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LG그룹 제3대 회장
구본무
具本茂 | Koo Bon-moo
'''
<colbgcolor=#c30037> '''출생'''
1945년 2월 10일
경상남도 진양군 대곡면 단목리
(현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1]#
'''사망'''
2018년 5월 20일 오전 9시 52분 (향년 73세)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본관'''
능성 구씨[2]
'''학력'''
삼선고등학교[3][4] (졸업)
연세대학교 (상학 / 중퇴)
애슐랜드 대학교 (경영학 / 졸업)
클리블랜드 주립대학교 (경영학 / 석사)
'''가족'''
아버지 구자경, 어머니 하정임
배우자 김영식[5](1972년 결혼)
아들 구원모(1974~1994)[6]
딸 구연경(具姸璟)(1978년생), 구연수(1996년생)
양자(조카)[7] 구광모
'''아호'''
화담(和談)[8]
'''직업'''
기업인
'''종교'''
불교
1. 개요
3. 그의 경영이념
4. 야구 관련
5. 여담
6. 수상경력
7. 사망 및 경영 승계 작업 진행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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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당당히 실력으로 1등을 하든지, 부정한 방법으로 1등을 할 거면 차라리 2등을 하라.'''

대한민국기업인.
1995년 LG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이래, 2018년까지 지주회사 (주)LG의 대표이사 회장으로서 LG그룹의 경영을 이끌었다.
'럭키금성'에서 'LG'로 그룹명이 바뀐 이후로는 첫 회장이다.

2. 가계도




3. 그의 경영이념


  • 정도경영
  • 가치창조형 일등주의
  • 도전주의와 시장선도

4. 야구 관련


재계에서 삼성그룹 이건희 - 이재용 부자,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 등과 더불어 소문난 야빠로 알려져 있다. 1군은 물론 2군 선수들까지 70여 명의 이름과 학력을 전부 다 외웠을 정도. 럭키금성그룹은 야구팀 LG 트윈스MBC 청룡을 인수한 첫 해인 1990년과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자 1995년 그룹명을 LG로 고쳤으며[9] LG 트윈스 창단 원년부터 구단주를 맡아 팀에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10] 1990년대 중반에 손해를 감수하고 한국 내 최초 돔경기장 건설에 의욕을 보인 것도 구 회장이었는데, 1997년 외환 위기가 오지 않았다면 LG는 2000년대 초에 잠실을 떠나 뚝섬 돔 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삼았을 것이다.
2000년 들어서 동생인 구본준에게 구단주 자리를 물려줬지만[11] 야구에 대한 열정은 대단해서 이후에도 1년에 몇 경기는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으로 직관을 왔다고 한다.

