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적은 여자

 

1. 개요
2. 기원
2.1. 한국에서
2.2. 페미니즘남존여비 사회상 관점에서
3. 정말 여성이 동성에게 더 공격적인가?
3.1. 여성 사이의 다툼을 특별하게 보는 시각
3.2. 여성 간의 우정, 경쟁에 대한 오해
3.3. 남성과 여성 간의 신체적 차이
3.4. 직장에서 실존하는 여적여?
3.5. 여초 직장에서의 문제
3.6. 여성들만 경쟁을 하는 경우
4. 사회적 통념을 악용한 피해자 코스프레
5.1. 남성의 경우
6. 서브컬처에서의 모습
7. 이를 다룬 창작물
8. 기타
9. 관련 문서


1. 개요


여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동성 간의 적대감과 그에 따른 적대적 행위를 이르는 관용적인 표현. 영어권에서도 "여자들은 그들 자신의 최악의 적이다(Women are their own worst enemies)."#라는 식으로 비슷한 관용어가 있다.
보통 정당한 경쟁보다는 질투에서 비롯한 뒷담화 같은 중상모략을 지칭한다. 가령 올림픽에서 여성 선수 둘이 맞붙는다고 여적여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서로가 다른 선수의 신체 컴플렉스 등을 거론하면서 흉을 보며 정당한 경쟁과는 거리가 먼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여적여라 불리게 된다.
여성 전체를 폄훼하는 말이 될 수 있다. 한편, 일부 여성들에 의해 스스로 자조하는 의미에서 쓰이기도 한다.

2. 기원


Je mettrais plutôt toute l'Europe d'accord que deux femmes.
여자 둘을 화합시키느니 전 유럽을 화합시키겠다.

루이 14세

To find out a girl's faults, praise her to her girl friends.
한 여자의 결점을 찾으려 한다면, 그녀의 친구들 앞에서 그녀를 칭찬해 보라.

벤저민 프랭클린

용어 자체는 과거 언론 기사부터 시작해 고대 이집트 설화나 성경에까지도 간접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봐서는 상당히 오래된 용어이다. 다른 여성에 대한 여성의 시기심에 대한 언급과 그 기원은 엄청나게 오래되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조선시대나 그 이전부터 내려온 고부갈등에 대한 야설(野說)이나 속담들 그리고 시집살이나 시월드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뉘앙스를 생각해 보면 빠르다.
기록이나 표현 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전 지구의 모든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며, 이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학자도 있다. 여성이 우수한 남성의 유전자를 받아 우수한 자손을 남기기 위해서는 자신보다 우수한 여성을 견제해야 하기 때문이다.[1]

2.1. 한국에서


한국에서는 80년대 이전부터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는 증언이 많고 1996년 기사에서도 등장하는 단어이다. 이후로도 2005년부터 5년간 언론에 똑같은 문장이 언급된 기사만 해도 6750건이나 찾을 수 있다. 참고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단어가 웹상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라는 2012년도 드라마로 보이는데,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차윤희가 직장 내에서 "여자의 적은 여자야."라는 말을 대놓고 꺼낸다. # 2013년 들어 디시인사이드와 타 사이트들에서도 유행어로 정착하게 되고, 줄여쓰기와 비속어를 유행어로 미는 특성상 보지의 적은 보지를 줄인 '''보적보'''로 간소화. 그리고 보슬아치로 대표되는 타 성별의 성기를 이용한 비속어로 타 성별을 비난하는 당시 분위기와 맞물렸다.
그러다가 여느 유행어가 그렇듯 이게 유행어로서 시들시들해질 무렵, 2015년 여성시대 대란을 기점으로 순식간에 생명연장을 해서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2.2. 페미니즘남존여비 사회상 관점에서


페미니즘에서는 이를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연관시켜서 본다. 여성권이 낮을수록 여자는 남자와 다르게 남성에게 '선택'받지 않으면 생존하기가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여성은 다른 여성을 낮추어서 자신이 남성에게 선택받으려 한다는 것. 즉 원인은 여성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성에게 권력과 경제력이 집중된 사회 때문이며, 여적여는 생존을 위한 싸움이라는 것이라 주장한다. 어머니가 딸, 며느리를 차별하는 풍조 또한 자신이 집안에서 가진 권력이 없고 홀로 설수 없기 때문에 아들에 기대고 그 마음에 들어 권력을 더 가지려 하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남성도 여성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연애가 불가능한 것은 피차일반이지만, 여성은 남성과 다르게 연애를 넘어 생존이 힘들다는 전제를 주장한다. 그럼 현대에까지 그럴 필요는 없지 않냐고? 현대 사회에서는 예전과 다르게 여성이 남성에게 선택받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긴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으로 남자가 강자이기 때문에[2][3] 여성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남성을 높게 보는 경향을 갖기 쉬워 오히려 자신들끼리 싸움을 한다고 주장한다. 과거 주인에게 신뢰받아 더 나은 처우를 보장받기 위해 노예나 하인들끼리 서로 다투었던 걸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즉 약자들이 자신들이 있는 우리 밖에서 문제상황을 조장하는 강자에게 대놓고 공격성을 돌리는 대신, 상대적으로 더 가깝고 만만한 약자들끼리 싸워서 그 안에서 우열을 가림으로써 이득을 얻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3. 정말 여성이 동성에게 더 공격적인가?


