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이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이가이
Lee ga Yi'''
'''본명'''
이희정(李熙正, Lee Hee Jung)
'''출생'''
1968년 7월 19일 (55세)
서울특별시
'''국적'''

'''신체'''
162cm, 41kg[1]
'''학력'''
홍릉초등학교 (졸업)
동대문여자중학교 (졸업)
안양예술고등학교 (졸업)
'''경력'''
그룹 세또래 멤버 (1988 ~ 1989년)
여성 듀오 탐탐 멤버 (1991년)
솔로 가수 (1993년 ~ 1994년)
베이비복스 2집 (1998년 ~ 1999년)
'''포지션'''[2]
서브보컬
'''데뷔'''
세또래 1집 그대를 사랑해
1. 개요
2. 데뷔와 세또래 시절 (1988~1989)
3. 여성 댄스 듀오 탐탐 시절 (1991)
4. 솔로 가수 이지수로 데뷔하다 (1993~1994)
5. 베이비복스 시절 (1998~1999)
6. 나이 탄로 사건 및 베이비복스 탈퇴, 그리고 잠적
7. 평가
8. 앨범
8.1. 세또래 1집 (1988)
8.2. 세또래 2집 (1989)
8.3. 탐탐 1집 (1991)
8.4. 이지수 1집 (1993)
8.5. 이지수 2집 (1994)
8.6. 베이비복스 2집 (1998)

[clearfix]

1. 개요


1세대 아이돌 그룹 베이비복스의 전 멤버이며, 서브보컬을 맡았었다. 당시에는 '''1978년생'''으로 활동했다.
본명은 이희정이며 정체는 1980년대의 한국 가요계의 시조격 걸그룹인 세또래의 멤버 이희정이랑 동일인물이다. 원래는 '''1968년생'''이며 데뷔만 무려 4번 한 연예계의 고무줄 나이를 비판할 때 제일 먼저 처음으로 언급되는 인물.

2. 데뷔와 세또래 시절 (1988~1989)


1988년 일본의 걸그룹 소녀대를 벤치마케팅하여 당시에는 없었던 최초의 현대식 아이돌형 걸그룹인 세또래의 멤버로 데뷔했다.
하지만 당시 가요시장이 걸그룹이 활동하기 어려웠던 시기였던지라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지 못하고 남학생들의 인기는 얻었지만 여자들에게는 큰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었다. 비슷한 시기 활동했던 김완선이 밝힌 바로 당시 세또래가 소방차와 합동 무대 이후 세또래의 안티들에 의해 밴이 전파되는 사고가 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참고로 김완선도 비슷한 사건을 겪었다. 이후 1989년 2집 요리조리 이리저리를 발매했다.
방송 출연도 꽤나 많이 했었고 회사의 푸시 역시 나쁘지 않았으나, 가수로서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하지만 이들의 등장은 꽤나 강렬해서 아직까지도 40대 이상 세대들은 세또래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결국 2집 활동을 끝으로 멤버 김정임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그룹이 자연스럽게 해체가 되었다.

3. 여성 댄스 듀오 탐탐 시절 (1991)


세또래 해체 후 1991년, 같은 세또래 멤버였던 우윤아와 함께 시티뮤직으로 소속사를 옮기고 그 전과는 다른 성숙하고 여성스러운 컨셉을 내세워 이희정과 우윤아[3]는 이지수, 강현지로 예명을 바꾸고 여성 댄스 듀오 탐탐으로 활동했으나 역시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우윤아가 팀을 탈퇴함으로서 탐탐 역시 해체되었다.
앨범 링크

4. 솔로 가수 이지수로 데뷔하다 (1993~1994)


