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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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가수. 일본에서는 가수로 활동했으나, 2010년 6월 30일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2. 상세
1994년 10월 MBC 테마극장으로 데뷔했다. 이후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인지도를 높이고, 배우 이미지에 숨겨진 천부적 운동능력을 발휘하며 1990년대 말 KBS 최고의 주말 예능 프로그램인 출발 드림팀에서 에이스가 되어, 앞시기에 뜬 조성모[1] 와 함께 '얼굴도 예쁘게 생겼는데 운동도 엄청 잘하는 꽃미남 연예인'으로 뜨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으며, 2003년 드라마 올인의 OST <처음 그날처럼>을 불러 가수로도 입지를 다졌다.[2] 2002년 드라마 겨울연가에 주조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는데, 덕분에 2004년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대박을 치자 '욘사마'라 불린 배용준과 함께 일명 '욘하짱'으로 불리며 한류 스타가 되었고, 일본에서 가수로도 데뷔했다.[3] 한때엔 한류 4대 천왕의 4번째 자리를 두고 이병헌과 송승헌, 권상우와 함께 현지의 한류 팬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5년 연속(2005~2009) 한해도 거르지 않고 일본 골든디스크를 통해 상을 받았으며, 2007~2008 연속으로 '올해 최고의 싱글상', '베스트 아시아 아티스트상'을 받았다. 2008년에는 한국에 돌아와 드라마 온에어의 주연을 맡아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2009년에는 영화 작전에서 주연으로 활약했고, 박효신의 사랑한 후에 뮤비에도 출연한 바 있다.
3. 사망
2010년 6월 30일 새벽, 새 드라마 촬영을 앞둔 상태에서 강남구 논현동의 자택에서 목을 매어 숨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주변인들의 증언으로 미루어, 심경적 괴로움에 따른 충동적인 자살인 것으로 추정됐다. 아버지가 위암 투병 중이었다는 언급도 있었다. 자살 전에 아버지를 간호하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는 증언도 있다. 당시 이 소식은 일본에도 빠르게 퍼져나가, 그날 일본이 월드컵에서 파라과이한테 승부차기에서 져서 아깝게 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축구 소식 대신 박용하 자살을 속보로 내보냈을 정도로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2010년 10월 22일 밤, 위암으로 투병 중이었던 그의 아버지도 아들과 같이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났다.#
2011년 7월 22일자 <댄싱 위드 더 스타>에서 출연자 중 김규리가 그녀의 무대에서 박용하의 곡 <처음 그 날처럼>에 맞춰 룸바를 췄다. 김규리의 어머니가 투병 중일 때 그녀에게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물을 사 달라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처음 그 날처럼>이 수록되어 있던 올인 OST CD였던 것. 그리고 박용하는 그녀의 어머니가 자신의 노래를 좋아해 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머니의 장례식 때 발인까지 곁을 지켜주었고, 오래되지 않아 자살했다고 한다. 김규리는 "그가 어려울 때 그 곁에 있어 주지 못해서 미안했다"며 심경을 토로했다.
2013년 2월, 그의 영결식장에서 이렇게 슬퍼하던 전 매니저가 박용하가 사망한 후 일주일만에 그의 계좌에서 2억 4천만원을 빼내가려고 시도했고, 게다가 2,600만원 상당의 유품을 훔쳐간 사실까지 드러나 유가족에게 고발되었다. 매니저는 "나는 그 돈을 인출할 권리가 있었으며, 박용하의 유품은 생전의 정이 있어서 그리운 마음에 가져간 것"이라고 말하며 범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허나 결국 불구속 기소되었다. 그런데 2013년 5월 기사에 따르면 여전히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실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2014년 1월, 전 매니저 이 씨가 연예계에서 퇴출됐다.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는 상벌조정윤리위원회에서 박용하 전 매니저 이씨에 대한 채용금지 결정을 의결했다. 사실상 연예 매니지먼트계에서 퇴출당한 셈이다. 연매협 관계자는 “회원사는 물론, ‘매니저등록제’에 따라 이씨는 향후 매니저 활동이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관계자는 “이씨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업계 종사자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재판이 진행 중인 당시에도 모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매니저로 일했다”며 “이씨는 징역형 후에도 일본 등지에서 연예 매니저로 활동 할 가능성이 크다. 부적격 연예매니저인 이씨에 대한 정보를 일본 엔터테인먼트 관계사들에게 전달하고, 국내의 모든 엔터테인먼트 단체에도 알려 업계의 건실화를 도모할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항소9부(강을환 재판장)는 2014년 2월 13일 오전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원심을 깨고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피고의 범행이 미수에 그치고 훔친 물품을 모두 돌려준 점, 이미 충분한 사회적 비난을 받아 관련 직업을 유지하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해 실형은 과하다고 판단했다." 고 집행유예 판결 이유를 밝혔다.#
이와 관련하여 유족들이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인터뷰를 실시했다. 이 인터뷰에 의하면 훔친 물품을 돌려준 게 아니라 유족들이 직접 가서 찾아왔다며 "살 날 많은 A씨, 반성하고 살았으면" 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매년 유족들과 한일 양국팬들이 모여 추도식을 열고 있다.
4. 여담
<처음 그 날처럼> 활동 초반에는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하다가 박용하가 불렀다는 것이 기사로 나온 뒤, 무대가수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과거 유진과 연인 사이였다. 2002년 드라마 <러빙유>에서 남녀 주인공으로 만나 연을 맺게 되었다. 이후 박용하의 장례식장에 유진이 조문하러 오기도 했다.
각막 이상으로 군면제를 받았다. 때문에 일부 네티즌들에게 '각막용하'라고 비난을 받기도 했다.
생전에 대인배 기질이 있었다고 한다. 100여명들의 팬들에게 직접 쪽지까지 보내줄 정도. 게다가 앞에 전술한 군면제 사실을 면전에서 비난하던 안티팬과 직접 대화를 통해 상황을 해결하기도 했다.
곱상한 외모랑은 다르게 의외로 뛰어난 운동신경을 가지고 있다. 그 덕분인지 당시 출발 드림팀 시즌 1의 주요 멤버들 중 한명이었으며 왕중왕전에서도 우승한적이 있었을 정도로 타고난 운동신경을 선보이기도 했었다.
절친이었던 소지섭은 발인까지 그의 곁을 지켰고, 장례비용도 전부 대주는 등, 마지막까지 우정을 보여주었다. 이후 박용하의 부친이 사망했을 때도 그는 빈소를 방문해 또 한 번 우정을 보여주었다. 그 외 박효신[4] 과도 절친했다고. 2005년 라디오를 할 때 게스트로 나온 박효신과 친분을 쌓게 되었고 박효신의 매 공연을 관람하고, 여의치 않을 경우엔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 박효신의 <사랑한 후에>[5] 뮤직비디오에 무보수로 출연해 함께 연기하기도 했다. 박효신은 후에 박용하 추모곡을 불렀다.
박효신, 김원준과 셋이 카페에서 술 한 잔 없이 수다를 떨던 커피 친구였다고 한다. #
당시 건강 문제로 총리직을 사임한 아베 신조가 장례식 때 조화를 보낸 적이 있다. 정확히는 자기 부인이자 한류 팬인 아베 아키에 여사가 조화를 보낼 때 공동명의로 보낸 것인데, 이후 2012년 아베가 총리로 재취임하고 냉각된 한일관계를 고려해보면 묘하다.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8화에서 희열팀 슈가맨으로 등장하였다. 슈가송은 처음 그날처럼. 박용하는 고인이었기에 이 곡을 작곡한 김형석이 연주를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