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 NBA 파이널
1. 소개
1991년에 펼쳐진 NBA 파이널. NBA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기념비적인 결승 시리즈로, 80년대 NBA를 상징하는 'Old MJ' 매직 존슨과 당시 절정의 인기와 기량을 누리던 'New MJ' 마이클 조던의 맞대결로 초유의 관심을 모았다.
2. 일정
- 1차전 - 6월 2일 : 시카고 스타디움, 시카고
- 2차전 - 6월 5일 : 시카고 스타디움, 시카고
- 3차전 - 6월 7일 : 그레이트 웨스턴 포럼, 캘리포니아
- 4차전 - 6월 9일 : 그레이트 웨스턴 포럼, 캘리포니아
- 5차전 - 6월 12일 : 그레이트 웨스턴 포럼, 캘리포니아
3. 진출팀
3.1. 동부 컨퍼런스 : 시카고 불스
마이클 조던이 불스에서 맞이하는 7번째 시즌이자, 창단 25년이 되는 해였다. 이 해에도 마이클 조던의 기량을 무지막지해서 5년 연속 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는 한편 본인의 커리어 두번째 시즌 MVP를 수상한다. 하지만 기존까지와 달리 조던의, 조던에 의한, 조던을 위한 철저한 원맨팀은 아니었다.[1] 스카티 피펜, 호레이스 그랜트가 팀의 2,3 옵션으로 부쩍 성장해주면서 조던의 뒤를 든든히 뒷받쳐주었고, 필 잭슨 감독과 텍스 윈터 코치가 부임하면서 도입한 트라이앵글 오펜스가 뿌리를 내리면서 불스는 이전보다 한단계 더 팀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팀 창단 후 최고 성적인 61승[2] 을 기록하면서 동부 컨퍼런스 1번 시드를 차지했다.
플레이오프에서도 거칠것이 없었던 불스는 1라운드에서 패트릭 유잉이 이끄는 뉴욕 닉스, 2라운드에서 찰스 바클리가 이끄는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를 각각 3-0, 4-1로 가볍게 제치고 컨퍼런스 파이널에 올랐다. 컨퍼런스 파이널 상대는 지난 3년간 번번히[3] 조던의 발목을 잡았던 배드 보이즈의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하지만 이미 에이스 아이재아 토마스와 빌 레임비어가 이제 서른줄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기량히 쇠퇴하기 시작했고 그 외 팀원들도 3년 연속 파이널 진출에 따른 신체적 마일리지가 쌓여 부상으로 골골대던 피스톤스는 본격적으로 전성기의 출발을 맞이한 불스에게 적수가 되지 못했고, 4-0으로 컨퍼런스 파이널 시리즈를 스윕하면서 불스는 드디어 창단 후 처음으로 고대하던 파이널에 진출하게 된다.
3.2. 서부 컨퍼런스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1989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게 당한 충격적인 4-0 챔피언전 패배 이후, 팻 라일리가 지휘한 소위 쇼타임 레이커스는 빠르게 해체되어갔다. 1990년 매직 존슨의 정규리그 MVP 수상과 63승 19패라는 준수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서 피닉스 선즈에게 충격적인 업셋을 당하자 선수들에게 한계를 뛰어넘을 것을 요구하면서 몰아붙이는 팻 라일리의 지도 스타일에 대한 반발의 심리가 선수단 사이에서 터져나왔고 결국 라일리는 팀을 떠났다.[4]
팻 라일리의 후임자로 지명된 밀워키 벅스의 전직 코치 마이크 던리비는 화려한 속공과 개인기로 인기를 끌었던 라일리의 쇼타임 레이커스를 지공 위주의 팀으로 재편하였고, 이러한 큰 폭의 스타일 변화에도 불구하고 1990-1991 시즌 레이커스는 58승 24패를 기록하면서 서부 컨퍼런스 3위의 호성적을 기록했다.[5] 이 기세는 플레이오프에서도 이어져서 1라운드에서 조던의 드래프트 동기인 하킴 올라주원이 이끄는 휴스턴 로키츠 / 2라운드에서 Run TMC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 컨퍼런스 파이널에서는 컨퍼런스 1번 시드였던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를 시리즈 스코어 4-2로 업셋하고 2년만에 파이널에 진출했다.