여성도 남성들과 동등한 욕망과 공격성을 가지고 있다. 현대 발달심리학계의 주류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폭력성 정도에는 차이가 없다고 본다.[4] 그러나 폭력성을 분출하는 형태는 여성과 남성에게서 다르게 나타난다. 남성은 주먹질과 같은 물리적인 폭력성의 비율이 높다면, 여성은 험담과 같은 '''관계적인 폭력성'''의 캣파이트 비율이 더 높다.
사실 여자 남자 할 거 없이 이런 건 자신이 맘에 안 드는 대상이나 정적을 공격하기 위해 많이 쓰는 편이다. 남성의 경우 딱히 정신적으로 우수/열등해서 저런 견제를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그냥 쉬운 방법이 있으며 그걸로 우열을 가리니까(...) 이런 모습이 상대적으로 덜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는 소위 '남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 거든다.
관계적 공격성은 '''공격을 직접적으로 해서 우열을 가리는게 불가능한 사회적 상황'''에서 주로 나타날 뿐, 반드시 여성의 소유물이라 할 순 없다. 단지 사회가 여기까지 오면서 남성들은 좀 더 직접적으로 공격한다는 이미지가 강화되고, 여성들은 간접적이고 교묘하게 공격하는 이미지가 좀 더 강해진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또 문명이 덜 발전한시기라면 모를까 문명이 많이 발전한 현대에선 남성들의 직접적인 몸싸움도 좀 더 꺼려지는 분위기가 형성되므로 남성이나 여성이나 웬만해선 드러내놓고 우열성을 증명하려 한다기보단 정치질(파벌 생성 포함), 뒷담화, 언쟁 등으로 간접적인 공격을 함으로써 서로의 우열성 증명을 하려드는 경향이 더 늘었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남성의 경우 여성보다 집단 생활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군대가 있는데 이런 조직에서는 강한 조직을 위해 한 마음 한 뜻으로 똘똘 뭉칠 것을 강조하기 때문에 조직 내부의 시기와 질투를 죄악시하고, 구성원과의 화목을 중시한다. 물론 현실 속 군대 부조리를 보면 결코 화목하진 않지만(...) 이런 경우는 자기보다 약한 상대를 갈구는 것이므로 시기나 질투가 원인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대가 자기보다 강하다면 그 밑에 들어가 부하가 되는 것이 자기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하여 알아서 충성을 바친다.
반면, 여성들은 역사적으로도 이런 대규모 조직에 속한 경험이 부족하고, 있더라도 궁녀들끼리 모인 하렘 같은 곳이었기 때문에 남성들의 군대 생활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궁녀들의 경우 을 위해 존재하지만, 그 많은 궁녀들이 승은을 입는 것이 아니니 자연히 개인 간의 경쟁이 치열하고, 이것이 암투로 이어진다. 이런 궁녀 집단은 여적여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이자, 근원이라 할 수 있다.

3.1. 여성 사이의 다툼을 특별하게 보는 시각


사실, 남성들 사이에서도 재력과 권력이 있는 남성을 깎아내리거나 정치적인 상대편(정적)을 비하하려는 시도는 활발하게 일어난다. 곱상한 외모를 지닌 남성 연예인을 고자라고 루머를 퍼뜨리는가 하면 아직 군대도 안 간 놈이 사회를 알겠냐며 몰아세우는 경우는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사회/경제/문화를 점유하는 높은 지위를 차지한 성별 비율에서 남자가 압도적임을 볼 때 남자의 적이 남자인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것임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남적남'이라는 용어는 사용되지 않는다. 간혹 '여성연예인들에게 달리는 악플들의 대부분은 같은 여자'라는 식으로 개인적 경험을 앞세워 '여적여'를 정당화하는 경우도 있는데, 일단 그 주장이 사실인가는 둘째 치고라도 기본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경쟁심을 느끼게 되는 상황이 모두 같지는 않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5]
또한, 남자들이 여성 연예인의 광팬일 경우, 의도적으로 라이벌 여성 연예인을 깎아내리는 정치질이 연예 커뮤에서 횡행한다. 그런 점에서 여성 연예인에 대한 악플이 모두 여성의 소행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실제로 네이버 댓글이 성별과 나이 비율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바뀐 뒤로 여성 연예인에게 악플을 다는 사람 중 연령대가 높은 남성의 비율이 높음이 드러나서 역관광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축구나 야구같은 스포츠 선수들에게 달리는 악플이나 남성끼리 다투는 모습 또한 '남적남'이라는 용어를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적여에 비해 남적남은 사용되는 빈도도 적고, 어디까지나 여적여에 대응해서 생긴 단어일뿐 남적남은 사실상 쓰이지 않는다.
2016년에 투고된 사회심리학 논문 #동성 동료 사이의 경쟁에 대한 반응의 성차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여성의 미덕은 '화합', '친목'과 같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꼽힌다. 그런데 '''만약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태클을 걸거나 경쟁을 하면, 이때는 여성의 미덕을 위배한 것이므로''' '허허, 이것 참 이상하다.'하고 뇌리에 남는다.
'''남성의 미덕은 경쟁하고 대결하는 것이라서 동성에게 태클을 거는 것은 '남자라면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지만, '여성이라면 그럴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더욱 부정적으로 보고 '여적여' 용어를 사용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남자는 싸우면서 크는 거지"라는 말은 있지만 반대는 없는 것을 생각해보자.
지금은 양상이 달라졌지만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규모가 큰 조직이 기본적으로 남초였으므로 조직 내에서 갈등이 있었다면 자연히 남자끼리 갈등이 빚어질 수밖에 없었던 일에서 기인한다. 즉, 남자끼리라 싸운다기보다는 남자들끼리만 있으니 싸울 대상이 같은 남자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성이 나타나더니 자신들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에 '''신기하다'''고 느끼면서 여성 간의 갈등을 특별하게 생각하게 됐다고도 볼 수 있다.
반대로, 이는 남성이 친절한 행동을 하면 남성의 미덕을 위배한 것이라서 "게이같다", "기집애같다", "약해보인다"라는 편견적인 시선이 따라올 수 있음을 암시한다. 여성이 서로 경쟁하고 이따금 태클을 거는 것에 대해서는 '여적여다'라 해놓고, 그래서 여성의 미덕에 따라 서로 싸우지 않자니 '직장생활에 열의가 없다'고 내세워 인사에서 배제시키는 이중잣대는 경계해야할 것이다.
즉 여성 간의 정당한 경쟁을 부정적으로 보고 '여적여'로 깎아내리려는 시도는 실재한다. 그러므로 이 용어는 '모든 여자는 다른 여자를 적으로 보려는 족속들이야.'라고 말하는 헤이트 스피치 용어가 될 수 있으므로 쉽게 사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3.2. 여성 간의 우정, 경쟁에 대한 오해


