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읍

 



선산읍
善山邑 / Seonsan-eup


'''국가'''
대한민국
'''광역자치단체'''
경상북도
'''기초자치단체'''
구미시
'''면적'''
67㎢
'''인구'''
14,924명[1]
'''인구밀도'''
226.2명/㎢
'''하위 법정리'''
29
'''행정복지센터'''
선산읍 선산중앙로 71-1
선산읍행정복지센터
1. 개요
2. 관할 리
2.2. 교리, 동부리, 완전리, 이문리
3. 주요시설
3.1. 교육
3.1.1. 초등학교
3.1.2. 중학교
3.1.3. 고등학교
3.2. 주거
3.3. 편의
3.4. 낙동강 시설
4. 유적
5. 교통
5.1. 시내버스
6. 특징


1. 개요


경상북도 구미시에 위치한 . 구미시 서북쪽에 위치해 있다.

2. 관할 리



2.1.


내고리, 독동리, 북산리. 봉곡리, 봉남리, 소재리, 생곡리, 습례리, 신기리, 원리, 죽장리, 포상리, 노상리

2.2. 교리, 동부리, 완전리, 이문리


선산읍의 읍내를 담당하고 있으며 선산시장, 선산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다.

3. 주요시설



3.1. 교육



3.1.1. 초등학교


선산초등학교

3.1.2. 중학교


선산중학교

3.1.3. 고등학교


선산고등학교

3.2. 주거


<rowcolor=#fff> '''단지명'''
'''세대수'''
'''입주'''
'''건설사'''
청자아파트
50
1990년 7월

삼영아파트
60
1990년 8월

우공1차
125
1991년 12월
한효건설
선산군영
120
1992년 3월
한효건설
세원아파트
48
1992년 6월

연합송암타운
124
1993년 3월
(주)동방
우공2차
276
1993년 12월
한효건설
동우비봉타운
221
1995년 8월
동우종합건설
선산주공
362
2000년 6월
영남건설
에이스궁전
44
2001년 12월
영창건설
세진프라임빌
24
2002년 11월
덕산건설
e편한세상
803
2016년 8월
대림산업
태완노블리안
389
2019년 2월
태완건설

3.3. 편의


  • 선산시외버스터미널
  • 선산봉황시장
  • 노브랜드 구미선산시장점
  • [2]

3.4. 낙동강 시설


구미보의 반틈을 선산읍이 차지하고 있다.

4. 유적


  • 선산향교
  • 금오서원
  • 죽장사

5. 교통


의 남,북으로 중부내륙고속도로, 33번 국도[3][4], 59번 국도, 동,서로 33번 국도, 59번 국도, 68번 국가지원지방도, 916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그리고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IC가 위치해 있다.

5.1. 시내버스


'''버스'''
선산338-3]]

