멤논

 

'''Μέμνων / Memnon'''
2.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장군


1. 그리스 신화영웅



에티오피아의 왕. 새벽의 여신 에오스트로이의 왕자 티토노스의 아들로, 헥토르파리스에게는 사촌이다.[1]
헥토르가 죽은 후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여 그리스 군과 맞서 싸웠으며 네스토르의 아들 안틸로코스를 쓰러뜨리는 등 무공을 세우지만 아킬레우스와의 결투에서 패배해 전사했다. 그러나 멤논에겐 '''그를 죽이는 자가 다음 번에 죽을 것이다'''라는 운명이 있었는지라, 그를 죽인 아킬레우스도 결국 죽고 만다.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가 <그는 내가 본 사람 중에서 신과 같은 멤논 다음으로 미남자였소>라고 하는 대목이 있는 것으로 보아 대단한 미남이었던 듯. 이 말의 대상은 헤라클레스의 아들 텔레포스의 아들인 에우리필로스였다. 멤논의 아버지 티토노스는 에오스가 한눈에 반해서 에티오피아까지 데려갈 정도의 미남이었고 어머니 역시 여신이니 미녀였을 게 분명하니[2] 그 외모가 유전된 모양.
멤논의 사후에 대해선 여러가지 설이 존재한다.
첫 번째 설에 의하면 어머니 에오스가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멤논의 시신을 에티오피아로 데려갔고[3] 그의 사후 그의 부하들은 '''멤노니데스'''라 불리우는 새 떼가 되었다고 한다. 에오스는 이후 제우스에게 탄원해 사후에나마 멤논으로 하여금 영생의 몸을 얻게 했다고 한다.
두 번째 설에 의하면 멤논은 화장되었는데, 이 때 새 떼가 날아와 세 번을 그 위에서 돌다가 이내 두 패로 갈라져 싸웠고 그중 반절이 불 위로 떨어저 희생공양이 되는 식으로 죽었다고 한다. 이 새 때는 이후 멤노니데스라 불리게 되었으며 매년 멤논의 무덤 곁으로 날아와 반절로 갈라저 싸우다가 무리의 반절이 희생공양이 되는 식으로 죽는 걸 반복하게 되었다고 한다.[4]
서사시환 중 하나인 아이티오피스에서 그의 이야기를 다루었으나, 현재는 존재하지 않고 단편적인 기록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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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기 그리스인들은 이집트 룩소르에 남아있는 파라오 아멘호테프 3세(아케나톤의 부왕)의 조각상 2구를 멤논의 조각상으로 오해했는데, 아마 이름이 비슷해서였을 것이다. 이 조각상은 풍화작용에 의해 금이 가 있어 기온이 갑자기 올라가는 사막의 새벽 시간에 금간 곳에 차있던 공기가 팽창하며 소리가 났는데, 그 소리가 마치 인간이 흐느끼는 소리 같아서 그리스인들은 멤논이 매일 새벽마다 어머니인 새벽의 여신 에오스에게 자신의 원통함을 호소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신화서도 잠깐만 등장하다 퇴장하는 단역이라 그런지 매체서도 딱히 길게 언급되지는 않는다.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서는 트로이를 돕기 위해 왔다가 아킬레우스에게 당했다는 말과 함께 1페이지만에 퇴장당했고 이후 17권서야 그 사정이 나온다. 홍은영의 그리스 로마 신화서는 그의 출생이 나오지만 역시 아킬레우스에게 당한 뒤 어머니 에오스가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눈물 흘리는 모습과 함께 그녀의 눈물이 아침 이슬이 되었다는 설명처럼 1페이지의 설명이 전부이다. 그나마 길게 나온 게 올림포스 가디언인데 여기서는 그의 어린 시절 모습으로 나온다. 우연히 티토노스가 있는 골방으로 멤논이 가고 들어온 에오스에게 티토노스가 자신의 아들이냐고 묻고 다그침에 그의 아들이 맞다고 하지만 자신의 아이니 당신은 권리가 없다고 일갈한다. 그리고 그날 밤 남편인 티토노스와 달리 아들만은 불로불사를 누리게 해주겠다고 잠든 그의 옆에서 독백하는 에오스에게 과거의 실수를 반복할 거냐는 티토노스의 독백과 함께 그가 아르테미스에게 아들만은 인간으로 살게 해달라고 지상으로 보내달라고 애원하고 신들은 그걸 들어주었다. 그리고 갑자기 사라진 아들을 찾기 위해 에오스는 자신의 본분도 있고 며칠을 헤메었지만 제우스의 다그침에 정신을 차리고 그녀 자신의 본분으로 돌아가는 걸로 언급이 끝이다. 대사 한 줄도 없어서인지 성우도 없다.