'''"해외 단체 여행 온 일본 여자들을 보고 왠지 본능적으로 말이죠. 그 (일본산) 카메라를 이렇게 가렸어요! 아, 이게 내가 국력이 모자란 것에서 오는 열등감이다."'''

-

이수영(광원산업 회장)[6]

'''"남조선 외교부 장관 강경화가 중동행각 중에 우리의 비상방역 조치들에 대하여 주제넘은 평을 하며 내뱉은 말들을 보도를 통해 구체적으로 들었다. 앞뒤 계산도 없이 망언을 쏟는 것을 보면 얼어붙은 북남관계에 더더욱 스산한 냉기를 불어오고 싶어 몸살을 앓는 모양."'''

-

김여정

아무데나 여적여를 갖다쓰는 사람들로 인해 왜곡된 게 없지 않아 있으나, 원래 여적여라는 단어는 남성과 관계되어 여성이 여성을 욕할 때 자주 쓰였다. 예를 들어, 남녀불문하고 자신의 동성 친구를 뒤에서 욕하는 경우는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여성이 자신의 동성 친구를 뒷담화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그 이유에 대해 "남자한테 꼬리치거나 어장하는게 꼴보기 싫어서" 와 같은 스테레오타입이 있다. 즉 여성이 자신의 동성 친구를 뒷담화하는 경우는 보통 남자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
그런데 남성이 동성 친구를 욕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돈 관련 문제", "지 혼자 착한 척", "말하는 게 재수없는" 등 여성과 관계된 이유는 잘 떠올리지 않는다.[7]
그러나 남성이든 여성이든 관계 없이 동성 친구에 대한 비방의 이유는 매우 다양하다. 또한 통계적으로 정말로 여성과 남성의 동성 비방의 이유가 이성과 관련이 있는 비율이 차이가 있는지와 같은 사실이 증명된 적도 없다. 그러니 증명되지 않은 사실을 가지고 단순히 그런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다고 해서 함부로 이런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3.3. 남성과 여성 간의 신체적 차이


애초에 남성은 여성이 힘으로 맞붙을 수 없는 상대라는 신체적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 만약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다툼이 벌어졌을 경우, 분노한 남성이 우발적으로 약자인 여성에게 폭력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공격적인 행동을 보일 수는 있으나, 이것이 실제로 여성에게 더 질투심을 느껴서라고만 볼 수는 없다. 여성은 남성에게도, 여성에게도 비슷하게 분노와 화를 느끼지만 그것을 남성에게 표출할 경우 (물리적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에 여성이 공격성을 표출할 경우 만만한 여성이 그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 나이로 서열을 매기는 문화로 인해 나이가 상대적으로 많은 여성은 젊은 여성을 하대하는 반면[8], 젊은 남성은 건드리지 않게 된다. 더군다나 젊은 남성은 남성 중에서 힘이 최상이기 때문에 아무리 드센 아줌마라도 쉽게 건드리기 어렵다. 또한 힘 차이는 여동생이 오빠에게 컴퓨터를 뺏기는 원인이기도 하다.

3.4. 직장에서 실존하는 여적여?


직장에서는 여적여 현상이 실존한다는 다수의 조사 및 연구 결과가 있다.
이 중 마지막 자료인 여왕벌 신드롬(Queen bee syndrome)은 서양에서는 1973년부터 제기된 현상으로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 이 여왕벌 신드롬을 성별 편향적 문화에서의 방어기제라고 보는 연구들도 있다.#

3.5. 여초 직장에서의 문제


신체적 차이의 문제도 있지만, 젠더 고정 관념으로 인해 특정 성별이 압도적인 직종이 많고, 이로 인해 여자끼리만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간호사 사회의 태움이 있다. 물론, 남성 간호사라고 이런 일을 겪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언론에 보도되는 피해자들은 주로 여자이다.

