헥토르
'''Ἕκτωρ / Hector'''
1. 개요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의 양대 주인공 중 하나.[2]
트로이의 왕세자로 프리아모스 왕과 헤카베 왕비의 장남. 아내는 안드로마케. 아들은 안드로마케에게서 얻은 스카만드리오스(아스티아낙스).[3]
트로이의 총사령관이자 기둥이며 이상적인 영웅으로 묘사된다. 이명은 '번쩍이는 투구의' 헥토르, 또는 '사람 잡는' 헥토르[4] . 이름의 뜻은 "방어자", "수호자". 일리아스에서는 아킬레우스의 호적수로 서술됐으며, 아가멤논은 메넬라오스가 싸우려하자 '아킬레우스조차 싸우기를 꺼린 자'라고 하며 뜯어말렸다.
프리아모스 왕은 많은 자식들중에서 헥토르를 가장 사랑했으며 '헥토르보다 뛰어난 아들을 둔 아버지는 없다'라고 말하며 굉장히 자랑스러워했다. 또한 형제들과 누이들로부터는 막대한 존경과 사랑을 받아왔다. 서사시 안에서 나이가 직접 나오지는 않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연령대를 종잡기 어려운 인물. 동생인 파리스만 해도 아킬레우스가 태어나기도 전에 성인이었으며, 프리아모스는 아들만 무려 50명이나 되는데 이 중 맏이라면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4~50대, 즉 '''당시 기준으로는 호호할배'''였을 것이다.[5] 한데 서사시 안에는 헥토르가 노병이라는 언급조차 없고, 그의 외아들 아스티아낙스는 심지어 명백한 청년장수인 아킬레우스의 아들보다도 나이가 어리다. 무엇보다도 젊은 왕자라고 불릴 때도 있다.
그리스(아카이오이) 측 주인공인 아킬레우스와는 서로가 최대의 숙적인 동시에 정반대되는 인물상이며, 그러면서 본질적으로는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복잡한 관계로 표현된다. 아킬레우스는 격정과 자신의 명예를 위해 싸우고 헥토르는 사명감과 자신의 의무에 의해 전장에 나서지만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운명[6] 을 짐작하고 있으면서도 최후까지 투쟁을 선택함으로써 당당하게 운명을 맞는다'''는 점에서는 매우 유사하다. 여기에 아킬레우스가 전투에 나서기 거부한것을 "전쟁에서 공훈을 세우면 죽는다"는 운명을 두려워 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둘 다 죽음을 두려워하나 결국엔 투쟁을 선택하는 인물상이 된다.
그리스군은 디오메데스, 大小아이아스, 오디세우스 등등 쟁쟁한 용자들이 많은 데 비해[7] 트로이 측은 헥토르 하나밖에 없다는 인상이 강해서[8] 남들이 나눠서 해야 될 일도 혼자 전부 하는 불쌍한 신세다. 물론 혼자서 그 역할을 전부 감당하면서 10년이 되도록 전쟁을 끌어온 '''희대의 먼치킨'''. 트로이에서도 쟁쟁한 장수로는 헥토르 외에는 사르페돈이나 아이네이아스 등도 있긴 하다. 일리아스 기준으로도 완전히 헥토르가 혼자 다 하는 수준까지는 아니고 다른 트로이 장수들이 무용을 뽐내는 대목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애초에 일리아스 안에서도 '''헥토르 혼자 트로이를 지키다시피 했다'''는 서술이 들어가는 걸 생각할 때[9] 헥토르의 비중이 독보적이라는 건 호메로스 공인이라고 봐야 한다.
