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왕
[clearfix]
1. 소개
고구려의 제13대 군주. 선왕 중천왕의 차남으로 중천왕에 이어 무난한 치세를 이끌었다. 성품이 총명하고 인자하여 백성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고 삼국사기에 전해져 온다. 당대에도 꽤나 명망이 높은 임금이었던 듯하다.
2. 생애
271년 1월 서부 대사자 우수의 딸을 왕후로 삼았다. 같은 해 9월에는 국상 음우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상루를 국상으로 삼았다.
280년 4월 서진의 침입으로 인해 오나라가 멸망하고 만다. 184년 황건적의 난으로 시작한 삼국시대가 96년만에 사마씨의 통일로써 종식된 것이다. 거대한 통일 중국이 들어서자 서천왕은 두려워하며 국경 방어에 신경을 썼다.
280년 10월 숙신족이 변방에 처들어와 고구려인들을 학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기록이 적은 고구려 역사에 적힐 정도면 꽤나 큰 규모의 침공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서천왕은 만행을 벌인 숙신을 아예 토벌하기 위해 신하들이 추천한 동생 달가에게 군대를 맡겨 그를 파견했다. 달가는 숙신의 단노성을 차지하고 추장의 목숨을 빼앗음으로써 다른 백성을 이주시킨 뒤 개선한 큰 공을 세운다. 공으로 왕은 달가를 군(君)에 봉했다.[2]
한편 부왕인 중천왕과 비슷하게 동생 일우와 소발이 286년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사람들을 모았으나 이를 사전에 간파해 토벌했다. 승하하기 직전 해인 291년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통일을 달성한 서진에 팔왕의 난이라는 내전이 발발한다. 이 때문에 통일 중국은 다시 분열되기 시작했고 서천왕 말년~봉상왕 초년에는 이렇다할 외침이 발생하지 않았다.
서천왕릉은 296년에 모용외(慕容廆)[3] 가 쳐들어왔을 때 도굴당했는데 이때 도굴하던 자들이 갑자기 죽고 무덤 안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와 이를 두려워한 적군이 퇴각하였다고 한다.[4]
3. 삼국사기 기록
'''《삼국사기》 서천왕 본기'''
一年冬十月 서천왕이 즉위하다
二年春一月 우수의 딸을 왕후로 삼다
二年秋七月 국상 음우가 죽다
二年秋九月 음우의 아들 상루를 국상으로 삼다
二年冬十二月 지진이 일어나다
三年夏四月 여름에 서리가 내려 보리가 피해를 입다
三年夏六月 가뭄이 들다
四年秋七月一日 일식이 일어나다
四年秋七月 창고를 열어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다
七年夏四月 신성에서 흰 사슴을 잡다
七年秋八月 신성에서 돌아오다
七年秋九月 신기한 참새가 궁궐에 모이다
十一年冬十月 왕의 동생 달가를 보내 숙신의 단로성을 빼앗다
十七年春二月 왕의 동생 일우와 소발이 반역을 도모하다
十九年夏四月 신성에 행차하다
十九年秋八月 흰 사슴을 잡다
十九年秋九月 지진이 일어나다
十九年冬十一月 신성에서 돌아오다
二十三年 서천왕이 죽다
4. 기타
곽재식의 소설인 모살기에서 회상 장면에 잠깐 언급된다. 작중 우랑과 대립하는 주요 극중 인물인 달가의 형이 바로 서천왕인데 소 태후가 출세를 위해 달가와 연인 관계였다가 다시 서천왕의 후궁이 되면서 달가와 연적 아닌 연적 같은 관계가 된다. 달가는 형을 좋아하고 고구려에도 충성심이 강하여 바로 소 태후를 포기하기 때문에 삼각관계가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미묘한 여운을 남긴다. 이게 나중에 봉상왕 대가 되자 다른 사건의 빌미가 된다는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