이희정의 재능을 아까워했던 언더그라운드 제작자 윤등룡이 자신의 소속사 등룡기획[4]으로 캐스팅 해서 탐탐 시절 사용했던 이지수라는 예명 그대로 1993년 1집 앨범 '날 잊었을 그대에게'를 발매했다.링크 뮤직비디오 참고로, 수록곡 중에 강수지가 작사한 곡이 있다. 1994년 2집 '너를 보내며...'를 발매했지만 솔로 데뷔 역시 인기를 끌지 못하고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영상링크
[image]
[image]
여담으로 솔로 가수 이지수로 활동할 당시에는 나이를 1969년 2월 20일생으로 속였었다. 1993년 솔로 데뷔 당시, 토토즐에 출연해 공개된 주민등록증 사진이 그 증거이다. 당시 미스 토토라는 코너에서 20여 명의 여성 연예인이 등장했고 그 중 하나가 이가이였다. 이 당시에는 여자가수들이 1살에서 2살 정도 낮춰서 프로필을 기재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으며, 이가이의 경우는 실제 나이인 1968년에서 한살을 줄인 것을 의식, 빠른 년생으로 바꾸는 치밀함을 보였다. 다만 이 당시의 인지도는 거의 제로에 가까웠기 때문에 조용히 묻혔다.

5. 베이비복스 시절 (1998~1999)


[image]
1997년 베이비복스 1기 멤버로 합류해 데뷔 예정이었으나, 건강 문제로 무산되어 빈자리에 김이지가 합류하게 된다.
1997년 말 베이비복스의 1집 실패로 먼저 탈퇴했던 차유미의 자리에 간미연이 합류한 후 정시운과 정현전마저 탈퇴해버리고 빈자리에 이가이라는 예명으로 심은진과 함께 새 멤버로 합류하였다.[5] 당시 윤등룡 대표는 2집 앨범을 걸밴드 컨셉으로 구상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보컬과 키보드를 맡을 멤버가 필요했는데, 이미 가수 활동 경력도 있는 이가이는 이에 걸맞은 정말 적합한 멤버였다.[6] 당시 솔로앨범까지 냈었고 작곡도 할 줄 알았던 멤버였고, 음색도 괜찮았다.
하지만 합류 당시 그녀의 나이는 무려 31살(...)이었으며 10살을 줄인(!) 1978년생(21살)으로 활동하게 된다. 뼈를 깎는 연습[7] 끝에 드디어 이가이는 1998년 베이비복스 2집으로 화려하게 데뷔하는 데 성공했다. 다른 멤버들과 다름 없이 예쁜 외모였지만, 올드한 분위기 때문에 활동 초반 <야야야> 뮤직비디오 촬영 당시부터 색안경을 쓰고, 방송에서 조차도 색안경을 쓰고 무대에 서는 모습이 많았다. 하지만 색안경을 써도 나이 들어보이는 얼굴은 가릴 수가 없었다는 게 당시 대중들의 반응이었다.
<야야야> 활동 후반쯤 부터 색안경을 조금씩 벗기 시작하더니, 후속곡 <Change> 활동부터는 색안경이 아닌 비니를 쓰고 활동을 시작했는데 문제는 이 때부터였다. <야야야> 때에 비해 급격히 격렬해진 안무를 겨우겨우 따라가는 듯한 모습을 많이 보여 그녀의 부족한 춤 실력과 나이에 대한 의심이 점점 도마 위로 올라오게 된 것. <야야야> 활동 시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안무를 잘 따라갔으나, <Change> 첫 방송부터 안무를 완전히 잊어버려 무대를 망쳐버릴 뻔한 것이다.
다른 멤버들에 비해 심각하게 떨어지는 춤 실력과 남발되는 안무 실수로 인해 팬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았다. 그 후의 <Change> 무대들을 보면 안무를 안 틀린 무대를 찾는 게 힘들 정도로 계속해서 실수를 해 그녀에 대한 팬들의 의심은 점점 커져만 가고, 그렇게 말도 많았던 베이비복스 2집 활동이 마무리 되어 갔다.
다만 이에 대한 반박은 있는데, 오히려 저 <야야야> 때 썼던 색안경하고 비니 때문에 더 내츄럴하고 이질감이 없었다는 주장이다. <Change> 활동 때에 안경 벗고 비니까지 벗었던 버전이 [8] 춤이야 그렇다 쳐도, 비니까지 벗어보이니 나름 괜찮았다고 한다.[9] 사실 다른 멤버들은 완전 맨얼굴인데, 혼자 비니를 썼으니 더 눈에 띄었을 수 밖에...
이 때 팬들에게는 별명이 이모였다고 한다.

