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트 아놀드
Benedict Arnold
1741년 1월 14일 ~ 1801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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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 미국 독립전쟁 와중에 활동한 장군이다. 독립전쟁 중 배신행위를 저질러 미국인들에게는 매국노의 대명사로 통하는 인물.
2. 생애
코네티컷에서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나름대로 어릴 때는 부유한 편이었는데 아버지가 알코올 의존증으로 가산을 탕진하는 바람에 말 그대로 맨주먹으로 일어선 케이스의 인물. 전쟁 전에는 대서양 횡단무역을 하는 상인이었고, 1775년 독립전쟁이 발발하자 우수한 공적을 쌓아 군인으로서의 명망을 얻었다.
사실 독립전쟁 당시 전체적으로 역량이 떨어졌던 식민지군 중에서는 지휘력만으로 따지면 원톱에 들 수 있는 인물이었다. 만일 베네딕트 아놀드가 존재하지 않았고, 그 자리에 평이한 식민지군 장군이 있었다면 미국 독립전쟁은 조기에 진압되었을 것이다.
특히 1776년 가을에 있었던 발쿠르 섬 전투에서의 전략적 승리는 그의 전략적 능력을 보여주는 예로 종종 회자되곤 한다. 영국군은 캐나다에서 온 증원병을 포함한 16,000명 병력과 원주민 지원병으로 3,600여명의 독립군을 쫓고 있었다. 이 진격로에는 샘플레인 호수가 있었는데, 아놀드는 갑자기 나무를 베어서 작은 배 10여척을 만들고, 생전 처음 배를 타본 병사들을 태워서 수상방어선을 구축했다.[1] 영국군은 이 막무가내 소함대를 견제해서 4주라는 시간을 들여서 제대로 된 함선과 무장을 구축했고,[2] 아놀드의 소함대를 당연히 박살냈다.
문제는 4주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영국군은 다시 캐나다로 돌아갔다. 만일 그 4주의 시간을 벌지 못했다면, 영국군은 독립군의 마지막 거점이었던 뉴잉글랜드 인근에 주둔지를 마련했을 것이고, 그 다음해에 뉴잉글랜드는 박살이 나고, 독립전쟁은 그걸로 끝났을 것이다.
그와 그나마 경력을 비교할 만 하고 높은 지위에 있던 다른 지휘관이 하필이면 찰스 리로, 조지 워싱턴의 자리를 노려 그를 시도 때도 없이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려고 수를 쓰고 있었으니, 미 독립군으로선 사실상 고위 지휘부가 조지 워싱턴의 적이었던 셈.[3]
하지만 다른 장군들이 자꾸 자기 공을 가로채는 안습한 일들이 일어났다. 예를 들면 새러토가 전투에서는 역시 독립군 장군이었던 호레이쇼 게이츠의 반대를 무릅쓰고 병력을 출동해서 대승을 거두었다. 그것도 '''2번이나'''. 영국군 버고인 장군은 우회공격을 하려고 했는데, 게이츠가 반대하는 것에 강하게 항의해서 군을 돌격시켰기 때문에 초전을 승리하고 영국군의 진견을 막을 수 있었다. 두번째는 더 심했는데, 게이츠는 첫번째 전투에서 아놀드의 주장에 따라서 승리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아놀드를 막사에 감금했다. 하지만 전투가 시작되자, 아놀드는 막사를 탈출해서 전장으로 달려갔고, 용맹하게 싸우는 장군의 모습에 병사들 역시 분전한 결과 새러토가에서 승리하게 된다. 이 전투의 승리로 영국군 장군 버고인은 게이츠에게 항복했고, 이것을 알게 된 프랑스가 대영국전쟁에 참전했다. 만일 아놀드가 없었다면 영국군은 우회전략을 성공시켰을 것이고, 인근에 있었던 다른 영국군과 합류해서 전투를 떠나서 독립전쟁을 끝냈을 것이다. 이런 눈부신 공로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공은 발목 잡은 게이츠 것이 되었고[4] 아놀드는 그대로 묻혔다. 게다가 전투과정에서 발에 총상을 입기까지 했는데...[5] 승진이 자꾸 좌절되었다. 게다가 이 다리 부상 때문에 이후 야전에서 공을 세울 기회를 상당부분 상식하게 된다. 그야말로 자기 군사적 커리어 상당부분을 희생해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는데, 정작 돌아온 보답은 하나도 없었던 셈.
