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심법정
1. 개요
역전재판 시리즈의 '''서심법정제도(序審法廷制度)'''는 늘어가는 범죄들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재판을 서심재판과 본심재판의 2심제로 나누고 서심재판은 '''3일 안으로 판결을 낸다'''는 게임 내 설정이다. 설정상 본심재판(고등재판)은 서심재판 판결 후 1개월 이내에 열리나, 대개는 이변 없이 서심재판에서의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정발 한국어판의 경우 구 피처폰 판에서는 '예비재판'으로, 스마트폰 판에서는 '예심재판'으로 번역되었다. 나루호도 셀렉션에서는 '서심재판'으로, 원문 그대로 번역되었다.
현실세계의 재판은 짧게는 1년, 길게는 수 년이나 걸릴 정도로 길고 지루한 싸움인데, 당연히 게임 내에서는 그럴 수 없으므로 이러한 세계관을 설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 설정 때문에 '치밀하고 합리적이어야 하는 형사재판' 그 대전제에 모순이 생겨 버려, 시리즈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괴랄한 범행 수법이나 받아들이기 힘든 재판 양상[1] 이 나타나는 등, 플롯의 핍진성 구현에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역전재판 1의 역전 자매 에피소드의 경우 그 진행이 다음과 같다.
위와 같이, 사건 발발에서부터 용의자 체포, 구류, 수사, 기소의견 송치, 검찰의 기소, 법정 개정, 변론과 심문, 판결 선고와 폐정까지 모든 것이 단 일주일 만에 끝나는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당연히 현실에서는 이런 식의 재판은 완전히 불가능하며, 기본적인 조서 작성에도 길게는 며칠이나 걸릴 수 있다. 이 때문에 현실과 다르게 한 재판에서 검찰에서 미리 기소한 범죄에 대해서만 유죄의 유무와 형량만 다루고 다른 죄들에 대해서는 다른 재판에서 결정한다.'''9월 5일''' 사건 발발, 용의자 체포
'''9월 6일''' 재판 날짜가 이튿날로 확정,
경찰 수사 시작, 검찰의 기소'''9월 7일''' 지방재판소에서 서심재판 1차 개정,
재판 후 증인 가운데 한 명이 추가 고소,
검찰의 체포 및 기소'''9월 8일''' 재판 날짜가 이튿날로 확정,
기소된 새로운 피의자가 구류'''9월 9일''' 지방재판소에서 서심재판 2차 개정, 판결 선고
2. 해설
역전재판 1에서 나온 나루호도의 언급에 따르면, 대부분의 경우 하루만에 유죄로 재판이 끝난다고 한다. 범죄를 저지르고 3일 동안만 들키지 않으면 장땡이기 때문에 자신의 범죄를 무고한 사람에게 덮어씌우는 사례가 빈번히 일어나게 되었으며, 재판이 3일 안에 끝나기 때문에 단시간 내로 원하는 판결을 받기 위해 증거조작이나 증인 협박 등의 부정을 저지르는 이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이 때문에 법조계 인사들 사이에서는 악법으로 유명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없어지지 않는 제도. 역전검사 2에서 18년 전 서심법정이 제정되기 전인 <이어받은 역전>의 과거 시점에서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텐카이 잇세이 같은 경우 1년동안 이어진 압박으로 인해 거짓 자백을 하고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서심법정에서라면 아무리 카루마 고우가 뒷공작을 하더라도 시체가 없으니 무죄판결을 받고 카루마에게 패배를 안겨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들어 단점만 있는 제도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는 애초에 카루마의 불법적인 심문과 압박 자체가 문제인 사례로써 서심법정이 긍정적이라고 볼 근거는 아니다. 이런 사례는 어디까지나 본질적으로 악법인 서심법정의 부작용이 '''우연히'''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에 불과하다.
즉 여러 부분을 따져보면 서심법이라는 것 자체가 재판의 존재 의의를 완전히 역행하고 있는 '''명백한 악법'''이다. 재판의 진정한 의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재판의 의의란 되도록 많은 범인을 잡아넣는것이 아니다. 흔이 말하는 '열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사람의 억울한 사람도 없게 한다'라는 이념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서심법은 아무리 게임상의 허용이라고 해도 재판의 의도와는 완전히 엇나간 법이다. 더 나아가, '''무고한 범죄자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즉 '재판 과정에서 부작용이나 역작용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영역 뿐 아니라, 형사재판의 본래 목적인 '형사 피고인의 범죄 사실을 가려내고 그에 걸맞는 판결을 내리는 것'에도 전혀 부합하지 못한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형사재판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범인에게 응당한 처벌을 내리는 것'이지 '아무나 걸린 놈을 잡아넣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즉, 서심재판은 피고인의 범죄사실을 대충 따짐으로써 피고인이 실제로 범죄를 저질렀는지 아닌지 여부와는 무관하게 유죄추정의 원칙마냥 그저 아무나 걸린 놈을 되도록 많이 잡아넣는 제도에 더 가깝다.