6. 나이 탄로 사건 및 베이비복스 탈퇴, 그리고 잠적


2집 활동이 끝난 후 1999년 1월, '''그녀의 실제 나이가 결국 탄로났다.'''
그녀의 등장 시점부터 의심하고 있던 한 팬이 세또래 멤버 이희정과 생일, 학력, 생김새 등을 대조해 여러가지가 일치한다는 점에서 실제 나이를 속이고 연예 활동을 하고 있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모 방송에서 자신보다 11살이나 어린 1979년생인 축구선수 이동국에게 오빠라고 부르며 애교부리는 모습까지 포착됐던 것이다. 당시에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전이라 정보를 알기 쉽긴 어려웠지만, 심지어 당시 알려진 1978년생이었어도 부자연스러운 것이, 그래도 이동국보다 1살 많아진다. 만일 같이 소집된 1977년김남일에게 그랬다면 얼추 맞게는 할 수 있었겠지만[10], 무튼 이 문제 때문에 PC통신에 이가이가 나이를 속이고 활동한다는 장문의 게시글까지 올라오면서, 그녀의 정체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결국 PC통신으로 시작해 신문 보도로 나오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문제의 방송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DR뮤직은 결국 PC통신 팬클럽에 사과문을 올리고 공식 입장을 밝힌다. "이가이는 1988년 데뷔한 세또래 멤버였던 이희정이 맞으며, 실제 출생년도인 1968년생에서 10살을 낮춘 1978년생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시인한다. 소속사는 맏언니로서 팀을 이끌 리더 역할을 할 멤버가 필요했고, 아버지의 병간호로 인한 병원비를 벌기 위해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렇게 이가이는 베이비복스에서 탈퇴했고 연예계에서 완전히 은퇴했다.[11] 다만 힘든 트레이닝 시절부터 어린 멤버들이 믿고 따르던 멤버가 맏언니 이가이라고 밝힌 적이 있어서 이가이를 그리워하는 팬들도 있다.[12] 연예계 은퇴 후 20년 넘게 지난 현 시점에서 그녀의 근황은 어디를 찾아봐도 알 수 없다.
2년 후인 2001년에 박준형의 사례로 이와 같은 일이 한번 더 발생했으나 박준형의 경우 되려 '''god의 팬들이 박준형을 감싸안았다.''' 게다가 나머지 멤버들인 데니 안, 손호영, 윤계상, 김태우는 박준형의 방출이 확정되자 숙소에서 짐보따리를 싸서 야반도주해버렸고 박준형의 방출을 취소해서야 비로소 이들 넷이 숙소로 돌아와서 다시 god 활동을 했을 정도였다. god 자체가 팬덤과 멤버들 간에 의리가 어마어마했다. 박준형과는 굉장히 대조되는 결말인데 이가이와 박준형의 실제 나이도 고작 1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또 더 먼 훗날에는 가희까지 등장했는데, 이 때 애프터스쿨 팬덤에서는 아예 거론 조차 안했으며 셋 모두 30살에 아이돌 활동을 한 것이다. 반대로 10년 뒤에는 민티라는 래퍼한테 비슷한 케이스가 터졌는데, 이때는 욕을 좀 먹었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고등래퍼에 지원하다 걸렸기 때문.[13]
사실 이건 나이가 당사자의 이미지에서 차지하는 지분이 어느정도냐에 따라 갈리는 문제다. 만약 박준형이 10대 아이돌 그룹에 데뷔하여 막 어린척, 귀여운척 하며 "누나~" 하며 애교를 부렸는데 알고보니 30살이었다면 멘붕에 빠졌을 수 있으나, 당시 god 자체가 그다지 어린 나이의 아이돌이 아니었고 좀 성숙하고 파워풀한 이미지였던 데다가 박준형 역시 꽤나 터프한 이미지였고 그 독특한 이미지로 팬들에게 어필하다보니 나이를 속였단 게 밝혀져도 팬들이 딱히 문제삼지 않았다. 가희 역시 독특한 캐릭터와 강한 맏언니 이미지로 팬덤을 만들었기에 나이에 그다지 관심이 없고 오히려 나이 많아도 당당한 모습에 매력을 느끼는 팬들도 많았다. 오히려 성숙미와 리더십과 파워풀한 춤실력으로 팬덤 내에서는 찬사를 받았었다.
