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강
毛宗崗
생몰년도 미상이나, 1632[1] -1709 [2] 로 알려져 있다.
중국 청나라 시대의 소설가. 자는 서시(序始), 호는 자암(子庵).
원나라 말기에서 명나라 초기 사람인 나관중이 쓴 역사소설인 나관중본[3] 삼국지통속연의를 읽기 불편한 점을 고려하여 새롭게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의 삼국지연의는 주로 모종강이 새롭게 정리하여 쓴 판본(모종강본), 혹은 모종강본에 기초한 것이며[4] 가정본은 마이너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사람 이름으로 된 문서인데 삼국지연의 이야기만 적혀있고, 모종강 개인에 대한 정보는 나관중 이상으로 부족한 문서다. 이 점은 중국어 위키백과조차도 동일.
모종강은 아버지인 모륜과 함께 가정본의 삼국지연의에서 책을 읽기 불편한 부분을 과감히 삭제하고 대신 새로운 부분을 집어넣었다. 이렇게 가독성을 높인 것까지는 좋았는데 비교적 중립적이던 가정본의 내용을 극렬 조조까 유비빠 성향으로 바꾼 것이 흠이라면 흠. 사실 모종강의 인지도가 떨어져서 나관중이 대신 욕을 먹는 면도 있다. 나관중을 보고 저도의 촉빠라고 하지만 사실 가정본에는 은근히 촉한의 인물들을 까는 부분들도 군데군데 있는데 모종강본은 그런 부분이 대부분 삭제되어있다.
다만 무조건적으로 조조를 까기만 하는 건 아니어서 조조가 여백사를 죽이고 내가 천하를 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버리게 하지는 않겠다"고 한 부분에 넣은 주석을 보면 조조가 소인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말과 행동이 직설적인 조조가 위선자들보다 낫다'''면서 '''이 점이 조조가 남들보다 뛰어난 점'''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조조를 까긴 까되 '''대단한 악인''' 정도로 평가했다고도 볼수 있다.
또한 모종강이 넣은 평가나 코멘트 등이 읽는데 새로운 맛을 더하기도 한다. 예로 독우가 장비에게 구타당하고 유비에게 살려달라고 할때 나관중 판은 본래 유비가 인자하여 이를 보다못해 장비를 멈추게 했다고 하지만, 모종강 본에는 여기서 '''내가 공적을 조작하고[5] 황제의 명을 사칭했는데''' 어떻게 도와줄 수 있겠냐고 하는 협평이 추가되어 있어 소소한 웃음을 준다.[6] 더불어 촉빠라지만 관우가 손권의 정략결혼안을 거부하면서 호랑이의 아들이 어찌 개의 딸과 결혼할수 있겠냐는 부분에서 모종강은 '''그럼 네 형은 개새끼와 결혼한거냐'''면서 까기도 했다.
관우의 죽음 부분 등에선 나관중보다 더 현실성이 있는 묘사를 하거나, 헌목황후 조씨의 묘사처럼 오히려 나관중보다 고증에 맞는 묘사를 하기도 한다.[7]
즉, 간단히 말하자면 '''연의의 표본이 모종강본이 된 건 다 이유가 있다.''' 기존에 돌던 판본 이상으로 모종강본의 내용 및 묘사가 당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가정본의 관련 내용은 아래와 같다.
관우는 아들 관평 등과 더불어 맥성 북문으로 탈출한다. 이르는 곳마다 오나라 복병들과 맞닥뜨리면서 결석(決石) 땅에 도달한다. 때는 5경에 가까운 시각인데도 순간 함성소리가 들리면서 다시 복병들이 공격해 왔다. 돌아보니 뒤쪽에는 주연과 반장의 정병이 기습한다. 관우는 반장의 부하인 마충과 맞닥뜨렸는데, 그 순간 하늘에서 사람의 음성이 들린다.
한편 모종강본에서는 관우의 충성심을 강조하고 관우가 손권을 질타하는 장면을 넣기 위해 배송지의 의견[8] 을 무시하고 관우가 붙잡혀서 참수되는 내용으로 전개하였다.
전체적인 내용은 비슷하지만 나관중본에서는 은근히 촉한의 인물들을 까는 것 같은 부분을 생략[9] . 덕분에 "위기에 처한 주인공들이 힘겹게 사지에서 살아나온다"는 느낌에 숭고하고 비장한 맛이 강해졌다.
가정본에서 누군가가 첨가한 주석에서는 제갈량이 계획적으로 위연도 사마의 부자와 함께 죽이려고 했다고 언급된다. 당연히 모종강본은 작품으로서의 권위가 있을리 만무한 주석 따위는 가차없이 날려버렸다.
