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
1. 개요
2. 원인
2.1. 선수와 감독의 공통점과 차이점
2.2. 감독은 승리에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지 않다
2.3. 기회가 많은 만큼 실패하는 명선수도 많다
2.4. 아니 너넨 이 쉬운 걸 왜 못 해?
2.5.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2.6. 구단의 재정과 지원 문제
2.8. 팀 전력이 강하면 잘 해도 선수빨이란 말을 듣는다
2.9. 아무리 명감독을 모아두어도 누군가는 하위팀 감독이 된다
2.10. 때론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3. 결론
4. 예시
4.9. 번외 사례
5. 예외: 되던데?
6. 기타
7. 관련 문서
1. 개요
널리 알려진 스포츠 격언 중 하나로, 선수 시절에는 평균 이상의 혹은 넘사벽스런 모습을 보이면서 해당 종목을 평정하던 인물들이 이상하게 감독과 같은 지도자 자리에만 올랐다 하면 보통이나 그 이하의 성적을 내면서 심하게 몰락한다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여기서 유래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비슷한 경우를 얘기할 때 자주 쓰인다. 연기를 잘 한다고, 그림을 잘 그린다고, 노래를 잘 한다고, 과학이나 인문학 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다고 해서 그걸 가르치는 것도 잘 한다는 보장도 없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그런 식.
2. 원인
2.1. 선수와 감독의 공통점과 차이점
사실 명감독은 명선수였던 경우가 많고 비율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경우로 따지자면 물론 명선수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률로 보자면, 명선수는 정말로 적은 수의 선수들인데[1] 그 중에서도 꽤나 많은 수의 명감독이 나온다. 헌데 그냥 대충 유명한 정도의 선수들이나 수많은 무명선수들이 초등학교 코치, 감독 등 아주 아래쪽에서부터 쩔쩔 매면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프로 2, 3부리그나 프로 2군으로 올라오며 걸러진 끝에 명감독이 탄생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명선수가 명감독이 되는 확률은 엄청나게 더 높다.
그 이유는 명선수와 명감독의 자질이 많은 부분 겹치기 때문이다. 프로 선수들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기술적인 자질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국가대표까지 하던 박지성이 맨유에 들어가고 나서야 솔샤르에게 새로운 슈팅 비법을 터득한 것처럼 높은 경지에 있는 명선수일수록 자신만의 특별한 노하우와 팁을 가지고 있다. 2010년대 중반 수원 삼성의 염기훈은 아무리 욕을 먹어도 몇 시즌 연속으로 리그 도움왕을 차지하고 있는데, 고종수가 코치해 주고 있다. 고종수 정도 급의 선수가 아니고서야 누가 염기훈에게 킥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어지간한 선수가 아니면 염기훈이 말을 들을 이유가 없다. 또, 필립 람이 가지고 있는 풀백과 미드필더를 넘나들며 게임을 지휘하는 특별한 감각과 노하우는 현재 필립 람밖에 발휘하지 못하는데, 그런 선수를 육성하고 싶다면 또 누가 있어 지도해 줄 수 있겠는가? 물론 감독은 이것 말고도 할 일이 많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해당 스포츠에 대한 기술적인 권위나 이해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2] 이 부분이 코치가 할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세상일은 그렇게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당장 골키퍼 코치, 피지컬 코치 빼면 감독, 수석코치, 일반 코치 하나로 30명 정도를 지도하는 축구구단도 비일비재하다. 또한 설령 코치진 규모가 많은 구단이라 할지라도 감독의 기술적, 전술적인 감식안이 중요한데, 감독이 선수의 플레이나 컨디션을 미세하게 알아챌 안목이 없으면 감독의 구단이 아니라 코치의 구단이 되는 것이다. 그 안목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명선수일수록 높다고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이고. 즉 명선수의 능력과, 감독의 기술을 지도하고 개선하는 능력과, 감독의 전술적인 안목은 딱 구분해서 얘기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다.
이렇듯 명선수가 명선수인 이유는 기본적으로 해당 스포츠에 대해 기술적, 전술적으로도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풍부한 경험을 겸비하고 있어서 그로부터 비롯된 뛰어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명선수가 은퇴하고 어떤 팀을 지도하게 된다면, 이를 바탕으로 많은 이점을 지니게 된다. 슥 지나가다가도 어떤 선수가 겪는 기술적인 어려움을 직관적으로 관찰하고 지도해 줄 수도 있고, 한 시즌 동안 어떤 선수의 훈련이나 플레이를 지켜보면서 몸상태가 올라왔는지 아닌지, 이 상황에서 어떤 선수가 들어가야 성과를 올릴 수 있을지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 선수 시절에도 명선수가 필드 위에서 미묘한 변화나 기미를 감지하고 그를 바탕으로 승부를 뒤집는 절묘한 센스를 발휘했다면, 당연히 감독이 되어서도 그 선수는 그러한 조화를 부릴 것이다. 그라운드의 여우라 불리는 신태용이 아무 코치 경력 없이 선수 은퇴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성남 일화 감독으로 부임해 1년차에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했을 때, 교체 선수 기용을 기가 막히게 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선수가 실패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선수 능력=감독 능력'이라면, 무명선수는 무명감독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선수로서는 그저 그랬음에도 명감독인 사례는 제법 많다. 한국의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거스 히딩크 감독도 선수시절에는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으며, 독일 통일 이후 처음으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우승을 이뤄낸 요아힘 뢰프 감독이 선수 시절엔 차범근의 백업 선수였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이것은 감독에게 요구되는 재능과 선수에게 요구되는 재능이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종목 차이는 존재한다. 예를 들어 축구 같은 경우는 골키퍼를 제외하고는 사실 어느 포지션이든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자질이 비슷하다. 공격수도 상황에 따라서 수비를 하고 수비수도 공격을 하는게 축구다. 또한 선수들 역시 전체 흐름을 보며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기에 이런 점에서 감독에게 요구되는 자질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야구는 다르다. 포지션이 철저히 분업화되어 있다. 즉, 굳이 전체 경기 흐름을 볼 필요없이 타자라면 그냥 한 경기에 4번 정도 돌아오는 자기 타석에서만 잘 치면 그만이다. 또한 축구는 11명이 필드에서 집단으로 뛰고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만큼 골/어시스트 등을 제외하면 정확하게 숫자로 통계내기가 힘들기에 경기의 전체적인 흐름을 읽는 감이 중요하다. 하지만 야구는 세이버메트릭스 문서를 봐도 알 수 있듯, 기본적으로 투수-타자 1대1 대결인만큼 방대한 통계자료가 나온다. 이 타자는 좌투수에게 약하다던지, 체인지업에 약하다던지 철저히 수치화가 가능하며 야구 감독들은 이런 데이터들을 일일이 분석해서 선수 라인업을 짜고 선수교체도 해야 하므로 '''야구는 선수와 감독에게 요구되는 자질이 많이 다르다.'''
영화계에서 명배우가 명감독이 될 수 없다는 말이 회자되는 이유는 영화 배우와 영화 감독에게 요구되는 자질이 다른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배우야 자기 배역만 잘 연기하면 그만이지만, 감독은 전체적인 조율을 담당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4번타자라면 그냥 다른 것 필요없이 타석에서 홈런 뻥뻥 쳐대면 OK지만, 감독은 전체적인 경기조율과 분석, 선수 컨디션 체크, 선수교체시기 판별 등등 요구되는 자질이 다르다. 물론 '''찰리 채플린'''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두 가지 재능이 모두 수준높은 사람이라면 명배우이면서 명감독이기도 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명배우라고 꼭 명감독이 된다는 법은 없다'''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말하자면 선수 재능과 감독 재능은 많은 부분에서 겹치고, 선수로서의 재능이 없으면 지도자를 시작하기도 어렵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와 감독의 재능은 상당 부분에서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우선 가장 큰 이유는 선수 시절의 멘탈로는 감독직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수 시절에는 자신이 맡은 임무만 충실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많다 보니 팀 동료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쓸 이유나 여유도 없거니와 기술과 심리적인 부분 역시 감독이나 코치들이 맡을 일이지 자신은 자기의 컨디션이나 기량만 신경쓰면 별 문제가 안된다. 설령 경기가 안 풀려 감정적으로 나온다고 해도 '''"오죽이나 경기가 안 풀려 답답하면 저럴까?"'''라고 실드쳐주는 경우가 있다. 문제는 감독이 된 이후로는 이게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감정적으로 격해있는 경우나 들뜬 선수들을 잘 추스려 이성적으로 안정된 상황에서 경기를 진행하도록 하는 역할이 감독에게 주어진 과제 중 하나다.
슬램덩크에서도 김수겸의 예만 봐도 잘 알 수 있지만, 벤치에서의 김수겸은 이성적인 판단력과 심리 상태에서 경기를 운영해 나갔다. 그러나 일단 벤치를 떠나 경기장안으로 들어온 그는 선수로서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감정적인 상태에서 경기를 뛰었다. 그러다 강백호와 서태웅 두 신인들의 활약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못해 그 이후 제대로 선수들을 장악하지 못했다.[3] 여기에 선수단 전체에 대한 거시적인 안목이 요구되기도 한다. 선수 한명, 한명이 각각 다르고 각자가 플레이하는 스타일 역시 다르기 마련이다. 이들의 장단점을 파악해 때와 장소에 알맞게 기용하는 능력 역시 감독에게 요구되는 능력이다. 즉 선수 시절보다 더 넓은 안목이 필요하다는 것.
사실 스포츠행정학이나 스포츠심리학 같은 주제에서도 언급되지만, 이것은 '''"피터의 원리"'''(Peter Principle)를 들이대면 쉽게 의문이 풀린다. '''선수로서 뛰어난 능력은 감독의 역량을 보장하지 않는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감독에게 필요한 역량이다. 실제로 감독은 선수일 때보다 높은 역량이 필요하다. 감독과 선수는 원래부터 성격이 다른데, 선수로서 이룩한 업적만 보고 감독에 앉혀놔도 제대로 움직일 줄 아는 태도 때문에 더 뼈아프게 실패한 사례다.
2.2. 감독은 승리에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지 않다
천재 감독 한 명만으로 우승할 수 있다면 서로 그냥 천재 감독 스카우트 경쟁만 벌이지, 선수들의 엄청난 몸값의 FA비용은 다 뭘까? 돈으로 가치가 평가되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톱스타들의 몸값이 감독보다 훨씬 더 높은 것은 그만큼 승리에 차지하는 비중이 더 높다는 의미다.[4]
단적으로 2001년 월드 시리즈를 보자. 한국의 김병현이 마무리 투수로 등장하여 한국에서도 엄청난 화제를 불러 모았던 경기이고 지금도 회자되는 명승부이긴 하나, 감독보다는 '''메이저리그 사상 최고의 원투펀치'''인 커트 실링 - 랜디 존슨으로 이겼다고 다들 회상한다. 둘다 20승 이상에 2점대 방어율이라서 한 팀에 사이영상급 투수가 둘이나 있다보니 반칙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상대는 무려 4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을 노리는 극강의 절대강자 뉴욕 양키스였고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는 창단한 지 몇 년 안 된 신생팀이었으나, 경험부족 등도 원투펀치 하나로 다 극복해냈다.
1차전은 커트실링의 7이닝 1실점 승리, 2차전은 랜디존슨의 '''완봉승'''으로 압살해버렸다. 특히 랜디존슨은 이전까지만 해도 포스트 시즌 성적이 부진하여 '''심장은 훈련으로 키울 수 없다'''느니, 키만 멀대같이 크고 심장은 콩알만하다느니 안티들의 비아냥이 넘쳐났고, 실제 정규시즌 성적은 랜디존슨이 더 좋았고 이 해에 사이영상을 수상했음에도 포스트 시즌에 약하다는 이미지로 인해 포스트시즌의 에이스는 커트실링이 맡게 되었다. '''당해 사이영상 수상자(리그의 에이스)가 포스트시즌에서 2선발을 맡는 이색적인 시리즈'''였다. 하지만 이때 랜디존슨이 완전히 물 올라서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하는 원맨쇼를 보여줬다. 이들의 '''완봉역투'''에 제 아무리 천하의 명장이라고 불리던 뉴욕 양키스의 조 토레 감독이라도 별 수 없었다. 엄청난 화력의 강타선이 '''2경기 동안 단 1득점'''으로 침묵했으며 당시 조 토레의 "나보고 어쩌라고" 항변하는 듯한 넋나간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반면, 3,4,5차전은 내리 패했는데, 사실 애리조나 감독의 미스가 있었다. 4차전에서 역전홈런으로 마무리 실패를 했던 김병현을 5차전에서 다시 올렸는데, 또다시 동점홈런을 맞고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때 김병현도 욕을 많이 먹긴 먹었으나, 감독 또한 욕을 많이 먹었다. 사실 이 부분에서도 '''감독은 결과로 말한다'''는 진리를 알 수 있었는데, 만약 5차전에서 김병현이 무난히 세이브했다면 성공적인 승부수였다고 찬사받았을 것이다. 일단 6,7차전 홈에서 승부를 걸어야 하므로 마무리 투수인 김병현은 꼭 필요한데, 마침 2점 정도 리드니까 전날 세이브 실패로 의기소침해진 김병현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줘서 자신감도 살리고 6,7차전에서 김병현을 다시 한번 기용해보려는 복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병현이 동점홈런 맞고 무너지니 감독의 용병술이고 뭐고 다 뒤집어져 버렸다. 보다시피 '''선수의 기량이 감독의 전술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단 두번이나 무너져 버렸으니 6,7차전에서는 김병현이 봉인돼 버렸기에 감독 입장에서 욕만 먹고 선택지가 대폭 축소되어 버렸다. 하지만 역시 이런 감독을 살린게 바로 '''최후의 원투펀치'''였다. 6차전에서는 랜디존슨이 등장하여 7이닝 2실점 호투로 승리투수가 되었고, 대망의 7차전은 불멸의 에이스 커트실링과 뉴욕양키즈의 에이스 로저클레멘스의 맞대결이었다. 7회까지 1:1로 팽팽하게 맞섰으며, 9회엔 마무리로 전날 선발투수였던 랜디존슨을 올려버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강의 마무리투수인 '''마리아노 리베라[5] '''와 맞대결을 벌이게 된다. 존슨은 전날 선발투수의 영향으로 다소 구속이 떨어진게 보였으나 압도적인 구위로 씹어버리고 승리투수가 되어 '''월드시리즈 2,6,7차전 승리투수(3승)'''라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당시 존슨의 심장이 작다고 놀려대던 안티들이 모두 버로우했었으며, 명장으로 꼽히던 뉴욕 양키즈의 조 토레 감독도 '''무적의 원투펀치''' 앞에서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복합적으로 생각해보면 김병현이 무너진 이유는 감독의 혹사가 더 큰 것도 사실이다. 루키 1년차에 중무리 투수로 뛰며 소방수 역활을 했었고, 2-3년차부터 불펜투수가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 둘다 합쳐 100이닝 넘게(특히 언더핸더 특성상 몸에 부하가 매우 심한 투수를) 혹사했던 것도 있다. 아무리 승부수라 해도 선수 관리 감독의 총 책임자인 한 구단의 감독으로서는 부족한 부분이라 하겠다. 거기다 그해 포스트시즌에서 2이닝 클로저로 생각하고 2경기 연속으로 굴리는 등 무리한 운용을 한것도 감독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장기적인, 혹은 육성의 상황을 배재한, 단기전의 승리에 큰 영향을 준 두 선수를 볼 때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감독의 비중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감독이 다소 무모해보이는 승부수를 띄웠을 때도 선수들이 성공해주면 최고의 용병술, 실패하면 작전실패로 욕먹는다. 선수들의 기량이 감독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경우를 알 수 있다. 이렇듯 감독의 용병술이 빛을 발하려면 선수들의 기량이 받쳐줘야 함을 알 수 있다. 애초에 '''감독은 작전만 지시할 수 있을 뿐, 그 작전을 수행하는 것은 선수들'''이다.
또한, 감독들의 기량이 '''상향평준화'''되면서 변별력이 떨어지게 된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스포츠는 엄연히 룰이 있고, 당연히 그 안에서 나올 수 있는 전략 등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스포츠도 과학'''인데, 당연히 계속 경기가 열리면서 일종의 승리패턴이 교과서처럼 정형화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선발투수의 5인 로테이션이라든지, 마무리투수의 분업화라든지 하는 것도 다 야구를 계속 치뤄오면서 발전해 온 건데, 지금은 다들 비슷비슷하지 않던가? 2000년대 들어 보스턴의 감독이 뜬금없이 마무리투수를 디스하며 집단 마무리 체제로 한번 돌려봤다가 처절히 실패한 후 다시 마무리투수를 고정한 적도 있다. 한때 무규칙격투기라 불렸던 종합격투기는 초창기에는 비장의 서브미션이라든지 하는 비법이나 비기같은게 존재했었으나, 이것도 10년이 넘어가면서 전략이 오픈되고 일종의 승리패턴이 교과서처럼 정형화되어서 결국 '사부'의 비기보다는 선수 개인의 기량이 중요해진 것처럼, 다른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당장 독일 역사상 최강의 전력으로 우승했던 미네이랑의 비극과 최악의 전력으로 조별예선 탈락을 선사한 카잔의 기적의 독일팀 감독은 동일 인물'''이었다. 2014 월드컵 준결승에서 '숙적' 브라질에게 미네이랑의 비극을 선사하며 7대1 대승을 이끌고, 메시의 아르헨티나를 꺾고 우승하여 '명장' 소리를 들었던 독일팀 요아힘 뢰프 감독은 2018 월드컵에서는 16강 진출조차 실패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첫 탈락이다. 그것도 마지막 경기에서 조 최약체였던 한국팀에게 2대0 참패를 당하면서 말이다. 지난 월드컵 대회를 우승으로 이끌었고, 4년이나 지났으니 감독의 경험치는 더 쌓였을텐데 말이다. 4년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선수들이 대거 세대교체되어 바뀌었다는 점이며, 그나마 남아있는 선수들조차도 기량이 많이 떨어졌다는 점이다. 특히 우승에 앞장선 뮐러, 케디라 같은 선수들이 러시아에서는 말 그대로 역적이 됐다. '''만약 뢰프 감독이 2014 월드컵에서 독일 우승 시켜놓고 딱 은퇴했거나 물러났으면 한국의 히딩크처럼 전설의 명장'''으로 남았을 것이고, 만약 다른 감독이 독일팀 맡았다가 참사가 벌어졌다면 뢰프 감독을 그리워하는 목소리가 많았을 것이다.
결국 감독의 전술이나 작전을 실행하는 것은 선수들이기 때문에 선수들의 기량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아무리 전략을 잘 짰어도 선수들이 못 따라주면 폭망하는 거고, 전략엔 다소 문제가 있었어도 선수들의 기량이 뛰어나면 승리를 할 수 있는 것이고 말이다. '''메시같은 경우는 수비수들이 뻔히 어떻게 올지 알고도 못막을 정도다'''. 더군다나 현대에는 인터넷과 정보의 발달로 인해 일반인 축구팬들조차도 축구의 전술을 금방 꿰고 있을 정도로 상향 평준화가 이뤄진 상태기에 감독간의 변별력이 떨어지고 선수들의 기량이 더욱 중요해진 상태다. 예를 들어 '''메시'''나 '''호날두''' 같은 선수 확보하면 팀의 전력이 대폭 상승하는게 느껴질 것이다. 반면에 팀에서 메시나 호날두가 떨어져 나가면 치명적인 전력 손실이 느껴지고, 실제 메시나 호날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아르헨티나와 포르투갈은 이 선수들의 은퇴 뒤를 걱정하고 있는 판국이다. 그만큼 이런 선수들이 팀 전력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의미.[6]
2.3. 기회가 많은 만큼 실패하는 명선수도 많다
명선수는 반드시 명감독이 되는 것도 아니듯 명선수가 반드시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명선수는 선수시절 쌓아놓은 유산으로 인해, 그렇지 않은 선수들에 비해 은퇴 후 지도자 코스에서 분명한 이익을 얻고 들어간다.''' 이 지도자 생활 시작점의 차이가 결과 평가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현역시절 스타플레이어나 프랜차이즈 스타 타이틀을 유지한채 은퇴한 명선수들은 구단도 선수덕을 엄청 봤기 때문에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거나 구설수에 휩싸이지 않는한 구단과의 친분이 두터우므로,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평범 또는 듣보잡 2군인채 은퇴한 무명 선수들보다는 구단에서 예우를 해주고, 그 수단도 지도자 연수 및 감독 연수 등의 직접적인 지도자 교육 기회등 구단의 지원으로 훨씬 쉽게 받을 수 있다. 거기다 이런 명선수들은 정말 어지간히 말년에 자기관리 실패가 아닌 이상 선수 시절 쌓아놓은 돈이 많거나 구단의 지원을 받아 재취업 자체가 더 유리하다. 특히 '''골품제로 돌아가는 폐쇄적인 구단'''일 경우 인맥이 크게 좌우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명선수가 아니면 감독 기회를 못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또한 구단의 신임이나 선수 시절 쌓았던 인맥과 정치력을 동원하면 다른 코치들보다 빠른 승진가도를 달릴 수도 있다.
또한 팬덤의 지지나, 선수에 대한 구단의 신임은 물론이고, 운동선수라는 특성상 선수 시절의 명성을 앞세워서 팬들과 후배들을 따르게 하는 데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현역 프로 스포츠 선수들 중에도 상당수는 현역시절 커리어가 있어야 감독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비선수 출신 지도자를 운동알못이라고 고깝게 보는 선수들도 많다. 즉 그 스타급 선수가 선수 시절의 생활을 통해 쌓아놓은 명성과 권위, 후배들에게 받는 존경,리스펙트는 훗날 지도자,감독직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분명히 하나의 큰 무형적 자산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현역 시절 스타급 선수는 무명 선수보다 은퇴 후 지도자 과정은 물론, 최종 목표인 감독 선임 기회를 훨씬 많이 받으며 실제로 감독이 많이 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큰 수의 법칙에 따라 1) 실패하는 스타급 선수 출신 감독이 무명 선수 출신 감독보다 숫자가 많고, 2)현역 시절 잘나갔던 명성 때문에 그 실패가 반작용으로 두드러져 보이며, 3)그 명성 + 구단 내외적 사정으로 인해 이들이 오래 안 짤리고 버틸수 있어서, 애초에 숫자도 적고, 실패해도 그러려니 하는데다, 빨리 잘리면 그만인 듣보잡 감독보다 이들의 실패가 눈에 띌 수 밖에 없다. 즉,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라는 말은, '''감독으로 실패한 전직 스타선수의 사례가 상대적으로 많고 그 내용이 부각되기 때문에 생겨나는 선입견'''이다.
비 스타선수들의 경우 정말 능력이 뛰어나거나 인맥, 정치력을 갖춘 게 아니라면 프런트, 최종적으로는 구단주의 승인을 받아 감독 임명장 받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우므로, 감독이 되는 것만으로도 이미 한 번의 검증을 통과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검증과정에서 인맥빨,명성빨을 보기 쉬운 스타출신 지도자들보다 실패할 확률은 좀 더 적고, 이름값이 없으니 실패해도 사람들의 기억에 크게 남지 않는다.
그나마 선수 능력과 코치 능력, 매니징 능력을 별개로 보기 시작한 선진 프로 구단들은 이제 명선수라고 무조건 우선권을 주지 않는다. 특히 경기장에서의 선수 통제 못지 않게 프런트와의 소통과 관리가 중요한 야구 감독의 경우, 이미 미국은 선수 시절 듣보잡이었어도 코치 연수를 열심히 받고 팀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면 기회가 비교적 쉽게 주어진다. 대표적인 경우가, 현역 선수시절부터 선수로는 가망없다고 판단하고 자비로 GM들 윈터미팅을 따라다니며 감독직 미래를 설계한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A.J. 힌치같은 케이스. 그 외에도 주제 무리뉴처럼 일찌감치 구단 밑바닥에서 실무자로 경력을 쌓고 지도력을 인정받아 명감독이 되는 훌륭한 성장 사례도 있다.
