 데려온 퍼거슨 감독은 바로 은퇴를 해버리면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새로 온 모예스 감독은 피지컬을 중시해서 카가와는 더욱 등한시되었고 부진까지 겹치면서 완전히 팀에서 입지를 잃고 말았다. 여기에 이미 프리미어리그에서 검증된 후안 마타까지 영입되면서 카가와와 포지션이 완전히 겹쳤다.'''57경기(46) 6골 9도움'''
정리하자면 본래 카가와의 장점은 분명 맨유에게 좋은 카드가 될 수도 있었으나 근본적으로 피지컬적인 강인함이 요구되는 프리미어리그와 맨유의 색깔에는 맞지 않는 선수였고, 결국 이로 인해 부상과 자신감 상실, 기대 이하의 경기력이 겹치며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2.3.1. 2012-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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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바르셀로나를 제외한 대부분이 격하의 상대이긴 했지만 오프시즌에 가진 친선전이나 투어에서는 거의 모든 경기에 출전하며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아스날에서 로빈 반 페르시가 이적해오는 것이 결정되면서 팀내입지가 위험해졌다. 반 페르시의 이적으로 인해 맨유는 루니가 공격형 미드필더로 내려가고 반 페르시가 최전방을 맡는 4-4-1-1을 기본 전술로 삼으면서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가 주 포지션 카가와의 입지에 경고등이 켜졌다. 양 사이드에서 뛰기에도 나니, 발렌시아, 웰백, 영, 플래쳐 등이 있었다. 결국 남는 것은 중앙 미드필더인데 이쪽은 거의 카가와의 전문 외. '얼마만에 스타팅 멤버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를 논하던 일본의 팬들도 반 페르시의 이적이 결정된 이후로는 '몇 경기나 출전할 수 있을까'로 화제가 바뀌어버렸다.
이후 리그가 개막되고 꾸준히 스타팅 멤버로 기용되기 시작. 전통적으로 4-4-2 포메이션이었던 맨유가 카가와에 맞춰 4-2-3-1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리그 초반에는 공격진영에서 날카로운 모습을 보였고, 두번째 출장경기에서는 데뷔골을 넣으며 전반적으로 호평을 받았다. 전문가들로부터의 평도 매우 좋은 편. 해설을 보던 개리 네빌은 '수비의 압박을 뚫고 공간을 만드는 능력이 부족하지만 시간이 해결해줄 것. 훌륭한 선수다'라고, 조이 바튼은 트위터를 통해 '매우 좋은 선수 같다'라고 평했다, 언론에서는 '맨유에서 홀로 바르셀로나 같은 패스를 했던 선수'라고 평했을 정도.
게다가 2라운드 경기에서 웨인 루니가 허벅지에 전치 4주의 부상을 당하면서 포지션 경쟁이 유리해졌다.
다만 3라운드 경기에서 마크맨이 붙기 시작했고, 피지컬에서 완전히 밀리면서 1, 2라운드만한 활약은 보이지 못했다. 그래도 경기 이후 맨유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3라운드 이후 진행된 A매치 기간에 부상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퍼거슨의 걱정을 샀다. 같은 기간에 반 페르시, 루니 또한 부상 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부상은 경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스카이스포츠는 이 부상에 관련된 기사에 "맨유 에이스 카가와"라는 표현을 쓰면서 한국 팬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리그 5R 리버풀과의 더비전에서도 선발 출장했다. 리버풀의 강한 압박에 전혀 맥을 추지 못했고, 그에 따라서 최전방의 반 페르시마저 고립되어 전반에는 상당히 답답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후반에 가슴 트래핑으로 하파엘에게 볼을 떨궈주어서 1어시스트 기록. 하지만 어시스트에도 불구하고 평은 좋지 못했다. 조용했다는 것이 대부분의 평가.
6라운드 토트넘전에서는 맨유의 전반적인 부진 속에서 별다른 활약을 하지못하다가 후반전이 되어 루니가 교체투입되면서 공격이 풀리기 시작하고, 이후 다른 선수들과의 활발한 스위칭 플레이를 선보이며 맨유로 이적한 뒤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했다.[15][16] 이 와중에 골도 넣었지만 팀은 결국 패배. 현재까지 리그와 챔스를 합쳐서 2골 2도움. 경기력은 기대 이하지만 적지 않은 공격 포인트를 올리며 스탯을 쌓아가고 있다. 맨유 팬들 사이에서는 이적 초반이라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는 평이 많지만 경기력은 별로인데 스탯만 쌓는게 사기꾼 같다는 신랄한 평 역시 적지 않다.
7라운드 뉴캐슬전에서는 윙 포지션으로 선발 출전했으나, 이적 이후 최악의 경기력을 보이며 시즌 전에 우려했던 일이 드러났다. 팀이 전반에 2-0으로 앞서갔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백패스를 남발하다가 결국 후반 초반에 교체되고 말았다. 팀이 이기고 있었던 상황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굴욕적인 교체였다. 팀은 3-0으로 승리.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브라가와의 경기에서 치차리토의 골을 어시스트했으나 무릎 부상으로 전반전이 끝나고 교체되었다. 퍼거슨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카가와가 한 달 동안 결장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초반에 불안했던 루니, 반 페르시 조합이 점점 맞아 떨어지는데다 루니가 본인이 선호하는 톱을 뒤에서 받치는 쉐도우 스트라이커 혹은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카가와보다 훨씬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나니의 부진으로 비어있던 왼쪽 윙 자리에서 웰백이 점점 반 페르시, 루니와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카가와로서는 자기 입지를 다지기 위해선 좀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할 필요가 있었다.
10라운드를 넘어선 시점에서 치차리토의 때 아닌 부활로 안 그래도 나쁜 입지가 더 나빠졌다. 게다가 자국 유망주 웰벡은 변함없이 국대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어 미드필더로 보직 변경까지 고려 중이라고 한다.[17] 이런 상황에서 부상 회복이 더뎌 4주 더 추가 결장이 보도되었다. 게다가 대조적으로 유리몸으로 유명했던 반 페르시나 클레벌리가 잔부상 하나 없이 최고의 컨디션을 보여주며 카가와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12월 30일 20R WBA전에 근 2개월만에 복귀, 선발 출장해서 67분 간 그라운드를 누비며 모습을 드러냈다. 무릎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한 카가와는 67분 동안 그라운드를 누비며 패스 성공률 97%를 기록했고, 반 페르시의 득점을 도우며 공격 포인트를 올렸다. 부상 기간 동안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몸을 만들었다더니, 실제로 이전과 비교해 적극적으로 몸싸움을 하며 쉽게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와중에 2013년 1월 리버풀 FC와의 22R 더비 매치에서 문전으로 쇄도하던 중 호세 마누엘 레이나와 크게 충돌했다. 현지 리버풀 팬들은 이를 보고 Karate attack이라며 경악. 일단 마이클 캐릭이 한번에 넘겨준 패스를 하파엘이 이어받고 반 페르시에게 연결했고 반 페르시가 시도한 힐킥이 다니엘 아게르에게 걸려서 튀어나온 리바운드 찬스 상황에서 카가와가 고의로 부딪힌건 아니고 안드레 위즈덤에게 떠밀린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시 위즈덤과 카가와 아무에게도 파울이 주어지지 않았다. 레이나는 이 충돌로 코뼈가 부러져 수술대에 올랐다. 거기에 허벅지 부상도 재발했다.
복귀 이후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가 아닌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 기용되고 있는데, 날카롭지는 않지만 나쁘지도 않은 활약을 보여주며 팀 승리에 공헌중이었다. 여전히 백패스가 많긴 하지만 복귀 이후 매경기에서 90% 이상의 패스 성공률을 찍고 있는 중이었다.
3월 2일 노리치 시티전에서는 본인의 유럽 무대 첫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4-0 대승을 이끌었다. 이 경기 해트트릭으로 유럽 빅리그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의 해트트릭과 단일경기 최다골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다. 단일경기 최다골은 이후 2020년 9월 20일 손흥민이 사우스햄튼을 상대로 4골을 넣으며 갱신했다.
이 활약으로 인해 레알 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 리그에도 선발로 출전할 것으로 예상되었고 본인도 기대한다는 인터뷰를 했으나 퍼거슨 감독은 카가와를 기용하지 않았다. 수비가 중요한 경기에서 수비 가담을 거의 하지 않는 카가와는 그다지 유효한 전력이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외에도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레알 마드리드와의 16강 1차전에 카가와를 선발로 기용했지만 철저하게 지워지고 교체됐기에 카가와 카드를 다시 쓰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퍼거슨 감독의 1500번째이자 마지막 경기인 WBA와의 원정경기이자 리그 최종전에서 선발 출전하여 팀의 5번째 득점을 기록하고 유럽무대에서 3시즌 연속으로 리그 우승을 경험하였다.
시즌 종료 후 각 언론들로부터 낮게는 6점[18] , 높게는 7점[19] 이라는 시즌 평점을 받았으며 스카이 스포츠는 카가와 신지에게 6.8이라는 시즌 평점을 부여했다. EPL 선수 랭킹은 87위였다.#[20] 대부분의 시간을 본 포지션이 아닌 왼쪽 윙어로 뛰면서 EPL 총 20경기 출장에 선발 17경기, 교체 3경기 6골 4도움을 기록하며 2012/13 시즌 맨유 미드필더들 중에 가장 많은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 스탯를 포함한 단편적인 자료들만 보면 준수한 시즌을 보냈다고 평가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바로 전 시즌에 모든 대회에서 30개의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분데스리가를 호령했던 선수에 대한 기대치에 비해서는 분명 부족했다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부상으로 2개월을 결장하며 활약할 시간을 잃어버린 것 또한 마이너스 요소이다.
'''2012/13 시즌 26경기(선발 22경기) 6골 6도움'''
프리미어 리그: 20경기(17) 6골 4도움
FA컵: 3경기(2)
챔피언스 리그: 3경기 2도움
2.3.2. 2013-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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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도르트문트 시절만큼의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있었다. 좀 더 시즌이 지나보아야 정확히 판단할 수 있으나 9월 초까지는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 컨페더레이션스컵 이후 컨디션 조절 등의 이유로 벤치에 앉거나 명단에서 아예 제외된 경우가 많았다. 포지션 경쟁자인 루니는 결국 첼시 FC로 이적하지 않았으며, 여기에 맨유가 이적시장 막판에 마루앙 펠라이니를 급하게 데려오는데 성공하면서 입지가 점점 더 좁아지고 있었다[21] . 피지컬을 중시하는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의 성향에 매우 걸맞는 선수를 데려왔기 때문에 카가와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선발은 힘들 거라는 예상이 대부분이었다. 거기에 윙어로 뛰기에도 경쟁자들보다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더더욱 힘들었었다. 도르트문트의 위르겐 클롭 감독은 지속적으로 인터뷰를 통해 '카가와가 맨유에서 뛰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라며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도르트문트 리턴을 바라는 팬들도 상당히 많다.
