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버스 1

 

[image]
'''베이징 버스의 얼굴마담'''[1]
1. 노선 정보
2. 개요
3. 역사
4. 특징
5. 시간표


1. 노선 정보


베이징 공교 시내버스 1번
기점
베이징시 차오양구 쓰후이 환승센터
종점
베이징시 스징산구 라오산 차고지
쓰후이행
첫차
05:00
라오산행
첫차
05:00
막차
23:00
막차
23:00
평시배차
5분
첨두배차
2~3분
운수사명
베이징 공교
운행거리
24.8km
노선
쓰후이 환승센터(쓰후이역) - 다왕루역 - 궈마오역 - 융안리루커우베이 정류장 - 베이징역 서부 정류장 - 둥단루커우베이 정류장 - 톈안먼동역 - 톈안먼시역 - 시단루커우동 정류장 - 푸싱먼역 - 난리스루역 - 무시디시 정류장 - 쥔스보우관역 - 궁주펀역 - 우커쑹차오둥 정류장 - 위취안루시커우 정류장 - 바바오산역 - 라오산 - 라오산차고지
베이징 공교 시내버스 심야1번
기점
베이징시 차오양구 쓰후이 환승센터
종점
베이징시 스징산구 라오산 차고지
쓰후이행
첫차
23:20
라오산행
첫차
23:20
막차
04:50
막차
04:50
운행횟수
일 12회
배차간격
평균 30분
운수사명
베이징 공교
운행거리
24.8km
노선
쓰후이 환승센터(쓰후이역) - 다왕루역 - 궈마오역 - 융안리루커우베이 정류장 - 베이징역 서부 정류장 - 둥단루커우베이 정류장 - 톈안먼동역 - 톈안먼시역 - 시단루커우둥 정류장 - 푸싱먼역 - 난리스루역 - 무시디시 정류장 - 쥔스보우관역 - 궁주펀역 - 우커쑹차오둥 정류장 - 위취안루시커우 정류장 - 바바오산역 - 라오산 - 라오산 차고지

2. 개요


베이징시 차오양구부터 스징산구까지 24.8km를 운행하는 노선.
베이징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시내버스 노선이다.[2]
중국 최초의 유료 시내버스이다.