한국, 일본은 아직도 선수 시절 명성이 높을수록 감독직을 하는 데 유리하다. 대놓고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성골 아니면 감독을 못하고, KBO리그 역시 선수 시절 스타가 감독 기회를 먼저 받는 편이다. 특히 보수적인 마인드의 지방구단쪽이 이것이 심한 편. 이전의 기준으로 보면 한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는 커녕 절대 감독이 될 수 없는 초라한 선수 시절을 보냈던 염경엽의 넥센 히어로즈 감독 승진은 넥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인사이며 한국 야구판이 작게나마 변화하고 있다는 사례로 볼 수 있다.[7][8]
상대적으로 미국 스포츠는 현역시절 레전드가 감독이 되는 경우가 흔치 않은 편인데, 아무래도 드래프트로 팀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서 로컬팀과의 일체감을 갖는 것 자체가 엄청난 행운인 수준이고, 대체로 돈 관리만 잘하면 은퇴 후 진로가 더 넓기도 하고 정말 팀의 레전드인 경우 감독보다 프런트 참여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아예 구단주가 된 마이클 조던이나 존 엘웨이 같은 경우가 대표적. 워낙 벌어놓은 돈도 많고 유명세를 굳이 감독하면서 깎아먹을 이유가 없으며 미국 프로스포츠 특성상 오너쉽과 프런트가 분리되어있어서 감독이란 자리가 크게 팀을 지휘하는 권력을 쥐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한국이나 일본에서 선수 출신이 감독이 되면 구단 정점에 올랐다는 평을 듣지만, 그냥 미국에서는 번 돈으로 구단을 사버리는 것이다.[9]
유럽 축구같은 경우는 반대로 명선수의 감독 영전이 매우 당연한 케이스로 취급받는다. 전세계 축구는 시장 계약 방식으로 자유롭게 선수 입출입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국적 불문하고 최고의 선수를 엄청난 고액으로 데려올 수 있다. 이런 선수들은 감독이 미미한 인물일 경우 대놓고 무시하거나 항명 사태까지 일으키기 때문에, 명감독의 조건 가운데 '''선수 장악력'''을 높은 순위에 둘 수밖에 없다. 그러니 과거 잘 나갔던 선수 출신 감독이라는 후광과 권력은 엄청난 무기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보수적이었던 축구판에도 변화의 바람은 찾아왔고 율리안 나겔스만으로 대표되는 신세대형 지도자들이 등장했다. 이 젊은 지도가들은 현역시절 무명 선수거나 아예 선수 경력이 없는 약점을 발전한 선수 분석 기술을 바탕으로 한 엄청난 연구와 노력으로 채워서 보드진에 전략 수립,선수 육성,경기 운영등 필드에서 선수들을 통제하는데 필요한 능력들을 어필 하고, 이를 매니징에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결과를 내고 명성을 차근차근 쌓아서 아직은 수가 적지만 점점 신세대형 지도자들로 각광받고 있다. 반면 여전히 고전적인 방식도 유효하여 스타급 선수가 2,3부리그에 1,2년 정도 낙하산으로 들어가 경험만 좀 쌓고 하루아침에 최상위리그 지도자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즉, 현시대 유럽 축구판도 더이상 현역시절 명성과 지도력만 가지고는 감독으로 성공 못한다는 걸 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축구판도 점점 변모하고 있고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길을 걷는 지도자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프로축구의 경우 지도자 자격증을 AFC P, A, B, C, D급 5종류로 구분하는데, 상위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현장 지도 경력을 필수로 요구한다. 예를 들어 각급 대표팀을 지도할 수 있는 A급 자격증의 경우 U18까지 통용되는 B급 소유자가 지도 경력 2년을 쌓아야 신청 가능하다. 때문에 유스 팀부터 시작해서 대학 팀까지 광범위하게 거느리고 있는 K리그 클래식 빅 클럽의 스타 선수라면 산하 팀에서 지도자 과정을 밟을 수 있다는 작지만 큰 혜택을 누리게 된다. 포항 스틸러스와 울산 현대 호랑이 두 팀의 통수를 친 것 때문에 축구계에서 비빌 언덕이 없어진 설기현이 대학 감독 제의가 오자 시즌 개막 바로 전에 인천 유나이티드 통수를 치고 갑자기 현역에서 은퇴한 것도 이런 속사정이 있다.
2.4. 아니 너넨 이 쉬운 걸 왜 못 해?
[image]이렇게 가슴 트래핑 후 플립플랩, 마르세유 턴 한 다음에 라보나 킥으로 촥! 어때요? 참 쉽죠?
차범근, KDB대우증권 광고에서
알렉산드르 카렐린, 레슬링 강습 중.
참고로 듣고 있는 사람들은 러시아의 프로레슬링 선수들이다. 그들에게 알렉산드르 카렐린이면 시쳇말로 눈도 못 마주치는 까마득한 대선배인데, 그들조차 어처구니가 없어서 순간 표정관리가 안 될 정도로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이라는 뜻이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여기서 카렐린이 설명하는 기술인 '카렐린 리프트'가 저 말을 하는 카렐린 본인 입장에서는 실제로 소싯적 손쉽게 구사했던 기술이 맞긴 하다. 그런데 그게 카렐린이라서 쉽게 한거지 웬만한 선수들은 엄두도 못내는 기술이기 때문에[10] 결과적으로는 말도 안되는 강습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
극히 일부분이긴 하겠지만, 이러한 사고로 감독직에 임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또 어떤 면에서 이것은 사실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스타 플레이어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
원인으로 지목된 다른 항목들은 '명선수라고 해서 모두 명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닌 이유'에 대한 설명에 가깝지만, 이 항목 만큼은 '명선수이기 때문에 오히려 명지도자가 되기에 불리한 이유'에 해당한다. 즉 문서 제목과 가장 걸맞는 이유라고도 할 수 있다.
노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타고난 재능'''이 없으면 성공하기 어려운 분야가 바로 스포츠이다. 프로에 입단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들이지만, 그렇게 입단한 프로들 사이에서도 재능의 차이가 있기 마련이고 이는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명선수라고 인정받는 거물들은 보통 선수들이 간신히 해내거나 아예 엄두도 못 내는 일들을 태연하게 해낼 수도 있는데, 이 상태로 감독이 되면 선수들이 왜 노력을 하는데도 저 모양인지 이해하지 못하게 되어 감독과 선수 사이에 균열이 발생하기 쉽다.
또한 팀 운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후보 선수 관리이다. 선발과는 달리 출전 기회 한 번이 소중하고 수입 측면에서 안정적이지도 않으며, 그러다 자포자기하고 멘탈이 터지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마음을 다잡고 노력해도 재능 문제로 주전보다 발전이 더디고 섬세한 지도를 필요로 한다. 후보가 주전과 재능에서 별반 차이가 나지 않거나 팀 전술 문제로 후보로 빠진 경우라면 후보는 왜 자기가 후보로 남아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할 수도 있다.[11]
후보나 교체 선수 없이 시즌을 치를 수는 없으므로 감독들은 위와 같은 케이스들을 모두 다독여가며 기량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명선수 출신 감독들은 이런 미묘한 처지에 있어본 적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런 선수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기 어렵고, 그나마 자기 눈에 차는 선수들은 주전밖에 없기 때문에 후보들에게 출장기회를 배려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경우까지 있다. 그나마 사회성이 좋거나 노력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사람들은 평범한 선수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편이다.
차범근이 대한민국 국대 감독으로 재직할 때 나이를 먹은 본인이 상대 수비를 크루이프 턴으로 제치고 다이렉트 크로스 올리는 시범을 보여준 다음 선수들에게 똑같이 하라고 요구한 적이 있었다. 해설로 전업해서도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아~ 저 쉬운 것을...'''이다. 그런데 그걸 쉽게 할 수 있는 건 차범근이라서.(...) 야구에서는 이만수, 김시진, 선동열 등이 비슷한 사례를 만들어냈다. 본 항목의 짤방에 나오듯이 알렉산드르 카렐린은 "상대방이 방어 자세를 취한다고 당황할 필요 없습니다. 그저 상대의 허리를 잡고 들어올리세요."라고 강의한 적이 있는데, 그게 아무나 되면 레슬링이란 종목에 방어 자세가 왜 있겠나(...). 카렐린이라서 가능한 방법이다. 티에리 앙리 역시 모나코 감독 시절 이런 요구를 했다가 팀원들과 갈등이 생겨 경질되기도 했다.
2.5.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문단명의 속담처럼 인간사에서 모든 것은 변하게 되어 있다. 당사자가 선수 시절이었던 때와 감독이었던 지금과는 경기 성향이나 선수들의 기량이 상당한 변화를 겪는다는 점은 부인하지 못한다. 당장 농구만 하더라도 개발된 초창기에는 신체적인 접촉이 금지되었던 스포츠였지만, 지금은 리바운드를 위한 몸싸움이 흔하게 일어나고 전체적인 경기 진행 속도도 빨라지는 등 꽤 격렬한 스포츠가 되었다. 이는 야구도 마찬가지이다.
국내지도자들이 이런쪽으로 가장 악영향을 끼친 종목이라면 바로 배구이다. 1990년대 국제 배구는 스파이크 서브의 등장, 배구공의 공기압 변화, 랠리제 도입, 서브룰의 변화(서브 구역 확대, 서브의 네트터치 인정) 등으로 큰 변화를 겪으면서 2000년대 이후 스피드 배구가 세계적 대세가 되었다. 그러나 국내 배구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선수 생활을 하던 1970 ~ 80년대의 사고방식으로 안정적인 리시브와 패턴공격에만 집착하면서 날개공격수의 오픈공격에만 올인하는 몰빵배구로 퇴화하여 국제경쟁력을 상실하였다. 하지만 최근에 최태웅처럼 2000년대 이후 대표팀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하면서 직접 선수로 세계적 수준의 스피드 배구를 경험한 젊은 세대도 지도자로 등장하면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이렇듯 모든 종목이 흥행을 염두에 두고 방송중계에 적합하도록 룰을 개정하면서 더 빠르고 더 박진감 넘치는 진행을 내용을 요구하고 있다.
스타 선수 출신 감독 역시 나름대로의 이유는 댈 수 있다. 선수 시절 경험했던 것도 있는지라 그것도 무시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것 역시 타당성이 있는 것이 세부적인 것은 변했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으므로 당당하게 말할 자격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새로운 경기 환경과 변화에 거부감을 일으키는 요소가 되기도 하며, 경험이라는 것까지 더하면 이것이 오히려 올바른 지도력을 갖추는데 방해가 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이 문서와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평범한 선수->명감독->최악의 구단 운영자 테크를 탔던 필 잭슨의 경우가 이와 유사하다. 잭슨은 명선수가 아니었기에 쓸데없는 아집이 없어 감독시절엔 오히려 실험적인 전략인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에이스 조던이 반대함에도 받아들였었다. 그러나 감독 시절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나니 이상한 아집이 생겨 뉴욕 닉스 시절, 2점 중거리슛의 비중이 점점 떨어지고 3점슛과 얼리 오펜스의 중요성이 늘어났는데도 시대에 안 맞는 원형 그대로의 트라이앵글을 고집하다가 팀에 재앙을 가져오고 잘렸다. 과거와 달리 전술이 변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명성과 성공으로 인해 "성공하는 방법은 내가 제일 잘 안다"는 식으로 고집을 부리다가 망하는 것.
2.6. 구단의 재정과 지원 문제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요소 중 하나인데, 아무리 스타 선수 출신 감독이라고 해도 감독이 마술사는 아니고 더구나 조물주나 신은 더더욱 아니다. 경영에 빗대 말하자면 제 아무리 뛰어난 경영자라고 해도 회사의 주주들이나 경영진의 전폭적인 지지 없이 정상적인 기업체 운영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다. 재정 상태가 오늘 내일해서 곧 쪽박 차고 거리에 내몰릴 일만 남은 기업체를, 이름난 경영인 앉혀놓는다고 단번에 살려낼 수 있을까? 어불성설이다.
2015년의 뉴욕 메츠가 전문가의 예상을 뒤집고 2015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내셔널리그 챔피언이 되었던 것 역시 전임과 현 단장의 양질의 선수 영입과 더불어 제한된 예산 내에서 팀을 운영하는 실력을 가진 샌디 앨더슨과 같은 단장의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것은 그저 이름값에만 의존해 뭔가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다. 뭐 반대로 구단주가 돈은 꽤 많지만 브렌던 로저스가 영입을 못해 반은 말아먹은 리버풀 FC 같은 사례도 있고, 부산 아이파크처럼 지원도 안 해줘서 망하는 경우도 있다.
클럽팀에서는 얘기가 다르지만, 1998 월드컵의 차범근은 이 부류에 속한다. 축구협회 주류와 차범근의 갈등은 많은 사람들이 아는 유명한 얘기다.
LG 트윈스나 최근의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그런 케이스인데, 이 팀들은 선수단의 전체 실력대비 구단 내 고위급 간부의 관심을 지나치게 받고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감독이 팀을 제대로 컨트롤 하기도 전에 위에서 이래라저래라 간섭이 지나치게 심해서 팀 통제가 많이 무너진 케이스다.
꼭 위의 두 팀이 아니어도, 이른바 국내 최고의 명문, 빅마켓 혹은 그 이상의 세계적인 명문팀이라 불리는 팀들 상당수가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편이다. 워낙 유명세가 크고 팬덤도 넓고 두터운 팀은 그만큼 투자가치도 높고 언론의 관심도도 높아서, 정말 사방 팔방에서 숟가락 얹으려고 달라붙는다. 이때문에 이런 팀은 프런트,투자자들끼리 내부 정치질도 치열하고, 1경기, 1주, 1달만 못해도 팬과 언론이 팀의 부진을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렇게 외풍이 심한 팀은 그래서 현역 명성에 기댄 감독 선임이 많은 편이다. 그래야 외풍을 차단하기 조금이라도 쉽다 보니...[12]
2.7. 우승을 해야만 명장 취급을 받는다
우승은 대회에서 오직 1팀만이 차지할 수 있다. 매년 열리는 대회가 아니라면 기회는 더욱 적다. 그 어려운 우승을 해야 겨우 명장 소리를 듣는데 경우에 따라선 1번 정도로는 인정 못 받기도 한다. 우승없이 명장의 호칭을 얻으려면 하위권 팀을 상위권으로 올리거나 가난한 팀으로 성적을 내는 등 어려운 일을 해쳐나가야 하는데 이것도 여러 번, 오래 해야 이런 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그래도 우승이 없다면 인정 못 받는 경우가 많다. 당장 세계 역사상 최고의 감독이 누구냐고 할 때 유럽 챔피언스 리그 우승 경력이 없거나 빅리그가 아닌 리그의 우승 감독들의 이름을 말하면 아예 후보에 올리지도 말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2.8. 팀 전력이 강하면 잘 해도 선수빨이란 말을 듣는다
2.9. 아무리 명감독을 모아두어도 누군가는 하위팀 감독이 된다
세계 최고 감독을 한 리그에 모아 두면 1위팀 감독은 진정한 명감독 소리를 들을 것이고, 누군가는 최하위를 기록하며 욕이라는 욕을 다 먹는다. MLB 승률 1~10위 감독을 한국의 10개팀에 분배하면 하위팀 감독은 메이저리그에서 아무리 잘했어도 사퇴하라는 소리를 듣는다. 6~10위 감독을 해고하고 다시 MLB 승률 1~5위팀 감독 데려온다고 해도 또 순위가 갈리고 하위팀 감독은 욕먹는게 스포츠다. 홈런 30개를 쳐도 40개, 50개 치는 선수가 많으면 대접 못 받는 것처럼 실제 감독능력이 뛰어난다고 한들 더 잘하는 팀 감독이 박수를 받고 하위팀 감독은 비난을 받게 된다. 전교 1등들이 모인 서울대에서도 누군가는 꼴등을 한다.
2.10. 때론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아무리 명장이라고 해도 언젠가는 성적이 부진할 때가 있다. 신이 아닌 이상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은 슬럼프를 겪게 되는데, 이 슬럼프를 극복하지 못하면 성적이 점차 하락세를 타게 된다. 비단 감독 뿐만 아니라 잘 나가는 선수들도 성적이 영 좋지 못한 때가 있는데, 이는 감독이라고 해서 사정이 별반 다를 바가 없다.
3. 결론
거스 히딩크, 아르센 벵거, 요아힘 뢰프, 주제 무리뉴 등 유명한 감독으로 알려진 인물들은 선수 시절에는 큰 명성을 떨치지는 못했어도 지도자로서는 길이길이 남았다. 필 잭슨이나 팻 라일리 등도 선수 시절에는 평범했다. 그러나 필 잭슨은 감독으로서 NBA 최다 우승 경력을 거머쥐었다[13] . 심지어 레오 베인하커르나 그렉 포포비치[14] , 잭 램지, 빌 피치, 플립 손더스, 브래드 스티븐스, 에릭 스폴스트라, 김태환,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파헤이라, 마우리치오 사리[15] , 최인철, 정정용, 김학범 등처럼 아예 프로 선수 출신[16] 도 아니었던 사람들이, 모두 명장들로 이름을 날리는 사례도 꽤 많다.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이 널리 퍼진 탓에 정말로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되기 '''불가능하다'''고 일반화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진짜로 명선수가 명지도자가 되지 못한 사례야 매우 많지만, 선수 시절 못지않게 명장이 된 사례도 충분히 있으며, 또한 꼭 명선수가 아닌 선수가 지도자로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격언의 정확한 의미는 '지도자 실력이 선수 시절 명성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일 뿐이며, 따라서 '명선수라고 해서 모두 명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도가 더 적합한 표현이다.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라는 다소 극단적인 표현이 통용되는 것은 아마도 사람들의 인상과 임팩트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명선수 출신이 아닌 지도자들이 크게 성공할 경우 언론은 스토리와 드라마를 예쁘게 포장하기 좋으므로 그들을 집중적으로 취재하며 많은 기사를 생산하곤 한다. 반대로, 선수 시절 참으로 잘 나가던 지도자들이 큰 무대로 화려히 데뷔했다가 맥도 못 추고 실패할 경우, 엄청난 유명세를 바탕으로 시작부터 큰 관심과 기대를 걸던 사람들이 실망하면서 깊은 인상을 받기 쉽다. 또, 언론 역시 이번에는 별볼일 없던 선수와는 반대로 비극적인 드라마와 스토리를 포장하기 좋으므로 많은 기사를 생산하곤 한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당연히 감독은 성공보단 실패할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누구나 감독에게는 ‘전력보다 우수한 성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꼴찌후보팀 감독에게는 강등권 탈출이, 중위권팀 감독에게는 상위권 진출이, 상위권팀 감독에게는 우승이 요구된다. 애초에 감독은 대다수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어정쩡한 선수생활을 보낸 감독의 실패’는 그냥 묻히지만, ‘화려한 선수생활을 보낸 감독의 실패’는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렇듯 명선수와 명지도자의 상관관계에 따른 사람들의 인식은 임팩트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처럼 보이므로, 섣불리 일반화해선 안 된다. 여러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지도자로서 선수 시절 명성에 부합하는 활약을 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고, 선수 시절 명성을 훨씬 초월하는 경우도 있다. 즉 선수 역량과 지도자 역량 사이에 절대적인 상관관계는 없고 다양한 양상이 있을 수도 있다. 말하자면 일반적으로 명선수 출신 지도자에 대해 선수 시절 기량에 못지 않은 감독이 될 것을 막연히 기대하지만, 선수와 지도자가 각각 책임질 역량은 다른 까닭에 실제로는 명지도자가 될 수도 있고,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4. 예시
4.1. 야구
4.1.1. 한국
- 김기태(★●) - 5년 동안 가을야구에 못 가던 KIA 타이거즈를 2017년 우승으로 이끌며 명장 반열에 오르는가 싶었지만, 사실 우승 시즌에도 후반 운영을 잘 못해 정규리그 우승을 놓칠 뻔 하기도 하는 등 불만이 은근히 있었다. 다음 해 5강에 겨우 진출했으나, 그 다음해인 2019년 시즌 초반 팀창단 최초 시즌 중 단독 10위를 기록하고 승률 3할 붕괴 직전까지 몰렸고 결국 5월 16일, 자진사퇴를 하였다. 우승까지 걸린 첫 3년은 성적이 오르니 좋다고 하는 팬들도 있었지만 그 과정이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경기 운용과 각종 기행들, 양날의 검인 형님 리더십, 현란한 수비 위치 교체, 이닝 쪼개기, 아무 보직 없이 마구 기용하는 투수교체, 투수 김윤동 혹사, 이상한 언론플레이, 독특한 인사나 경기중 마운드 모이기, 양아들#s-2 기용으로 자팀 팬들에게 신뢰를 잃는 일이 빈번하였다. 더군다나 과거 LG 트윈스 감독 시절에도 11년만에 비밀번호를 끊고 가을야구로 이끌었으나, 이듬해 초반 극도의 성적 부진으로 갑자기 사퇴한 경력이 있어서 LG 팬들에게도 평가가 썩 좋지는 않다. 가을야구 다음해라서 욕은 해도 사퇴를 진심으로 요구한것이 아닌데 사퇴해버려서 책임감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2017 시즌의 KIA 우승 후에는 무슨 실험이라도 하듯 아무도 이해 못하는 경기 운용을 통해 2017년 우승팀을 시즌 8위까지 추락시키더니 겨우 후반기에 힘을 내서 5위로 포스트시즌에 턱걸이하기는 했지만, 문제는 그 5위조차도 선수들을 예전 자신의 스승 뺨칠 정도로 쥐어짜서 겨우 이룬 것이라는 것. 이런저런 논란들을 일으키면서 급기야 팬들은 김기태 퇴진 운동까지 벌이게 될 정도로 김기태에 대한 여론이 매우매우 안 좋아졌다. 설상가상으로 2019년 3월 26일, LG 시절에 한 차례 했던 투수를 대타로 내세우면서 상대팀에게 항의하는 운영을 다시 보여주었다. 우승 한 번으로도 명장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했는데, 이후 행보 때문에 명장 소리는 쏙 들어갔다.
- 김성한(☆) - 해태에서 KIA로 바뀐 2001 시즌부터 감독을 맡았고, 2002년, 2003년의 2년 연속 6할 승률로 정규리그 2위를 기록 하는 등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지만, 한국시리즈에 한 번도 못 가 봤고, 훈련 중 부상자 발생, 포수 김지영#s-1.7 구타 사건 등 사건사고가 있어서 평가가 절하된다. 다만, 통산 감독 승률은 0.548로 매우 높은 편이다.
- 김시진(●) - 현대 유니콘스, 넥센 히어로즈, 롯데 자이언츠 3개팀 감독을 맡아 모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면서 사람만 좋고 무능력한 감독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특히 팀이 완성되거나 완성 단계이던 2012, 2013년의 실패는 그야 말로 빼도 박도 못한다[17] . 그래도 두 시즌 빼면 해체하기 직전의 시즌이었거나 선수 다 팔린 상황이거나 프런트의 상태가 다들 영 좋지 않았던 팀만 맡은지라 크게 비난을 받진 않는다. 기본적으로는 인간성이 좋은 편이고, 코치나 전력분석팀장으로서는 호평이 많다.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 CCTV 사찰 사건 과정에서 롯데 사장 최하진의 문자가 공개되었는데, 여기서도 사람 좋고 무능하다는 뉘앙스가 있었다.
- 김용희(★●) - 신사 이미지만 있고 승부사 기질이 없는 항상 강조하는 팀 시스템을 막상 찾아볼 수 없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신사 이미지와 승부사 기질이 부족하다는 점에서는 김시진과 꽤 유사하다. 다만, 김시진이 감독 커리어 내내 불펜 혹사로 논란이 된 것과 달리 이 쪽은 투수, 야수들의 최대한의 휴식을 보장하는 편이다[18] . 그리고 당대 SK는 5-7위권인데, 순위도 5-6위. 그래도 의외로 전력만큼은 해 주는 편으로, 큰 실패는 없었다.
- 김재박(★) - 현대 유니콘스에서는 4회의 우승과 1회의 준우승을 이루어냈으나, LG 트윈스 감독으로서는 DTD 이론을 증명해주면서 실패했고,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는 삿포로 참사와 도하 참사 등의 주역이었다.
- 김한수(●) - 선수 시절에는 삼성의 소리없는 강자 소리로 들었고, 코치 시절까지는 평이 괜찮았다. 류중일 감독이 남긴 9위 팀을 2017 시즌 부로 이어 받았는데, 성적 부진은 둘째 치고 이해할 수 없는 경기 운용, 잦은 선수 혹사 등으로 부임한 3년 동안 단 한 차례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하면서 구단 역대 최악의 감독으로 남고 말았다. 그래도 팀 시스템이 완전히 무너진 채 감독 수업도 거의 못 받고 감독이 되었고, 나름 신인들에 기회를 주고는 있다는 참작의 여지는 있다. 게다가 2018년 하반기 들어서는 의외로 선전하면서 점점 포스트시즌과 가까워지고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포스트시즌 진출은 끝끝내 아깝게 실패하였다. 그래도 다른 무능한 감독들이 여러차례 등장함에 따라 비난은 어느 정도 줄어드는가 싶더니, 2019 시즌에도 기대 이하의 성적 및 이런저런 기행들을 선보이면서 다시금 많은 비판을 받고 있었으며, 결국 팀의 모든 일정이 다 끝난 2019년 9월 30일, 허삼영의 선임과 함께 팀을 떠나게 되었다. 다만, 재임 기간 내내 외국인 투수 6명이 모조리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던 것과 이원석을 빼면 외부 영입된 선수들 모두 돈값을 했다기엔 모자란 성적을 낸 점과 모기업의 소극적인 투자에도 이 정도도 나름 잘 한 거라고 쉴드쳐주는 팬들도 있다.