게다가 신성 아드낭 야누자이의 혜성같은 등장으로 입지가 더더욱 위태로워졌다.
그래도 본래 포지션으로 돌아가면 꽤 좋은 활약을 보여 그래도 어느 정도의 입지는 있었다.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3차전 레알 소시에다드와의 경기에서는 오랜만에 선발 출전하여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왼쪽 윙어로 출전하여 활발한 스위칭과 몇 차례의 탈압박을 통해 공격전개를 이끌어냈으며 팀내 활동량 1위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로빈 반 페르시의 결장으로 인해 본래 포지션에서 바이어 04 레버쿠젠과의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5차전에서 루니의 파트너로 좋은 모습을 보였다.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도 가가와의 경기력을 칭찬했다.#
당시 반 페르시가 다시 부상이 도진 가운데 계속 출전을 하고는 있으나, 근본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도르트문트에서 시즌마다 두 자리 득점을 기록하던 카가와가 이번 시즌에는 공격포인트가 전혀 없었다. 공격형 미드필더가 '''공격포인트가 전혀 없다는 것'''은 분명한 문제사항이었다.
2013년 12월 8일 뉴캐슬과의 홈 경기에서 결장했는데 바로 전날에 언론을 통해 카가와가 자택에서 호흡 곤란을 일으켜 응급차가 출동했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모예스 감독 역시 이가 사실임을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뉴캐슬과의 경기 이후 밝힌 말로는 '전날에 심한 과식을 하여 위세척을 해야 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경기에서 잘 뛰지 못하고 별다른 부각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해 심한 심적 부담이 신체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올리베이라 안데르손과 많이먹기 시합을 하다 그랬다고 했지만 카가와 본인에 의하면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웨인 루니도 경고 누적으로 빠지고 카가와도 없는 맨유는 뉴캐슬에게 홈에서 41년만에 패배하며 9위를 유지했다.
그리고 '''결국 2013/14 시즌 정규 리그 15경기 1277분을 출장하는 동안 공격포인트를 하나도 기록하지 못하였다.'''[22] 당시 카가와 신지가 영국 언론이 뽑은 2013년 최악의 선수 1위로 선정됐다고 알려져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는 2013년 '최악'의 선수가 아니라 2013년 '가장 실망스러웠던 7명의 선수'에 선정됐었다.#
게다가 후안 마타가 맨유로 이적해오면서 팀내 입지가 더더욱 좁아졌다. 다만 팀내 윙어들 또한 부진을 겪어서 출전기회 자체는 존재했다. 그리고 마타와 함께 출장한 경기에서 비교적 괜찮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타가 위에서 서술된대로 카가와의 장점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기에 두 선수의 콤비 플레이는 맨유 특유의 4-4-2에 맞추어져 있는 동료들과는 전혀 다른 플레이스타일[23] 을 보여주고 있다. 없던 공격 포인트도 기록하면서 기대감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 뒤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며 맨유와 같이 최악의 시즌을 마감했다. 그리고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이 경질되고 라이언 긱스가 감독대행을 맡은 뒤 루이 판할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지휘봉을 잡게됐다.
'''2013/14 시즌 30경기(선발 23경기) 3도움'''
프리미어 리그: 18경기(14) 3도움
FA컵: 1경기
리그컵: 2경기
커뮤니티 실드: 1경기(0)
챔피언스 리그: 8경기(6)
2.4.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기
[image]
14-15 시즌이 출범하고 리그 1,2R 경기에선 벤치에만 머물렀고 리그컵 2R 경기에 선발로 출전했으나 상대 선수와의 충돌 후 뇌진탕 증세를 보여 전반전 20분만에 교체됐다. 이렇게 루이 판할 체제에서 전력 외로 분류되며 이적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2014년 8월 29일 독일 언론 바츠는 "카가와가 도르트문트의 이적 제의에 동의했다. 현재 양측은 세부 계약을 놓고 협상 중이며 여름 이적 시장 마감 전까지 가가와의 이적은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도르트문트의 수비수 케빈 그로스크로이츠가 가가와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뛰자고 연락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기에 아무래도 도르트문트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보이지만 문제는 이적료다. 맨유는 가가와를 영입할 당시 도르트문트에 이적료로 1,700만 파운드를 냈다. 하지만 도르트문트가 맨유에 제시한 이적료는 1천만 파운드로 알려져 있다. 반면 맨유는 1,500만 파운드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8월 31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복귀하였다. 이적료는 800만 유로이며 계약기간은 4년 이었다. 그리고 등번호는 7번을 달게 된다.
2.4.1. 2014-15 시즌
주 포지션인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헨리크 미키타리안이 있는데 둘을 어떻게 공존시키는가도 관건. 일단은 미키타리안을 다른 포지션에 쓴다고 밝혔다.
9월 14일 리그 3라운드 프라이부르크전에서 복귀 후 첫 골이자 팀의 2번째 골을 넣는 동시에 각 언론들으로부터 분데스리가 이주의 베스트11에 선정되는 등 화려한 복귀전을 펼쳤다.
하지만 그 뒤로 기복을 보이며 눈에 띄는 활약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후방에서 골문을 지키는 바이덴펠러와 훔멜스의 부진과 더불어 팀의 공격을 맡은 선수들은 도르트문트 역사상 최악의 공격수로 회자되는 아드리안 라모스와 임모빌레였다. 공격진과의 호흡이 전혀 맞지 않음과 동시에 카가와 본인도 박스 근처에서의 플레이가 줄어들었다. 특히 리그 8라운드 쾰른전에서 카가와는 키패스를 5개나 기록하였지만 경기 결과는 2:1의 패배였다. 이렇게 팀 순위는 강등권 근처까지 떨어져갔다.
10월 23일 DFB 포칼컵 2라운드 장크트 파울리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3:0 승리에 기여했다.
11월 1일 리그 10라운드 FC 바이에른 뮌헨전에서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좋은 경기력과 더불어 사비 알론소를 완전히 봉쇄하며 뮌헨의 볼배급을 효율적으로 방해하였다. 경기에서 71분만 뛰고 팀은 2:1로 패배했지만 활약을 인정받아 키커로부터 평점 2.0점을 받았다.(평점이 낮을 수록 좋다)
이 시점까지 카가와는 어느 정도 기복을 보였으나 그나마 팀 내에서 제 몫을 해주는 선수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겨울 휴식기까지 카가와 역시 본격적으로 부진에 빠지게 됐다. 일부 국내팬들은 위르겐 클롭의 양아들이라며 비하했을 정도.
12월 1일 도르트문트가 프랑크푸르트에게 2-0으로 패배하면서 3승 2무 8패로 리그 최하위를 유지중이었다. 심지어 일본 언론조차 도르트문트가 최하위로 내려가게 된 프랑크푸르트와의 경기를 통해 프랑크푸르트에서 활약중인 이누이 다카시가 카가와 신지보다 더 낫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문제는 카가와 뿐만 아니라 지난 시즌 완전히 마리오 괴체의 공백을 메꾸진 못했어도, 그 위치에서 준수하게 활약해준 미키타리안마저 같이 부진하다는 것이었다. 미키타리안은 카가와 신지와의 공존 문제로 인해 본 포지션이 아닌 다른 포지션에서 뛰게 되면서 성적이 부진해진 게 있지만, 카가와는 맨유 시절과 달리 제 포지션에서 뛰는데도 성적이 좋지 않았다.
때문에 위르겐 클롭 감독이 카가와 신지에게 아시안컵을 포기하고 겨울 휴식기 훈련에 합류하라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카가와 신지는 거절하고 아시안컵에 참여하게 되고 이 선택은 신의 악수가 된다.
다행히 로이스의 복귀와 함께 리그 후반기 도르트문트가 연승을 하면서 카가와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2월 24일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1차전 유벤투스와의 경기에서는 바이러스성 위장염으로 인한 컨디션 악화로 교체명단에만 포함되고 출전은 하지 못했다.
결국 후반기에 도르트문트가 팀 전체적으로도 상승세를 기록하는 중에 카가와 자신도 폼이 올라오고 많은 공격포인트도 기록하며 팀이 유로파 리그 순위권에 진입하는데 기여를 했다. 그리고 후반기 키커 랑리스테에서 리그 클래스 부문에 이름을 올리며 수준급 활약을 인정받았다.
'''2014/15 시즌 38경기(선발 32경기) 6골 10도움'''(출처: 키커)
분데스리가: 28경기(23) 5골 6도움
DFB 포칼컵: 5경기 1골 2도움
챔피언스 리그: 5경기(4) 2도움
2.4.2. 2015-16 시즌
원래의 등번호인 23번을 달고 시즌을 시작했다. 시즌 초반 폼이 올라온 모습을 보이며 잉골슈타트 전에서 1골, 헤르타 베를린전에서는 마츠 후멜스의 골을 도우면서 예전의 기량을 점차 찾아가는 모습을 보인다는 평이다. 거기에다가 유로파리그 플레이오프에서 3골을 기록하며 시즌 4골을 초반부터 기록 중이었다.
그리고 10월 25일 FC 아우크스부르크전에서 3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5-1 승리를 이끌었다.
레비어 더비에서는 팀의 첫번째 골을 넣음으로써 팀의 승리에 일조했다.
키커 랑리스테의 2015-16 시즌 분데스리가 전반기 공격형 미드필더 부문에서 인터내서널 클래스를 받으며 IK-2에 랭크되었다. 이 부문 1위는 공미 유일의 월드 클래스로 평가받은 WK-1의 토마스 뮐러.
4월 2일 리그 28라운드 베르더 브레멘전에서 분데스리가 통산100번째 출전을 했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의 두 번째 시즌의 부진를 이겨내고 부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6년 들어 잠시 부진했으나 유로파 리그 리버풀전을 기점으로 다시 되살아나서 당시까지의 리그 기록은 9골 7도움이었다.
