핍진성
逼眞性 | verisimilitude
'''핍진성'''은 진실과 거짓의 구분이 불분명한 시점에서 외부의 관측자가 진실에 가깝다고 납득할 만한 정도를 이르는 형이상학적 성질이다. 여기서 외부의 관측자란 진리를 모르는 상태이나 사물을 객관적으로 관측하는 사람을 말한다.
용어의 한자 뜻을 풀이해 보면 '가까이할 핍(핍박할 핍, 逼)', '참 진(眞)', '성품 성(性)'으로 '진실에 가까운 정도'라고 해석할 수 있겠으나 본디 핍진성이라는 개념은 매우 추상적이며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원어 'verisimilitude' 역시 의미 해석이 다양하며, 영미권에서는 'truthlikeness(진실성)'나 'fidelity(충실도)'로 풀어 쓰기도 한다. 일본어로는 '真実らしさ'로 쓴다. 한국어에서는 영미권 해석인 'truthlikeness'를 번역하여 현실성(現實性), 진실성(眞實性)의 유의어로 설명한다.
용어로서의 'verisimilitude'는 17세기 영국에서 라틴어 verisimilitudo(truth-like)의 변형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한국어 '핍진성'이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920년대 내외로 추정되며, 일제강점기 문학 비평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상당히 유서 깊은 용어.
문학에서 말하는 핍진성은 개연성과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개연성은 '인과관계의 올바른 정도'지만, 핍진성은 '작품 세계관, 배경, 설정에서 나올 수 있는 인과관계인가'를 의미한다. 즉, 사건 자체의 인과관계는 개연성이고, 그 사건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배경설정과 인물심리의 충실함이 바로 핍진성이다.
반대로 만약 이종족과 마법과 주술이 난무하는 판타지 소설이라면 '''판타지는 원래 허구'''이기 때문에 사실성을 따질 수가 없다. 하지만 허구성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세계관이 정교하게 짜여있고 작중 사회와 등장인물들이 서로 적절히 어우러져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 작품이라면 핍진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헌터×헌터의 등장 국가나 집단, 넨 등의 능력은 완전한 허구지만 그 안에 국가체제, 인터넷 등 통신 인프라, 국가간 대립구조, 협회 규정 등이 나름의 합리성이 있기 때문에 읽는 독자로 하여금 허구성을 쉽게 느끼지 못한다. 혹은 마찬가지로 중세풍 판타지인 '''왕좌의 게임'''이나 이 분야 끝판왕 '''반지의 제왕'''을 읽으면서 사실성은 떨어진다 할 수 있겠지만 핍진성과 이야기 연출력은 굉장히 정교하다고 평가받는다.
워크래프트 시리즈의 세계에 등장하는 오크와 해리 포터 시리즈의 세계에 등장하는 집요정, 두 종족을 비교해보자. 오크는 '우리는 노예가 되지 않는다'는 말마따나 힘과 명예를 중시하고 다른 종족으로부터의 지배를 거부하는 반면 집요정은 남에게 복종하고 봉사하는 것을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종족이다. 이러한 뒷설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난다면 워크래프트의 오크가 다른 종족의 지배를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키는 이야기나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자신들을 해방시켜주겠다는 인간들의 권유를 오히려 거부하는 집요정들의 행보가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똑같이 허구의 존재들이고 서로 상반된 전개임에도 독자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핍진성이 잘 지켜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워크래프트의 스랄처럼 오크 하나가 탄압받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 반란을 도모하는 이야기로 간다고 해보자. 워크래프트 세계관의 지식이 없더라도 반란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범죄이며 매우 큰 소동이 될 것이라는 걸 독자들은 예상이 가능하다. 이처럼 작품 내 명시된 설정이 없을 때 '''독자는 현실의 핍진성을 작품 내 세계관에 대입'''시키게 된다. 즉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반란을 일으켰으니 그냥 안 넘어가겠구나'하는 사실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가 붙잡혀 처형된다거나 스랄처럼 반란에 성공한다거나 하는 전개가 찾아오면 독자는 이를 자연스럽게 납득하게 된다. 반란을 일으킨 중죄인이 처형되거나 반란에 성공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개연성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아무런 사전 설명이 없었는데 집요정 캐릭터 하나가 등장하여 탄압받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 반란을 도모하는 전개가 등장한다면 독자는 위화감을 받게 된다. 이는 개연성을 해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새로운 전개'의 등장은 명제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A라는 원인이 있으니 B라는 결과가 나와야 한다." 부분의 'A'에 해당되는 부분이 처음 언급됐을 뿐이다. 그럼에도 독자는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분명 설정상 집요정 종족은 남에게 복종하고 봉사하는 것을 즐기는 종족인데, 반란을 일으키는 전개는 어색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핍진성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이를 자연스럽게 바꾸기 위해서는 작가가 핍진성을 보충해주어야 한다. 즉 저러한 일이 나타난 이유가 무엇이며 종족 중 한 명의 특이 사례인 것인지 종족 전체의 생각이 조금씩 바뀌게 된 것인지 등 봉사를 즐기는 종족임에도 반란을 생각하게 될 만한 여타 보충 설정 등으로 핍진성을 보충해야 한다.
