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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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희정, 김정임 ,우윤아
1. 소개
2. 활동 내역
3. 그 후
4. 근황


1. 소개


1988년에 나왔던 걸그룹. 남성 아이돌 그룹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소방차와 함께 나왔다. 아마도 본격적인 댄스 걸그룹으로서는 한국 최초인 듯하다. 물론 이전에도 바니걸스나 희자매, 서울 시스터즈와 같은 여성 그룹이 있었으나, 이들은 계보상 슈프림즈의 흐름을 따르는 정통 소울 그룹의 성격이 짙었기 때문에 90년대 이후의 아이돌 그룹들관 정체성이 달랐다. 따라서 세또래가 아이돌 개념 걸그룹들의 조상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의 3인조 아이돌 그룹 "소녀대"가 한국과 대만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컨셉을 따라해서 만든 걸그룹이었다. 당시 한국의 대중음악계는 불과 1년전까지만 해도 창작의 자유가 전혀 보장되지 않았던 시절인데다다가 저작권 의식도 희박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외국의 컨셉을 그대로 가져오거나 심하면 표절도 일삼던 시기였다. 사실 1970년대에는 표절수준을 넘어서 외국 곡을 그냥 가져와서 번안하기도 했었다. 소녀대가 얼마나 인기를 끌었는가 하면 한국내에서 해적판 디스크가 난무한 것은 물론이고, 1986년 서울국제가요제에서 일본 뮤지션으로서는 드물게 한국 내 공연[1]을 했을 정도였다. 이런 인기의 절정이었던 곡이 소녀대 최후의 히트곡이라고 불리는 KOREA인데[2], 원곡보다 소녀대 버젼이 더 알려지면서 이 당시에 소녀대의 열풍은 엄청났다.
재미있는 것은 원래 소녀대도 쟈니스 소속의 남성 아이돌 그룹 소년대를 모티브로 등장한 그룹이라는 것,[3] 그리고 1990년에는 대만에서도 이름도 똑같은 소녀대라는 이름의 3인조 그룹이 등장했다라는 것이다. 이 그룹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 바로 비비안 수.

2. 활동 내역


1988년 1집, 1989년 2집을 냈다. 멤버는 이희정, 우윤아, 김정임으로 그 당시로서는 걸그룹 다운 상큼한 외모를 자랑했다. 그러나 당시는 댄스음악이 가요계의 주류가 아니었고, 거기다 여고생 취향의 소방차와는 달리 걸그룹을 선호할 만한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아서 그저 2군급 가수 정도의 명성밖에 얻지 못 했다. 주로 전국 노래자랑이나 주택복권 추첨 프로그램의 곁다리 공연으로 자주 나왔으며, 라이브는 한 번도 하지 않고 립싱크로만 했다.

