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승려)/논란

 


1. 개요
2. 무소유에 대한 오해
3. 법정의 사망원인에 대한 논란
4. 디시인사이드의 왜곡 짤방 사용
5. 미디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6. 미국및 세계무역 센터 비판
7. 결론


1. 개요


법정의 논란과 오해를 서술하는 항목.
법정이 생전에 사회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끼쳤고, 사후에도 그 영향력이 아직도 남아있을 정도로 법정의 행적은 불자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남긴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스님도 사람이고 살면서 논란이 아예 없기는 어렵기에 법정 역시 생전에 이런 저런 논란점이 있었고 그와 동시에 본의 아니게 오해를 산 상황도 있었던 만큼, 이 항목은 그것을 주로 서술하도록 한다.

2. 무소유에 대한 오해


본인의 항목에 나와있는 것처럼, 법정은 생전에 무소유를 철저하게 지키면서 살아갔고, 이에 관련된 책을 동명의 제목으로 집필한 바가 있다. 그러나 이 무소유에 대한 것은 여전히 이를 접한 사람들 사이에서 찬반 및 논란에 놓여져 있으며 이에 대한 토론도 현재 진행 중에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무소유에 대한 말뜻은 불교의 소욕지족. 즉 적은것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의미로, 쉽게 말하자면 '가지지 말자. 즉 가지더라도 많이 가질 필요는 없다.'라는 뜻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무소유가 대중적으로 알려졌던 시기에는 적은 물건으로 생활하는 미니멀 라이프도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한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 의견도 있는데 즉, 가지지 말라는것은 노숙자와 유사하게 빈곤하게 살아야 한다는것이냐라는 의견과 동시에 법정의 의견은 스님이 자주 밖에 나오지 않다보니 현대 시대의 시장경제와 제도의 장점을 완전히 역행하는것에 불과한 보수적인 발언이란 의견도 있다.아예 이를 비판한 기사도 있을 정도이며 심한 경우에는 법정을 비하하는 정도에 이르는 의견도 있다. 특히 성제준의 경우에는 아예 자기 방송에 법정스님의 무소유에 대한 충격적 실태라는 자극적 제목을 써서 법정을 비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법정 스님을 잘못 이해한, 다시 말해서 알못에 대항되는 반론에 해당된다. 법정은 어디까지나 소유로 인한 부작용및 사회문제를 우려해서 무소유를 하라고 주장했을뿐이지 시장경제와 제도를 완전히 부정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또한 무소유 항목에 나와있듯이, 법정이 말한 무소유는 '가지지 말자'가 아니라 '가져도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라는 의미라고 밝힌바가 있고, 법정이 생전에 화초에 대해 집착심이 생긴것을 알고 다른 사람에게 망설임 없이 줬던 일화를 밝힌 바가 있다. 즉 불필요한 소비로 자연과 경제를 무너뜨리지 말고 자연과 화합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의도인데, 이를 잘못 해석해서 생긴 오해.[1][2]
법정의 무소유 건만이 아니라 법정 본인이 무소유를 실천하는지에 대한 오해도 있는데, 법정이 사실은 상당한 인세를 유럽, 인도 여행을 다니는데 사용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명확힌 근거도 없는 허위사실으로, 유럽의 경우 프랑스 파리에 송광사 분원이 있어 법문을 위해 갔다오는 것으로 여비는 종단에서 내주고, 인도의 경우 기행기를 신문에 연재한다는 조건으로 조선일보에서 대줬다.[3] 정작 인세는 모두 장학금이나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부했다고 한다.[4]