4. 전개
4.1. 1차전
MJ32와 MJ23의 플레이오프 첫 맞대결. 도전자의 입장이었던 마이클 조던은 1쿼터에만 15득점을 퍼부으면서 기세를 올렸다. 반면 디펜딩 챔피언의 입장이었던 매직은 야투에 난조를 보였고, 그 대신 포인트 가드로서의 역할에 충실해 리딩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매직 대신 그 패스를 받은 샘 퍼킨스와 제임스 워디가 각각 골밑 득점을 기록하면서 레이커스의 숨통을 틔워주었고, 경기는 시종일관 팽팽하게 접전으로 전개된다.
2,3쿼터 도합 8점을 기록하면서 다소 잠잠한 모습을 보여주나 싶었던 마이클 조던은 클러치 타임이었던 4쿼터에 다시 13점을 기록하면서 대폭발을 하였고 스카티 피펜의 자유투 득점까지 합쳐져서 4쿼터 종료 20초를 남기고 불스가 91 대 89, 2점차 리드를 잡는다. 하지만 경기 종료 14초를 앞두고 퍼킨스가 다시 재역전 3점슛을 성공시키면서 경기는 다시 92 대 91로 레이커스의 리드를 잡게 된다. 궁지에 몰린 불스가 내세운 카드는 모두가 아는 조던 GO. 하지만 조던의 마지막 슛은 림을 외면했고, 바이런 스캇이 리바운드를 잡아낸뒤 불스의 파울 작전을 통해 얻은 자유투를 하나 성공시키면서 93 대 91로 레이커스가 2점차로 승리, 기선을 제압하게 된다.
레이커스에서는 매직 존슨이 아투 4개를 던지는데 던질만큼 고전했지만 어시스트와 리바운드 단속에 집중해 트리플 더블을 기록하며 제몫을 해줬고 포워드 샘 퍼킨스와 제임스 워디가 매직의 패스를 받아 동반 22득점을 기록하며 부족한 득점력을 메꿨다. 불스에서는 마이클 조던이 36득점 1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개인 첫 파이널 무대에서 전혀 긴장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마지막 슛을 놓치고 말았고, 스카티 피펜은 30%대 아투율에 그치며 아쉬움을 남겼다.
1차전이 끝나는 시점까지는 "득점왕은 우승할 수 없다."는 NBA의 오래된 명제가 이번 파이널 역시 집어삼키는듯 했다.
4.2. 2차전
2쿼터까지 마이클 조던은 단 2득점에 묶이면서 극악의 야투감을 보여주었다. 이를 대신하여 호레이스 그랜트가 전반에만 14점을 몰아넣으면서 불스의 반격을 주도하였다. 한편 매직 존슨의 전담 수비로 스카티 피펜을 붙이고[6] , 조던에게 센터인(!) 블라디 디박을 수비하게 한 필 잭슨 감독의 변칙 수비 전술이 효용을 발휘하여서 불스는 조던의 야투 난조에도 불구하고 전반을 5점차로 리드한 채 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2쿼터 후반부터 드디어 야투감이 돌아온 마이클 조던은 이후 무려 야투를 13개 연속으로 성공시키면서 본인이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주었고(...) 조던이 디박을 수비하다가 파울 트러블에 걸려 잠시 경기에서 이탈한 3쿼터에는 트라이앵글 오펜스 전술에 완전히 적응한 불스 구성원들 전원이 미친 야투감을 보여주면서 나머지 경기를 가비지 타임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렇게 경기는 107 대 86, 21점차 불스의 완승으로 끝났고, 시리즈 동률이 된 채 양팀은 LA로 이동하게 된다.
불스에선 마이클 조던이 전반 부진과 함께 파울 트러블로 33분 출장에 그치면서도 33득점 1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이름값을 했고, 스카티 피펜도 1차전 부진을 만회하듯 20득점 10어시스트를 기록했고 특히 수비에서 매직 존슨을 봉쇄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밖에 호레이스 그랜트, 존 팩슨 등 나머지 멤버들의 야투감도 아주 좋았어서 팀 아투율 역시 0.619를 기록했다. 레이커스에서는 믿었던 매직 존슨이 피펜의 수비에 고전하며 14득점 10어시스트에 그쳤고 팀 공격도 이때문에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참고로 조던의 커리어 명장면 중에 하나로 두고두고 나오는, 오른손으로 덩크를 시도하다가 공을 왼손으로 옮겨 레이업하는 장면이 바로 이 경기의 일부이다.