핍진성이 떨어지는 작품은 읽다가 개연성과는 다른 의미로[1] "뭐야 이게 말이 돼?"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작가가 자신이 만든 작품 속 세계관의 규칙이나 법칙을 어긴다면 핍진성을 상실한 것이다. 보통 작가가 자신이 세운 세계관의 규칙을 간과, 혹은 까먹었거나[2] 미리 생각해둔 줄거리가 자신이 앞서 만들어온 세계관의 규칙을 어기게 될 때 수정하지 않고 앞서 만들어온 수많은 이야기들과 엮여 있는 세계관의 규칙을 뒤늦게 수정할 수는 없으니까 어거지로 이야기를 끼워넣어 서사를 이어가면 이런 일이 발생한다.
핍진성은 해당 사건과 연관성이 있는 사실적인 작품 내 바탕(=배경설정)이고 개연성은 해당 사건과 연관성이 있는 작품 내 과거 사건(=전개)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쉽게 말해 '''그 작품 속의 인물'''이 그 작품에서의 발생하는 사건 전개를 들었을 때 '''사실적'''이라고 생각하면 그 이야기는 핍진성을 지킨 것이고 아니라면 핍진성을 어긴 것이다.
개연성은 떨어지는데 핍진성이 높은 사례로는 대표적으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들 수 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그리스·로마 시대의 연극에서 이야기 마무리에 모든 사건과 갈등이 신의 등장으로 한방에 다 해결되는 스토리 전개를 일컫는데, 이는 분명 개연성을 심각하게 해친 행위다. 하지만 당대 연극은 대부분 신화의 신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신탁, 계시, 예언 등의 방법으로 작품 초반부터 신에게 물음을 구하고 애초에 이야기 자체가 신이 내린 과업이나 신들 자체가 등장인물이 되는 일이 많았다. 신들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어 인간의 갈등 구조 따위는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존재들이며 관객들 또한 이에 충분히 공감했다. 따라서 핍진성으로는 문제가 없는 셈이다.
또한 천룡팔부 마지막 부분의 무명승이 등장하는 부분도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개연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을 정도로 갑툭튀지만 세계관 최강자라는 위엄과 배경이 하필 무림의 북두라 불리는 소림사라 그럴 만하다고 납득하고 넘어가게 된다.
현실을 다루는 작품은 그저 고증에 충실히 맞춰 재현하면 되지만 가상 세계를 다루는 작품이라면 이러한 핍진성을 보충하는 데에도 많은 애를 먹는다. 따라서 기존에 존재하는 다른 작품들에 편승하거나 현실에 존재하는 다른 개념들을 차용해서 보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는 때가 많다.
대표적으로 판타지 장르에 숱하게 등장하는 엘프 개념을 들 수 있다. '엘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판타지 장르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길고 뾰족한 귀와 여리여리하고 창백한 외모, 인간보다 긴 수명을 떠올리게 된다. 이는 반지의 제왕을 통해 정립된 내용이다. 따라서 이후 작품에서 이러한 유형의 엘프가 등장하거나 비슷한 판타지 종족을 디자인한 다음 이름을 '엘프'로 짓는다면 톨킨이 정립한 핍진성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3] 이는 단순히 독자들에게 선학습되어 있는 '배경지식'을 활용하는 정도기 때문에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엘프의 설정을 차용한다고 해서 표절이나 오마주라고 볼 수는 없다.