시즌이 끝나고 분데스리가 사무국이 선정한 분데스리가 베스트 11 공격형 미드필더 부문 후보 4인에 이름을 올리며 분데스리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중 한 명임을 다시 인정받았다. 그리고 최종 팬투표에서 50%를 득표하며 토마스 뮐러 (38%)를 밀어내고 공식 시즌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24] 다만 시즌 초에는 엄청난 공격포인트의 미키타리안과 최전방의 오바메양이, 시즌 후반기에는 훔멜스가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가서 그의 존재감이 묻힌 느낌이 있으며 때문인지 11/12 시즌만큼은 아니더라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국내팬들에게 카가와 신지의 2015/16시즌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2015/16 시즌 46경기(선발 36경기) 13골 10도움'''(출처: 키커)
분데스리가: 29경기(26) 9골 7도움
DFB 포칼컵: 5경기(2) 1골 2도움
유로파 리그: 8경기(5)
유로파 리그 플레이 오프: 4경기(3) 3골 1도움
2.4.3. 2016-17 시즌
2016/17 시즌에는 좀처럼 출전기회를 못잡고 있었다. 벤치에만 앉아있거나 가끔 교체 출전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정도. 카가와 신지의 블로그 글을 보면 이에 따른 상심이 상당히 큰 듯 보였다. 지난 시즌의 경우 투헬 감독이 전임 감독인 위르겐 클롭 시절에 영입되고 운용되던 선수들로 시즌을 마쳤다. 일각에서는 시즌 개막 전부터 도르트문트가 매우 공격적인 영입을 보인 것이 전임 감독인 위르겐 클롭의 색채를 완전히 지우고 자신이 구상한 스쿼드와 전술로 팀을 이끌려는 투헬 감독 의지의 표현이며 카가와는 현재 투헬의 구상 외의 선수로 정해졌다는 것이다. 이미 기존의 포지션 경쟁자인 카스트로 외에 같이 한솥밥을 먹기도 했던 마리오 괴체가 영입되어 경쟁이 한층 과열된 상황인데 투헬 감독은 이 둘을 중용하고 있었다.
9월 28일 열린 레알 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경기에서는 명단에서 제외되어 벤치에도 앉지 못하는 굴욕을 겪으며 일본 언론도 충격을 받았다. J리그로 돌아오라는 기사도 있을 정도.
10월 14일 열린 분데스리가 헤르타 베를린과의 경기에서 60분 경 교체투입되어 하라구치 겐키의 핸들링 PK를 유도하는 발리슛으로 끌려다니던 상황을 반전시켰으며 전반적으로 포지션 경쟁자인 괴체보다 높은 평점을 받았다. 게다가 A매치 기간 동안 포지션 경쟁자 중 한 명인 카스트로가 부상으로 몇 주간 이탈이 예상되어 카가와 입장에선 베를린과의 경기에서의 좋은 평점도 받아 현재로선 상황 반전의 기회를 잡은 상태라고 볼 수 있었다.[25]
11월 23일에 열린 레기아 바르샤바와의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경기에서는 76초만에 2골을 집어넣으면서 챔피언스 리그 최단시간 멀티골 기록을 수립했다.
하지만 이후 경기에서 우스만 뎀벨레, 크리스티안 풀리시치와 같은 포지션 경쟁자들에게 완전히 밀려 리그 및 챔피언스 리그 등의 경기에 거의 출전을 하지 못하거나 경기 막바지쯤에 출전을 하는 등 입지가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카가와는 4-2-3-1의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플레이를 할 때 가장 돋보인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당시 도르트문트는 오바메양을 필두로 우스만 뎀벨레, 마르코 로이스로 이어지는 빠른 공격을 중심으로 운영되며 공격형 미드필더는 중앙 미드필더인 카스트로가 필요할때 올라와서 역할을 수행하며 아니면 카가와보다 보다 스피드가 빠르고 피지컬이 좀더 나은 풀리시치가 기용되었다. 실제로 카가와가 출전했을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도르트문트의 공격시 스피드는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로 느린 편이었다. 당시의 도르트문트의 전술상에서 카가와는 매우 계륵과 같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3월 11일 헤르타 베를린과의 경기에 선발 출전해 전성기 도르트문트를 이끌던 본인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줬다. 감각적인 킬패스와 탈압박, 공간 침투 등 흠잡을데 없는 모습을 보여줬고, 오바메양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하여 공격포인트도 올렸다. 비록 경기는 1:2로 패했지만 빌트지에서 득점한 오바메양보다 더 높은 평점인 2.0을 주었을 정도로 매우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었다.[26]
4월 13일 폭탄테러 하루 뒤에 치러진 UEFA 챔피언스 리그 8강 1차전 AS 모나코와의 경기에서 선발 출장하여 1골 1어시를 기록하는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팀의 대패를 막음과 동시에 4강행의 불씨를 살렸다. 경기 결과는 3:2 패배. 활약을 인정받아 UCL 8강 이주의 팀에 선정되었으며 선정된 선수들 중 패배팀에서 선정된 선수는 카가와가 유일했다.#
시즌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고 카가와와 도르트문트간 계약도 2018년에 만료되는 시점이라 재계약 문제가 거론되고 있지만 카가와측이 상당히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때문에 EPL로의 진출을 생각하는것 아니냐는 기사가 나오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번에 도르트문트와 재계약을 하게 되면 현재 28살인 카가와는 사실상 도르트문트가 자신의 마지막 클럽 커리어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다시 한번 EPL로의 재도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분석이 있었다.[27][28]
5/20일 열린 베르더 브레멘과의 2016-17시즌 마지막 리그경기에서 팀 내 최고 평점을 받았다. 비록 공격포인트는 1 어시스트 이지만 도르트문트의 모든 공격에서 위협적인 킬패스와 연계공격의 시발점이 되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여 도르트문트의 역전승에 기여했다.[29]
후반기에 괴체의 장기부상과 본인의 상승세가 맞물려 팀내 입지는 DFB 포칼컵 결승전 선발 명단에 포함될 정도로 상승했다. 그리고 커리어 통산 두 번째 포칼컵 트로피를 들어올리는데 성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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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에서의 득점은 단 하나였지만 6어시스트라는 적지않은 공격포인트와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활약, DFB-포칼 우승에 기여한 활약을 인정받아 2016/17 시즌 후반기 키커 랑리스테에서 리그 클래스, 동포지션 순위 7위에 선정되었다.
2018년 6월까지의 얼마 안 남은 계약기간에 카가와 본인도 재계약에 대해 소극적인 모습이어서 팀을 떠날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2020년 6월까지 재계약을 맺었다.
'''2016/17 시즌 30경기(선발 21경기) 6골 8도움'''(출처: 키커)
분데스리가: 21경기(13) 1골 6도움
DFB 포칼컵: 3경기 2골
챔피언스 리그: 5경기(4) 3골 2도움
DLF 슈퍼컵: 1경기
2.4.4. 2017-18 시즌
새로운 감독 피터 보츠 체제에서도 주전 엔트리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지만 로테이션 맴버로서 팀이 기울어가는 와중에도 자주 출장하며 꽤 쏠쏠한 활약을 해주었던 시즌으로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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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1일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5차전 토트넘전에서 도르트문트 통산 200경기 출전 기록을 세웠다. 도르트문트에서 약 5시즌 반을 보낸 시점이였다. 분데스리가 사무국은 이 기록을 비중있게 다뤘다.#
리그 7라운드 아우크스부르크전에서 터트린 로빙 슈팅 골이 2017년 9월 이달의 골으로 선정되었다. 이로써 카가와는 오카자키 신지를 넘고 개인 통산 분데스리가 38호골을 성공하며 일본인 역대 분데스리가 최다골을 경신 할 수 있었다.#
리그 16라운드 마인츠 전에서 팀의 연 무,패 행진을 끊어내는 쐐기골을 넣었으며 다음 경기인 17라운드 호펜하임 전에서는 PK를 유도하는 반칙을 얻어내고 크리스티안 풀리시치의 역전 결승골로 이어지는 패스를 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이어나갔다.
12월 20일 DFB 포칼컵 16강 뮌헨전에서도 선발 출전하여 풀타임을 소화하는 동안 야르몰렌코의 득점을 어시스트했다. 경기 결과는 2:1 패배.
그리고 한 달 뒤인 리그 19 라운드 헤르타 베를린과의 경기에선 제이든 산초의 어시를 받아 가볍게 헤딩으로 밀어넣어 골을 기록했다.
후반기 들어서 새로운 감독 페터 슈퇴거 체제에서 리그 21라운드 까지 치러진 모든 7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하는 동안 3골 3도움을 기록중이었다. 이렇게 다시 주전으로 도약하였지만 선발로 출전한 리그 22라운드 함부르크전에서 부상을 당했다. 복귀 날짜는 3월초로 예상되었으나 작은 합병증으로 인해 2~3주 더 미뤄졌다. 때문에 일본 대표팀의 3월 유럽 원정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계속 미뤄지다가 결국 4월 29일 리그 32라운드 베르더 브레멘전에서 복귀하여 교체명단에 포함되었으나 출전은 하지 못했다.
부상으로 재활에 전념하는 동안 EPL의 웨스트 햄, 에버튼 그리고 터키의 여러 클럽들과 이적설이 나오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다시 이상증세가 발견되어 리그 33라운드 마인츠전 명단에서도 제외되었다.
결국 마지막 34라운드 호펜하임전에서 75분에 교체출전하여 3개월만에 경기에 나섰지만 상대팀이 영혼의 텐백을 시전중인지라 볼터치도 제대로 못하고 허무하고 존재감 없는 복귀전을 치르며 시즌을 마감했다.
'''2017/18 시즌 27경기(선발 19경기) 6골 7도움'''(출처: 키커)
분데스리가: 19경기(12) 5골 3도움
DFB 포칼컵: 3경기(2) 1골 2도움
챔피언스 리그: 5경기 2도움
2.4.5. 2018-19 시즌
기존의 포지션 경쟁자인 마리오 괴체와 마흐무드 다후드, 그리고 악셀 비첼과 토마스 델라이니의 영입뿐만 아니라 지난 시즌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디 만샤프트 월드컵 엔트리에 승선했던 마르코 로이스까지, 차고 넘치는 도르트문트의 중원 자원들 때문에 험난한 주전경쟁과 다시 줄어들 팀내 입지가 예상되었고[30] 이는 현실이 되었다.[31]
파브르 감독은 시즌 극초반에 4-3-3의 역삼각형 전술을 선호했고 그 역삼각형을 이루는 선수들로 중앙 미드필더와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에 특화된 다후드, 델라이니, 비첼을 선호했으며[32] 이후 4-3-3의 전술을 배제하고 산초-로이스-라르센이 2선에 배치되는 4-2-3-1 전술을 채택했다. 그리고 인원이 7명으로 제한된 교체 명단에는 세컨드 골키퍼와 3명의 수비수, 다후드, 퓰리시치, 그리고 2018/19시즌 유럽 최고의 조커 파코 알카세르가 있었다. 그리고 팀은 12월까지 단 한 번의 패배만 기록하는 중이었다.