애프터스쿨의 경우도 컨셉 자체가 청순 따위 완전히 배제해버리고 오로지 섹시 하나에만 몰빵했기 때문에 가희의 나이가 많든지 적든지 간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고 유이, 나나 등 키 170cm를 넘어가는 멤버들이 과반수일 정도로 엄청난 장신돌이기까지 했다. 특히 극단적으로 각선미를 강조한 덕분에 유이는 꿀벅지로 유명해졌다. 적어도 애프터스쿨은 자신들의 방향성을 제대로 잡았고 그렇게 히트를 쳐서 명실공히 네임드 걸그룹 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베이비복스 자체는 어리고 귀여운 이미지를 어필하는 그룹'''이었다. 멤버들이 다 어리고 멤버 소개영상만 봐도 어린 나이니까 소화가능한 귀여움과 애교를 적극 내세우며 팬들에게 어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이가이도 양갈래머리 등 소녀이미지를 한껏 강조했었는데, 당시 이가이가 다른 멤버들에 비해 그다지 두드러지거나 인기있는 멤버가 아니었고, 오히려 춤을 자주 틀리며 전체적인 안무를 망치는 등의 행위로 다른 멤버 팬들에게 따갑게 눈총을 받고 있던 상태에서 나이를 속인게 들통난 것이니 다른 멤버 팬들에게 집단 다굴당한 면이 있다.
이게 되게 뭐한 느낌인게 2015년으로 따지자면 쏘스뮤직에서 무려 간미연여자친구의 멤버로 발탁한 것 같은, DSP미디어에서 이효리카라의 멤버로, SM엔터테인먼트에서 린아레드벨벳의 멤버로, 예성NCT DREAM의 멤버로 발탁하는 같은 극심한 이질감이다. 참고로 이것은 아주 적절한 비교인게 '''간미연(빠른 1982년생)은 여자친구의 최연소자인 엄지(1998년생)이랑 16년 차이, 이효리(1979년생)는 카라의 최연소자인 허영지(1994년생)랑 15년 차이, 린아(1984년생)과 레드벨벳의 최연소자인 예리(1999년생) 역시 15년 차이인데 이가이(1968년생)와 그녀가 나간 바로 후에 들어온 베이비복스의 최연소자 윤은혜(1984년생)의 나이차가 그것과 엇비슷한 16년이다.''' 즉, 박준형은 '옥의 티'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가이는 '설상가상' 느낌이었던 지라 더 까였던 면이 있다. 마치 평소 호감을 가진 상대가 실수하면 봐줄 수 있지만, 평소 벼르고 있던 상대가 실수하면 '너 잘 걸렸다'라는 식으로 작정하고 까는 그런 상황과 흡사한 면이 있었다. 박준형은 자체 팬덤도 탄탄했기에 적극 쉴드쳤으나, 이가이는 팬덤 자체가 없다보니 쉴드쳐주는 사람도 없었다(...).
2020년대 현재의 31살은 아직 사회에서는 애송이 정도로 여겨지는 나이이고 30대 아이돌도 적지 않지만.[14]90년대 당시의 31살은 사회적 인식이 많이 달랐다. 당시 서른한 살의 반란이라는 드라마는 제목만 봐도 31세의 삶을 대변한다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설정을 보면 주인공이 31살인데 결혼 7년차에 자녀가 둘이라는, 오늘날에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설정을 내세웠다. 오늘날의 31살이 이제 겨우 자리를 조금 잡는 나이거나 늦으면 이제 사회에 발을 내딛는 나이라면, 당시의 31살은 사회인으로서 이미 기반을 완전히 잡아야 하는 나이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는 평균 수명의 증가, 신체 건강의 증진, 사회 환경의 변화로 인한 차이인데, 당시의 31살은 2020년대 초반 기준으로는 40대 초반이라고 봐야 한다.
기획사 입장에서는 결국 다 돈벌자고 하는 짓인데 만약 팬덤이 탈퇴반대를 적극 청원하는 등의 행위를 했다면 여전히 상품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잠시 자숙시킨 뒤에 컴백시킬 수도 있었으나, 그다지 팬덤도 없고 비판여론만 있다보니[15] 컴백시키거나 계속 데리고 있어야할 이유도 없었다. 만약 이가이가 자체 팬덤도 탄탄하고 인기가 많았다면 아마 어떤 식으로든 컴백시켰을 것이다.
이후 이가이의 빈자리를 대신해 윤은혜가 합류했고 윤은혜가 서브보컬 포지션을 잘 소화하면서 결국 이가이는 2집 이후에 완전히 묻혀버렸다. 시대를 잘못 만난 보컬리스트였는데 원조 베이비복스를 아는 사람들은 이 당시 서브보컬인 윤은혜 못지 않게 출중한 실력을 가졌다고 회상하곤 한다.
그 뒤 베이비복스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줄줄이 히트곡을 내고 승승장구하면서, 결국 이 사건은 베이비복스 팬들에게 조차 거의 잊혀진 사실로 남게 되었다.

