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비비앙 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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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메룬 출신의 미드필더로, 2003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콜롬비아와의 경기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하여 많은 축구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2. 플레이 스타일
188센티의 장신에 탁월한 신체조건과 흑인 특유의 운동 능력, 힘과 기술을 두루 갖춘 역동적인 미드필더. 주로 중앙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활약하지만 전방 침투 능력과 득점력, 몸을 사리지 않는 수비력을 두루 겸비해 공격형 미드필더로 전진 배치되거나 수비형 미드필더로 후진 배치되어도 제 몫을 다했던 선수였다.
3. 선수 경력
3.1. 클럽 경력
카메룬의 수도 야운데에 위치한 카농 야운데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푀는 곧바로 팀을 정상으로 이끌며 두각을 나타냈고 1994년 미국 월드컵에 출전한 뒤 프랑스의 RC 랑스로 이적했다.
푀는 곧바로 랑스의 중심 선수로 자리잡으며 4시즌 동안 11골을 넣는등 리그 우승에 기여하였고 이에 프리미어 리그의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그 뒤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어 맨유로의 이적은 무산되었고, 대신 400만 파운드에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웨스트햄에서 1시즌을 보낸 푀는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 60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명문 올랭피크 리옹에 입단하였다. 시즌 초기에는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고생했으나 회복 이후 프랑스 컵 우승에 기여했으며, 이듬해인 01-02 시즌 팀의 역사상 최초의 리그 우승의 영광을 안겼다. 이 우승을 시작으로 리옹은 리그 7연패의 전설을 쓰게 된다.
프리미어 리그로 돌아가기를 꿈꾸던 푀는 프리미어 리그 맨체스터 시티로 임대 이적하였으며 2002-03 시즌 리그에서 35경기 출장해 9골이나 넣으며 당시 승격팀이었던 약체 맨시티가 9위로 시즌을 마무리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고, 오프시즌 예정된 컨페더레이션스컵을 마치고 완전이적이 예정되어 있었다. 푀는 이 시즌까지만 사용한 맨시티의 종전 홈구장 메인 로드에서 2003년 4월 16일 선더랜드 AFC를 상대로 골을 넣었고, 팀은 3-0으로 승리하였는데, 푀의 골은 메인 로드에서 맨시티 선수가 넣은 마지막 골이 되어 맨시티의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누가 알았으랴, 이 골이 그의 생애에 기록한 마지막 골이었을지...
3.2. 국가대표 경력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활약한 이후 부상으로 인해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출전은 좌절되었으나, 2002년 한일 월드컵에는 다시 출장하여 전 경기에 풀타임 출장하였다. 그 이듬해인 2003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프랑스에 출장한 푀는 6월 19일에 브라질, 6월 21에 터키를 1-0으로 제압한 경기에 선발 출전해 맹활약했다. 유럽을 강타한 폭염 속에서 경기는 2일 간격으로 빠듯하게 이어졌다. 준결승 진출을 확정지은 6월 23일 미국 전에 휴식을 취했으나, 6월 26일 콜롬비아와의 준결승전에 선발 출전했다. 미국전 휴식에도 불구하고 1주일에 3경기를 소화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콜롬비아와의 경기 도중 후반 26분경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플레이를 멈춰야 했다'''[2] . 그의 선수 경력, 나아가 그의 인생은 피치 위에서 종료됐다. 향년 28세.
4. 사후
프랑스와 터키 간의 컨페드레이션스컵 준결승전에서 티에리 앙리는 선제골을 득점한 이후 하늘을 가리키는 골 뒤풀이를 펼치며 그의 친구였던 푀의 죽음을 애도했다. 이어서 6월 29일에 프랑스와 카메룬이 결승전에서 맞붙었다.
