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일(응답하라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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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役 : 성동일
나정의 아빠. 1947년생, 호남 출신으로 전 해태 타이거즈 선수. 작중에서는 1984년 포수 부문 KBO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한 것으로 나와있다[1] . 현재는 서울 쌍둥이의 코치.[2] 은퇴 후에는 일화와 함께 마산에서 있었으나[3] , 서울 쌍둥이 코치직을 하게 되면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2013년 현재도 서울 쌍둥이 코치. 일각에서는 사천왕에 빗대어 북성동일로 불리기도 한다.
부인 일화와는 거의 닭살부부로 티격태격할 때도 있지만 금슬이 매우 좋다. 임신한 부인이 아프다는 말에 경기 도중 인천에서 서울까지 택시를 타고 한달음에 쫓아가는 정성도 있다. 첫사랑은 이경실. 원래 동일이 야반도주하자고 했으나, 이경실이 거절했다고 한다. 이 후 이경실이 성동일을 찾는 바람에 'TV는 사랑을 싣고'에 몰래 나갔다가 일화와 대판 싸웠다.[4] 하지만 이경실 앞에서 사실상 부인 자랑을 했고, 초콜릿 케이크가 달달하다면서 일화에게 준다고 사갔던 것이다. -그럼 뭐하나 케이크는 하숙생들이 먹고 있고 부인과 부부싸움... 사실 부부관계도 그렇고 응답하라 전 시리즈 중에서 가장 유복한 환경이어서 그런지 부부가 둘다 성격도 호탕하고 유쾌하게 그려진 시즌이다.
1994년 한국시리즈에서 서울 쌍둥이가 우승을 차지하자 당시 신인 삼총사와 함께 10년 동안 독주 체제를 굳히겠다고 호언장담하면서 인삼주[5] 를 다음 한국시리즈 우승 때 마시겠다고 담갔으나 '''그 우승이 마지막 우승이 돼 버렸다.'''[6][7]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나레이션은 쌍둥이 팬에게 참 서글프게 들린다. [8]
서울 쌍둥이 말고도 이 분이 예측하는 건 정반대로 나간다. 13화에서는 젊은이의 양지를 보면서 "배용준, 전도연이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가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라고 장담한다. 거기다 전지현을 보고는 생머리 헤어스타일을 바꾸지 않으면 못 뜰 거라 하고 원빈을 보고는 '''순전히 머리빨''이라며 원빈이 머리를 아저씨처럼 반삭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묻힐 거라 하는 둥 거의 펠레 수준의 예지력을 보유하고 있다. [9] 전 16화에선 주식투자를 하는데 이미 투자 중인 대우 주식은 10년 20년 묵혀두었다가 쑥쑥이 주고 시티폰 주식 투자 해서 대박 날 거라고 호언 장담한다. 이 말을 하는 시점이 97년 3월. 결국 시티폰 항목에 나온 대로 진행되면서 투자는 쪽박차고, 성동일은 반쯤 실성하여 밥에 시티폰을 꼽고 넋나간 소리를 한다.[10] 거기에 외환위기 크리가 터지면서 서울 쌍둥이도 구조조정으로 재계약에 실패하여 코치도 그만둔다. 대우 주식은 언급은 없지만, 말 안해도 어떻게 됐을진 뻔하고... 그래도 1999년에도 멀쩡히 살고 있는 거 보면 어떻게 잘 넘긴 모양이다.[11] 20화에서 미국에 좋은 투자처가 있다는 제안을 일거에 거절했다는데, 컴퓨터 만드는 회사가 핸드폰도 만들고 MP3도 만든다는 게 같잖아서 무시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 회사가 '''애플'''[12] . 21화에서도 이탈리아전 때 혼자 이탈리아가 이긴다에 걸었다. 나정의 결혼식장에서 월드컵 4강 갈 거다고 한 것은 맞추기는 했다.