- 백인천(★) - LG에는 첫 우승 감독이고, 삼성에서는 비록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국민타자 이승엽을 발굴해내고 삼성 클린업의 기반을 만들어 준 감독으로 평가 받아 삼성팬들에게도 이미지가 좋게 남아 있지만, 롯데에서는 여러 기행들과 더불어서 태업 수준으로 팀을 아예 방치하고, 이대호의 커리어를 아예 망칠 뻔해서 욕을 거하게 먹었다. 지금까지도 KBO 리그 역대 최악의 감독을 뽑으라면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을 정도다[19] .
- 서정환 - 삼성 라이온즈, KIA 타이거즈 감독 시절 핵심 불펜들을 혹사시켜서 다음 감독이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하게 만들어 버린 탓에 현재까지도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다[20] . 삼성의 경우에는 1999년에 그렇게 혹사당했던 임창용이 역대급 금강불괴인 것도 있고[21] 이후 김응용 - 선동열 감독 시절을 거치며 어찌어찌 불펜진을 다시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KIA의 경우에는 서정환 재임 시절 신용운과[22] 한기주 등 젊은 투수들을 그렇게 굴려대고 무능한 코치진의 삽질까지 더해진 결과 투수팜이 거의 초토화되면서 2009년 우승 시즌을 제외하고는 불펜 덕을 계속해서 보지 못하고 있다. 특히 09년도 불펜의 핵심이었던 유동훈과 손영민 등이 10년도에 블론왕이 되면서 확인사살.
- 선동열(★☆) - 삼성 감독 시절에 우승을 두차례나 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수발, 팀발 우승이라는 말을 들었다. 삼성 라이온즈 감독 시절이던 2009년에는 21세기 들어 첫 포스트시즌 탈락과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의 무기력한 스윕 패배로 까였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았으나, 2012년에 고향팀 KIA 타이거즈로 금의환향 후 불펜 강화 실패와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게다가 2연속 8위라는 매우 부족한 성적으로 인해 재계약 1주일만에 팬들의 반발로 사퇴하는 굴욕을 당한다. 게다가 KIA 시절에 신인 드래프트에서 인성 타령 하면서 지나친 대졸 사랑으로 까였다[23] . 그래도 이 쪽은 프리미어 12 당시 국가대표팀 투수코치로서는 작두탄 듯한 교체능력을 자랑하며 투수코치 선동열은 여전히 높은 평가를 받으니 그건 다행이겠지만, 정작 후임 감독이 부임 3년차에 팀을 우승시키는 바람에... 그리고 2018 아시안 게임 첫경기에서 충격적인 결과를 낳았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팀을 우승까지 이끌기는 했지만, 그 전에 엔트리 선발 선정 때부터 이어진 오지환, 박해민 병역 혜택 논란 때문인지 이미 대회 전부터 매우 나빴던 평가는 우승이라는 성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우 나빴고, 게다가 아시안 게임 당시 청탁 및 금품 수수를 받고 가뜩이나 여론이 엄청나게 안 좋던 오지환을 선발했다는 의혹에까지 휘말리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나마 그를 이용하려던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에 불러 두들긴 것이 오히려 선동열을 살려준 꼴이 되어서 최소한의 이미지는 회복. 결국 한국시리즈가 끝나길 기다린 뒤 2018년 11월에 감독 직에서 자진 사퇴했다.
- 손혁
- 양상문(★●) - 이 쪽은 아예 리빌딩이라는 개념까지 없으면서, 심각한 좌우놀이로 감독 시절이나 프런트 시절이나 똑같은 돌소리를 듣고 있다. 결국 LG 단장 자리에서는 단 한 시즌만에 사임하였다. 이후 롯데 자이언츠 감독직으로 14년만에 복귀했으나, 성적이 영 좋지 않았다. 리빌딩이라는 명분으로 뭘 많이 하긴 하는데 너무 기형적인지라 팬들은 받아들일래야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결국 2019년 전반기를 최하위로 마감한 후 단장과 함께 자진사퇴하고 말았다.
- 이만수(★●) - 시카고 화이트삭스 불펜코치 시절과, SK 와이번스 수석코치 시절에는 팀의 우승을 일궈내는 데 공헌을 했지만, SK 와이번스 감독대행부터 감독 취임 이후 연속으로 2년 동안은 한국시리즈에도 2번 진출했지만 모두 콩라인이였고, 이후에는 아예 가을야구에 진출하지도 못했고, 결국 물러났다. 다만, 전임자가 김성근이었다는 점과 후임자인 김용희 역시 큰 성과를 내지 못한 점으로 인해 어느 정도는 재평가를 받고 있는 중이다.
- 이순철 - 선수 시절은 해태 왕조의 주역 중 하나이자 최강의 테이블 세터 중 하나였으나, 감독으로서는 LG 트윈스의 금지어. 일명 순페이라고 조롱받는다. 이 쪽은 성적도 안 나오면서 소위 '신바람 야구'의 주역들을 반강제로 이적/은퇴시켰던 게 문제가 된 케이스.
- 조원우(★●) - 선수 시절에는 '쌍방울 돌격대'의 일원이었으며, 고향 롯데로 와서는 코치로써는 손아섭, 전준우 등의 수비를 고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고, 감독으로써는 더블 스틸 등 섬세한 야구를 시도했으나 팀 컬러와는 잘 맞지 않았다. 하지만 신인급 선수들을 발굴해내서 리빌딩 부문에서는 나름 성공한 모습을 보였다. 2017년 시즌에는 전반기를 죽쑤고 있다가 후반기 때의 대활약으로 정규시즌 3위로 가을야구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 초보 감독티를 벗어나지 못해 NC 다이노스 김경문 감독에게 패하며 감독 및 팀 최초의 시리즈 업셋을 허용했다[24] . 그리고 2017년의 성과로 인하여 3년 재계약도 성공하였으나, 2018년 들어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용이 늘면서 또 성적은 왕창 하락하면서 또다시 평가가 추락하고 있다. 사실 2017년의 호성적도 조원우가 잘해서라기보다는 선수들이 잘 해준 것과 LG와 넥센이 DTD를 시전해준 때문으로, 결과적으로 운빨이 작용한 것이다. 즉, 7월까지는 무의미한 작전과 이해할 수 없는 엔트리를 시전하다가[25] 8월에는 아무것도 안 한 것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는 2018년부터는 다시 안 좋은 고질병이 다시 도져서 추락한 것이라 보아야 한다. 결국 시즌 종료 이후 해고당했다. 다만,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써는 성기영, 제리 로이스터, 양승호 등과 더불어서 꽤 높은 승률을 기록한 몇 안 되는 감독이기도 하고, 또한 구단과의 트러블이나 인터뷰로 인한 구설수도 거의 없었으며[26] 수비코치로서의 능력은 검증됐으니 타 구단에 재취업할 여지는 남아있었고 결국 2021년 SK 와이번스의 2군 감독에 취임했다.
- 한대화(●) - 한화 이글스 감독 시절 8 - 6[27] - 8을 찍었는데, 2010년에는 선수층이 안습한데다가 구단 프런트의 지원도 받지 못한 상태였던지라 아무도 욕하지 않았고, 2011년에는 신들린 대타 성공률 등으로 야왕으로 칭송받았으나, 2012년에는 김태균, 박찬호 등이 돌아왔음에도 작년보다 성적이 더 나빠지자 결국 그 해 8월, 경질되었다. 하지만 후임 감독들도 연달아 부진한 성적을 내자[28] 한화 팬덤 사이에서 재평가를 지속적으로 받기도 했다. 후임 감독들이 삽질할 때마다 감독 내지는 사장(단장)으로라도 다시 모셔오자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 한용덕(★●) - 2018 시즌에는 팀을 11년만에 가을야구에 진출시키면서 찬사를 받았으나, 2019 시즌 중반 이후[29] 팀이 주간 2승조차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부진하면서 몹시 욕을 먹었다. 다만, 외부 FA나 괜찮은 트레이드 등의 지원을 받지 못했고, 전임자가 안 그래도 얇았던 선수층을 망쳐놓은 점도 어느 정도는 참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전임자만큼은 아닐지언정 잊을만 하면 입을 털어대는 것은 기본에 베테랑들과의 마찰까지 일으키는 등의 모습을 보면[30] 참작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다. 19 시즌 역대 최초 두자릿수 승수를 동시에 기록한 외국인 투수 둘과 20-20 직전에 발목 피로골절로 시즌 아웃된 외야수를 받고도 감독과 단장이 동시에 사퇴한 뒤 완전히 몰락한 롯데와 꼴지 싸움을 할 정도의 시즌 운용과 쫓아낸 선수를 다시 불러왔더니 선수단 투표로 주장이 될 정도로 실패한 선수단 장악까지 고려한다면 18 시즌의 성공은 그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브레이크, 타 팀들의 어이없는 몰락들이 겹친 희대의 플루크였을 뿐임이 분명해진다. 20 시즌 역시 장시환 외엔 제대로 된 전력 보강이 없는지라 앞날이 심히 어두울 따름이었는데, 결국 그의 쓸놈쓸 성향과 얇은 선수층 문제, 주전들의 노쇠화가 한꺼번에 겹치면서 팀이 14연패에 빠지고 이 과정에서 정민태, 장종훈 등 수족들이 대거 1군에서 말소되는 수모를 당하자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하고 말면서 결국 이 쪽도 역대 한화 감독 잔혹사만 쓰고 말았다. 베테랑들이 입이 댓발 나와서 감독 뒷담화나 까고 다녔다는 야구부장의 썰까지 뜨면서 자기 후배였던 상사와 비교되며 선수단 장악에 실패했다는 의혹까지 겪는 수모는 덤.
4.1.2. 일본
- 가네다 마사이치(★) - 400승 투수, 불같은 성격으로 퇴장도 많이 당하며 심판들은 싫어했다. 그러나 인기는 자기 팀 선수들보다도 훨씬 좋았다. 비인기+떠돌이 구단이던 롯데 오리온즈의 슈퍼스타라고 봐도 무방했을 정도.
- 가네모토 도모아키 - 2016년 첫 시즌 4위, 이듬해 2위를 기록했다. 후술할 다카하시 요시노부보단 일단 높은 줄로 보였으나 3년이 지난 현재는 정반대. 다카하시는 임기동안 최하위 경쟁은 하지 않았다. 이 사람은 임기동안 B클래스만 두번을 찍었고 2018년 시즌에는 17년만에 최하위까지 기록했다. 감독으로 지낸 3년 동안 제대로 키워낸 선수도 없으며 그나마 싹수가 있던 유망주는 모조리 퇴보해서 자칫 잘못하면 노망주로 끝날 위기이다. 특히 후지나미 신타로에게는 무슨 미운털이 박혔는지 정신적으로 압박을 줘서 스스로 무너지게 만들었다. 그래도 오카모토 카즈마라도 참을성 있게 키워낸 다카하시와는 비교가 안 된다. 구단에서 투자를 안 해줬으면 변명거리라도 되는데 임기동안 구단도 나름대로 투자는 꽤 해줬다. 게다가 다카하시는 3년 동안 기대에 못미친 성적에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라도 했는데[31] 이 사람은 고시엔 관중석 절반이 빈자리가 되어가는데 자신의 진퇴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없다. 취임 시에는 3년 계약이라고 발표했으나 실제로는 2년 계약에 2년차가 끝나는 2017년 시즌 종료후 새로 3년 계약을 체결했던 것으로 알려져 한신 팬들이 뒷목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성적 부진으로 사퇴했다. 비록 뒤가 안 좋게 감독자리를 물러나긴 했지만, 훗날 그가 감독 재임 시절 드래프트에서 지명했던 오오야마 유스케, 이토하라 켄토, 타카하시 하루토, 바바 코스케 등의 선수들이 팀에 잘 정착하면서 선수를 보는 눈만큼은 좋았다는 재평가는 받고 있다.
- 고쿠보 히로키 -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레전드 선수로, 현역 시절에는 2041안타, 431홈런을 기록하며 소프트뱅크 호크스 팬들에게 미스터 호크스라는 애칭을 들을 정도의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프렌차이즈 선수였다. 선수 은퇴 후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취임해 치룬 프리미어 12 대회에서 개막전에서 라이벌 대한민국을 압살하며 좋은 평가를 받나 싶었지만, 타율이 4할이 넘어가는 나카타 쇼를 5번에 배치하고 타율이 1할인 나카무라를 4번 타순에 배치하는 비정상적인 운용을 보여주었고, 게다가 전력이 약하기로 소문난 멕시코를 1점차로 겨우 이기고 도미니카의 다니엘 카브레라나 베네수엘라의 프레디 가르시아 같은 수준급 투수들을 상대로 일본 타자들이 집단 타선 침묵을 보여주더니 대만에서 간판 선수들이 여자들과 술파티를 하는 모습이 방송되며 선수 관리에 대한 문제까지 도마에 올랐다. 급기야 일본 야구의 심장인 도쿄돔에서 열린 라이벌 대한민국과의 준결승전에서 3-0으로 9회까지 리드하던 경기를 1이닝만에 4-3으로 역전당하는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 동안 쌓여있던 불만이 터지며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 곤도 사다오(★) - 1982년 주니치 드래곤즈의 우승 당시 감독. 감독생활 내내[32] B클래스를 왕창 찍고(다만 5할 승률을 찍어 보기도 했다) A클래스를 딱 1번 찍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1번이 바로 저 리그 우승이다.
- 나카니시 후토시(★)
- 나카하타 키요시 - 희한하게도 성적에 비해서 평가는 좋은 감독이다. 감독 재임기간동안 6-5-5-6을 찍으면서 예전의 감독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성적을 거뒀지만, 경기 외적으론 재임기간 동안 선수, 팬들과 같이 어울려서 웃고 울고 하는 재밌는 모습이 점점 호응을 얻어 팬들의 증가[33] 가 뚜렷하게 나타났고, 이전의 실속없는 성과만 거듭한 감독들과는 달리 어느 정도 리빌딩의 성과를 내면서 팬들 사이에서의 여론도 좋은 편이었다. 심지어는 저 성적에도 불구하고 구단측에서는 임기만료 후 재계약까지 추진할 정도였다(!). 감독직을 물러난 것은 성적부진에 따른 구단의 압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인이 코칭스탭 구성에서 구단과 의견이 일치하지 않자 스스로 사임했기 때문.[34]
- 다니시게 모토노부
- 다카하시 요시노부(★) - 대선배가 세웠던 팀 최다연패기록을 42년만에 넘어서는 13연패를 기록하였고 결국 B클래스를 11년만에 기록하였다.[35] 같은 2년차지만 위의 가네모토 감독과는 정반대의 성적. 하지만 3년 차에는 그래도 카네모토보다는 나은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다카하시는 오카모토 가즈마라는 팀의 미래를 책임질 4번타자를 성공적으로 키워냈기에 가네모토보다는 나은 감독으로 기록될 듯 하다. 감독으로서의 성적도 가네모토보다 훨씬 좋았고 선수단과의 관계도 매우 좋았다. 언젠가는 요미우리 감독으로 돌아올 여지는 충분하다.
- 도바시 마사유키
- 마나카 미쓰루(★) - 재임 첫해인 2015년 야쿠르트를 14년만의 리그 우승과일본시리즈 진출로 이끌었으나 얼마 안가 2016년 5위, 2017년 최하위로 성적이 곤두박질치고 말았으며 임기 마지막 해에는 96패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본인의 스왈로즈맨 커리어까지 마감했다. 현재 해설자로 활동 중인데 해설자로는 상당히 호평 중. 일부 팬들로부터는 구단으로 돌아가지 말고 해설자로 계속 남아있기를 바라는 목소리도 있다.
- 마유미 아키노부
- 무라야마 미노루
- 미무라 토시유키 - 선수 시절에는 카프의 일본시리즈 2연패를 이끈 간판 유격수였으나, 감독으로서는 1996년 11.5게임 차를 뒤집힌 역대급 DTD의 장본인이자 15년 연속 B클래스의 스타트를 끊는 영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 벳쇼 다케히코 - 난카이 호크스와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거치면서 통산 310승을 기록한 명 투수였다. 그러나 1968~1970년 산케이 아톰즈 감독 재임 시절 보여준 것은 전혀 없다(...). 그나마 러닝을 강조하면서 투수들의 체력 하나만큼은 키워준 점...?
- 사사키 쿄스케
- 스기시타 시게루
- 스기우라 타다시
- 스즈키 케이시(☆)
- 아리토 미치요
- 야마모토 코지(★)
- 야마우치 카즈히로
- 오시타 히로시
- 오오시마 야스노리
- 오카다 아키노부(★)
- 와다 유타카(★)
- 야마다 히사시
- 야마우치 카즈히로
- 요시다 요시오(★)
- 이구치 타다히토
- 이나오 카즈히사
- 이시게 히로미치
- 이토 츠토무(★) - 치바롯데는 2017년 팀타율이 5월 26일이 돼서야 2할대에 도달하였고 퍼시픽리그 꼴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36] 다만 이 사람에 대한 평가는 신중해야 하는게 세이부 시절 팀을 12년만에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고, 롯데 감독으로 부임해서도 팀을 2년연속 포함 4년 임기동안 3번의 포스트시즌 진출로 이끌기도 했다. 특히 롯데시절에는 주어진 전력에 비해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그 때문에 재계약에도 성공했고 OB 출신이 아닌 감독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장기집권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1년의 실패로 범용한 감독이라고 평가하기에는 업적이 뚜렷하기에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었는데, 8월 13일 세이부와의 홈경기를 앞두고 시즌이 끝난 후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8시즌 막판 주니치 신임 감독설이 나오는 등 아직 감독으로서 이 사람의 능력에 어느 정도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많다.
- 타나베 노리오 - 선수시절에는 유격수로서 팀 수비의 핵이었고 25년 연속 A클래스라는 흠좀무한 기록을 남겼던 친정팀의 감독을 맡았으나 재임기간 중 단 한번도 A클래스에 오르지 못했다.
- 타부치 코이치
- 타오 야스시 - 2005년 라쿠텐 초대 감독이지만... 97패(+2할 승률) 찍고 경질당했다. 다만 창단 첫 해란 점과, 창단 당시 오릭스+킨테츠 선수단 분배 드래프트 과정에서 주전급 선수들을 대거 오릭스에게 빼앗긴 점 때문에 동정의 여지는 있다.
- 타카기 모리미치
- 호리우치 츠네오 - 통산 203승을 기록한 명투수였으나, 요미우리 감독 2년차이던 2005년 62승 80패로 구단 역사상 최다패를 기록하였다.
- 호시노 센이치 - 주니치 드래곤즈의 레전드로, 현역 시절 146승 121패 34세이브 1225탈삼진을 기록했고, 감독 시절에도 주니치 드래곤즈와 한신 타이거즈의 준우승을 이끌고 라쿠텐의 우승을 이끄는 등 서술될 일이 없어 보이나, 이 사람이 서술된 이유는 바로 베이징 올림픽 때문이다. 그 대회에서 자국 대표팀의 감독을 맡았는데, 우승 후보인 일본 대표팀을 이끌고 대회에 나갔으나, 라이벌 한국에게 두 번 연속 패배하고 3위 결정전에서도 미국에게 패하며 일본 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노메달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호시노 센이치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분노가 장난이 아니었다. 게다가 요미우리의 하라 다쓰노리 감독이 WBC 우승을 이끌면서 더욱더 안습이 되었다.
- 후루타 아츠야
- 후지무라 후미오(☆)
- 후지타 타이라
- 히로세 요시노리(●) - 선수 시절엔 일본프로야구 통산도루 2위, 도루왕 5회, 수위타자 1회 수상 기록을 보유한 난카이 호크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리드오프였지만, 감독으로썬 재임기간(1978~1980) 내내 3할 승률, 5위 미만을 찍으며 호크스의 20년짜리 비밀번호의 서막을 열어버렸다. 다만 이쪽도 다카하시 요시노부처럼 전임 감독을 내친 프런트의 강권으로 제대로 된 지도자 경력도 없이 억지로 감독직을 맡았던 것도 있고, 당시 난카이가 재정악화는 물론이요 노무라 카츠야 해임소동 등으로 인해 팀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데다가 주력선수들의 이적 혹은 부상[37] 으로 팀 전력도 심하게 약해졌던 터라 동정의 여지는 있고 실제로 팀 분위기만큼은 잘 되살렸다는 평도 있다. 후일 난카이 호크스의 후신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에서 수비주루 코치(1991~1992)로써 보인 뛰어난 성과[38] 를 보면 그냥 감독시절에 운이 없어도 너무 없었던 듯 하다.
4.1.3. 미국
- 돈 매팅리(●) - 하지만 2020 시즌에 빅리거 12명+코치 2명이 코로나19 양성 반응을 보이면서 DL로 가고, 일곱 차례나 더블헤더를 치르는 등의 끊임없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마이애미 말린스가 꾸준히 5할 승률을 유지하면서 와일드카드를 따내 재평가의 여지가 생겼다.
- 라인 샌드버그
- 로빈 벤추라
- 멜 오트 - 현역 시절에는 511홈런을 친 강타자였지만 그의 감독 시절을 대변해 주는 말이 사람 좋으면 꼴찌다.
- 모리 윌스
- 테드 윌리엄스
- 토니 페레즈
- 펠리페 알루
- (☆) - 성적 자체는 신시내티 레즈 역대 감독 통산승수 순위권에 들어갈 정도로 좋았지만, 자기 팀 경기의 승패에 돈을 걸고 도박을 해 사실상 승부조작을 한 것이 발각되어 영구제명 크리. 다른 쓰레기 감독들은 농담으로나마 나오는 승부조작, 도박 했다는 소리를 이 사람은 진짜 했다는 점에서 이 항목에 나온 인물들과 비교하기가 미안할 정도다.
- 19~20세기 초반에 활동한 감독 겸 선수 상당수.
4.1.4. 대만
- 궈타이위안 - 현역 시절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1985년 - 1997년까지 활약하며 통산 117승 68패를 기록한 선수이자 일본 프로야구 외국인 선수 최다승을 기록한 선수로, 세이부 라이온즈 왕조 시기를 대표하는 명투수. 대만 야구 국가대표팀의 주축으로 LA 올림픽 동메달을 이끄는 등 현역 시절은 레전드이지만, 2007년과 2015년, 2017년 세 번이나 대만 대표팀 감독으로 재직하며 2008 베이징 올림픽의 경우에는 조별리그 탈락, 2015 프리미어 12에서는 조별리그 탈락,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전패 탈락 등 지도자로서는 영 좋지가 않으며, 특히 2015 프리미어 12의 경우에는 양다이강, 궈전린, 천관위 같은 해외파 선수들까지 합류하고 홈그라운드였음에도 불구하고 허무하게 탈락했다.
4.1.5. 도미니카 공화국
- 미겔 테하다 - 머니볼로 유명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전성기를 연 도미니카 출신의 명 유격수로, 메이저리그 통산 2171경기 출장, 307홈런, 1302 타점을 기록하고 내셔널리그 실버슬러거 수상과 메이저리그 올스타에 선정이 되고, 자국 국가대표팀 소속으로도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후배들을 다독이며 조국인 도미니카 공화국의 우승을 이끄는 등 그야말로 현역 시절은 레전드가 따로 없지만, 2015년 은퇴 후 자국 대표팀의 감독으로 취임해 2015 프리미어 12 대회에 참가했지만 윌리엄 페레스, 다니엘 카브레라, 브라이언 로드리게즈 같은 선발 투수들이 한국, 일본, 베네수엘라 같은 야구 강국 라이벌들을 상대로 호투하며 다 이겨가던 경기들을 이상한 투수교체로 시도하며 말아먹었고, 게다가 대회 내내 부진하던 빅터 마테오를 중용하는 등 아주 제대로 팀을 말아먹으며 도미니카는 5전 전패로 탈락하고 말았다.