3. 역사


'''1935년 9월 4일[3]''' 차오양먼-푸청먼 간 8.7km짜리 노선을 가진 시내버스로 개통했다.
1937년 7월 7일, '''루거우차오 사건이 발생하고 중일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국민당과 공산당 모두 전시상태로 돌입하여 폐선.''' 당월 30일에는 베이핑과 톈진이 일본군에 넘어갔고, 8월에 중국군이 베이핑을 되찾기 위해 총력전을 벌였으나 또 졌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전쟁 내내 베이핑을 되찾지 못했다.
8년간 지속된 기나긴 중일전쟁이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로 끝나고[4] 5개월 뒤, 1946년 2월 1일 다시 개통하면서 첸먼-동안스창[5]-자오다오커우로 구간이 완전히 바뀌었고, 길이도 5.78km로 줄었다. 이때는 제 2차 국공내전이 진행중이었지만[6] 국민당이 이기고 있었기 때문에 정상운행중이었다.[7] 하지만...
1948년 8월 20일 '''제 2차 국공내전에서 전세가 뒤집혀 국민당이 밀리기 시작하는 바람에 두번째로 폐선.[8]''' 그리고 나서 '''겨우 1년 뒤에 국민당이 국공내전에서 지면서 타이완으로 도망침'''과 동시에 본토에서는 중화민국의 시대가 끝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다.
1950년, 중국 정부에서 첸먼-자오다오커우 구간으로 1번을 부활시켰다. 노선 길이는 폐선 직전과 동일한 5.78km. 이때 중국은 군대를 한국의 전쟁터로 파병보낸 사이 남은 병력으로 티베트를 침공했다. 티베트가 너무 약했기에 가능했던 것.
1951년 4월 7일, 수요 부족으로 인해 구 베이징 버스 6[9]과 통합되면서 첸먼-주스커우-광안먼으로 노선이 변경되었다. 노선 길이는 11.96km. 이 시기에 인민해방군은 6.25 전쟁을 거의 처음 상태로 리셋시켰다.[10]
1952년, 노선 길이가 11.7km로 변경.
1958년 12월 2일, 샹동-둥즈먼으로 노선이 변경되며 길이도 13.13km로 늘었다. 이때 중국 전역에서는 모주석이 해로운 새라고 교시한 참새를 때려잡고있었다.
1959년 3월 10일, 광안먼-안딩먼으로 노선이 변경되었다. 노선 길이는 11.7km. 이 해에는 참새 때려잡은 업보덕에 전국이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다.[11]
1959년 5월 29일, 겨우 49일만의 노선 개정으로 인해 자오다오커우-안딩먼으로 노선 변경. 노선 길이는 6.68km로 거의 반토막났다. 5달 뒤에는 모주석과 흐루쇼프가 카드 게임을 하며 합작사업을 모조리 파기해 지하철 계획이 줄줄이 연기되었다.
1960년 9월 6일, 무궤도전차 4번의 신설로 인해 후팡루-동안스창으로 노선이 변경되면서 안그래도 짧았던 노선 길이가 5.8km로 칼질당했다.
1960년 9월 28일, '''수요 부족으로 인해 세 번째로 폐선.''' 이때쯤에는 '''자연재해와 기근이 동시에 터지면서 대약진운동이 제대로 망해가고있었다.'''
1961년 7월 5일, 궁주펀-중산궁위안-둥단-바왕펀 간 14.82km의 노선으로 또 부활했다. 또한, 이때부터 1인당 1자오[12]의 표값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도 중국은 전해부터 지속된 기근과 자연재해로 막장이었다.
1961년 8월 16일, 둥단역이 둥단역과 왕푸징역으로 분리되었다.[13] 이 시기에 대약진운동이 대략 4천만의 사망자를 남긴 채 끝났다.
1970년 노선 길이가 14.28km로 변경되었다.
1971년 1월 28일, 베이징역-공후이다러우[14]간 15.78km 구간으로 노선이 변경.
1972년 11월, 수요 상승을 위해 노선이 일부 변경되며 길이도 16.13km로 늘었다.
1973년 4월 15일, 1970년 시절 노선으로 롤백했다.
1982년 10월, 궁주펀 심환도가 생기면서 노선 길이가 14.6km로 변경.
1989년 천안문 6.4 항쟁 당시 계엄령 선포로 인해 일시 운행 중단.
1992년 6월, 바왕펀로[15] 공사로 인해 랑자위안역에서 타절한다.[16]
1995년 6월, 베이징 인민대표의 건의가 받아들여지며 궁주펀-류다오베이리 간 18.8km 구간을 포함하여 마관잉, 바왕펀까지 잇는 노선으로 변경되었다.
2009년 4월 26일, 베이징 버스 4와 통합되며 펑타이구를 경유하게 되었다.
2012년 10월 20일 쓰후이 환승센터가 개업하며 1번 포함 총 28개 노선이 이곳으로 옮겨갔다.
2014년 5월 26일, 베이징 버스 728의 폐선과 동시에 궁주펀에서 라오산 차고지로 기점역을 변경하였다.[17]
2014년 12월 28일, 모든 노선의 운임 체계가 변경되었다.[18]
2016년 5월 23일, 용딩루커우동역(상행), 샤거우루커우시역(하행), 샤거우루커우동역, 동추이루커우역, 완쇼우루커우시역이 증설되었다.
베이징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휘말렸지만 허베이성 미경유 노선이라 현재도 잘 운행중.

4. 특징


쓰후이 환승센터부터 바바오산역까지 '''선형이 정확히 직선이다. 그 덕에 그 구간은 베이징 지하철 1호선과 같이 달린다.'''
'''전 차량 전기 굴절버스로 운행중이다.'''[19][20]
현재도 버스 안내양이 존재한다.[21]
2017년부터 들여온 광통사의 전기 굴절버스는 타 굴절버스[22], 친환경버스[23]와 다르게 도색이 빨간색[24]이고, 중국 시내버스 최초로 '''차내에 공기청정기를 달았다.'''

