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와디스와프 슈피겔만

 


Władysław Spiegelman (1906년 10월 11일~1982년 8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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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에서 풀려난 뒤 죄수복 차림으로 찍은 사진.[1]
"쥐"의 표지에 실려 있는 그림. 의자에 앉은 쪽이 블라덱, 바닥에 엎드려 이야기를 듣는 쪽은 아티. 배경은 폴란드 총독부 지역의 도시들과 절멸수용소들[2]이 그려진 지도이다.
1. 소개
2. 기구한 인생
2.1. 과거
2.2. 현대


1. 소개


주인공이자 작가 아트 슈피겔만의 아버지. 만화 내에서는 애칭인 블라덱(Vladek)으로 부르지만, 본명은 브와디스와프 슈피겔만(Władysław Spiegelman: 폴란드어)이며, 유대식 이름은 아브라함 벤 지에프(Avraham ben Zeev: 히브리어)이다.
작 중 사용하는 블라덱(Vladek, 폴란드어로는 브와데크(Władek))은 브와디스와프의 별칭, 애칭이다. 작가가 블라덱이 부르기 더 편하다고 본명인 브와디스와프 대신 별칭인 블라덱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 문서에서도 문서 제목은 본명으로 기재하였지만, 이해가 쉽게 쥐(만화)에서 나왔던 대로 대중에게 익숙한 이름인 블라덱으로 서술한다.
일부 사람들이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의 주인공인 블라덱 스필만(약칭) / 브와디스와프 슈필만(Władysław Szpilman - 폴란드어)과 동일인물인줄 알고 오해하는데, 이 사람과는 이름은 같고, 성은 발음은 좀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오해하지 말도록 하자. 실제로 성 발음은 한국어로는 대강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현지 언어로는 발음 차이가 꽤 크다.

2. 기구한 인생


자세한 에피소드들은 문서를 참고. 여기서는 전체적인 행보만을 설명한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장래를 촉망받던 젊은이가 전쟁과 아우슈비츠를 거치며 망가지고, 그 망가진 젊은이가 노인이 되어 자신과 가족들을 비참하게 만드는 과정.'''

2.1. 과거


독일과의 국경 근처에 있는 폴란드의 쳉스토호바(Częstochowa)[3]에 살던 평범한 유태인 직물상으로 검소하고 성실했지만 그리 부유하지는 않았다.
14세 때 학업을 그만두고 일을 해야 했고, 젊은 시절엔 미국에 가고 싶어서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였으며, 이는 그가 전쟁 중 무사히 살아남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게 된다. 처음 아우슈비츠에서는 카포의 개인 영어교사가 되어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다하우 수용소에서는 수용자들 중 영어를 할 줄 아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는데, 영어와 프랑스어밖에 못하는 프랑스인과 만나 친분을 다지고, 그한테서 음식을 좀 얻을 수 있었다.[4] 영어 외에도 모국어로 칠 수 있는 이디시어와 폴란드어, 독일어를 할 수 있었다고.[5]
젊었을 때는 영화배우 루돌프 발렌티노[6]를 닮았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위의 사진은 나이가 좀 든 뒤의 모습이라 별로 안 닮았으나 젊었을 때 사진을 찾아서 보면 약간 닮았다. 사실 아우슈비츠에서 오만가지 고생을 당하고도 얼굴이 그렇게 상하지 않은 걸 보면[7] 확실히 미남인데다가 인기도 꽤나 많았다. 그 중 루시아 그린버그라는 미인의 적극적 대시로 애인 관계가 되지만, 계산적이고 냉정한 블라덱은 가난한 집안의 그녀와 결혼하려는 생각이 없었다.[8] 그러다 부유한 가문인 질버베르크 가문[9]의 딸 아냐 슈피겔만을 만나게 된다.
그녀의 지성미에 빠지게 된 블라덱은 루시아를 차고 그녀와 약혼한다. 그러나 그 사랑이 집착에 가까웠던 루시아는 블라덱에게 차인 걸 쉽게 인정하지 못해 아냐에게 "당신의 은밀한 친구, L."이라는 서명과 함께 블라덱을 비난하는 편지까지 보냈다. 결국 블라덱은 아냐를 힘들게 설득했고, 끝내 결혼에 성공했다. 이후 루시아 얘기가 안 나오는 걸 보면 포기한 모양. 아냐가 결혼 전에도, 이후에도 종종 우울증에 시달렸지만 블라덱은 그녀의 마음을 가라앉혀 주기 위해 애썼다.