3.6. 여성들만 경쟁을 하는 경우


영화나 드라마에서의 여주인공 역할은 여배우만이 할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여성들끼리만 경쟁을 하게 된다.
  • 미스캐스팅 논란
핼리 베일리의 경우, 기본적으로는 남초 여초를 불문하고 억지춘향식 PC로 인한 미스 캐스팅이란 점에서는 의견을 같이 한다. 하지만, 2019년 8월 이후 시점에서는 그동안 바람직한 PC 캐스팅으로 여겨졌던 유역비가 홍콩 시위 진압을 지지한다고 발언하는 병크가 터지면서, 비판의 화살이 유역비로 쏠렸기 때문에, 남초에서는 그나마 할리 베일리는 양호했다며 농담식으로 재평가하자는 의견이 나오는 등 다소 누그러진 반응이 나타났다. 반면, 일부 여초에서는 나보다 못생긴 애가 돈을 많이 버는 상황을 용납할 수 없다며 남초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격렬한 반응이 있었다. 이는 그 자리에 내가 있었어야 해라는 심리 때문이다.
  • 남자들은 어차피 인어공주 역할을 할 수 없으니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면서 여유 있게 상황을 관망할 수 있는 반면, 여성은 같은 성별이기 때문에 이런 이슈에 과몰입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어린 시절에 인어공주를 동경하면서 자란 여성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남성들이 느끼는 여배우 외모 불만하고는 차원을 달리한다. 남성 관객들은 그냥 쟤 못생겨서 안 봐 정도라면, 여성 관객들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박살났다라는 반응이 많다.
  • 물론, 남자배우 캐스팅 논란이라면 같은 업계 남성들도 역시 이런 격렬한 반응을 보였겠지만, 남초는 게임이나 스포츠 쪽으로 관심이 분산되기 때문에 덜 두드러져 보이며, 여성의 경우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외모 평가가 덜 중요시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남성 시각에선 여성의 경쟁심과 견제 심리가 자기들의 경우와는 다른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 굳이 남성의 경우로 비유하자면, 남자배우가 영화에서 이소룡 역할을 맡았을 때 무술 실력으로 비교당하며 까이는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분노의 포인트가 외모가 아닌 무술, 즉 능력이란 점이 결국 다르다.

4. 사회적 통념을 악용한 피해자 코스프레


여적여가 부각되면서 여성들 사이에서도 부당하게 견제하는 행위 등에 대해서 스스로가 비판하는 목소리도 드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를 역이용한 피해자 코스프레도 종종 나타난다. 가장 흔한 경우는 교묘하게 진상스런 짓을 하는 여자가 같은 여자들 사이에서 요주의 인물로 찍히자 나는 하나도 잘못이 없는데 다른 여자들이 나를 질투해서 따돌린다고 피해자 행세를 하는 것.
이렇게 나오면 여성 집단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잘 모르는 남자들은 가해자를 동정하게 된다. 한때 인터넷상에서 유행했던 태연녀가 바로 이러한 상황을 묘사한 글이다. 이 글이 유행했을 당시, 태연을 지능적으로 디스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다. 본문에 묘사된 태연녀의 외모는 평범하다지만, 태연의 외모는 일반인과 견줘 보면 결코 평범한 편은 아니다. 일단 체형부터가 매우 날씬한 타입이니 본문에 뚱뚱하지도 날씬하지도 않다고 묘사된 태연녀와는 다르다. 아마도 태연의 다운그레이드 타입불량 짝퉁인듯.
물론, 무고한 연예인의 이름을 해당 여성을 일컫는 별칭으로 쓴 것은 매우 잘못된 행동이지만 태연을 닮았다는 부분을 빼고 글에 묘사된 상황 자체만을 보면 어느 곳에서나 있을 법한 인간형이었기 때문에 여성들이 폭풍 공감을 했던 것이다. 하필이면 해당 여성이 태연을 닮은 탓에 애꿎은 태연의 이미지까지 훼손되었다. 이처럼 여성 집단의 정당한 견제조차도 같은 여성을 적대시하는 악습에서 비롯된 행위라고 오해받는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겉과 속이 다른 양아치 작업남을 같은 남성이 견제하며 여자들은 이런 남자들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남성 집단에서는 정당한 행동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같은 종류의 말을 여성이 하면, 그 말을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정당한 비판이 아니라 여성이 이유도 없이 단순히 질투 때문에 같은 여성을 공격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상황을 멋대로 해석해서 여적여를 외치는 고정관념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혹은 여성이 성차별을 아직도 받고 있는 현실을 악용해 '''여자라서 당했다'''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할 수도 있는데, 이는 일부 여자들에게라도 공감을 얻던가 아니면 여자들마저도 적으로 돌리던가 둘 중 하나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지우마 호세프박근혜. 이 기사에도 나와있듯, 둘 다 여자라서 대망신을 당했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반응은 천지차이였다. 호세프는 UN여성기구에서도 공감을 얻었는데, 이유는 호세프 탄핵파 남성 정치인들 중에서도 저런 혐의를 가진 사람들이 상당수였던 것. 그러나 박근혜는 되레 여자들에게 욕만 먹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박근혜가 남자였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여자이면서 여자를 연약해서 특별히 배려받아야 하는 존재로 격하시키는 진정한 여적여를 실천할 수 있다.