양국 선수들은 거대한 푀의 사진을 함께 들고 입장했고 묵념 속에서 그를 추모하며 경기를 시작하였다. 우승컵은 프랑스의 차지였으나 시상식의 주인공은 푀였다. 은메달을 타게 된 카메룬 선수들은 모두 등번호 17번와 푀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나타났고, 프랑스 대표 선수들 역시 푀의 영정에 트로피를 바쳤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계약문제에 대한 혼란과 선수생활의 회의로 인해 은퇴를 생각하고 있던 전 그의 팀 동료 그레고리 쿠페[3] 는 의지를 바로 잡고 리옹의 전성기를 이끈 수문장으로 활약하였다. 그가 빛을 보기 시작한 RC 랑스와 임대 이적하여 활약했던 그의 마지막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는 그의 죽음을 기리어 푀의 등번호인 17번[4] 과 23번[5] 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4.1. 수상명
프랑스 리그 1에서는 푀의 죽음을 기려 그의 이름을 딴, '''마르크-비비앙 푀 상 (Prix Marc-Vivien Foé; 프리 마르크-비비앙 푀)'''[6] 라는 상을 매 시즌 수여한다. 리그 1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아프리카'''[7] 출신의 선수에게만 수여되는 상이다.
2008/09 시즌부터 수상하기 시작했다.
5. 여파
사실 경기 중이나 경기 전후에 선수가 심장마비로 쓰러져 사망하는 사건이 이 사건을 제외하고 봐도 없는 건 아니지만, 문제는 이 사건이 일어난 것이 '''컨페더레이션스컵'''이었다는 것이다. 프레 월드컵 성격까지 갖추고 있는 위상이 높은 대회니만큼 '''당연히 위성 생중계되고 있었고, 그가 경기 중에 쓰러져 눈이 뒤집힌 장면까지 모두 생중계되었다.''' 당연히 대한민국도 포함. 지금도 유튜브에서 '''marc foe death'''로 검색하면 그가 쓰러지는 영상이 나올 정도.
딱 봐도 상태가 좋지 않은 게 보일 정도인데, 경기가 끝난 이후 그의 사망 소식까지 전해졌으니 더더욱 충격과 공포에 빠질 수 밖에 없었고, 엄청난 질타가 쏟아졌다. 이 사건의 여파에 의해 일정이 매우 과도한 수준이었던 UEFA 챔피언스 리그나 브라질 세리 A에서는 경기 수를 줄여 버렸다. 동시에 컨페더레이션스컵 역시 차기 대회부터는 4년 단위로 개최하게 되었다가 2017년 대회를 끝으로 폐지되었다.
그러나, 이걸 잊었는지 2010년대 와서 UEFA가 난데없이 유로파 리그와 챔피언스 리그를 합쳐 무려 64경기로 경기를 늘린다는 기획을 하다가 무수한 반대 속에 그만뒀지만, 거기에 FIFA까지도 클럽 월드컵을 참가팀을 늘려 경기를 늘려서 돈벌이를 더 생각하겠다든지 서로들 경기를 확 늘려 여전히 돈벌이에 환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 외래어 표기 규정에 따르면, 인명에서는 줄표(-)를 무시하고 상표명에서는 살린다. 단, 줄표의 앞뒤를 별개의 단어로 보아 띄어 쓰지는 않되, 연음 등은 고려하지 않고 표기한다.[2] 그의 동료였던 에릭 젬바젬바는 인터뷰에서 푀가 쓰러지기 불과 몇 분 전에 "에릭, 나 피곤해"라고 말했으며 젬바젬바는 공을 아웃시킨 후 코치에게 교체해달라고 말하겠다라고 대답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참사를 막지 못했다. #[3] 쿠페는 전 팀 동료였던 그의 죽음에 슬픔을 감추지 못하며 경기 시작전 공개적으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였다.[4] 랑스의 영구결번.[5] 맨시티의 영구결번.[6] 프리(Prix)는 프랑스어로 '상'을 의미한다. 영어의 Prize와 같은 단어. 이 단어가 쓰인 그랑프리라는 어구의 발음에서 보듯 마지막 x는 묵음이다.[7] 본 국적이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인 선수만. 프랑스 이중국적을 가진 선수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