2.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장군


BC 380 ~ 333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 최후의 명장.''' 아케메네스 왕조 말기에 마케도니아의 전설적인 정복군주였던 필리포스 2세알렉산드로스 3세 부자와 맞서 싸운 것으로 유명하다. 현대에는 신화 속의 인물이나 그 외의 동명이인들과 구분하기 위해서 주로 "로도스의 멤논(Memnon of Rhodes)"이라 불리기도 한다.
본래 로도스 출신으로, 20대 초반에 형 멘토르와 함께 프리지아의 총독인 아르타바조스 휘하에서 일했고 기원전 352년에 아르타바조스가 반란을 일으키자 멘토르와 함께 호응했지만 반란이 실패하자 유럽으로 도주해 필리포스 2세에게 의탁했다.
기원전 343년에 멘토르가 이집트 정벌의 공으로 멤논이 사면되면서 페르시아로 귀국하였다. 이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에게 필리포스 2세가 페르시아 침공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알렸으며, 기원전 340년에 멘토르가 사망하면서 트로이를 받고 자신의 조카 바르시네와 결혼했다.
기원전 336년에 마케도니아의 왕인 필리포스 2세가 백전노장인 파르메니온을 보내 페르시아를 공격해오자 군사 2만을 이끌고 마그네시아에서 이를 격파해 소아시아 북서부에 마케도니아군을 고립시키는 등의 승리를 거두었다. 멤논은 군사적으로 유능하고 병사들에게 인기가 많았으나, 태생이 이방인이었을 뿐 아니라 반란을 일으킨 전적이 있기 때문이었는지 다른 페르시아의 장군들에게는 배척받았다.
이후 필리포스 2세가 죽은 후에 알렉산드로스 3세가 그 왕위를 물려받고는 기원전 334년에 페르시아를 공격해왔다. 이에 멤논은 대규모 전면전은 피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해군을 이용해 지중해 연안의 국가들 중에 마케도니아에 적대적인 국가들을 압박하면서 내륙에서 청야전술로 물자를 차단하고 해상 보급로도 차단해 마케도니아를 위기에 몰아넣으려고 했지만 다른 페르시아의 장군들이 반대해 묵살되었다.
기원전 334년 5월에 그라니코스 전투에 참전했지만 페르시아군이 패하면서 총사령관에 임명되었으며, 할리카르나소스를 방어하고 자신이 제안한 작전을 실행하면서 스파르타의 아기스 3세에게 접촉해 알렉산드로스 3세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기원전 333년에 병으로 사망한다.[5] 그리고 이후 페르시아의 왕인 다리우스 3세가 친히 대군을 거느리고 알렉산드로스 3세를 맞상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소스 전투가우가멜라 전투에서 연이은 참패를 당하면서 아케메네스 왕조는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죽은 후의 운명도 안습인데, 그의 아내 바르시네는 후일 보복의 의미로 알렉산드로스가 끌고 가 자신의 성노예로 삼아 헤라클레스라는 아들을 낳았지만 디아도코이 전쟁 때 바르시네와 헤라클레스 모두 살해당한다.

[1] 멤논에게 있어선 숙부가 프리아모스이기 때문.[2] 원전 신화서 묘사되길 장밋빛 손가락을 지녔다고 나온다.[3] 이 때 그녀가 흘린 눈물이 아침 이슬이 되었다고 한다.[4] 두 번째 설에서 나오는 멤노니데스들의 정체에 관한 설명은 멤논의 동료들이 죽어서 변한 모습이라는 설과, 멤논이 사후 이런 식으로 영생을 얻었다는 설로 또 갈라진다.[5] 사망한 타이밍이 너무 절묘해서 알렉산드로스 측이 독살했다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