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 모키치(문호와 알케미스트)
1. 소개
2020년 5월 8일부터 22일까지 실시되는 전생연구 이벤트로 추가된 신규 문호. 러브크래프트와 마찬가지로 특수 책갈피인 '극 전생의 책갈피[3] '로 얻을 수 있다.'''정신과의 싸움이라....내 전문 영역이군. 맡겨줘.'''
이토 사치오의 제자[4] 이면서 사치오 이후로는 처음으로 추가된 아라라기파[5] 의 가인. 모티브는 사이토 모키치. 본업은 정신과 의사로[6] , 도서관의 주치의 포지션에 있는 모리 오가이는 잠서 특수대사에서 의사로서만이 아니라 문학서의 침식 현상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되어줄 것이라는 언급을 했다. 모키치 본인도 침식 현상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흥미를 갖고 있는지, 침식자들과의 싸움이 정신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영역이라며 의욕적인 모습을 보인다. 또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모키치가 오면 보수실이 사람으로 미어터질(...) 거라며 자신도 모키치를 많이 의지한다고 언급하는데, 실제로 아쿠타가와는 모키치의 단가에 심취했던 시기가 있었고 모키치는 아쿠타가와의 주치의이기도 했다.[7] 모키치의 생일에 올라온 공식 트윗에서 사치오가 모키치에게 용건이 있으면 보수실로 가 보라고 하는 것이나, 2020년 9월에 실시된 관장과의 공동연구 이벤트[8] 회상 등을 보면 모리와 함께 도서관 제 2의 주치의 포지션으로 완전히 자리잡은 모양. 상실시 적들에게 자신을 노린 게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비꼬는 투의 대사는 이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사치오는 물론 사치오의 스승이자 자신의 단가에 많은 영향을 준 사람 중 하나인 마사오카 시키에게도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다. 애초에 모키치가 제창한 '실상관입' 이론이 마사오카의 사생관을 발전시킨 형태이기도 하고. 개화 추가 대사에서도 마사오카를 '시키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9] 마사오카를 모욕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할 정도다. 시인인 키타하라 하쿠슈와는 한때 친구였다. 오래 알고 지내던 사이인 만큼 한때 소원했던 시기가 있던 탓에[10] 하쿠슈는 지금도 약간은 복잡한 감정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다시 좋은 관계를 쌓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하지만 정작 모키치 쪽에서는 하쿠슈를 그다지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는데, 하쿠슈와의 회상을 보면 하쿠슈가 과거보다 한층 더 오만해진데다 남들이 자신을 떠받드는 것이 당연한 양 여기면서 자신의 시를 위해 타인을 아무렇지 않게 짓밟아 놓고는 추호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대놓고 까는 모습을 볼 수 있다.[11]
또한 고다 로한도 매우 존경하고 있어서[12] 로한 앞에만 서면 긴장 때문인지 굳어버릴 정도(...). 이렇다보니 모키치의 생일 특별 회상에서는 사치오와 요시이 이사무가 이걸 해결해 보려고 발벗고 나서기도 했다. 공식 상관도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요시이 이사무와도 교류가 있었던 관계[13] 로, 모키치의 단가에 대한 요시이의 평은 '겉치레 없이 소박하고 올곧은 인품이 그대로 배어나오는 작품들'. 다만 이런 작품 경향 때문인지 정작 자신의 작품집 표지 장정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모양. 수비강화 연구 시즌2의 회상에서 마사오카 시키가 모키치의 작품집 '적광(赤光)[14] '의 표지를 보고 너무 꾸미질 않아서 약간 접하기 힘들어 보인다고 평했을 정도였다.[15]