현실의 개념을 가져오는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제국', '황제' 같은 단어를 쓰거나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의 프로토스 종족의 직책에 '집정관', '법무관' 같이 로마 제국 시대의 단어를 주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배경이 우주인 SF 장르이고 외계 종족의 직책은 창작자가 어떻게 설정하든 자유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개념을 넣어줌으로써 독자들은 현실의 그 개념을 자연스럽게 흡수하게 된다. 프로토스는 초능력과 오버 테크놀러지가 난무하는 외계 종족임에도 플레이어는 고결함, 싸움에 물러서지 않는 용맹함 등 고대 로마의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스타워즈 또한 마찬가지로 은하계를 배경으로 하는 서사물에 전근대시기에나 존재했던 황제와 제국이라는 단어를 넣었음에도 관객들은 위화감을 느끼지 않고 제국이란 단어가 주는 위압감과 지배욕, 무력 등을 자연스레 연상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에 의존하지 않고 순수 100% 밑바닥부터 가상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의 핍진성을 끌어올리려 하다 보면 많은 분량과 역량이 필요하다. 이는 거의 대부분의 작가들에게 쉽지 않은 작업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영화, 게임, 소설, 만화 등 많은 창작품들이 나오지만 보다 보면 어디선가 봤을 법한 설정을 볼 수 있다. 이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마따나 쓰다 보니 우연히 겹쳐진 것도 있지만 이미 존재하는 작품의 설정을 차용함으로써 핍진성을 세우는 데 소모되는 자원을 줄이려고 하는 것도 있다. 각 분야에서 소위 '대작'을 넘어 '바이블'로 취급받는 작품들은 이러한 핍진성을 밑바닥부터 세웠음은 물론 나아가 다른 작품에까지 영향을 준 일이 많다.
이런 핍진성이 중요한 장르중 하나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아 현실과의 괴리감을 느끼기 쉬운 판타지[4] , 리얼로봇물이나 포스트 아포칼립스물 등이 꼽힌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쓰이는 무한궤도를 놔 두고 굳이 다리가 부실해 보이는 이족보행병기가 등장한다면, 관객들은 그 장면을 보고 '왜 굳이 저런 것을 만들었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관객의 상식에 비추어 볼 때 해당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나사가 빠져 있는 상태'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때 작가는 핍진성을 살리기 위해 '인공 근육의 가성비' 등 온갖 설정들을 붙여서 세계관을 보완하는 것이다. 건담 시리즈에서도 이족보행병기가 버젓이 돌아다니지만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그 세계관, 즉 그 작품에서의 '현실세계'에서는 미노프스키 입자를 비롯 핍진성을 채우기 위한 다양한 장치가 등장한다.
알드노아 제로에 핍진성에 관한 사례가 있다. 해당 작품의 세계관은 몇십년 뒤의 우리가 사는 지구와 유사한 세계를 바탕으로 한다. 차이점은 화성에 가난하면서 귀족 중심의 국가 성립하여 지구와 대립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현대 선진국 시민들로 이루어진 화성 사회가 50년 정도만에 완전한 귀족 중심 사회의 국가로 변모한 것, 화성 국민들이 제대로된 식사를 하지 못하는 처참한 환경에서도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있었다. 상식적으로 화성과 같은 상황은 이루어지기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분단 50년만에 저렇게 된 국가를 이웃으로 두고 있다. 북한의 존재를 지적하기 전에는 한국 시청자들 중에서 해당 설정이 말이 안된다는 의견이 상당수 나왔으나 두 체제를 비교하는 후기 등이 한국 웹사이트에 퍼지면서 적어도 한국 팬층은 충분히 납득하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알려주면 현실성이 있다고 납득하지만 그 전에는 비현실적이라는 평을 받았다는 건 핍진성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좀비물 같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에서도 주로 21세기 현실세계를 바탕으로 하기에 사실성과 핍진성을 동시에 잡아야 한다. 그래서 분노 바이러스 등 좀비나 유사한 것의 출현 이유를 '''그 작품(세계관) 내에서 사실적으로''' 설명해주는 장치를 넣고 현실이라면 군대가 제압했을 좀비를 제압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는 장치를 또 넣는다.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민간인들이 매트릭스가 만든 세상에 위화감을 느끼는 것[5] 을 현실에서의 핍진성의 어긋남을 느낀 예로 들 수 있다.
놀랍게도 바키 시리즈와 같이 비현실성이 매우 짙은 작품들에서도 그 나름대로의 핍진성이 있다. 제 3자의 말을 빌려 서술하는 장면이나 그럴듯한 저명인사(당연히 그조차도 허구지만)의 말을 인용하는 장면이 핍진성을 강화하는 장치에 해당한다. 이와 비슷한 장치 중 특히 유명한 게 민명서방.