4.3. 3차전
이전 두 경기와 마찬가지로 전반전은 시종일관 팽팽한 접전으로 이어졌다. 3쿼터 중반, 홈팀인 레이커스가 13점차까지 앞서가면서 기세를 올렸으나, 불스에서 마이클 조던의 활약과 더불어 이전의 두 경기에서 블라디 디박에게 철저히 밀렸던 빌 카트라이트가 골밑 싸움에서 분투를 펼쳐주면서 불스는 기어이 4쿼터 중반 레이커스를 따라잡는데 성공한다.
팽뱅한 접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경기 종료 30여초를 앞두고 디박이 앤드원을 통해서 얻어낸 귀중한 자유투를 성공하면서 레이커스가 92 대 90, 2점차로 앞서나갔다. 1차전과 비슷한 상황이 됐지만 조던은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경기 종료 3초를 앞두고 조던은 바이런 스캇을 드리블로 제친 뒤 디박의 블락 시도를 피해내는 풀업 점퍼를 성공시키면서 경기를 연장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연장에서 레이커스의 노장들이 체력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동안 조던이 대폭발, 불스는 104 대 96, 8점차로 승리하면서 2-1 시리즈 리드를 따내게 된다.
4.4. 4차전
경기를 가른 것은 2쿼터였다. 불스의 마이클 조던이 2쿼터에만 11득점을 올리며 맹활약한 반면, 레이커스는 이전 세 경기에서 팀의 주 득점원 역할을 했던 샘 퍼킨스가 극악의 야투 성공율을 보이면서 분위기를 내준다. 여기에다가 주전 스몰포워드/슈팅가드였던 제임스 워디와 바이런 스캇이 각각 발목과 어깨를 다치면서 전력에서 이탈[7] 한 것은 레이커스에게 치명적인 악재.
그럼에도 디박의 골밑 존재감을 앞세워서 레이커스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불스를 추격하지만 '''추격은 하되 역전은 하지 못했다.''' 4쿼터 접전처에서 불스의 원투펀치, 조던과 피펜이 동시에 폭발하면서 경기는 결국 게임은 가비지 타임으로 종료되고, 불스는 창단 첫 우승까지 1승만을 남겨놓는다.
4.5. 5차전
엘리미네이션 상황에 맞닥뜨린데다가, 팀의 주전이 둘이나 이탈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레이커스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워디를 대신하여 투입된 엘든 캠벨이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었고, 4차전 극악의 야투감을 보여주었던 샘 퍼킨스도 22점을 기록하면서 분투했다. 무엇보다도 리더이자 1옵션이었던 매직 존슨이 이번 경기 한 경기에서만 무려 20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미친 활약을 선보이면서 4쿼터 중반까지 불스에게 아슬아슬한 차이로 앞서나갔다.
하지만 더이상 조던 혼자만의 팀이 아니었던 불스는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해냈다. 스카티 피펜이 32득점 13리바운드, 팀 내 득점 1위를 기록하며 조던의 공격 부담을 덜어준 한편, 주전 포인트가드였던 존 팩슨도 4쿼터 승부처에서[8] 10점을 넣는 대활약을 선보이며, 결국 108 대 101로 불스가 승리하면서 불스는 창단 첫 우승을 거머쥐는데 성공한다. 레이커스는 주전들의 이탈과 체력 문제로 결국 1989년 파이널에 이어 또다시 동부 컨퍼런스 팀에 의해 좌절해야 했다.
5. 파이널 MVP
농구 황제가 드디어 데뷔 후 7년만에 처음으로 대관식에 성공했다. 생애 첫 파이널에서도 긴장하지 않고 시종일관 강력한 위력을 선보이며 평균 30득점을 넘기며 득점왕은 우승할 수 없다던 NBA의 오래된 잠언을 완벽하게 격파했다. 그외 특기할만한 점은 경기당 평균 어시스트가 11.4개나 된다는 것. 자신보다 한시대 앞서 NBA 대중화에 앞장섰던 매직 존슨을 의식해서 의도적으로 패스에도 신경쓴 것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9] 실제로 어시스트를 받아 피펜, 팩슨 등 팀원들도 많은 득점을 올리며 조던을 보조했다.
6. 우승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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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여담
- 91년 파이널 1차전은 중부 표준시 기준으로 오후 3시에 열렸는데, 이후 12215일이 지난 지금까지 열린 모든 NBA 파이널은 저녁 프라임 타임 시간대에 개최된다. 불스 왕조 시대 이전까지 지금보다 상당히 저조했던 NBA의 인기를 알 수 있는 대목.