'''헥토르가 죽인 아카이오이 병사들은 무려 31,000명'''으로 그야말로 트로이 역사상 최고의 대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론 이런 압도적인 무력과 지휘력을 지닌 헥토르이기에 그가 사망한다면 트로이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10]
미인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 트로이 왕가의 일원답게 헥토르 역시 뛰어난 외모의 소유자로 묘사된다. 호메로스는 아킬레우스가 헥토르를 죽이고 무구를 벗기자 많은 아카이오이 병사들이 그의 체격과 당당한 모습에 감탄했고, 전차에 끌릴 때 그토록 곱던 그의 머리가 먼지투성이가 된다고 서술했다. 호메로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헤파이스토스의 신관이자 《트로이 멸망사》를 저술했다고 알려진 다레스 프리기누스는 헥토르의 외모를 찬양하는 기록을 남겼다.'''His complexion was fair, his hair curly. His eyes would blink attractively. His movements were swift. His face, with its beard, was noble. He was handsome, fierce, and high-spirited, merciful to the citizens, and deserving of love.'''
(그의 피부는 아름다웠으며, 머리카락은 곱슬거렸다. 눈을 깜박이는 것도 매혹적이었다. 몸놀림이 날쌨고 수염이 있는 그의 얼굴은 품위있었다. 그는 잘생겼으며, 날카로웠고, 기운이 넘쳤고, 시민들에게 자애로웠다. 그는 사랑받아 마땅하다.)
- 다레스 프리기누스 (Δάρης / Dares of Phrygia)의 《트로이 멸망사》
실사화 배우 중에서는 영화 《트로이》에서 헥토르로 분한 에릭 바나가 유명하다.
2. 일대기
10년간, 트로이를 이끌며 용맹을 펼친 헥토르는 그리스 군사들에게 공포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항상 일이 잘 풀렸던 것은 아니였기에 아이아스의 돌에 맞아서 거의 죽을 뻔하다가 제우스의 명을 받은 아폴론에게 목숨을 건지기도 하고 디오메데스와 1대 1로 맞싸울 일이 있으면 뭔가 빈 마차가 끼어든다던가 세 겹으로 둘러싼 투구 덕택에 목숨을 건지는 등 죽을 위기도 여러 번 겪는다. 그리스 함선라인까지 공략해 쳐들어 가기도 하였지만 후퇴해야 한 적도 있었다.[11]
어떤 의미로는 원작 최대의 희생자로 매번 나올 때마다 활약상이 들쭉날쭉한데 이는 제우스가 아킬레우스 어머니 테티스의 부탁에 따라 전황을 계속 교착 상태로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킬레우스가 활약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만큼 맞수가 되는 헥토르가 오래 남으면서 전공을 올려야 했던 것. 그래서 어떨 때는 무적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면서 그리스군을 몰아붙이다가도 전세가 완전히 기울었다 싶으면 또 반대로 뒤집히는 기가 막힌 상황을 수도 없이 겪는다. 아무리 인간이 잘나도 신에겐 안되고[12] 또 운명에겐 더더욱 상대가 안된다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제를 잘 보여준다. 여기에 헥토르 본인도 전투 도중 뒤에서 얼쩡거려서 사르페돈같은 동맹군에게 빨리 나와서 안싸우냐고 독박을 듣는등 여러모로 고생한다.
하지만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운명을 탓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며, 항상 공손하게 신들을 섬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모습 때문에 신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아킬레우스가 전장에 복귀한 후 헥토르를 죽이려할 때 제우스가 심각하게 갈등하기도 하고, 트로이 전쟁 내내 헥토르의 가장 강력한 지원자였던 아폴론은 그가 죽는 순간 차마 보질 못하고 고개를 돌리고 만다.
일리아스나 아이네이아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트로이가 아끼고 자랑하는 최고의 영웅이요, 아카이아군에게는 공포의 상징.
2.1. 《비블리오테카》
2.1.1. 프로테실라오스와의 결투
그리스가 트로이에 침공하자 가장 먼저 트로이에 착지하여 진격하는 프로테실라오스를 죽이며 긴 전쟁을 시작한다.
가장 먼저 트로이 땅을 밟게되는 자는 죽게 된다는 예언이 있었기에 아무도 배에서 내리지 않고 있었지만, 프로테실라오스와 아킬레우스만은 앞서서 배에서 내리려 했다. 이때, 테티스의 만류로 아킬레우스는 내려가지 못하고, 프로테실라오스가 먼저 트로이 땅을 밟았다. 프로테실라오스가 트로이 땅을 밟고 나서야 아카이아 연합군이 배에서 내려 돌격했지만, 제일 앞장 서던 프로테실라오스는 결국 헥토르의 투창을 맞고 사망한다.