2017/18시즌 막바지부터 2018년 8월 중순까지 이적설이 꾸준하게 나오는 클럽은 터키의 베식타쉬가 유일했으며 스페인의 세비야와 프랑스의 마르세유가 카가와 신지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새로운 이적설도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이 이적설에 대한 카가와 본인의 언급은 전혀 없었으며 9월 5일 도르트문트의 2018/19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명단에 포함됨으로써 잔류가 확정되었다.
이후 경기들의 명단에서 제외되었으며 A매치 기간에 치러지는 하부 리그 팀과의 친선경기에만 출전할 수 있었다.
9월 18일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1차전 브뤼헤전 교체명단에 포함되었다. 이유는 델라이니와 파코가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이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한 괴체와 교체되며 2018/19시즌 개막 후 처음으로 공식경기를 치렀다. 28분을 뛰는 동안 다소 답답했던 공격의 활로를 열었고 괴체보다 좋았다는 평을 받고있었다. 경기 결과는 1:0 승리.
9월 22일 리그 4라운드 호펜하임전에서 선발로 출전했다. 파브르 감독의 전술 시도 차원 겸 직전 경기에서의 준수한 활약에 대한 보상인 듯 했다. 4-2-3-1의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배치되었으나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후반전 15분에 교체되었다. 경기 결과는 1:1 무승부.
9월 26일 리그 5라운드 뉘른베르크전에서 교체로 출전했다. 후반전 62분에 로이스와 교체되어 28분 동안 뚜렸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경기 결과는 7:0 승리.
9월 29일 리그 6라운드 레버쿠젠전 명단에서 다시 제외되었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10월 3일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2차전 AS 모나코전을 앞두고 발목 부위에 부상을 당했다.
10월 25일 AT 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 리그 원정 경기가 치러지는 동안 카가와와 로데는 4부 리그의 도르트문트 U-23에 합류하여 4부 리그 경기를 치렀다. 카가와는 이 경기에서 4도움을 기록했다.
10월 31일 DFB 포칼컵 2라운드 유니온 베를린전에서 선발로 출전하였으나 몇몇 턴오버를 보여주며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으나 도르트문트의 선제골 당시 본인의 헤딩 유효슈팅으로 인한 세컨볼 찬스가 풀리시치의 득점으로 이어졌으며 두 번째 골 당시에는 기점이 되는 패스를 했다.
이후 치러진 경기에서 단 한 차례도 명단에 포함되지 못했다.
2019년 현재 팀을 떠나 스페인 쪽의 클럽으로 가고 싶다는 의향을 보였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도르트문트와 계약이 2020년 6월까지 남아있는 상태에서 카가와를 영입하는 조건은 1,000만 유로(약128억)라는 적지않은 이적료를 지급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카가와의 목표였던 라리가 구단들은 관심이 없는 상태였다. 현재 연봉으로 약 51억 원을 받는 고액연봉자로서 구단에서도 난감한 입장이었다.#
1월말까지 전혀 타구단으로부터 제안이 없자 도르트문트도 급하게 이적료를 삭감했다. 1000만 유로에서 200~300만 유로까지 낮췄다. #
겨울 이적 시장 종료를 앞두고 AS 모나코로의 임대 이적이 기정사실화 되었지만 결렬되고 터키의 베식타슈 JK로의 임대 이적이 확정되었다.
2.5. 베식타슈 JK
2.5.1. 2018-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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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1일 베식타슈 JK로 임대 이적하였다. 계약 기간은 시즌 끝날 때까지다.# 카가와 본인의 SNS를 통해 훈련에 합류한 사실도 확인되었다.
2월 4일 데뷔전인 리그 20라운드 안탈리아스포르전에서 교체 명단에 포함되어 정규 시간 종료 9분 전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멀티골을 기록하며 이상적인 데뷔전을 치르는 동시에 좋은 기량을 보여줬다. 한 골은 프리킥으로 넣었으며 세레소 오사카 시절 이후 오랜만에 프리킥 득점에 성공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카가와는 세르비아 국대 미드필더 아뎀 랴이치의 백업 자원일 뿐이었고, 14경기 출전 4골 2도움으로 별다른 활약 없이 시즌을 마치고 결국 원 소속팀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도 방출당하게 된다.
2.6. 레알 사라고사
2.6.1. 2019-2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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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5일 트랜스퍼 마켓 기준으로 28경기에 출장하여 3골 1도움을 기록 중이다.
과거에 화려했던 도르트문트의 커리어에 비해 현재 스페인 2부 리그에서 부진한 것을 보면 노쇠화가 점점 시작되는 것으로 보이며, 예전의 폼을 되찾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재 비야레알 CF가 원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하지만 팬들은 2부 리그에서도 부진한 선수를 굳이 왜 영입하냐는 의견이 많다.
결국 한국시간 9월 25일, 남은 계약기간 8개월 정도를 못 뛰게 된 대신 60만 유로를 받고 상호 합의 하에 계약을 해지하였다. # 이후 개인 훈련을 하며 뛸 수 있는 팀을 물색하고 있다. 친정팀인 세레소 오사카가 그의 복귀를 권유했지만 카가와는 아직 유럽을 선호하고 있는 모양.
2.7. PAOK FC
2.7.1. 2020-21 시즌
2021년 1월 25일 그리스 수페르리가 엘라다의 PAOK FC와 이적합의가 완료되어 테살로니카로 메디컬 테스트를 위헤 출국하였다. 그리고 1월 27일 2년 반 계약을 발표하였다. 등번호는 23번.
3. 국가대표 경력
- 2006년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 청소년 대표
- 2007년 FIFA U-20 월드컵 청소년 대표
-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
- 2010년 EAFF 동아시안컵 국가대표
- 2011년 AFC 카타르 아시안컵 국가대표
- 2013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국가대표
- 2014년 FIFA 브라질 월드컵 국가대표
- 2015년 AFC 호주 아시안컵 국가대표
- 2018년 FIFA 러시아 월드컵 국가대표
3.1. 개요 및 초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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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9세의 나이에 기린컵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코트디부아르전에서의 교체 출전으로 국가대표로 데뷔했으며 2개월 뒤 UAE와의 친선경기에서 데뷔골을 기록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엔트리 최종 명단에선 탈락했다. 다만 대표팀의 연습경기 선수로 남아공까지 같이 합류했다.
한국 팬들에게는 2011년 8월 10일 한국을 상대로 멀티골을 기록하며 3:0 대승을 이끈 경기가 유명했다. 그러나 이 한일전 이후 A매치 경기에서는 기대치보다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2011년 후반기 혼다의 부상 기간 중에 대표팀에서 아무런 성과를 올리지 못했고[33] 이후 부상에서 돌아온 혼다가 일본 대표팀의 부진한 경기력을 180도 바꿔버리며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포지션 경쟁에서 완전히 밀리던 시기도 있었다.
때문에 대표팀에선 혼다 케이스케와의 공존 문제로 본 포지션인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가 아닌 윙어로 대부분의 경기를 뛰었다. 공격력이나 기술적인 면에서는 카가와가 좀 더 낫지만 일본 대표팀이 빠른 템포의 역습 축구가 아니라 패싱 축구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볼 키핑력이 좋은 혼다가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에 적임이라는 평이 대부분이었다.[34]
그러나 바히드 할릴호지치의 '할릴 재팬' 대표팀이 들어서면서 카가와는 확고한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배치되었다.[35] 또 그러나 카가와 신지와 혼다 모두 소속팀에서 입지가 좁아졌던 시절에는 두 선수 모두 A매치에 차출되지 못했던 시기도 있었다. 때문에 결국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선 두 선수 중 누군가는 윙어가 아닌, 경기에 나서지 못할 상황까지 오게 됐다.
일본 국가대표의 실질적인 에이스였던 혼다와 비교되는 등 국가대표에서 못했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2011년~2014 브라질 월드컵 직전 시기로 알려진 일본 대표팀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골을 몇 차례 기록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기록한 결승골과 2013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36] 기록한 골이 있다.
3.2. 2011 카타르 아시안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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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케로니 감독으로부터 아시안컵 국가대표로 부름을 받게된다. 당시 나카무라 슌스케가 은퇴했기 때문에 그의 등번호 10번을 이어받았다.
조별리그 3차전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오카자키 신지의 득점을 어시스트하여 대회 첫 공격포인트를 올렸다. 팀은 5:0으로 승리
8강 카타르전에서는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1:0으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동점골을 기록, 다시 역전골을 허용하여 2:1로 뒤지는 중에 다시 동점골을 넣으며 2:2를 만들더니 정규시간 종료 직전 89분에 이노하 마사히코의 결승골을 어시시트하여[37] 개최국 카타르를 상대로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일본의 준결승 진출에 기여하게 됐다.
그러나 4강 한국과의 경기에서 부상을 당해 소속 클럽에서 시즌아웃이 확정되었다. 당시 분데스리가 전반기 MVP 수상과 키커 전체 평점 3위를 기록하는 등 폼이 최고조였기에 이 부상은 본인에게 뼈아팠을 것.[38]
일본 대표팀은 결승전 호주를 상대로 연장승부 끝에 1:0으로 승리하여 카가와 또한 첫 국가대표 메이저대회 우승을 경험하게 된다.
대회에서의 주목은 당시 일본의 에이스였던 혼다 케이스케가 가져갔지만 카가와 또한 활약을 인정받아 ESPN이 선정한 아시안컵 베스트11에 선정되었다.#
3.3. 2013 브라질 컨페더레이션스컵
브라질, 이탈리아, 멕시코와 함께 A조에 속한 일본 국가대표로 차출되었다.