4.2. 축구
4.2.1. 한국
- 고정운(☆●) - 2018 시즌 전부터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렸음과 더불어 FC 안양 팬들이 적대심을 가지고 있는 FC 서울 출신이면서 가정 폭력 혐의가 있는 심우연 영입을 감행하며 비난을 받았고, 2018 시즌 개막 후 11경기동안 3무 8패 7득점 21실점이라는 처참한 성적을 내다가, 이후 11경기에서 6승 2무 3패 20득점 14실점이라는 성적을 거두며 시즌 초반 11경기 무승하던 안양이 맞나 싶을정도로 좋은 경기력과 성적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로 인해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 고종수(○●☆) - 애초에 실질적인 감독의 역할까지 모두 대표 이사인 김호가 상당히 관여하는 바지감독으로서 감독으로서의 존재감이나 영향력은 상당히 미미하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으며, 특히 시즌 초 상대가 2명이나 퇴장당하며 수적으로 우세한 안산과 서울 이랜드와의 2경기에서 마저도 필드골은 단 한 골도 못 넣고, 경기 내내 무전술로 일관하며 실망스러운 경기를 펼친 것으로 인하여 고종수도 전임자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이 바로 입증된 상태이며[39] , 이 외에도 과거 선수 시절 선수단 무단 이탈 사건을 비롯해서 각종 구설수로 고종수 부임에 팬들의 반발을 샀고, 이에 대해 반성은 커녕 되레 상당히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는 등 대전 팬들로부터 신임을 전혀 얻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후반기 들어서 11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이끌며 두달 연속 이달의 감독으로 선정되고,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에 성공하며 조금씩 옹호의 여론도 생기고 있는 중이었지만 2019년, 신인 선수 선발테스트 불법 행위에 연루되면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게 되었으며, 이 사건이 팀의 성적에도 악영향을 끼쳤는지 2019 시즌은 갈수록 부진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결국 5월에 해고되었다.
- 곽경근(☆) - 2014년 드래프트에서 신인선수 선발과 관련해 각종 비리 논란으로 경질되었다.
- 김남일
- 김대의(★) - 2017 시즌 막판 수원 FC의 감독으로 부임해 잔여 2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기대를 모았으나, 2018 시즌 들어서는 전반기에 5연패를 당하는 등의 부진으로 리그 하위권으로 처지며 팬들로부터 강한 퇴진 압박을 받아야만 했다. 결국 2019 시즌 중 사퇴했다. 후임 감독으로 김도균이 부임한 2020 시즌에는 수원 FC가 대기업 구단들인 대전 하나 시티즌]과 제주 유나이티드 FC 등과 함께 K리그2 승격 경쟁을 달리며 팀 전력 핑계조차 댈 수 없게 되었다. 그저 김대의가 지도자로서의 역량이 아니올시다였던 것이다.
- 김도훈(★●) - 인천 감독 부임 첫 시즌에도 고전하다가 중후반에 살아나면서 8위로 잔류했지만, 그 다음 시즌 성적 부진으로 팀이 강등 위기에까지 몰리면서 시즌 중 사임하게 된다. 그러나 울산 감독을 맡으면서 2017년 팀의 FA컵 우승을 거머쥐었지만, 2018 시즌 알차게 선수들을 영입하고도 개막 4연패를 달리면서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현재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여론이다. 하지만 이마저 ACL에서 16강 탈락으로 도루묵이 된 상황. 게다가 이듬해 시즌인 2019 시즌에서도 선두 경쟁을 하면서도 선수빨 의혹이 항상 따라다녔고 마지막 경기였던 포항전 대패로 우승도 놓치면서 여론도 상당히 안 좋아졌다. 2020시즌에도 여유 있게 선두를 달리긴 했지만 전북전 3전 전패, 파이널 라운드 동해안 더비 0:4 참패로 다 잡은 우승을 또 날렸다.
- 김봉길(★) -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 부임 초에는 봉길 매직으로 불리며 인천에 새 바람을 불어넣으며 지도력을 인정 받았으나, 2014 시즌에는 변함 없는 뻔한 전술로 지도력에 한계를 드러내며 감독직에서 경질되었으며,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부임한 이후에도 무전술로 팬들의 비난을 받고 있었으며, 결국 2018 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답이 없는 경기력으로 겨우 4강에 올라가 우즈벡에 1-4로 참패했고, 이어 3, 4위전에서도 카타르에 0-1로 패배했다. 이로 인해 결국 U-23 대표팀 감독 자리에서 경질되는 운명을 맞이했다.
- 김상호 - 2011년 강원 FC의 감독으로 부임해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였으며, 2012년에도 최하위를 맴돌자 감독직에서 경질되었고, 2014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해 좋은 스쿼드를 보유했었음에도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무려 14년만에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치욕을 겪으며 U-20 월드컵 진출에 실패하였으며, 이후 상하이 선신의 감독직에도 부임하였으나 성적 부진으로 금방 물러났다.
- 김인완(●) - 전남 드래곤즈 유소년 감독 시절 이종호, 지동원 등을 배출하며 유소년 지도자로서 지도력을 인정받았으나, 2013년 대전 시티즌 감독 부임 후 경험 부족의 한계를 드러내며 감독직을 1년도 못채우고 성적 부진으로 인한 스트레스성 정신 질환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2018시즌 중반 성적 부진으로 물러난 유상철을 대신해 전남 드래곤즈의 감독 대행으로 부임해 팀의 분위기를 추스르고 상승세를 이끌어내며 지도자로서 많이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는 듯 했지만, 이후 지도력의 한계를 드러내며 전남은 끝내 강등되었고, 감독으로서 지휘한 모든 팀이 다 K리그2로 강등이라는 불명예를 얻게 되었다.
- 김종부(★) - 2017년 리그에서 앞도적인 성적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승격 후 2018년 준우승까지 거두며 구단 사상 처음으로 ACL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며 명장 소리를 들었지만 2019년 말컹과 최영준, 박지수가 떠나고 나서는 좋지 않은 모습만 많이 보여주었고, 말컹빨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전체적으로 미흡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결국 2부리그 강등을 피하지는 못했다.
- 김호(★☆)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 시절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장 반열에 있었고, 대전 시티즌 감독 부임 후 첫 시즌에 대전을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그 다음 해에 구단 역대 최다 예산 가지고 시즌에서 단 3승밖에 거두지 못하였고, 트레이드를 감행하면서까지 팀의 베테랑이나 스타 플레이어들을 다 내보내고 신인 선수들을 데려오면서 선수단을 지나치게 어린 선수들 위주로만 구성하였고, 특히 2009 시즌에는 에이전트 비리 사건을 비롯해 에이전트 K씨와 부적절한 유착 관계를 가지며 실세로서 구단을 장악하려 들었고, 이외에도 각종 불미스러눈 사건 사고에 휘말리면서 대전 구단과의 마찰로 불명예 퇴진하였으며, 이후 용인축구센터 총감독 시절에도 무능한 일처리 능력을 비롯한 각종 사건사고로 논란이 끊이지를 않았었다.
- 노상래 - 2016 시즌에는 전남 드래곤즈를 사상 처음으로 상위 스플릿 A에 진입시키며 명장의 반열에 오르는 듯 했지만, 2017 시즌에는 14경기 무승을 비롯한 심각한 부진을 이어가며 강등권을 맴돌았고, 결국 2017 시즌을 끝으로 감독직에서 사의를 표명했다.
- 박경훈(★●) - 대한민국 청소년 대표팀을 이끌었을 때 홈에서 열린 U-17 월드컵에서는 기대 이하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 시절 방울뱀 축구와 오케스트라 축구를 앞세워 좋은 성과를 거두면서 명장 반열에 올랐지만, 성남 FC 감독 부임 이후 K리그 챌린지 내에서는 가장 좋은 스쿼드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자신이 내세웠던 헤비메탈 축구가 리그에서 통하지 않으면서 시즌 초중반까지 리그 최하위에 머물렀으며, 이후 헤비메탈 축구를 버리고 기적처럼 순위를 4위까지 끌어올리며 플레이오프에 진입했으나 아산 무궁화에 패하며 승격이 좌절되었고, 결국 부임 1년만에 경질되었다. 다만, 후반에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음에도 지나치게 일찍 경질했다는 동정론도 상당하다.
- 박동혁
- 박성화(★☆●) - 포항 스틸러스와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지도력을 인정받았으며, 2007년에 부산 아이파크의 감독으로 부임하였으나, 감독 부임 2주만에 감독직에서 물러나 청소년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크게 까였고,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두었으며, 2015년 경남 FC 감독으로 부임한 후 2부리그에서 하위권을 기록하며 자존심을 구겼다. 하지만 경남이 부진한 것이 무조건 박성화의 탓이라기보다는 구단주로부터 지원을 제대로 못 받았다는 이유도 크다.
- 박충균
- 백종철
- 변병주(☆)
- 서정원(●) - 2016 시즌 때는 구단 프런트에게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한 점도 있었지만, 2017년 들어서 지도력에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특히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수원의 우승 경쟁상대인 전북과 서울에게 고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40] 결국 2018 시즌을 끝으로 사퇴하고 말았다[41] .
- 손현준(★) - 2016 시즌 중반 사임한 이영진 감독을 대신해 감독 대행으로 대구 FC를 이끌며 대구의 1부리그 승격을 이끌어내며 대구 FC의 정식 감독으로 승진하고 K리그 챌린지 최우수 지도자상을 수상하는 등 지도력을 인정받았으나, 2017시즌 K리그 클래식에서는 지도력의 한계를 드러내며 시즌 중반 성적 부진을 이유로 사퇴하였다. 애초에 대구 구단에서 단장인 조광래의 영향력이 워낙 막강한 탓에 바지감독이 아니냐는 말도 나왔을 정도로 감독으로서의 존재감이 미미했다고 한다.
- 신진원 - 신진원은 정식 감독 경력은 없고, 감독 대행 신분으로 대전 시티즌을 단 2경기 이끌었지만, 2경기에서 각각 7골씩 총 14골을 실점하는 치욕을 겪었다.
- 안익수(★) - 부산 아이파크 감독 시절 특유의 질식 축구로 찬사를 받았지만, 이후 성남 일화에서 아쉬운 결과를 기록하였고, 이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2016년 AFC U-19 챔피언십 조별예선 탈락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거두며 경질되었다.
- 여범규
- 우성용(○)
- 유상철(★●) - 대전 시티즌에서는 성공했다고 보긴 어렵지만[42] , 울산대학교 축구부 감독을 맡고나서부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전남 드래곤즈 감독에 선임되어 개막전에서 승리하면서 좋은 출발을 보이는가 싶더니만, 갈수록 성적을 내지 못하면서 비난의 목소리가 커졌다.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반응도 있었으나 2018년 여름 이후로는 이런 의견도 거의 사라지다시피 할 정도로 평가가 상당히 악화되었다. 결국 2018년 8월 16일, 한 시즌도 다 채우지도 못하고 시즌 도중에 사퇴하였다. 하지만 막상 사퇴하자 아쉽다는 의견이 많아졌다. 그리고 팬들도 유상철을 까기보다는 무능한 구단과 모기업을 까는 목소리가 더 높다. 그러나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직 부임 이후 상당히 형편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강등전도사'라는 별명까지 다 생겨날 정도로 지도자 유상철에 대한 여론도 영 좋지 않다. 그래도 강등은 면하였으니 그것만으로는 다행일지도... 또한 결정적으로 췌장암 투병 소식까지 알려지면서 지금의 여론은 동정론으로 바뀌었고, 결국 유상철은 2020년 1월 2일 자로 인천 감독직에서 명예 감독으로 남게 되었다. 팬들은 나중에 완쾌 이후 꼭 다시 만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 윤성효(●☆) - 다만, 이 사람은 2017년을 기점으로 김해시청에서 상당히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며 이 반열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조금씩 보이고 있다만, 김해시청 감독 부임 중 갑질 문제로 구설수에 오르고 있기도 하다.
- 윤정환(★●) - K리그 한정. 1부리그 문턱도 못간 사간 도스를 승격시키면서 명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울산 현대 감독에 선임된 첫시즌에는 무승의 늪에 빠진 끝에 하위스플릿으로 추락했고 다음 시즌에는 살아나는듯 했지만 FA컵에서는 4강에서 수원 삼성에 패하며 탈락했고 리그에서는 4위에 그치며 AFC 챔스 진출에 실패해 구단과의 계약 연장에 실패하며 사실상 우승하지 못한 윤할이 되었다.[43] 하지만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서 2부에서 1부에서 승격한 세레소 오사카 사령탑으로 부임 후 첫 시즌에 1위를 기록하면서 이 반열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조금씩 보이고 있다. [44]
- 이기범(☆) - 신갈고등학교 감독 재직 시절 각종 사건 사고로 논란이 일면서 김호 총감독과 함께 도덕적 해이가 문제로 지적되면서 시의원으로부터 퇴진 압박을 받기도 하였으며, 2017년 대전 시티즌의 감독으로 내정됐으나 앞선 문제 등을 이유로 팬들이 크게 반발하고 여론이 좋지 못한 관계로 끝내 대전 시티즌 감독 취임이 무산되면서 2군팀 감독으로 좌천되었다. 이후 자신의 아들이 대전 시티즌에 선수로 입단하면서 또다시 구설수에 올랐는데, 감독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아들을 자신의 팀의 선수로 영입한 것이 알려진 것만 벌써 세번이며, 이러한 점은 농구의 허재와 상당히 흡사하다. 또한 2019년 신인 선수 선발테스트 불법 행위에 연루되면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게 되었다.
- 이기형(★●) - 2016시즌 막판 인천 유나이티드의 감독 대행을 맡아 팀의 상승세를 이끌며 팀의 K리그 클래식 잔류를 이끌며 팬들로부터 '이기는 형'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지도력을 인정받아 2017시즌을 앞두고 정식 감독으로 승진해 2017시즌도 팀을 K리그 클래식에 잔류시켰지만, 잔류한 것을 제외한 단순히 성적과 결과만을 가지고 봤을 때는 상당히 실망스러운 성과를 거두었으며, 또한 선수단 운영에 있어 대표 이사가 개입을 했었고, 임중용 코치와 불화가 있었다는 구설수까지 오르면서 시즌 종료 후 인천 서포터즈들이 이기형 감독과 팀의 대표이사의 퇴진을 주장하기도 하였으며, 결국 불명예 퇴진하였다. 이 후 부산의 수석코치로 있다가 조덕제 감독이 사임한 후 감독 대행을 맡았는데 마지막 2경기에서 비겨도 잔류할 수 있었지만 2경기 모두 선제골 넣고 역전패하면서 강등되었다.
- 이상윤 - 해설가로나 오래 활동했을 뿐, 정식 감독 경력은 없고, 감독 대행 신분으로 성남에서 사실상 감독으로서 팀을 이끌었는데, 자신이 감독 대행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현실을 외면하고 지나치게 자신이 원하는 축구 철학만을 추구하다가 끝내 경질되었다. 바로 아래의 최문식과 흡사하다고 볼 수가 있다.
- 이영무(☆) - K리그 챌린지가 출범하기 이전부터 고양 자이크로 FC의 감독을 역임했는데, 2014년 후반기에 실세로서 구단을 사유화하고 구단 내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신고가 접수되면서 감독직에서 사임하였지만, 구단의 기술고문으로 어김없이 구단 내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했고, 2015년 2월 무혐의 판정을 받으며 고양 감독으로 재선임되었으며, 이후에도 구단의 실세로서 고양 구단을 장악했었다.
- 이영익(☆) - 대전 시티즌 코치 시절 최윤겸 감독을 잘 보좌해내며 대전 시티즌의 전성기를 이끌었지만 이후 최윤겸 감독과의 폭행 파문에 휘말리며 구단의 명예를 실추시킨 채 불명예 퇴진하였고, 2017년 대전 시티즌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과거 코치로서 전성기를 이끌었던 만큼 감독으로서도 과거와 같은 성적을 거두리라 기대를 모았지만, 감독으로서의 지도력의 한계를 드러내며 부진을 면치 못하며 대전을 K리그 챌린지 최하위로 떨어뜨리면서 코치와 감독은 엄연히 다른 직책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 이영진 - 애초에 대구 구단에서 단장인 조광래의 영향력이 워낙 막강한 탓에 바지감독이 아니냐는 말도 나왔을 정도로 감독으로서의 존재감이 미미했다고 한다.
- 이임생(○)
- 이차만(★) - 과거 대우 로얄즈 등을 이끌고 명성을 떨치던 베테랑 감독으로서 명장의 반열에 있었지만, 2014년 경남 FC 감독직 역임 당시에는 현대 축구의 흐름과 지도방식에 서툰 구시대 지도자라는 점과 지도자로서 현장을 너무 오랜 시간 떠나 있었다는 점 등의 한계를 드러냈고, 경남은 강등됐다.
- 이태호(●) - 2001년 대전 시티즌을 이끌고 FA컵 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정작 리그에는 2년 연속으로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였으며, 특히 2002시즌에는 리그에서 단 1승만을 기록하는 최악의 부진을 기록했으나 FA컵 우승이라는 빛에 의해 크게 가려졌다.
- 이흥실(●) - 비록 정식 감독이 아닌 감독 대행이였지만 국가대표 감독으로 부임한 최강희 감독을 대신해 사실상 감독으로서 2012시즌 전북 현대 모터스를 이끌었으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대량 실점을 기록하며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굴욕을 겪으며 흥겹게 실점이라는 치욕적인 별명을 얻었으며, 이외에도 지도자로서 능력치가 전술에만 몰빵되어있고, 필요한 선수 관리 및 조합, 안목 등 모든 부분에서 무능력하다는 평가를 들었고, 2012시즌 전북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며 전북을 떠났으며, 2015년 안산 무궁화의 감독으로 부임하였으나 K리그 챌린지 최강 스쿼드를 보유하고도 리그 하위권에 그쳤다. 하지만 2016년 안산 무궁화를 이끌고 K리그 챌린지 우승을 거두었으며, 2017년 신생팀 안산 그리너스 FC 감독을 맡아 신생팀 치고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2018시즌에는 극심한 부진을 이어가면서 끝내 감독직에서 사퇴했다.
- 이회택(★) - 대한민국 대표팀을 이끌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월드컵 진출을 성공시키며 기대를 모았지만, 본선에서는 3전 전패라는 실망스러운 성적으로 조별리그에 탈락하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였다. 애초에 이회택 본인이 자신은 별로 지도자는 적성에 맞지 않지만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냥 했다고 말한다.[45]
- (☆○)
- 정해성(●)
- 조광래(★) - FC 서울과 경남 FC 감독 시절까지는 명장의 반열에 있었지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 부임 이후에는 한일전 0:3 패배 및 레바논 원정 1:2 패배 등의 많은 치욕들을 겪으며 경질되었다.
- 조덕제(★) - 2부에서는 2번이나 승격한데 반해 1부에서는 다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결국 9월 말 자진사임했고 이기형 코치가 대행으로 팀을 이끌게 되지만 마지막 2경기에서 역전패하며 강등되었다.
- 조성환(★)
- 조영증
- 주승진 - 수원 삼성 감독 대행 시절 부진한 성적과 더불어 각종 구설수에 시달리면서 팬들로부터 강한 퇴진 압박을 받았다.
- 차범근(★●) - 선수 시절의 활약은 참으로 대단했지만, 감독으로서의 성과는 선수 시절의 그것을 따라가지 못한다. 특히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의 대표팀 감독 시기는 가장 끔찍한 흑역사. 물론 당시의 처참한 결과는 단순히 차범근의 능력만이 문제가 아니긴 했지만, 이는 복잡한 내용이므로 해당 문서에서 확인할 것.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으로서도 전반적으로는 우수했으나 말년이 너무 좋지 않았다.
- 최문식 - 2015시즌 중반 대전 감독직에 취임한 이후 팀의 사정을 생각하지 않고 지나치게 자신만의 축구 철학만을 추구하다가 대전은 2015시즌 단 4승만을 기록하는 심각한 부진 속에서 리그 최하위로 강등되었으며, 2016년에도 김동찬, 황인범 등의 K리그 챌린지 내에서는 최고의 스쿼드를 가지고도 승격은 고사하고 승강 플레이오프에도 진출하지 못했다. 특히 인터뷰에서 잦은 선수탓 및 책임 회피 발언 등을 이유로 팬들과 선수들로부터 신뢰를 잃어 감독 역임 기간 내내 팬들의 강한 사퇴 압박을 받아야만 했다.
- 최순호(●)
- 최영준
- 최윤겸(★☆●) - 대전 시티즌 감독 시절에 맥주캔으로 이영익 코치를 폭행하면서 대전 구단의 명예를 실추시켰고, 결국 이영익과 같이 불명예스럽게 구단에서 동반 퇴진했지만, 이후 강원 FC의 감독을 맡아 좋은 성과를 거두며 강원을 K리그1 무대에도 경쟁력 있는 팀으로 만들었지만, 2018년 부산 아이파크 감독직에 부임하고 나서는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결국 시즌 종료 이후 사퇴하였다. 이듬해 제주 유나이티드 FC 감독으로 2019 시즌 중에 부임하였지만, 팀을 제대로 살리지도 못하였고, 결국 강등과 함께 자진사퇴하였다.
- 최진철(★) - 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2015년 FIFA U-17 월드컵에서 브라질을 비롯한 강호들을 연달아 꺾고 16강에 진출하며 명장 반열에 오르는 듯 했지만[46] , 이후 포항 스틸러스에서 최악의 부진을 거듭한 뒤에 한 시즌만에 사퇴하면서 차근차근 코치, 감독 경력도 쌓지 않고 단기간의 성과와 명성만을 보고 그냥 감독으로 임명할 경우 보여줄 수 있는 최악의 결과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한참 아래의 선배 홍명보와 비슷하다고 볼 수가 있다.
- 최진한(★) - 경남 FC 감독 시절에는 팀을 2시즌 연속 8위로 이끌고 2012년에는 기적의 상위스플릿 진출 및 FA컵 준우승을 기록했지만 2013년 들어서 안종복 단장의 개입으로 성적이 추락하며 자진사퇴하기에 이른다. 2014년에 부천 FC 1995 감독을 맡았지만 리그 최하위에 머물렀고, 2015년도 성적이 썩 좋지 못하자 경질되었다.
- 허정무(★●) - 남아공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거두며 명장 반열에 오르는 듯 했지만, 선수빨로 16강에 갔다는 소리도 약간 들었으며[49] ,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 인천 유나이티드에서는 별 성과를 내지 못하고 금방 사임하였다[50] .
- 홍명보(★) - 런던 올림픽 때만 해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동메달을 안겨주면서 명감독의 반열에 올랐고, 2013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을 박주영을 비롯해서 현재의 활약상을 보기보다는 자신과 친분 있는 선수들로만 구성하면서 엔트으리로 불리며 비난을 받았고, 결국 월드컵에서 최악의 결과를 낳으면서 감독직에서 퇴진했다. 2015년에는 중국 항저우 뤼청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감독 2년차였던 2016년에 팀이 강등당하자 결국 퇴진했다.
- 황보관(★)
- 황선홍(★●) - 포항 스틸러스 감독 시절까지는 명장의 반열에 있었고, 2016년 FC 서울 감독에 부임한 이후에도 2016 시즌 리그 우승을 달성하였지만, 2017년에는 영입한 외국인 선수들의 잇따른 실패와 더불어 부진하면서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하며 팬들로부터 '참새'라는 별명을 들었으며, 2018 시즌을 앞두고는 팀의 레전드인 데얀을 라이벌 수원 삼성으로 이적시키고, 팀의 주축 선수인 오스마르마저 J리그로 보내면서 팬들로부터 한국판 로날드 쿠만으로 불리는 등 강하게 까이고 있었다. 그래도 2017 시즌부터 FC 서울이 짠돌이 모드로 들어간 탓에 황선홍보다 FC 서울 프런트 자체에 더 책임을 크게 묻는 사람도 적지 않아서 아직까지는 평가가 갈리는 축에도 속하는 편이었으나, 2018 시즌 초반에 심각한 부진을 이어가자 팬들로부터 본격적으로 강한 사퇴 압박을 받기 시작했고, 팀의 간판 스타인 박주영과 마찰을 빚기도 하였다. 결국 시즌 초인 2018년 4월 30일, 자진사퇴했다. 이후 대전 하나 시티즌 감독 부임 이후 초반에는 잘 나갔으나, 갈수록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고, 그 결과 시즌 중 자진사퇴하였다.
- 황재원(☆) - 코치 자격증도 없으면서 2019년에 대전 시티즌의 코치직에 부임하면서 구설수에 올랐다.
4.2.2. 외국
- 가오훙보
- 게리 네빌 - 유난히도 혀를 많이 털던 평론가였지만, 발렌시아 감독직을 맡자마자 충격적인 연패 행진으로 경질당했다.
- 게오르게 하지
- 거스 포옛
- 그레이엄 수네스(★)
- 그제고시 라토
- 글렌 호들(★☆)
- 니코 코바치 - 다만, 선수와 구단 간의 관계는 상당히 원만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구단에서도 자진 사임을 결정했을 때 최대한 예우를 해 주고 내보냈을 정도. 심지어 사임 후 챔스 우승 배당금까지 구단에서 전달해 줬을 정도였다고 한다.