7. 평가


연예계의 고무줄 나이를 비판할 때 제일 첫머리로 언급되는 인물이지만, 한편으론 초창기 아이돌 문화의 희생양이라고도 볼 수 있다. 1990년대 후반은 막 아이돌 가수들이 태동하던 시기여서 팬층의 연령대가 어린 10대다 보니까 아이돌들도 그와 비슷한 연령대인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갈 수 밖에 없었고, 그런 풍토 속에서 가요계에서 이미 10년 가까이 활동하면서 이렇다할 실적이 없었던 이가이는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 자의든 타의든 나이를 속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전에 비록 폭망의 연속이긴 했으나 꽤 오랫동안 가수 활동을 했던 경력들이 들통 나고 그녀의 실제 나이가 까발려지면서 쓸쓸하게 가요계에서 방출된 비운의 여가수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아이돌 문화의 희생양이라고 하기엔 아이돌 자체가 10대랑 비슷한 또래로서 10대의 문화를 대변해주는 역할을 하는 포지션이므로 굳이 30대의 나이에 10대 후반~20대 초반이 모인 아이돌 그룹에 나이를 속이면서까지 들어간 것 자체가 잘못 됐다고 볼 수 있다. 아이돌 그룹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가수의 한 분야일 뿐 아이돌 그룹이 전부는 아니므로 30대라고 해서 가수가 될 수 없는 것도 아니었기에 굳이 30대에 나이를 속이고 어린 친구들에게 꼽사리 껴야만 했는지는 지금도 미스테리.
외모적으로는 놀랍지 않았는데 이가이는 본나이보다도 나이 들어 보인다는 반응이 많아서 당시에도 용감한 이모라는 반응이 많았다. 특히 30대에 접어든 아이돌 중 여전히 여신급의 외모를 자랑하여 20대 아이돌에게 꿀리지 않는 경우를 고려해보면, 이가이는 당시 31살이라 잘만 꾸미면 묻어갈 수도 있었는데 마치 낭중지추(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유난히 눈에 띄었다(...).
1998년 이가이 영상이다.(맨 왼쪽) 유튜브 영상 댓글 중 압권은 '''"그냥 서 있는것만 봐도 나이든 몸짓이 보이네"'''.


8. 앨범



8.1. 세또래 1집 (1988)