1778년에는 조지 워싱턴의 명령으로 영국군의 퇴각으로 수복된 필라델피아의 군정장관직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더욱 안습한 상황이 이어졌다. 아놀드는 생각없이 '''이전의 군정장관들이 해오던 대로''' 치솟는 물가를 잡겠다고 필라델피아의 상점들을 일시 폐쇄했다. 그러나 필라델피아 사람들은 아놀드가 상점을 폐쇄하고 '''시장을 독점해서 장사로 치부하려는''' 술책이라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필라델피아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까지 아놀드를 파국으로 몰고 갔다. 필라델피아의 관할권을 놓고 대륙의회와 필라델피아가 위치한 펜실베니아주 정부가 치열한 논쟁중이었는데 당시 펜실베니아 주지사이자 독립군 장군이었던 조지프 리드가 익명으로 아놀드를 부정부패로 맹비난하면서 상황이 더욱 안좋아졌다.
부정과 부패혐의로 계속 모함을 받는데다가 오히려 수사과정에서 빚까지 져가며[6] 전쟁에 나서서 재정상황이 영 좋지 않다는 사실마저 알려졌다.
2.1. 배신자가 되다
이에 빡친 아놀드는 1779년부터 영국군과 내통을 시작했고, 1780년 뉴욕 웨스트 포인트의 사령관이 되자 이를 영국군에게 넘기려 했으나, 이 문건을 가지고 있던 영국군 스파이이자 정보장교인 존 안드레 소령이 체포되자 조지 워싱턴의 추적을 가까스로 피해 허드슨 강을 넘어가 영국군 전함으로 도망갔다.
그의 배신에 격노한 토머스 제퍼슨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배신한 아놀드는 영국군 준장이 되어 독립전쟁에서 버지니아의 영국군을 이끌었고, 독립전쟁에서 패하자 런던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영국 생활 초기에는 자리 좀 찾아보려다가 실패하고 사람들은 배신자라고 욕하고 돈마저 떨어져서 궁핍하게 살았지만, 재기하여 땅을 구입해 사업도 하고 사략선을 이끌기도 하고 그러다가 프랑스군에게 잡혀 처형당할 뻔하다가 놀라운 기지로 탈출해 살아남기도 하며 그럭저럭 살다가 1801년 사망했다. 사망 당시 '나에게 독립군복을 입혀달라'고 했다는[8] 도시전설이 있는데 뻥이다. 실제로는 혼수상태 며칠만에 사망.[9] 이밖에도 배신한 다음에 본처가 미쳐버렸다는 도시전설도 있다.[10]"우리가 그놈을 잡으면, 그의 미국인 다리를 잘라내어 예우를 갖추어 매장할 것이다! 나머지 몸뚱이는 (배신자에 걸맞게) 교수형에 처해버리고!"[7]
2.2. 배신 이후 안습 일대기
영국군으로 전향한 후에 그의 인생은 썩 좋은 편은 아니였다. 영국군으로 활동하면서 공도 제대로 못세웠고 자신의 상관이자 웨스트포인트 거래를 시도한 클린턴 장군은 아놀드를 죽도록 싫어했다. 자기가 가장 아끼던 부관인 존 안드레 소령이 제대로 되지도 않은 거래 때문에 사형당했을 뿐만이 아니라 클린턴 눈에도 아놀드는 매국노이자 배신자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워싱턴이 안드레 소령과 아놀드를 교환하자고 했으나 당시 명예와 약속을 중요히 여겼던 영국군은 아놀드가 싫어도 이 거래를 수락할 수가 없었다. 결국 울면서 겨자 먹는 심정으로 안드레 소령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아놀드가 대륙군 장교 직위를 정식으로 포기한다는 것을 선언하고 영국군으로 투항했으면 그나마 유럽식 신사다운 절차로 인정하고 영국측에서 우대받고 대륙군 측에서는 훌륭한 장군을 잃었다고 후회하는 것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11] 하지만 몰래 음모를 꾸미고 웨스트 포인트를 대륙군 몰래 넘긴다는 자체가 영국인들에게 신사스럽지 않고 더럽고 교활한 책략으로 보였을 것이고 대륙군에게는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놀드는 휘하 장교들에게도 미움을 받으며 존경을 받지 못했다. 