- 다니엘 파사레야(★)
- 데니스 와이즈
- 데이비드 오리어리
- 둥가(★) - 홍명보랑 매우 유사하다. 그나마 둥가는 2007 코파 아메리카에서 브라질을 우승시키기라도 했으며, 취임 1기 당시였던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까지는 좋은 지도력을 보이기도 했다.
- 디노 조프
- 디에고 마라도나(○) -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8강이라는 성적은 아르헨티나 같은 세계적인 강팀 입장에서는 업적이라고 할 수가 없다. 그나마도 나이지리아 - 대한민국 - 그리스라는, 아르헨티나의 입장에서는 모든 경기가 주워먹기나 다름없는 희대의 꿀대진 조별리그에 16강마저도 16강의 호구라 불리는 멕시코가 상대였다. 이건 감독 없이도 그냥 아르헨티나 선수진 정도만으로도 뭉갤 그런 수준의 희대의 꿀대진표일 뿐이다. 8강이라도 같은 8강이 아닌 게 2006년의 8강은 코트디부아르 - 세르비아 몬테네그로(現 세르비아) - 네덜란드 등 마라도나가 만난 3개 팀 어디보다도 강한 팀들의 구성이다. 마라도나가 이 대진을 만났더라면 네덜란드에 크게 패한 것은 둘째치고 아예 조별리그조차도 통과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이미 마라도나 이 양반은 지역예선에서부터 볼리비아에 1-6이라는 희대의 점수로 쳐발린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브라질은 물론이고 칠레, 에콰도르, 파라과이 등에 돌림빵을 당해서 결국 그 천하의 아르헨티나가 자력진출이 불가능한 상태까지 갔었다가 칠레가 에콰도르를 쳐발라준 덕분에 겨우겨우 본선에 올려 놓았다.특히, 이 인간이 감독으로서 갖고 있는 문제점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엔트리 멤버 선택을 완전히 지 꼴리는대로 했다는 점이다. 후안 로만 리켈메, 에스테반 캄비아소, 페르난도 가고, 하비에르 사네티[51] 등을 대거 제외해서 수비는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혼자 똥줄타게 만들었고 그나마 뽑은 엔트리 멤버들을 포진한다는 게 직각삼각형 모양이라 한쪽이 완전히 허허벌판이다. 이러니 독일한테 대패당하는 건 당연했다. 또 하나는 그라운드 적응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단 거다. 볼리비아와의 원정경기는 해발 3600m에 달하는 고지대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적응훈련도 무시하고 경기 시작 2시간 전에 팀을 도착하게 만들어 선수들이 죄다 고산병에 걸려 마치 술이 꽐라가 된 것 마냥 그라운드에서 휘청거리게 만들어 놓은 데다가[52] 브라질과의 홈경기에서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잘 적응훈련하다가 뜬금포 로사리오로 옮기는 바람에 되려 브라질이 더 홈같은 상황을 초래한 끝에 학살당하고 말았다. 그 뒤로 부임한 알 와슬 FC에서도 별다른 성과도 내지 못하고 1년만에 경질되었으며, 2013년에는 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으나, 경력 조사 과정에서 지나치게 무능했던 점이 까발려진 바람에 선임 당일 경질되는 수모까지 당했다. 이어 2017년에는 UAE 2부리그 알 푸자이라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 승격 실패를 이유로 11개월만에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 디에고 포를란
- 라이언 긱스(☆○) - 2018년 웨일스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부임하면서 웨일스를 유로 2020 본선에 진출시키는데 성공했지만 여자친구 폭행 혐의로 2020년 11월에 사임했다. 선수시절에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레전드로 불렸지만, 불륜 등 여러차례 사생활 문제가 많았다.
- 라이언 넬슨
- 로랑 블랑(★)
- 로베르토 도나도니
- 로베르토 디 마테오(★) - 자신이 레전드로 활약한 첼시 FC의 감독대행으로서 구단 역사상 첫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감독으로서도 승승장구할 것처럼 보였으나 다음 시즌 부진으로 경질됐고, 이후 샬케 04와 아스톤 빌라에서 연이어 부진하더니 경질됐다.
- 로비 파울러
- 로이 킨
- 로타어 마테우스
- 루드 굴리트(★)
- 루디 푈러(★●) - 이 사람이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부임할 당시 대표팀은 '녹슨 전차군단'이라는 멸칭으로 불리우며 심한 암흑기에 빠져 있었는데, 푈러는 성공적인 리빌딩으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대회에서 준우승을 거두며 일약 명장으로 도약하는가 싶었으나 그게 다였을 뿐, 그 이후로는 전술 부재로 제대로 된 성적을 내지 못하였고, 급기야 유로 2004에서 2무 1패라는 아주 처참한 성적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자 결국 사퇴하기에 이르렀다[53] . 그 이후로는 AS 로마의 사령탑에 앉았으나, 로마에서도 여러가지 문제로 인하여 제대로 된 성적을 내지 못하고 1년도 안 돼서 물러났다. 대신 그 이후 푈러는 바이어 04 레버쿠젠의 단장과 회장으로 오랫동안 활동하며 경영인으로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 루벤 바라하(●) - 은퇴한지 얼마 안 된 후 감독 생활에서는 선수 시절 스페인 무적함대를 이끈 사람 맞나 싶을 정도로 무능하단 소리를 들었으나, 최근에는 점점 발전된 전술로 강등권 나락의 CD 테네리페를 승격 후보까지 올려놓는다. 다만, 테네리페 이전 그가 맡은바 있는 엘체, 라요 바예카노, 스포르팅 히혼에서는 바라하는 입에 올려서도 안되는 역적 취급을 받는다. 엘체를 3부로 강등시키고 바예카노는 3부로 강등될 뻔했다. 그나마 위 두팀은 후임 감독이 기틀을 잘 잡고 1부로 재승격에 성공했으나, 스포르팅 히혼은 바라하의 세대 교체 대실패로 선수들 대거 이탈과 구단 재정 적자 2연타를 맞으며 1부리그 승격을 노리는 히혼을 3부리그 강등 걱정을 하는 처지로 만드는 등 구단 미래도 망쳐버린다. 하지만 히혼에서 대실패 이후 CD 테네리페에서는 전에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2부리그 22개 팀중 21위에 쳐박혀 있던 팀을 8등으로 승격권까지 진입시키며 발렌시아 감독 후보에도 올랐다. 새 시즌에는 레알 사라고사 감독 부임.
- 뤼트 크롤 - 감독으로서의 명성은 주로 북아프리카의 클럽이나 국가들을 맡으면서 그마저도 실패를 더 많이 하는 등 선수 시절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다.
- 마르코 판바스턴(☆) - 2006 독일 월드컵 16강 탈락은 천적 포르투갈을 만난데다가 발렌틴 이바노프라는 없느니만도 못한 심판을 만나 탈락한 건 그렇다 쳐도, 뒤이은 대회인 유로 2008에서 문제가 터졌는데, 거스 히딩크가 이끄는 러시아한테 8강에서 교체 카드마저 잘못 사용하는 등 전략과 전술에서 미스를 보이며 연장전 끝에 어이없게 패배하고 말았다. 유로 2008 조별예선 전승 통과도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한물 간 상태였던데다가 루마니아도 약체화가 된지 오래인데다 간만에 참가해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손쉽게 격파한 것일 뿐이었다. 게다가 당시 대표팀의 중심축 중 하나였던 마르크 판보멀과 불화도 한 몫 했다.
- 마르크 빌모츠 -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의 8강과 유로 2016에서의 8강까지만 보면 명지도자가 아닌가 싶겠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능력과 용병술은 형편없으며, 또한 세밀한 전술보다는 선수의 개인기량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니, 명지도자라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유로 2016 8강에서 탈락한 뒤에 벨기에에서는 위약금 모금운동까지 벌이며 경질을 요구하고 있었으며, 결국에는 경질되고 말았다. 이후 코트디 감독에 부임했으나, 모로코에 밀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최종예선에서 2위로 탈락하였고, 그 결과 사임하였다. 이후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도 좋은 결말은 못 맺었는데, 이는 임금 체불 문제로 축구협회와 갈등이 있었고, 그 결과 이후 경기에서도 작전 지시를 거의 하지 않고 경기를 지켜보기만 하는 등 거의 파업을 하다시피한 수준. 결국 이란 감독에서도 중도 경질되는 수모를 겪었다.
- 마티아스 잠머
- 모르텐 올센(★)
- 미야모토 츠네야스(●)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때 김태영 이전에 타이거 마스크를 쓰신 분 맞다. 2018년 현재 감바 오사카 감독을 맡고 있지만, 요 근래만 해도 감바를 상위권에 올려놓은 팀을 현재 J1리그 17위로 떨어트리며 강등권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후반기 들어서 수직상승하면서 9위까지 올라가 강등권에서 탈출했다. 하지만 2019 시즌 다시 강등권에서 허덕이고 있다.
- 미첼(★●) - 라요 바예카노의 유로파 8강을 이끌던 스페인 국대 멤버이자 바예카노의 레전드지만, 감독으로서는 당시 성적 재현에 실패하며 라요를 강등시킨다. 하지만 1년 뒤, SD 우에스카를 승격시키며 명예회복에 성공한다.
- 바히드 할릴호지치(★) - 알제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2014년 브라질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끌어내며 명장의 반열에 올랐었지만,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후에는 기술과 패싱위주의 축구스타일에 익숙한 일본 선수들에게 자신이 추구하는 강한 피지컬과 롱볼 위주의 직선적인 축구를 주입하려만 들었고, 이 과정에서 여러 선수들과 갈등을 겪기도 하였으며, 이 와중에 2017 동아시안컵에서 한국에 4:1로 대패하는 등 부진한 성적을 이어가면서 점점 여론이 나빠지기 시작했고, 결국 월드컵을 세 달 앞두고 치른 평가전들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월드컵을 두 달 앞두고 경질되었다. [54] 다만, 애초에 성격이 무척 다혈질에 엄청난 고집불통#s-1이라서 비단 일본에서뿐만 아니라 맡은 팀마다 구단 또는 협회, 선수들과 마찰을 자주 빚어 감독직을 오래 역임하지 못한 인물이기도 하다.
- 베니 매카시
- 베르티 포크츠(★) -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맡았던 시기만 좋았을 뿐[55] , 그 이후로는 맡는 팀마다 오래가지 못하거나 실패만 하고 있다.
- 베른트 슈스터(★) - 레알 마드리드 감독 시절 2007-08 리그 우승을 이루었으나, 이는 당시 바르셀로나가 자멸해준 덕에 이룬 우승일 뿐, 이 후 바르셀로나가 분골쇄신하며 돌아오자 바로 바르셀로나에게 패권을 내주며 2008-09 시즌 도중 경질되었다.
- 보비 찰튼
- 빅토르 산체스
- 빌리 라이트
- 사미 알 자베르
- 사미 히피아(★) - 레버쿠젠 부임 당시에는 챔스에서 부진해서 그렇지 리그 성적은 나름 좋았으나, 브라이튼과 취리히 등은 모두 강등권으로 몰아놓았고, 결국 경질됐다.
- 사페트 수시치(★)
- 슈테판 에펜베르크(○)
- 스탠리 매튜스
- 스튜어트 피어스
- 슬라벤 빌리치(★●)
- 시니샤 미하일로비치
- 아만시오 아마로
- 안드레스 팔롭 - 세비야 FC의 중흥기를 이끈 세비야의 레전드 골키퍼였으나 현역 은퇴 후 스페인 하부리그 감독직을 두 번 맡았는데 모두 성적 부진으로 경질당했다.
- 안드레아스 브레메
- 안드레아 피를로(★) - 마우리시오 사리 감독이 경질된후 유벤투스 유소년감독을 맡으면서 감독커리어를 쌓아갈것으로 예상되었지만 9일만에 유벤투스 1군 감독으로 승격하여 팬들은 기대하였다. 그러나 유베 팬들의 예상과는 달리 같은전술로 일관하며 강등권 팀에게 패하거나 비겨 인테르, AC 밀란에게 선두를 내주며 리그우승과 멀어지더니 급기야 2021시즌 챔스 16강전 1차전인 FC 포르투에게 2대1로 패하며 경질위기에 몰렸다.
- 알리 다에이
- 앨런 시어러
- 오르트 죄르지(★)
- 올레흐 블로힌(★)
- 우고 산체스
- 움베르투 코엘류(★) - 유로 2000까지는 좋았지만 한국 국대 감독 시절에 오만 쇼크, 몰디브 쇼크를 겪으면서 감독 커리어가 꼬였다.
- 울리 슈틸리케(★○)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기 이전에도 성과는 별로 없었지만,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면서는 2015년 AFC 아시안컵 등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갓틸리케'라는 별명까지 얻고, 그의 축구는 늪축구로 불릴 정도로 2016년 여름까지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2016년 가을부터 시작된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부터는 갑자기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선수 발탁과 인터뷰[56] , 약팀을 상대로 좋은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 점 때문에 서서히 신뢰를 잃어 갔다. 결정타로 월드컵 본선 진출까지 어렵게 만들면서 2017년 6월, 결국 경질되었다. 경질된 후 중국의 톈진 터다 감독을 맡게 되었는데, 이 때 K리그 득점왕이었던 조나탄을 데리고 왔지만, 그럼에도 강등권에서 고군분투하는 등 톈진에서도 전혀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 위르겐 클린스만(★●) - (감독으로서의) 첫 커리어였던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아서는 성공적인 리빌딩으로 대성공을 거두었으나[57] , 후에 FC 바이에른 뮌헨 감독을 맡았을 때는 구단과의 불화 및 전술 부재로 인한 성적 부진으로 인하여 단 한 시즌도 못 넘기고 전격 해임되었다. 그 이후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써는 2013년 골드컵 우승과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의 16강 진출 등 호성적을 거두면서 이때까지는 좋았으나, 그 이후에 2015년 CONCACAF 골드컵 및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에서의 몹시 부진한 성적 및 잦은 미국 축구 무시 발언과 그로 인한 미국축구협회 및 메이저 리그 사커 등과의 갈등으로 인하여 차츰 평가가 좋지 않아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북중미 최종예선에서 초장부터 2번이나 패한 것과 동시에 영 좋지 않은 경기력 등이 화근이 되면서 결국 해고되었다. 그런데 후임자인 브루스 아레나가 자국을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키지 못하면서 결국 클린스만의 안목이 더 옳았다는 식으로 재평가되었다. 이후 헤르타 BSC 감독으로 19-20 시즌 중에 부임했으나, 성적 부진과 팀과의 불화 때문에 한 시즌도 다 못 채우고 76일만에 사퇴하면서 클린스만의 지도자 잔혹사는 현재진행형으로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 이안 러쉬
- 자이르지뉴
- 젠나로 가투소(★)
- 존 반스
- 존 알로이지(★)
- 지안프랑코 졸라
- 지쿠(★) - 지쿠 재팬 시절 초기에는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우승을 견인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2006 FIFA 월드컵 독일 본선에서 조별리그 1차전 상대였던 호주를 상대로는 8분 사이에 3:1로 자멸하였고, 2차전 크로아티아전에는 전설적인 슛까지 나오는 OME스러운 경기를 펼쳤다. 결국 3차전에서 모국을 만나 4:1로 깨지면서 열도는 멸망했다.
- 치로 페라라
- 케니 달글리쉬(★)
- 케빈 키건(★)
- 토니 애덤스
- 토마스 샤프(★●)
- 티에리 앙리
- 파비오 카펠로(★)
- 파울로 완초페(☆) - 자국팀 클럽에서의 감독 생활은 실패, 이후에 코스타리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으나, 2015년 여름에 발생한 보안요원 폭행 사건으로 인하여 감독직을 사퇴하였다.
- 파울루 벤투(★●)
- 파비오 칸나바로
- 페르난도 이에로(●) -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 조별리그에서는 1승 2무를 거두고 어렵게 16강에 간 뒤에 16강에서는 개최국 러시아를 상대로 해서 승부차기 끝에 탈락하면서 우승후보급의 팀에게는 호성적이라고 볼 수가 없는 성적을 낸 이후에 사퇴하였다. 하지만 이것을 가지고 무조건 이에로를 무능하네 뭐네 할 것은 아닌데, 사실 이에로는 전임자의 갑작스런 해고로 인하여 급히 감독직을 맡게 된지라 팀을 다 파악할 시간도 많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 폴 개스코인
- 폴 스콜스
- 폴 인스
- 프랑크 데 부어(★)
- 프랑크 레이카르트(★) - 초기에는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을 유로 2000 4강에 올리고, FC 바르셀로나 감독으로 리그 2연패,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굵직한 성과를 거두면서 명장 반열에 올랐지만, 이후로 선수단 장악 실패 등 문제점을 노출하며 두 시즌 연속 무관의 부진으로 경질되었고, 이후에는 변방 리그에서도 실패하며 빅클럽으로의 복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 필 닐
- 필리포 인자기
- 헨릭 라르손
- 호르스트 흐루베쉬(●) - 3살 동생인 울리 슈틸리케처럼 지도자로서 뚜렷한 족적이 없다. 다만, 2016 리우 올림픽 남자축구에서 은메달을 따내는 성과는 거뒀다.
- 호세 마리아 구티 - 사실 부진했는지 못하는지는 논란이 있다. 아직 초짜 감독이고 첫 커리어인 UD 알메리아에서 생활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기서 초짜 감독 치고는 엄청난 성적을 냈다. 하지만 당시 알메리아가 리그 자동 승격을 노리는데 중간중간 본인의 용병술 미스로 순위 상승 기회를 놓치고 경기를 말아먹기에, 경질되었다. 그러나, 알메리아는 당시 4위로 충분히 승격 가능성이 남아있던 상태였다.
- 호베르투 팔캉
-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4.3. 농구
- (☆) - 동부 감독 시절 문제를 일으킨 이후 KBL에서 제명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첨부로...
- 김상식(●) - KT&G 코치에서 감독 대행까지의 아픔이 있다. 이후 대구 오리온스 시절에는 08-09 시즌 한 시즌도 다 채우지 못하고 성적 부진으로 사임한 아픈 경험이 있다. 물론 그 부분은 심용섭 전 단장이 저질러 둔 게 하도 많아서 어느 정도의 쉴드는 있다. 이 때문에 버티기용 대행 전문이라는 오명이 있다. 그나마 대표팀 감독으로써 2019 농구 월드컵 예선에서 10승 2패로 무난하게 본선 진출을 확정지으면서 다시 평가가 좋아지고 있는 중.
- 김유택(○) - 중앙대학교 감독 시절 스카우트 실패까지 겹치며 감독 재임 2년 동안 플레이오프에 단 한 번도 올라가지 못했다.
- 김진(★●) - 전설의 고려대 - 삼성전자 출신 명 스타이자 명 슈팅 가드 출신. 삼성전자에서 우승 2회를 했지만, 중앙대 - 기아 트리오에 밀리면서 준우승을 당한 비극의 스타 출신. KBL 출범 이후 동양 오리온스의 창단 코치를 거쳐 감독으로 신화창조를 한 뒤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대표팀 감독으로 20년만에 금메달을 이룬 뒤 LG 세이커스의 KBL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을 했던 명장이다. 만년 승점자판기라고 조롱받던 동양을 맡아서 감독으로써 첫 발을 내딛은 이후 팀을 1시즌만에 꼴찌에서 우승으로 이끎은 물론 재임 내내 6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개근하면서 중흥기를 만들었고, SK 감독을 맡은 이후로는 첫 시즌에 만년 하위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었지만, 다음 시즌에는 성적이 추락하게 되었고, 결국 2009~2010 시즌 중 사임하게 된다. 이후 2011년 LG의 감독을 맡으며 그 이전 KGC의 이상범처럼 탱킹이 대세가 되었는지 허재와 강동희에 이어 후배 전창진이 했던 탱킹 논란으로 인해 비난을 들었고, 김종규를 영입하면서 팀을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까지 이끌었지만, 가장 중요한 챔피언결정전 우승에는 실패했다. 동세대 한솥밥이자 경쟁했던 대선배인 이충희와 비슷한 케이스이자 너무 착하면서도 갑작스런 주전 고집으로 인해 과도하게 비판받은 불운의 명선수 출신이자 성과에 비해 과도한 비판을 받은 명장. 그래도 완전 실패 사례는 아니고 꾸준히 재검토를 받는 사례이다.
- 대니 에인지 - 대신 에인지는 프런트가 되더니 그 분야에서는 두각을 나타낸 것도 모자라 2018년 현재 보스턴 셀틱스의 중흥기를 이끌고 있다.[58]
- 댄 이젤(☆★) - 덴버 너기츠의 레전드 선수 출신으로 1992~1995, 1999~2001년까지 감독을 역임하면서 1994년 플옵 1라운드에서 8번 시드의 기적으로 지도력을 인정받았으나, 팀은 더욱 부진에 시달리고 이젤 감독 본인이 고집불통인 탓인지 선수들과의 불화도 잦은 데다 설상가상으로 2001년 12월 11일에 열린 샬럿 호네츠전 패배 이후 그에게 야유를 날린 히스패닉계 관중에게 “야, 넌 좀 짜져서 맥주 한잔이나 더 마셔. 이 멕시코 X꺄.”라고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는 바람에 구단으로부터 보름 만에 해임 조치를 받았다.
- 데릭 피셔(☆) - 뉴욕 닉스 감독으로 지내면서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고 경질된데다가[59] 2017년 음주운전 혐의로 체포되었다.
- 루크 월튼(☆) - 로스엔젤레스 레이커스 감독으로 부임한 3년 동안 단 한차례도 포스트시즌에 올려놓지 못했고, 새크라멘토 킹스 감독직으로 부임한 지 얼마 안된 시점에 리포터를 성폭행한 혐의로 법정 소송을 당한 것이 확인되었다.
- 매직 존슨
- 모리스 칙스 - 1980년대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레전드급 선수. 은퇴 이후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등지에서 감독을 맡았으나 성적은 선수 시절에 못 미쳤다.
- 문경은(★●) - 서울 SK 나이츠 감독으로 부임한지 3년차 시즌까지는 애런 헤인즈를 앞세워 괜찮은 성적을 내긴 했지만, 헤인즈가 빠진 이후부터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하위권으로 떨어진데다 전술적인 면에서도 혹평을 받으면서 SK 팬들에게 거센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다만, 헤인즈가 돌아온 2017-18 시즌에는 오히려 성적이 대폭 오르고 우승까지 하면서 팬들을 다소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60] 하지만 18-19 시즌은 다시 심한 부진에 빠져버렸다. 그러다가 19-20 시즌은 다시금 최고의 모습을 보임과 동시에 정규시즌에서 DB와 함께 공동 1위를 하였지만, 감독 9년차인데도 색깔있는 공격 농구에는 못 미친다. 이후 20-21 시즌은 다시 오랜만에 부진한 모습이다.
- 바이런 스캇 - 선수 시절에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으나 정작 감독으로서는 선수 시절에 한참 못 미친다. 특히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무려 두 팀에서 팬들에게 돌캇으로 까이며 금지어로 등극되었다.
- 박성훈(☆) - 고교 코치 시절 폭행 문제로 신한은행 코치에 부임한지 3일만에 사의를 했다.
- 박수교 - 현대전자 시절 및 기아 - 모비스 감독 시절의 흑역사로 유명하다. 두 팀 모두 농구대잔치 시절 명가였다[61] . 추가로, 가장 압권은 전자랜드 감독 및 단장으로 있던 시절로, 일명 전자랜드를 개그랜드로 만든 장본인. 특히, 그가 단장으로 있던 2005-06 시즌은 한 시즌 역대 최다 46패(8승)라는 신기록을 수립하며 전자랜드 역사상 빼도 박도 못할 최악의 흑역사로 남았다.
- 박종천(★☆) - KBL에서는 심하게 무능한 모습만 보여줬지만, WKBL에서는 현대 하이페리온의 첫 우승을 이끌었고, 만년 꼴찌였던 부천 KEB하나은행을 2위로 끌어올리는 등 약팀을 강팀으로 끌어올리는 수완을 발휘하여 농구팬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결론은 KBL 한정. 하지만 첼시 리 신분세탁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었던 것이 탄로나면서 다시금 비난을 받고 있다. 여기에 하나은행에서의 업적도 모두 무효 처리.
- 밥 쿠지
- 밥 페티트
- 빌 핸즐릭 - 1980년대에 덴버 너기츠의 주전 슈팅가드/스몰포워드로 활약. 그는 팀이 암흑기에 빠지던 1997년부터 친정팀의 감독을 지냈으나 11승 71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거두고 한 시즌만에 해임되었다.