가정본에서 관우가 안량을 죽이는 대목에 붙은 주석에는 유비가 안량에게 관우의 생김새를 설명하며 관우를 만나면 자신이 원소 측에 있다고 알려달라고 하는데 이 때문에 안량은 전장에서 관우를 보고 그에게 말을 걸려다가 관우가 탄 적토마가 너무 빨라서 말하기도 전에 살해당하는 걸로 나온다. 때문에 안량방심설은 가정본 본문의 내용도 아니고 가정본 편찬 과정에서 누군가가 자기 의견을 덧붙여 써놓은 주석에 불과하다. 나관중의 원본의 내용으로도 볼 수 없는 만큼 모종강본에서는 가뿐히 무시해버렸다. 모종강본의 안량의 최후 장면은 가정본 본문 내용을 그대로 옮겨와 차이가 없다.
나관중본에서는 헌목황후가 조비와 편을 먹고 헌제를 핍박하는 악인으로 그려지는데[10] , 모종강본에서는 정사에 가까운 묘사로 회귀시켜, 헌제를 지지하고 한실을 지키고자 하는 선인으로 그렸다.
생몰년도 미상이나, 1632[1] -1709 [2] 로 알려져 있다.
1. 개요
중국 청나라 시대의 소설가. 자는 서시(序始), 호는 자암(子庵).
원나라 말기에서 명나라 초기 사람인 나관중이 쓴 역사소설인 나관중본[3] 삼국지통속연의를 읽기 불편한 점을 고려하여 새롭게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의 삼국지연의는 주로 모종강이 새롭게 정리하여 쓴 판본(모종강본), 혹은 모종강본에 기초한 것이며[4] 가정본은 마이너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사람 이름으로 된 문서인데 삼국지연의 이야기만 적혀있고, 모종강 개인에 대한 정보는 나관중 이상으로 부족한 문서다. 이 점은 중국어 위키백과조차도 동일.
2. 삼국지연의
2.1. 가정본과 모종강본의 차이점
모종강은 아버지인 모륜과 함께 가정본의 삼국지연의에서 책을 읽기 불편한 부분을 과감히 삭제하고 대신 새로운 부분을 집어넣었다. 이렇게 가독성을 높인 것까지는 좋았는데 비교적 중립적이던 가정본의 내용을 극렬 조조까 유비빠 성향으로 바꾼 것이 흠이라면 흠. 사실 모종강의 인지도가 떨어져서 나관중이 대신 욕을 먹는 면도 있다. 나관중을 보고 저도의 촉빠라고 하지만 사실 가정본에는 은근히 촉한의 인물들을 까는 부분들도 군데군데 있는데 모종강본은 그런 부분이 대부분 삭제되어있다.
다만 무조건적으로 조조를 까기만 하는 건 아니어서 조조가 여백사를 죽이고 내가 천하를 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버리게 하지는 않겠다"고 한 부분에 넣은 주석을 보면 조조가 소인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말과 행동이 직설적인 조조가 위선자들보다 낫다'''면서 '''이 점이 조조가 남들보다 뛰어난 점'''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조조를 까긴 까되 '''대단한 악인''' 정도로 평가했다고도 볼수 있다.
또한 모종강이 넣은 평가나 코멘트 등이 읽는데 새로운 맛을 더하기도 한다. 예로 독우가 장비에게 구타당하고 유비에게 살려달라고 할때 나관중 판은 본래 유비가 인자하여 이를 보다못해 장비를 멈추게 했다고 하지만, 모종강 본에는 여기서 '''내가 공적을 조작하고[5] 황제의 명을 사칭했는데''' 어떻게 도와줄 수 있겠냐고 하는 협평이 추가되어 있어 소소한 웃음을 준다.[6] 더불어 촉빠라지만 관우가 손권의 정략결혼안을 거부하면서 호랑이의 아들이 어찌 개의 딸과 결혼할수 있겠냐는 부분에서 모종강은 '''그럼 네 형은 개새끼와 결혼한거냐'''면서 까기도 했다.
관우의 죽음 부분 등에선 나관중보다 더 현실성이 있는 묘사를 하거나, 헌목황후 조씨의 묘사처럼 오히려 나관중보다 고증에 맞는 묘사를 하기도 한다.[7]
즉, 간단히 말하자면 '''연의의 표본이 모종강본이 된 건 다 이유가 있다.''' 기존에 돌던 판본 이상으로 모종강본의 내용 및 묘사가 당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2.1.1. 관우의 죽음
가정본의 관련 내용은 아래와 같다.
관우는 아들 관평 등과 더불어 맥성 북문으로 탈출한다. 이르는 곳마다 오나라 복병들과 맞닥뜨리면서 결석(決石) 땅에 도달한다. 때는 5경에 가까운 시각인데도 순간 함성소리가 들리면서 다시 복병들이 공격해 왔다. 돌아보니 뒤쪽에는 주연과 반장의 정병이 기습한다. 관우는 반장의 부하인 마충과 맞닥뜨렸는데, 그 순간 하늘에서 사람의 음성이 들린다.