핍진성을 무시한 사례로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들 수 있다. 태양의 후예에선 이야기와 연출과는 무관하게 주인공 군인들의 행동들이 전혀 군인답지 않고 말이 안 된다고 까인다. 여기다가 실드를 친다고 "이건 원래 판타지니까 사실성 따지면 안 됨! 그렇게 치면 반지의 제왕은 뭐 말이 되냐?"라고 말한다면 '''핍진성이 뭔지 전혀 모르는 것이다.''' 태양의 후예는 21세기 지구를 배경으로 하기에 별다른 설정이 없다면 자동적으로 그 세계관의 핍진성은 현실과 똑같아진다. 게다가 버젓이 등장인물들의 소속은 '''대한민국'''이라고 나오지 않는가. 이와 같은 비판을 피하려면 독자가 그 세계를 '현실'이 아니라 '현실과 비슷한 가상 세계'로 생각할 수 있도록 설정을 보강해야 한다. 작품을 읽는 독자나 시청자들은 픽션이라 해도 별다른 설명이 없으면 현실의 핍진성을 대입하는데,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 더욱 현실의 핍진성을 대입할 수밖에 없다. (DC의 '슈퍼맨', '배트맨'은 가상의 도시 메트로폴리스, 고담을 만든 반면 마블의 '스파이더맨', '아이언맨'은 실재하는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는 면에서 핍진성 정립에 대단한 노력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영화 나랏말싸미에서 신미가 세종대왕에게 호통치는 장면 또한 핍진성을 무시한 대표적인 사례다. 적어도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세종대왕이 살았던 시기에 살진 않았으나 이 장면을 보면서 상식적으로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즉, 전제군주제 국가에서 임금의 위엄과 조선시대의 사대부 문화 그리고 당시의 숭유억불 정책 등을 학습을 통해 알고 있기에 보는 관객들은 무너진 핍진성에 위화감을 받게 되는 것.
위 사례들과 같이 '현실의 핍진성(=사실성)'을 위반한 사례들의 특징은 '''단순히 그 장면만 나열해도''' 문제점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이것 또한 개연성과 핍진성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인터넷에서 '태양의 후예'나 '나랏말싸미'를 검색하면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을 짤방으로 편집해서 지적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보는 사람들은 앞뒤 내용을 몰라도 상황을 이해하고 문제점에 공감하는 데 문제가 없다. '개연성'은 사건의 인과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앞뒤를 다 자른 내용만 봤을 때는 뭐가 문제인지 이해하기 힘든 때가 많다. 다시 말해 전후사정을 다 들어봐야 잘 짜인 것인지 개연성이 무너진 것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개연성'을 판단하는 데에는 '전후사정'이 필요하고 '핍진성'을 판단하는 데에는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현실을 기반으로 한 매체는 이러한 배경지식이 독자들에게 이미 학습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히 그 장면만 봐도 문제 유무를 판단할 수 있는 것.
드라마 도깨비에서 지은탁이 죽은 뒤 이승의 기억을 잊는 차를 마시지 않는데 이 또한 개연성이 아니라 핍진성을 무시한 좋은 예이다. 그 세계관에서의 규칙은 죽은 자는 그 차를 마시고 환생을 해야 했고 모든 죽은 자들이 그 규칙을 따랐는데 갑자기 예외가 생겨버린 것이다. 도깨비를 잊기 싫다는 마음의 개연성은 있을지 모르나 '망각의 차를 마실지 말지 개인이 결정할 수 있다'라는 건 '죽은 자는 망각의 차를 반드시 마셔야 한다'라는 작가 자신의 규칙을 깨버린 것이다.
사실 2010년대 이후 한국 드라마들은 대부분 핍진성이 엉망진창이다. 특히 연애 드라마들이 유독 그런데, 이런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작품의 완성도보다 작품속에서 등장하는 단편적인 설렘을 느끼고 싶어하기 때문에 작품에서 지켜야할 핍진성이 모조리 파괴되면서 이렇게 된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이 비난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품 내에서도 외에서도 어울리지 않는 요소를 억지로 집어넣다 보니 해당 작품의 팬들에게 'PC 묻었다'라며 비난받는다. 여성들이 억압받던 조선시대 배경에서 여성들이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1. 개요
'''핍진성'''은 진실과 거짓의 구분이 불분명한 시점에서 외부의 관측자가 진실에 가깝다고 납득할 만한 정도를 이르는 형이상학적 성질이다. 여기서 외부의 관측자란 진리를 모르는 상태이나 사물을 객관적으로 관측하는 사람을 말한다.