- 시드니 몽클리프
- 신기성(★●) - 16-17 시즌과는 달리 17-18 시즌에는 7연패를 했을 때는 이 시즌 후 100% 물러날 가능성이 높았지만, 그 이후 7연승으로 반전하며 삼성생명을 밀어내고 3위로 올라섰다. 결국 14-15 시즌 이후 3년만의 플레이오프 진출이 유력해지면서 다시 평가가 좋아지는가 싶더니만, 18-19 시즌 역대 경기 최소 득점인 34점에 18-19시즌 최다 점수차 패배 1, 2위[62] . 여기에 신한은행이 14년 만에 최하위로 떨어지면서 팀 역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전락한 것은 덤.
- 신선우(★●) - 박수교와 이충희와 함께 현대전자의 레전드. 현대 - KCC 시절의 최고 명장 출신. 하지만 이후의 행보들은 영 좋지 않았다. 정들었던 현대 - KCC를 떠난 이후 도전들은 그야말로 시련사였다. 추가로 당시 우승은 조성원의 유무에 따라 극명하게 갈리기도 했다. 별명은 신산이었는데, 추가로 계산가라는 달갑지 못한 별명도 있다. LG에서는 우승 실패, SK에서는 완전 몰락과 함께 호불호가 뚜렷하다. 또한 LG와 SK 시절에는 간판 선수들과의 불화도 유명했다. 즉, 선수를 신뢰하기보다 자신의 전술과 전략만 과시해서 망해버린 케이스.
- 아딜잔 - 1980 ~ 90년대 중국 농구를 대표하는 포인트 가드. 은퇴 후 빠이의 감독을 맡았으나 2016-2017 시즌, 7승 31패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최하위까지 추락하고 말았다.
- 아이재아 토마스(★) - 토론토 시절까지만 해도 괜찮았으니 뉴욕에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얼 왓슨
- 엘진 베일러
- 웨스 언셀드
- 윌리스 리드
- 유영주
- 이상민(●) - 다만, 15~16 시즌에 팀을 정규리그 5위로 포스트시즌에 올려놓으며 어느 정도 나아진 평가를 받고 있다. 외국인 몰빵이라는 이야기가 좀 있는 편이긴 해도 이후 2016~2017 시즌 들어 준우승도 하면서 준수한 모습을 보이는 중. 그도 그럴 것이 무엇보다도 이 인간이 저질러 둔 것들이 너무 많아 이걸 수습하기 바쁜 상황에서 감독으로 부임했던 사정도 있었던지라... 하지만 라틀리프가 나간 2018-19 시즌부터 다시 비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드래프트에서 가드를 많이 뽑으면서 상대적으로 빅맨 뽑기에 소홀했던 것이 뎁스 참사로 이어지면서 삼성의 팀 성적 부진과 함께 많이 비판받고 있는 상황이다.
- 이옥자 - 배구의 조혜정과 비슷하다. 게다가 우연의 일치이기라도 한지, 두 사람은 절친이기도 하다.
- 이충희(★) - 농구 한정으로 위에 상술한 박수교와 함께 프로와 대학팀 다 통틀어서 봐도 스타 플레이어 출신으로써 어디서고 완벽하게 실패한 지도자. 프로에서는 LG 창단 겸 초대 감독이자 오리온스 감독 및 동부 감독을 맡았는데, 순서대로 보면 LG에서는 창단 돌풍 신화의 중심에 있었다. 97-98 시즌 정규리그 2위. 그러나 그게 다였다. 이후부터 제대로 꼬이기 시작했고, 07-08 시즌 오리온스에서는 4승 22패[63] 와 13-14 시즌 동부 13승 41패로 그야말로 지도자로써는 제대로 실패했다. 후배 김진보다 더 심한 주전 고집이 실패 원인인 셈이다. 그나마 김진은 능력이라도 있다는 호평이라도 있지 이충희는... 아마 또한 고려대학교 감독과 동국대학교 감독 시절도 흑역사.
- 임정명
- 정덕화(☆) - 청주 KB 스타즈 감독 시절, 김영옥에게 음주를 강요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 정인교(★)
- 정재근(☆○) - 2014년 연세대학교 감독 당시 선수들에게 욕설을 퍼부어 큰 논란을 일으키다가 결국 감정을 제어하지 못했는지 나중에는 심판 판정에 항의하며 가격하려하다가 밀치기와 박치기를 하는 사고를 터뜨려버렸다. 이 사건의 여파로 연세대 감독직에서 사임하였고, 연세대 측에서도 그에게 자체적으로 직무 정치 처분을 내렸다.
- 제이 험프리스
- 조동현(●) - 현역 시절은 뛰어난 수비로 유명했으나, 감독으로서의 능력은 최악 그 자체. 하지만 2017년 들어서 상위팀들을 닥치는 대로 때려잡고 타짜 기질도 발휘하는 등 비교적 선전하고 있어서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으나 17-18 시즌에는 전시즌보다도 더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서 자팀팬들에게 당장 사퇴하라고 무지막지하게 까이고 있었다만 18년도 들어서 점차 전술 공부도 하고 있고,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있어서 예전에 비하면 무작정 졸장으로 몰아가기엔 무리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결국 시즌이 끝나고 서동철의 부임과 함께 물러나고 말았으며, 현대모비스의 수석코치로 돌아오면서 다시 코치부터 시작을 하게 되었다.
- 조성원(●) - 이조추 트리오를 이루며 현대 왕조의 주역으로 이끌었던 현역 시절과는 달리 지도자로서의 경력은 초라하다. 특히 2008년 KB국민은행 감독 시절에는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한 시즌도 다 채우지 못하고 성적 부진으로 사임해버린 흑역사도 있었을 정도다. 그러나 수원대학교 여자부 감독으로의 성적과 모교인 명지대학교 감독 시절 체질 개선으로 재평가. 하지만, 명지대학교 감독 시절과 시즌 MVP를 했던 창원 LG 세이커스 감독으로는 모두 성적을 내지 못했거나 못내고 있다. 스타일을 보면 유스 캠프 지도자형.
- 조지 마이칸
- 진효준(☆)
- 추승균(★●) - 정식 감독으로 부임한 첫 해에 정규리그 우승을 했지만 선수빨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고, 2년차에 주전 선수들이 부상으로 결장한 것도 있었다지만, 전시즌 우승팀이 순식간에 최하위로 추락하면서 몹시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 3년차에는 웬일로 호성적을 냈지만, 호성적에도 불구하고 이조차도 선수빨이라는 평과 함께 여론은 영 좋지 않았고, 심지어 일부는 추승균식 농구가 노잼이라고 까기까지 하였다. 게다가 역시나 1위를 해야만 되는 선수진으로 3위를 찍어 버렸고, 그것도 모자라서 그래 졸전 끝에 4강 PO에서 탈락하기까지 하면서 무능함을 제대로 입증하고 말았다. 결국 18-19 시즌에도 초반부터 부진하면서 자진사퇴 형식으로 짤렸다. 이후 스테이시 오그먼 뿐만 아니라 미리 준비해 놓은 후임자가 좋은 성적과 좋은 전술을 선보이면서 얼마나 추승균 시절이 KCC빠들에게 있어서는 흑역사였는지를 증명하였다.
- 커트 램비스
- 케빈 맥헤일(●) - 명감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망쳤다고 보기에도 애매하다. 초반에는 망했지만 휴스턴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마지막 해에 경질당했다.
- 클라이드 드렉슬러
- 폴 웨스트팔(★)
- 프랭크 존슨
- 허재(☆★●○) - 그 동안의 종합적인 성적들만 놓고 보면 명장이라고 평가할수 있겠지만, 2018년 아시안 게임 때 아들들에 대한 무한 사랑 논란과 라건아 몰빵 등의 비판을 받으며 동메달을 얻는 데 그쳤을 뿐이다. 비판 여론이 가세지자 결국 아시안 게임 종료 후 사퇴하고 말았다. 뒤집어 말하면 아시안 게임 때의 실패를 제외하면 성공 가도를 달려온 감독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호성적에도 불구하고 KBL에서 감독상 하나도 못 받았던 흑역사도 있다. 사실 전체적으로 보면 감독이나 단장보다는 대표이사(사장)가 딱 어울리는 스타일이다.
- 현주엽(●○) - 역대급 초보 무능 감독. 2018년 기준으로 감독 1년차이긴 하지만, 워낙 농구계를 떠난지 오래된 상태였는데, 은퇴 이후 5년이자 방송 해설 위원을 포함하면 무려 8년간 농구와 거리를 둔 상태였다. 은퇴 이후 투자사기까지 겹치면서 이미지 자체도 좋지 못했다. 이렇게 너무 오래된데다가 차근차근 코치 경력조차도 쌓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하게 프로팀 감독으로 나가는 실수와 삽질로 인해 전반적으로 경기 운용 면에서 미숙함을 넘어 무개념을 보이며 전임 감독 시절보다도 발전된 성적을 내지 못하며 매우 고전하였다. 이로 인해 전임자가 명장이었지만 졸지에 재평가를 받는 사태까지 벌어지기도... 그래도 조동현과는 달리 아직은 처음이므로 더 지켜보자는 의견도 간간히 있었지만, 2018년 2월, 조동현과의 17~18 시즌 마지막 대결에서 32점차라는 처참한 결과로 대패하는 굴욕을 남겼고, 이로써 사실상 1년차고 뭐고도 없이 자팀 팬들은 물론이고 프로농구 팬들에게 있어서는 사실상 완벽한 금지어로 취급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18-19 시즌은 웬일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줄 알았더니만 중반기부터 DTD 중이었다. 그러다가 1월 중순 경부터 다시 포스트시즌 안정권에 또 들어서는 등 롤러코스터를 상당히 많이 타고 있다가, 결국 단독 3위를 확정짓고 4시즌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을 성공시킴과 동시에 단일 시즌 홈 최다 승까지 기록하는 등 점점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는가 싶더니 19-20 시즌에는 전력 대약화와 함께 다시 심각한 부진에 빠지며 거센 비판을 받고 있으며, 결국 시즌을 뒤에서 2등으로 마감하였고 계약 만료와 함께 재계약도 더는 못 하고 감독직을 쓸쓸하게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예능 프로그램 컴백.
- 1950 ~ 60년대에 NBA에서 활동했던 플레잉 감독 상당수.
4.4. 배구
- 강만수(★)
- 김상우(★) - LIG 감독 당시엔 봄배구를 했던 감독이고[64] , 우리카드 구단 역사상 감독으로선 최고의 성적을 기록한 감독이지만, LIG 시절엔 곽승석을 거르고 정성민을 지명하는 오판을 저질른 적이 있고, 우리카드에서도 개인 성적만 좋았지, 정작 가장 중요한 팀 성적은 지금도 시궁창이다.
- 김세진(★●) - 신생 팀이던 OK저축은행을 창단 두 시즌만에 리그 2연패로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지만, 용병 제도가 트라이아웃제로 바뀌어 로버트랜디 시몬을 내보낸 3년차 이후에는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는데다 2016-17 시즌에는 전년도 우승팀이 순식간에 꼴지로 주저앉아 버리자 일부 배구팬들 사이에서는 시몬빨이라며 까이고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배구팬들 사이에서 팀 선수 구성의 문제다 vs 감독 본인 역량의 문제다에 대한 대립이 좀 있었기에 김세진 감독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평도 적지 않았으나, 송명근을 비롯한 부상 선수들이 복귀한 2017-18 시즌에도 꼴지에 머물러 있고 성적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자 팬덤 사이에서는 시몬빨로 완전히 낙인된 신세로 전락했다. 여기에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었던 외국인 브람마저 이유도 없이 돌연 교체하면서 본격적으로 비판 여론이 매우 많아졌다[65] . 그러나 18-19 시즌은 웬일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가 했더니 중반부부터 5위로 DTD했고, 그렇게 5위로 시즌을 마쳤다. 결국 시즌 종료 이후 사퇴했다.
- 김철수(☆)
- 김호철(☆) - 대한민국 남자 배구 대표팀 감독을 역임 중이던 2019년 4월, 2020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대표팀과의 계약 조항을 무시하고 OK저축은행 구단에게 감독직을 맡고 싶다고 먼저 제안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구설수에 올랐고, 결국 불명예 퇴진하게 되었다. 축구의 훌렌 로페테기와 매우 흡사하다.
- 박미희(★●☆) - 리그가 운영 중인 단체 구기 종목 가운데 최초로 통합 우승을 달성한 여성 감독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타이틀[66] 도 있다지만, 이미 17-18 시즌의 심한 부진 및 본인의 지도 방식에서의 문제점 때문에 한순간에 졸장으로 추락해 버린 경향도 없잖아 있었고, 게다가 잘 나가던 20-21 시즌 후반 초에는 김연경-이다영 갈등 논란은 물론 이재영-이다영 학교폭력 논란 두 가지 논란들로 인하여 한순간에 선수 관리를 제대로 못 했다는 비난을 받으며 팬들 사이에서 당장 나가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순식간에 여론이 상당히 나빠졌다.
- 박삼용(★)
- 박희상(☆) - 드림식스 감독 시절 너무 강압적인 작전타임과 훈련 방식, 특정 정당 가입 유도 등의 사고를 쳤던 탓에 선수단이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불명예 사임하고 말았다.
- 서남원(★●) - 도로공사 감독 시절에는 팀을 챔피언결정전에 올리기도 했고[67] , 이후 인삼공사 감독 시절에는 이성희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망쳐놓은 팀을 16-17 시즌에 180도 달라진 팀으로 바꿔놓으며 팬들의 칭송을 받았으나, 17-18 시즌은 5위로 포스트시즌 완전 실패, 18-19 시즌은 기어이 꼴찌로 시즌[68] 을 마치며 서남원의 지도력에 의문을 품은 팬들이 무척 많아졌다. 그래도 코보컵 우승 경험도 있고, 신인 발굴의 대가답게 신인들이 좋은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위안일 따름이다. 게다가 서남원은 배구계에서도 인품도 좋기로 유명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구단 프런트가 여배 6개 구단 중 지원이 가장 형편없는 프런트라는 점을 감안하면 혼자 개고생 하는 것이다. 결국 19-20 시즌 초반, 건강 문제로 사임하고 말았다.
- 신선호(☆)
- 신영철(☆●★) - 프로 원년 시즌이던 2005년, LG화재 감독 당시 하현용을 비롯한 소속 팀 선수를 폭행하여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배구팬들 사이에서는 사커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얻었다[69] . 그러나 대한항공 감독 시절엔 10-11 시즌 대한항공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정규시즌 우승으로 챔피언결정전에 진출 시킨 감독으로 평가가 다시 바뀌긴 했지만, 한국전력 감독 시절에는 노장 선수 위주의 기용으로 세대교체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우리카드에서는 과감하게 팀을 개편[70] 하며 18-19 시즌 5라운드 들어가면서 2위까지 올라간데다 최대 1위까지 넘볼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가며 우리카드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며 또다시 평가가 좋아지고 있다. 또한 19-20 시즌에는 최초로 정규리그 우승까지 하였다.
- 신진식(★●) - 한마디로 따지자면 이 배구 문단에서 TOP3 안에 들 것이다. 게다가 쓸데없는 트레이드도 너무 잦았는데, 예를 들어서 정동근을 현금 트레이드로 버리고 김정호가 단지 키가 작다는 이유로 트레이드 시킨 일. 그나마 받아온 선수도 미필 30대 라이트였다.
- 이경석(☆) - 경기대학교 감독 시절 선수 폭행 의혹이 있었으며, LIG손해보험 감독 시절에도 뚜렷한 성적를 내지 못하고 경질되었다. LIG에서 경질된 이후로는 KOVO 경기감독관으로 지냈다.
- 이도희(☆●★) - 부임 첫 해인 17-18 시즌에 현대건설을 봄배구에 진출시키긴 했지만, 이미 시즌 개막 전부터 염혜선을 내보내는 과정 및 김주하 방출 과정 잡음 및 정미선 등록 누락 사건으로 팬들의 엄청난 비난을 받았으며, 특히 양효진, 김세영, 황연주 등까지 있는데다 FA에서 황민경까지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3위라는 기대 이하의 성과에 흥국생명 1팀을 제외하고는 상대전적에서 열세 혹은 동률에 불과했다. 이것도 그나마 기업은행에게만 전 시즌 열세에서 동률일 뿐 흥국 제외한 나머지 팀들은 우세에서 동률 혹은 열세로 뒤바뀐 것도 모자라 6라운드 전패 포함 정규시즌을 6연패로 끝냈으며, 플레이오프에서도 경기력이 영 좋지 못하였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주전 세터가 문제가 있음에도 오히려 다른 엄한 선수들이 문책을 당한다는 것이다. 사실 성적은 둘째 치고 부임하자마자 벌어진 팀내 오만 논란들만으로도 이미 등재 조건은 충분했다. 초반 반짝 성적 및 포스트시즌 진출 성공 등으로 묻혔을 뿐... 또 흥국생명 코치 시절에도 06 코보컵 도중 선수단과 충돌하며 무단 이탈 사건을 유발하여 구단에서 해임된 전력이 있다. 거기에 17-18 시즌 후 김세영의 FA 과정에서 잡음만 일으키며 센터진을 무너뜨렸고, 특정 선수에 지나치게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이며 논란을 유발한 결과 18-19 시즌 개막 후 10연패를 당하며 1, 2라운드 전패에 지난 시즌 포함 구단 최다 연패 기록을 갱신하는 수모를 당하며 사실상 구단 역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등극했다. 그래도 2019년 이후로는 탈꼴찌라도 하면서 시즌을 마쳤지만 어쨌든... 그러나 19-20 시즌에는 18-19 시즌과는 180도 달라진 아주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정규리그 우승까지 하였으나, 박미희와 마찬가지로 선수단 운영에서 논란이 터졌고, 김연견의 부상으로 1위에서 잠시 이탈한 것 때문에 선수단 운영 논란이 나오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19-20 시즌 막판에 고유민의 시즌 도중 무단이탈 하는 사건이 발생한데다 2020년 7월 고유민의 자살 사건이 터졌고, 고유민의 일기장에서 무시하는 언행 등이 폭로되며 코칭스태프 및 선수단 관리에서도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여론이 점점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결국 이것이 악영향이라도 끼쳤는지 20-21 시즌은 심히 부진하고 있다.
- 이상렬(☆) - 대한민국 배구 국가대표팀 코치로 재직 중이었던 2009년 박철우를 폭행하여 무기한 자격 정지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11-12 시즌부터 KOVO 경기감독관으로 일선에 복귀하였고 2012년부터는 경기대학교 감독을 맡았는데, 경기대학교 전임 감독도 똑같은 폭행 논란을 일으켰던 이경석이었다는 것이 아이러니.
- 이성희(★) - GS칼텍스 시절에는 정규리그 우승과 챔피언결정전 우승도 하는 등 지도력을 인정받았으나, 인삼공사에서는 용병의 어깨를 아작낼 정도의 심각한 몰빵배구 자행에 성적도 심하게 곤두박질한 것은 물론 15-16 시즌 도중에는 헤일리 스펠만을 대놓고 디스하는 발언까지 일삼으면서 성적은 물론 인격으로도 빵점이라는 사실까지 증명하며 인삼공사, 나아가 V리그 여자부 다 통틀어서 역대 최악의 감독으로 단단히 낙인이 찍혔다.
- 이호 - 이 쪽은 감독은 물론이고 코치로서도 평가가 좋은 편이 전혀 못 된다. 월드 리베로 출신이었지만, 그가 거쳐갔던 팀들은 이상하게 리시브 성공률이 크게 떨어지는 모습만 보였다.
- 임도헌(★●) - 감독 2년차가 되던 2016-2017 시즌, 팀 역사상 최초로 플레이오프조차 가지 못했다. 하지만 단장인 신치용의 간섭도 삼성의 몰락에 한몫했다는 평도 있어서 평가하기 이르다라는 의견도 있었는데, 결국 자진사퇴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듬해 신진식이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면서 임도헌은 더 비난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 후에 신진식에 신인드래프트 뻘픽 어이없는 트레이드 등등에 이유로 신진식보다는 훨씬 괜찮은 평이다.
- 조혜정 - 대한민국 4대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 여성 사령탑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성적 부진으로 단 한 시즌만에 자진사퇴하고 말았다. 국내 4대 프로스포츠 여성 감독으로서 사상 최초로 통합우승을 달성한 박미희와 매우 대조적이다.
- 하종화(☆●) - 현대캐피탈 시절의 성적 부진에다가 동명고 감독 시절 입시비리가 적발되어 기소, 벌금 1500만원을 선고받았다. 물론 현대캐피탈 시절의 부진에 대해서는 프로팀에서의 지도자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을 감독으로 앉히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다는 말도 있지만...
- 한장석(☆)
4.5. 미식축구
- 바트 스타 - 1975년부터 1983년까지 8년간 친정팀 그린베이 패커스의 감독[71] 으로 활동했으나, 포스트시즌은 고작 1번밖에 못갔다.
- 포레스트 그렉(★) - 빈스 롬바르디 시대 그린베이 패커스의 주전으로 활약했던 레전드급 선수. 1980년에 신시내티 벵갈스의 감독으로 부임한 뒤 1981년에 팀을 슈퍼볼에 진출시켜 지도력을 인정받은 뒤 1984년부터 친정팀 패커스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감독생활 내내 총 75승 85패로 팀을 말아먹고 4시즌만에 쫓겨났다.
4.6. 아이스하키
4.7. 탁구
- 현정화(☆)
4.8. e스포츠
- 강도경(★○) - 아래의 박정석과 유사한 사례로, kt에서 스타 2 팀으로 처음 감독을 지냈던 한 해는 팀 우승도 시켜주고, 선수들 개인리그 우승도 몇 번 시켜주는 등 나쁘지만은 않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팀 배틀코믹스 감독을 하면서부터 밑천이 다 드러넜다.
- 김요한(★) - 퀘이크 3 프로게이머로 이름을 날렸었지만, 서울 다이너스티의 출범 시즌을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로 마감하게 한 코치진으로 평판이 추락했고, 결국계약 종료로 사실상 잘렸다.
- 박정석(★) - 선수 시절에는 영웅토스로 불리며 스타크래프트의 레전드로 불리는 선수 중 하나였으나, 선수 은퇴 이후 LoL 감독직을 맡게 되면서부터 평가가 급전직하했다. 정확히는 2팀 체제 시절의 나진 소드/나진 실드까진 평가가 꽤 좋았다. 그도 그럴 게 양 팀이 전부 결승에 올라가 본 경험이 있는 데다 각 팀간 전력도 꽤 좋은 편이었으니... 그러나 다진 퍼펙트 실드부터 평이 슬슬 안 좋아지더니, 이후 나진 스폰서가 사라진 e-mfire부터 악평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이후 CJ 엔투스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그 악평은 정점에 달하게 되었다.
- 배성웅, 이정현 - 둘 다 현역 시절엔 그야말로 한 시대를 풍미한 정글러와 서포터였지만, 코치로써는 무너져 가는 팀을 수습해내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며 자신들의 친정팀을 몰락시킨 주범이 되었다.
- 장민철 - 아래에 기재된 해설자에도 해당되어 있다. 선수 시절에는 손꼽히는 프로토스 유저로 불리는 선수 중 하나였지만, 은퇴 이후 콩두 몬스터의 코치진을 맡게 되었으나, 롤챌스 강등 2회로 인해 2018 스프링 이후로 팀을 나갔다. 이어진 스포티비 게임즈 해설에서도 엄청난 혹평을 받고 있다.
- 최연성(★☆) - 현역 시절엔 스타크래프트의 레전드로 불리는 선수 중 하나였고, 선수 은퇴 후로도 코치로써의 역량을 인정받은 것은 물론, 감독으로써도 스타크래프트는 물론 리그 오브 레전드에 이르기까지 두 종목의 공식 리그에서 자신이 맡은 팀을 모두 결승에 올려놓는 기염을 토한 명장이지만, 스타크래프트 감독 시절에는 무차별적인 도발로 구설수에 오른 적이 많으며, 리그 오브 레전드 팀 감독으로써는 선수 관리 능력의 부족을 보여주며 팀의 평판을 알아서 깎아먹고 있다. 그래도 극적으로 진출한 롤드컵에서 극적인 반전으로 8강에 진출하며 이전까지의 평가를 뒤엎는가 싶더니 기대 이하의 경기력만을 보여주며 8강 진출팀 중 유일한 3:0 완패를 당했다.
4.9. 번외 사례
4.9.1. 명선수는 명해설자도 될 수 없다
유명 선수들의 은퇴 후 2번째로 많이 하는 업종이 해설 업종이다. 하지만 해설을 하면서도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드러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우선 아주 당연한 이유로, 스포츠 선수들이 '말까지 잘하는' 축복받은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해설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물론 종목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야하겠지만) 그 본인의 지식을 얼마나 시청자들에게 조목조목 정리해서 전달하느냐이다.