5.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위험


여적여 용어는 소수의 막장 행각을 벌이는 계층을 비하한답시고 만들어진 용어지만, 맘충, 김치녀처럼 전체를 싸잡아서 비하하는 용어로 오남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성이 정말 여성에게 더 공격적인지에 대해서는 뒤로하고, "여자란 족속들은 전부 동성을 질투하는 놈들이야. 남자들은 의리를 지키는데 말이지!"처럼 이를 진리로 받아들이면서 여성혐오를 정당화하거나 여성 사이에 경쟁이나 비판이 일면 곧바로 "여적여가 일어났다"며 여성 전체를 비하하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5.1. 남성의 경우


남자 연예인들의 군복무에 관해 악플을 다는 것도 주로 남자들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군대를 기피하려는 의도가 현저하거나 실제로 기피한 연예인들에 대한 비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이나 가정사 등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대한 악플을 말하는 것이다.
다만 포털에는 어그로꾼이 항상 상주하고 있어 유명 악플러의 아이디까지 알려져 있을 정도이므로, 남초 사이트의 일반적인 반응과는 큰 차이가 있다. 김우빈의 경우도 김우빈의 쾌차를 기원하면서 악플러들에게 분노하는 반응이 절대 다수였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암 같은 중대한 질병에 걸린 연예인들까지 걸고 넘어진다면 여론을 의식하여 무리해서 군복무를 하게 되고 이로 인해 단체 생활에 지장을 주게 되면 다른 군인들도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신화신혜성도 군복무 면제라는 이유로 남자들한테 욕 먹었으나 양쪽 무릎 십자인대가 여러번이나 파열되어서(특히 왼쪽은 완전히 파열되어서 수술도 받았다) 면제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바로 조용해졌다. 군 생활을 이미 경험한 남성들은 그 문제점을 절실히 느끼기 때문에 연예인이냐 일반인이냐를 떠나서 몸 상태에 문제가 있으면 당연히 면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이런 경우에까지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남자들도 대부분 인간말종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남성이 시전하는 똥군기나 나이를 불문한 꼰대질은 같은 남성 집단 내에서 심한 것이 사실이다. 이 경우는 여성을 상대로 위력을 행사함으로써 실추될 수 있는 위신이 크다는 것도 원인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남성들이 말하는 악질 상사 이야기를 들어 보면, '''여자한테는 그래도 그렇게까진 안 하더라''', '''(약한) 여자는 험하게 굴릴 수 없으니까 같은 남자들을 더 괴롭힌다'''는 식의 이야기가 많은데, 이는 최근에 불거진 미투펜스룰을 의식해서가 아니며 오래 전부터 있었던 관행이다. 남자가 여자와 권투를 해서 이겼다면 가오가 안 살고, 오히려 비웃음거리만 되니까 여자는 굳이 안 건드리겠다는 것이다. 사실 마초 문화가 원래 이런 성격이 있다. 애초에 여자는 같은 집단 내 구성원이 아니니 굳이 갈굴 필요조차 못 느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시비를 트는 게 같은 동성인 것이다.
번식경쟁의 경우 남성이 여성보다 가혹한 상황에 놓인다고 한다. 로이 바우마이스터의 저서 소모되는 남자에 따르면 진화론적 관점에서 여성은 보다 우수한 짝을 얻기 위해서만 경쟁해온 반면에 남성은 우수한 짝은 둘째치고 일단 짝을 얻을 수 있는지의 여부를 두고 더욱 치열하게 경쟁해왔다고 한다.

