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image]
[1]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의 전신은 1981년 칼라방송과 더불어 시작된 MBC-TV의 주말 대형 쇼프로그램 쇼2000이다. 1986년을 앞두고 '86신년 MBC프로그램 개편에서 쇼2000을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로 개편하였다. (주말 쇼프로그램, 당시에는 예능방송이라는 말은 없었고 대부분 쇼프로그램이라고 불렀다.)
자매품으로 일요일 일요일 밤에가 있다. 그런데 줄임말은 일일밤이 아닌 일밤인게 함정이다 토토가 즐이 라는게 아니다 그러나 토토가에서는 90년대 음악을 다뤘다. 하긴 90년대에도 인기리에 방송되긴 했다.~~[3][4]
무한도전 시간대로 유명하고 지금의 놀면 뭐하니? 방송 시간대인 저녁 6시 50분쯤 방송되었다. 도중에 개편에 따라서 지금의 쇼 음악중심 시간대에 해당하는 오후 4시 40분쯤에 방송된 적이 있다. 공개 녹화는 여의도 사옥 공개홀에서 주로 했다. 물론 야외 녹화나 지방 녹화도 있었다. 여름에는 드림랜드 야외 수영장, 겨울에는 자연농원 눈썰매장이나 강원도의 스키장 등 계절에 어울리는 공간에서 녹화한 적이 있다. 또 MBC 지방 계열사의 창사 기념일이나 신사옥 완공 상황은 물론 정부의 사기극에 휘말려 강제 모금 방송을 해야했던 시절이면 전국을 돌며 모금 생방송을 겸한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지방에서 진행되는 녹화의 경우 서울 본사 제작진과 지방 MBC 제작진이 협업하는 형태로 방송을 제작했다.
무한도전은 매주 포맷이 달라지지만 이 프로그램은 매주 무대컨셉이 달랐다. 어떤 회차는 '88 여름사냥'이라고 하여 출연자 전원이 여름 컨셉의 복장[5] 을 하고 나온다든지#, '88 프레 크리스마스 쇼'라고 해서 한 여름에 방송하여 크리스마스 컨셉 무대를 꾸민다든지(#영상) 하는 식. 1989년 6월 10일 방송은 1시간 10분 동안 생방송으로 디스코장 컨셉으로 논스톱으로 가수들이 메들리 형식으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 외에 화제의 뉴스거리를 가사로 개사해서 부르는 순서도 있었다. 90년대 출연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은 난 알아요 무대를 개작해서 부르는데 아예 무대에 철퍼덕 주저앉고 드러눕는 파격적인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토토즐은 당시 KBS, MBC에 많이 보이던[6] 쇼 프로그램과 달리 새로운 시도도 많이 했는데, 미국과 일본의 최신 쇼 프로를 어레인지한 것이 많았다. 당시는 방송개방이 되어 있지 않던 시절이기 때문에 판에 박은듯한 쇼 형식[7] 을 반복하거나, 아니면 아예 일본 민방 쇼프로를 구성도 세트도 그대로 베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반면 토토즐의 경우는 미국, 일본의 영향은 많이 받았지만 카메라 동선이나 연출, 형식파괴 등에서 고심한 흔적이 엿보이는 그 당시로서는 몇 안 되는 프로그램이다.
남자 MC는 이덕화며 전신인 '쇼 2000'시절부터 1991년까지 무려 10년간 진행했다. 여자 MC는 송옥숙, 김청, 김희애, 조용원, 조카 김진아 등이 맡았다. 당시 이덕화의 존재는 지금 세대에겐 믿기 힘들겠지만 '''장동건과 유재석을 합쳐놓은 존재'''였다.[8] 지금도 이덕화하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유행어인 '''부탁~해요'''로 이름을 날렸다. 그리고 꼭 이 프로 끝나고 하는 주말연속극에도 출연해서 시청률을 올렸으니 그 당시 이덕화의 인기는 참 대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이때가 이덕화의 제2의 리즈시절[9] 인데, 80년대 당시 MBC 10대 가수 가요제와 명절 특집 프로그램의 MC까지 매년 맡을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2000년대 ~ 2010년대의 MBC의 토요일 저녁은 무한도전이 인기를 얻었듯이 80년대 ~ 90년대 초반까지 토요일 저녁은 토토즐이 인기를 얻었다. 이덕화가 1991년 당시 개국한 SBS의 '쇼 서울서울'로 옮기게 되면서 하차하였고 이후에는 박상원, 최민수, 이승연, 김승현, 심은하, 김혜수, 신은경, 이본, 황신혜 등 지금도 내로라하는 베테랑 스타들이 MC를 맡았다.