용어의 한자 뜻을 풀이해 보면 '가까이할 핍(핍박할 핍, 逼)', '참 진(眞)', '성품 성(性)'으로 '진실에 가까운 정도'라고 해석할 수 있겠으나 본디 핍진성이라는 개념은 매우 추상적이며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원어 'verisimilitude' 역시 의미 해석이 다양하며, 영미권에서는 'truthlikeness(진실성)'나 'fidelity(충실도)'로 풀어 쓰기도 한다. 일본어로는 '真実らしさ'로 쓴다. 한국어에서는 영미권 해석인 'truthlikeness'를 번역하여 현실성(現實性), 진실성(眞實性)의 유의어로 설명한다.
용어로서의 'verisimilitude'는 17세기 영국에서 라틴어 verisimilitudo(truth-like)의 변형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한국어 '핍진성'이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920년대 내외로 추정되며, 일제강점기 문학 비평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상당히 유서 깊은 용어.
2. 문학적 핍진성
문학에서 말하는 핍진성은 개연성과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개연성은 '인과관계의 올바른 정도'지만, 핍진성은 '작품 세계관, 배경, 설정에서 나올 수 있는 인과관계인가'를 의미한다. 즉, 사건 자체의 인과관계는 개연성이고, 그 사건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배경설정과 인물심리의 충실함이 바로 핍진성이다.
- 개연성의 예시
- 그 사람이 나의 친구를 죽였다. → 오랜 세월 끝에 복수에 성공했다.
- 마왕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악당이다. → 용사는 미련없이 그를 죽였다.
- 친구가 그녀를 좋아하고 있는 것을 알았음에도 고백했다. → 세 사람 사이에 큰 싸움이 일어났다.
- 핍진성의 예시
- 봉건 군주 앞에서는 경칭을 사용하며, 자세를 낮춘 상태로 대화한다. → 왕 앞에서 반말을 했으니 불경한 일이다.
- 반란은 중범죄로, 도모하기 위해선 큰 결단이 필요하다. → 반란을 모의하다 잡힌 사람은 큰 처벌을 받는다.
- 엘프는 자연을 사랑하며 폭력을 싫어한다. → 인간이 숲을 파괴한 행위에 엘프들은 분노할 것이다.
반대로 만약 이종족과 마법과 주술이 난무하는 판타지 소설이라면 '''판타지는 원래 허구'''이기 때문에 사실성을 따질 수가 없다. 하지만 허구성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세계관이 정교하게 짜여있고 작중 사회와 등장인물들이 서로 적절히 어우러져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 작품이라면 핍진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헌터×헌터의 등장 국가나 집단, 넨 등의 능력은 완전한 허구지만 그 안에 국가체제, 인터넷 등 통신 인프라, 국가간 대립구조, 협회 규정 등이 나름의 합리성이 있기 때문에 읽는 독자로 하여금 허구성을 쉽게 느끼지 못한다. 혹은 마찬가지로 중세풍 판타지인 '''왕좌의 게임'''이나 이 분야 끝판왕 '''반지의 제왕'''을 읽으면서 사실성은 떨어진다 할 수 있겠지만 핍진성과 이야기 연출력은 굉장히 정교하다고 평가받는다.
워크래프트 시리즈의 세계에 등장하는 오크와 해리 포터 시리즈의 세계에 등장하는 집요정, 두 종족을 비교해보자. 오크는 '우리는 노예가 되지 않는다'는 말마따나 힘과 명예를 중시하고 다른 종족으로부터의 지배를 거부하는 반면 집요정은 남에게 복종하고 봉사하는 것을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종족이다. 이러한 뒷설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난다면 워크래프트의 오크가 다른 종족의 지배를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키는 이야기나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자신들을 해방시켜주겠다는 인간들의 권유를 오히려 거부하는 집요정들의 행보가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똑같이 허구의 존재들이고 서로 상반된 전개임에도 독자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핍진성이 잘 지켜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워크래프트의 스랄처럼 오크 하나가 탄압받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 반란을 도모하는 이야기로 간다고 해보자. 워크래프트 세계관의 지식이 없더라도 반란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범죄이며 매우 큰 소동이 될 것이라는 걸 독자들은 예상이 가능하다. 이처럼 작품 내 명시된 설정이 없을 때 '''독자는 현실의 핍진성을 작품 내 세계관에 대입'''시키게 된다. 즉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반란을 일으켰으니 그냥 안 넘어가겠구나'하는 사실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가 붙잡혀 처형된다거나 스랄처럼 반란에 성공한다거나 하는 전개가 찾아오면 독자는 이를 자연스럽게 납득하게 된다. 반란을 일으킨 중죄인이 처형되거나 반란에 성공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개연성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아무런 사전 설명이 없었는데 집요정 캐릭터 하나가 등장하여 탄압받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 반란을 도모하는 전개가 등장한다면 독자는 위화감을 받게 된다. 이는 개연성을 해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새로운 전개'의 등장은 명제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A라는 원인이 있으니 B라는 결과가 나와야 한다." 부분의 'A'에 해당되는 부분이 처음 언급됐을 뿐이다. 그럼에도 독자는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분명 설정상 집요정 종족은 남에게 복종하고 봉사하는 것을 즐기는 종족인데, 반란을 일으키는 전개는 어색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핍진성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이를 자연스럽게 바꾸기 위해서는 작가가 핍진성을 보충해주어야 한다. 즉 저러한 일이 나타난 이유가 무엇이며 종족 중 한 명의 특이 사례인 것인지 종족 전체의 생각이 조금씩 바뀌게 된 것인지 등 봉사를 즐기는 종족임에도 반란을 생각하게 될 만한 여타 보충 설정 등으로 핍진성을 보충해야 한다.