이후 그는 부자 장인어른의 빽과 자신의 수완으로 공장을 세운다[10]. 블라덱을 지켜보던 장인이 자신의 사위가 사업적으로 싹수가 보이자 자신의 손자가 태어나면 유복한 삶을 살길 원한다며 어서 임신할 것을 강권한다. 그래서 결혼 직후 아이 리슈 슈피겔만을 낳자 바로 공장을 세워 준다. 블라덱은 이 공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하여 매우 부유해 진다. 이후 유태인 탄압으로 질버베르그 가문이 대부분의 수입을 잃고 사실상 가문 구성원 모두가 기존의 재산을 파먹고 있는 상황에서 연줄을 이용해서 직물을 암거래함으로써[11] 사실상 가문에서 유일하게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 될 만큼 유능하였으며, 장인 역시 블라덱의 이런 모습을 보고 '역시 집안에는 똑똑한 사람이 하나 쯤은 있기 마련이다'고 칭찬했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여 징병 통지서가 날아오고, 폴란드계 유태인인 그는 폴란드 예비군 소속으로 참전하고 아냐를 비롯한 친정 가족들은 피난을 간다. 블라덱은 예비군이었고 전황이 매우 급박했기 때문에 단 며칠만 훈련을 받고 전선에 배치되었다. 그 와중에 나무로 위장하고 움직이는 독일군 한명을 사살하지만 그 직후 (후퇴명령을 못 받았는지 못 들었는지) 포복해서 대기하고 있다가 포로로 붙잡혔다. 그리고 자신을 붙잡은 독일군에게 독일어로 자신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상부의 독전이 무서워서 그냥 허공에 총을 쐈다고 거짓말하며 살아남았다. 블라덱은 냉철하고 강인한 정신력과 판단으로 포로 수용소에서도 좋은 대우를 받으려 노력하고,[12] 운이 좋게도 포로 석방 조약이 인정되면서 풀려난다.
그러나 석방된 포로를 태운 열차는 블라덱의 목적지인 소스노비에츠를 정차하지 않고 그냥 지나갔는데, 소스노비에츠가 독일의 오버슐레지엔 주에 편입되어 나치 독일의 직할령이 되었기 때문. 열차는 크라쿠프, 바르샤바 등 폴란드 총독부령에 들어서야 정차했고, 블라덱은 하릴없이 종점인 루블린까지 가게 된다. 그곳에서 독일군이 무단으로 폴란드군 포로를 학살하는 데 휘말릴 뻔 했지만 지역 유대인 공동체의 도움으로 살아남았고,[13]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한 폴란드 군인인 것처럼 차장을 속여서 몰래 기차를 타고 소스노비에츠의 집으로 돌아와 아냐를 만난다.
이후 유태인에 대한 탄압이 점점 심해지면서 집도 재산도 다 뺏겨버리고 질버베르크 가족들도 (나이 순으로) 하나씩 아우슈비츠로 끌려가게 된다. 블라덱 부부도 게토에서 살다가 게토 소거 이후 떠돌면서 숨어 살다가 헝가리는 안전하니 와서 같이 살자는 친구 만델바움의 조카 아브라함의 편지를 믿고 기차를 타고 가던 중 미리 대기하고 있던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바로 아우슈비츠로 끌려간다. 아브라함이 이들을 배신한 건 아니고, 게슈타포의 협박에 의한 것. 아브라함은 그 전부터 아우슈비츠에 수감되어 있었는데, 결국 그 안에서 사망했다.