참고로, 1집 타이틀곡인 <그대를 사랑해>를 작곡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인순이가 1983년에 발표한 <밤이면 밤마다>를 작곡했던 김정택이었다.
데뷔하자마자 소방차를 따라한다는 이유로 소방차 팬들에게 찍혀서 욕을 많이 먹었다.[4]이 시기 여자 가수들은 지금도 그렇지만, 남자가수 여덕들에게 무수한 갈굼을 당했다. 강수지심신하고 열애한다고 소문이 나서 심신 팬들에게 시달림을 당했었고, 이지연도 소방차 멤버인 이상원과 사귄다고 소문이 나서 소방차 팬들에게 갈굼을 당했다. 후에 베이비복스의 멤버인 간미연H.O.T.의 멤버인 문희준과 사귄다고 소문이 나서 살해 협박 편지까지 받았었던 케이스와 여러모로 비슷하다. 유일하게 여기서 자유로웠던 사람이 김완선안혜지 정도였다. 김완선의 경우 매니저 담당을 하던 이모가 다른 남성 연예인들과 대화 자체를 못하게 차단하게 했기에 열애설이 날래야 날 수가 없었고,[5] 안혜지는 이쁜 외모와 달리 동남 방언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깬다는 이유로 말 자체를 거의 못 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가요톱10과 같은 쇼 프로그램에도 나오긴 나왔다. 당시 전국노래자랑 초대가수는 지금과 달리 이지연 같은 신세대 가수도 많이 나왔었다. 이후 김정임이 미국으로 이민가면서 해체되었다가, 이희정과 우윤아가 1990년대 초반에 남성듀오<도시의 아이들>의 김창남이 운영하는 소속사로 옮겨, 탐탐이라는 듀엣에서 각각 이지수와 김현지라는 예명으로 잠시 활동하기도 했다.앨범 링크 타이틀곡 '얘기하지 그랬어' 와 후속곡 '난 참 바보야'[6] 두 곡 모두, 리드미컬한 리듬이 인상적인 김창남 작곡. 그러나 1년도 되지 않아 각자의 길을 걸었고, 이희정은 이지수라는 예명으로 1993년에 솔로앨범을 냈다. '날 잊었을 그대에게'라는 곡으로, 작곡가이자 가수로 활동했던 안진우가 만든 발라드 곡이다. 링크 이 때부터 DR뮤직 소속이었다.[7] 1994년 다음 해에도 2집을 발매했는데, '너를 보내며'라는 곡에는 가수 강수지가 작사가로 참여하여 화제가 되었다. 영상링크 베이비복스로 활동했던 모습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자켓이 지금에서 보면 꽤 인상깊게 다가올 수도. 다만, 이지수라는 이름으로 나온 두 장의 앨범은 현재 구하기 꽤 힘들며, 인터넷에도 정보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3. 그 후