조별리그 1차전 0:3으로 패배한 브라질전에서는 별다른 활약이 없었다. 때문에 대표팀에서만큼은 ‘혼다>카가와’ 라는 조건부 드립 등의 비판이 쏟아졌었다.#
그러나 조별리그 2차전 이탈리아전에서 카가와는 전반 33분 왼발 터닝슛으로 득점을 하는 등 수차례 이탈리아 수비를 곤혹스럽게 하며 플레이메이커로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이러한 활약을 펼친 카가와는 팀이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FIFA가 선정한 MOM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카가와는 ‘이기지 못한 경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인터뷰에 답했다.#
조별리그 3차전 멕시코와의 경기에서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지만 팀은 2:1로 패배하면서 결국 일본 대표팀은 조별리그에서 3전 전패로 탈락하게 된다.
3.4. 2014 브라질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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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부터 2014년 6월까지의 평가전에서는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그 시기에 일본 대표팀은 벨기에전 3:2 승리, 네덜란드전 2:2 무승부 경기를 치르는 등 ‘월드컵 본선 8강 진출’ 이라는 희망찬 나날을 보내고 있었으며 카가와 또한 그 시기에 우루과이전에서 득점을 기록하고 월드컵 직전에 치러지는 평가전 3경기 중 2경기에서 각각 1골씩[39] 기록하는 등 좋은 활약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그러나 월드컵 본선무대가 시작되고 조별리그 1차전 코트디부아르전에서는 슈팅 하나 기록하지 못하며 최악의 활약을 펼치게 된다. 선발출전하여 86분 동안 뛰면서 계속되는 공 헌납과 백패스를 보여주더니 자신감이 없어졌는지 무리하게 마크되있는 선수에게 패스를 하는 등 대회 직전 같은 처지에 놓여있던 혼다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팀도 혼다의 선제골을 지키지 못하고 2:1로 역전패했다. 결국 다음 경기인 그리스전 선발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조별리그 2차전 그리스전에서는 교체출전하여 33분 동안 뛰었지만 별다른 활약이 없었다. 경기 결과는 0:0 무승부. 경기 직후 일본 대표팀은 조별리그 1무 1패로 다음 경기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조별리그 3차전 콜롬비아와의 경기에서 선발출전하여 86분 동안 뛰며 전 경기들과는 다르게 특유의 날 선 패스가 몇 차례 나오기는 했으나 슈팅 6개를 기록하는 동안 결정적인 기회들을 모두 날렸으며 결국 끝까지 침묵했다. 경기 결과도 4:1의 대패. 이로써 일본은 조별리그 1무 2패 최하위로 탈락하였다.
대회 종료 후 카가와는 각 언론들이 선정하는 여러 워스트11에 선정되었으며 축구 통계사이트인 스쿼카는 이 대회에서 자국민을 실망시킨 선수 5명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카가와 신지를 선정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 팬들로부터 J리그로 오라는 등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3.5. 2015 호주 아시안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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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조 일본은 팔레스타인, 이라크, 요르단과 같은 조에 속한다. 그리고 카가와는 전 대회들과는 달리 이번 아시안컵에서는 윙어가 아닌 4-3-3의 메짤라로 활약하게 된다.
조별리그 1차전 팔레스타인과의 경기에서 풀타임을 소화하는 동안 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좋은 출발을 한다. 경기 결과는 이변 없이 4:0 승리
조별리그 2차전 이라크와의 경기에서는 결정적인 기회를 한 번 놓쳤지만 그 실수 후 바로 이라크가 PK를 허용하는 반칙을 범해서 혼다의 PK 득점으로 이어졌다. 그밖에 여러차례 기회를 만들어내며 준수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혼다의 득점 이후 일본 대표팀의 골 결정력 부족으로 추가골은 나오지 않았다. 경기 결과는 1:0 승리.
조별리그 2차전 직후 일본 대표팀은 2승 0패를 기록 중이지만 만약 이라크가 팔레스타인을 잡고, 요르단이 일본을 잡는 전개가 이루어진다면 팔레스타인을 제외한 3팀 모두 2승 1패가 되기 때문에 일본이 요르단에 2골차로 패함과 동시에 이라크가 팔레스타인에 1:0으로만 이겨도 골/득실이 아닌 승점 때문에 탈락할 가능성이 존재했다.
조별리그 3차전 요르단과의 경기에서 카가와는 좋은 경기력과 더불어 팀의 두 번째 골을 넣으며[40] 경기 MOM에 선정되었다. 경기 결과는 2:0 승리. 결국 일본 대표팀은 조별리그 3승 0패로 8강에 진출했으며 여기까지 이변은 없었다.
8강 UAE와의 경기에서 일본은 UAE의 알리 마브쿠트에게 선제골을 내줬다. 카가와 역시 활발한 공격전개를 이끌었으나 결정적인 득점 찬스를 놓치며 이 경기에서 슈팅만 35개를 기록하며 한 골밖에 넣지 못한 일본의 문제점 중 하나였다. 81분 시바사키 가쿠의 동점골로 연장승부까지 갔으나 두 팀 모두 골을 기록하지 못해 승부차기까지 가게되었다. 그리고 그 승부차기에서 6번째 키커로 나와 실축을 하며 이란vs이라크전에 이어 최대 이변이 연출되었다.
3.6. 할릴호지치 감독 시절/2015~2018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 부임 후 이전과는 달리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기용되며 경기마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다시 대표팀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그리고 혼다 케이스케는 윙어로 기용되었다.
그러나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가슴트래핑 후 발리골을 포함 2골 1어시스트를 몰아치기도 했던 시리아전과 같이 경기가 잘 풀리 때는 본인의 기량를 발휘하지만 안 풀릴때는 경기 내내 존재감 자체가 사라지는, 다시말해 경기력의 편차가 심하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었다.[41] 때문에 카가와가 빠지고 하라구치(왼쪽)-기요타케(중앙)-혼다(오른쪽)가 배치된 공격 스쿼드가 구성되기도 했다.[42]
하지만 소속팀에서 다시 주전급으로 기용되어 출전시간이 많아지면서 예전의 기량을 되찾기 시작했고 대표팀에서 공격진의 선수 배치가 하라구치(왼쪽)-카가와-쿠보 유야(오른쪽)로 안정화 되면서 카가와의 장점이 더더욱 되살아나기 시작했다.[43]
2017년 6월 7일 시리아와의 평가전에서 전반 8분만에 어깨 탈구 부상을 입어 교체되었다.[44] 때문에 대표팀 중 혼자만 얼굴이 맑았다.[45]
2017년 11월 브라질, 벨기에와의 A매치 2연전 명단에서 오카자키 신지, 혼다 케이스케와 더불어 제외되었다.# 왜냐하면 어느 순간부터 할릴호지치의 전술에서 카가와 신지는 상당히 계륵이었기 때문이다. 카가와 신지를 기용할 경우 4-2-3-1의 공격형 미드필더의 역할이 강제된다. 문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되어도 팀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골 결정력은 언론에서도 말이 나올정도로 낮아졌으며 킬패스 및 공격시 연계작업도 잘 안되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일본의 월드컵 진출 후 유명 축구계 인사 및 칼럼니스트들이 출연한 스포츠 프로그램에서 월드컵 예상 베스트11을 각자 꼽아보았는데 여기에서 혼다와 카가와는 단 한명에게도 꼽히지 않았었다. 그만큼 카가와는 당시 축구계 관련 종사자들에게서조차 더이상 국대에서 필수 자원으로 평가받지 못했었다. 그래서 이데구치 요스케와 같이 전천후로 활약할 수 있고 몸싸움(듀얼)에도 능한 경쟁자들이 할릴호지치의 총애를 받았고, 좌우 윙백(나가토모 유토, 사카이 히로키)과 좌우 공격수(하라구치, 아사노-쿠보)를 중심으로 한 공격전술이 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카가와는 할릴호지치 감독 체제에서 입지가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이적 후 소속팀 파추카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폼을 끌어올린 혼다와는 달리 카가와는 소속팀 도르트문트에서 교체와 벤치를 오가며 꾸준히 기용되지 못했고[46] 주전으로 도약한 시기에는 발목부상으로 장기간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상태였다.
부상때문에 이후에 치러진 기린 챌린지 컵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이렇게 할릴호지치의 신임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장기부상을 당해 재활에만 전념하는 동안 대표팀의 포지션 경쟁자인 혼다는 멕시코 리그의 파추카에서 13골 5도움을 기록하며 경기력을 끌어 올리더니 결국 기린 챌린지 컵 명단에 발탁되어 할릴호지치 신임을 다시 받는 중이었다. 그리고 월드컵 개막식은 다가오고 있었다. 이렇게 카가와 신지에게 2018 러시아 월드컵은 멀어져가는 중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할릴호지치 감독이 경질되고 니시노 아키라가 일본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게 됐다. 월드컵 개막을 두 달 앞둔 시점이었다.
3.7. 2018 러시아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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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직전 할릴호지치 감독이 전격 해임된 후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할릴호지치 감독을 대신해서 일본 대표팀을 맡게 된 니시노 아키라 감독은 부상으로 인해 경기감각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47] 카가와를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한 것이다. 그리고 혼다 케이스케와 4-2-3-1에서 '3'의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를 놓고 치열한 주전경쟁을 하게 되었다.[48]
월드컵 직전에 치러진 평가전 3경기 중 첫 경기인 가나전과 두 번째 경기인 스위스전은 혼다가 선발 출전하고 카가와 신지는 이 두 경기 모두 교체출전을 하며 혼다보다 적은 기회를 부여받았다. 하지만 혼다가 별다른 활약없이 부진하고 팀은 2연패를 당하자 3차전 파라과이전에서는 혼다는 교체명단에, 4-2-3-1의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카가와 신지가 선발 출전하며 사실상 마지막 기회를 부여받았다. 그리고 이 마지막 평가전에서 1골 2도움을 기록하는 등 이누이 다카시와의 활발한 연계와 혼다보다 빠른 공격전개를 보여주며 맹활약하여 대표팀의 4대2 승리에 큰 기여를 하며 대표팀의 주전 선수로 도약한다.[49]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1차전 콜롬비아전에서 선발 출장해 PK를 유도한 뒤[50] 그 PK로 선제골을 성공시키고 일본의 활발한 공격전개를 이끌었다. 경기 결과는 2:1 승리. 4년 전의 복수에 성공했다. 경기 종료 후 카가와는 BBC가 선정한 조별리그 1차전 베스트11에 선정되었다. 이는 유저 투표였지만 카가와의 활약이 어느정도 증명된 셈이다.#
조별리그 2차전 세네갈전에서도 선발 출장해 볼터치는 적었지만 세네갈의 선수를 달고다니며 동료 선수들에게 공간을 열어주고 박스안 수비를 분산시키며 득점에 간접적으로 일조하는 등 이렇게 동료 선수들에게 가는 압박을 분산시키고 시바사키 가쿠가 볼배급을 편하게 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2-2 무승부에 기여했다.