6. 서브컬처에서의 모습


서브컬처라도 다를 게 없다. 아주 당연하게도 남성향보다는 여성향에서 오히려 이런 모습이 더 많이 보인다는 것. 이는 남성향이 기본적으로 하렘물이나 소년물쪽을 지향하지, 궁중 암투같은것을 지향하지는 않는다는데 있다. 여자 두명이서 남자 한명을 두고 뒷공작을 벌이기보다는 두 여자가 사이좋게 한 남자와 3P를 벌이는 모습이 더 잘 팔리기 때문. 또한 하렘물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인데, 이 경우 각 히로인들은 일종의 아이돌처럼 남자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캐릭터가 된다.
여기서 히로인들중 하나를 뒷공작이나 하는 음습한 캐릭터로 만들어버리면 그 캐릭터의 팬들은 떨어져나가고 이는 매출의 감소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성향 작가들은 대체로 남자들이다보니 여적여 상황을 잘 만들지 못하거나 만들기를 꺼리는 경향이 크다.
반면 여성향의 경우 직접적인 폭력을 나타내지 않으면서도 여주인공의 라이벌의 못됨을 드러낼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므로 자주 애용된다. 거칠게 요약해서 남성향의 주연들이 주먹이나 초능력으로 치고받고 싸울때, 여성향의 주연들은 여적여 상황의 음습함을 견뎌내거나 당당하게 맞서는 식이다.[9] 아주 쉽게 볼 수 있는 예시가 막장 드라마를 비롯한 한국의 여성 타깃 드라마들 대다수이다. 사실 이는 일종의 '피해자 포지션' 을 이용해 독자들의 주인공에 대한 이입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보면 된다.[10]
다만 여캐와 여캐와의 적대관계보다 '''실제 여성이 여성 캐릭터, 나아가 해당 작품에게 적대관계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11] 실제로 많은 서브컬처가 독자의 판타지를 만족시키고 상업적인 목적을 위하여 왜곡된 성 역할을 강조하며 성 상품화나 성적 대상화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히로인 쟁탈전과는 완전히 일치한다고 보기엔 힘들다. 참여하는 여캐들이 직접 여적여 구도로 대립한다기보단 각기 다른 캐들을 지지하는 팬들의 대리전에 가깝기 때문.
사극에서도 여자의 적은 여자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궁궐 내에서 궁녀들끼리 암투를 벌이는거야 대표적이고, 자기 남편의 출세를 위해 정적의 아내에게 친한 척 접근하거나 뒷공작을 꾸며 그 정적까지 파멸시키게 의도하는 것도 대표적 클리셰다. 그런데 따지고보면 사극에서 여자들은 관직에 직접 나가서 신하들마냥 왕 앞에서 대놓고 간간악악 하는 식으로 정치논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암투식 여적여가 캐릭터들을 스토리 내에 개입시키고 어필하는 소재로 활용된다고도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미디어 등의 영향으로 편견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당연하겠지만 서브컬처 또한 현실세계를 직간접적으로 반영하기 때문에 서브컬처의 캐릭터 또한 현실의 남성과 여성을 직간접적으로 투영하지만 이는 작가관, 세계관 등에 따라서는 극단적으로 과장되고 왜곡된 모습이다.
서브컬처와 미디어의 세계관이 현실세계와 비슷하더라도 장르나 이야기에 따라 부분적으로 매우 과장, 왜곡된 모습인 것과 비슷하다. 예를 들면 서브컬처의 세계가 얼핏 현실과 비슷해 보이지만 스릴러 소설에서 주변인물이 줄줄이 죽어나가거나 액션 영화에서 가는 곳마다 폭발이 일어나는 것 같은 부분적인 과장 및 왜곡이 있다.
그리고 서브컬처를 주로 향유하는 연령대가 가치관이 아직 유연한 젊은 층이라 파급효과 또한 상대적으로 크다. 1975년 글래스고대학교 연구 집단의 bad news에서도 미디어의 대표적인 뉴스가 편견을 생성하고 고착화하는 역할에 대하여 분석했다. 이는 서브컬처를 포함한 미디어 매체가 단순한 성별간의 편견만이 아닌 인종간, 국가간 등의 모든 편견에 대하여 강한 영향을 끼치고 다시 영향을 받는 '''양방향적인 성격'''을 가졌으며, 사회에서 이에 대한 자정작용이 없으면 부정적인 강화가 지속되어 매우 위험해진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중매체 등에서 양성평등이나 정치적 올바름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많은 논쟁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한국이나 일본 등의 서브컬처는 이러한 부분에 상당히 무감각한 부분이 많아 우려되고 있다.[12] 그러나 모든 소비자들이 마냥 여기에 쉽게쉽게 넘어간다는 것도 오히려 편견적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문자 그대로 서브컬쳐 세상밖에 모르는 중증 오타쿠거나 너무 어린 케이스가 아닌 한 10~20대가 뇌를 비우고 서브컬쳐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건 아니기 때문.

7. 이를 다룬 창작물


  • 장예모의 홍등 - 공리가 주연인 영화로, 똑똑하고 평범했던 사람이 일부다처제 아래에 들어가 남성(남편)의 지배 아래 결국 부인끼리 서로 질투하고 교묘하게 기싸움을 하고 미쳐갈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내몰려가는 과정을 아주 잘 보여주는 영화이다. 갑 아래 을끼리의 싸움을 생각하면 쉽다. 페미니즘 영화로 언급되기도 한다.
  • 퀸카로 살아남는 법 - 10대 여자들의 싸움 방식과 화해 그리고 성장을 다룬 영화이다. 간혹 여성 간의 싸움을 다뤘으니 여적여라고 여성혐오적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작가 티나 페이는 페미니스트로 유명하다.
  • <ONE> - 안녕 자두야로 유명한 이빈이 비슷한 시기인 1999년에 연재한 아이돌의 세계를 주제로 다룬 작품. 여기서 여주인공 유제니는 처음에 인형 같은 콘셉트로 활동하여 큰 인기를 누리는 여자 아이돌인데, 유제니가 다니는 학교의 여학생들은 유제니를 적대시한다. 그 심리에 대해 작가는 남자의 경우 잘나가는 동성에게 충성하려 하지만[13], 여자의 경우는 견제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이 부분은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과거에는 여자가 여러 사람을 통솔하는 위치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 작품에서 유제니는 설정을 바꾸어 오히려 걸크러시의 원조로 거듭난다. 참고로 작가는 아무로 나미에를 참고해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유제니의 단짝 동성 친구로 등장하는 영주워맨스를 보여 주는 설정인데, 작가는 여자들의 우정이 남자 못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한다. 덧붙여서 유제니와 같은 여자 솔로 아이돌이었던 앤지는 유제니를 견제하기 위해 귀엽고 사랑스럽고 어려운 말 같은 거 못하는 멍청한 설정으로 인기를 놓고 다투는 라이벌 구도를 이뤘지만 오히려 후반부에 들어선 아이돌 설정을 버리고 락스타로 거듭난다.[14] 유제니 입장에선 본인이 평소에 하고 싶었던 장르를 앤지가 먼저 멋지게 해내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고 이로 인해 혼란을 겪지만 차라리 진정한 아이돌로서의 자아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된다. 한 편 앤지는 진짜 음악을 하고는 있지만 같은 밴드소속이자 프로듀서인 하우재에게 휘둘리는 것에 염증을 느껴하고 그런 하우재가 앤지를 막 대하고 여자들이란 이래서 문제라고 폭언을 하는 와중에 유제니가 등장해서 하지만 여자니까 더 섬세한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앤지를 쉴드 쳐주어서 비록 경쟁관계였지만 젠더적 입장에서는 동지 포지션을 확립한다. 즉 클리셰를 따르면서도 클리셰를 비트는 이중적인 성격을 담은 작품이었다.
  • 단지 - 주인공이 "딸"이기 때문에 남성중심사회에서 받는 핍박을 주 소재로 쓰고 있지만 그 딸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 바로 주인공의 "엄마"다. 주인공이 사춘기가 되어서 가슴이 부풀기 시작하니까 그걸 아빠에게 말해서 아빠가 다 큰 주인공 가슴을 만지는데 제지는커녕 옆에서 웃으면서 상황을 관찰하고 있다. 또한 어린 주인공이 실수를 할 때마다 송곳으로 눈을 찔러 버린다고 하는 등 어린아이에게 할 수 없는 잔혹한 발언과 행위를 서슴치 않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엄마 역시 남편에게 구타를 당하는 약자 입장이지만 딸의 처지를 조금도 이해할 생각은 안하고 남아선호사상의 전형을 보여주면서 딸에게 물질적으로 자주 의지하지만 동시에 멸시를 하고 있다. 전형적인 열폭.
  • 용왕이 하는 일! - 주인공나이 많은 사매의 입에서 대놓고 이 말이 나왔다. "여자의 적은 말이지 언제나 여자야."[15][16]