5. 여담


  • 2014년, KBS 시사기획 창의 보도에 따르면 손자, 손녀 4명이 미국시민권자라고 한다.
  • 허영만에서도 언급되었지만 관상가들이 꼽는 전형적인 부자 관상이다. 조선시대 만석꾼의 관상의 표본으로 유명한데 꼴에서는 어릴 때 구본무 회장의 관상을 본 관상가가 돈이 붙어다닐 관상이라고 표현하였다. 정확히는 거북이상이라고 한다는데, 거북이가 예전부터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영물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12] 물론 관상가도 LG라는 재벌 가문의 3대라니 당연히 부자인 점을 고려해 그러한 평가를 내렸겠지만 다른 대기업 회장들에 비해 상이 좋다는 평가가 많다.
  • LG전자의 스마트폰 주력 상품 옵티머스 G는 구본무의 지시로 LG 계열 회사들의 핵심 기술이 집합된 제품으로 계획되었으며, LG전자를 주축으로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LG화학 등이 개발에 참여했었다. 이 때문에 회장님폰 혹은 구본무폰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코드 네임이 펫 네임이 된 특이한 사례로[13], 회장님폰에 대한 관심이 크던 와중에 프로젝트 gee가 언론을 통해 지속적으로 유출되었다. 이것이 여론에 오르내렸는데, gee가 알파벳 G와 발음이 비슷하여 'G'로 표기되는 경우도 많았고 결국 펫 네임으로 대문자 'G'가 확정되었다. 구본무 혹은 Great의 약자로 G를 썼다는 설도 있다.
  • 1994년 한국시리즈에서 LG 트윈스가 우승한 뒤, 다음 LG 우승 때의 MVP에게 선물할 최고급 명품시계[14]를 준비하고 우승 선수단과 같이 축배를 들기 위해 오키나와에서 수제 아와모리 소주를 공수해 준비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명품시계는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고 술은 부질없이 익어가고 있다. 둘 다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에 준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시계는 1998년에 구본무 회장의 해외출장 때 준비한 것이라고 한다. 2013년 LG 트윈스 프런트에 따르면 이 두 물건은 아직도 잘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술이 식초되는 것 아니냐는 농담도 나오는 중. 참고로 이 아와모리는 장기간 묵혀서 마시는 쿠스(古酒)인 데다가 40도가 넘는 꽤 독한 술이라 식초가 되려면 그래도 50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러나 2019년 스포츠조선이 LG구단에 문의한 결과 보관을 잘못했는지 술은 거의 증발해버렸다고.
  • 이낙연 총리가 자신의 기자 시절 경험담을 바탕으로 페이스북에 올린 추모글을 보면 술을 마실 때 일반적으로 중간 정도 가격대의 술을 즐겼다고 한다. 너무 싼 술은 위선처럼 보일 수가 있고 너무 비싼 술은 도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상기된 경영이념이 일상에서 비롯됐음을 알 수 있는 대목.
  • 배우 구본승과 이름이 비슷하여 친척관계로 착각하는데, 구본승은 LG그룹 일가와는 전혀 무관하다. 둘 다 능성 구씨 본 자 항렬인 건 맞는지라 착각할 여지가 높다. 실제로 LG그룹 일가에서 '本'자 항렬을 사용하는 사람이 꽤 많다.
  • 2004년에 동생 구본능의 장남인 구광모양자로 받아들였다.# 구본무는 슬하에 딸만 둘을 뒀는데, 대를 이으려면 아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15] 구광모는 차기 CEO 수업을 받고 승계했다.[16] 사실 구본무도 구원모(具元謨)[17]라는 외아들을 뒀는데, 이 사람이 1994년 6월에 향년 19세로 사망했다. 이때 상심이 컸던 구본무는 다시 아들을 얻으려고, 1996년에 51세인 몸으로 자녀를 다시 얻었다. 문제는 또 딸이었다는 것. 게다가 같은 해에 구본능은 반려자인 강영혜를 하늘나라로 보냈다. 구광모는 그때 고3이었는데, 친어머니가 사망하는 바람에 충격을 받아 수능까지 망치고 말았다고.