멤버 중 한 명인 우윤아는 외계에서 온 우뢰매 시리즈에 출연하면서 배우 활동도 했다. 그러나 우뢰매 이후에 영화에 출연한 적은 없다.
놀랍게도 이희정은 5년 후인 1998년 이가이라는 예명으로 베이비복스 2집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때 나이를 10살이나 속여서(1968년생 → 1978년생) 데뷔했다. 이게 좀 무서운게 아이돌이 10대~20대 초반이 대부분이었던지라... 30대가 새로 나온 아이돌로 데뷔하다니 충격적인 일이라 할만했다. 지금도 어린 시절 데뷔한 아이돌 그룹이 팬덤을 그대로 이끌고 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경우는 있어도 처음부터 30대에 데뷔한 아이돌은 없다. 그나마 1969년생인 god박준형이 29살, 1980년생인 애프터스쿨가희가 28살에 데뷔했다. 게다가 노안이라... 오히려 지금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본래 나이에 비해서도 나이가 많아보이는 스타일이었다. 나이를 커버하기 위해 항상 색상이 좀 있는 안경을 항상 쓰고 나왔는데 누가봐도 다른 멤버랑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도대체 사장이 왜 이런 무리수를 감행했는지는 지금까지도 미스테리. 모 스포츠신문에 어느 독자가 PC통신에서 의문을 제기한 것이 발단이 되어[8] 나이를 속였음이 드러나 결국 탈퇴했고 이후 그녀의 연예계 커리어는 한순간에 끝나게 된다. 프랑스 월드컵 직후에 그녀의 과거를 기억하던 한 기자가 실제로는 연하인 축구선수 이동국에게 오빠라고 애교 부리는 것을 보고 격분(?)한 나머지 이니셜로 기사를 내기도 했다.
몇 년 뒤 우윤아는 은퇴한 연예인들의 근황을 취재한 연예가 중계 방송을 통해 언젠가 셋이 다시 뭉쳤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지만, 나이도 적지 않은 데다가 이희정이 상술한 일로 연예계에서 매장당한 터라 희망으로만 끝났다.
물론 연예계에서 나이를 속이는 풍토가 적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어린 나이를 무기로 하는 아이돌 그룹에서 30대가 10~20대 틈에 껴서 어린 행세를 했다는게 더 구설수에 올랐던 면이 있다. 애초 외모가 아닌 음악적 재능이나 독특한 개성으로 어필하고 승부했다면야 나이가 별 문제 안되었을 수도 있고 다른 장점으로 덮을 수도 있었겠으나, 사실 이희정의 팬들은 외모를 보고 좋아하는 경우가 많아 어린 줄 알고 좋아했는데 나이를 서 너 살도 아니고 너무 많이 줄여서 속였단 사실에(...) 더욱 비판을 받았던 면이 있다. 그 비판을 덮을 만한 다른 매력이 있는 것도 딱히 아니다 보니.. 똑같이 30대 아이돌 멤버라고 하더라도 박준형은 미국 본토에서 자넷 잭슨의 백업 댄서를 했을 정도로 댄스 실력이 좋았고[9] 예능에서도 입담이 좋아서 god에서 보컬 외적인 요소에서 제대로 활동했고 가희는 외모부터 이희정과는 달리 SNL 코리아개구쟁이 스덕후에서 원래 나이대로 늙은 모 코메디언을 "얘랑 저랑 동갑이라는 게 믿어지세요?"라고 놀려먹을 정도로 동안에다가 아예 댄스의 화신인지라 애프터스쿨에서 댄스는 무조건 가희 위주로 돌아갔는데 이희정은 그런 특출난 재능도 없거니와 얼굴은 되려 노안이기까지 했다.
오히려 애프터스쿨의 에이스인 가희와는 달리 이가이는 <Change> 첫 방송부터 안무를 완전히 잊어버려 무대를 망쳐버릴 뻔하거나 다른 멤버들에 비해 심각하게 떨어지는 춤 실력과 남발되는 안무 실수로 인해 팬들 사이에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실제로 <Change> 무대들을 보면 안무를 안 틀린 무대를 찾는게 힘들 정도로 계속해서 실수를 해 전체안무를 망치는 그림이 잦아지자 다른 멤버들의 팬들에게 단단히 찍혀서 벼르고 있던 차에 나이 사건이 터진거니 더 이상 말이 필요한지. 원래 호감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실수하면 웃으면서 넘어갈 수도 있을 법한 일을, 벼르고 있던 사람이 실수하면 너 잘걸렸다는 심보로 완전히 밟아버릴 수도 있는데, 불행히도 이가이는 후자에 가까웠다.(...)
이희정이 나이를 속여서라도 투입해야 할만큼 초동안에 매력덩어리로서 상품가치가 있었다면 납득이 갈 수도 있으나 어차피 메인으로 내세우는 인물도 아니었고 있는 듯 없는 듯 한 존재라서 투입 자체가 기이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그래서 기획사 사장과 이희정과의 관계를 의심하거나 이희정이 30대에 접어들면서 아이돌 활동에 미련이 있어 꿈을 풀어주기 위해 넣었다는 설 등 온갖 말들이 떠돌았으나 딱히 별다른 해명도 없었기에 더더욱 미스테리로 남게 되었다. 이희정이 베이비 복스에서 있는듯 없는듯 활동했던 것을 보면 뭐 거창하게 유명해지고 싶거나 돈을 벌려거나 하는 목적은 아니었던 듯 싶고, 그저 아이돌 그룹에 있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집이 끝나고, 3집부터 걸밴드라는 컨셉을 밀려고 했다 보니, 키보드에 재능이 있는 멤버를 찾다가 솔로앨범에서 피아노 연주를 해 본 경험이 있던 이가이를 건강이 회복되자마자 합류시켰다고 보는 것이 정설. 어떤 이유에서인 지는 모르겠으나, 세또래 → 탐탐 → 이지수 → 베이비복스 2집 합류까지 보면, 가수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던 듯 하다.
여담으로 당시 "별난 여자"라는 개그코너의 호스트였던 박미선이 "세또라이"라는 별명을 붙여주는 바람에, 진짜 명칭보다 이 별명으로 더 자주 불리곤 했다.