특히 1993년부터 1996년까지 MC를 맡았던 '''이승연'''의 경우 이덕화 이후 토토즐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특히 1993년은 토토즐 사상 유일한 원톱 MC이자 '''MBC 토요일 예능 역사상 유일하게 여성 MC 원톱 체제'''로 갔을 정도로 당시 인기와 진행 실력이 뛰어났다.[10]
지금은 대스타가 된 강호동이 방송인으로 전환한 초기에 패널로 활동하던 프로그램이기도 했다.(1995년~1996년 상반기)
당시 단골은 소방차, 김완선, 이지연, 하수빈 등 80, 90년대 크게 유행한 아이돌 가수들이었다.[11]
여담으로, 이 프로그램의 피날레는 당시 음반 끝 트랙에 건전가요가 나온 것처럼 다같이 출연진들이 모여서 건전가요를 불렀다. 마지막에 손에 손잡고를 부른다든지.
유독 생방송으로 진행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방송사고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이덕화가 돌발적으로 마이크 스펀지를 씹어먹었다든지[12] 여자 MC가 드레스가 흘러내려서 대형사고(?)가 일어났다든지.
1996년 9월 하순부터 스타쇼로 컨셉을 바꾸어 진행하다가 1997년 3월 1일에 종영되었다.[13] 이 시기에 H.O.T.가 첫 출연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1987년 ~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일본 후지TV에서 심야 시간대에 'SEOUL SOUL'이라는 이름으로 토토즐을 30분으로 편집하고 일본어 자막으로 번역한 프로그램이 방송되기도 하였다. 이는 현재까지 MBC가 후지TV와 제휴한 방송사이기 때문. 배우 이혜숙이 진행했다.
특이사항은 1988 ~ 1989년 당시 PD 두 명이서 번갈아가면서 연출했는데 서로 다른 오프닝 타이틀을 썼다는 거다.
2018년까지 쇼2000시기를 제외하고도 토요일 저녁에 방송한 예능 프로그램 중 무한도전 다음으로 오랫동안 방송한 프로그램이다.
종영 후 케이블 채널 가요TV에서 재방송된 적이 있었다. 종영된 지 17년이 지난 2014년 12월 27일, 무한도전에서 연말 특집으로 이 프로그램과 나는 가수다의 이름을 합친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를 기획했다.
현재 MBC 아카이브에 일부 회차가 올라와 있다. 당시 방송 자료 보관이 부실했던 탓인지 1986년 교체 전 MBC 로고가 들어간 초기 방영분이 유실된 것으로 추정된다.[16] 87년부터 1990년까지는 거의 전 영상이 올라와 있으나 역시나 유실된 탓인지 일부 빠진 것도 있다.
1994년 MC였던 이본과 심은하는 라이벌 컨셉을 밀었으며 실제로 두 사람의 신경전이 있었다고 한다.#
1986년 당시 정권에 발맞춰 평화의 댐 특집을 2회 연속으로 내보낸 흑역사가 있다. 정확히는 방송사가 하루를 잡아서 릴레이 모금 생방송을 했는데 토토즐이 동참한 것이다. 각각 춘천과 부산에서 생방송했는데 특집이 특집인 만큼 반공성이 강하게 들어가 있다.[17]
MBC 옛송TV 유튜브 채널을 통해 매주 토요일에 그 주에 방송된 1987년부터 2000년까지 음악 방송분을 스트리밍 형식으로 토토즐 방영분을 공개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타 음악 방송 스트리밍과 다르게 추억의 광고까지 송출하였다. 실제로 MBC는 원본 테이프를 광고가 삽입된 채 보관하고 있다. 물론 프로그램을 판매할 시 광고를 편집하고 판매한다. 하지만 이후에는 광고를 빼고 스트리밍중이다. 그러다 2020년 매주 토요일 밤 10시에 최초 공개 형식으로 업로드하고 있다.
MBC 국회의원 선거 개표방송 MBC 선택 2020에서 '투표일 투표일은 즐거워'로 패러디하여 복고풍 컨셉으로 개표방송 바이폰을 선보인 바 있다.
[1]
1. 개요
MBC에서 1985년 11월 9일부터 1997년 3월 1일까지 방영한 쇼 프로그램, 줄여서 '''토토즐'''이라고 불렀다.'''주말, 또 하나의 즐거움''' (1985년부터 1989년까지의 캐치프레이즈)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의 전신은 1981년 칼라방송과 더불어 시작된 MBC-TV의 주말 대형 쇼프로그램 쇼2000이다. 1986년을 앞두고 '86신년 MBC프로그램 개편에서 쇼2000을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로 개편하였다. (주말 쇼프로그램, 당시에는 예능방송이라는 말은 없었고 대부분 쇼프로그램이라고 불렀다.)