그때부터 수용소에서 온갖 개고생을 하다 종전 후 다하우 수용소에서[14] 아내와 함께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아우슈비츠 행 이전의 시내 생활에서는 돈을 벌어오고,[15] 벙커 생활에서는 은신처 제작, 아우슈비츠에서는 카포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 일을 맡아 자기 편으로 만드는 등 진짜 능력자다. 특히 이 영어 능력의 도움이 컸는데, 감독관의 보호 덕에 같이 들어온 사람들 중에선 '''혼자'''만 남았다고.[16] 또한 아우슈비츠에 있을 때 아내인 아냐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일하러 행진할 때 아냐가 있는 수용소 쪽을 쳐다봤다가 병사에게 발각되어 두들겨 맞고, 아냐는 블라덱이 남녀 수용소를 가르는 철창 너머로 매번 던져주는 빵을 얻다가 한 번은 여자 카포에게 발각될 뻔 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녀를 포함한 해당 수용관 전체 인원이 체벌을 받았으나 발각되지 않았다. 블라덱의 말에 의하면 주변 사람들이 많이 도와줬다고. 실제로 블라덱은 여성 카포 만치에[17]를 통해 아냐의 소식을 들었고, 위에서 빵을 얻다가 체벌을 받았을 때는 아냐의 친구들이 끝까지 입을 다물어 줬다고 한다.[18]
전쟁이 끝난 후에는 스웨덴의 백화점에서 양말과 미국산 나일론 스타킹 판매(끼워팔기)를 하여 성공했고,[19] 미국으로 건너온 뒤에는 보석상을 경영했다(다이아몬드를 거래하며 먹고 살았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결혼 전부터 우울증이 있었던데다[20] 장남인 리슈를 비롯한 온 가족이 전부 전쟁 중에 희생된 끔찍한 기억,[21] 차남 아트 슈피겔만의 엇나감[22] 등이 겹쳐서 괴로워하던 아냐는 욕조에서 칼로 손목을 긋고 자살해 버린다.

2.2. 현대


블라덱은 아우슈비츠에서의 경험과 아내의 죽음으로 현재까지도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살아가게 된다. 그 생활을 현재도 버리지 못해 주변인들과 마찰을 빚는다. 작품 상의 현재에서는 물건 하나 버리지 못하는 노랭이. 후처인 말라가 집을 나가자 심장이 나쁜 자신은 먹지 못하는 소금시리얼을 가게에 가져가서 환불해 달라고 난리치다가 점장에게 아우슈비츠 얘기를 해서 끝끝내 환불을 받고 1달러로 6달러 어치 식료품을 사들고는[23] 매우 의기양양해 하며 또 가스렌지 켤 때 쓰는 나무성냥을 아끼려고 가스렌지를 하루종일 켜둔다. 가스비는 집세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공짜라나. 종이성냥은 호텔에서 가져와서 쓴다. 심지어는 아티와 함께 길거리를 걸으며 이야기할 때 쓸만한 게(버려진 전화선이라든지) 눈에 보이면 무작정 집어온다. 홍차 티백을 말려서 다시 쓰는 건 기본. 오죽하면 그의 구두쇠질에 질려버린 말라가 '''"그 양반 통장에는 수십만 달러[24]가 있는데 사는 건 거지같이 살고 있어!"'''라고 아티에게 말할 정도.[25]
밤에 잠잘 때마다 "우아아아아아아아!!!!" 하고 울부짖는 잠꼬대를 한다.(PTSD의 증세 중 하나인 악몽) 아티는 대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모든 부모가 밤에 저렇게 소리지르는 줄 알았다고.[26] 거기다가 주위 사람들을 달달 볶아서 이웃들, 말라, 심지어 아들마저도 아버지의 행동에 극도의 노이로제를 얻어서 지긋지긋해할 정도로 엄청나게 인심을 잃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이 만지는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자기 실수로 물건을 깨도 주위 사람들 탓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주위 사람들을 짜증스럽게 몰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듯 하며, 아들 아티를 두고 "아티가 제 어미 닮아 히스테리컬하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분도 '''인종차별주의자.''' 며느리인 프랑소와즈가 같은 동네에 사는 흑인을 차에 태워주자 "믿을 수가 없군! 검둥이가 내 차 안에 있다니!"라고 폴란드말로 중얼거리면서 흑인이 물건을 훔쳐가나 안 훔쳐가나 계속 사이드미러로 감시한다. "검둥이와 우리 유태인이 같을 수가 있느냐?"라는 것.[27] 나중에 아트는 이 시절을 회고하며 자신이 '''"나치도 유태인 죽여가면서 똑같은 소리 했겠죠!"'''라고 짜증나는 얼굴로 말하자 아버진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고 한다.(만화의 세계/1996에서) 그렇긴 해도 아트도 나이가 들고 아버지를 되도록이면 이해해주려고 한다. 대신 아내인 프랑소와즈가 이런 인종차별에 대하여 "아버님이 하는 짓이 나치랑 차이가 뭐죠?"라고 항의하고 버럭거리는 아버지와 아내를 말렸다. 극중에서도 아버지와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어쩔 때는 아버지를 이해하지만 어쩔 때는 인종차별에 고집불통이라고 솔직하게 말하는데 이때는 아버지도 그냥 씁쓸하게 들으며 그리 화내지 않았다.