3. 법정의 사망원인에 대한 논란


법정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도 소수 있는데, 이건 그의 병명이 폐암이고 병원에 입원한 것에 대해 안 좋은 추측이 돌았기 때문인 듯 하다. 대개 폐암의 원인은 담배라는 인식 탓인데, 폐암의 원인은 절대 흡연만 있는 게 아니며 실제로 전체 폐암 환자의 15% 정도가 비흡연자임에도 폐암에 걸린다. 실례로 평생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다는 최영의도 사인은 폐암에 의한 호흡부전이었다. 이에 대한 말을 많이 들었는지 자신이 폐암에 걸린 건 집안 내력이라 따로 말하기까지 했다. 링크.
흡연 외에도 결핵 등 폐질환 병력이 있을 시 폐암 발병률이 높으며, 육식오신채를 금하는 식생활의 불균형과 무리한 수도 생활 역시 폐암의 원인이 될 수도 있고 의외로 폐암의 원인은 상당히 다양하다. 심지어 비흡연자인 여성임에도 폐암에 걸린 환자가 많아서 연구해보니 요리하면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도 원인이라고 한다. 향불에서 나오는 독한 연기가 그 원인 중 하나였을 거라는 추측도 있다.

4. 디시인사이드의 왜곡 짤방 사용


"믿지 않는다 하여 자신의 자식이라 하는 인간들을 지옥불에 던져버리는 당신네들의 신을 난 당최 이해 할 수가 없다... 차라니 난 지옥에 가서 당신네 신에게 버림받은 그 억울한 영혼들을 구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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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방면으로 주로 전파되었던 짤방