핍진성이 떨어지는 작품은 읽다가 개연성과는 다른 의미로[1] "뭐야 이게 말이 돼?"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작가가 자신이 만든 작품 속 세계관의 규칙이나 법칙을 어긴다면 핍진성을 상실한 것이다. 보통 작가가 자신이 세운 세계관의 규칙을 간과, 혹은 까먹었거나[2] 미리 생각해둔 줄거리가 자신이 앞서 만들어온 세계관의 규칙을 어기게 될 때 수정하지 않고 앞서 만들어온 수많은 이야기들과 엮여 있는 세계관의 규칙을 뒤늦게 수정할 수는 없으니까 어거지로 이야기를 끼워넣어 서사를 이어가면 이런 일이 발생한다.
핍진성은 해당 사건과 연관성이 있는 사실적인 작품 내 바탕(=배경설정)이고 개연성은 해당 사건과 연관성이 있는 작품 내 과거 사건(=전개)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쉽게 말해 '''그 작품 속의 인물'''이 그 작품에서의 발생하는 사건 전개를 들었을 때 '''사실적'''이라고 생각하면 그 이야기는 핍진성을 지킨 것이고 아니라면 핍진성을 어긴 것이다.
개연성은 떨어지는데 핍진성이 높은 사례로는 대표적으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들 수 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그리스·로마 시대의 연극에서 이야기 마무리에 모든 사건과 갈등이 신의 등장으로 한방에 다 해결되는 스토리 전개를 일컫는데, 이는 분명 개연성을 심각하게 해친 행위다. 하지만 당대 연극은 대부분 신화의 신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신탁, 계시, 예언 등의 방법으로 작품 초반부터 신에게 물음을 구하고 애초에 이야기 자체가 신이 내린 과업이나 신들 자체가 등장인물이 되는 일이 많았다. 신들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어 인간의 갈등 구조 따위는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존재들이며 관객들 또한 이에 충분히 공감했다. 따라서 핍진성으로는 문제가 없는 셈이다.
또한 천룡팔부 마지막 부분의 무명승이 등장하는 부분도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개연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을 정도로 갑툭튀지만 세계관 최강자라는 위엄과 배경이 하필 무림의 북두라 불리는 소림사라 그럴 만하다고 납득하고 넘어가게 된다.
3. 핍진성의 보충
현실을 다루는 작품은 그저 고증에 충실히 맞춰 재현하면 되지만 가상 세계를 다루는 작품이라면 이러한 핍진성을 보충하는 데에도 많은 애를 먹는다. 따라서 기존에 존재하는 다른 작품들에 편승하거나 현실에 존재하는 다른 개념들을 차용해서 보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는 때가 많다.
대표적으로 판타지 장르에 숱하게 등장하는 엘프 개념을 들 수 있다. '엘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판타지 장르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길고 뾰족한 귀와 여리여리하고 창백한 외모, 인간보다 긴 수명을 떠올리게 된다. 이는 반지의 제왕을 통해 정립된 내용이다. 따라서 이후 작품에서 이러한 유형의 엘프가 등장하거나 비슷한 판타지 종족을 디자인한 다음 이름을 '엘프'로 짓는다면 톨킨이 정립한 핍진성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3] 이는 단순히 독자들에게 선학습되어 있는 '배경지식'을 활용하는 정도기 때문에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엘프의 설정을 차용한다고 해서 표절이나 오마주라고 볼 수는 없다.
