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성씨)

 


1. 개요
2. 한자별 성씨
2.1. 史 (역사 사)
2.2. 謝 (사례할 사)
2.3. 舍 ( 사)
2.4. 沙 (모래 사)
3. 실존 인물


1. 개요


한자로는 , 舍, , 네 종류가 있다. 씨와 씨는 기원이 중국, 舍씨는 씨에서 변화되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입증되지는 않았다.

2. 한자별 성씨



2.1. 史 (역사 사)


사(史)씨는 중국 경조에서 계된 성씨로 주나라 때 사질(史侄)이라는 벼슬 이름을 따서 사()씨가 되었다고 한다.
사(史)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조사에서 9,756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109위이다. 본관은 청주, 거창 등 19본이 있다.
유명 인물로 사광욱(대법관. 경주 사씨), 사미자 등이 있다.

2.2. 謝 (사례할 사)


사(謝)씨는 시조는 사신백(謝申伯)으로 강태공의 후손이다. 인물로는 동진(東晋)시대 문학가 사안(謝安), 중국 6조시대(六朝時代)의 문인 사령운(謝靈運)이 있다. 현대 인물로는 중국배우 사정봉이 있다.
사(謝)씨는 1930년 국세조사 때 처음 나타난 성씨인데, 당시 전라북도 순창전라남도 함평, 경상북도 영천 등에 각각 1가구 씩으로 전국에 총 3가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본관으로는 한산, 진주, 본관 미상 1가구로 나타났다. 1933년 당시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석보리에 살던 사동옥(謝同玉)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로부터 100여 년 전에 해남군 부근에서 조상들이 이주해왔으며 자신들의 선대는 중국에서 귀화해왔다고 하였다.
2000년 통계청 조사에서 135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233위이다. 본관은 진주 단본.

2.3. 舍 ( 사)


사(舍)씨는 2000년 통계청 조사에서 237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214위이다. 본관은 부평태안 2본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부평 사씨 194명, 태안 사씨 19명이다.
사(舍)씨는 1930년 국세조사 당시 처음 나타난 성씨인데, 당시 경기도 파주전라남도 무안에 각각 1가구 씩으로 전국에 2가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본관으로는 태안과 본관 미상 1가구로 나타났다.
1933년 경기도 파주군 임진면 장산리(現 파주시 문산읍)에 살던 사재성(舍在成)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들의 시조는 광산 김씨와 동일한데, 자신의 10대조 김극윤(金克胤)이 4살 때 호적에 사(舍)씨로 고쳐져 올라갔다고 밝혔다.
또한 전라남도 무안군 이로면 죽교리(現 목포시 죽교동)에 살던 사영주(舍榮柱)는 당시로부터 450여 년 전에 김씨와 사(舍)씨가 글자체가 비슷하여 서류에 잘못 기재되어 올라가게 되었고, 그 결과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사(舍)씨는 광산 김씨에서 파생된 성씨이며 그들의 시조는 김극윤(金克胤)으로 볼 수 있을 것이고, 그 내력은 조선 전기에까지 거슬러 올라감을 알 수 있다.
한편, 역사적으로는 1784년(정조 8) 부사과(副司果)로 정시(庭試) 무과에 병과 442위로 급제한 사흥주(舍興柱)가 문헌에 나타난다. 그의 본관은 태안, 거주지는 한성이었으며, 그의 아버지는 양무원종공신[1] 사처정(舍處靜)이다.
현대에 유명한 사(舍)씨로는 동대문상고를 졸업하고 한일은행 야구단OB 베어스에서 타자로 활동했던 사인상(舍仁相)#이 있다.

2.4. 沙 (모래 사)


삼국시대 백제의 유력 가문인 대성팔족 중 하나인 사씨 또는 사택씨와 같은 한자를 쓴다. 본관은 청주 단본으로 2015년 통계청 조사에서 26명 존재하는 희귀성씨다.

3. 실존 인물



[1] 揚武原從功臣. 이인좌의 난 당시 영조를 호종하거나 반란을 평정하는 데에 보탬이 되었던 사람들에게 준 공신의 칭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