2.2. 《일리아스》
2.2.1. 아이아스와의 1차 결투
그리스 군의 大 아이아스와는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립이 많았다.
파리스가 메넬라오스와의 결투에서 발려 죽을 위기에 처하고 아프로디테의 도움을 받아 도망쳤을 때, 자신이 대신 결투하겠다고 하자 아이아스가 나섰다. 헥토르의 투창은 아이아스의 방패를 뚫지 못한 것에 비해 아이아스의 투창은 방패를 뚫어 헥토르에게 약간의 상처를 입혔다. 이어서 커다란 바위를 던지고는 칼을 뽑아 돌진하려는 찰나, 결투가 하도 길어지다 보니 밤이 와 각 진영에서 그만하라고 말렸고 헥토르와 아이아스는 서로의 능력을 인정하며 선물을 교환했다.[13]
2.2.2. 헥토르의 반격
2.2.2.1. 아이아스와의 2차 결투
헥토르가 제우스의 계시를 받고 그리스 군의 배까지 진격했을 때는 아이아스가 던진 바위를 가슴에 정통으로 맞고 거의 죽을 뻔했다.
헥토르가 쓰러져서 피를 토하고 있을 때, 그의 형제들이 그를 지켰다고 한다. 결국 제우스의 명령을 받은 아폴론이 헥토르를 치유했다. 다시 일어난 헥토르는 함선 위에서 방어 하고 있는 아이아스에게 돌진했지만, 승부를 낼 수 없었다. 결투가 길어지다가 아이아스는 창으로 반격을 했지만 헥토르가 칼로 창의 끝을 베어버렸기에,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14]
아이아스를 몰아내는 데 성공한 헥토르는 아카이아 연합군의 배를 불태우기 시작하는데, 10년의 트로이 전쟁 사상 처음으로 트로이 군이 방벽을 넘어서 타격을 입힌 것이었다.
2.2.2.2. 파트로클로스와의 결투
헥토르의 진격에 참다 못한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자신이 아킬레우스의 행세를 하며 전쟁에 나섰는데 헥토르가 그를 죽여버리고 만다. 판본에 따라선 이때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얻고 감탄하여 잠시 물러나 그걸로 갈아입고 싸웠다고 한다.
일리아스에서는 좀 애매하게 묘사됐는데 파트로클로스가 사르페돈을 죽이는 등 잘 싸우다가 신의 농간으로 분별력을 잃고 닥돌하는데 그것도 모자라 결정적인 순간에 디버프를 맞고 다른 트로이아 전사에게 당한 것을 마침 지나가던 헥토르가 그냥 막타만 친 정도로 묘사된다. 이 순간부터 헥토르의 죽음이 결정되었다고 묘사한다.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으로 인해, 전쟁에 참가하기를 거부했던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죽이기 위해 전쟁에 다시 참가한다.[15]
2.2.3. 아킬레우스와의 결투
아킬레우스의 돌격에 밀린 트로이 군대는 성 안으로 쫓겨온다. 변장한 아폴론이 아킬레우스를 따돌릴 동안, 트로이 군대는 성벽 안으로 도망치지만 헥토르는 트로이의 기둥인 자신이 죽으면 트로이가 함락되고 아내 안드로마케와 아들 아스티아낙스가 어떻게 될 지를 알고 있었음에도 명예롭게 그리고 반쯤은 이쯤하고 군대를 물리자던 조언을 물리치고 공격을 계속하던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트로이군이 패배를 겪고 많은 전사자가 나온 것에 대한 죄책감에 성문 앞에서 아킬레우스를 기다렸다.
제우스는 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헥토르를 죽이는 것을 망설이고 있었고, '''운명을 바꿔서라도''' 헥토르와 아킬레우스의 결투의 승자를 헥토르로 바꿀 마음까지 있었다. 하지만 운명의 세 여신인 모이라이가 결정한 운명을 맘대로 바꾸지 말라고 아테나가 극구 반대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헥토르의 운명에서 손을 놓는다.