성격도 더럽다. 말라의 말에 의하면, 부부 싸움을 할 때마다 심장을 부여잡고 신음해대는 통에 진짠지 허세인지 모르겠으니 말라 쪽에서 그만둘 수밖에 없다고.[28][29] 이런 괴팍한 성질머리 탓에 현대 파트에선 주변 사람들 뿐 아니라 가족들로부터도 인심을 제대로 잃어버려 결국 참다못한 후처인 말라 슈피겔만이 그의 재산을 들고 튀었는데[30] 친아들부터 시작해서 이웃들까지 블라덱 편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고 오히려 "말라가 도망갈 만 해"라는 반응만 보였다.[31][32] 작중에서 아트 슈피겔만 본인이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가진 유태인에 대한 편견을 아버지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언급할 정도.[33][34]
2권 후반으로 가면서 폐에 물이 차거나 산소마스크를 끼는 등 위급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도망갔던 후처 말라까지도 돌아와서 챙겨줄 정도(본인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항목 참고).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블라덱은 말라와 싸우는 것도 지쳤는지 말라의 의견대로 플로리다의 콘도로 갈 계획이라 말하고, 급기야 치매 증상까지 보인다.[35] 결국 지병이 악화되어 사망(작중 구성에 의해 실제 사망 언급은 2권 2부에 나온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내 아냐의 곁에 나란히 묻혔다.
[1] 39세 시절로 2권 후반부에 실려 있다. 전후 유태인들 사이에서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죄수복 차림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유행했다고 한다.[2] 아우슈비츠, 마이다네크, 그리고 베우제츠.[3] 폴란드령 상부 슐레지엔에 있던 도시. 대홍수 당시 검은 성모화를 보관하고 있던 이 곳의 수도원이 소수 병력으로 대규모 스웨덴 군을 막아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재는 독일과의 국경에서 멀리 떨어진 후방에 위치하고 있다. 2차대전 직후 소련에 점령되었던 지역이 대거 소련에 편입되고, 그 대가로 동부 독일의 상당 부분을 영토로 편입시켜 국경이 서쪽으로 훨씬 이전해 버렸기 때문. 쥐의 지도에도 나와 있지만 이 당시에는 바르샤바가 폴란드의 중앙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동쪽으로 치우쳐 있는 상태. 2차대전 후 독일과 폴란드의 영토 문제 참조.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체스토초바"라고 오역되어 나온다. 크라쿠프 도시권에 속하는지라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크라쿠프 항목에 설명되어 있다.[4] 비유대인 수용자들은 당시 적십자를 통해 소포를 받을 수 있었는데 프랑스인이 그에게 음식을 좀 나누어 주었다.[5] 즉 젊은 시절에도 무려 4개국어를 구사 가능한 능력자다.[6] 영화 "시크(Sheik, 호남자라는 뜻)"의 주인공을 맡은 배우.[7] 위에 있는 사진은 그가 아우슈비츠에서 온갖 고생을 다 하고 난 다음에 풀려나서 찍은 사진인데다가 30대 시절에 찍은 사진인데도 얼굴이 꽤 준수하게 나왔다. [8] 루시아 그린버그의 집안은 지참금도 내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다고 한다.[9] 작중 묘사에 따르면, 당시 폴란드 최대의 양말 공장을 가진 집안이었다고 한다.[10] 장인이 어떻게 부인(자신의 딸)과 자식(자신이 외손자)를 부양할 것이냐고 묻지 블라덱은 (본래 직물상이었던만큼) 직물 가게를 차릴 생각이라고 대답했지만 이 대답을 들은 장인은 "나는 내 손자가 태어나면 유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원한다" 면서 공장을 차려주었다고 한다. 