현실의 개념을 가져오는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제국', '황제' 같은 단어를 쓰거나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의 프로토스 종족의 직책에 '집정관', '법무관' 같이 로마 제국 시대의 단어를 주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배경이 우주인 SF 장르이고 외계 종족의 직책은 창작자가 어떻게 설정하든 자유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개념을 넣어줌으로써 독자들은 현실의 그 개념을 자연스럽게 흡수하게 된다. 프로토스는 초능력과 오버 테크놀러지가 난무하는 외계 종족임에도 플레이어는 고결함, 싸움에 물러서지 않는 용맹함 등 고대 로마의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스타워즈 또한 마찬가지로 은하계를 배경으로 하는 서사물에 전근대시기에나 존재했던 황제와 제국이라는 단어를 넣었음에도 관객들은 위화감을 느끼지 않고 제국이란 단어가 주는 위압감과 지배욕, 무력 등을 자연스레 연상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에 의존하지 않고 순수 100% 밑바닥부터 가상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의 핍진성을 끌어올리려 하다 보면 많은 분량과 역량이 필요하다. 이는 거의 대부분의 작가들에게 쉽지 않은 작업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영화, 게임, 소설, 만화 등 많은 창작품들이 나오지만 보다 보면 어디선가 봤을 법한 설정을 볼 수 있다. 이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마따나 쓰다 보니 우연히 겹쳐진 것도 있지만 이미 존재하는 작품의 설정을 차용함으로써 핍진성을 세우는 데 소모되는 자원을 줄이려고 하는 것도 있다. 각 분야에서 소위 '대작'을 넘어 '바이블'로 취급받는 작품들은 이러한 핍진성을 밑바닥부터 세웠음은 물론 나아가 다른 작품에까지 영향을 준 일이 많다.
4. 사례
이런 핍진성이 중요한 장르중 하나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아 현실과의 괴리감을 느끼기 쉬운 판타지[4] , 리얼로봇물이나 포스트 아포칼립스물 등이 꼽힌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쓰이는 무한궤도를 놔 두고 굳이 다리가 부실해 보이는 이족보행병기가 등장한다면, 관객들은 그 장면을 보고 '왜 굳이 저런 것을 만들었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관객의 상식에 비추어 볼 때 해당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나사가 빠져 있는 상태'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때 작가는 핍진성을 살리기 위해 '인공 근육의 가성비' 등 온갖 설정들을 붙여서 세계관을 보완하는 것이다. 건담 시리즈에서도 이족보행병기가 버젓이 돌아다니지만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그 세계관, 즉 그 작품에서의 '현실세계'에서는 미노프스키 입자를 비롯 핍진성을 채우기 위한 다양한 장치가 등장한다.
알드노아 제로에 핍진성에 관한 사례가 있다. 해당 작품의 세계관은 몇십년 뒤의 우리가 사는 지구와 유사한 세계를 바탕으로 한다. 차이점은 화성에 가난하면서 귀족 중심의 국가 성립하여 지구와 대립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현대 선진국 시민들로 이루어진 화성 사회가 50년 정도만에 완전한 귀족 중심 사회의 국가로 변모한 것, 화성 국민들이 제대로된 식사를 하지 못하는 처참한 환경에서도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있었다. 상식적으로 화성과 같은 상황은 이루어지기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분단 50년만에 저렇게 된 국가를 이웃으로 두고 있다. 북한의 존재를 지적하기 전에는 한국 시청자들 중에서 해당 설정이 말이 안된다는 의견이 상당수 나왔으나 두 체제를 비교하는 후기 등이 한국 웹사이트에 퍼지면서 적어도 한국 팬층은 충분히 납득하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알려주면 현실성이 있다고 납득하지만 그 전에는 비현실적이라는 평을 받았다는 건 핍진성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좀비물 같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에서도 주로 21세기 현실세계를 바탕으로 하기에 사실성과 핍진성을 동시에 잡아야 한다. 그래서 분노 바이러스 등 좀비나 유사한 것의 출현 이유를 '''그 작품(세계관) 내에서 사실적으로''' 설명해주는 장치를 넣고 현실이라면 군대가 제압했을 좀비를 제압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는 장치를 또 넣는다.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민간인들이 매트릭스가 만든 세상에 위화감을 느끼는 것[5] 을 현실에서의 핍진성의 어긋남을 느낀 예로 들 수 있다.