이 서심재판 제도 때문에 검사와 변호사의 역할이 상당 부분 현실과 달라졌다.[2] 변호사는 거의 수사관이나 탐정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며, 검사도 보통 현실에서 검사가 기소를 할 때는 대단히 신중하게 판단해서 기소 가능성이 높을 경우에만 기소하는데[3] , 역전재판 세계관의 검사들은 대충 어느 정도 증거만 있으면 일단 기소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또 그런 상황에서 승리하기 위해 심지어 증거를 조작하거나 그렇게까진 하지 않더라도 증인을 코치하거나 증거를 숨기는 등의 일을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카루마 고우, 카루마 메이) 물론 변호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진 않아서 위의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죄를 받아내려드는 변호사도 있다.(나마쿠라 유키오, 이치로 신지)
검사들 중에 '''천재 검사'''라는 말이 통하는 것도 이 제도와 무관하지는 않을 듯. 현실에서라면 기소해서 승리하는 것은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지만 역전재판의 세계에서는 그게 쉽지 않다. 무엇보다 3일 안에 모든 것을 끝내야 하니까. 대신 그러다 패하더라도 현실에 비해서는 타격이 크진 않은 편인지 태연하게 다음 법정에 등장한다.
사실상 현실의 법 제도 및 그 취지에 완전히 역행하고 있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3심제는 유명무실에(사실상 서심과 본심의 2심제) 무죄추정의 원칙도 잘 안지켜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주제에 일사부재리의 원칙은 가지고 있는 듯 하지만 도둑맞은 역전 에피소드를 보면 일사부재리의 원칙은 현실과 다르게 쓰인다. 3일법을 모티브로 해서인지 무죄판결만 받아내면 범죄사실이 세탁이라도 되는지 떳떳하게 돌아다니는 것도 가능하다.
게임 외적인 관점으로 보면 3일이라는 짧은 시간제한이 게임 진행을 스피디하게 만들고 스토리의 긴박감을 높여주는 요소가 되므로, 작품의 템포 조절에 매우 유용한 필요악적인 존재라고 볼 수 있다. 게임 내적으로 봐도 검찰측 수사에 허술한 점이 있어야 변호측에서 재판을 역전시킬 여지가 생기는데, 앞서 말했듯 서심법정으로 인해 검찰측에서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건 마찬가지라 이들의 수사도 허술한 점이 있어서 충분한 당위성을 제공하는 설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작중 외적인 이유도 있어 법의 암흑시대라며 작중 사법 제도가 비판받고는 있지만 게임 설정 자체를 뒤집지 않는한 이 제도가 바뀌거나 하는 일은 없을 듯 하다.
수사물, 탐정물 장르가 그 특성상 게임화하기 어려운 편인데 그런면에서 여러가지 알고리즘적 변수를 차단하는 서심법정이라는 제도는 꽤 센스있는 설정이다. 현실성이 근본인 게임이었다면 이런 적용도 쉽지 않았겠지만 역전재판은 특유의 매력적인 막장 세계관이 구축되어있고[4] 나름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3일만에 날림으로 처리해도 범죄자가 어지간히도 많은지 미래를 위한 역전에서는 법정이 부족해서 재판을 시작할 수가 없을 지경이라 무너진 제4법정의 폐허에서 재판을 진행한다.
이전 버전에선 역전재판에서 해당 개념이 사용된 이후의 시리즈에서는 유야무야 넘어가는 경우도 간혹 있다는 서술이 있었으나 이는 역전재판 세계관의 법정 제도에 대한 명백히 잘못된 이해이며 탐정 파트를 일자에 넣으므로써 나온 오류이다. 예로 나온 역전재판 2의 마지막 재판도 다른 재판과 마찬가지로 첫째 날은 탐정으로 진행되었기에 다음날로 넘기자는 재판장의 발언은 아무 문제 없다. 소생하는 역전 에피소드 역시 첫째 날은 탐정으로 진행되었기에 재판 과정만 따지면 3일차로 끝난 것이 맞다. 탐정부터 일수를 계산하면 첫 작품인 역전재판 1부터 아예 맞지 않게 된다. 역전재판 1의 3/4번 에피소드는 분명히 1일차 탐정을 포함하여 4일차까지 계속 이어지나 단지 다른 작품에 비해 일자당 법정 파트가 짧아서 빨리 넘어가는 것 뿐이다.
역전재판 시리즈의 100년 전을 다루는 대역전재판 시리즈에서는 서심법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1일차 2일차 이런식으로 분류하지 않고 제 1편(その 1),제 2편(その 2) 이런 식으로 나눈다.