이런 점에서 선수 출신 해설자들은 분명 아는건 많은데 본인 스스로 말이 꼬여서 어버버하는 모습은 해설자로서 그리 좋지 못하다. 그 다음으로는 아무래도 선수 시절 본인이 뛰던 팀에 대한 애정이 있을수밖에 없는 나머지 본인 친정팀을 과하게 편파적으로 해설한다거나, 혹은 본인 종목에서는 인정받았으나 다른 종목에서 해설하면서 타 종목 이해도가 떨어져서 비판받는 경우도 있다.
- 강민(★●) - 본인 종목은 잘 했으나 타 종목으로 가서 말아먹은 사례 1.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해설자로써는 선출답게 빼어난 분석력과 노력하는 면모가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리그 오브 레전드의 해설자로 전업한 후로는 평가가 급격히 추락했다.[72]
- 고인규(★●) - 본인 종목은 잘 했으나 타 종목으로 가서 말아먹은 사례 2. 선수 출신임에도 발성, 딕션, 전달력까지 백점만점인 아주 축복받은 케이스다. 그래서 출신 종목인 스타크래프트 2 해설을 하던 시절에는 명품 해설자였으나, 리그 오브 레전드 종목으로 옮기고 나서는 이해도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본인 친정팀인 SKT에 대한 편파적인 발언들로 구설수에 올랐다. 그나마, 2018 스프링 시즌 말미에 들어서면서 이해도가 부쩍 성장한 모습을 보였고, 서머 시즌엔 스스로 편파해설 이미지 등의 문제를 자각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며 본인에 대한 평가를 뒤집는데 성공한 케이스.
- 고정운
- 김경기
- 김남훈
- 김동수(★●)
- 김병지
- 김사니
- 김상훈
- 김소희(☆)
- 김승현
- 김영
- 김유택
- 김일두 - 2018~2019 시즌 플레이오프 때 편파 해설 문제로 말이 많았다.
- 김재현
- 김태형(★☆) - 선수 시절에는 1998년 레더 챔피언에 올랐고, 스타리그 해설 후에도 김캐리, 엄전김 등으로 유명세를 떨쳤으나, 날이 갈수록 해설에 대한 평가가 떨어지면서 질타를 받았다. 그리고 해설직을 떠난 후 팬들이 지어준 김캐리와 본인의 전 직장인 게임 해설가를 내걸고 유흥업소를 운영하여 물의를 일으켰고, 현재는 e스포츠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되었다.
- 마이클 오언
- 마해영
- 박수교(☆●)
- 박용욱(●)
- 박종천
- 박지성 - 목소리(...)에 대한 지적들이 많은 듯 하다.
- 박지은 - 골프.
- 박지은 - 바둑.
- 박태민(●)
- 박찬숙
- 박희상
- 백인천
- 변정일
- 봉중근
- 샤킬 오닐
- 서용빈
- 서재응
- 서정환(●)
- 석주일
- 손혁
- 송종국(★) - 본인이 수원 삼성 소속이었는지 FC 서울과 경기할 때 편파 해설 문제 때문에 말이 많았다. 물론 수원과의 슈퍼매치는 아니었다.
- 송진우
- 신기성
- 신태용 - 발음 문제가 여러차례 지적되고 있다.
- 심재학
- 안경현
- 안치용
- 양상문
- 양준혁(○●)
- 염종석
- 우지원
- 유상철
- 이광길
- 이도희
- 이병규
- 이상렬(☆)
- 이상윤(●)
- 이순철(★●)
- 이숭용
- 이슬기
- 이승엽(●)
- 이종열
- 이천수
- 이충희(☆)
- 임창용
- 장민철(☆) - 위에 기재된 e스포츠 문단에도 해당. 거기에 리프트 라이벌즈 중계에서까지 논란을 일으키며 평가가 바닥을 치고 있다.
- 장성호
- 장윤희
- 전이경
- 정수근(●)
- 정은순
- 정찬성 - 맥그리거 vs 메이웨더전 해설을 맡았는데 변정일과 같이 말아먹었고, 특히 복싱의 룰에 대해서 잘 모른다.
- 제갈성렬
- 조성원(☆)
- 조원희
- 진필중
- 최태욱
- 최희섭(☆) - 비단 해설 실력 뿐만 아니라 가정사 문제로도 말이 많다.
- 한유미
- 허정무 - 그 유명한 슛정무가 대표 사례이다.
- 현정화(☆)
- 홍수환
4.9.1.1. 반례: 명선수도 명해설자가 될 수 있다
물론 해설을 하면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들도 있다. 보통 해설자에게 필요한 발음의 정확함이나 공정성있는 해설이 기본으로 딸려오며, 여기에 추가적으로 선수 시절의 이해도를 바탕으로 한 해설 내용으로 호평을 받거나 경기를 관전하면서 이해하고 따라가기 위해 노력한 결과를 내는 것.
- 개리 리네커
- 게리 네빌 - 선수 시절 맨유의 레전드이자 은퇴 후 해설자로서도 인기가 많은 감독. 다만, 위에는 지도자로는 실패한 사람 중 하나로도 이름이 올라와 있는데, 발렌시아에서 처음으로 감독에 도전했으나, 결과는 대실패. 그 이후에는 해설자만 계속 집중하고 있다.
- 그랜트 힐
- 김대겸
- 김대환 - 선수 출신 종합격투기 해설가 영어에 능통하여 엘리트라는 칭호를 얻었다. 몇몇 문제점이 있긴해도 전문성 있고 퀄리티 높은 해설과 군더더기 없고 깔끔한 진행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렸다.
- 김동광
- 김동성
- 김동우
- 김동준
- 김두환
- 김미현
- 김배인 - 비방송인 치고는 깔끔한 진행과 시원한 극딜 멘트 등으로 호평받는다. 해외 해설도 병행하는 등 경험치를 계속 먹는 중. 다만 해설가에서 선수로 복귀한 이후 성과는 좋지 않았다.
- 김병현
- 김상우
- 김선우
- 김세진
- 김용희
- 김은혜
- 김정민
- 김택훈
- 레지 밀러
- 박미희
- 박찬호
- 변연하
- 서아람
- 서장훈
- 손승락
- 스티브 스미스
- 심수창
- 안상미
- 안정환
- 야마모토 마사
- 원우영
- 유영주
- 이동현
- 이상훈
- 이숙자
- 이영표(☆) - 이광용과 호흡을 맞추며 러시아 월드컵 국내 중계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또한 특유의 분석력이 호평을 들으며 문어영표 등 별명이 생겼다. 다만 멕시코전 중계에서의 발언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 이원희
- 이정수(○)
- 이종범
- 이준호(☆)
- 이현우
- 장소연
- 전기영
- 전태규
- 전태양 - 현역 선수이면서 해설까지 맡고 있다.
- 정민철
- 정진경
- 제이미 캐러거
- 조성환
- 조해리
- 진선유
- 차명석
- 최나연
- 최원호
- 하승진
- 현영민
- 현재윤
- 현주엽
4.9.2. 명선수는 명행정가도 될 수 없다
유명 선수들의 은퇴 후 3번째로 많이 하는 업종이 구단 운영이나 협회 행정 업종이다. 하지만 행정을 하면서도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드러나는 경우도 많이 있다.
- 김응용(★☆)
- 김주성(☆) - 2017년 배임 혐의로 기소되었다.
- 김호(☆) - 대전 시티즌 대표이사로 부임하면서 과거 불미스럽게 팀을 떠난 인물의 복귀라는 이유로 팬들의 반발을 샀으며, 부임 이후에도 비대한 선수단 규모와 폭행 사태 등 각종 구설수에 오르며 방만한 구단 운영을 이어갔으며, 결국 신인선수 불법행위 논란이 일면서 불명예스럽게 퇴진하였다. 자세한 이야기는 김호/비판 및 논란도 참조.
- 김호곤(☆) -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직을 맡을 당시 2017년 히딩크 감독 선임 논란으로 불명예 퇴진하였다. 지도자와 행정가로서의 평가가 극과 극인 케이스.
- 다보르 슈케르 - 유로 2016 당시 체코 vs 크로아티아의 경기에서 크로아티아 훌리건들이 홍염을 경기장에 투척한 이유도 바로 슈케르의 행정능력 부족 때문이다.
- 데릭 지터
- 리웨이펑
- 미셸 플라티니(☆)
- 박수교 - 전자랜드 시절의 행적들이 아주 유명하다.
- 박찬숙(☆)
- 스티브 커
- 신선우(☆) - WKBL 총재 시절 저지른 행태만으로도 충분하다.
- 양상문 - LG 트윈스 단장 자리에서 라이벌 팀의 주전 외야수였던 김현수를 잡아오고, 트윈스 역대 최고의 외국인 투수인 타일러 윌슨을 영입하는 등 성과가 있었지만, 외국인 타자로 지나치게 많은 근육량으로 인해 부상 위험이 큰 아도니스 가르시아를 영입하면서 우려를 낳았고, 시즌 초 햄스트링 부상 후 드러누우며 빠른 교체를 선택해야 했음에도 끝까지 교체하지 않으며 역대급 DTD의 원흉이 되며 좋던 평가를 다 까먹었다. 단장으로 딱 1년만 있었기 때문에 사실 평가가 쉽진 않지만, 오히려 딱 1년만 하고 바로 타 팀 1군 감독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호평이 나오기 쉽지 않은 게 당연하다는 게 LG 팬들의 의견.
- 에릭 아비달
- 오치아이 히로미츠
- 올리버 비어호프
- 울리 회네스(★☆) - FC 바이에른 뮌헨의 회장으로써 2010년대 초반까지는 정말정말 좋았으나, 탈세 혐의로 교도소까지 갔다가 석방되는 등 2010년대 중반부 이후로는 정말 좋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이후 2020년에 또 트레블을 기록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 이영무(☆) - 고양 자이크로 FC의 이사로서 실질적인 실세로 팀을 장악했으며, 그 결과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팀이 심하게 망가지자 무책임하게 팀을 해체시켰다.
- 이천수
- 이회택(☆) - 2017년 배임 혐의로 기소되었다.
- 정민철
- 조계현 - 2017년 팀의 통합우승 이후 수석코치에서 단장으로 영전했는데, 이 때문에 그나마 김기태 감독의 기행을 어느 정도 저지할 수 있던 사람이 사라지면서 팬들의 걱정을 자아냈고, 2018 시즌 이후 팀 내 이닝 소화 5위의 노익장 임창용 방출, 로저 버나디나의 대체자로 영입한 제레미 해즐베이커의 부진 및 퇴출, 전병두 조롱 건으로 물의를 빚은 홍종표를 신인 2차 2라운드에 지명하는 등으로 평이 나쁜 편이다.
- 파벨 네드베드(☆) - 이 쪽은 불륜(간통) 문제로 말이 많은 편[73] .
- 필 잭슨
- 하산 살리하미지치 - 2019/20 시즌 들어 이적 시장 실패, 알렉산더 뉘벨 영입 과정에서 벌어진 마누엘 노이어와의 갈등으로 평판이 엄청나게 나쁘다.
- 허정무
- 홍명보
- 홍수환
- 황보관
- 히로오카 타츠로
4.9.2.1. 반례: 명선수도 명행정가가 될 수 있다
물론 행정가를 하면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들도 있다.
자세한 것은 밑의 '아래 번외: 나는 더 큰 그림을 본다' 참고.
5. 예외: 되던데?
'''물론''' 예외는 언제나 존재한다. 프란츠 베켄바워나 요한 크루이프, 지네딘 지단, 래리 버드, 디디에 데샹, 로베르토 만치니, 펩 과르디올라 등처럼 전설적인 선수 시절 경력에 못지 않게 감독으로서도 훌륭한 업적을 쌓은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아래에는 바닥, 카리스마, 전술, 명감독 사사 등 여러 케이스로 분류해놨지만 실제로 하나 하나 따지면 여러 요인들이 겹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명감독에게 사사받지 않은 경우라고 해봐야 실제로는 선수 시절에 유수의 명감독들과 만나며 그들의 지식과 재능 전술 등을 흡수해서 사사받지 않았다고 하는 정도로, 특별히 모시고 다니거나 하는 등의 경우가 사사받았다고 할 정도에 들어간다.
5.1. 바닥에서부터 시작하는 레전드
말 그대로 선수 시절엔 전설이었지만 지도자 때는 바닥부터 다진다는 마음으로 어시스턴트 코치, 하부 리그, 마이너리그, 유스 팀과 2군 팀 감독을 하고 차근차근 올라가서 1군 감독이 된 경우다.
오기 아키라, 안토니오 콘테, 팻 라일리, 루디 톰자노비치, 제리 슬로언, 안준호, 지네딘 지단, 김동광, 이지훈, 박항서, 조진호, 하석주, 체사레 말디니, 조반니 트라파토니, 안드리 솁첸코, 파티흐 테림, 욘 안데르센, 스테이시 오그먼, 히로오카 타츠로, 이나바 아츠노리, 미켈 아르테타, 하라 다쓰노리 등이 여기에 속한다.
5.2. 선수 시절의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휘어잡는다
많은 기회를 잡는다는 위의 설명대로, 레전드 출신의 선수가 감독이 될 때 선수 시절 카리스마를 그대로 간직한 채 선수단을 휘어잡아 단합을 일으키는 유형의 지도자들이다. 물론 단순히 카리스마로 휘어잡는것 말고 부드러운 덕장 스타일로 잘 통제하는 것 역시 포함.[74] .
유프 하인케스, 돈 넬슨, 김응용, 조 토레, 루이스 아라고네스, 비센테 델보스케, 빌 러셀, 래리 버드[75] , 디에고 시메오네, 오 사다하루, 노무라 카츠야, 호시노 센이치, 유재학, 지네딘 지단[76] , 시니사 미하일로비치[77] , 김가을, 제이슨 키드[78] , 박항서, 로베르토 만치니, 디디에 데샹, 박진섭, 펠릭스 마가트[79] , 박세리, 마리우 자갈루, 프랭크 램파드, 카를로 안첼로티, 신태용, 미켈 아르테타, 나가시마 시게오, 하라 다쓰노리, 올레 군나르 솔샤르 등이 여기에 속한다.
5.3. 난 사실 전술을 짜는 것도 잘 한다
선수 시절에도 날리고, 감독으로도 뛰어난 전술을 구사한 이른바 사기 캐릭터들.
'''요한 크루이프''', '''프란츠 베켄바워''', 카를로 안첼로티, 펩 과르디올라, 남기일, 카와카미 테츠하루, 히로오카 타츠로, 모리 마사아키, 오치아이 히로미츠, 쿠도 키미야스, 제이슨 키드, 레니 윌킨스, 닥 리버스, 빌 레임비어, 최태웅[80] , 박주봉, 이상범,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에메 자케, 체사레 말디니, 가레스 사우스게이트[81] , 디디에 데샹, 송선호, 안준호, 안드레, 김정남, 김호곤, 로날드 쿠만[82] , 최용수, 신태용, 최강희, 세뇰 귀네슈, 이나바 아츠노리, 한스디터 플리크, 필 잭슨, 루이스 엔리케 등 감독으로도 커리어가 아주 화려한 유형이다. 대체로 선수 시절에 '경기를 보는 시야가 넓다', '지능적인 플레이를 한다', '동료를 활용할 줄 안다' 등과 같은 아주 좋은 평가들을 받았고, 이러한 좋은 특징들 덕분에 위대한 선수가 된 경우이다.
5.4. 명장에게 배워서 명지도자가 된다
선수 시절을 성공적으로 보낸 뒤에 명장 밑에서 보좌를 하면서 전술을 배우기 시작해서 본격적으로 지도자로도 성공하는 사례들.
한스디터 플리크, 하라 다쓰노리, 체사레 말디니, 지네딘 지단, 스티브 커, 박항서[83] , 박동혁, 미켈 아르테타, 류중일, 디디에 데샹, 김영만, 김승기 등이 이에 해당한다.
5.5. 번외: 나는 더 큰 그림을 본다
선수 시절에 날렸지만 감독으로서 실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뜻밖에 프런트로 취임해서 팀을 강팀으로 이끄는 케이스도 있다. 물론 레드 아워백, 팻 라일리, 조지 할라스나 오 사다하루, 프란츠 베켄바워, 한스디터 플리크[84] 등처럼 선수 → 감독 → 프런트의 테크를 타면서 모든 단계에서 성공을 거두는 슈퍼 사기급 케이스도 있지만, 감독으로서는 실패하거나 감독기간을 거치지 않고 프런트로서는 성공을 하는 경우도 있다.
유벤투스의 잠피에로 보니페르티나 미식축구 NFL 볼티모어 레이븐스의 GM 아지 뉴섬, 덴버 브롱코스의 존 엘웨이처럼 감독테크를 타지 않고 프런트로 성공하는 경우도 있고 세이부 라이온즈,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의 네모토 리쿠오나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의 제리 웨스트, 보스턴 셀틱스의 대니 에인지처럼 감독으로서의 성적은 아주 특출나지 않았지만 프런트에 취임해서 왕조를 구축하는 경우도 있다. 더 나아가 미셸 플라티니, 펠레 등처럼 감독 경력이 전무하거나 미흡함에도 축구나 체육 행정계로 진출하여 이름을 날리기도 한다. 대구 FC 사장인 조광래도 대한민국 국대에서는 실패했지만 대구 FC 사장으로 부임한 후 2016년 K리그 챌린지에서 대구를 3년만에 승격시키는데에 일조하였다.
프런트로서 팀의 전력을 구축하여 강팀으로 이끄는 것은 현장에서 감독으로서 팀을 지휘하는 것과는 또 다른 일이라 종종 명감독 출신이 구단의 단장이나 사장자리에 앉았는데 팀을 말아먹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프로야구의 히로오카 타츠로. 히로오카는 선수 시절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주전 유격수로서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감독이 되어서도 야쿠르트와 세이부의 두 구단을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끄는 수완을 발휘했지만 90년대 중반 치바 롯데 마린즈의 단장 자리에 취임해서는 팀을 완전히 말아먹었다.
특히 1995년 시즌 바비 발렌타인이 MLB식 팀 운영을 도입하면서 선풍을 일으키고 85년 이후 10년 만에 팀을 리그 2위로 10년만의 A클래스로 이끄는 성과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발렌타인의 MLB식 팀 운영이 맘에 들지 않았던 히로오카는 시즌 내내 발렌타인과 충돌과 갈등을 거듭하다가 결국 1년만에 해임하고 대학 후배였던 에지리 아키라를 감독으로 앉혔는데 결국 롯데는 이듬해 5위로 추락해버렸고, 선수들과도 심한 갈등을 일으켜 히로오카는 결국 해임당했다. 그리고 롯데가 다시 리그 A클래스로 복귀한건 발렌타인이 팀에 복귀한 10년 후였다.
또 주니치 드래곤즈의 오치아이 히로미츠는 선수로써 88년 리그 우승을 이끌면서 팀의 4번타자로 맹활약했고, 감독 시절에는 재임 기간 동안 팀을 상위권으로 이끌며 4번의 리그 우승, 그리고 결정적으로 팀을 '''2007년 53년만의 일본시리즈 우승''' 으로 이끈 명장이지만, 프런트로써는 팀을 대차게 말아먹으면서 그동안 쌓아둔 자신의 명성을 말아처먹고 있다...
명감독이 프런트가 되고 나서 무능하다고 비판받는 경우는 MLB에도 있는데, 토니 라루사가 그 주인공이다. 시카고 화이트삭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을 거치면서 현대 야구의 투수운용의 기본을 정립했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명장으로 이름을 날린 라루사이지만,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사장으로 취임해서는 처참한 실패를 맛보는 중이다. 현지의 평가도 감독으로서의 업적은 인정하지만 프런트로서는 영 아니올시다에 가깝다.
특히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명선수가 명감독은 되기는 힘들어도 명감독이 명프런트가 되는 것은 쉽지 않을까 하는 것인데 이는 감독의 소위 '용병술 및 경기 운영'과 GM으로서의 '(선수 선발 등을 포함한) 팀 구성과 구단 운영'을 비슷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이 구단을 이끌기 때문에 구단주나 사장이 낙하산인 경우가 많고, 자연스레 감독이 전권을 틀어쥔 경우가 많았기에 생겨난 인식이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나라도 단장이나 사장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앉히는 것이 점점 상식이 되어가는 중. 현장에서 선수를 투입하고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것과 구단 경영진의 입장에서 팀에 도움이 될 선수를 뽑고 주어진 예산 내에서 경영을 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이다. 이는 최근 MLB에서 비경기인 출신 단장들의 성공 사례가 늘어나는 것으로도 잘 나타난다. 명감독이 프런트에 취임해서 실패하는 이유 또한 명선수가 명감독이 되기 어려운 이유와 매우 비슷한데 가장 큰 이유는 '경기 운영과 구단 운영'을 동일선상에서 놓고 보는 시각과 "이거 옛날 감독할 때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면서 감독의 경기 운영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거기에 개입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는 경우에 있다. 이것이 경기인 출신 프런트가 빠지기 쉬운 가장 큰 함정이다.
또한 용병술 및 선수 선발과 관련해서도 팀에 주어진 선수들을 잘 활용하는 것과 아직 포텐셜밖에 없는 신인들을 드래프트에서 선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임에도 감독 시절의 소위 '선수보는 눈'을 그대로 투영하여 자기 입맛에 맞는 선수 위주로 선발하는 과정에서 로스터에 불균형이 오고 팀이 수렁으로 빠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사람마다 각자 적성에 맞는 포지션이 있고 적재적소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면 팀도 잘되고 개인도 잘된다는 얘기.
물론 아이재아 토마스나 박수교, 엘진 베일러 등처럼 감독으로서도 프런트로서도 모두 실패(...)한 케이스도 얼마든지 있고, 감독을 하지는 않았지만 맨시티의 레전드 선수 출신으로 1994년에 친정팀의 회장을 맡아 팀 운영에서 무능함을 보여 1996년과 1998년에 각각 2부 - 3부 리그로 떨어뜨리는 바람에 회장직에서 쫓겨난 프랜시스 리 같은 사례도 있다.
6. 기타
사실 이는 비단 스포츠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든 통용되는 말이다. 대표적으로 정치 쪽에서는 유능했지만 실패한 지도자들이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 중엔 최규하, 미국 대통령 중에서도 율리시스 그랜트나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등과 같이 타 분야에선 유능했지만 대통령으로서는 실패한 경우도 있다. 군사 쪽에서는 초급 장교일 땐 괜찮은 평가를 받았지만 승진한 이후 온갖 삽질을 거듭한 츠지 마사노부 같은 경우도 있다. 명연주자가 명강사는 되지 못하는 경우나, 대학에선 연구 실적과 교육 실적이 따로 노는 교수들도 볼 수 있다. 역사에 등장하는 뛰어난 학자들이 정작 훌륭한 스승(인성 뿐만이 아닌 교육 실력 면에서)은 되지 못한 사례도 적지 않다.
위에 예를 든 국내 예 중 야구, 농구, 축구 등은 국내에서는 인기 스포츠인데, 전세계를 따져 보면 약한 쪽에 든다. 선수나 감독이나 차범근, 박지성 같은 한두명 정도를 빼면 선수나 지도자나 기량은 국제 수준에 비해 전반적으로 낮다. 단체 운동이라도 수준 높은 지역 출신이면 좋은 결과를 낸다. 예를 들어 평창올림픽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단은 남자는 최정상인 NHL 선수 출신의 백지선 감독, 여자는 캐나다 출신 지도자 세라 머리 등이 이끌며 기용 이전과 다른 발전을 보여주었다.
위에 든 국내에서 유명한 예는 대부분 단체 운동이다. 즉 단체 운동의 경우에는 팀 전체 운영, 작전 능력이 중요하지 선수 때 기량이 지도자가 되는 데 큰 비중이 아니므로 유능한 선수=유능한 지도자 등식이 성립하기 어렵다, 반면에 양궁, 당구, 사격 같은 개인 종목들은 당연히 좋은 선수 출신이 잘 가르치고 좋은 결과를 낸다. 프로 스포츠가 없는 엘리트 스포츠이기에 대중적인 인기는 한없이 제로에 수렴하나 전세계 최강으로 꼽는 양궁 같은 경우에는 선수 출신 우리 나라 감독들이 전 세계 양궁 팀 감독을 많이 맡고 있으며, 팀 성적도 맡기 전과 후가 확 차이날 만큼 달라지고 있어서 올림픽 등 국제 대회 때는 한국 출신 감독 동창회가 된다. 실업 선수, 심지어 고교 선수가 타 국가대표를 능가하고, 국가대표 되기가 올림픽 메달 따기보다 어려운 게 양궁이니, 감독이 되어서도 좋은 결과를 내고 있는 것.