신사임을 강조한 영국 장교들은 특히 명예나 충성심을 중요히 여겼으므로 아놀드의 행위를 절대 좋게 보지 않았고 상관으로 존경도 하지 않았다. 한 영국군 대령은 클린턴 장군에게 "아놀드 장군의 휘하 장교들은 다른 지휘관이 이끌어 주기를 바랍니다"라는 편지까지 올릴 정도였다. 뉴욕에 있던 영국군 장교와 병사들은 아놀드가 그들이 그토록 존경하던 안드레 소령을 죽인 주범이라고 지목해서 휘하 장교들과 병사들까지 그에게 등을 돌렸다. 아놀드가 클린턴이나 콘월리스 장군에게 조언이나 작전을 제시하면 씹혀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딱 한번 아놀드의 작전을 수락했지만 별 성과도 없이 영국군 사상자만 많아져지자 클린턴도 그에게 분노하여 노골적으로 아놀드를 씹기 시작한다.
이러한 행동에 실망을 한 아놀드는 식민지 국무장관에게 고자질을 했지만 장관에게도 씹혔고 편지의 내용이 클린턴 장군 귀에 들어가고 만다. 이때문에 빡칠만큼 빡친 클린턴은 아놀드에게 행정업무만 시키고 아놀드는 결국 국무장관과 클린턴에게 사과문을 올리는 굴욕을 당하게 된다.
반면에 안드레 소령은 재판 끝까지 아놀드에게 불리한 말을 하지 않았으며 사형당할 때도 평정심과 용기를 잃지 않아서 독립군 장성들까지도 감동할 정도였고, 알렉산더 해밀턴 등 고위급 식민지군 인사들과 장교들은 안드레를 아놀드와 교환시켜 최대한 구원하려고 노력했다.[12] 이 때문에 아놀드의 이미지는 더더욱 나빠졌고 안드레는 죽음까지 충정을 지켰던 용감한 소령이 되었고 아놀드는 비겁하게 나라를 팔아먹고 살아남은 겁쟁이 장군이 되었다. 큰 공도 못 세운 아놀드는 전쟁이 끝나자 영국에 왔지만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영국 동인도 회사에 장교 직위를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유는 당신같은 사람 들어오면 우리 회사 이미지 나빠진다고(...).[13]
훗날에 당시 영국의 영토인 캐나다, 세인트 존으로 이사를 와서 거기서 사업을 하며 지냈으나 문제는 여기서도 모난 성격이 드러나서 잦은 시비와 다툼을 벌였고 결국 소송까지 이른 이후엔 세인트 존 시민들이 아놀드를 극히 싫어했다. 결국 가족 앞에서 마을 사람들에게서 모욕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뭐냐면 마을 사람들이 그의 초상화/인형을 만든 뒤 불로 태워버렸다고 한다. 그것도 자기 집 앞에서. 결국 아놀드는 다시 영국으로 돌아간다. 한때 장군이자 귀족이었던 사람이 평민들에게 대놓고 다구리로 욕을 먹는건 엄청난 수치이자 모욕이었다.
영국으로 돌아간 아놀드는 전역했으나 전역 이후에도 그는 다른 신사들의 놀림과 비난의 대상이었고 귀족원(영국 의회의 상원)에서는 로더데일 백작에게서 망신을 당한 후 결투까지 신청했다. 결투에서는 아무도 다치지 않았지만 아놀드의 평판이 얼마나 안 좋은지 볼 수 있는 사태였다.
아놀드 장군은 영국군 복무 이후 준장으로 예편 했는데 당시 영국군에서는 준장이라는 계급은 그냥 형식적인 임시용 계급 취급으로 한거지 준장까지 올라간 사람은 복무중 전사나 순직하지 않는 한 거의 100% 소장으로 진급했었다. 준장이라는 계급은 한때 장군이었던 아놀드의 체면을 생각해서 준 계급이고 그 이후에 다 진급하는 상황에 자신만 진급이 밀렸다는 사실만 봐도 영국군에서도 얼마나 취급이 안 좋았는지 알 수 있다.