프리아모스 왕과 헤카베 왕비는 헥토르에게 제발 성 안으로 돌아오라고 애걸하는데, 헥토르는 고뇌하면서도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아킬레우스가 나타나자 두려움을 느끼고 도주하는데 이는 아폴론이 헥토르를 살리기 위해 공포심을 심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둘이 추격전을 벌이는 와중, 아테나가 헥토르의 동생, 데이포보스로 변해 나타난다. 이에 헥토르는 용기를 얻고 함께 맞서 싸우자고 한다. 싸우기 전에,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에게 승자가 누구든 상대를 존중해 시신을 보내주자고 제안했다. 아킬레우스는 이를 씹고 헥토르에게 창을 던졌다. 헥토르는 재빠르게 아킬레우스의 투창을 피하고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네가 내 등을 찌르는 일은 없다!'''라고 외쳤다.[16] 하지만 아테나는 빗나간 창을 헥토르 몰래, 아킬레우스에게 돌려주었다. 이번에는 헥토르가 창을 던지지만 그의 투창은 아킬레우스의 방패에 맞고 튕겨나갔다.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의 방패를 뚫지 못한 것을 분해하며, 데이포보스에게 다음 투창을 달라고 하나 아테나의 변신이었던 데이포보스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헥토르는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칼을 뽑았다. 칼을 든 헥토르와 창을 든 아킬레우스가 서로에게 돌진했고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를 죽이고 입은 그의 갑옷이 헥토르의 몸에 맞지 않아 목에 생긴 틈을 리치가 긴 창으로 꿰뚫려버린다. 창이 기도 옆을 비껴나간 탓에 치명상을 입은 상태로도 말은 할 수 있어서 자신의 시체만은 모욕하지 말라고 부탁했지만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모욕하며 거부한다. 이에 헥토르는 이렇게 대답하고 숨을 거둔다. [17]
(아킬레우스는 이에 대해 "나도 내 운명은 안다." 며 헥토르의 유언에 동의하는 뉘앙스의 답변을 한다)'''이제야 그대를 제대로 알 것 같군. 그대의 운명도, 또한 그대를 쓰러뜨릴 자는 역시 내가 아니였던 것도 말이야. 그대의 가슴 안에 있는 마음은 진정 강철, 그 자체군. 하지만 나를 기억하는 신들이 그대에게 분노를 돌릴 것이다. 그리고 그대가 아무리 용감하더라도 그 날, 스카이아 성문에서 아폴론의 도움을 받은 파리스가 너를 죽일 것이다.'''
그리스 군인들은 그의 시체를 창으로 찔러가며 조롱했으며 이후 아킬레우스는 전차로 그의 시신을 끌고 다니는 만행을 저지른다. 헥토르의 부모 프리아모스 왕과 헤카베 왕비는 이 꼴을 보고 자신들의 머리를 뽑으며 통곡했고 트로이 인들의 절규에 허겁지겁 성벽으로 올라간 안드로마케는 남편의 시체가 끌려다니는 것을 보고 기절한다. 하지만 아프로디테가 헥토르의 시체를 보호했기 때문에 전차에 끌려다니면서도 훼손되지 않았고 아킬레우스가 시체를 개에게 먹이로 주려 했지만 신들이 헥토르의 시체를 보호해서 개들은 헥토르의 시체에 다가가지 못했다.
프리아모스 왕이 보물을 들고 자비를 빌며 그리스 진영을 방문하고 사전에 제우스의 명을 받은 아킬레우스가 자식을 죽인 원수에게 비는 왕의 불행한 모습[18] 을 보고 분노를 풀고 시신을 돌려준다. 헥토르의 시신을 가지고 트로이로 귀환한 프리아모스 왕은 헥토르의 장례식을 치룬다. 헬레네는 유일하게 자신에게 친절했고 모욕으로부터 지켜준 헥토르의 죽음을 모든 트로이 인들과 함께 9일을 애도하였다.