7. 관련 문서
[1] 물론, 명선수의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다르다. 해당 스포츠를 모르는 사람도 이름을 알만한 선수 기준이냐(예:박찬호, 손흥민) 모든 사람이 알지는 않지만 해당 스포츠팬이라면 다 알 정도가 되느냐 등의 기준차이가 있다. 대체로 지도자 테크는 후자가 더 많다.[2] 2017년 2부리그인 케이리그 챌린지를 맹폭하고 있는 브라질 공격수 말컹의 경우 본래 브라질에서 그저 그렇게 기회를 못 받고 있는 선수였지만 국가대표 공격수 출신의 감독 김종부가 발목 각도, 몸의 자세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상세하게 지도해준 탓에 경남에서 날아올랐고 이런 김종부 감독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임대생 신분으로 중국과 1부 리그에서 쏟아지던 이적제의를 거절하고 경남에 완전이적했다.[3] 사실 이건 김수겸이 성인이 아닌 감정적인 18세 소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수겸 감독으로 뛰었던 라이언 긱스나, 선수겸 감독으로 뛰면서 팀내 최고수비수/리바운더로 아예 우승까지 한 빌 러셀같은 경우 스스로 뛰면서도 냉정한 판단력을 유지했다. 반대로 말하면 선수로 뛰지 않더라도 지나치게 감정적이거나 승부욕이 과한 사람은 감독을 하기 무리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마이클 조던인데, 그는 당연히 농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지만 그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누구도 그가 감독을 절대 못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고 본인도 시도해본 적도 없다. 현역시절 그는 거의 병적으로 강한 승부욕으로 끊임없이 스스로와 동료들을 몰아세웠다. 그러나 그는 이 과정에서 동료들을 때론 잔인하다시피 까고 자극했다. 이때는 필 잭슨이란 사람관리하는 달인이 있었고, 조던이 아무래도 어쨌거나 그는 선수단의 관리자가 아닌 선수단의 일원이었기에 감독과 코치진이 이를 조율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선수단을 총괄해야할 감독이 못한다고 마구 욕하고 비꼬고 괴롭히는데 선수들이 버텨날 수 있을까? 또한 구단주로서 경기를 보다가도 선수들이 못하면 흥분해 마구 욕하는 사람이 자기가 감독하는 선수들이 삽질하는걸 침착하게 보고 대응책을 생각해낼 수 있을까? 결국 조던을 역대 최고로 만든 무시무시한 승부욕이 감독으로서는 그의 발목을 잡게 되는 것이다.[4] 다만 이는 어떤 스포츠이냐에 따라, 리그의 성향이 어떠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월클 두명이랑 동급이라는 말도 들었으며 재계약으로 루니의 연봉이 자기보다 많아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던 알렉스 퍼거슨 같은 명장의 사례도 있다.[5] 리베라의 통산 포스트시즌 성적이 8승 1패 42세이브 평균자책 0.70인데, 유일한 1패가 이 경기였다. 포스트 시즌에 약하기로 소문난 랜디 존슨이 승리투수였단게 재미있다. 물론 이때 월드시리즈 3승만 놓고 보면 랜디 존슨이 킹왕짱같으나, 커트 실링이 더 공헌을 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으며 월드시리즈 MVP도 실링과 공동수상이었다. 일단 실링은 1,4,7차전 3번 등판했는데 4차전도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다. 다만 4차전은 김병현이 승리를 날려먹은 것인데, 여하튼 월드시리즈에서 무려 3일 휴식 후 등판이라는 모험을 감행했음에도 호투를 했을 뿐더러, 가장 중요하고 부담이 큰 1차전과 7차전 선발투수란 점에서 실질적으로는 실링이 가장 잘했다고 보는 의견도 많다. 물론 둘 다 MVP감인 것은 다들 동의한다.[6] 호날두를 떠나보낸 레알은 한때 챔스진출이 불가능하다고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실제로 호날두가 있었을 때 레알은 챔스에서 3연패를 할 정도로 강했으나, 호날두가 떠난 뒤에는 2년 연속 챔스 16강에서 광탈했다.[7] 염경엽 본인도 스스로 자신은 잘해봐야 어느 팀을 가도 수석코치로 끝날 것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8] 2020년 기준 두산 베어스의 現 감독인 김태형은 커리어 스탯은 다소 떨어지는 수비형 포수라는 약점 외에는 팀 주장도 했었고 라커룸 리더 역할도 했으며 1995년 한국 시리즈 우승에도 기여하는 등 두산의 나름 프랜차이즈 선수라고 볼 수 있기에 염경엽만큼 특이한 사례는 아니다. 다만 완전 성골이 아닌 이유는 김경문(김경문은 타 팀에서 선수 뛴 적도 있다)과 같이 다른 팀(SK)에서의 코치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9] 혼자서 구단을 살 정도는 안되면 컨소시엄 형태로 일정한 지분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다. 오히려 레전드 출신이기 때문에 투자지분에 비해 입김도 큰 편이고.[10] 구체적으로는 경량급 기준이다. 현역시절 카렐린의 체급인 130kg급 기준으로 본다면 문자 그대로 오직 카렐린 본인밖에 쓴 적 없는 기술.[11] 특히 스타선수들의 경우 자신의 능력과 재능으로 후보선수로 거의 강등된 적이 없는 경우가 많이 때문에 이러한 정신적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12] 멀리 볼 것도 없이 당장 2020년 K리그1에 있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FC 서울만 해도 답이 나온다.[13] 시카고 불스에서 6번, LA 레이커스에서 5번 우승을 차지한다. 참고로 선수 시절에는 뉴욕 닉스에서 2번 우승했다.[14] 심지어 이쪽은 아예 '''미국공군사관학교 생도''' 출신이다. 물론 사관생도 출신 NBA 선수 역시 데이비드 로빈슨을 필두로 일부 존재하긴 한다.[15] 이 쪽은 프로 선수 경력 없이 아마추어 무대에서만 활동하다가 은퇴 후 은행원으로 전직한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16] 프로 선수 출신이 아니라고 한 것은 이들 역시 대부분이 유소년 시절에 해당 종목의 선수로 뛰었던 경력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저들 중 김태환의 경우에는 중학교 때까지는 야구선수로 활동하다가 고등학교 때 뒤늦게 농구선수로 전향했는데, 프로는 커녕 대학조차도 진학하지 못한 경우이고, 최인철은 대학 졸업 후 대전 시티즌의 입단 테스트를 받을 예정이였으나, 테스트 전날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목과 허리를 크게 다쳐 이른 나이에 선수 생활을 끝내야만 했던 경우이다. 정정용, 김학범 역시 대학 졸업 후 프로팀에 콜업되지 못하고 실업팀에서만 선수생활을 했던 케이스이다.[17] 더군다나 2013 시즌과 2014 시즌의 경우 전 팀인 히어로즈가 포시 - 코시까지 진출한 것에 비해서 롯데는 12 시즌까지 포시 단골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두 시즌 연속 탈락해서 더더욱 비교되었다. 그나마 2013 시즌엔 탈락팀 역대 최고 승률은 찍었지만...[18] 다만 서진용, 채병용에 대해서는 혹사 논란이 있다.[19] 요즘은 백인천을 실시간으로 못 본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런지 백인천을 LG의 비밀번호를 연장한 이순철, 한화에서 세대교체를 등한시하며 암흑기의 시작을 연 김인식, 그 동안의 좋던 이미지 다 망치고 빙그레 - 한화 사상 유례없는 그룹감사(...)로 경질당한 김성근 등 별의별 잡다한(...) 졸장들과 묶어서 KBO 최악의 감독 몇대천왕 운운하는 경우가 많은데, 백인천은 단순히 성적이 바닥이고 팀 운용이 개판이라서 역대 최악의 감독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다. KBO 역사에 수많은 졸장들이 이름을 남겼으나, 그들 대다수는 방법이 틀렸거나 능력이 부족했을 뿐 어쨌든 고의로 팀을 망치려고 하지는 않았는데, 대놓고 팀을 망가뜨리는 것에 전념한 감독은 이 백인천만이 유일하기 때문이다.[20] 다만, 삼성은 후임 감독이 전권위임을 제대로 행사 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KIA는 2010년대 2번의 우승에도 불구하고 후임 감독들이 이렇게 생고생을 다 하는 걸 보면 그야말로 빼도 박도 못한다.[21] 참고로, 임창용은 1999년 71경기에 등판해 무려 138이닝을 소화하며 철저히 혹사당했는데 불구하고 망가지기는 커녕 오히려 일본과 미국까지 찍고 오며 40대까지 롱런했다. 이쯤되면 임창용이 유별난 것일지도...[22] 신용운의 경우 더욱 더 암울했는데, 이미 김성한 - 유남호 재임 시절부터 그렇게 굴려지다가 팔꿈치 인대 수술을 받아 이후에도 관리가 필요한 선수였는데도 불구하고 수술 후 재활을 하던 과정에서 4위 수성에 사활을 건 서정환이 급하게 당겨쓴 덕분에 어둠의 구렁텅이로 빠져버리고 말았다.[23] 물론 대졸 선수들이 나이를 이유로 검증도 없이 배제되는 추세를 생각하면 아주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당시 3년간 뽑은 선수들이 결국 이후 주전으로 점점 성장했다. 더 심하게 망하거나 1명만 대박이고 전원 쪽박인 지명연차도 있다는 걸 고려하여야 한다.[24] 사실 17 시즌은 이대호가 돌아왔을 뿐 갑자기 팀이 달라진 건 아니었고, 해외파 에이스들이 아무리 고군분투해도 안 되는 팀이 있었다는 점 등으로 인해 여전히 시즌 전 가을야구 후보군으로 롯데를 뽑는 야구인은 정우영 해설위원 이외엔 거의 없었다.[25] 대표적으로 노타니 사건.[26] 이런 점 때문에 기자들에게는 별로 좋지 못한 평을 듣기도 한다. [27] LG 트윈스와 공동 6위.[28] 특히 김응용 전 감독은 유례없는 개막 13연패, 최악의 평균자책점, 2년 연속 최하위 등을 경험하며 감독 말년에 큰 오점을 남겼다. 김성근 역시 임기 초반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마리한화 돌풍을 일으키며 재기를 노리나 싶었으나 128경기 체제가 아닌 144경기 체제에서의 그의 투수운용으로 인한 부작용, 프런트와의 지속적인 대립 등으로 잦은 구설수에 오르다 2년 연속 PS 진출 실패 후 시즌 중 경질로 임기가 끝나버려 야신 이미지마저 완전히 망가진 채 KBO에서 사실상 은퇴해 버렸다. 선술했듯 '으리' 때문에 베테랑 은퇴 문제조차도 왕회장님 눈치 보던 빙그레 - 한화 구단 역사상 그룹감사(...) 후 경질당한 케이스는 전임 감독이 최초다.[29] 어느 정도였냐면 6월 초반 롯데 상대 위닝 이후 약 2달간 위닝시리즈가 한 차례도 없었다.[30] 물론 이용규처럼 선수 본인의 과실이 더 큰 경우도 있고, 한용덕을 떠난 선수들 중 이적 후 유의미한 대체 선수 기여도를 기록한 선수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딱히 없는 것도 사실이다.[31] 그래도 다카하시는 통산승률 5할은 넘었다. 그리고 선수단과의 관계도 매우 좋았다.[32] 주니치 1981~1983, 타이요 1985~1986, 닛폰햄 1989~1991[33] 첫해와 사임 직전 관중 수를 비교하면 경기 당 9000명이나 증가했다.[34] 사실 2015년 6위도 올스타전 전까진 1위를 했으나... 그 뒤 DTD 시전으로... [35] 2017시즌. 그래도 승률은 .514를 기록했다.[36] 개막 후 4월까지 1할8푼6리[37] 말할 필요도 없이 팀의 주포였던 노무라 카츠야가 구단과의 불화로 난카이를 떠났고, 에나츠 유타카 등도 프런트의 이런 태도에 분노해 다른 팀으로 이적했다. 노무라를 잇는 또다른 주포 카도타 히로미츠는 1979년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주루능력 상실과 동시에 시즌을 망쳐버렸다.[38] 1991년엔 팀 도루 1위에 3명의 30도루 타자를 배출했고 1992년에도 1개 차로 팀 도루 2위를 기록했다. 이 기간 중 2년 연속 도루왕이 나왔고 특히 1992년 도루왕 사사키 마코토는 수위타자까지 획득하며 사상 2번째(1번째가 바로 히로세) 수위타자+도루왕 타이틀 동시석권 기록을 가져갔다. 다만 옥에 티로 1992년엔 팀 실책 1위를 기록하기도(...)[39] 안산 그리너스 FC와의 리그 2라운드 경기와 서울 이랜드와의 리그 3라운드 경기에서는 상대가 두명이나 퇴장당했는데도 필드골을 단 한골도 넣지 못하였으며, 그래도 서울 이랜드전은 이기기라도 했지 안산전은 후반 추가시간에 극장골까지 먹히면서 3:2로 졌다.[40] 2015년 4월 5:1 승리 이후로 리그 한정 슈퍼매치에서 1승도 못 거두고 있고(넓게 보면 FA컵 결승전에서 1차전 2대1 승, 2차전 1대2 패로 연장전 돌입, 승부차기로 이겨서 우승한 적은 있다. 그러나 승부차기는 무승부로 기록하기에 2019년 2월 현재 기준 15경기째 승리가 없다.) 전북에게는 둘의 사이가 틀어진 2016년부터는 단 1승밖에 챙기지 못하고 있다.[41] 정확히는 시즌 도중이던 여름에 사임하였다가 금세 다시 되돌아와서 남은 시즌을 다 치룬 뒤 사퇴.[42] 다만, 대전에서의 실패는 본인의 지도력 문제라기보다는 문제 투성이로 아주 악명높은 구단이 더 문제였는지라 이것을 가지고 유상철을 욕하는 대전 팬은 없다.[43] 이 후 리그 2위 전북 현대 모터스가 매수 사건으로 자격이 박탈되면서 어부지리로 플레이오프에 들어가긴 했다.[44] 윤정환의 경우 원인 항목의 2-4 케이스다. 더구나 사간 도스나 세레소 오사카 등의 경우에는 딱히 내세울 성적이 없는 팀이였지만, 울산 같은 경우에는 김정남 감독 시절 아시아의 깡패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으로 불렸고, 마침내 김호곤 감독 시절 아챔 무패 우승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남겼다. 자연히 선수들의 눈높이와 콧대 등이 높을 수밖에 없다.[45] 이회택 본인 역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에 있어서 부족함이 있었고, 프로팀 감독의 경우 1년마다 리빌딩이라는 명목으로 일부 선수들을 정리해야 하는데 정든 제자들을 그렇게 팀에 내보는 일을 하는 게 적성에 안 맞았다는 것이 큰 이유라고 한다.[46] 사실 16강이라는 성적에도 불구하고 (16강에서) 탈락한 이후에 이승우를 디스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 그때도 그렇게 평가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47] 독일, 브라질, 네덜란드, 포르투갈,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잉글랜드, 프랑스, 스페인.[48] 그조차도 같은 조였던 나이지리아는 한국보다 선수 네임밸류는 더 좋은 편이었다.[49] 사실 이건 그냥 말도 안되는 의견이다. 당장 월드컵 우승후보급이라 불리는 8강급 국가들[47] 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밑에 한국 제외 나머지 23개 팀만 봐도 선수빨로는 한국보다 더 나은 팀이 더 많다. 그나마 못한 팀이래봤자 같은 조에 편성될 일 없는 같은 아시아 팀들이나 아프리카 일부 팀들[48] , 그리고 운도 좀 좋게 올라온 슬로베니아나 뉴질랜드 정도? 그리스도 빅리그 선수들이 좀 있고, 그리스 리그의 명문팀 파나시나이코스 FC의 선수들이 다수 편성된 마당에 선수빨로 정말로 대한민국에 비해 떨어진다고 장담 못한다. 여유있게 이긴 덕에 결과론적으로 얕보는 거지.[50] 허정무의 경우는 선수 보는 눈이나 유망주 기용 능력만큼은 허카우터라는 별명답게 엄청나지만, 훈련 방식이 구시대적이라는 문제가 있었다. 이 때문에 선수 육성 능력보다 운영 능력이 중시되는 국가대표에서는 성적이 괜찮은 편이었지만, 클럽에서는.....[51] 마라도나 부임 당시 35세가 넘은 베테랑이라 뺐을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최종 엔트리에 포함된 마르틴 팔레르모는 사네티랑 동갑이다.[52] 이건 비단 아르헨티나 뿐만 아니라 브라질,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우승후보급 팀이라도 이런 식으로 경기를 치른다면, 볼리비아한테 패배당할 수밖에 없다. 실제 그 천하의 브라질도 1994년 월드컵 지역예선에 볼리비아 원정에서 0 : 2로 완패당한 적이 있을 정도다.[53] 사실 결과적으로 보면 푈러가 감독이던 시기가 그 이전들보다 더 암흑기라고 불리던 시기였다.[54] 만약 그가 슈틸리케를 대신하여 한국으로 오고, 월드컵에서 16강 정도의 성과만이라도 거두었다 치면 거스 히딩크 감독과 유사한 행보를 걸으면서 성공한 감독이라고 재평가되었을 것이다. 히딩크 감독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5:0으로 대파한 다음 한국으로 왔기 때문.[55] 다만, 그 때도 그다지 좋은 소리는 못 들었다.[56] "카타르의 소리아 같은 공격수가 없어서 졌다"는 말도 안 되는 인터뷰를 했다. 참고로, 이때 손흥민은 'EPL 이달의 선수상'을 타고 올 정도로 물이 올라 있었다.[57] 다만, 이것도 요아힘 뢰프가 전체적인 것을 다 맡고 클린스만 본인은 별로 한 것이 없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평가는 다소 떨어졌다.[58] 에인지는 다혈질인 성격이 발목을 잡은 경우. 선수 시절부터 유명했던 그 성격이 감독 시절에도 이어졌기 때문에, 피닉스 시절에는 견디다 못한 로버트 오리가 그 면전에 대고 수건을 던진 적도 있다. 오리는 말썽꾼 타입이 선수가 아닌만큼 그의 갈굼이 얼마나 심했을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 사실 오리는 선수 시절 초기에는 큰 키와 뛰어난 운동능력, 다재다능함으로 기대를 받던 선수였고, 무려 바클리를 보내면서 받아온 패키지의 핵심 선수 중 하나였기 때문에 더욱 기대가 커서 갈궜을 가능성이 높다. 이 사건 이후 오리는 트래이드된다. 선수들과 거리를 두고 운영하는 단장직은 잘하는 걸 보면, 농구를 보는 눈 자체는 매우 뛰어나지만 직접 코트에서 지시하는 감독을 하면 자기 성질을 못 이기는 성격으로 볼 수 있다.[59] 다만 이때는 필 잭슨이 트라이앵글을 굳이 쓰려는 아집이 너무 심했던지라 정상참작의 여지가 좀 있다.[60] 참고로 플레이오프에서는 애런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제임스 메이스로 대체해서 뛰었다.[61] 그나마 현전 시절은 당시 팀이 오합지졸이었던 점도 고려해야 하지만, 기아 시절과 전랜 시절은 어떻게 봐도 도저히 좋게 봐줄래야 봐줄수가 없다.[62] 1위는 KEB하나은행에 43:82 39점차 패배, 2위는 우리은행에 90:52 38점차로 대패했는데 90점은 OK저축은행이 94실점 이전 최다 실점이라 18-19시즌 최다 실점만 묻혔다.[63] 그조차도 성적 부진 때문에 단 한 시즌도 다 못 채우고 시즌 초에 자진사퇴 형식으로 해고되었다.[64] 이것도 4위로 간신히 준플레이오프로 올라간 것이었다. 현행 준플레이오프 규정을 이 때도 적용했다면 얄짤 없이 탈락이었다.[65] 김세진 감독 본인의 말에 의하면 분위기 반전을 위해 용병을 교체했다고는 하는데, 오히려 역효과만 났으니 문제라는 것이다.[66] 최초 통합 우승 달성은 18-19 시즌에 달성한 기록이다.[67] 다만, 챔피언결정전에 올려 놓고도 팀에 의해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으며 물러나야 했는데, 물러나는 것에 대해서도 팬들은 대부분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다.[68] 용병인 알레나 버그스마가 부상으로 시즌 반 이상 비운게 컸다.[69]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해 대한항공 감독으로 있던 문용관도 비슷한 사건을 일으켰다.[70] 대표적으로 노재욱 - 최홍석 트레이드.[71] 1980년까지 단장 겸임.[72] 리그 오브 레전드 해설을 3년 동안 하면서 게임이해도 및 전문성 있는 해설의 모습을 보여주기는 커녕, 틀린 말을 당당히 말하거나, 타 해설자의 말을 그대로 따라하기,특정 선수 및 특정 팀에 대한 과도한 편파해설, 캐스터 및 해설자의 말 가로채기 등등 총체적인 난국을 보여주었다. 후에 송병구,염보성과 합방 방송에서 공익 소집 해제가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LOL 해설 준비를 하게 되어서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하였다고 했는데, 이는 명실상부 업계 내 최고로 인정 받는 LOL 해설자 김동준, 선수생활 은퇴 후 LOL 해설자로서 최고의 입지를 다지고 있는 클템, 초창기에는 강민과 비슷하게 혹평을 받았으나, 자신의 장점으로 평가받는 발성과 더불어 끊임없는 노력으로 전문성 있는 해설로 조금이나마 평가가 나아진 고인규의 사례가 있는 것을 보면, 자신의 노력부족으로 인하여 스스로 입지가 추락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실제 LOL 해설 하차 후 메이저 게임 해설자로서 모습을 거의 보기 힘들어졌으며, 개인방송 및 행사, 간간히 이벤트 게임 해설을 맡고 있다고 한다.[73] 불륜 연인 대상이 자신의 딸보다 1살 많다고 한다.[74] 프로 선수는 어렸을 때부터 숱한 경쟁을 이겨내고 그 업계의 1%에 오른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존심이 굉장히 쎄다. 따라서 그 자존심 덩어리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명선수출신이 훨씬 유리하다. 여기의 예로 신태용은 성남 감독 시절 선수들한테 "나하고 여기 김도훈 코치하고 프로 기록을 합치면 200골은 되는데 너네 중에 이거 넘을 사람 있어? 있으면 나한테 대들어도 된다."는 말로 선수단을 휘어잡았다. 안첼로티 역시 덕장으로 꼽히는 감독인데, 선수 시절에는 의외로 한 성깔 했다고 한다.[75] 이 양반은 선수 시절 역대 톱10급 레전드, 감독시절엔 부임 첫해에 전 시즌 플옵 실패한 팀을 동부 2위로 이끌며 올해의 감독상, 3년차에 결승행, 페이서스 사장으로서 올해의 경영자상까지 타는 등 뭔가 손을 댔다하면 탁월한 성과를 내는 걸로 유명하다. 안타깝게도 선수시절 등부상 때문에 건강문제가 심해 감독으로는 불과 세 시즌밖에 재임하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그가 감독했던 페이서스는 2000시즌에 56승을 거두며 파이널에 올랐지만, 그가 떠난 직후엔 41승으로 추락했다. 물론 버드 뿐 아니라 인디애나의 베테랑 데일 데이비스, 릭 스미츠, 마크 잭슨 등도 같이 떠난 탓이 크지만...[76] 단적으로 말해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이전까지 그가 없는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이 얼마나 안습이었는지로 알 수 있을만큼 선수, 혹은 주장으로서 존재감이 컸다.[77] 이 분의 경우에는 군기보다도 자신이 더...[78] 야니스 아데토쿤보 항목에 일화가 있다.[79] 풀럼 시절의 삽질, 각종 구설수 등으로 인해 졸장으로 취급되는 경향도 없잖아 있지만, 분명 소방수로서의 업적 자체는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당장 실패한 시즌으로 오해받는 산둥 루넝 시절도 강등권에서 허덕이던 팀을 살려놓았다.[80] 사실 스피드 배구는 오래 전부터 세계 주류였지만, 한국에서는 15-16 시즌이 되어서야 현대캐피탈이 제대로 된 스피드 배구를 구사했다.[81]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그 동안 승부차기만 가면 패하던 징크스를 박살내며 오랜 암흑기에 빠져 있던 팀을 4강에 진출시키면서 명장이 되었다.[82] 발렌시아와 에버튼에서는 괴장의 모습만 보여주었지만, 아약스 시절 때만 하더라도 팀을 챔스 8강에 올려놓고 다른 팀들의 경우에도 상당한 성과를 보여주었다.[83] 이 쪽의 경우 명선수가 아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박항서 감독 문서에도 서술되어 있듯이 1985년 K리그 베스트일레븐에 뽑힌 적도 있었고, 1986년에는 주장으로써 팀의 준우승도 이끈 적도 있는 엄연한 명선수 출신이다.[84] 독일 대표팀 단장 시절에는 월드컵 우승 뮌헨 감독 재임 중에는 트레블을 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