- 파이널 4차전 이전까지 이 해의 플레이오프에서 레이커스는 1쿼터 리드를 잡은 모든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 이후 레이커스가 스테이플스 센터로 홈구장을 이전하면서, 5차전은 그레이트 웨스턴 포럼에서 열린 마지막 파이널 경기가 됐다.
- 이후 1991년 11월 매직 존슨이 HIV 감염으로 인해 은퇴를 선언하면서, 1980년대에만 4번의 파이널 우승을 차지했던 레이커스 왕조는 붕괴됐고, 00년대 초중반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의 시대가 올 때까지 암흑기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히 어정쩡한 성적을 기록하게 된다.[10]
8. 관련 문서
[1] 감독의 성향 차이도 있는데, 기존 불스의 감독이었던 덕 콜린스 감독은 다양한 전술 패턴을 갖고 있기는 했으나 대부분 조던에게 그 역할을 수행해주길 요구했다.[2] 당시까지의 기준. 이후로 그 유명한 1995-1996년 72승 시즌을 비롯해서 계속해서 스스로 리그 최다승 기록을 갱신해 나갔다.[3] 1988년 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서 1-4 패, 1989년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2-4 패, 1990년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3-4 패.[4] 그 직후 라일리는 뉴욕 닉스의 감독으로 부임해서 패트릭 유잉과 함께 뉴욕 닉스의 황금기를 이끌었다.[5] 참고로 1위는 글라이드가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로 63승을 기록했다.[6] 이건 임시 변통으로 한 작전이었다. 원래 1차전부터 조던이 계속 매직을 마크하고 있었지만, 이번 경기엔 1쿼터에 빠르게 파울 두개를 쌓자 계획을 바꿔 피펜을 대신 붙인 것. 그런데 이 시점까진 리그 정상급의 수비수가 아니었던 피펜이 조던보다 큰 키와 긴 팔로 오히려 매직을 효과적으로 막아 대박이 난 것이다. 다만 그 다음부터는 원래 계획대로 조던이 다시 주로 막았고, 이후로는 매직이 피펜의 밀착 수비에 익숙해지면서 큰 효과는 보지 못하게 된다.[7] 결국 이 둘은 시리즈 끝까지 못돌아온다. 사실 이 시점에서 이미 승부가 갈렸기 때문에 둘이 있었으면 한 경기 정도 더 따냈을진 몰라도 역전하긴 어려웠을 것이다.[8] 마이클 조던 - 더 라스트 댄스에서 이 경기를 회상하는데, 4쿼터에 조던이 연속으로 득점을 놓치며 경기가 잘 안 풀리자 작전타임을 건 필 잭슨이 조던에게 "누가 오픈이냐?"(=팀원 중 누구를 마크하는 선수가 조던에게 더블팀을 들어오고 있냐)고 자꾸 채근했고 조던이 신경질적으로 "팩슨이요"라고 반복해 답한다. 이후 조던이 계속해서 오픈된 팩슨에게 패스를 연결하고 팩슨이 중장거리 점퍼를 성공시킨다.[9] 실제로 이후 조던이 파이널에서 평균 두자릿 수 어시스트를 기록한 적은 없었다.[10] 사실 리빌딩에 들어간 팀이 슈퍼스타 영입도 없고, 후계자격인 에이스를 키워온 것도 아닌데 단 한 시즌만 플옵 탈락하고 바로 포스트시즌에 복귀한 건 놀라운 성과다. 워디가 은퇴하고 퍼킨스 등 롤플레이어들이 떠난 이후 90년대 중반에 에디 존스, 닉 반 엑셀 등 실력 넘치는 영건들, 그리고 이제 베테랑이 된 디박, 엘든 켐벨, 세드릭 세발로스 등이 조합을 이훈 레이커스는, 빠르고 화려한 공격이 돋보여서 제2의 쇼타임 소리를 들었다. 그 이전과 이후가 워낙 강력해 묻히지만, 사실 이 자체만으로 꽤 성공적인 중위권 팀이었으며, 영건들의 성장에 따라 다크호스 정도 위치는 노려볼만한 팀이었다. 세세한 전력차는 있지만, 비유하자면 당시 인기 많고 화끈한 공격농구하던 샬럿 호네츠같은 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