IMF로 재계약 실패 이후[13] 친구의 사업을 도우며 지냈다고 언급되며, 2000년에 연봉은 반으로 깎이긴 했지만 서울 쌍둥이 코치로 복귀했다. 그리고 2013년까지 서울 쌍둥이의 코치직을 하고 있다.
17화에서 2013년에 나정과 함께 시끄러운 윗집에 올라가는데, 알고 보니 거긴 응답하라 1997의 윤제와 시원의 집. 그리고 마침 시원의 아버지도 있어서 둘이 만나는데, 둘은 서로 알고 있는데다 운동도 같이한 선후배 사이였고, 심지어 먼 친척이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응답하라1988에 3명의 성동일이 출연하는 것도 기대되었으나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1] 참고로 1984년 해태의 주전포수는 재일교포인 김무종이고, 해당년도의 포수 부문 골든 글러브 수상자는 삼성 라이온스의 이만수이다. 이만수는 1983년부터 1987년까지 골든 글러브를 독식했다.[2] LG 측에서 라이선스 계약을 거부해서 이런 이름이 되었다.[3] 아니면 가족과 떨어져 살았을지도 모른다.[4] 이경실은 1966년생으로 극 중 성동일과 20살 가까이 차이난다. 차라리 1975년생인 하숙생들 쪽에 가깝다. 재미를 위해 넘어가는 것. 참고로 실제 성동일은 1967년생으로, 이경실이 한 살 연상이다.[5] 실제로는 LG의 구본무 회장이 다음 우승때 축배로 들기 위해 1995년산 오키나와 아와모리 소주를 마련해왔는데, 이쪽은 43도로 꽤 독하다. 그래서 그런가 보관만 잘 하면 50년은 간다고 한다.[6] 이때 선동열을 보고 이제부터 내리막길이며 주니치에 절대 가지 못할 것이라고 했는데 1995년 시즌 종료 후 선동열은 주니치에 입단하게 되고 일본에서 성공적으로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게 된다. 그리고 반짝이라던 이종범 역시 프로야구의 레전드가 되는데 2020년 현재 이종범의 장남 이정후가 현역으로 데뷔했다.[7] 비슷한 케이스로 울산, 부산 등의 축구팀이 있다. 울산은 1996년, 부산은 1997년이 최근 우승이었다.[8] 1990년대 당시 울산 현대는 의외로 우승을 자주 하던 팀이었다. 2010년대 이후 자꾸 준우승 이미지가 너무 강해져서 그렇지.[9]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배용준은 겨울연가로 일본에서 사회현상에 준하는 신드롬적 인기로 '욘사마'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전도연은 영화 밀양(영화)으로 칸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충무로의 대표 여배우로 현재까지 군림 중이다. 둘다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가 된 셈. 전지현은 생머리를 잘 고수하여 "엘라스틴 했어요"라는 전설의 광고 카피를 필두로 11년 동안 엘라스틴 모델을 했으며, 2001년 엽기적인 그녀로 초대박을 찍었다. 원빈은 태극기 휘날리며, 아저씨(영화) 같이 짧은 머리로 나온 영화에서 초대박을 쳤으며 특히 아저씨에서 머리 자르는 장면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장면.[10] 나정의 말로는 투자한 금액이 무려 '''1억 원'''이나 된다고 한다...... 실성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지경이다.[11] 시기적으로 대우가 부도난 건 99년이고, 98년에는 쌍용차를 인수할 정도의 능력이 있었으니 그 새 대우 주식을 팔았을 수도 있다.[12] 2000년 당시 애플 주가가 1달러 근처였는데, 만약 여기에 시티폰 살 1억을 투자했다면 2015년 110억이 넘는 돈이 되어있었을 것이다. [13] 친척동생인 응칠의 성동일보다 안좋은 상황으로 응칠의 성동일은 월급이 반으로 깎였으나 계속 코치직은 유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