일리아스 내에서도 헥토르가 죽으면 트로이가 무너진다는 식으로 묘사하며 헥토르의 장례식을 치르는 것으로 일리아스는 '''끝난다'''. 유명한 아킬레우스의 죽음이나 트로이의 목마 같은 것은 일리아스가 아닌 다른 이야기에서 전해지는 것이다. 서사시환 항목 참고.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에서는 일리아스와 다르게 최후가 묘사됐다.
아킬레우스와의 전투에서 오히려 아킬레우스의 검을 못 쓰게 만들고 잠시 쉬었다가 나중에 다시 싸우자고 말할 정도의 여유까지 보였다. 아킬레우스가 물러난 후, 헥토르는 화려한 갑옷 차림의 그리스 장수를 발견하고 그를 쫓아 쓰러뜨렸다.
한편,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기습하기 위해 부하들을 불러들이고 헥토르에게 향한다. 마침 헥토르는 노획한 갑옷을 입기 위해, 무장을 해제한 무방비 상태에다 혼자였다. 아킬레우스는 부하들과 함께 헥토르를 죽이고 자신이 헥토르를 쓰러뜨렸다고 외친다. 여기서는 헥토르의 방심과 아킬레우스의 비열함이 두드러져 나온다.
2.3. 《아이네이스》
트로이가 함락되던 밤, 사촌 아이네이아스의 꿈에 나타나서 트로이가 함락되었으니 서둘러서 도시에서 탈출하라고 경고한다. 덕분에 아이네이아스는 가족들과 함께 트로이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다만 헥토르의 여동생이자 아이네이아스의 아내인 크레우사는 탈출하지 못하고 사망했다.딸에게 신들과 인간들의 아버지는 미소 짓고
폭풍 치던 하늘을 고요히 가라앉히던 얼굴로
딸의 입술에 입 맞추며, 뒤미처 이렇게 말했다.
네 자손의 운명은 여전히그대로니, 약속했던 도시와 라비늄의 성벽을
네가 보리라. 하늘 별자리에 용맹한 에네앗을
네가 높이 세우리라. 내 뜻은 바뀌지 않았노라.
네 아이는 ―근심이 네 속을 끓이니 말해 주련다.
운명의 서책을 펼쳐 더 멀리까지 열어 보겠다.―
이탈랴에서 큰 전쟁을 치르고 거친 족속들을
제압하고 백성에게 도리와 도시를 세우리라.
루틸리의 정복으로 겨울 숙영이 세 번 지나면
셋째 여름이 라티움을 다스리는 그를 보리라.
또 율루스가 이제 아스칸으로 이름 불리는데
―율루스는 일리온이 건재할 적 이름이더라―
그는 달이 서른 번의 커다란 운행을 마치도록
왕권을 행사하리니, 터전을 라비늄에서 옮겨
알바롱가에 강력한 힘으로 강국을 세우리라.
'''여기서 이제 삼백 년을 채워 헥토르의 혈통이'''
'''통치한 맡에 이내 신을 모시는 왕녀 일리아가'''
'''마르스에게 잉태하여 쌍둥이를 출산하리라.'''
이어 키워 준 늑대의 누런 털가죽을 좋아하는
로물룻은 무리를 모아 마르스 성벽을 세우니
이들을 불러 로마인이라 제 이름을 붙이리라.」
3. 평가
호메로스에게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는 비중이 약간 다르다. 아킬레우스는 이전의 서사시에 있던 모습 그대로 가져왔지만, 헥토르는 자기 손으로 다시 만들었다. 게다가 약간 덧칠을 했다. 어떤 의미에서 '''헥토르는 호메로스가 선택한 인물이다'''. 특히 모범적인 인간을 고를 때는 다른 누구도 아닌, 헥토르를 고른다. 알다시피 《일리아스》는 트로이아 전쟁에 대한 이야기이고, 트로이아 전쟁에서 이긴 쪽은 그리스인이었고 호메로스도 그리스인이다. 호메로스가 제아무리 공정하려고 해도, 그리스 민족주의를 통째로 버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호메로스는 제일 좋은 것을 적장에게 주었다'''.