3. 법의 암흑시대
역전재판 시리즈 내부에서도 후기 시리즈부터 문제가 되고 있다. 나루호도 류이치 최후의 재판 1년 후 정도의 시점부터는 '''법의 암흑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악화되는데[5] 변호사와 검사가 서로를 불신하고 서로 이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법조계의 흐름이 정착됐고, 국민이 법조계를 완전 불신하게 됐다는 것이다. 나루호도 류이치나 미츠루기 레이지를 비롯한 몇몇 인물이 이러한 부정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서심재판 그 자체는 변함이 없다. 5편 시점의 사립 테미스 법률학원에서는 검사가 누명을 씌우고 변호사는 날조로 대항하는 법을 가르치는 등 교육부터가 미쳐돌아가고 있으며 체포군에 이어 누명군(엔자이군)이나 날조군이라는 서심법정을 비꼬는 캐릭터도 생겨날 정도로 사법신뢰도는 바닥으로 치닫고 있다.
역전재판 4의 나루호도 류이치의 활약으로 <역전을 잇는 자>에서 배심원 제도인 메이슨 시스템이 시험 도입되지만 어디까지나 시험 도입이고 다른 재판은 여전히 서심법정으로 진행한다. 애초에 4에서 나루호도는 3일 동안 재판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증거로만 결정하는 법정 시스템을 지적했다. 4에서 새로 만들어진 배심원 시스템이 역전재판 5에서 어떻게 적용될지도 관심사였지만 결국 배심원 시스템은 등장하지 않게 되었다.
역전검사의 불타오르는 역전 마지막 파트에서 야타가라스 카드를 제시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증거는 더 이상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제출하는 부정한 증거다. 미츠루기는 주인공이다보니 사람이 법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법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 독백하며 유야무야 넘어가지만 동일한 상황이라면 진범을 체포할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하고 타락하는 사람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소싯적에는 미치바 마사요를 존경하며 따랐다는 이치로 신지가 교수가 된 현재는 정정당당함을 이상주의 취급하며 현실의 잔혹함을 운운하는 것도 역전재판 세계관의 법정이 얼마나 뒤틀려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4. 모티브
서심법정은 일본 법체계를 풍자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 일본의 사법제도는 기형적이라 할 만큼 경직되어 있으며, 사법부가 인권과 정의보다는 형식이나 절차 같은 것에 치중하고 행정편의주의적 태도를 보인다는 비판이 있다. 검찰청의 입김이 막강하여 일단 기소하면 2심, 3심에서 판결이 뒤집힐 확률은 극히 드물며, 유죄 판결이 비정상적으로 높기로 유명하다. 물론 본 게임 세계관은 현실 일본이라도 바로 위헌법률심판에 올라갈 막장 제도이다.
타 작품에 등장하는 유사한 제도로는 전투메카 자붕글의 3일법이 있다. 엔자이와 더불어 서심법정의 모티브로 보인다.
[1] 논점 이탈, 증거 조작, 증인 매수는 기본이고, 경찰과 검찰이 짜고 변호인에게 정보 제공을 거부하여 변호사가 직접 수사에 나서야 한다든지, 재판장이 재판 시작 전에 보고도 못 받았는지 법정 개정 후에 증거물을 하나하나 늘어놓고 같이 살펴봐야 한다든지, 피고인의 결백함이 드러나고 오히려 증인의 범죄용의가 발견되었음에도, 검찰측에서 증인을 새로 기소하기는 커녕 끝까지 원래 있던 피고인의 유죄만을 고집한다던지, 재판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증인의 증언이 끝나자 더이상 의문의 여지가 없다며 판결을 선고하려는 재판장이라든지, '''총체적 난국이다!'''[2] 이전엔 서심전문 변호사와 본심전문 변호사로 나눠졋다고 적혀있었는데, 딱히 그런 건 아니다. 주인공들이 서심만 맡는다기보단 게임 안에서 본심을 묘사하지 않는것에 가깝다. 시가라키도 서심과 본심을 병행한다.[3] 그래서 현실에서는 검사가 기소를 하는 경우 거의 대부분 승소하고 만약 패소라도 한다면 그 책임을 단단히 물어야하며 때로는 짤릴 수도 있다. 변호사 역할도 유죄인 걸 무죄로 바꾸는 거라기보다는, 이런저런 동정적 사유 등을 들어서 형량을 최대한 낮추는 게 대부분이다.[4] 단순 제도적 막장만이 아니라 기묘한 만화적 인물들, 설정들이 자연스럽게 있는 세계. 또한 그에 대해 서술적으로 무리없이 전달된다.[5]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인물은 UR-1호 사건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진 유가미 진 검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