6. 특징


선산읍은 1994년까지 선산군이라는 독립된 행정구역이었다가 1995년 도농복합 행정개편으로 구미시에 통합되었다. 중심지는 선산읍[5]이었다. 다른 이름으로는 일선[6], 숭선[7], 선주, 화의군(和義郡)이 있다.
신라사벌주(沙伐州)를 폐하면서 일선주(一善州) 또는 숭선군(嵩善郡), 고려 때 선주였다가, 곧 상주의 일부가 되었으며, 다시 일선현이었다가 지선주사(知善州事)로 승격했고, 조선 태종 때 선산군이 되었다. 이때를 전후해 고려 말 삼은이자 사림파의 뿌리가 되는 야은 길재가 낙향한 곳[8]이기도 하여 여기에 길씨의 일가인 선산 길씨가 있다. 선산도호부(善山都護府)로 승격된 적도 있었다.
현재 구미시청이 있고 구미의 중심지가 된 옛 구미읍[9]과는 불과 한 세기만에 운명이 뒤바뀌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시작은 1900년대 초 개업한 경부선이 당시 선산군의 중심지였던 선산읍 대신 구미면을 지나가게 되면서부터였다.[10] 이후 교통이 편리해진 구미면이 나날이 발전하기 시작했고, 구미면은 1963년 선산군의 유일한 읍인 구미읍(1읍 8면)으로 승격되고(선산면은 1979년이 되어서야 읍으로 승격된다.), 1978년 칠곡군 인동면을 편입하여 구미시로 분리, 승격되었으며, 그 후 1995년 선산군이 도농통합으로 인해 구미시에 통합되었다. 역사를 생각하면 역통합된 것이이라고 볼 수 있다.[11] 즉, 구 구미면이 선산군을 역키잡(?)한 셈이다. 선산군은 도농통합으로 군명(郡名)을 잃고 선산읍이라는 읍명(邑名)으로만 그 흔적을 남기게 되었다. 안습
이처럼 선산과 구미의 관계가 역전된 연유는 바로 전 대통령 박정희의 고향이 당시 선산군 구미면, 즉 지금의 구미시 시내 지역이라는 이유도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경부선은 이미 1916년부터 개통되었지만,[12] 1970년대 산업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구미 지역은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고 대규모 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크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선산읍 지역은 나날이 인구가 감소하고 있으며 낙후 정체가 심해져 불만이 상당히 많다.[13] 더구나 최근 구미에서 칠곡군과 통합 논의가 나오고 있는데 이럴 경우 선산은 더욱 관심에서 멀어져 완전히 낙후될까봐 반대가 심하다.[14]
이 동네의 유명한 곳은 선산 휴게소[15], 금오서원, 선산향교, 죽장사 정도(...).[16] 농담이 아니라 정말 선산에서 뭐 좀 있다고 할 수 있는 읍내의 모든 골목골목을 2시간이면 다 볼 수 있을 정도로 볼 만한 것이 없다. 또한 선산 김씨의 본관지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선산에서는 '나라의 인재의 절반은 영남에서 나고 영남의 인재의 절반은 선산에서 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17] 인재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였다. 선산의 별칭인 '장원방(壯元坊)'도 과거시험의 장원급제자를 여럿 배출했다 해서 나온 이름이다. 선산읍 이문리에 있는 '서당공원'에는 이를 설명하는 조형물이 있다. 우연히도, 이 조형물은 김재규 생가 바로 앞에 있다. 2010년대 후반에는 이편한세상과 태완 노블리안이 들어서면서 인구가 조금이나마 늘었다. 참고로 선산읍 행정복지센터가 있는 곳은 완전리이다. 그리고 무려 29개의 교회가 있다.
[1] 2021년 1월 주민등록인구[2] 실제로는 옥성면에 있다.[3] 33번 국도산동읍을 제외한 구미시의 모든 읍지역을 지나간다.[4] 25번 국도와 포지션이 거의 같다.[5] 과거 선산군청은 구미시청 선산출장소로 사용되고 있다.[6] 선산 김씨를 일선 김씨로 부르기도 한다. 일선교라는 다리도 있다.[7] 숭선대교라는 다리가 있다.[8] 원래 (해평) 길씨의 뿌리는 바로 옆 해평면에 자리잡은 귀화인 길당이었다.[9] 1963년 이전에는 구미면[10] 선산과 구미의 사례 외에도 경부선 개업 이후 지역의 흥망성쇠가 엇갈린 곳은 많다. 그 예로 대전충청남도 회덕군 소속의 리(里)에 불과했으나 경부선과 호남선의 분기 지역이 된 이후 급성장하여 현재 광역시까지 되었지만, 이전까지 충청남도의 전통적 중심지이자 도청 소재지였던 공주는 쇠퇴하고 말았다.[11] 같은 예로 동래군부산광역시, 영일군과 포항시 등이 있다. 부산은 구한말까지 동래부라 불렸으나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개항장 지역만을 부산부로 개칭하고, 개항장 교외 지역을 동래군으로 분리시켰다. 이후 부산이 성장하면서 자신의 모체가 된 동래군을 조금씩 편입하게 되어 현재의 행정구역이 완성된 것. 포항시의 경우 영일군 포항읍에서 승격된 도시였으나, 1995년 도농통합 당시 오히려 자신의 모체가 된 영일군을 흡수하여 '영일시'가 아닌 '포항시'란 이름이 유지되게 되었다.[12] 참고로 경부선은 1905년 최초 부설 당시에는 구미를 거치지 않고 김천에서 바로 칠곡(왜관) 방면으로 직행하는 형태의 노선이었다.(현 4번 국도의 선형을 생각하면 된다.) 그러다가 1916년 구미 쪽으로 이설한 것. 자세한 내용은 금오산역 항목으로.[13] 이를 체감할 수 있는게 학교 통폐합인데, 심지어는 읍내의 여중, 여고까지 남중, 남고랑 통폐합할 정도라고 한다.[14] 과거 면지역 이었던 산동면보다 인구가 적었다.[15] 대구, 밀양, 창원, 김해, 부산 등 영남 남부지역으로 가는 고속버스가 잠시 정차하는 곳이고, 2010년 고속/시외버스 환승휴게소로 지정되어 버스 환승도 가능하다.[16] 이 곳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는 점이 있다. 선산터미널도 있긴 하지만, 정말 낙후한 곳이라서...[17] 출처:이중환, 택리지, 팔도총론 경상도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