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합관현악
1. 개요
배합관현악은 북한에서 편성되는 독특한 관현악 편성을 의미한다. 스토콥스키식 배치법을 기반으로 하여 북한에서 개량된 민족악기를 관현악 편성에 응용하는 형식을 칭하며, 전면 배합관현악과 부분 배합관현악 특수 배합 관현악으로 나뉜다.
한국에서 탈북해 정착한 소해금 연주자 박성진의 말을 인용하면 소해금은 바이올린 옆에, 단소는 플루트 옆에 앉아 협주하는 것이 북한식 클래식이라고 한다. 서양 악기와 민족 악기의 음 즉 비슷한 방식의 악기들의 음을 서로 맞춘 뒤 같은 악보를 보며 연주하기 때문에 소리가 조화롭게 표현된다고 한다.
2. 종류
2.1. 전면 배합관현악
만수대예술단이나 피바다가극단, 국립민족예술단, 조선인민군협주단 등 북한의 대표적인 종합 공연예술 단체들에 속한 관현악단들의 편제를 보면 민족악기와 서양악기가 거의 동등한 비율로 편성되는데, 이를 전면 배합관현악이라고 부른다. 북한의 관현악법 이론서인 배합관현악편성법(박정남 저. 2000 2.16 예술교육출판사)의 15~18페이지에 따르면, 일반적인 편성 방법은 다음과 같다. 괄호친 숫자는 통상적으로 편성되지는 않지만 이례적으로 쓰일 경우의 인원 수 혹은 악기 숫자를 뜻한다.
- 찰현악기
- 일반 배합관현악 편성
- 전면 배합 대편성 관현악 총보의 경우
- 발현/타현악기[2]
- 죽관/목관악기
- 금관악기
타악기는 주로 사물놀이용 타악기 위주의 민족타악기와 서양 타악기가 혼합 편성되는데, 음정을 낼 수 있는 유율 타악기는 팀파니를 제외하면 민족악기와 서양악기 모두 편성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1970년대 후반 일본을 통해 유입된 키보드 계통의 전자악기[4] 들을 정규 편성에 포함시키는 것도 특이한데, 다만 존재감은 다른 악기에 비하면 좀 희미한 편이다. 실제로 김정일도 전자악기는 가급적이면 가극이나 무용 같은 무대 작품의 반주 음악에만 쓸 것을 권장했기 때문에, 연주회용 배합관현악 작품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편이다. 보통 다른 악기로 내기 힘든 '특수 효과'나 다른 파트의 음량/음색 강화 같은 감초 역할을 주로 한다.
2.2. 공훈국가합창단식 전면 배합관현악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은 어은금 항목에서도 언급했듯이 1995년 12월 24일에 기존의 바이올린족 현악기가 주가 된 서양 관현악 편제의 반주 관현악단 대신 어은금과 아코디언을 주로 사용하는 새로운 관현악단을 처음으로 편성해 공연했다. 북한에서는 이를 주체적 편성의 새로운 배합관현악이라는 식으로 소개하고 있지만, 사실은 구 소련/러시아의 알렉산드로프 앙상블을 비롯한 군 소속 합창단들이 발랄라이카와 도므라 같은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전통 발현악기들, 가르모니와 바얀 같은 러시아식 아코디언족 악기들을 바이올린족 현악기 대신 사용하는 부속 관현악단 편제를 대폭 참조한 것이었다. 2년 뒤인 1997년에 김정일이 이 새로운 편성의 관현악단에 대해 극찬했기 때문에 한동안 이 합창단의 부속 관현악단은 계속 이러한 편제로 운영되었다. 이 때의 관현악 편성을 비교적 자세히 소개한 기사[5] 에 따르면, 당시 공훈국가합창단의 관현악 편성은 다음과 같다.