- 앙드레 보나르의 《그리스인 이야기》
3.1. 시대적 변화
3.1.1. 고대 로마
고대 로마 시대에는 그야말로 최고의 위상을 가진 영웅이었다. 이는 로마인들이 트로이의 후예라고 칭하는 이유도 있는데, 로마 건국 서사시인 아이네이스에서 아이네이아스는 헥토르와 6촌 친척지간이다. 또 헥토르의 여동생 크레우사와 결혼하였는데 낳은 자식[20] 이 율리우스 씨족의 조상으로 전해지는 것으로 봐도 로마에서 헥토르의 위상을 알 수 있다. 그도 그럴것이 로마인들이 이상으로 삼은 영웅은 가문과 시민공동체에 헌신하는 영웅이자, 규율과 기강이 잘 잡힌 군인이었으니, 헥토르가 아킬레우스보다 더 매력적이었을 수밖에 없다.
3.1.2. 중세 기사도 문화
중세 시대에는 다른 쟁쟁한 그리스 영웅들을 제치고 아홉 위인 중 하나로 칭송을 받았다.[21]
욕심, 분노, 우정 등 사적인 감정에 휩쓸려 행동하는 아킬레우스에 비해[22] 헥토르는 국가, 가족과 명예, 규범을 위해 싸우는 훌륭한 무인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이를 높이 평가 받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중세 유럽 서사시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롤랑의 노래에선 '''인류 최초의 기사(First knight) 헥터''' 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그리스 신화에서는 살해당한걸로 나오는 아스티아낙스는 살아남아 프랑크 왕조의 선조가 되었다고 나온다. 리메이크작인 광란의 오를란도에서는 로제로와 브라다만테[23] 를 비롯한 프랑크 왕조의 주요 인물들이 헥토르의 후손으로 나오고 그의 무구가 내분을 일으킬 정도로 가치있게 나오기도 한다. 롤랑의 무기인 뒤랑달도 헥토르의 것으로 묘사된다. 중세에서 얼마나 헥토르가 높게 평가받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는 로마 제국의 시대를 영광으로 여기던 중세의 인식에서도 비롯된다. 독일, 프랑스, 심지어 영국까지도 자신들이 트로이의 후손이라는 슬로건을 걸면서 어떻게든 로마와 엮으려 했기 때문. 심지어 이러한 인식은 제국주의 시대에까지 이어져서 로마와 엮이지 못하면 황제라는 칭호도 쓸 수 없다는 인식이 있었을 정도였다.
단테가 1308년부터 죽은 해인 1321년 사이에 쓴 서사시 《신곡》의 지옥편에서도 등장하는데, 이교도란 것 외에 아무 죄도 없고, 벌도 안받는 림보에 헥토르가 가족들과 함께 있는 반면 아킬레우스는 지옥의 하층에서 고통받고 있다. 게다가 헥토르는 림보에 있는 많은 영혼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인물들이 있는 일곱겹의 벽으로 둘러싸인 성에서 사는 것으로 묘사된다.
3.2. 종합 평가
무력, 전술, 정치, 그리고 인품 등 모든 것이 완벽에 가까웠던 영웅.
프리아모스와 헤카베에게는 최고의 아들, 안드로마케에게는 최고의 남편, 아스티아낙스에게는 최고의 아버지, 그리고 트로이의 모든 이들에게 있어서 수호자이자 최고의 장군이였다. 동생이 스파르타의 왕비를 납치해오고 이로 인해 전쟁이 일어났음에도 트로이 성 내에서 눈칫밥을 먹는 헬레네에게 거의 유일하게 친절하게 대해줬다[24] . 10배가 넘는 규모를 가진 아카이아군을 상대로 전쟁을 거의 혼자서 열세의 병력을 이끌고 10년을 맞서 싸운 거에서 헥토르의 전략적, 전술적 가치를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성문 앞에서 아킬레우스를 홀로 기다렸던 선택은 무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헥토르는 명예를 위해 남은 거지만 트로이란 나라에게 있어서는 둘도 없는 인재였기 때문이다. 아폴론은 헥토르를 살리기 위해 공포심을 심어넣지만 이미 헥토르를 살리기는 늦었고 아테나의 도움을 받아 아킬레우스는 10년간 아카이아군을 괴롭혀왔던 헥토르를 죽인다.