3. 배신의 아이콘
배신 이후 미국에서는 한동안 아기들에게 베네딕트란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미국인에게는 한국의 이완용 취급을 받으며 배신자, 매국노의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다. 미국 회화에서 '이 베네딕트 아놀드 같은 놈!'이라고 하면 한국에서 '이완용 같은 놈!'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Play Benedict Arnold'라는 관용어도 있는데, 직역하자면 '베네딕트 아놀드를 연기하다' 정도로 번역된다. 좀 더 적절하게 옮기면 '통수치다' 정도? 미국의 유명한 가족 드라마 The Wonder Years(한국 제목 "케빈은 12살")에서 주인공 케빈이 괜시리 한 말 때문에 가족들이 전부 다 참석하기 싫었던 장례식에 가게 되자 주인공이 독백으로 "내가 우리 집안의 베네딕트가 되어야 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주인공 집안의 성씨가 아놀드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 웃기는 장면.
한국에서 이완용과 이름이 같은 동명이인들이 아무 죄가 없어도 이름 때문에 까이는 것처럼 미국에서도 독립전쟁이 끝난 지 200여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베네딕트 아놀드와 이름이 같은 동명이인들이 미국 내에서 가열차게 까이고 있다.[14]
독립군이 싸운 이유는 세금부터 정치적 문제까지 있어서 복잡하지만 현대 역사학자들 중에서 오히려 왕당파들과 영국의 주장의 정당함을 재평가하는 사람들도 많지만[15] 아놀드는 '''열심히 독립군편에 섰다가 갑자기 배신을 때려서 문제가 된다.'''
아놀드는 개인적인 결점들과 주변의 복잡한 상황들이 얽혀서 인생이 꼬이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다가 파산한 아버지 때문에 맨주먹으로 인생을 개척한 타입의 인물이라서인지는 몰라도 성격이 상당히 까칠하고 자기중심적이었다. 만약 성격이 유들유들했다면 전공을 가로채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더욱이 귀족적인 성격이 있었는지 화려한 복장을 하고 다니면서 영국 지지파로 의심받는 이들과 호화로운 생활을 하며 어울렸으니 부정부패 혐의를 받은 것은 억울하겠지만 결국 본인의 사생활 단속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정세 판단에 어두웠던 게 죄라면 죄일지도 모른다.
같은 편인 영국 사람들도 배신은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며 아놀드를 겁쟁이, 배신자로 무시했고 결국 그는 안습한 인생 후에 혼자서 씁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요컨대 '''문제가 없던 인물은 아니었지만 저지른 행동에 비해 너무 큰 오명을 얻었다'''고 볼 수 있는 셈. 미국에서도 그를 변호하는 입장의 프로그램도 나오기도 했지만, 그런 사정과는 상관없이 어쨌든 그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미국인들 사이에서 배신자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다.
미국 역사학계에서는 20세기부터 훨씬 더 객관적으로 아놀드를 연구하고 있다. 미국 독립전쟁 관련 권위자인 제임스 마틴 교수의 1997년 저작인 Benedict Arnold, Revolutionary Hero: An American Warrior Reconsidered 같은 것만 보아도 더 이상 아놀드를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분위기는 별로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티미의 못말리는 수호천사에서도 나온다. 조지 워싱턴으로 변장해 배신을 때리려 했으나, 티미 터너에 의해 뽀록나고 체포당한다.[16] 이때 조지 워싱턴 흉내를 내며 보여준 문서의 이름이 '''항립'''선언서(The Declaration of '''Surrenderpendence'''[17] ). 성우는 작중 정말로 다양한 배역을 맡은 걸로 유명한 변영희.
