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 스미스(기업인)

 

[image]
1. 개요
2. 생애 및 상세
3. 둘러보기


1. 개요


로저 본엄 스미스(Roger Bonham Smith)는 미국의 전 기업인이다.

2. 생애 및 상세


1925년 7월 12일에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Besse Belle와 E. Quimby Smith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42~1946년 사이에 해군으로 전역했으며, 1947년에 미국 미시건 대학교에서 학사 과정을 졸업한 뒤, 1953년에 같은 학교의 Ross School of Business 과정을 졸업해 경영학 석사(MBA)를 따 냈다. 1949년에 GM에 입사한 그는 회계 직원으로 일했고, 1970년에 회계 담당자로, 1974년에는 제정 부서와 정부 대응 부서, 대중 대응 부서의 부회장으로 임명되었다.
1981년부터 GM의 회장으로 임명되어, 1980년대를 혼란기로 맞이하던 회사를 이끌기 시작했다. 스미스는 GM의 회장으로서, 임기 초반에는 비용 절감에 주력했다.
1981년에는 트럭과 버스 개발 부서를 하나로 통합시켰고, 1982년과 1983년 사이에는 공장 임원들의 임금을 삭감해 경영진들에게 배당했으며, 기존에 반쯤 자발적으로 운영되던 폰티악, 쉐보레, 뷰익, 올즈모빌, 캐딜락 등의 디비젼들의 상황을 완전히 뜯어고쳐 한동안 GM에서 진행되던 부분 자발적인 회사 운영 체제에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이어 1984년부터는 차체를 납품하던 피셔 바디(Fisher Body) 공장과 다른 GM 조립공정들을 분리하고, 아예 이 마케팅 부문을 뺀 디비전 내의 나머지 부서들을 쉐보레-폰티악-캐나다 지부와 뷰익-올즈모빌-캐딜락의 두 팀으로 묶었는데, 이러한 조치는 오히려 운영 비용만 늘리고 회사 내의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평가를 들었다. 게다가 이러한 통합 조치 이후에는 비용 절감을 이유로 뱃지 엔지니어링을 남발하는 바람에, 나오는 차들이 거의 붕어빵으로 전락해서 제품의 경쟁력까지 떨어졌다. 그보다 더 우스운 것은 외장은 거의 붕어빵이면서도 오히려 기술적인 부분과 같이, 고객들이 눈치채기 어려운 부분에서는 부품 공유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도 빈번하게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1982년에는 폰티악, 쉐보레, 올즈모빌, 뷰익 브랜드를 위한 중형차 개발 프로젝트인 GM10 프로젝트를 계획, 지휘했는데 일곱 공장에서 공장당 25만대를 찍어내겠다는 야심찬 계획에, 당시로서는 엄청난 개발비인 70억 달러를 투입했다. 하지만 개발 과정에서 삐걱거리는 부분들이 많은데다가 1984년의 디비전 통합과 공장 분리 때문에 일이 더 꼬였고, 나아가 공장 설비들을 완전히 새로 짜야 하는 바람에 출시된 차들[1]은 차 1대가 생산될 때마다 2천 달러 손해가 생긴 데다가 경쟁력마저도 떨어져 "미국 자동차 산업 최악의 재앙"으로 평가되었다.
또한 스미스는 GM을 급진적인 속도로 현대화한다는 비전 하에 노동자 없이 로봇과 컴퓨터로만 차를 만드는 공장 라인을 구상했고, 일본 후지쯔와 기술 제휴를 맺은 뒤 1980년대 내내 9백억 달러를 들여 세계 최대 규모의 자동화 공장을 지었다. 하지만 로봇 자체부터가 서로에게 페인트 칠을 할 정도로 문제가 많았고, 이미 비용 절감을 위해 미국 내 기존 공장들을 폐쇄하고 멕시코와 같이 노동력이 저렴한 곳으로 공장을 옮겨 버리는 바람에 노조와의 관계도 거의 파탄 수준이었으며, 로봇 관리 비용과 노조 퇴직 비용 등의 간접적인 돈이 더 들어 오히려 제품의 제조 비용만 최고 수준으로 높아져 버렸다.
그 외에도 스미스는 일본 업체들에 대응하고자 새턴 코퍼레이션을 새 브랜드이자 독립 업체로 설립했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본사와 다르게 짠 이 프로젝트는 그저 그런 제품으로도 높은 수준의 고객 서비스와 회사 내부의 노사관계, 초기 제품의 납득할 만한 신뢰성 등으로 어느 정도 호흥을 얻어, 그가 단행한 다른 정책들에 비하면 비교적 설득력 있는 성과를 보였다. 그리고 1987년의 세계 최초 태양열 자동차 대회인 "월드 솔라 첼린지(World Solar Challenge)"에 GM을 참여시켜 대회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고, 이는 곧장 전기차 GM EV1의 개발 과정에 고스란히 반영되기도 했다. (관련 문서)
이후 스미스는 1991년에 테네시 주의 새턴 본사를 둘러보는 것으로 은퇴식을 치르며 42년 동안 몸담은 GM을 떠났고, 2007년 11월 29일에 자신의 침대에서 세상을 떠났다. 슬하에 아들 둘과 딸 둘, 손자 손녀 여섯을 두었다.
1990년에는 마이클 무어 감독이 만든 "로저와 나(Roger & me)"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스미스의 대폭적인 공장 인원 정리와 이로 인한 지역 사회에 미친 악영향들을 소재로 다룬 바 있다.[2] 1980년대 내내 뻘짓들로 GM을 말아먹은 무능력한 상사라는 평이 중론이다. 그와 같은 회사 동기었던 GM의 전 부회장인 밥 루츠는 자서전을 통해 "기업가로서는 오만했으며, 한번 결심하면 끝까지 간다는 성격을 잘 보여줬다"고 스미스를 평가한 바가 있다. [3] 그가 타계했을 당시 GM의 회장이었던 릭 왜고너는, “변화가 심한 시기에 회사를 이끌었으며 변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줄 알았다”고 평가했다.(#)

3. 둘러보기



[1] 뷰익 리갈, 쉐보레 루미나, 올즈모빌 커틀라스 수프림, 폰티악 그랑프리[2] 감독 본인이 스미스를 만나러 가는 내용을 담은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미시건플린트 시의 뷰익 공장 폐쇄로 인해 지역 주민들이 토끼까지 잡아먹을 정도로 지역 사회가 파탄났다고 묘사했는데, 스미스 본인은 다큐멘터리에 대해서 "구역질나는 유머가 별로며 가난한 사람을 이용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평한 바가 있다.[3] 그의 자서전에서는 포드 유럽 지사의 회장을 지내던 시절, 스미스와 만나서 대화하다가 자신이 개발에 관여한 중형차 라인업인 포드 시에라뒷바퀴굴림이라는 이유로 스미스로부터 지적을 받았다는 일화가 담겨 있다. 스미스는 회사 내의 반발이 있었지만 쉐보레 콜벳 외의 모든 라인을 앞바퀴굴림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으며, 루츠와 작별할 때도 "전 세계는 앞바퀴굴림으로 갈 것이고, 시에라도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며 나무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