성실한 노력가 타입으로, 각종 연구, 그 중에서도 특히 자신의 전문분야인 정신 관련 연구에도 열심이다. 진료 시간 틈틈이 비어 있는 시간에도 연구에 몰두하는지라 주변에서 좀 쉬엄쉬엄 하라고 할 정도로, 요시이 이사무는 아예 농땡이 좀 피우면서 해도 되지 않겠냐고까지 한다. 또한 의사로서의 책임감도 매우 강해서 항상 환자가 있으면 누가 됐든, 언제 어디서든 치료하는 것이 자신의 소임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대사가 많은 편이다.[16] 다만 다소 욱하는 기질이 좀 있는데 더해[17] 위의 이미지에서도 보이듯 외모가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인상이라 까칠하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 편. 하지만 실제로는 타인의 고통[18] 을 잘 이해하고 배려심 많은 성격이며, 사석에서는 의외로 유머 있는 면모도 가지고 있다. 평상시의 말투도 신경질과는 거리가 먼 점잖고 차분한 말씨를 구사하며 1인칭도 '와타시'. 문제는 자기 딴에는 개그를 친다고 치는데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개그를 치는지라[19] (...) 정작 주변인들은 개그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화가 났거나 뭔가 심각한 말을 하는 줄 알고 당황하는 일이 잦다는 것. 무샤의 잠서시 특수 대사를 보면 그림에도 재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샤 曰, 모키치가 그리는 그림은 보고 있노라면 친근함이 솟아나는 따뜻한 그림이라고. 캐릭터의 원본인 실제의 모키치도 어린 시절부터 회화 작품에 관심이 많아서 미술 평론도 여럿 쓴 일이 있었고, 자신이 한때 편집위원으로 몸담았던 단가 전문 문예지 '아라라기'의 표지로 독일 유학 시절 가져온 복제 그림을 사용하면서 그림 하나하나에 상세한 해설문을 첨부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본업이 의사다보니 회진 등으로 은근히 여기저기 움직일 일이 많아서인지 사서실 추가 대사를 보면 복장은 기모노보다는 양장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이며, 다른 문호들에 비해 기본 해금 의상의 바리에이션이 적은 편.[20]
2. 성능
3. 입수 방법
- 제작시간 : 5시간 14분[21]
4. 회상
4.1. 유애서
4.2. 식단
4.3. 탄생일
5. 편지
6. 대사
- 추가보이스
- 도서관(계절한정)
- 쇠약・상실시
7. 기타
공식 트위터에 올라온 상관도에서 모리 오가이에게 사람들이 자기를 의사가 아니라 무슨 약장수인지 뭔지로 안다면서 푸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아마도 같은 성우가 맡은 모노노케의 약장수를 염두에 둔 일종의 성우개그로 보인다.[29] 또한 2020년 5월 기준 유혼서 이벤트로 추가된 문호들 중에서는 최초로 추가되자마자 바로 생일을 맞이한 문호이기도 하다.
다소 욱하는 기질이 있다는 설정은 실제 인물의 성격을 상당 부분 순화해서 반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의 모키치는 극도로 신경질적인 성격이었지만 환자들 앞에서는 온후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 반동으로 가족들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한번은 심한 감기를 앓아 누워 있던 중 손님이 찾아와서 모키치를 꼭 만나고 싶다는 뜻을 비쳤으나, 이 말을 듣고는 격분한 나머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그 손님에게 "지금 아파서 드러누워 있는 거 안 보여?"라며 호통을 친 일이 있었다. 모키치가 불같이 역정을 내는 모습에 놀란 손님은 결국 그냥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지만 다음날 그가 선물로 두고 간 카스텔라를 먹고 나서는 "너무 화냈나..."라며 반성했다고(...). 또한 화를 다스리려고 종종 칸다의 고서점에 들러 마음에 드는 책들을 물색하기도 했는데, 그러다가도 책을 포장한 파라핀 종이가 케이스에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 폭발해서(...) 오만 짜증을 다 낸 끝에 종이를 구겨서 버렸다는 일화도 있다.
도감 소개문이나 공식 상관도에서도 나오듯 장어를 매우 좋아하는데, 실제 인물의 식성을 그대로 따 온 것이다. 어릴 때부터 상당한 식신 속성이었다고 하며[30] , 그 중에서도 장어를 워낙 좋아해서 태평양 전쟁 중에는 일본 전체가 극심한 물자 부족을 겪고 있는 와중에도 사전에 미리 사서 비축해 놓은 장어 통조림을 먹었다고 했을 정도로 장어라면 사족을 못 썼다고. 심지어는 이런 일화도 있다. 장남 시게타[31] 의 맞선 자리에서 긴장한 탓인지 선뜻 요리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던 시게타의 상대 여성 앞에 놓인 장어를 보고 "그 장어 안 드실 거면 주시구려"라고 말하고는 장어를 뚝딱 먹어치웠다고(...).