헥토르가 사망했을 때 프리아모스 왕은 다른 아들들을 욕하면서(...) 너희들을 다 죽여서 헥토르가 돌아온다면 기꺼이 그럴 것이라고 할 정도로 분노했다. 잠시 실성한 상태이긴 했지만 프리아모스는 모든 아들들을 합쳐도 헥토르 하나만을 못한다고 평가한 것. 실제로 헥토르의 죽음은 트로이의 멸망과 마찬가지라고 묘사됐고 그의 죽음 이후에 아마존의 여왕 펜테실레이아와 에오스의 아들 멤논이 지원군으로 오지만 헥토르의 공백을 채우기에는 부족했다. 그나마 파리스가 아킬레우스를 암습하여 공백을 어느 정도 메우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역부족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호메로스의 서술로 공인된 트로이 전쟁 최강의 전사 중 하나지만, 은근히 구르는 모습도 많다. 당당하게 먼저 결투를 신청했지만, 아이아스와 결투에서도 밀리는 모습도 보여주고 디오메데스의 투창을 투구에 맞고 후퇴했던 적도 있는 등 아카이아의 장군들을 상대로 고생을 많이 했고 결정적으로 아킬레우스에게 두려움을 느껴서 도망치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었다. 또한 승리에 도취해서 부관 폴리다마스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가 부대가 격파당하는 실책을 저지르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런 점들이 현대에 와서는 더 헥토르가 인간답게 평가받는 요소들이기도 하다.
인품은 훌륭하지만, 그렇다고 착하기만 한 호구는 아니었다. 그리스 신화 영웅 특유의 자부심도 높았고 무엇보다도 파트로클로스처럼 가족과 트로이의 시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위협을 가한 적에게는 가차 없어서 그를 죽이고 시체 쟁탈전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생 트로일로스가 형이 '''적군들에게 너무 자비를 베푼다'''고 불평했던 것이나 살려달라고 비는 적군에게 마무리를 가하지 않았다는 네스토르의 언급을 보면 당시 기준의 그리스 신화 영웅치고는 너무 무른건 맞다.
4. 그 외
- 상술했듯이 중세 시대 수많은 기사들의 귀감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롤랑의 노래에 등장하는 명검 뒤랑달은 광란의 오를란도에 와서는 헥토르가 사용했던 검이란 수식어가 붙어있다. 물론 후세의 창작일 뿐 일리아스를 비롯한 어느 그리스 신화에서도 헥토르가 뒤랑달을 썼다는 말은 없다.
- 일리아스의 등장한 부부들 중 유일하게 제대로 된 부부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6장에서 안드로마케가 계속 헥토르를 뒤돌아보며 울며 돌아가는 것을 계속 지켜보는 것이 후반에 헥토르의 죽음을 더 비극적으로 만든다.
- 단테의 신곡에서는 아킬레우스가 지옥에서 고문당하며 괴로워할 때 림보에 있으니 죽어서 대접은 그래도 나은 편. 로마 이후 사적인 일보다는 공적인 일로 싸우는 영웅이 추앙되어 지위가 많이 향상된 편이다. 그리스 때만 해도 그리스인이 아닌 데다가 사적인 일로 싸우는 영웅이 더 추앙받았고 무엇보다 그리스 인으로 여겨지지 않았기에[25] 헥토르는 별로 인기 있는 편은 아니었다.
- 파리스가 성 안에서 찌질댈 때 헥토르는 군사 지휘하느라 고생하는데 동생에게 단단히 화가 났는지 차라리 파리스가 죽었으면 할 정도로 분노했다. 사실 일리아스에서 헥토르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3권에서 그가 가장 먼저 한 말은 갑옷 자랑하며 나왔다가 메넬라오스를 보고 쫄고 숨은 파리스를 보고 분노해서 타박한 것이다. 아예 트로이인들이 더 용감했다면 파리스를 진작에 죽여버렸을 것이라고 덧붙이기까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