어쌔신 크리드 3에서도 역시 등장한다. 본편은 아니고 '''베네딕트 아놀드 DLC'''에 등장. 워싱턴이 몬머스 전투 이후 빡친 코너를 다시 불러다가 이것을 조사해줄 것을 의뢰하는데, 초기에는 코너도 워싱턴도 아놀드를 의심하지 않았다. 착실히 방첩임무를 수행하며 영국군의 스파이를 잡아조지던 중, 내사를 위해 보낸 사람에게 계속 자꾸 화물과 탄약 배달같은 단순노가다만 시키는 아놀드가 이상해 뒤를 캐다보면, 사실 영국군의 안드레 소령과 내통하고 20000파운드에 웨스트포인트를 영국군에게 팔아넘긴 사실을 알게 된다.[18] 이를 추궁하자마자 영국군이 공격을 하고 아놀드는 튀어버린다.
나중에 워싱턴이 '독립전쟁의 영웅도 배신을 하는 세상에 누굴 믿고 살아야되냐?'이라고 하자 코너는 ''''이게 다 댁이 뿌린 대로 거둔 겁니다''''라며 워싱턴을 대놓고 까버린다. 꼭 틀린 말이 아닌게 베네딕트 아놀드가 전공을 제대로 인정받기만 했어도 배신은 안했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허무하게 퇴장하나 싶더니... DLC 워싱턴 왕의 폭정에선 '''미친 조지 왕'''의 측근으로 등장한다. 워싱턴의 충복으로서 충실하게 국경지대의 시민들과 영국군, 원주민들을 학살하다가 대모를 죽이게 되고 열받은 라둔하게둔이 찾아와 암살한다. 그리고는 웨스트포인트에서 배신한 것에 대한 책임을 따지고 드는데 실은 패러렐 월드라 이 세계의 베네딕트 아놀드는 '''아직 배신하지도 않았고, 웨스트포인트 요새 근처에도 가본적이 없었던데다, 코너는 만나보지도 못했다.''' 악행 자체도 워싱턴 왕의 선악과에 조종당해 저지른 거였는데 여러모로 안습.
미국 드라마인 슬리피 할로우에서는 베네딕트 아놀드가 이스카리옷 유다가 예수를 팔고 받은, 저주받은 30개의 은화 중 하나를 영국군의 위폐 유포 작전을 개발살내다 얻은 후 타락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고어 비달의 미국연대기 1권 버에서 아론 버의 가상회고록에 따르면 상당히 개념있는 장교. 찌질하고 권력욕에 물든 조지 워싱턴에게 유일하게 쓴 소리를 하는 개념장교로 나온다. 결국 정치싸움에 밀려서 영국에 투항해서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언급이 나온다.[19]
'화성전선 이상없다'라는 보드게임에서 영국군이 운용하는 선더차일드 2세급 육상전함 중 그의 이름을 딴 전함이 존재한다. 웃기게도 화성인의 침공을 받은 미국을 돕기 위해 미국으로 파견된다. 알기 쉽게 설명하면 외계인 침공받는 대한민국을 돕는다고 일본에서 이완용급 전함을 보내준 거다. 베네딕트 아놀드 전함과 함께 싸우는 미군의 심정은 어떨지...
심슨가족 할로윈 에피소드 중에 악마에게 도넛을 대가로 영혼을 판 호머가 지옥에 끌려가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지옥에 간 호머를 호머의 가족들이 구해오기 위해서 악마에게 재판을 걸었다. 이때 악마가 '''배심원으로 불러온'''[20] 지옥에 가 있는 인간들 가운데 그것도 가장 먼저 '매국노 아놀드'로 등장한다.[21] 호머측 변호사도 도망가버리고 재판이 호머에게 불리하게 판결이 내려지려는데 마지가 호머와 결혼할 때 찍은 사진[22] 을 들고 와 배심원들에게 보여준다. 뒷면에 적힌 호머의 쪽지를 배심원으로 나온 해적 검은수염이 "이거 무슨 보물지도 같이 생겼네"라고 하는 것을 사진을 빼앗으며 "자네는 글자도 못 읽나?"라며 읽는다. 내용은 "사랑하는 마지, 결혼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영혼 뿐. 내 영혼은 영원히 당신 꺼야'''"로 이를 들은 배심원들은 모두 호머 심슨의 영혼은 마지 심슨의 소유물임을 확신한다고 선언한다. 덕분에 악마에게서 영혼은 돌려받았는데, 대신 '''머리가 도넛이 되는''' 결말로 이어진다. 그리고 경찰들이 커피컵들면서 오늘은 나오겠지 라면서 대기하는건 덤.