[1] 모키치라는 이름이 전전 쇼와 시대 기준으로도 좋게 말하면 심히 고풍스럽고 나쁘게 말하면 케케묵은 내지는 촌빨 날리는(...) 이미지가 있는지라, 실제 인물은 한때 양부의 권유로 이름의 한자를 훈독한 '시게요시'로 부른 시기가 잠시 있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모키치의 원래 성은 모리야(守谷)였으나 먼 친척에 해당하는 정신과 의사 사이토 키이치의 양자로 입적하면서 양부를 따라 성이 바뀐 것이다.[2] 마사오카 시키의 사생론을 발전시킨 모키치의 단가 이론. 대상의 표면적인 모습만을 사생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본질을 더욱 깊이 바라보는 것이 단가에 있어서 사생의 진수라는 것이 요지이다.[3] 무과금으로는 이벤트 기간 한정 연구를 달성하면 최대 10개까지 획득할 수 있다.[4] 정작 스승인 사치오는 쇼타 캐릭터로 나오기 때문에 회상에서 모키치가 사치오에게 존댓말을 하는 모습을 보면 미묘한 느낌이 든다. 여담으로 실제 인물들의 경우 사치오가 1864년생, 모키치가 1882년생으로 18살 차이다.[5] 참고로 아라라기는 주목이라는 뜻으로, 사치오의 머리장식과 모키치의 부토니에와 개화 의상의 무늬가 주목 열매다.[6] 사치오와의 회상에서 문학이 생활을 좀먹어서는 안된다면서 생활을 희생하지 않으면 문학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나약한 것이라는 말을 하는데, 실제 모키치도 자신의 본업이 정신과 전문의라는 자세를 고수하면서 단가는 어디까지나 소일거리일 뿐이라고 칭했다. 의사로서의 자신과 문학가로서의 자신을 엄격하게 구분했던 모리 오가이나 '문학에 대해 논하는 것은 먹고 사는 문제 다음이다'라는 생각을 가진 키쿠치 칸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 하지만 모키치의 차남인 정신과 의사 겸 수필가 키타 모리오(본명 사이토 소키치, 수필가 사이토 유카의 부친)는 '(아버지의)마음의 9할은 단가에, 문학에 몰두했다'고 술회했다. 여담으로 전업작가는 그다지 돈벌이가 되는 일이 아닌 만큼 모키치의 사례처럼 다른 직업을 겸업하는 것은 당시에도 매우 흔한 일이었다. 키쿠치 칸이나 히로츠 카즈오의 경우 소설가인 동시에 출판사 경영자를 겸했고(히로츠는 번역가도 겸했다), 시인 쿠사노 신페이는 이자카야를 경영한 적이 있었으며 코바야시 타키지는 한때 은행원으로 일하면서 창작 활동을 했었다.[7] 모키치가 아쿠타가와에게 써준 처방전의 실물이 남아 있다고 한다. 또한 당시 아쿠타가와의 신경쇠약으로 인한 불면증에 매우 진지하게 접근해서 각종 요양법을 편지로 알려주기도 하고 여러 종류의 수면제를 처방해 주기도 했다. 그랬던 만큼 아쿠타가와가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자살했다는 소식은 모키치에게도 상당히 큰 충격이었다고. 사서실 대사를 보면 한 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면서 '(환자를)떠나보내는 게 힘들다'고 하는데, 아쿠타가와의 자살로 인해 받은 충격을 의식한 대사로 보인다.[8] 이벤트 전후로 추가된 2020년 가을 시즌 사서실 가구 테마가 '의무실'이다.[9] 정작 마사오카는 모키치가 이렇게 부르자 사치오의 제자인 모키치도 엄연히 마사오카 일문의 일원이나 마찬가지인데 너무 격식 차리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원체 마사오카 본인이 지나치게 격식을 따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있고.[10] 파벌 싸움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11] 이에 하쿠슈는 너무 일방적으로 말한다면서 모키치와 협력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지만 모키치는 이마저도 도서관의 다른 문호들조차 자신의 창작을 위한 도구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주제에 협력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일축한다.[12] 로한의 잠서 특수 대사에서 약간의 떡밥만 나왔을 뿐 게임 내에서는 구체적인 접점이 직접 드러나지는 않지만 실제의 모키치는 중학생 시절 동급생의 영향으로 단가 창작을 시작하는 한편 로한과 모리 오가이의 작품을 애독했다고 한다. 특히 로한의 작품은 이 시기부터 모키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13] 실제의 요시이가 이른바 '불량 화족 사건(또는 댄스 홀 사건)'이라고 불리는 상류층 여성들의 불륜소동으로 아내와 이혼했다가 후에 다른 여성과 재혼했을 때 모키치가 요시이의 결혼을 축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워하는 뉘앙스의 단가를 엽서에 적어 보냈다고 한다. 또한 모키치는 안그래도 아내와 성장환경의 차이가 컸던데다 서로의 가치관과 성격도 극명하게 달랐기 때문에 부부 사이가 썩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이 불륜소동이 결정타가 되어(모키치의 아내도 불륜소동의 주요 관련자 중 하나였다) 결국 아내와 12년 동안 별거하다가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아내가 모키치의 고향인 야마가타로 피난한 것을 계기로 1945년부터 다시 동거하게 된다.