한때 법정이 '믿지 않는다고 자기 신자들을 지옥불에 던지는 기독교가 혐오스럽다고 차라리 난 지옥에 가서 버려진 영혼들을 구제하겠다.'라는 기독교 비하 발언을 한 바가 있고 이를 디시인사이드의 종교 갤러리에서 짤방으로서 사용한게 인터넷 상에 전파된 바가 있다. 이로 인해 법정이 불교 외의 다른 종교에 대한 포용력이 부족하다며 그에 대한 비난도 많이 일어났었다.
그러나 이는 기독교를 혐오하는 반기독교 세력들이 '한 스님'이 한 이야기라 주장했다는게 퍼진것이 와전되었고, 애초에 이 발언이 사실인지도 그 말을 법정이 한 말이란 근거조차도 없는 카더라 통신이다. 이를 진짜로 믿은 어리석은 케이스도 있다. 어찌나 심각한지 길상사에서 직접 사실이 아니라고 공문을 올리기도 했다. (길상사의 해명 공지.)[5]
또한 법정 본인은 타종교에 대해 호의적인 편이었으며 크리스천함석헌 선생을 존경하거나 이혜인 수녀와 교류를 가지는 등 타종교인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천주교에서 불교로 개종하려는 사람에게 '''"천주교나 불교나 사랑의 근본은 모두 같으니 개종하지 말라"'''고 권유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사람이 어느 종교에 지내든 종교를 개종하든 그 사람의 자유인데 사랑의 근본은 모두 같다고 개종을 반대하였다"며 다만 후자는 종교의 자유를 가로막을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고 까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도 당시의 정황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꺼낸 말에 가깝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초당대학교 경찰행정학과 문현철 교수인데# 문 교수가 법정 스님을 처음 만난 것은 고교 2학년 때인 1982년 12월 초였다. 시골 중학교에서 전교 1~2등을 하다가 광주에 올라와 떨어진 성적 때문에 말 못할 방황을 하고 있을 때 학교 상담교사가 법정 스님의 책 <산방한담>을 읽어볼 것을 권했고, 하룻밤 만에 <산방한담>을 읽은 지 일주일 후 평소 좋아하던 광주광역시 금남로1가에 있는 클래식음악감상실 '베토벤'[6]에서 실제로 법정 스님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7] 그는 법정 스님 앞에 앉아 “군인도 되고 싶고, 교수도 되고 싶은데 뭐가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당돌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스님은 “‘무엇이 될 것이냐’보다 ‘어떻게 살 것이냐’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가톨릭 입문을 준비하고 있던 문현철은 다음해(1983년) 3월 다니던 명동성당에서 영세를 받았는데, '''영세를 받고 신자가 된 바로 그날 교통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다 1주일 만에 깨어났다.''' 세례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된 바로 당일에 교통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맬 지경이 되었던 문현철은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의문까지 품게 되었고, 당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을 찾아가서 "하나님이 의로우시다면 왜 내가 세례를 받은 바로 첫날부터 이렇게 내 목숨을 거둬가려 하셨느냐?"며 따지듯 물었고 김 추기경이 "하나님께서도 생각이 있으셨던 것"이라며 그를 위로했지만, 의문이 가시지 않아서 5월 말 퇴원하자마자 법정 스님이 있던 조계산 불일암을 찾았다. 이때 문현철이 스님에게도 김 추기경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하느님이 계시다면 나를 친 차를 붙잡아주지 않고 영세받은 바로 그날 들이받게 내버려둘 수 있겠느냐”고 질문하자, 법정 스님은 “'''천주님은 그런 만화 같은 일을 하는 분은 아니다. 이런 아픔을 통해 네가 더 성숙해져, 더 큰 시련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문현철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할머니의 도움으로 살면서[8] 조선대 법대 1학년 1학기를 겨우 마친 뒤 등록금을 마련 못해 학업을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고, 문현철은 1987년 6월 항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이라는 것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법정 스님에게 이러한 생각을 털어놓으며 "차라리 스님 따라서 불교로 개종할까 싶습니다."라고 말을 던졌는데, 그때 법정 스님이 “'''누구는 청국장을 좋아하고, 누구는 김치찌개를 좋아할 뿐이지만 천주님의 사랑이나 부처님의 자비는 풀어보면 한 보따리다. 개종할 거 없으니 그대로 있어라.'''”라며 개종을 말렸던 것이다.[9] 법정 스님은 일부 개신교 목사들처럼 가톨릭의 교리를 공박하거나 가톨릭 자체를 비난하면서 개종을 권한 적도 없고, 문현철이 개종을 말한 것도 학업 스트레스나 시국의 불안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면서 어디가 마음 둘 데가 절실한 와중에 반쯤은 던지듯 나온 발언이었으므로 그 점을 지적하면서 "굳이 개종까지 할 필요 없다"고 말린 것이다. 이는 전의 항목에서 말한 것처럼 개종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 아니라 개종까지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불안한 상황 속에서 고민하던 사람의 길을 잡아준 것에 가깝다. 문현철 교수는 이에 대해서 "법정 스님 덕분에 내 가톨릭 신앙을 지키면서도 스님을 따를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또한 문현철이 법대 1학년 1학기를 겨우 마치고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학업을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도 법정 스님은 불현듯 “등록금 고지서를 베토벤에 맡겨놓으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졸업 때까지 빠짐없이 법정 스님은 문현철에게 등록금을 지원해 준 것은 물론, 문현철에게 같은 대학 친구 가운데 돈 없어서 공부 못하는 사람 3명만 알아오라고 해서 그 학생들의 등록금도[10] 졸업 때까지 도와주었다. 그러면서도 문현철이나 베토벤의 주인에게 그가 도움을 준 사실을 일절 함구토록 해 지금까지 입도 뻥긋할 수 없었다. # 이밖에도 법정 스님은 자주 문현철에게 학문을 배우는 태도와 자세에 대한 조언을 해 주었으며, 문현철은 그 인연으로 재단법인 맑고향기롭게 창립식에도 참석해 법정 스님을 만나 축하하기도 했고, 법정 스님이 입적했을 때 그 장례식에도 참석했다.# 문현철은 법정 스님 사후 법정 스님을 추모하는 기고문을 모은 <법정, 나를 물들이다>에서 이를 밝혔다. 즉 법정 스님이 개종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말하는 것은 전후 맥락을 전혀 살피지 못한 알못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다 법정이 입적한 현재 시점에서 보면 이름 있는 고승에 대해 짤방으로 고인비하 및 종교 비하를 저지른, 디시 특유의 문제 행위라고 볼수 있다.
[image]
위 짤방말고도 야갤에서는 야짤을 올리는 척하면서 법정의 사진을 올리고 '''"또 속냐!!"'''라고 하는 글이 유행하였으나 이 역시 위의 경우처럼 고인비하 및 종교 비하에 해당된다.