사우스 파크 시즌16 3화(faith halling)에서도 스탠 마시가 카트맨, 카일, 케니랑 페이스 힐링 밈 비디오를 찍기로 약속한 척 남모르게 오 롱 존슨 밈 자세를 보이다 들키자 '미국 독립 전쟁에서 소문난 배신자가 누구랬더지?' '베네딕트 아놀드'라 디스하기도 했다.
힙합 그룹 N.W.A의 내분 및 힙합 디스전에도 이 인물이 인용되었다. 금전 수익 배분 문제로 N.W.A를 탈퇴한 아이스 큐브가 싱글 데뷔를 하자 N.W.A에서 '베네딕트 아놀드 새끼를 팀에서 쫒아냈다.' 라는 디스 랩을 한다. 그 순간 빡친 아이스큐브도 '내가 베네딕트 아놀드? 염병 지금 선전포고냐?' 하며 디스 랩 No Vaseline를 만들고 갱스터 랩 디스전이 시작되었다. 이 상황은 N.W.A의 전기 영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에 재연되었다.
A&E Networks스튜디오에서 2003년에 제작한 TV용 영화 <베네딕트 아놀드: 명예의 문제>에서는 아놀드의 입장에서 그의 배신 이야기를 따라가며, 그를 매국노로 비난하는 대신 그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해주면서 비극적인 캐릭터로 그리고 있다.
[1] 아놀드가 상인으로 일하면서 배 좀 타봤다는 것이 근거였다.[2] 당시 영국군에는 26척이나 되는 제대로 된 전함이 이미 있었다.[3] 영국군에서 복무하고 유럽 각지의 전장에서 경험을 쌓은 찰스 리도 '''능력과 경험만으로 친다면''' 베네딕트 아놀드를 능가한다고 볼 수도 있으나... 능력과 경험에도 불구하고 그 오만함이 너무 쩔어서 문제가 된 케이스. 찰스 리는 사사건건 조지 워싱턴의 자리를 노리려고 의회에 뒷공작까지 하다가 결국 들통났고, 몰리 마운트 전투에서 퇴각하는 영국군을 공격하라는 워싱턴의 명령에 항명하여 '''그대로 장군에서 짤렸다.''' 나중에 영국군에 포로가 되는가 하면, 어지간히 열받은 조지 워싱턴의 부하들한테 시도 때도 없이 결투 신청을 받을 정도. 후에 개들 옆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안습한 처지가 되었다.[4] 이 일로 호레이쇼 게이츠는 워싱턴의 자리를 넘볼 정도가 되었다. 존 애덤스와 샘 애덤스는 워싱턴을 시기해서 호레이쇼 게이츠를 지지했고 워싱턴의 총사령관 자리는 수시로 위협받게 된다.[5] 전투 후에 부관이 "어디 다치셨습니까?"라고 묻자 아놀드 왈 '''"다리에 맞았다. 차라리 심장에 맞았다면 더 좋았을것을..."'''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 역사학자는 '''베네딕트 아놀드가 정말로 다리 대신 심장에 맞아서 새러토가에서 죽었다면 영웅으로 추앙받았을 것'''이라고 하였다. 따지고보면 당연한 말이다.[6] 사실 여기에는 아놀드가 이 즈음에 새로 사귀게 된 '사교계에서 여러가지 의미로 유명인사'였던 여성 페기 시펀(Peggy Shippen) 때문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 여성은 아놀드의 후처가 된다. 첫 부인은 일찍 사망. 여담으로 이때 진 빚은 갚았다가 다시 빚졌다가를 반복하면서 결국 아놀드가 죽은 후에야 후처인 페기가 부동산을 팔아서 갚아버린다...[7] 실제로 새러토가 국립역사공원에는 다리 모양의 기념비가 있는데, 아놀드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고 '대륙군에서 가장 뛰어난 군인'의 부상과 활약을 기념하고 있다.[8] 그러니까 일생을 배신자로 살았고 이런 저런 일에 종사했지만 마음만은 독립군이라는 이야기. [9] 페기는 일기장에서 '남편은 죽기 사흘전부터 계속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으며, 결국에는 말을 할 수도, 먹을 걸 먹을 수도 없게 되었다.'라고 썼다.[10] 페기 시펀과 재혼하기 이전의 본처는 미국 독립전쟁 발발 직후에 사망했으므로 말 그대로 도시전설.[11] 본토 영국장교 출신들인 호레이쇼 게이츠나 찰스 리는 정식적으로 영국장교 직위를 포기하고 대륙군 장교 직위를 받았다.