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런 스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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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바이런 안톤 스캇
(Byron Anton Scott)
'''생년월일'''
1961년 3월 28일
'''국적'''
미국
'''출신지'''
유타 주 오그던
'''출신학교'''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신장'''
191cm (6' 3")
'''체중'''
88kg (195 Ibs)
'''포지션'''
슈팅 가드
'''드래프트'''
1983년 1라운드 4순위
샌디에이고 클리퍼스 지명
'''역대 소속팀'''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1983-1993)
인디애나 페이서스 (1993-1995)
밴쿠버 그리즐리스 (1995-1996)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1996-1997)
파나시나이코스BC (1997-1998)
'''역대 지도자'''
새크라멘토 킹스 어시스턴트 코치 (1998-2000)
뉴저지 네츠 감독 (2000-2004)
뉴올리언스 호네츠 감독 (2004-2009)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감독 (2010-2013)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감독 (2014-2016)
'''역대 등번호'''
4번
'''수상내역'''
'''현역 시절'''
NBA 챔피언 3회 (1985, 1987, 1988)
NBA All-Rookie First Team (1984)
Greek Basket League championship (1998)
First-team All-Pac-10 (1983)
Pac-10 Freshman of the Year (1980)
'''지도자 시절'''
NBA 감독상 (2008)
NBA 올스타 감독 2회 (200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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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1987'''
'''1988'''
'''2008년 NBA 올해의 감독상'''
샘 미첼

'''바이런 스캇'''

마이크 브라운
1. 개요
2. 현역 시절
3. 지도자 시절


1. 개요


前 NBA 농구선수. 현역 시절에는 쇼타임 레이커스의 준수한 롤플레이어였으나, 지도자가 된 이후에는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성적도 다 망쳐가지고 팬들에게 무지막지하게 욕만 먹은 농구인이었다.[1]
바이런 스캇의 명언으로 코비 브라이언트에겐 많은 슛을 던질 특권이 있다, 한 경기당 3점슛 시도는 15~20 개가 적당하다 등이 있다. 선수시절의 성공과는 정 반대의 꼰대질을 감독이 되면서 해버린 특이한 멘탈리티의 소유자. 전 워싱턴 위저즈 감독 에디 조던처럼 프린스턴 모션 오펜스를 구사한다.

2. 현역 시절


애리조나 주립대학 시절 네드 울크와 밥 웨인하워 감독에게 가르침을 받고 1983년 NBA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4순위로 샌디에이고 클리퍼스에 지명되었지만, 놈 닉슨과 교환권을 얻어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로 트레이드 되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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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루키 시즌이었던 1983-84시즌부터 선발로 출전해 평균 10.6득점을 기록하면서 올 루키 퍼스트 팀에 선출되었다. 2년차인 1984-85시즌에는 라이벌인 보스턴 셀틱스를 누르고 처음으로 우승반지을 얻으며 슈터로서의 능력을 발휘해 3점슛 성공률 43.4%로 1위에 올랐고, 평균 15득점 이상을 넣은 유력한 득점 기록원으로 성장했다. 그 후 2년 뒤인 1986-87에도 보스턴을 상대로 또 한번 우승을 얻게 되었다.
1987-88시즌에는 커리어 처음이자 유일하게 평균 21.7득점을 넣으며 20득점을 넘었는데, 제임스 워디나 매직 존슨 등을 누르며 팀 가운데에서 최고 성적을 기록하였고 결승에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를 만나 백투백 챔피언에 성공했다. 그러나 1988-89시즌 파이널 1차전을 앞두고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 전력 손실이 엄청나게 커졌고, 공격 3옵션을 잃었을 뿐 아니라, 아이재아 토마스조 듀마스를 수비해야 할 빠르고 작은 스타팅 가드가 없어져 버리면서 시리즈 내내 매직에게 부하가 크게 걸릴 수 밖에 없었다. 준우승 이후 카림이 은퇴했어도 Big 3 멤버인 워디, 매직에 이어 3번째로 득점을 기록하며 리그 중에서도 가장 강호팀으로 꼽혔으나, 1989-90시즌 플레이오프 준결승에서는 피닉스 선즈에게, 1990-91시즌 NBA 파이널에서는 그 분이 이끄는 시카고 불스에게 패하며 우승에는 실패했다. 오프 시즌에는 매직 존슨이 HIV 양성반응 판정이 나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선수생활을 마쳤고, 팀도 암흑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황금기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레이커스 시절 당시를 정리해 보면 카림 압둘 자바, 매직 존슨, 제임스 워디 등 황금기 시절 화려한 속공을 중심으로 한 닥공 어태커들의 두를 받치고, 카림의 리바운드를 하고 난 뒤에 매직이 패스한 공을 3점슛으로 넣거나 또는 덩크를 꽂으며 팀의 중요한 득점 패턴의 하나가 되었다. 우수한 디펜더로서 매직 존슨의 매치업을 한결 편하게 해준 1번 전문 수비로 팀의 활약에 공헌하였다.
이후 스캇은 1993-94시즌부터 인디애나 페이서스로 옮기게 되었는데, 우승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역할을 요구하며 레지 밀러의 교체 선수로 활동했다. 1995-96시즌에는 창단 멤버로 밴쿠버 그리즐리스로 이적하였지만, 창설 이후 플레이오프에 들어서지도 못하고 불과 1년만에 떠나 3시즌만에 친정팀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로 복귀하였다. 당시 스캇이 없었던 사이 올랜도 매직에서 센터 샤킬 오닐, 고졸 신인이었던 코비 브라이언트을 얻으며 팀 재건에 성공하였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칼 말론, 존 스탁턴 등이 이끈 유타 재즈에게 1-4로 완전히 제압을 당해 탈락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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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리스로 건너가 명문 팀 파나티나이코스 BC와 계약을 체결해 플레이오프 결승전에서 PAOK 테살로니키[3]를 만나 5차전에서 23득점을 넣어 팀을 우승으로 이끔과 동시에 파이널 MVP를 수상한 뒤, 선수생활을 마감하였다.