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택과 묘소가 있는 봉하마을에는 북한에서 들여온 약밤나무를 심었는데, 구 회장이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구 회장은 2007 남북정상회담 때 LG그룹 회장 자격으로 노 대통령과 동행했는데 이 때 북한의 약밤을 접했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이 사망한 뒤, 구 회장이 북한 측으로부터 약밤나무 묘목을 구해다가 봉하마을에 보냈단다. 다만 당시에는 친노 세력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 극심하던 때라서 이러한 일을 대놓고 못했다.
  • 마냥 온후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대기업 총수로서 필요한 결단력과 승부사적 기질을 보인 사례들도 있다.
    • 첫 번째 사례1997년 외환 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에서 주도한 기업 간 빅딜[18]에서 외국계 컨설팅 회사 아서 디 리틀(ADL)의 편파적인 평가[19]로 인해 LG그룹 전자사업군 내에서 알토란 같은 기업이었던 LG반도체를 현대전자에 넘겨야 하자 이러한 빅딜 안을 낸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반발하여 LG그룹 사옥인 트윈타워에서 5분 거리인 전경련에 1999년부터 2013년 11월까지 근 14년간 그림자도 드리우지 않았다.[20]
    • 두 번째 사례LG전자가 남용 부회장 시절의 여러 경영 실패들로 인해[21] 발생한 손실들을 만회하기 위해 수십 년 만에 친정 체제를 선포[22], 작은 동생 구본준[23]을 LG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보내고 무려 1조 원의 유상증자를 추진했다. 그것도 재벌들이 많이 써먹는 감자 후 유상증자가 아니라 공모 형식의 무감자 유상증자를 말이다! 이로 인해 (주)LG의 LG전자 주식 보유량이 30%대 초반으로 뚝 떨어지면서 간신히 지주회사 자격을 유지했지만, 그 덕분에 LG전자는 남용 시절의 손실들을 극복하고 지금 수준으로 올라왔다. 그야말로 회장님의 뚝심이 드러난 에피소드.''' 역시 대기업 총수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듯.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다른 기업 총수들처럼 청문회에 불려나갔는데, 두 재단에 기부금을 내고도 확실한 혜택을 받은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의 질의에 막힘 없이 답변했다. 특히 하태경 의원이 질문한 "정부에서 요구하면 계속 돈을 낼 겁니까?"에 대한 답변이 걸작. "국회에서 입법으로 막아주십시오." 비록, 말은 품위 있게 했지만 국회, 그것도 이 사태의 최소 종범이나 다름없는 새누리당에게 뼈 있는 비판의 메시지를 던진 것. 이에 할 말을 잃었는지 하태경 의원은 다른 부분에 대한 질의로 화제를 돌렸다. 더군다나 화면분할 방식으로 두 사람을 동시에 띄운 화면을 보면 구본무 회장의 풍채가 하태경보다 더 좋아보여서[24] 두 사람의 입장이 뒤바뀐 듯한 느낌도 줬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LG그룹을 찬양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되었는데 구본무 회장의 청문회가 특히 찬양받았다.
  • 같은 집안의 다른 오너 경영진 대부분도 마찬가지겠지만 살아 생전에 그룹 임원들에게 크게 화를 낼 때에도 언성은 높일지언정 절대 욕설과 반말을 안 쓰고 경어로 질책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겁니까?""왜 이렇게 일을 처리한 거요?" 정도. 혹자는 이렇게 일의 문제에 대해서만 질책하는 게 육두문자를 써서 욕하는 것보다 더 무섭다고 하지만,[25]듣는 사람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대목. 게다가, 그나마 말을 짧게 한다는 게 "~하시게." 같은 어미를 쓰는 게 최대치였다고. 이는 조부 시절부터 이어져 온 LG그룹 총수들의 긍정적인 전통으로 평가된다.