[image]
'''세또래 1집'''
1988. 06. / 한국음반

'''트랙'''
'''제목'''
'''작사'''
'''작곡'''
'''편곡'''
'''1'''
'''그대를 사랑해'''
03:06
이건우
김정택
김정택
'''2'''
우린 아직 어린가요
03:28
이건우
김정택
김정택
'''3'''
어떻게 잊을까
03:09
이건우
김정택
김정택
'''4'''
난 잊을 수 있어 (Over And Over)
03:20
한여임
Poul Chaman[16]
김정택
'''5'''
그대 여기에 (경음악)
03:04
-
김정택
김정택
'''6'''
그대 여기에
03:39
이수연
김정택
김정택
'''7'''
그대의 전화
03:28
임은희
김정택
김정택
'''8'''
행복해[17]
03:30
조영남
Mitchell Green and Catlin
김정택
'''9'''
숙녀처럼[18]
03:19
이건우
B.SteinBerg
김정택
'''10'''
건전가요 (너와 내가)
02:00
-
-
-
타이틀곡 '그대를 사랑해'는 전형적인 틴팝 장르의 곡으로 세또래의 데뷔곡.
이 앨범에는 총 3곡의 팝송 커버가 수록되어 있는데, 훗날 원더걸스의 'Tell Me'로 UCC 열풍을 이어갈 수 있게 해 준 원곡 'Two of Hearts'를 커버한 '행복해', 마돈나를 스타덤에 오르게 해 준 'Like A Virgin' 커버곡 '숙녀처럼', 그리고 '난 잊을 수 있어'.
동료가수였던 높은음자리의 여성보컬 임은희가 '그대의 전화' 작사가로 참여하였다. 프로듀서는 오병화, 편곡 및 음악 프로듀서는 김정택.

8.2. 세또래 2집 (1989)


[image]
'''SAETORAE 2'''
1989. 03. / 한국음반

'''트랙'''
'''제목'''
'''작사'''
'''작곡'''
'''편곡'''
'''1'''
'''요리 저리 이리 저리'''
02:20
이정각
김정택
김정택
'''2'''
시간이 흐르면
03:27
안진우
안진우
안진우
'''3'''
충격이었어
03:52
송재준
송재준
송재준
'''4'''
그대 나의 곁으로
03:55
이정각
김정택
김정택
'''5'''
생일 축하합니다
03:49
안진우
안진우
안진우
'''6'''
이 밤 가득히
03:16
이정각
김정택
김정택
'''7'''
어느 날 우연히
02:50
이정각
김정택
김정택
'''8'''
떠나는 거리에서
04:09
이정각
김정택
김정택
'''9'''
사랑하는 세상
02:52
안진우
안진우
안진우
'''10'''
사랑해요
02:59
이정각
김정택
김정택
1집에서 커버곡이 3곡 들어간 것에 비해, 2집에서는 모든 곡을 창작곡으로 채웠다. 타이틀곡은 '그대를 사랑해'를 만든 김정택이 작곡하였고, '그대를 사랑해'보다 짧은 활동을 하고 들어갔다. 이 앨범의 특징은, 훗날 작곡가이자 가수로 활약했던 송재준과 안진우의 초창기 작품이 들어있는 것인데 두 사람의 이후 음악적인 세계를 잠시나마 엿볼 수 있어 중요한 앨범이다.

8.3. 탐탐 1집 (1991)


[image]
'''For A Wonderful Time With TAM TAM'''
1991. 04. / 시티뮤직, 도레미레코드사

'''트랙'''
'''제목'''
'''작사'''
'''작곡'''
'''편곡'''
'''1'''
'''얘기하지 그랬어'''
03:54
김창남
김창남
유영선
'''2'''
내가 선택한 고독
03:41
이건우
김창남
유영선
'''3'''
추워
03:36
김창남
김창남
유영선
'''4'''
하지만
03:21
이지연
김창남
유영선
'''5'''
얘기하지 그랬어 (반주용)
03:54
-
김창남
유영선
'''6'''
'''난 참 바보야'''
03:40
이건우
김창남
유영선
'''7'''
나의 사랑이야기
03:45
지평권
지평권
유영선
'''8'''
그렇게 그렇게
03:11
김창남
허건웅
유영선
'''9'''
숙녀
03:30
이건우
김창남
유영선
'''10'''
울지 마 바보야
03:05
김창남
김창남
유영선
김정임이 이민을 가는 바람에 세또래의 남은 두 멤버가 소속사를 옮기고 발매한 앨범. 탐탐이라는 팀 이름과 멤버들의 다른 이름에도 세또래 팬들은 대부분 탐탐의 멤버가 세또래 멤버임을 알았다고 한다. 도시아이들 멤버이자 작곡가와 키보디스트로 활약했던 김창남의 소속사 시티뮤직에서 발매한 만큼 김창남의 프로듀싱이 빛나는 앨범이다. 숙녀 컨셉, 인도 여인 컨셉 등등 다양한 컨셉을 무대에서 소화했으나 별 재미를 못 봤다. 편곡은 유영선이 모두 도맡아했으며, 이지연 3집 수록곡 '하지만'의 리바이벌 곡과 드라마와 영화 음악감독으로 훗날 유명해지는, '창가의 이별'의 신인가수 지평권이 준 곡도 있다.
[image]
앨범 커버와는 별개로, 속지의 컨셉 사진으로 홍보를 했으면 탐탐이 더 떴을 지 모를 만큼 소속사의 홍보가 아쉽다.