이러한 편성의 관현악은 공훈국가합창단만 거느리고 있었고, 합창단의 2000년대 초반 대표 연주곡들이었던 합창조곡 '선군장정의 길'과 '백두산아 이야기하라'의 관현악 파트도 해당 편성의 관현악을 위해 작곡되었다. 공훈국가합창단은 2000년대 중반 무렵 다시 일반적인 바이올린족 현악기 위주의 관현악단 체제로 복귀했지만, 이후에도 북한 언론에서 이 당시의 관현악 편제를 '주체적인 형태의 새로운 관현악'이라고 부르며 추켜세우고 있어서 흑역사로 치부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6]
2.3. 부분 배합관현악
서양악기가 주가 되는 조선국립교향악단에도 저대류와 단소류, 새납류 같은 죽관악기, 꽹과리와 징 같은 민족타악기가 정규 편성으로 들어가 있는데, 이 경우에는 '부분 배합관현악' 이라고 칭한다. 통상 2~3관 편성의 서양 관현악단에 고음저대와 중음저대 각 1대, 저대 2대, 단소 2대[7] , 새납[8] 1대를 추가해 목관악기군 왼쪽이나 오른쪽 혹은 앞에 배치하며, 타악기 주자들이 징이나 꽹과리를 겸하는 것이 보통이다. 간혹 어은금들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는데, 어은금들이 들어가는 경우에는 제 2 바이올린 뒤쪽에 특별히 공간을 할애해서 배치한다.
2.4. 특수 배합관현악
기존 민족악기로 연주하는 민족관현악에서 서양악기를 필요에 따라 혼합하는 방식으로 이 경우는 특수 배합 관현악이라고 부른다.
2.5. 기타 편성
은하수관현악단도 창단 초기에는 연주곡에 따라 꽹과리와 징 같은 민족타악기를 같이 연주하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서양 악기만으로 편성했지만, 2011년 들어 죽관악기들과 소해금, 가야금, 어은금을 정규 편성에 넣기도 해서 사실상 전면 배합관현악 편제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 악단의 편성은 기존의 전면/부분 배합관현악과 많이 달랐는데, 어은금과 가야금 주자의 경우에는 지휘자 앞에 배치했고 소해금 주자의 경우에는 첼로 주자 옆으로 배치되었다. 죽관악기의 경우에는 부분 배합관현악 편제의 것과 동일했다.
다만 은하수관현악단은 김정일 음악예술론에서 연주회용 배합관현악 작품들에서는 가급적 사용을 삼가라고 지시한 신디사이저 뿐 아니라 일렉트릭 기타와 베이스 기타 같은 경음악 밴드용 전자악기까지 같이 편성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배합관현악 편성법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여주었다. 또 대부분의 악기를 전자악기로 쓰고 있는 새로운 경음악 밴드인 모란봉악단이 창단되면서, 일반 관현악단에서도 이를 본따 전면 또는 부분 배합관현악 편성의 악단에 일렉트릭 기타와 베이스 기타, 신디사이저, 심지어는 전자드럼까지 넣어 연주하도록 편곡하는 경우도 보이고 있다.
사실 이런 형태의 편곡은 이미 1986년에 당시 보천보전자악단의 작/편곡자 겸 지휘자였던 장룡식이 '사향가'라는 노래를 피아노 독주와 관현악을 위해 편곡했을 때도 이미 시도된 바 있었는데, 관현악 편성이 좀 큰 것을 제외하면 은하수관현악단의 편제와 대체로 일치했다. 그리고 음악예술론에서 연주회용 작품에 되도록이면 전자악기 넣지 말라고 지시했던 김정일 자신이 2000년대 중반에 장룡식 편곡의 사향가를 듣고 비판은 커녕 오히려 극찬했기 때문에(...), 딱히 최고 지도자의 심기나 발언을 거스른 거라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김정은 시대에 들어선 뒤 은하수관현악단이 어른의 사정으로 해체된 뒤로는 이런 변칙적인 배합관현악 편제의 악단은 사라졌고, 다시 전면 아니면 부분 배합관현악 체제의 악단들로 정리되었다.
[1] 서양 관현악의 그것과 같다. 한마디로 바이올린+소해금의 조합으로 제1 소해금▶제1 바이올린▶제2 소해금▶제2바이올린▶중해금▶비올라▶대해금▶첼로▶저해금▶콘트라베이스 순으로 배치한다.[2] 북한에서는 찰현악기 외의 현악기는 모두 손가락으로 뜯는다는 의미의 '지탄악기' 라는 용어로 뭉뚱그려 사용한다.[3] 공연에 따라서 드럼 세트를 사용하기도 한다.[4] 북한에서는 '전기종합악기' 라고 한다.[5] '민족성이 뚜렷한 우리 식의 배합관현악' (교수/학사 한남용 기고). 조선예술 2005년 6호 76~77 페이지[6] '우리 식의 남성 합창 반주 관현악이 창조 되기까지' (정향 기고). 조선예술 2013년 5호 20~21페이지[7] 제 2 단소는 고음단소를 겸하기도 한다[8] 새납의 경우에는 장새납을 겸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