자매품으로 일요일 일요일 밤에가 있다. 그런데 줄임말은 일일밤이 아닌 일밤인게 함정이다 토토가 즐이 라는게 아니다 그러나 토토가에서는 90년대 음악을 다뤘다. 하긴 90년대에도 인기리에 방송되긴 했다.~~[3][4]
무한도전 시간대로 유명하고 지금의 놀면 뭐하니? 방송 시간대인 저녁 6시 50분쯤 방송되었다. 도중에 개편에 따라서 지금의 쇼 음악중심 시간대에 해당하는 오후 4시 40분쯤에 방송된 적이 있다. 공개 녹화는 여의도 사옥 공개홀에서 주로 했다. 물론 야외 녹화나 지방 녹화도 있었다. 여름에는 드림랜드 야외 수영장, 겨울에는 자연농원 눈썰매장이나 강원도의 스키장 등 계절에 어울리는 공간에서 녹화한 적이 있다. 또 MBC 지방 계열사의 창사 기념일이나 신사옥 완공 상황은 물론 정부의 사기극에 휘말려 강제 모금 방송을 해야했던 시절이면 전국을 돌며 모금 생방송을 겸한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지방에서 진행되는 녹화의 경우 서울 본사 제작진과 지방 MBC 제작진이 협업하는 형태로 방송을 제작했다.
무한도전은 매주 포맷이 달라지지만 이 프로그램은 매주 무대컨셉이 달랐다. 어떤 회차는 '88 여름사냥'이라고 하여 출연자 전원이 여름 컨셉의 복장[5] 을 하고 나온다든지#, '88 프레 크리스마스 쇼'라고 해서 한 여름에 방송하여 크리스마스 컨셉 무대를 꾸민다든지(#영상) 하는 식. 1989년 6월 10일 방송은 1시간 10분 동안 생방송으로 디스코장 컨셉으로 논스톱으로 가수들이 메들리 형식으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 외에 화제의 뉴스거리를 가사로 개사해서 부르는 순서도 있었다. 90년대 출연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은 난 알아요 무대를 개작해서 부르는데 아예 무대에 철퍼덕 주저앉고 드러눕는 파격적인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토토즐은 당시 KBS, MBC에 많이 보이던[6] 쇼 프로그램과 달리 새로운 시도도 많이 했는데, 미국과 일본의 최신 쇼 프로를 어레인지한 것이 많았다. 당시는 방송개방이 되어 있지 않던 시절이기 때문에 판에 박은듯한 쇼 형식[7] 을 반복하거나, 아니면 아예 일본 민방 쇼프로를 구성도 세트도 그대로 베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반면 토토즐의 경우는 미국, 일본의 영향은 많이 받았지만 카메라 동선이나 연출, 형식파괴 등에서 고심한 흔적이 엿보이는 그 당시로서는 몇 안 되는 프로그램이다.
남자 MC는 이덕화며 전신인 '쇼 2000'시절부터 1991년까지 무려 10년간 진행했다. 여자 MC는 송옥숙, 김청, 김희애, 조용원, 조카 김진아 등이 맡았다. 당시 이덕화의 존재는 지금 세대에겐 믿기 힘들겠지만 '''장동건과 유재석을 합쳐놓은 존재'''였다.[8] 지금도 이덕화하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유행어인 '''부탁~해요'''로 이름을 날렸다. 그리고 꼭 이 프로 끝나고 하는 주말연속극에도 출연해서 시청률을 올렸으니 그 당시 이덕화의 인기는 참 대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이때가 이덕화의 제2의 리즈시절[9] 인데, 80년대 당시 MBC 10대 가수 가요제와 명절 특집 프로그램의 MC까지 매년 맡을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2000년대 ~ 2010년대의 MBC의 토요일 저녁은 무한도전이 인기를 얻었듯이 80년대 ~ 90년대 초반까지 토요일 저녁은 토토즐이 인기를 얻었다. 이덕화가 1991년 당시 개국한 SBS의 '쇼 서울서울'로 옮기게 되면서 하차하였고 이후에는 박상원, 최민수, 이승연, 김승현, 심은하, 김혜수, 신은경, 이본, 황신혜 등 지금도 내로라하는 베테랑 스타들이 MC를 맡았다.