조별리그 3차전 폴란드전을 앞두고 카잔의 기적을 보면서 많은 자극을 받았다며 강한 결의를 하게 됐다고 밝혔으나# 니시노 아키라 감독이 카가와를 포함한 1, 2차전 선발 6명을 교체하고 벤치 멤버들을 기용하는 바람에 출전하지 못했다. 경기 결과는 1:0 일본의 패배였지만 경기에서 일본 대표팀은 월드컵 역사상 최악의 작전으로 16강에 진출하게 됐다. 이 경기는 볼고그라드의 수치라고 불린다.[51]
16강 벨기에전에서는 프로데뷔 후 국가대표 무대에서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게 된다. 풀타임을 소화하며 몇 차례의 탈압박과 양질의 전진패스를 포함하여 이누이 다카시의 두 번째 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52] 그리고 경기 종료 후 활동량 집계결과 12km로 팀 내 1위였다. 하지만 일본은 끝내 2:0에서 2:3으로 역전패하며 8강 진출에 실패했다.
대회 종료 후 니시노 아키라 감독에 이어 모리야스 하지메가 일본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3.8. 모리야스 감독 시절/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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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기린 챌린지 컵 칠레전과 코스타리카전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카가와를 포함한 지난 월드컵 대표팀 중 19명이 이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이에 대해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은 러시아 월드컵 주축 멤버들 중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선수들도 많았으며 월드컵 후 휴식 부여차원, 그리고 소속팀에서의 입지를 다지라는 의미에서 명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대표팀 명단에서 주목할 부분은 러시아 월드컵 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해 일본 내 축구팬들로부터 논란이 되었던 나카지마 쇼야와 도안 리츠[53] 가 발탁된 점이다. 이들이 소속팀에서 각각 중앙, 왼쪽 측면 그리고 오른쪽 측면 공격수라는 점에서 대표팀 주축 멤버인 이누이, 하라구치, '''카가와'''와의 경쟁과 세대교체를 염두에 둔 발탁이라는 점이 지배적이다.
9월 11일 카가와가 빠진 일본 대표팀은 코스타리카를 상대로 3:0 승리를 거둔다. 하지메 감독은 이 경기에서 4-4-2 전술을 사용해서 도안 리츠는 오른쪽 윙으로 뛰었으며 세컨드 스트라이커의 자리에서 득점을 기록한 미나미노 타쿠미가 2019 UAE 아시안컵에서 카가와의 자리를 위협할 대표팀의 유망주로 거론되는 중이다. 게다가 또다른 유망주 나카지마 쇼야가 카가와의 대표팀 등번호 10번을 빼앗을거라는 일본 언론의 떡밥은 덤이었다.
10월 12일, 10월 16일에 치러지는 기린 첼린지 컵 파나마전과 우루과이전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
도르트문트 데뷔 시즌에는 세컨드 스트라이커에 가까운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주로 득점에 치중하는 역할이었으나 다음 시즌부터 사힌과 괴체의 역할이었던 플레이메이킹도 훌륭히 수행하면서 많은 활동량과 더불어 득점에도 관여하는 2선 플레이메이커로서 본인의 축구 스타일을 확립했다.
플레이메이커로서 그의 가장 큰 무기는 패싱력으로 짧은 스루패스, 롱패스 등 모두 수준급이며 전진패스에 능하다. 또한 양발을 잘 쓰는 편에 속한다. 왼발로도 앞 대각선 방향으로 향하는 발리 롱패스도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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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볼터치 감각과 공간 활용에 있어서도 아시아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타고났으며 드리블과 골 결정력도 준수한 편이다. 이를 바탕으로 주로 원터치 패스나 주변 선수들과의 연계와 잔패스를 통한 유기적인 플레이로 기동력을 올려나가는 스타일이다. 때문에 동료선수간의 간격이 넓은 전술이나 측면 지향적인 윙어들과 같이 배치될 경우 어려움을 겪는다.
개인 플레이나 무리한 플레이를 최소한으로 한다. 때문에 문전 앞에서 득점 기회가 오면 본인이 직접 슈팅을 하기보다는 동료 선수들에게 패스를 건네는 선택을 주로 하며 이러한 상황에서 불안정한 상황을 연출시키는 빈도는 적은 편이다. 또한 공간에 대한 이해도 역시 좋아서 단신임에도 헤딩골도 간간히 기록한다.
일본 대표팀에서와는 달리 클럽에서는 위르겐 클롭 감독이 떠난 후 여러 감독들로 부터 공격형 미드필더보다는 주로 4-3-3, 4-1-4-1 또는 3-4-3의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되었다. 때문에 2선보다 낮은 위치에서 플레이를 하는데 있어서 활동량과 검증받은 패싱력, 침투 플레이를 바탕으로 무난하게 소화가 가능했지만 검증받지 못한 수비 가담력이나 수비력으로 주전 엔트리의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우가 잦은편이다.
위의 문단에서 서술된 대로 측면에서의 크로스가 주요 공격으로 채택되는 전술이나 동료선수간 간격이 넓은 전술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압박을 받으면 혼자 힘으로 압박을 벗겨내는데 어려움을 겪고 공을 오랫동안 지켜내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탓에 자연스럽게 백패스의 빈도가 많아진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이러한 문제점들이 드러나며 본인만의 제대로 된 플레이를 펼치지 못했다.
도르트문트에서는 주로 원터치 패스나 동료들을 활용한 1:1 패스같은 유기적인 플레이로 압박을 벗겨내거나 본인의 드리블 능력으로 벗겨내는 등 이러한 부분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맨유에서는 동료 선수들이 이에 맞춰주지 못했던 탓에 플메이메이커와 공격형 미드필더의 주 임무인 기동력이 발휘되지 못했다. 당시 윙어였던 발렌시아는 후에 풀백을 무리없이 담당할 정도로 중앙보다는 주로 측면에서의 활동량이 높은 클래식 윙어였기에 카가와의 서포터가 되어주지 못했고 중앙 미드필더였던 캐릭 또한 박스 투 박스 유형의 선수가 아닌 포백 보호가 주된 역할이었기에 카가와와 함께 2선 이상의 위치로 올라오는 빈도가 적었으며 이외의 선수들과도 맞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동료 선수들간의 간격이 넓어지고 본인의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당시 루니와는 호흡이 잘 맞았지만 이 마저도 루니와 카가와가 서로를 활용하는게 아닌 이 둘의 동선이 시도때도 없이 겹쳤기 때문이었다.
밑의 영상은 당시 맨유의 전술과 카가와의 궁합을 잘 보여주는 영상이다.(2013/14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1차전 올림피아코스전)
즉, 여러 전술에 녹아들 수 있는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연계플레이에 의존하는 그의 플레이는 선수 생활에 있어서 강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을 몇 주 앞둔 평가전에서 4-2-3-1의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의 자리에 혼다가 배치되었을 때는 주변 선수들도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였으나 카가와가 혼다 대신 출전하였을 때는 자연스럽게 공격전개가 빨라짐과 동시에 이누이, 시바사키, 나가토모에게도 플레이 기회가 많이 주어지면서 본인뿐만 아니라 주위 선수들도 다같이 살아나는 플레이를 연출시키기도 했다.
도르트문트 복귀 후 인사이드 윙포워드인 로이스와 공격형 미드필더인 미키타리안과 함께 2선에 배치됐을 때는 본인의 플레이를 펼칠 수 있었고 다시 좋은 경기력을 보였다. 그리고 복귀 초에는 세 선수 모두 중앙 지향적인 탓에 잠시 호흡이 불안정한 플레이를 연출시키기도 했다.
위에 서술된 단점으로 지적받던 몸싸움 능력과 헤딩력은 어느정도 개선이 됐다. 여전히 상대 선수들과 접촉하는 플레이는 지양하는 편이지만 2015/16시즌 샬케와의 리그경기에서 장신 수비수들 사이에서 헤딩 선취골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비슷한 시기에 불가리아와의 국가대표 평가전에서도 헤딩골을 기록했다. 그리고 2016/17시즌을 앞둔 프리시즌에 친정팀 맨유의 수비수 에릭 바이와의 몸싸움 경합에서 밀리지 않는 모습을 연출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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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이 잦은 편이다.
페널티 킥을 딱히 피하지 않는다. 클럽이나 대표팀에서 페널티 킥을 전담한적은 없지만 승부차기 상황이 오면 부담없이 무난하게 찬다.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 본인에게 트라우마로 남을법한 실축을 한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2015/16시즌 DFB 포칼컵 결승전 승부차기, 2016/17시즌을 앞둔 프리시즌에 치러진 맨시티전에서의 승부차기에서 각각 1번 키커와 2번 키커로 나와 성공시켰고 2018 러시아 월드컵 조국의 첫 경기에서 페널티 킥을 성공시켰다. 실축 경험으로 이후 페널티 킥에 대해 난색을 보였는 선수는 많은편이다. 페널티 킥으로 단 하나의 득점도 올리지 않았던 차범근, 박지성[54] , 주앙 무티뉴[55] 등이 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10~2012, 2014~2019)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12~2014)
- 프리미어 리그: 2012-13
- FA 커뮤니티 실드: 2013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 AFC 아시안컵: 2011
5.2. 개인 수상
-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56] : 2015-16
- 키커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 2010-11, 2011-12
- VDV[57] 올해의 팀: 2011-12
- ESM 올해의 팀: 2011-12
- 팬 선정 분데스리가 전반기의 선수: 2010-11
- J2리그 득점왕: 2009
- AFC 올해의 아시안 국제 선수: 2012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달의 선수: 2012년 8월, 2013년 5월
5.3. 키커 랑리스테
- WK(월드 클래스): 2011-12 후반기
- IK(인터내셔널 클래스): 2010-11 전반기, 2015-16 전반기
- K(리그 클래스): 2011-12 전반기, 2014-15 후반기, 2016-17 후반기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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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유 시절 영어 공부를 하지 않고 모든 일정을 통역사와 함께했다고 알려져있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는 2012/13시즌 EPL이 개막되기 전에 독일에서 함께해온 통역사와 헤어졌으며 영어 수업을 받았다. 자세한 내용은 밑의 '맨유 시절 국내팬들과 국내 언론' 문단 참조.