3. 지도자 시절


1998년부터 2시즌 동안 새크라멘토 킹스에서 코치를 맡았으며 슈팅 전문과 3점슛 성공률 향상에도 공헌하였지만, 그저 그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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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뉴저지 네츠 감독에 취임하였는데 첫 시즌부터 많은 선수들이 부상에 시달리며 26승 56패라는 최악의 기록을 세웠지만 오프시즌에 스테판 마버리제이슨 키드를 맞트레이드 시킨 2001-02시즌에는 프린스턴 모션 오펜스를 성공적으로 이용해 작년 시즌과는 달리 52승 30패를 기록해 동부 컨퍼런스 1위를 확정지으며 플레이오프에서 인디애나, 샬럿, 보스턴을 잡고 동부 컨퍼런스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이후 결승전에서는 한때 친정팀이기도 한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 맞붙었으나, 샤크-코비 콤비의 활약과 트라이앵글 오펜스에 막혀 전경기 완패를 당하며 창단 첫 우승을 놓치고 말았다. 이후 2002-03시즌에도 결승전에 진출했으나, 샌안토니오 스퍼스에게 패해 또 한번 타이틀 획득에 실패했다.
2003-04시즌에는 초반부터 안정감이 없었고, 제이슨 키드와의 불화로 사이가 좋지 않았고 작전 타임중에도 싸우기 직전까지 지시한 등 키드 본인이 거부하며 관계가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시즌 중반에 코치인 로렌스 프랭크에게 감독직을 넘긴 뒤 사임했다.
2004-05시즌부터 뉴올리언스 호네츠 감독에 취임하였다. 당시 1년차는 구단이 침체기를 겪고 있었으며, 다음해인 2005-06시즌을 앞두고 NBA 드래프트에서 크리스 폴을 지명하면서 상황은 호전되었다. 2년차에 들어선 2006-07시즌에는 한때 선수 시절 그리스 파나시나이코스BC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팀의 우승에도 공헌했던 세르비아 출신의 페자 스토야코비치를 영입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을 향해 대폭 보강시켰지만, 스토야코비치가 부상으로 시즌 대부분을 결장했고, 다른 부상자들도 속출하면서 승률 5%를 기록함과 동시에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2007-08시즌에 완벽하게 태세를 갖춘 지도력으로 56승 26패를 기록해 팀 창단 이후 처음으로 사우스 웨스턴 디비전 우승을 하는데 기여했다. 비록 플레이오프 준결승전에서 샌안토니오에게 패했지만, 이와 같은 활약을 인정받아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다.
2008-09시즌에는 49승 33패를 기록해 서부 컨퍼런스 7위로 아슬아슬하게 플레이오프 순위권에 들어와 덴버 너기츠와 맞붙었으나 1라운드에서 곧바로 탈락했다. 특히 문제의 경기는 4차전에서 121-63으로 대패하면서 포스트 시즌 가운데 최악의 사태를 만들어 놓았다.
2009-10시즌에는 3승 6패를 기록하면서 팬들에게 까임과 동시에 시즌 초반에 감독직에서 물러나 ESPN에서 잠시 해설진을 맡았다가 2010-11시즌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감독에 취임했다. 당시 르브론 제임스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해 버리면서 팀의 재건에 힘을 쏟아 내었으나 3년동안 플레이오프 순위권에 들어오지 못하고 결국 사임했다.
2013-14시즌에는 스펙트럼 스포츠넷의 전신인 타임 워너 케이블 스포츠넷에서 친정팀 레이커스의 분석가를 맡았으며 이후, 2014-15시즌부터 그 팀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유명한 선수는 지도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성적을 완전히 망치며 팬들에게 무지막지하게 까였으며 2015-16시즌을 끝으로 사임했다.
2017년 8월 6일에는 ESPN에서 해설자를 맡게 되었는데, 사실상 지도자 생활을 완전히 접어 버렸다고 한다.

[1] 특히 클리블랜드와 레이커스에서 심했다.[2] 알려진 대로 이는 놈 닉슨과 매직 존슨의 불화로 발생한 트레이드이다.[3] 당시 새크라멘토 킹스의 레전드인 페자 스토야코비치가 뛰었던 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