5. 미디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첫째. TV 보는 시간을 줄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TV에서 얻는 정보나 지식이 적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에너지, 창의력을 송두리 채 TV에 바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워싱턴에 TFA라는 단체는 매년 4월 22일부터 1주일 동안 TV 안 보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의 구호는 '텔레비전을 끄고, 인생을 켜세요.'입니다.

TV 시청 대신 산책이나 등산, 자녀에게 책 읽어주기,

저녁노을 바라보기, 별자리 찾기, 편지 쓰기 등 권장합니다.

그래서 회원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TV 방송의 질도 문제지만 너무나 많은 시간을 뺏기고 있고

인생을 무가치하게 소비하고 있습니다.

둘째. 부스러기 뉴스를 피해야 합니다.

시시한 정치꾼들의 정파 싸움이나 횡령 같은 뉴스들을 피해야 합니다.

셋째. 때로는 핸드폰을 놓아두고 다녀라.

그것이 없을 때도 얼마든지 잘 살았습니다.

광고에 저항해야 한다.

광고를 통해서 새로운 상품도 선택하고 사기도 하지만 그만큼 폐해도 큽니다.

넘쳐나는 광고 전단지 때문에 수많은 숲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법정의 법문집 제2권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중에서.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에 수록된 생전 법문에서 TV, 뉴스, 휴대폰 등의 미디어 자체를 멀리해야 한다는 말을 한 바가 있다. 이때는 시대가 시대라서 법정의 저 발언이 통했지만, 미디어가 중심이 되어가는 현재에 와서는 재평가와 동시에 비판 받을 여지가 있어보인다.
물론 본인은 저 미디어들이 번뇌를 야기시켜 사람의 마음을 탁해지게 할 수도 있고, 시대가 지나면서 미디어로 인한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고려하면 의도만은 좋았다고 볼 수 있으나, 미디어에 노출된다고 무조건 탁해지는 것도 아닌데 아주 멀리하다시피 해야 한다는 말은 법정이 너무 성급한 일반화를 한다고 볼 수 있다. 거기다 뉴스를 보지 말라는것은 사회 활동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정작 법정 본인은 사회 활동에 관여했다는 점과 비슷한 발언혜민이 했다가 비판 받은 사례, 그리고 박근혜 정부 퇴진 운동같이 뉴스가 긍정적인 효과도 준다는 것을 고려하면 위 발언은 무리수로 보이는 의견이다.
또한 핸드폰이 없어도 잘 살았다고 하지만, 지금은 핸드폰이 없으면 여러운 환경이며, 광고에 저항하라는 부분도 위의 TV와 뉴스에 대한 비판과 같은 이유도 있지만 수 많은 숲이 사라지니 광고 전단지를 만들지 말라는 것은 광고도 하지 말라는 의미로 오해 받을 수도 있다.
SNS에 대해서도 부정적인데, 부산 초청 강연 당시에 가상세계는 인간의 온기가 없는곳이란 발언을 한 바가 있다. 확실히 SNS같은 가상 매채가 타인과 직접 이야기 하는것이 아니다보니 소통이 어렵거나 남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긴 하나, 거리가 멀어서 직접 마주칠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SNS같은 가상 세계가 소통에 도움이 되고 거기다 아무리 그런 단점이 있긴 해도 타인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경우나 적극적으로 교류를 하는 경우도 있는 만큼 법정의 이 발언은 SNS의 긍정적인 면모를 외면하는 문제가 있다. 만약 법정의 이 논리대로라면 사람들은 무조건 직접적으로 소통해야 하며 아예 번거롭더라도 서울↔부산같은 먼 거리를 직접 찾아가야 하는 불편함을 겪어야 한다는 게 된다. 즉 법정의 위 발언은 저런거 다 외면하고 원시인이나 노숙자처럼 살라는 것과 마찬가지인 만큼 위의 무소유의 케이스와는 반대로 '''진짜로 시대를 역행하는''' 발언이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논란은 법정만 해당되는 편이 아닌데, 법담은 매번 '''드라마나 뉴스는 부정적인 기운을 주니까 긍정적인 인생을 살고 싶다면 그런건 보면 안된다.'''라는 말을 한 바가 있으며, 현재 일본 승계를 떠난 코이케 류노스케 역시 자신이 썼던 저서 및 인터뷰를 통해 '''청정해지고 싶다면 뉴스 같은 미디어를 멀리 해야 하며, SNS는 분노의 번뇌모드에 침투되기 좋은 환경이니 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밝히는 등 미디어에 대해 부정적인 승려들은 의외로 꽤 많이 찾을수가 있다. 아니,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이미 SNS를 두고 딱 잘라서 인생의 낭비라고 단언한 사람도 있다.'''

