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정치인)

 



'''대한민국 제27대 외교통상부 장관
박정수
朴定洙 | Park Jeong-soo
'''
<colbgcolor=#003764><colcolor=#ffffff> '''출생'''
1932년 2월 9일
경상북도 김천군 김천읍 황금정
(現 경상북도 김천시 황금동)
'''사망'''
2003년 3월 24일
''본관'''
밀양 박씨 #
'''학력'''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 / 학사)
조지타운 대학교 (정치외교학과 / 학사)
'''경력'''
제25대 외교통상부 장관
'''선수'''
5 (10,11,13,14,15)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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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2. 생애


1932년 2월 9일 경상북도 김천군 김천읍 황금정(현 김천시 황금동)#에서 태어났다. 김천초등학교, 김천중학교,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3학년이던 1953년 미국으로 유학하여 1958년 조지타운 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1965년 부인 이범준과 함께 미국 아메리칸 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행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였다. 1968년 정일권 국무총리 보좌관, 무임소장관 보좌관을 지냈고, 1973년 국민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천시-금릉군-상주군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민주공화당백남억 후보를 누르고 무소속 정휘동 후보와 동반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하였다. 1979년 6월 이후락, 최치환, 김진만, 변정일, 김수, 박용기, 함종빈, 윤재명, 정휘동, 임호, 임영득, 한갑수, 홍성우, 권오태 등과 민주공화당에 입당하였다.
전두환의 신군부가 집권하고 나서도 정치활동 규제를 당하지 않았고,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천시-금릉군-상주군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정휘동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김상구 후보와 신한민주당 이재옥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정의당 후보로 김천시-금릉군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외무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자유당 후보로 역시 김천시-금릉군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월드컵 유치에 전념하겠다는 이유를 들어 신한국당 수뇌부에 전국구 상위 순번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였다. 이 때 보수 인사 영입에 애쓰고 있던 김대중새정치국민회의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고 신한국당을 탈당한 후 국민회의에 입당해[1]전국구 의원으로 당선되고 국민회의 부총재를 지냈다.
정권교체 후 1998년 3월 김대중 정부의 첫 외교통상부(현 외교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 해 5월의 기자회견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 문화 개방 및 '''천황'''의 방한을 원하신다"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고, 그 해 7월에는 모스크바 주재 한국대사관 외교관의 강제추방 사건에 맞대응해 서울 주재 러시아대사관의 올레그 아브람킨 참사관을 강제추방했다가 5개월 만에 장관직에서 경질되었다.#
건강 문제로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불출마하였고, 2003년 3월 24일 사망했다.
[1] 이 당시 박정수 외에도 오유방, 정희경 등 민주정의당 출신 인사들이 다수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