관우는 그 말을 듣자 갑자기 깨닫는다. 마침내 싸움을 하지 않고 무기와 말을 버린 채 아들 관평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 신이 되었다.'''“운장은 인간 세상에 너무 오래 머물렀다. 옥황상제의 조칙이 있으니 범부와 승부를 겨루지 말라.”'''
한편 모종강본에서는 관우의 충성심을 강조하고 관우가 손권을 질타하는 장면을 넣기 위해 배송지의 의견[8] 을 무시하고 관우가 붙잡혀서 참수되는 내용으로 전개하였다.
2.1.2. 장판파
전체적인 내용은 비슷하지만 나관중본에서는 은근히 촉한의 인물들을 까는 것 같은 부분을 생략[9] . 덕분에 "위기에 처한 주인공들이 힘겹게 사지에서 살아나온다"는 느낌에 숭고하고 비장한 맛이 강해졌다.
2.1.3. 상방곡
가정본에서 누군가가 첨가한 주석에서는 제갈량이 계획적으로 위연도 사마의 부자와 함께 죽이려고 했다고 언급된다. 당연히 모종강본은 작품으로서의 권위가 있을리 만무한 주석 따위는 가차없이 날려버렸다.
2.1.4. 안량의 죽음
가정본에서 관우가 안량을 죽이는 대목에 붙은 주석에는 유비가 안량에게 관우의 생김새를 설명하며 관우를 만나면 자신이 원소 측에 있다고 알려달라고 하는데 이 때문에 안량은 전장에서 관우를 보고 그에게 말을 걸려다가 관우가 탄 적토마가 너무 빨라서 말하기도 전에 살해당하는 걸로 나온다. 때문에 안량방심설은 가정본 본문의 내용도 아니고 가정본 편찬 과정에서 누군가가 자기 의견을 덧붙여 써놓은 주석에 불과하다. 나관중의 원본의 내용으로도 볼 수 없는 만큼 모종강본에서는 가뿐히 무시해버렸다. 모종강본의 안량의 최후 장면은 가정본 본문 내용을 그대로 옮겨와 차이가 없다.
2.1.5. 헌목황후 조씨
나관중본에서는 헌목황후가 조비와 편을 먹고 헌제를 핍박하는 악인으로 그려지는데[10] , 모종강본에서는 정사에 가까운 묘사로 회귀시켜, 헌제를 지지하고 한실을 지키고자 하는 선인으로 그렸다.
[1] 中國教育史散論, 華中科技大學出版社 [2] 彰化師大國文學誌, 遠流出版公司 [3] 엄밀히 말해서 가정연간에 나온 판본(이하 가정본으로 칭함)으로 나관중 원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나마 원본에 가깝다고 전해진다.[4] 내용에 대한 별다른 수정은 없고 협평 부분만 삭제.[5] 독우가 유비를 모함하려 할 때 누명씌운 죄목이 공적을 조작했다는 것이었다.[6] 유비가 비꼰 것으로 바꿔놓았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협평은 전지적 작가 시점의 농담이나 논평이다. 엔하계 위키의 취소선 및 각주 내용이라 보면 거의 정확하다(...)[7] 헌목황후 조씨는 조조의 딸이자 헌제의 두 번째 황후로, 효헌황후 복씨가 시해당한 뒤 황후에 올랐다. 하지만 본인의 친정 사람들과 달리 후한 황실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찬탈에 마지막까지 반발했으며, 그 자신도 끝내 후한의 황후이기를 택해 사후의 장례식도 후한의 예법대로 치러질 정도였다. 그러나 나관중본에서는 되려 아버지, 오라비와 편을 먹고 헌제를 감시, 핍박하는 악인으로 그려진다. 모종강본에서 도로 정사에 가까운 모습으로 회귀하였다.[8] 관우가 죽은 곳은 주연, 반장과 최후의 전투를 펼친 임저 바로 그 장소이기에 관우는 손권이 있는곳까지 끌려온 일도 없었고 이점 때문에 배송지는 손권이 관우의 생사를 결정할 틈이 없었다고 지적하였다.[9] 예로 나관중본에선 병사들이 장비를 따라간건 '''맞아죽을까봐''' 마지못해 따라간 것이라고 나오며, 조운이 미부인을 구한 과정에서 다급하게 서두른 것을 '''핍박'''한 것으로 해석해서 조운은 충신의 사당에 들어갈 자격을 잃었다고 나온다(삼국지가 울고있네 참조).[10] 실상 헌목황후는 조비의 누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선양 요구에 강하게 반발했고, 마지막까지 후한 황실을 지키고 스스로도 후한의 황후로 남기를 택한 사람이었다. 나관중본의 묘사는 고인 모독 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