5. 시간표


베이징 버스 1번 첫•막차 시간표
2019년 1월 3일 기준
출발 시간
쓰후이 환승센터발
라오산 차고지발
첫차
05:00
05:00
막차
23:00
23:00
베이징 버스 심야1번 시간표
2019년 1월 3일 기준
출발 시간
기/종점 출발[25]
1회
23:20
2회
23:40
3회
00:00
4회
00:30
5회
01:00
6회
01:40
7회
02:20
8회
03:00
9회
03:40
10회
04:10
11회
04:30
12회
04:50
심야버스 시간표는 대부분의 심야버스와 공유한다.

[1] 이 버스는 한국 언론에서도 소개되었다.[2] 가장 오래된 노선은 1935년 8월 22일에 개통한 베이징 버스 5.[3] '''이때는 중화민국 시절이었다!'''[4] 당장 중일전쟁 도중에 미국을 건들어 전선을 무리하게 확대한 것이 일본군의 패전 요인이었다.[5] 동안시장. 재래시장할때 그 시장 맞다.[6] 국공합작은 중일전쟁 끝나자 마자 파기되었다.[7] 이때 한국은 미군정/소련군정 시기였다.[8] 국민당의 부정부패가 매우 심각해서 새로 점령한곳에서까지 비리를 저지르는 바람에 중국인들이 국민당이 아닌 공산당 편을 들면서 전세가 뒤집어졌다. 한마디로 자업자득.[9] 현재 6번하고는 크게 다른 노선이다.[10] 1951년 1월에 유엔군이 혹한기를 겪으며 주춤하는 사이 한국군이 점령한 북한 땅을 모조리 되찾고 서울까지 다시 가져갔다가 3월에 보급 문제로 38도선으로 후퇴했다가 4월에 다시 공세를 시작했다. 한달 내내 총공격을 했지만 실패.[11] 베이징도 예로부터 동으로는 관료들, 서로는 갑부들이 살았다고 하나 기근에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다. 배급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12] 0.1위안. 이때만해도 1자오(1마오)는 물론 1펀도 전혀 똥값이 아니었다. 이때는 시골에서는 1위안이 큰돈 취급받았던 시절이다. [13] 지하철 둥단역과 왕푸징역보다 '''무려 20년 빨랐다.'''[14] 당시 1호선이었던 첸먼역, 쉬안우먼역 경유. 이 역들은 나중에 2호선으로 바뀐다.[15] 현 젠궈로[16] 현재도 1번은 랑자위안역을 경유한다.[17] 이때부터 펑타이구 경유가 아니라 스징산구 경유로 바뀌었다.[18] 1위안 기본요금제였던 요금제가 기본 10km 2위안, 기본요금 거리 이후 5km당 1위안으로 변경.[19] 당초 계획대로면 '''한번에''' 전기 굴절버스로 전 차량 교체해야 했으나, 상상을 초월하는 단가탓인지 무산되었고, 차량을 순차적으로 도입 후 기존 차량을 5번 등 다른 노선에 이적시키고 있긴 하나, 이 역시 중국의 경기 침체로 진척이 느렸다. 참고로 같은 전기 굴절버스인 현대 일렉시티 굴절버스의 가격이 '''대당 9억원이다.''' 광통사의 버스에 계기판 재탕 등 여러가지 원가 절감을 하긴 했으나 이 역시 가격이 '''5억 이상으로 추정된다.'''[20] 다만 심야버스는 수요가 적어 일반 전기버스를 운행한다. 가끔씩 정규 1번도 운행.[21] 대부분의 굴절버스 운용 고수요 노선은 안내양이 존재한다.[22] 굴절버스는 굴절버스 전용 노란색+파란색 도색을 한다.[23] 전용 도색은 하늘색+노란색이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버스도 같은 도색이지만, EV로고에 PLUG-IN 표식이 있다.[24] 일반 버스는 이것보다 조금 더 어두운 빨간색 도색을 한다.[25] 쓰후이행과 라오산행 모두 같은 시간에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