이 말대로라면 장인은 특별히 조르지도 않았는데 공장을 떡 차려줄 정도로 블라덱을 마음에 들어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본작 <쥐>에 대한 문서들에서도 자주 거론되듯 이 이야기는 순수히 블라덱의 증언만에 기초한 이야기인데, 그 블라덱은 아들 아티조차 "우리 아버지는 (반유대주의자들이 이야기하던) 부정적 유대인상을 현실에 구현해놓은 것 같다" 고 씁쓸해 할 정도로 수완좋지만 욕심많고 이기적인 면모가 두드러지는 인물이라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곤란할수도 있다. 같은 기차에 탄 사람이 창가 자리에 있던 블라덱에게 "목말라 죽겠으니 지붕 위의 눈 한덩이만 집어달라" 고 부탁해도 대가로 설탕을 받기 전까지는 들어주지 않을 정도로 자기 이익을 챙길 기회는 절대 놓치지 않는 인물인 것. 즉, 블라덱의 주장만 들어보면 아냐와의 결혼은 순수하게 사랑때문에 한 것이고, 처가의 도움은 탐내지도 않았지만 장인이 알아서 도와준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블라덱이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구했다거나, 아냐가 부잣집 딸이라는 것을 기대하고 한 결혼일 가능성도 있는 것. (물론 이후의 삶에서 블라덱은 좋은 사업수완으로 공장도 잘 경영했고, 처가인 질버베르크 가문에게 나름 도움이 되려고 애썼으며, 자신의 목숨을 걸고라도 아냐를 지키려고 할 정도로 아내를 아꼈으니 장인을 속였다는 비난은 받을 이유가 없겠지만.)[11] 당시 유태인 소유의 공장이나 점포 등 대부분의 재산은 '아리아인 관리인'에게 넘어간 상태였고, 본래 주인이던 유태인들은 잘해야 가게의 고용인 비슷한 처지로 겨우 남아있을 수 있는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블라덱은 과거 자신에게 사업적으로 빚을 졌던 유태인 가게 주인들을 찾아가(블라덱이 했던 사업은 직물 공장이었으니 당연히 미수금등의 형태로 블라덱에게 빚이 있는 직물가게 주인이 많았을 것이다.) 돈을 갚아달라고 요구했지만, 재산을 모두 빼앗기고 쫒겨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할 정도로 간신히 버티던 가게 주인들은 당연히 이 빚을 갚을 능력이 없었다. 물론 블라덱 역시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래도 무조건 빚을 갚으라고 억지를 쓰러 찾아간 것이 아니라 그런 처지면 빚은 갚지 않아도 좋으니까 대신 쿠폰(배급쿠폰) 없이 직물을 좀 팔아달라고 부탁한 것. 그 정도는 (가게의 물건을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크게 들어주기 어려운 부탁도 아니고, 빚을 갚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있으니 가게 주인들은 물론 대부분 흔쾌히 들어주었고, 이렇게 구한 직물들을 역시 쿠폰 없이 직물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암시장에서 팔아넘겼다.[12]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호수의 찬물로 목욕한다거나, 랍비 등과 토라를 읽는다거나, 노동에 지원해 따뜻한 음식과 침대를 얻는다거나. 다만 그 노동이 좀 많이 힘들어서 그렇지.[13] 유대인 공동체 측에서 나치에게 뇌물을 바쳐 이 지역에 친척이나 친구가 있으면 가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고, 운 좋게 그 지역에 아는 사람이 있어 빠져나왔다. 이 사람은 사업 관계로 알고 지냈는데, 그 사람에겐 두 딸이 있었고 소스노비에츠로 돌아온 이후에도 종종 선물을 보냈지만 어느 날 독일군이 선물을 가로챈다는 편지를 보낸 후 소식이 끊겨 버렸다고.[14] 종전 직전 아우슈비츠가 소개되었고, 당시까지 살아남은 수용자들은 몇백 킬로미터를 걸어 다하우에 수용되었다. 일명 '죽음의 행진.'[15] 가문의 사업체를 빼앗긴 뒤 질버베르크 가문의 대다수가 잉여(...)가 된지라 사실상 가문에서 유일하게 돈을 벌어오는 것이 블라덱이었다고 한다. 다만, 블라덱이 가문 사람 모두를 먹어살렸다기 보다는 원래 질버베르크 가문이 워낙 갑부였던지라 사업 수입이 끊긴 상태에서도 기존의 재산을 가지고 꽤나 풍족하게 살고 있었지만, 그나마 있는 재산만 파먹지 않고 얼마간이라도 돈을 벌어서 보탠 유일한 인물이 블라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작중 묘사를 보더라도 블라덱의 장인이 '사업체를 빼앗겨서 수입이 전혀 없는 상태인데 다른 가족들은 상황 파악도 못하고 전쟁 전처럼 호사스럽게 살려고 든다'고 불평하다가 블라덱이 그나마 돈을 벌어서 살림에 보태자 기뻐하는 모습이 나온다.