6. 미국및 세계무역 센터 비판


법정스님 뉴욕 법회 ˝미국은 교만하고 독선적˝
법정이 뉴욕에서 법문할 당시, 미국은 교만하고 독선적인 자들이며, 세계 무역 센터는 국민들을 희생하여 건설해낸 자낳괴의 산물이라는 과격한 비판을 한 바가 있다.

7. 결론




[1] 다만 이는 오히려 잘못 해석하면 자기가 가진 물건및 주변 인물들에게 애정도 우정도 주지 않고 무감정으로 대해라 라는, 요즘 언어로 표현하자면 덤덤충이 되어야 한다는 우려는 있다. 심지어 경전(특히 아함경)을 적용해서 이를 과도해석해서 부처님은 돈을 벌라고 하셨다고 주장하는 유사경제학자도 있다.[2] 사실 법정의 이 발언 자체도 오해의 여지가 있는데, 즉 법정 시점에서는 부자나 제벌등 기득권층은 가지려고 하고 가진거에 집착하는 말 그대로 졸부 그 자체라는게 되버린다.[3] 이 기행기는 <법정 스님의 인도 기행>이라는 제목으로 책으로 나와 있다. 이것을 보면 80년대 후반의 인도, 네팔 배낭여행이 어땠는지를 대략적으로 볼 수 있다.[4] 그 때문에 자신의 병원비를 댈 돈이 없었으나, 독실한 원불교 신자였던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씨가 법정의 임종 직전 밀린 치료비 수천만 원을 대납했다.[5] 다만 성철 스님의 열반송을 두고 개신교계에서 일방적인 해석을 들이대자 법정이 "진정한 참회와 함께 지옥에 가서라도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커다란 서원"이라고 풀이했는데, 1994년 하이텔 상담실에 올라왔다는 이 해당 질의응답이 불교 신문에 게재된 적이 있는데# 이게 어찌저찌 와전되어 전해진 결과일 수도 있다.[6] 1982년에 문을 열었으며, 전남도청 앞 금향빌딩 6층에 있고 지금도 운영하고 있다. 2007년에 경영난을 겪어 문을 닫을 뻔했지만 준태 시인, 성진기 전남대 명예교수 등 단골 고객들의 도움으로 폐점되지 않고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 [7] 바로크시대의 클래식음악을 좋아했던 법정 스님은 불일암에서 광주에 올라오면 그 감상실에서 지인들을 만나곤 했다.[8] 법정 스님 역시 어려서 아버지를 잃었다.[9] 출처: <법정, 나를 물들이다>에서[10] 학과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나 성적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묻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