4. 근황


김정임의 근황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으며, 우윤아의 근황 만이 그나마 잘 알려져있는데, 그 당시에도 미모로 화제가 되었고, 탐탐에서도 "아! 예쁜 멤버 한 명 있었던 그 그룹?"이였다고 하면 다들 알 정도다. 한참 전 일이었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연예가 중계에서 은퇴한 연예인들을 취재했을 때 인터뷰에 응하기도 했고, 최근의 근황을 보면 50대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미인이시다. 뮤지션 출신 남편 이종철[10]과 결혼해서 남양주시 별내동에서 자동차 테마 카페를 22년째 운영 중이라고 한다. 근데, 가보면 입구에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VT라던가, 포르쉐 996 GT3라던가, 뷰익 포뮬러 F2가 있을 정도로 비범하다. 심지어 개인 자격으로 으로 서울오토살롱에 참가하기까지 했다.
이희정의 경우, 아는 형님이희진이 출연했을 때 희철"예전에 누님 계셨었는데. 세또래 누님인가?"라고 언급하자 이희진은 "2집 때. 야야야 때."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그리고 나이까지 물어보자 이상민"어우 나이 많으셨지."라고 얘기한다. 강호동은 베이비복스에 자기 또래가 있었다는 사실에 실로 경악했는데, 이희정은 1968년생이라 1970년생인 강호동 보다도 2살이나 많다(...)
아무튼 이희정은 2017년 쯤에 부산에서 바를 운영하고 있고, 건강이 좋지 않다는 안타까운 소문이 있었는데, 2020년 현재 근황은 전혀 알려져 있지가 않다. 심지어 생사 조차도 말이다.

[1] 국제가요제라는 명목도 있고, 당시에 일본어가 지상파를 탈 수 있을 리 만무했으므로 순수하게 영어로 노래를 불렀다.[2] 사실 이 곡은 소녀대의 대부분 곡들과 마찬가지로 리메이크 곡이었다. 세계적인 디스코그룹 징기스칸(가수)의 리더 레슬리 만도키와 헝가리 출신의 세계적 혼성그룹 뉴튼 패밀리의 리드 싱어 에바 선이 서울 국제가요제 참석의 감상을 담아서 곡을 만들어서 공동 발표한 곡으로, 86 아시안 게임과 88 서울 올림픽을 대표하는 곡으로 세계에 알려진 곡 중 하나였다. 여담으로 이 곡을 만든 만도키와 선은 결혼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에바선(체프레기 에바)은 에든버러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밥 히틀리(Bob Heatlie)와 결혼했다. 그들이 결혼했다고 잘못 알려진 것은 당시 우리 정서로는 연예인 같은 공인들이 대중 앞에서 공개 연애를 한다는 것은 약혼과 같은 의미였고, '한국 찬가'를 부른 이들의 노래를 대대적으로 홍보한 정부의 노력(...) 덕분이다. 이 곡은 가수 박혜령이 한국어 버전으로 불렀다.[3] 이 소년대의 직접적 영향력과 소녀대의 간접적 영향력을 받아서 탄생한 것이 바로 한국 최초의 보이밴드 취급을 받는 소방차이다.[4] 공교롭게도 멤버 이희정이 후에 소속되었던 베이비복스도 초창기 시절 H.O.T.를 따라한다는 이유로 H.O.T. 팬들(Club H.O.T.)에게 찍혀서 협박 편지를 받는 둥 수난을 당했었다.[5] 훗날 불타는 청춘 같은 예능에 나오는 건 꿈도 못 꿨다고 한다. 그래서 남들 다 하는 연애도 그렇게 많이 못 해봤다고 토로할 정도.[6] 1994년에 반혜진이라는 가명으로 트로트가수 김서영이 20대 초반에 낸 앨범에서 한 차례 리메이크되었다. 탐탐 앨범에도 수록되어 있는 '하지만'이라는 곡은 이지연 3집에 먼저 수록되었는데, 이지연이 직접 작사했고 김창남이 작곡한 곡인데 김창남이 곡을 아까워 해서 두어차례 리메이크를 한 듯 하다.[7] 이때 매니저도 윤등룡 대표가 직접 맡았다고 한다.[8] 이 때가 아직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전이었음을 생각한다면...[9] 자넷 잭슨의 노래 IF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었다.[10] 이 분도 80년대에 앨범 두 장 냈던 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