하지만 독일어는 간단한 의사소통 이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고 한다. 이에 도르트문트는 다시 복귀한 카가와에게 통역사를 떼고 독일어를 마스터 하라는 미션을 내렸었다. 2018년을 기준으로 독일어 능력이 향상되기는 했으나 어려워한다.# 하지만 2019년을 기준으로, 영어 인터뷰는 어려움 없이 소화 가능한 수준까지 향상되었다.
- 분데스리가 최대의 더비매치로 유명한 레비어 더비에서 강한 편이다. 샬케를 상대로 현재까지 8경기 4골 2도움을 기록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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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보와 만난 경기에서 본인의 축구 역사상 가장 억울한 상황이 발생했다. 전반전에 쿠보가 드리블 도중 시몬 그립포의 태클로 넘어진 상황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불렸고, 뜬금없이 카가와에게 옐로 카드가 주어졌다. 카가와가 하프타임에도 주심에게 항의해보았으나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도르트문트에서 친했던 선수들로는 케빈 그로스크로이츠와 귄도간, 그리고 대한민국의 박주호가 있었다. 케빈 그로스크로이츠와의 사이는 키커지의 겉표지에 등장할 정도로 친했으며[60] 도르트문트의 전 주장 제바스티안 켈은 카가와에 대해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평하며, 베스트 프렌드인 케빈과 언제나 농담을 말하거나 장난을 친다고 소개했다.
독일에서 한 달 동안 운전면허 정지 처분을 받았을 때[61] 같은 아파트의 윗층에 사는 귄도간이 그 기간 동안 훈련장까지 그를 태워줬고 이를 계기로 친해졌다고 한다. 귄도간은 카가와의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직접 경기장에 가서 카가와와 일본 국가대표를 응원하기도 했다. 박주호의 입단 후에는 귄도간, 박주호, 카가와 이렇게 셋이서 같이 다녔다고 한다.
- 2017년에 아시아 선수 최초로 연봉 1%를 자선사업에 기부하는 '마타의 커먼 골'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맨유에서의 인연이 시발점이 된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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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노는 편이다.
- 나가토모 유토와 함께 소덕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62] 2011/12시즌이 끝난 후 휴식기간 때 카가와와 나가토모가 일본에서 열리는 카라의 콘서트에 출몰했다는 소식(카라의 니콜과 나가토모의 인연으로 초대받았다고 한다)이 퍼지면서 2ch 혐한들에게 까였다.
- 맨체스터 시티의 팬인 영국의 가수 리암 갤러거는 카가와에 대해 묻는 기자에게 '카가와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맨시티랑 경기할 때 골을 넣으면 날려버리겠다'라고 답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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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FA 시리즈에서는 매번 페이스 스캔이 안 되고 있었다. 초상권 문제도 아니고 다른 일본 선수들의 얼굴은 세심히 재현돼 있음에도 카가와만 이런지라 팬들의 원성을 사는중이었다. 위닝일레븐 표지모델이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존재했다.[63]
- 2012년 5월 16일, 도쿄 돔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 홈 경기 오릭스 버팔로즈와의 경기 전에서 시구를 했다. 한편, 이 날 경기는 타카하시 요시노부의 만루홈런에 힘입어 요미우리는 6:0으로 승리했다.
- 2012년 10월 프랑스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맨유에서 동료였던 에브라에게 도발을 당한적이 있다. 당시 에브라는 '카가와, 행운이다. 프랑스에 간단한 경기가 될 거야.'라며 도발을 했다. 경기 결과는 1:0 일본의 승리였고 결승골의 주인공은 카가와 신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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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가와가 맨유로 이적하기 전에 도르트문트의 한 팬이 욱일기로 그를 응원하는 장면이 찍힌적 있다. 해당 사진은 분데스리가 공식 유튜브 채널 영상의 썸네일로 사용되었다. # 당시에는 전범기에 대한 사실이 널리 알려지지 못한 탓에 언급이 전혀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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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5시즌에 위의 사진이 찍히며 몇몇 언론들로부터 위르겐 클롭과의 불화설이 잠시 제기되었다. 하지만 카가와는 한 인터뷰에서 FC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를 앞둔 훈련에서 수비에 관한 설명을 받다가 찍힌 사진이라 해명했고 이런 시기에 나올법한 보도가 아니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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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구에도 일가견을 보인다. 2016년 도르트문트 공식 유튜브 채널이 마티아스 긴터와 카가와, 그리고 BBL[65] 알라 베를린의 농구선수 Ismet Akpinar가 함께 농구를 하는 이벤트 영상를 올렸다.#
- 일본의 한 방송에서 33명의 아이들로 구성된 팀과 축구 시합을 한적 있다. 카가와의 팀은 기요타케 히로시와 카가와 본인으로 2 vs 33의 시합이었으나 두 골을 성공시켰다.
- 한 아이에게 무자비한 알까기를 시전하여 그 아이를 울린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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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에 한 번 꼴로 'Shinji Dream'이라는 자선행사를 개최하여 많은 어린이 축구팬들과 여러 이벤트를 진행하는 팬서비스를 제공한다. 가장 최근인 2018 러시아 월드컵 휴식기에는 일본 서남부에서 발생한 호우 재해를 위한 이 자선행사를 진행했다.
- 2012년에 일본의 AV배우 이치노세 아리메와 사귄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이 루머는 이치노세에 의해 아님이 밝혀졌다. # 당시 팀 동료였던 라이언 긱스가 가장 아쉬워했다는 루머가 있었다.
- 도르트문트 시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 동료였던 치차리토와 만나자 서로 인사와 악수를 하며 안부를 물었다.
6.1. 대한민국과 얽힌 일화
대한민국과 관련된 몇몇 일화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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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주호와의 우정은 비교적 잘 알려져있다. 박주호는 한 인터뷰에서 혼자 쉬는날이면 카가와에게 연락해서 같이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신다고 답했다. 그리고 단 둘이 있을 때는 일본어로 의사소통을 했다고 한다.[66] 2017년 1월에는 박주호의 생일을 축하해주며 함께 찍은 사진을 'Happy birthday bro, 생일축하해'라는 글과 함께 SNS에 올리기도 했다. 그밖에도 카가와 신지의 인스타 그램을 조금만 뒤져봐도 박주호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박주호의 인스타그램에서도 마찬가지. 박주호의 딸인 나은이와 노는 모습도 있다.
- 빅뱅의 맴버 승리와 친분이 있다. 2013년 9월에 같이 식사를 하며 여러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 2019년 마르카와의 인터뷰에서 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선수를 묻는 질문에 손흥민을 뽑았다.일본 기사 분데스리가에서 성공했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서 큰 실패경험이 있는 카가와로써 여러 팀과 리그를 오가며 꾸준히 활약하는 손흥민에 자극을 받았다고 한다.
6.2. 응원가
별 내용은 없다. '라라라~라라라~라~카~가~와~신지!'가 전부다. 카가와 신지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뒤, 2012/13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도르트문트와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가 벌어지자 맨체스터로 원정을 온 수천명의 도르트문트 팬들이 맨체스터 시내에서 이 노래를 부르며 행진한 것으로 유명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찬트 'All we need is Shinji Kagawa'. 역시 별 내용은 없다. 퀸의 노래 Radio Ga Ga의 멜로디에 가사를 변형하였다.[67]
[1] 주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지만, 위르겐 클롭 감독이 도르트문트를 떠난 후에는 중앙 미드필더로 더 자주 기용되었다.[2]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공식 프로필[3] 시즌 도중 계약 해지.[4] 분데스리가 2회, 프리미어 리그 1회[5] 유럽 스포츠 미디어에서 선정하는 유럽 베스트 일레븐[6] 10-11 시즌 키커 선정, 11-12 시즌 키커 · VDV(독일프로축구선수협회) 선정, 15-16 시즌 분데스리가 공식 홈페이지 선정[7] 여담으로 이 이적을 시작으로 J리그에서는 염가의 이적료 또는 이적료 없이 유럽으로 선수를 이적시키는 경우가 많아졌다. 문제는 이러한 이적들을 일본축구협회가 주도하고 있으며 J리그 클럽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모양새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2년간 엄청난 엑소더스로 인해 J리그는 리그 자체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졌고 대외 경쟁력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이전부터 대외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2010년 이후 J리그 팀들의 AFC 챔피언스 리그 성적을 보면 AFC 랭킹이 갈수록 하락하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래도 DAZN과의 거액의 중계권 계약 이후에는 많이 회복하여 17,18시즌 아챔 우승에 19년도에도 준우승을 거두는 등 다시 회복세다.[8] 이전까지는 세컨드 스트라이커에 가까운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다.[9] 2011/12 시즌 분데스리가 전체 활동량 1위였다.