[12] 존 안드레 소령은 미남에다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의 4개 국어까지 할 수 있었고 미술, 음악에도 능통한 엘리트 신사, 즉 엄친아였다. 카리스마도 넘쳐서 식민지 시대 때 영국군 그리고 영국군을 증오하던 식민지인들에게도 존경의 대상이었다. 이 때문에 아놀드 장군의 아내와 바람피는 사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안드레 소령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부터 영국 혈통은 아니고 부친은 스위스인, 모친은 프랑스인이었다고 한다. 태어나기는 런던에서 태어났으니, 4개 국어를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모친이 프랑스인인데다, 스위스는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모두 쓴다. 사실 지금 이 사람이 묻혀있는 장소가 웨스트민스터 사원이라는 점만 봐도 당대에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를 알 수가 있다.[13] 당시 동인도 회사는 영국군 전역 당시 계급을 그대로 적용시켜 주었다. 아놀드는 준장이나 그에 준하는 높은 계급이나 직위을 신청했을 것이다.[14] 물론 진지하게 까지는 않는다. 고작 "어라, 그 배신자랑 이름 같네? 나중에 내 뒷통수 치지는 마라 ㅋㅋㅋ" 정도. 또 현재는 아놀드보다 교황이나 배우가 먼저 떠오른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그것과 별개로 현재까지도 미국에는 이름이 베네딕트인 사람이 거의 없다.[15] 미국 독립전쟁은 징세와 의회의 대표권을 둘러싼 헌정적 갈등도 있었지만, 영국 정부가 원주민 보호를 위해 식민지인들의 서부 이주를 제한한 것과, 막 정복한 캐나다의 프랑스계 가톨릭 신자들의 기본권을 보호해주기로 한 것에 대한 식민지인들의 반발 역시도 한 몫을 했다. 이러한 부분에서는 식민지인들이 영국 정부보다 더 도덕적 정당성이 있었다고 보기가 어렵다.[16] 티미 왈 "미국 역사상 최악의 배신자." 완벽하게 변장해서 티미도 처음에는 누가 진짜 워싱턴인지 구별 못했으나, 나무를 주자 진짜 워싱턴은 이성을 잃고 도끼로 찍으려 했고, 아놀드는 그 나무가 무슨 상관이냐며 정상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모든 사람들의 반응은 '(도끼로 찍으려고 한)저 사람이 진짜 워싱턴 맞네'. 티못수의 워싱턴은 야사인 '어린 워싱턴과 벚나무'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는지 나무만 보면 발작하듯 찍어대려고 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17] 원래는 Independence(독립). 작품에서 묘사된걸 직역하면 "항복립" 또는 "항립" 쯤된다.[18] 해상 교역 기준 교역단 하나당 순이익만 1만파운드씩 나온다. 육로 교역단이라 해도 하나당 순이익이 최소 5천파운드는 나온다.[19] 사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아놀드 자신의 능력이나 충성심은 꽤 괜찮았다. 일이 잘못 풀려서 배반자가 된 것이지.[20] 호머측 변호사와 서로 한 가지씩 요구사항을 주고 받는데 호머측 변호사는 중간에 화장실 가는 시간을 허용해 달라고 했고 악마는 배심원을 자기가 고르겠다고 했다.[21] 은근히 골때리는 것이 세 번째로 나온 것이 리처드 닉슨이다. "난 지옥 간 게 아니야. 거기다 텔레비전 보는데 끌고 오는 게 어디 있어?"라고 항의하다가 "내가 소원 들어 줬잖아"라는 악마에게 "네 주인님"하고 데꿀멍.[22] 호머가 결혼 케익을 혼자서 다 먹으려고 하다가 배탈이 나서 응급실에 실려간 상태에서 찍힌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