[14] 1913년에 간행된 모키치의 첫 가집으로, 적광이라는 표제는 아미타경의 한 구절에서 따 온 것이다.[15] 이에 대해 타카하마 쿄시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독자가 이 책에 이끌린다고 평하면서 표지와 제목을 극단적으로 간결하게 해 두었기 때문에 단가 속에 담긴 말의 의미가 빛을 발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16] 입수시 대사에서도 자기를 기다리는 환자가 있냐는 말을 하고, 도서관 대사에서는 아예 자신은 시인 이전에 의사라는 점을 다시금 강조한다.[17] 그런데 이것도 따지고 보면 사실상 의사 말을 안 듣는 환자들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마사무네 하쿠쵸와의 회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기껏 밤을 새서 치료 계획을 짜놔도 환자들이 말을 안 들어먹는 건 예사요, 심지어 함부로 약을 대량으로 복용해 놓고는 살려달라고 징징대는 환자들까지 적지 않게 있는지라 모키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 오죽했으면 그런 환자들을 볼 때마다 늬들이 날 좀 살려달라고 하고 싶을 지경이라고 푸념을 했다. 진상 환자들 때문에 얼마나 쌓인 게 많았던지 옆에서 모키치의 대분화(...)를 지켜보던 하쿠쵸도 한순간 할 말을 잃었을 지경이었다.[18] 주로 심리적인 면에서.[19] 성우가 같은 사쿠라이 타카히로인데다 이 친구도 가만 보면 세상 진지한 얼굴로 엄청난 일을 태연하게 말하거나 개그 대사를 치는 경우가 꽤 많다(...).[20] 문서 상단 이미지에서도 알 수 있듯 산책 해금 의상이 기본 의상에서 의사 가운 안에 입은 옷만 보라색 터틀넥+검정색 바지 조합으로 바뀐 것이라 기본과 별 차이가 없다. 또한 개화 의상인 기모노는 일러스트의 구도 문제인지 다소 어색하게 보인다.[21] 실제 인물의 생일에서 따온 시각.[22] 전생연구 이벤트 기간 한정으로 도서관 화면에서 회상을 재생할 수 있었다. 이 때 회상을 보았을 경우 모키치와 사치오를 한 팀에 편성해서 임의의 일반 유애서에 1회 잠서시 회상이 한번 더 나온 후 도감에 등록된다.[23] 원문의 'あかあか'에 대해 '明々'인지 '赤々'인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여기서는 전자의 의미로 번역했다.[24] 실제의 모키치와 사치오는 사제지간이면서도 약간 복잡한 관계였다고 한다. 특히 단가론과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 '사생'에 대한 의견 등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고.[25] 모키치가 만요슈에 실린 단가 중 걸작들을 추려내 엮은 단가집.[26] 치바현 아비코시에 이 단가가 새겨진 '사이토 모키치 노래비(歌碑)'가 있다.[27] 벼과의 여러해살이풀. 주로 연못이나 냇가 등 물가에 자란다.[28] 1925년 화재로 도쿄의 자택과 자신이 원장으로 있던 아오야마 뇌병원이 전소된 상황을 목격하고 지은 단가. 당시 모키치는 독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던 중 선상에서 자택 화재 소식을 듣게 되었다. 게다가 화재 이후 병원을 재건하고 나니 이번에는 아내가 불륜소동에 휘말려 신문에 대서특필되면서 물의를 빚는 등, 모키치에게는 그야말로 수난과 역경이 거듭되는 시기였다. 여담으로 당시 모키치는 보험이 실효된 상태에서 화재 피해를 입은데다 유학중에 본국으로 보내 둔 자료까지 전부 소실되었기 때문에 거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준으로 병원을 재건했는데, 재건 이후 병원을 화재 이전보다 더 큰 규모로 부흥시켰을 만큼 경영자로서도 상당한 수완가였다고 한다.[29] 그리고 옆에서 듣고 있던 모리 曰, '''"자네 정신이 더 걱정되는데...."'''(...)[30] 이는 모키치가 야마가타의 작은 농촌에서 나고 자랐다는 성장 배경도 한 몫을 했다. 15세가 되던 해 진학 문제로 상경하던 도중에 들른 센다이의 한 여관에서 모나카를 처음으로 먹어보고 "이렇게 맛있는 게 있었다니!"라며 놀라워했고, 밤에 도쿄 우에노역에 도착해서는 도시의 야경을 보고 "아니 밤인데도 이렇게 환하다니!"라며 또 한번 놀랐을 정도. 한편 2차대전 시기 야마가타에서 피난 생활을 할 당시 먼 친척의 집에 초대받은 자리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때 함께 초대받은 화가의 밥상과 자신의 밥상에 각각 하나씩 놓여 있던 생선을 번갈아가며 보더니 화가에게 머뭇거리면서 '''"거 그쪽 생선이 더 큰 것 같은데 내 거랑 바꿉시다"'''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고(...). 공식 상관도에서 사치오가 모키치의 장어구이 도시락 위에 얹힌 조그만 장어를 보고 "내 쪽이 더 크니까 바꿔 줄까?"라고 하는 것은 이 일화를 차용한 것으로 추정된다.[31]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신과 의사가 되었으며 수필가도 겸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이름의 한자를 음독한 '모타 씨(モタさん)'라는 애칭으로 불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