[16] 이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갈 때도 함석장이에 구두공까지 곁다리로 주운 지식들로 온갖 일을 활용해가면서 살았는데(소스노비에츠에서 잠깐 판금을 했다고 하고 구두는 게토의 공장에서 친척인 밀로치와 일하면서 배웠다.) 이 부분을 보면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나온 것이 마냥 운에 의존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17] 헝가리 출신으로 게슈타포 남자친구가 있었다. 가끔씩 남자수용소와 여자수용소를 왔다갔다했다. 그러면서 몰래 편지를 놔두고 가기도 했다.[18] 평소에 아냐가 블라덱이 몰래 던져주던 음식을 혼자 먹지 않고 늘 주변 동료들과 다같이 나눠먹었는데, 블라덱은 그 얘기를 듣자 제발 남 걱정말고 당신부터 챙겨먹으라고 닥달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것 때문에 위에 언급된 체벌 사건 때 동료들이 끝까지 함구해줬을 가능성도 있어보인다.[19] 블라덱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홀로코스트에 살아남은 유태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막노동이 전부였다고 한다. 하지만 유태인이 사장으로 있는 백화점에 찾아가 담판을 벌여 유행이 지난 무릎까지 오는 긴 양말을 모조리 팔아치워 수익을 올렸다. 어떻게 팔았냐면, 처가에서 살아남은 거의 유일한 인척이었던 처남 헤르베르트가 미국에서 나일론 스타킹 공장을 하고 있었고, 당시 시절이 시절이다 보니 스웨덴에서 나일론 스타킹은 인기가 아주 높았지만 배급제 품목이라 상인들은 전부 구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이때 블라덱이 미국의 인척으로부터 나일론 스타킹을 대량 사들인 뒤 재고품 양말을 같이 끼워판다는 조건 하에 싼 가격으로 스타킹을 공급한 것. 나일론 스타킹의 인기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스웨덴 상인들은 양말을 그냥 버려도 이문이 남았다고 한다. [20] 아냐의 가족과 첫 대면을 하던 날 블라덱은 우연히 아냐의 집에 보관된 약을 찾았는데, 그의 증언에 따르면 상당했다고 한다. 즉 홀로코스트 이전부터 심한 우울증 환자였다는 것. 홀로코스트 와중에 살아남은 게 기적이었다.[21] 아냐의 가문인 질버베르크는 홀로코스트 이전까지 폴란드에서 가장 큰 양말 공장의 소유주였을 정도로 부유했고 구성원들도 많았지만, 전쟁 후에는 아냐와 그녀의 조카인 롤렉(수용소에서 생존, 미국에서 교수가 됨), 오빠 헤르베르트 부부(전쟁 발발 직전 미국으로 여행을 갔다 살아남음) 외에는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더군다나 아냐의 자살 몇 년 전 헤르베르트는 교통사고로 사망했는데, 블라덱은 '헤르베르트가 죽은 이후에는 아냐도 조금씩 죽어갔지'라고 말했다. 참고로 슈피겔만 쪽 집안은 더한데, 역시 살아남은 사람이 두엇에 불과한 데다가(이들 중에서는 러시아로 도망쳤다가 굴라그에 끌려간 사람도 있다고...) 사진이라도 남은 질버베르크 쪽과는 달리 이쪽은 죽은 이들을 추억할 사진조차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22] 블라덱의 성격 파탄으로 인해 아트는 사춘기 시절부터 아버지와 끊임없이 대립했고, 아냐가 자살하던 날 아트는 부모님이 싫어하던 여자친구(결혼은 하지 않음)와 데이트를 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23] 심지어 이 스페셜 K 시리얼은 '''개봉하고 일부 먹은''' 것이었다. 아트가 도저히 못하겠다고 거부한 이유가 있는 것. 당연히 다시 파는게 불가능한 상품이기 때문에 점장 입장에선 저 양반이 꼰대라 말도 안 통하는데 가엾기도 하고, 죽을 고생을 한 사람한테 뭐라고 할 수도 없으니 그냥 인심을 베풀어준듯. 