특히 1993년부터 1996년까지 MC를 맡았던 '''이승연'''의 경우 이덕화 이후 토토즐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특히 1993년은 토토즐 사상 유일한 원톱 MC이자 '''MBC 토요일 예능 역사상 유일하게 여성 MC 원톱 체제'''로 갔을 정도로 당시 인기와 진행 실력이 뛰어났다.[10]
지금은 대스타가 된 강호동이 방송인으로 전환한 초기에 패널로 활동하던 프로그램이기도 했다.(1995년~1996년 상반기)
당시 단골은 소방차, 김완선, 이지연, 하수빈 등 80, 90년대 크게 유행한 아이돌 가수들이었다.[11]
여담으로, 이 프로그램의 피날레는 당시 음반 끝 트랙에 건전가요가 나온 것처럼 다같이 출연진들이 모여서 건전가요를 불렀다. 마지막에 손에 손잡고를 부른다든지.
유독 생방송으로 진행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방송사고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이덕화가 돌발적으로 마이크 스펀지를 씹어먹었다든지[12] 여자 MC가 드레스가 흘러내려서 대형사고(?)가 일어났다든지.
1996년 9월 하순부터 스타쇼로 컨셉을 바꾸어 진행하다가 1997년 3월 1일에 종영되었다.[13] 이 시기에 H.O.T.가 첫 출연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1987년 ~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일본 후지TV에서 심야 시간대에 'SEOUL SOUL'이라는 이름으로 토토즐을 30분으로 편집하고 일본어 자막으로 번역한 프로그램이 방송되기도 하였다. 이는 현재까지 MBC가 후지TV와 제휴한 방송사이기 때문. 배우 이혜숙이 진행했다.
특이사항은 1988 ~ 1989년 당시 PD 두 명이서 번갈아가면서 연출했는데 서로 다른 오프닝 타이틀을 썼다는 거다.
2018년까지 쇼2000시기를 제외하고도 토요일 저녁에 방송한 예능 프로그램 중 무한도전 다음으로 오랫동안 방송한 프로그램이다.
2. 역대 MC[14]
- 이덕화 (1981.3.21~1991.4.13) : 쇼2000 ~ 토토즐 최장수 MC이자 상징. 역대 최초로 막방에 헌정쇼가 마련되었다.
- 정애리
- 김성희
- 김청 : 1982~1983년, 1987~1988년, 1989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MC를 맡았다.
- 강문영
- 홍광은 : 당시 MBC 아나운서로 프로그램 역사상 유일한 아나운서 출신 MC.
- 박영희
- 송옥숙
- 김진아 : 이덕화와 MC를 함께 맡은 적이 있는데 알려진대로 이덕화와 김진아는 이모부-조카 관계다.
- 조용원 : 1989년 토토즐 MC를 끝으로 연예계 은퇴.
- 김희애
- 박상원
- 김연주
- 최민수
- 김혜수 : 92년 최민수, 96년 김승현과 공동 MC. H.O.T.의 데뷔 방송을 함께 했다.[15]
- 이승연 : 토토즐의 후반기를 대표한 MC.
- 권인하
- 김승현
- 이본
- 심은하
- 김용만
- 황신혜 : 토토즐의 마지막 MC.
3. 그 외
종영 후 케이블 채널 가요TV에서 재방송된 적이 있었다. 종영된 지 17년이 지난 2014년 12월 27일, 무한도전에서 연말 특집으로 이 프로그램과 나는 가수다의 이름을 합친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를 기획했다.
현재 MBC 아카이브에 일부 회차가 올라와 있다. 당시 방송 자료 보관이 부실했던 탓인지 1986년 교체 전 MBC 로고가 들어간 초기 방영분이 유실된 것으로 추정된다.[16] 87년부터 1990년까지는 거의 전 영상이 올라와 있으나 역시나 유실된 탓인지 일부 빠진 것도 있다.
1994년 MC였던 이본과 심은하는 라이벌 컨셉을 밀었으며 실제로 두 사람의 신경전이 있었다고 한다.#
1986년 당시 정권에 발맞춰 평화의 댐 특집을 2회 연속으로 내보낸 흑역사가 있다. 정확히는 방송사가 하루를 잡아서 릴레이 모금 생방송을 했는데 토토즐이 동참한 것이다. 각각 춘천과 부산에서 생방송했는데 특집이 특집인 만큼 반공성이 강하게 들어가 있다.[17]
MBC 옛송TV 유튜브 채널을 통해 매주 토요일에 그 주에 방송된 1987년부터 2000년까지 음악 방송분을 스트리밍 형식으로 토토즐 방영분을 공개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타 음악 방송 스트리밍과 다르게 추억의 광고까지 송출하였다. 실제로 MBC는 원본 테이프를 광고가 삽입된 채 보관하고 있다. 물론 프로그램을 판매할 시 광고를 편집하고 판매한다. 하지만 이후에는 광고를 빼고 스트리밍중이다. 그러다 2020년 매주 토요일 밤 10시에 최초 공개 형식으로 업로드하고 있다.