8.4. 이지수 1집 (1993)


[image]
'''날 잊었을 그대에게'''
1993. 03. / DR뮤직, 아세아레코드

'''트랙'''
'''제목'''
'''작사'''
'''작곡'''
'''편곡'''
'''1'''
'''날 잊었을 그대에게'''
03:38
안진우
안진우
안진우
'''2'''
날 기억해 줘
04:14
함경문
정성헌
정성헌
'''3'''
다시 만날꺼야[19]
03:36
함경문
정성헌
김효국
'''4'''
처음 본 그대 눈물
04:07
강은경
이희정
김효국
'''5'''
말해 줄 꺼야[20]
03:55
정성헌
정성헌
정성헌
'''6'''
너를 사랑해
04:17
김효국
김효국
김효국
'''7'''
그대는 두려워하지만
03:53
강은경
이희정
김효국
'''8'''
마음의 선물
03:50
함경문
정성헌
김효국
탐탐의 실패 이후 이지수는 당시 빛과 소금, 김태욱 등의 언더그라운드 가수를 매니지먼트하고 있던 윤등룡에게 픽업되어, DR뮤직[21]에서 솔로 앨범을 2장 발매하게 되었다. 세또래에서의 인연으로 솔로앨범의 타이틀곡을 안진우가 맡아주었으며, 그룹 11월의 키보디스트 김효국과 솔로가수/작곡가로 여러 가수들에게 인정받고 있던 정성헌과 그의 파트너인 작사가 함경문, 그리고 나중에 유명 히트곡 작사가로 유명해지는 작사가 강은경이 곡에 참여하였다.
이지수는 여기서 두 곡의 자작곡을 선보이며 싱어송라이터의 기질을 뽐내는데,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특기였던 피아노와 작곡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이희정'이라는 본명으로 앨범에 수록하였다.

8.5. 이지수 2집 (1994)


[image][22]
'''너를 보내며...'''
1994. / DR뮤직, 아세아레코드

'''트랙'''
'''제목'''
'''작사'''
'''작곡'''
'''편곡'''
'''1'''
'''너를 보내며'''
04:26
강수지
박청귀
박청귀
'''2'''
이제는 지울래
-
장대성
이희정
박청귀
'''3'''
나는 못 속여
-
장대성
이희정
박청귀
'''4'''
너를 보내며 (연주곡)
04:26
-
박청귀
박청귀
'''5'''
너를 사랑해
04:17
김효국
김효국
김효국
'''6'''
날 잊었을 그대에게
03:38
안진우
안진우
안진우
'''7'''
날 기억해 줘
04:14
함경문
정성헌
정성헌
'''8'''
다시 만날 거야
03:36
함경문
정성헌
김효국
타이틀곡은 '너를 보내며'였고 동료가수 강수지가 오랜 인연으로 작사가로 참여하였다. 강수지는 친한 동료 연예인이 아니면 가사를 잘 안 주는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이었다.[23] 이 앨범에도 역시 이지수의 자작곡 2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훗날 유명 아이돌들의 노래에 예쁜 가사로 인기를 얻은 작사가 장대성의 2작품도 주목할 만 하다. 신곡 모두를 기타리스트 박청귀(아라이)가 편곡하였다. 뒷면의 4곡은 모두 1집에서 발표했던 곡들이었다. 타이틀곡으로는 댄스팀 마이미를 결성해서 짧은 활동을 했다. 특이사항은, 94년 4월 제작된 앨범임에도 심의번호가 9303-3464~3471로 되어있는데 이것의 의미는 2집의 수록곡들이 원래 1집에 수록될 예정이었다가 탈락되고 신곡 4곡으로 앨범을 내긴 뭐해서 기존 곡들을 재탕한 것으로 보인다.