6. 수상경력


  • 금탑산업훈장 (1993)
  • 산학협동상 (1996)
  • 매경이코노미 올해의 CEO (2009, 2012)
  • 체육훈장 거상장 (2012)

7. 사망 및 경영 승계 작업 진행 상황


2018년 5월 17일에 와병으로 인해 서울대학교병원에 입원한 상태였으며. 위독한 상황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구 회장이 입원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서울 혜화동 서울대학교병원 본관 12층 특실 121병동에는 이날 정오부터 친인척들의 병문안이 잇따랐다.
구 회장이 입실한 곳은 허가 받은 사람만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방문자들 중 본인을 구 회장의 직계 친인척이라고 소개한 중년 여성은 “구 회장의 건강이 악화된 상태”라며 “발만 주무르다 나왔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해 두 차례의 뇌 수술을 받은 구 회장은 서울대병원에서 와병하였다. 업계 일각에서는 구 회장이 수술 후유증으로 위독한 상태라는 소문이 나왔다. 보도
결국 5월 20일 오전 9시 52분에 사망하고 말았다. 이때가 향년 73세. # 무의미한 연명치료로 삶의 마지막 순간에 고통 받는 것이 싫어 연명치료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인 구자경 명예회장은 연로한데다가 건강이 좋지 않아 빈소를 찾지 못했다.[26]
이보다 불과 이틀 전인 5월 18일 LG그룹은 구본무의 양자(실제 혈연관계는 조카)인 구광모가 승계하는 4세 경영을 본격 선언했다. 다만 2018년에 40세였고, 직급도 상무라서 경영 전선에서 대두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구본무 회장이 와병 중에 LG를 실질적으로 이끌던 구본준 부회장의 경영 정리[27]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28]
장례는 평소 소탈하고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싫어하던 고인의 뜻에 따라 유족들이 비공개 가족장으로 치뤄지며, 화장 한 뒤 곤지암 인근에 수목장으로 진행되었다.[29] 유족들은 조문과 조화 역시 사양하겠다고 밝혔다.조화는 범LG가에서 보낸것과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조화만 세워두었다고 한다. 조문과 조화를 사양하겠다고 밝혔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등이 빈소를 찾아 조문하였다. 그 외에는 LG그룹 내 사장단들이 일부 방문한 정도. 장례를 간소하게 치룬 것에는 LG그룹 특유의 유교적인 문화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전통 유교식 장례에서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사망할 경우 장례를 간소하게 치루는 것이 전통이기 때문이다.
부고가 전해진 당일 LG 트윈스는 앰프 응원을 중단하고 원래 SEOUL 유니폼을 입기로 했으나 대신 LG트윈스 선수단의 기본 유니폼에 검은 리본을 달았고 선수단 전원 스타킹을 올린 농군패션으로 경기에 임했다. 주장 박용택의 제안에 선수단이 동의했다고. 이날 LG 트윈스는 한화 이글스에게 시즌 첫 승을 거두며 회장님의 영전에 승리를 전했다. 한화 역시 LG의 요청에 동참하여 앰프 응원을 하지 않았다. 관련기사
생전에 코미디언 구봉서(2016년 사망)와 친분이 있었던 듯 하다. 아마도 같은 성씨에 같은 파라 그런 듯[30]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과도 친분이 있었던 듯 하다. 1945년생 동갑내기이고 연대 동문이라 친분이 있었다고 하며 그래서인지 구 회장 장례식 때 박 회장은 3일 모두 빈소를 찾았고 발인까지 함께 했다. 관련기사