사실 노슬아치라고 불리는 꼰대 노인네들에게 대부분 사람들이 꼼짝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정적으로 노인한테 함부로 욕하거나 폭행할 수도 없고, 조금이지만 인간적인 연민도 느껴지기 때문.[24] 아트 슈피겔만이 블라덱의 이야기를 기록한 게 1970년대 중후반이다. 그 시절에 수십만 달러다! 30대 후반에 수용소에서 풀려났을때 거지 신세였는데도 위에 언급된 양말 사업부터 해서 수십만 달러를 벌었으니 수완이 정말 좋긴 한 모양이다. 전쟁이 없던 시대에 태어났거나 유태인 학살이 없어서 젊은 시절부터 착실히 일했다면 나라에서 손꼽히는 백만장자가 되는건 일도 아니였을 가능성이 상당히 컸다. 실제로 전쟁전에는 혼자서 가게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있었고 결혼후 장인 어른이 양말공장을 혼수 선물로 준것을 생각하면 더더욱.[25] 아들인 아티마저 아버지를 연민하되 이런 블라덱의 편집증적인 면모에 대해서만큼은 치를 떨었으며, 오히려 계모인 말라와는 이런 점을 공통점으로 서로를 이해하며 꽤나 친하게 지냈다.[26] 때문에 아내인 프랑소와즈는 저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지만 아티는 '''정말 무심하게''' "응, 별 거 아냐. 아버지셔..."라고 말한다. 어릴 적부터 저 소리를 들어왔으니 엇나가지 않을 수가 없다.[27] 사실 이건 맹목적인 편견이라기보단 자신의 경험에 의한 것이다. 블라덱은 뉴욕에 온 첫날 흑인 좀도둑에게 소매치기를 당했기 때문(...). 이런 경험과 수용소에서 익힌 생존 본능이 합쳐져 흑인 전체를 혐오하는 방향으로 발현된 것. 물론 어떤 말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차별주의자의 행태지만, 그 광기의 시대에 겪었던 아픔이 현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것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실제로 유대교 신자인 유대인들은 유대교의 선민주의적 종교 특성상 인종차별이 매우 보편적이다.[28] 블라덱의 건강과 나이를 생각하면 싸움 중에 심장이 아플 수 있는 건 당연하지만 매번 부부싸움마다 그런다면 상대 입장에서 난처할 수밖에 없다[29] 실제로 작중에서는 아티와 함께 길을 걸으며 이야기하다 잠깐 심장마비가 일어났다. 작중에서 드러난 것은 그게 딱 한 번이지만 결국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한다.[30] 성질 더러운 노인네와 살며 일일히 그의 히스테리를 다 받아주고, 결정적으로 도망쳤다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했으니 말라가 된장녀는 절대 아니다. 블라덱이 도를 지나치게 너무했을 뿐. 오히려 돈도 있고 자유도 있는데 돌아온 걸 보면 대인배.[31] 말라가 나간 것 때문에 아버님이 신경이 더 날카로와졌다며 걱정하는 프랑소와즈에게 아티는 그 반대로 블라덱이 너무 신경질적이라 말라가 나간 것이라고 대답한다.[32] 그도 그럴 것이 블라덱이 워낙 자린고비질과 꼰대질만 일삼은 나머지 주민들 역시 블라덱으로 인해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듯.[33] 원래는 사교성있고 쾌활한 청년이었던 블라덱이 나치의 탄압을 받으면서 과거 유럽인들이 멸시했던 전형적인 유태인상으로 변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단 말라는 자신은 물론, 자신의 친구들이 모두 나치의 수용소를 겪었지만 누구도 블라덱처럼 되진 않았다면서 수용소 경험 때문에 블라덱의 성깔이 더러워졌을 것이란 아티의 추측을 비웃었다.[34] 수용소 생존자이자 부인인 말라이기에 할 수 있는 얘기다. PTSD와 트라우마는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타인이 함부로 얘기해선 안되며 블라덱은 수용소 내에서도 온갖 종류의 고생과 경험을 다해 봤으니 일반적인 생존자보다 그 휴유증이 더 심했을 것이다.[35] "널 보다니 놀랍구나!"라고 말하는데 정작 아티는 "네? '''어제 전화로 온다고 했잖아요?'''"라고 대답한다. 또한 리슈에 대한 기억까지 합쳐져서 아티를 리슈라고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