놀랍게도 바키 시리즈와 같이 비현실성이 매우 짙은 작품들에서도 그 나름대로의 핍진성이 있다. 제 3자의 말을 빌려 서술하는 장면이나 그럴듯한 저명인사(당연히 그조차도 허구지만)의 말을 인용하는 장면이 핍진성을 강화하는 장치에 해당한다. 이와 비슷한 장치 중 특히 유명한 게 민명서방.
핍진성을 무시한 사례로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들 수 있다. 태양의 후예에선 이야기와 연출과는 무관하게 주인공 군인들의 행동들이 전혀 군인답지 않고 말이 안 된다고 까인다. 여기다가 실드를 친다고 "이건 원래 판타지니까 사실성 따지면 안 됨! 그렇게 치면 반지의 제왕은 뭐 말이 되냐?"라고 말한다면 '''핍진성이 뭔지 전혀 모르는 것이다.''' 태양의 후예는 21세기 지구를 배경으로 하기에 별다른 설정이 없다면 자동적으로 그 세계관의 핍진성은 현실과 똑같아진다. 게다가 버젓이 등장인물들의 소속은 '''대한민국'''이라고 나오지 않는가. 이와 같은 비판을 피하려면 독자가 그 세계를 '현실'이 아니라 '현실과 비슷한 가상 세계'로 생각할 수 있도록 설정을 보강해야 한다. 작품을 읽는 독자나 시청자들은 픽션이라 해도 별다른 설명이 없으면 현실의 핍진성을 대입하는데,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 더욱 현실의 핍진성을 대입할 수밖에 없다. (DC의 '슈퍼맨', '배트맨'은 가상의 도시 메트로폴리스, 고담을 만든 반면 마블의 '스파이더맨', '아이언맨'은 실재하는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는 면에서 핍진성 정립에 대단한 노력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영화 나랏말싸미에서 신미가 세종대왕에게 호통치는 장면 또한 핍진성을 무시한 대표적인 사례다. 적어도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세종대왕이 살았던 시기에 살진 않았으나 이 장면을 보면서 상식적으로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즉, 전제군주제 국가에서 임금의 위엄과 조선시대의 사대부 문화 그리고 당시의 숭유억불 정책 등을 학습을 통해 알고 있기에 보는 관객들은 무너진 핍진성에 위화감을 받게 되는 것.
위 사례들과 같이 '현실의 핍진성(=사실성)'을 위반한 사례들의 특징은 '''단순히 그 장면만 나열해도''' 문제점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이것 또한 개연성과 핍진성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인터넷에서 '태양의 후예'나 '나랏말싸미'를 검색하면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을 짤방으로 편집해서 지적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보는 사람들은 앞뒤 내용을 몰라도 상황을 이해하고 문제점에 공감하는 데 문제가 없다. '개연성'은 사건의 인과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앞뒤를 다 자른 내용만 봤을 때는 뭐가 문제인지 이해하기 힘든 때가 많다. 다시 말해 전후사정을 다 들어봐야 잘 짜인 것인지 개연성이 무너진 것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개연성'을 판단하는 데에는 '전후사정'이 필요하고 '핍진성'을 판단하는 데에는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현실을 기반으로 한 매체는 이러한 배경지식이 독자들에게 이미 학습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히 그 장면만 봐도 문제 유무를 판단할 수 있는 것.
드라마 도깨비에서 지은탁이 죽은 뒤 이승의 기억을 잊는 차를 마시지 않는데 이 또한 개연성이 아니라 핍진성을 무시한 좋은 예이다. 그 세계관에서의 규칙은 죽은 자는 그 차를 마시고 환생을 해야 했고 모든 죽은 자들이 그 규칙을 따랐는데 갑자기 예외가 생겨버린 것이다. 도깨비를 잊기 싫다는 마음의 개연성은 있을지 모르나 '망각의 차를 마실지 말지 개인이 결정할 수 있다'라는 건 '죽은 자는 망각의 차를 반드시 마셔야 한다'라는 작가 자신의 규칙을 깨버린 것이다.
사실 2010년대 이후 한국 드라마들은 대부분 핍진성이 엉망진창이다. 특히 연애 드라마들이 유독 그런데, 이런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작품의 완성도보다 작품속에서 등장하는 단편적인 설렘을 느끼고 싶어하기 때문에 작품에서 지켜야할 핍진성이 모조리 파괴되면서 이렇게 된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이 비난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품 내에서도 외에서도 어울리지 않는 요소를 억지로 집어넣다 보니 해당 작품의 팬들에게 'PC 묻었다'라며 비난받는다. 여성들이 억압받던 조선시대 배경에서 여성들이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