[1] 진양 하씨 집성촌으로, 구본무의 외가가 있는 곳이다.[2] 도원수파 28세 '''본(本)''' 동(東) 항렬.[3] 1960년부터 1971년까지 존재했던 고등학교로 삼선중학교와 함께 설립됐으며 서울특별시 성북구 동소문동1가에 있었다. 9회 졸업생 배출을 끝으로 1971년 2월에 폐교되었다. 이건무, 진태구 등이 동문이다.#[4] 한때 서울고등학교 출신으로 알려지기도 했다.#[5] 金英植, 구 안동 김씨 김태동(金泰東)의 딸이다. 다음은 출처 사진들이다. [image][image][6] 20세에 교통사고를 당해 요절했다.[7] 큰동생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이다. 즉 구본무에게는 장조카다.[8]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을 갖고 있다. LG그룹 소유 리조트인 곤지암리조트 옆의 대형 생태 수목원 '화담숲'이 그의 호를 따서 만든 곳이다. 실제로 구 회장은 생전에 이 숲을 가꾸는 과정에서 상당한 애착을 가졌으며 별세 후 그 의 시신도 화장 후 화담숲에 수목장 형태로 매장됐다. 화담숲 내 소나무 정원에는 구 회장을 기리는 추모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9] 물론 LG그룹에서는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과 그룹명 변경의 상관관계는 없다고 밝히는 중이다.[10] '단목 행사'라는 이름으로 LG 트윈스 선수단+프런트+그룹 계열사 사장단에 LG 트윈스 출입기자까지 부르는 전체 단합행사가 있었는데 구 회장이 직접 생각하고 주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단목'은 구 회장의 외가이자 생가가 있는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의 이름을 딴 것인데 이 행사는 구 회장이 동생 구본준 부회장에게 구단주직을 넘겨준 후 사라졌다고 한다.[11] 그런데 구본무 회장의 또 다른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 KBO총재가 되면서 다른 사람에게 구단주대행을 시켰다. 이후 KBO 총재가 정운찬으로 바뀌면서 구본준이 다시 구단주가 되었으나, 지금은 4세 경영체제로 접어들면서 구광모로 구단주가 바뀐 상황.[12] 부친인 구자경 명예회장 역시 거북이상이라고.[13] 옵티머스 G의 제품명은 한국 내수용이 LG-F180, 글로벌 모델이 E975이다. 펫 네임은 마케팅적인 측면이 강한 별명이다.[14] 롤렉스 116598 SACO라는 모델로, 1994년 당시에는 8만불이 넘던 시계였다. 현재는 한 번도 차지 않고, 뜯지도 않은 새 제품이 약 7만불에 팔리고 있다.[15] 그룹 경영에 여성을 참여시키는 삼성그룹, 현대그룹 등과는 달리, 유교적 성향이 짙은 LG그룹은 그룹 경영에 여성을 참여시키지 않는다.[16] LG그룹 대리로 입사하여 현재 총수이다.[17] 다음은 이하 출처 사진이다. [image][18] 주력업종 지정으로 인한 기업 교환[19] 당시 이 컨설팅 회사에서 해당 업무를 맡은 한국인 컨설턴트 한 명이 LG반도체보다 역량이 부족했던 현대전자를 더 높게 평가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넥센 팬들이 빌리장석이라고 칭송했었이장석이다. [20] 웃기게도 동업자 관계였던 GS그룹 허창수 회장은 2008년부터 전경련 회장을 맡은 바 있다.[21] LG전자의 글로벌화를 한다며 외국인 임원들을 많이 뽑았는데 한국 직원들과 말이 안 통하니(…) 직원들의 협력은 고자가 되어버렸다. 이건 그렇다 쳐도 진짜 큰 문제는 컨설팅 회사 맥킨지 제안을 너무도 잘 따랐다는 것. 전문 상담사의 조언을 참조하는 것은 좋은 경영 방법 중 하나이지만 문제는 2010년 당시, 스마트폰은 곧 망할 테니 LG가 기존에 하던 대로 피처폰에 투자를 한다라는 오판으로(…) MAXX 같은 고성능 피처폰 개발에 힘을 쏟았다. 같은 시기에 삼성이 윈도우 모바일을 택한 옴니아를 재빨리 쓰레기통에 갖다버리고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갤럭시를 내놓아 S2부터는 아이폰의 진정 대항마로 꼽히게 되고 2016 현재까지도 HTC, 소니, 모토로라 등이 무너지는 와중에 여전히 아이폰의 대항마로 꼽히는 반면 LG는 휴대폰 사업부가 증발할 뻔했다.[22] 그 전까지 LG전자는 구본무 회장 체제 하에서 오너가 방향 제시에 관여했던 삼성전자와 달리 전문경영인 체제를 쭉 유지하고 있었다. LG 반도체의 경우에는 정말 중요한 사업이라 오너 일가가 챙기긴 했지만.[23] 구자경 명예회장의 삼남으로, LG트윈스의 구단주를 역임하였다. 빅딜 당시에는 LG반도체 사장이었다. 형제 아니랄까봐 큰형인 구본무과 정말 많이 닮았다.[24] 특히, 어깨 너비 차이가 압도적이었다.[25] 회사 상사(특히 오너나 그쪽 집안 사람들)로부터 욕을 들으면, 일반 직원 입장에서는 일시적으로는 기분이 상해도 '돈 많은 거 빼면 너가 나보다 뭐가 낫냐?'는 식의 자기 위안이라도 삼을 구실이 있다. 최근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는 한진그룹 일가의 사례가 대표적. 그러나 회사 오너나 상사의 질책이 인신공격적인 욕을 수반하지 않고 기본적인 예의를 갖춰서 일에 대해서만 질책한다면, 직원 입장에서는 도덕적으로 흠을 잡을 여지조차 없어져서 제대로 된 반박을 못하는 건 물론이고, 잘못된 점을 개선하지 않거나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면 정말 크게 문책 당할 것 같다는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26] 프로필 상단을 보면 알지만, 구본무도 생전에 아들을 먼저 잃었다.[27] LS그룹, LIG 등의 예전 사례를 볼 때, 현재 갖고있는 LG 지분을 일부 계열사와 바꾸어 분사/독립할 것으로 예상된다.[28] 하지만, 이와 반대로 범 LG가 기업들이 일부나마 결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LG그룹의 4대 총수인 구광모 회장의 친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 그룹 계열사들을 LG그룹에 편입시키고 자신의 지분을 구광모 회장에게 넘겨주는 방식으로 그룹의 지배력을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29] 체육훈장 수훈자라 국립묘지 안장 자격이 있었지만 본인이 평소에 좋아하던 숲에 묻히고 싶어했던 듯. 대기업 회장 중 국립묘지에 묻힌 사람으로는 포스코 초대 회장이자 국무총리 및 군인을 지낸 박태준이 있다.[30] 다만, 항렬상으론 구봉서가 구본무의 증조할아버지 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