8. 기타


원제는 Odd Girl Out이며 부제는 The Hidden Culture of Aggression in Girls이다. 번역하자면 '이상한 여자는 아웃. 소녀들의 숨겨진 공격 문화'이다.
2009년 제목이다. 원제를 그대로 번역하자면 '여성에 대한 여성의 비인간성'. 여성에 대한 여성의 공격성을 진화론적 관점으로 설명하려는 학자가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하며, 책의 제목 외에도 '관심을 얻기 힘든 여자가 있다면 그 여자보다 살짝 못한 여자를 대동하여 질투심을 유발시켜라'[17]는 구절이 연애 관련 명언(?)으로 웹에서 유명하다. 마치 저자가 여자에 대한 반감에 차서 집필한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저자 필리스 체슬러는 여성이고, 여성심리학과 교수이며 페미니스트 운동가이다. 사실 자극적인 제목이나 구절들이 눈에 띄어서 그렇지 전체적인 내용은 여성의 심리학과 사회적인 시선에 대한 재고를 다루는 책으로, 당시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널리 읽혔다거나 한 것도 아니다.

니들 말야. 여자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생각해? 웃기지 말라고 해. 왠지 알아? 여자는 여자를 증오하거든.

  •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여적여에 반발해서 여적여는 없고 '여돕여'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이 서로 세부적인 사상이나 목표가 안 맞거나 수가 틀렸다고 싸워대면서 자아분열하거나,[18] 사실상의 극단적인 여성우월주의 + 남성혐오 담론을 퍼뜨릴 기회만을 노리며 남자에 의한 여자 피해자가 나오길 바라면서 여자에 의한 여자 피해자[19]가 나오면 돕긴 커녕 눈 돌리고 입 닫는 행태를 보이거나,[20] 이미 심심찮게 벌어지는 여초 사회에서의 따돌림이나 괴롭힘, 내리갈굼 등과 거기서 나오는 피해자들은 애써 외면하거나, 페미니즘을 따르지 않는 여자들을 '흉자', '명예남성' 등으로 지칭하며 욕하거나, 극단화된 행동과 사상을 표방해 결국 여성 전체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거나, 실컷 여자 유명인들을 공격하고 마녀사냥을 하며 악플을 달아놨던 과거를 없던 척 하고 여돕여를 뒤늦게 부르짖는 등의 행각들이 속속들이 튀어나오면서 여적여가 있다는 증명은 지들이 하고 있다고 까이기도 한다. 특히나 이를 대놓고 증명하고 있는 최근에는 페미니즘 진영 내부에서도 잦은 검열에 모순을 느끼거나 지친 인원들이 하나 둘씩 서서히 늘어가면서, 내전이 여초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21] 아니, 이미 현재 상황만 놓고 보자면, 페미니즘에 관한 심도 있는 분석이나 토론 및 연구는 이미 아웃 오브 안중인 상태고 그들이 한남이라고 부르는 자국인 한국의 남성들 및 남초 사이트 회원들 뿐만이 아니라, 같은 페미니즘 진영과 타 여초 사이트를 패는 것에도 희열을 느끼고 있다.[22]