#[10] 다음날이 프리미어 리그 마지막 라운드가 열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베를린까지 날아왔다. 그리고 다음날 EPL 역사상 최고의 역전극이 벌어진다.[11] 유럽 스포츠 미디어(ESM)가 매시즌 선정하는 유럽 베스트11. ESM은 월드 사커 매거진(잉글랜드),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이탈리아), 키커(독일), 부트발 인터내셔널(네덜란드), 마르카(스페인), 스포츠 익스프레스(러시아) 등 각국 유력지들의 연합 매체로 매달 선정하는 월간 베스트11에 가장 많이 선정된 선수가 월간 팀에 뽑히며 그 월간 팀에 많이 선정된 횟수대로 다시 베스트11을 뽑는 방식이다. 만약 선정 횟수가 동률일 경우 득표수가 많은 쪽을 우선한다. 카가와는 이 시즌 월간 팀에 네 번 뽑혔다.[12] 참고로 키커 랑리스테는 평가가 매우 깐깐하기로 유명하다. 한 시즌에 WK를 받은 선수가 전 포지션에서 한,두명이거나 아예 없는 시즌도 많다. IK(인터내셔널 클래스)만 받아도 리그 정상급의 선수라 할 수 있을 정도. 단, 2010년대 들어서는 기준에 약간의 의심을 받기도 한다.(대표적으로 16/17 시즌 전반기 외질의 WK와 크로스의 IK 판정.)[13] 기본 이적료 €18m, 옵션 €4m[14] 이 금액은 당시 이적시장에서 최고의 핫플레이어였던 에덴 아자르의 영입이 무산되면서 제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15] 루니 투입 이후 진영이 4-4-2로 바뀌며 왼쪽 윙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공격시에는 위로 올라온 에브라에게 왼쪽을 맡기고 중앙으로 이동하여 루니나 반 페르시와 연계하는 식.[16] 이 장면이 의미가 있는 것이, 이번 시즌 동안 맨유는 카가와, 반 페르시, 루니의 공존법을 전혀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세명이 공존하는 방법을 찾았다는 것이다. 물론 루니의 개인 능력에 상당히 의존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나니가 방출설이 뜨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카가와를 왼쪽 윙으로 돌리지 못할것도 없기에 맨유의 주전략이 될 가능성이 크다.[17] 카가와 신지에게는 최악의 소식이었다. 실력이 좋지 않아도 곧잘 주전을 차지하는게 바로 자국 유망주인데 이건 사놓고 쓰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이 없었다.[18] 더 선, 기브미풋볼[19] 인디펜던트, iTV, 맨체스터 이브닝뉴스, 데일리포스트, 미러[20] 사실 이는 공식랭킹이 아닐뿐더러 Fantasy Football이라는 게임에 사용되는 수치로 매겨지는 순위표다. 따라서 EPL 20개의 팀에서 각 팀마다 11명만 있다고 가정했을 때 220명 중에 87위면 상위 39%니깐 이 순위표'만' 보고 '좀 하는 선수'라고 이해하면 곤란하다, 대표적인 예로 2017/18 시즌 캉테는 저 순위표에서 102위로 랭크되었으며 외질 또한 70위권으로 랭크되었다. 이 두 선수가 2017/18 시즌 저 랭킹 10위를 달성한 손흥민보다 밑급이라고 보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존재하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21] 펠라이니는 중앙 미드필더지만 12-13 시즌에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와 좋은 활약을 펼쳤다. 레이턴 베인스와 더불어 팀내 찬스 메이킹 1, 2위를 다투었다.[22] 트랜스퍼마켓에 따르면 리그에서 1어시스트는 했다고 나오지만 트랜스퍼마켓의 어시스트 기준은 상당히 후하기로 유명하다.[23] 마타도 카가와의 장점인 2대1패스나 공간 침투이 주요 장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24] 그러나 뮐러를 밀어낼 정도의 활약상을 보여주었나 하면 그건 아니었다. VDV는 시즌 베스트 11에 뮐러를 선정했고 키커 랑리스테도 뮐러가 전반기, 후반기 모두 공미부문 1위를 차지하며 카가와보다 좋은 평가를 받았다.[25] 여담으로 박주호 역시 슈멜처와 하파엘 게헤이루의 동반 부상으로 인해 무려 24경기(=267일)만에 이날 경기에 출장할 수 있었다.[26] 다만 현지에서는 카스트로와 카가와의 동선이 겹치는 부분으로 인해 둘의 공존이 힘들다는 분석과 아울러 투헬 감독의 스타일 상 좀더 빠르고 역동적인 뎀벨레와 풀리시치를 선호하기 때문에 카가와의 입지가 이번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나아지진 않을 것이란 평가도 나오고 있다.[27] 카가와는 연봉이 50억에 가깝기 때문에 도르트문트와 바이에른 뮌헨 외엔 카가와의 주급을 맞춰줄 분데스리가 클럽이 없다. 실제로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가 카가와의 영입을 추진했지만 높은 주급에 포기한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카가와가 바이에른 뮌헨에 이적할 리도 없고 도르트문트도 보내줄 리가 없으니 결국 카가와의 높은 주급을 맞춰줄 만한 리그는 EPL이 거의 유일하다. 참고로 50억이면 딱 EPL의 평균 연봉 수준이다.다른 리그와는 차원이 다른 EPL 중계권 수입으로 인해 EPL의 하위권 팀들도 영입이 가능한 수준.[28] 물론 일부 중동리그나 중국리그도 있지만, 일본 선수들이 중동이나 중국리그로 이적하는 사례가 별로 없고 리그앙의 일부 부유한 구단들 역시 가능성이 있지만 카가와에 대한 이적관련 기사 자체가 없었을 정도로 관심이 없었으므로 경기 경험이 있고 본인에 대한 수요가 있었던 EPL이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29] 1번째 득점의 어시스트는 말할 것도 없고 2번째 골 역시 카가와의 킬패스가 뎀벨레로 이어졌고, 뎀벨레의 패스가 오바메양으로 연결되어 득점하게 되었다. 실제로 경기 영상으로 보면 카가와가 2골 모두 높은 비중으로 관여하여 만들어낸 골이다.[30] 팀내에서 카가와 신지와 같은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인 선수는 괴체뿐이지만 4-1-4-1 또는 4-4-2, 4-3-3등의 전술에서는 괴체를 포함한 앞서 열거한 선수들과의 자리싸움도 불가피하다.[31] 8월 20일 2018/19시즌 도르트문트의 첫 공식경기인 DFB 포칼컵 1라운드 그로이터 퓌르트전 명단에서 제외됨으로써 카가와 신지는 파브르 감독 체제에서 전력 외라는 사실이 확실시되었다.[32] 이렇게 공격형 미드필더가 배치되지 않는 전술 때문에 괴체 또한 아직 리그경기를 단 한 번도 치르지 못 한 상태였으나 괴체는 이후 파브르 감독이 폴스 나인(제로톱)을 배치하는 전술을 채택함으로써 살아남았다.[33] 2013년에 벌어진 요르단과의 지역예선에서 혼다의 부상으로 본래 포지션을 되찾았음에도 일본은 1-2로 패배했다. 혼다가 있었을 때는 6-0으로 이겼던 요르단이었다.[34] 실제로 일본 대표팀의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도 '혼다가 빠지면 공을 갖고 있어줄 선수가 없다'고 언급하기도 했다.[35] 때문에 실제로 그 시절 카가와의 대표팀 포지션 경쟁상대는 기요타케 히로시라 볼 수 있었다.[36] 이 경기에서 이탈리아와 대등한 경기를 치렀지만 4:3으로 패배했다.[37] 의도된 어시스트는 아니었다.[38] 그래도 전반기 활약이 워낙 좋았기에 후반기를 날려먹었음에도 통계적으로 선정하는 키커 시즌 베스트 11에는 들게 되었다.[39] 코스타리카전에서 결승골을 넣었고 잠비아전에서도 골을 넣었다.[40] A매치 9경기만의 득점이었다.[41] 이는 당시 소속팀에서도 비슷한 상황이기도 했다.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는 곤잘로 카스트로에게 주전자리를 뺏겼던 시기도 있었다. 다만 이후 리그 26라운드 마인츠전 득점으로 시즌 종료까지 5골을 기록하며 이내 주전 자리를 되찾았었다.[42] 문제는 기요타케 역시 카가와에 비해 킥력이 좋고 약간이나마 피지컬 적인 면에서 낫다는 장점도 있지만 카가와나 기요타케나 비슷한 유형의 공격형 미드필더기 때문에 둘을 바꾼다는건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의 무의미한 일이라는 지적도 있었다.[43] 하라구치와 쿠보 모두 빠르고 공간침투와 해결능력이 높은 선수들인데, 소속팀인 도르트문트에서와 비슷한 공격진의 스타일이기도 했다.[44] 큰 부상은 아니었기 때문에 장기 이탈로 이어지지는 않았다.[45] 6월 13일 최종예선 8차전이 열린 이란의 기온이 무려 37도의 살인적인 더위로 감독인 할릴호지치부터 대표팀 전원의 얼굴이 검게 그을렸다.[46] 그 시기에 치러진 레비어 더비에도 출전하지 못했다.[47] 발목부상 때문에 3개월 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하다가 분데스리가 마지막 34라운드 호펜하임전에서 교체출전해서 15분 남짓 뛴 상태였다.[48] 과거처럼 카가와 신지와 혼다 케이스케는 공존할 수 없게 되었다. 이누이, 시바사키, 하라구치 등을 두고 전문 수비형/중앙 미드필더도 아니고 전문 윙어도 아닌 이 둘중 한 명을 굳이 이 자리에 배치하면서 공존시킬 이유가 없어졌다.[49] 그리고 혼다는 서브로 밀리게 된다.[50] 전반전 3분에 카를로스 산체스가 카가와 신지의 슛을 고의적인 핸드볼로 막는 바람에 퇴장당했고 그게 일본 대표팀에게는 행운으로 작용했다.[51] 근데 카가와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안 나온게 다행이였을지도 모른다. 만약 폴란드전에서도 출전해서 담합시합을 했으면 카가와도 욕을 먹었을 것이다.[52] 경기 종료 후 BBC로부터 이누이 다카시 다음으로 높은 평점(8.2)을 받았다.[53] FC 흐로닝언 소속으로 2017/18시즌 네덜란드 리그에서 9골을 기록한 공격형 미드필더로 해당 시즌에 총 10골을 기록했다.[54] 2002 한일 월드컵 8강전에서의 성공 경험이 있음에도, 주장으로 참여한 2011 카타르 아시안컵 4강 한일전 승부차기에서 10번 키커로 배치되었다.[55] 유로 2016 8강전 승부차기를 앞두고 자신감 없는 기색을 보이자 호날두로부터 키커로 나서줄 것을 요구받은 일화는 잘 알려져있다.[56] 분데스리가 공식 홈페이지 선정, 선정 방식은 온라인 투표다.[57] Vereinigung der Vertragsfußballspieler(독일프로축구선수협회)[58] 어떻게든 해마다 MVP를 부여하는 다른 프로 스포츠 리그와 달리 월드 클래스로 평가 받을만한 선수가 없다고 판단되면 공석으로 두기도 한다. 반면 좋은 활약을 한 선수가 많다고 판단되면 여러 명을 뽑는다. 두 분데스리가 팀이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한 시기인 2012/13시즌 후반기에는 무려 10명을 뽑기도 했다.[59] 두 선수 모두 풀타임을 소화했고 카가와는 어시스트를 기록했다.[60] [image][61]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62] 발단은 아시안컵 당시로 추측되는 동영상이었는데 소녀시대가 티비에 나오는 장면을 보는 모습이다. 나가토모는 넋을 놓고서 바라보고 있었고 카가와는 '소녀시대 무지 좋아해요'라는 멘트를 남기며 소덕 인증.[63] 2013까지. 그 뒤로는 게임 커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가 피파 16 일본판 표지모델로 선정되었다.[64] 사실은 일본 통신사인 소프트뱅크의 광고에 나오는 장면.[65] Beskitball Bundesliga 약자로 독일의 농구 리그다.[66] 박주호는 프로데뷔를 일본에서 했으며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일본에서 뛰었다. 이를 감안하면 일본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67] 영어권에서는 성과 이름을 반대로 말하기 때문에 카가와 신지가 아닌 신지 카가와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