MBC 국회의원 선거 개표방송 MBC 선택 2020에서 '투표일 투표일은 즐거워'로 패러디하여 복고풍 컨셉으로 개표방송 바이폰을 선보인 바 있다.
[1] 토토즐의 로고는 매년 개성 있게 바뀌었기에 정식 로고는 여러개다. 요일의 ㅇ을 사과와 배로 교체하거나 그라데이션을 넣고 폰트를 복고풍으로 바꾸는 것이 그 예시.[2] 쇼2000 시대 포함[3] 사실 토토즐은 90년대보다 80년대 이덕화가 진행할 때가 초전성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진행자 이덕화는 본인이 토토즐을 1981년부터 91년까지 10년 진행했다고 어느 토크쇼에서 말한적 있다고 한다. 그래서 1981년부터 토토즐 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고 하는게 맞을 듯 싶다.[4] 한편 KBS는 같은 토요일 저녁에 100분 쇼로 방송하다 토토즐의 등장으로 잦은 타이틀 변경과(쇼86-쇼 여러분-쇼 특급-쇼 토요특급-토요대행진) 시간대 변경(KBS 뉴스 9 이후에 쇼 특급이 방송되기도 했다)과 잦은 결방으로 상대적으로 부침을 겪었다. KBS의 쇼 프로그램은 금요일 저녁에 방송된 젊음의 행진이 롱런했고 인지도가 있었다.[5] 예컨대 이지연은 사파리 탐험가 복장을 무대의상으로 입고 나왔다.[6] 어차피 방송사가 둘뿐이었다. AFKN은 있어봤자 영어방송이고, CBS도 TV방송을 하지 않아 논외임. 참고로 CBS는 2002년부터 TV방송을 시작했으나 종교방송이다.[7] 진행자 멘트-가수 노래-가수와 진행자의 토크-다시 노래-가끔 숏 꽁트 클립 삽입. TBC 쇼쇼쇼 시절부터 있던 형식이라 당시에도 거의 20년쯤 된 포맷이었다.[8] 지금이야 회장님 등 높으신 분 역할을 주로 맡는 낚시광 아저씨 이미지로 알려져 있지만 이 당시만 해도 이덕화는 남자답게 잘 생긴 청춘스타의 이미지가 강했다. 여기에 수려한 입담으로 프로그램 진행까지 깔끔하게 잘 했으니 국민 MC의 수준에 해당할 만한 슈퍼스타였다.[9] 이보다 더 앞서서 이미 70년대에 임예진과 함께 청춘스타였다.[10] 하지만 이승연은 이 프로가 종영되고 이듬해인 1998년에 불법 운전면허 취득으로 구설수에 올랐으며 2004년에는 전 국민들의 심기를 건드린 사건으로 인해 행보가 좋지 못했다.[11] 400회(스타쇼로 바뀌기 직전인 1994년)까지의 출연순위는 다음과 같다. 주현미(119회) - 조용필(105회) - 이선희(102회) - 김완선(89회) - 소방차(88회).[12] 사실은 스펀지가 아니다. 옷에 핀 마이크를 찬 상태에서 핸드 마이크처럼 보이게 만든 음식을 들고 출연자 소개를 하다 마이크 스펀지 부분을 씹어먹는 장면이다.[13] 이는 방영이 한창이던 1990년에 SBS가 개국했고 이 때 방영되었던 웃으며 삽시다와 KBS 2TV의 토요일 전원출발이 선전하면서 시청률 경쟁에서 밀렸고 무리하게 포맷을 변경한 것과 진행자들의 부실한 진행방식 등이 시청률 하락의 원인이 되었다.[14] 쇼2000 시대 포함[15] 당시 그룹명을 핫으로 불렀다.[16] 그 유실된 교체 전 MBC 로고가 들어간 1985년 방송 녹화분이 최근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17] 이 당시 이주일이 사실상의 고정 패널로 출연했는데 부산 편에서는 조선로동당 간부로 분장해 민해경, 나미, 홍수철 등 가수들과 즉석 콩트를 하기도 했다. 내용을 보면 얼토당토 않는 잡설이 주를 이루는데 콩트의 마지막은 여지없이 "금강산댐을 때려부수자" 등의 반공 구호로 장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