9. 관련 문서



[1] 물론 남성도 자신의 유전자를 많이 퍼뜨리기 위해, 번식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자신보다 우수한 남성을 여러 방향으로 견제한다. 그럼에도 왜 남적남이란 표현은 잘 쓰이지 않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아래 항목을 참고.[2] 그 대표적인 예시로 출산이나 육아와 관련된 권고사직을 가져온다. 일부 국가에선 꽤 줄어든 추세지만 한국 등에선 여전히 이런 풍조가 심해서 직장이냐 아이냐 하고 갈등하는 여성들이 많고, 그래서 임신이나 육아를 해도 안 잘릴 가능성이 있는 특정 직종(교사 등)에 몰리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것.[3] 이런 거 외에도 사회의 상당 부분에선 '유리 천장' 이라고 하는, 남성 대비 여성에 대한 암묵적인 사회 진출/승진 관련 차별들이 존재한다고 본다. 눈에 띄는 차별은 줄었지만 눈에 안 띄는 은밀한 차별구도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것.[4] 과거 발달심리학계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폭력성이 더 크다고 보았으나, '''관계 공격성'''이라는 새로운 관점이 떠오르면서 이 이론은 사장되었다.[5] 페미니스트들은 애초에 여자들이 외모를 질투한다는 주장 자체가 오로지 사회적 학습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남자의 남성성 역시 마찬가지다.[6] 카이스트에 766억을 기부한 사연[7] 오히려 반대로 남성은 서로 여성 얘기(도덕적으로 옳든 아니든 간에)를 하면서 즐긴다는 스테레오타입이 있다.[8] 젊은 여성이 정규직이고 아줌마가 비정규직이어도 그렇다. 과자공장 직원 투신사건이 그 극단적인 예.[9] 고전 순정만화 명작 중 하나인 캔디캔디의 주인공 캔디와 작품 최고의 악녀로 꼽히는 이라이자가 이 클리셰의 대표적인 예시다. 밑줄의 실제 여성이 여캐를 적대하는 사례에도 포함되는데, 이 만화를 봤던 할머니나 어머니 세대들에게 이 작품에 대해 언급하면 대부분은 이라이자를 욕하면서 굉장히 적대하는 반응이 나올 정도다.[10] 여적여 상황이 나올 때 여자 주인공들은 착한 피해자, 혹은 꼭 착하지만은 않아도 어쨌든 피해자이며 이를 견디고 이겨내는, '불쌍하지만 피해를 극복하는 주인공' 이라는 식으로 나오는게 많은데, 이런 피해자 포지션은 주인공과 다른 여캐가 여적여 기믹으로 서로 싸우는 구도가 되더라도 주인공은 나쁘지 않다는 식의 근거를 실어줌으로써 (그리도 대립되는 상대 측은 당할만하니 당한다는 식의 구도가 되어서) 독자의 이입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11] 이런 것의 대표적인 예시가 BL 파는 이들 중 폐녀자들이거나 드림물 파는 이들 중 자기 드림캐인 남캐와 '''원작에서 엮이는''' 여캐를 후려치는 경우이다. 2000년대 중반에는 어느 캐릭터로 남덕인지 여덕인지 구분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12] 다만 제작진 측이 이런 것에 대해 무감각한 티를 여전히 내는 반면, 소비자 층에선 이런 것에 대해 슬슬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일부나마 있다. 이전과 달리 요새(2010년대)는 젊거나 어린 소비자들(보통 청소년층이나 20대층)도 서브컬쳐를 무작정 '소비' 만 하는 시대는 지나갔고 소비와 비판, 개선점 탐색 등을 동시에 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13] 물론 자신에게 뭔가 콩고물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가 상당한데다 자신이 이런 사람과 친구라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심리도 어느정도는 있다[14] 사실 앤지는 멍청하고 얌전한 이미지를 표방하는 것과는 달리 본심은 이렇게 양갈래로 머리 짬매고 귀여운 척 하는 거 딱 질색이라면서 진짜 "음악"을 하고 싶다고 선언했었다.[15] 용왕이 하는 일! 정발판 2권 p.89[16] 라이트노벨 특성상 여성이 많기도 하고, 청일점 남주를 잠재적 애인으로 취급하지 으로 두지 않는다.[17] 다만 역효과로 여자끼리 뭉쳐서 저울짓 한다고 뒷담할 수도 있다[18] 애초에 페미니즘 자체가 '이념' 이다보니 온갖 종류가 나왔으며 특히 한국에서 강세인 레디컬의 경우 그 특성상 결국 결말은 극도의 검열화로 치닫기에 거기에 적응 못 하고 나가떨어지거나 페미를 표방하고 타인을 후러치면서도 자기는 즐길 거 즐기는 이중잣대를 표방하는 이들도 생각보다 많다. 게다가 자기 마음대로의 잣대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이밀고 강요하기까지 하는걸 결국 서로 반복하다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자아분열되기 십상.[19] 심지어 이런 케이스의 여자 가해자들 중엔 여자를 돕겠다면서 페미니즘과 여돕여를 표방해놓고서 외려 피해여성을 만들고 자기는 발뺌하는 케이스까지 존재한다.[20] 여자에 의한 여자 피해자는 여적여의 증명이기 때문에 여적여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겐 가장 골칫거리스러운 반례이다.[21] 국내에서 여초 사이트 사이로 페미니즘이 막 유행을 타기 시작한 2015~2016년과 2018년 경만 해도 크고 작은 마찰은 있었어도 여초 커뮤니티 사이트 사이에서의 연대가 빈번히 이루어진 것과 상당히 대비되는 상황.[22] 한편으로는 페미니스트 여부를 떠나서 여성으로서 무작정 같은 여성에게 감정이입하여 옹호하고 지지하는 사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여적여와 여돕여 둘 다 사례를 찾으려면 쉽게 찾을 수 있기도 하다. 즉 하나를 부정하고 하나만 있다고 주장하긴 하지만 결국 둘 다 어떤 방식으로든 실존하는 게 현실이다. 형태만 다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