8.6. 베이비복스 2집 (1998)




[1] 베이비복스 활동 당시 프로필 사이즈이며, 세또래 활동 당시 프로필에는 멤버 전원이 159cm의 같은 키라고 소개 되었었다. 연예인들의 신체 사이즈 조작은 지금도 흔히 있는 일이고, 실제 키는 150cm 후반이나 세또래 때 프로필 상의 159cm 정도로 추정된다. 나머지 베이비복스 멤버들이 170cm를 전후하는 장신들인 것을 감안하면 많이 대조된다.[2] 베이비복스 활동 당시 포지션[3] 세또래로 데뷔 이전에 심형래 주연의 우뢰매에서 보미역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었다.[4] 참고로 이 회사가 후에 베이비복스를 제작한 DR뮤직이다. 2010년대 들어서는 라니아의 소속사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5] 솔로활동이 끝난 후에도 DR뮤직 소속으로 계속 남아 있었다.[6] 걸밴드 컨셉은 결국 무산 되고 정반대 노선인 틴팝으로 바꾸어버렸다.[7] 안무 연습을 하다가 큰 부상을 당해서 초기 멤버로 합류하지 못 했다고 한다. 사실 세또래 때는 '''백덤블링'''까지 했던 멤버였으니..[8] 현재 삭제된 동영상[9] 비니가 나이를 들어보이게 한다는 건 이미 룰라가 보여줬다. 1집 후속곡 도중에 군대에 끌려간 신정환을 대신해 들어온 채리나는 고작 17살이였는데, 나이 들어보이게 하기 위해 비니와 선글라스(레옹에서 레옹이 쓰던 그 선글라스.)를 씌웠다고.[10] 물론 그래도 김남일이 이가이보다 9살이나 어렸기에 나중에 들켰어도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이가이가 당시 얼마나 나이가 많은 편이었냐면, 1968년생 황선홍과 동갑, 1969년홍명보보다 1살 연상이었다.[11] 탈퇴 당시 눈물의 기자회견을 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 회견이 있었는지는 어디에도 자료가 확실하게 남아있지 않다.[12] 연습생 시절 부상을 입어 데뷔하지 못 한 멤버가 있었는데, 그 게 이가이라는 게 전설. 세또래 활동 당시 멤버들과 함께 뒤에서 '''백덤블링''' 같은 아크로바틱 댄스도 추던 사람이 갑자기 저렇게 못 춘 거라면 그 이유 밖에 없었다. 뭣보다 간미연이 후배였던 디바한테 욕 먹고 울었을 일도 없었을 거고.[13] 후술하겠지만 이가이처럼 어리고 귀여운.. 까지가 아니라 아예 미성년자 컨셉으로 로리타 이미지를 어필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심지어 민티는 데뷔 시점에서 이미 다른 걸그룹 제작까지 맡고 있었다. 문서 참고[14] 2020년대 시점으로 1990년대 초반생들이 30대에 접어들고 있는걸 보면 시우민(EXO), 이민혁(BTOB)(1990년생), 아이린(레드벨벳), 민호(샤이니)(1991년생), 문별(마마무), (방탄소년단)(1992년생) 등 과거보단 30대 아이돌들이 적지않게 많아졌다.[15] 당시 베이비복스는 팬 빼고 다 안티라 할정도로 유독 안티팬이 많았던 그룹이었다.[16] Paul Chapman의 오타이다[17] Stacy Q의 Two of Hearts 커버곡. 해당 곡은 원더걸스의 'Tell Me' 샘플링으로 한 번 더 유명세를 탔다. 원곡 뿐만 아니라 세또래의 곡마저도.[18] 마돈나의 Like A Virgin 커버곡[19] 맞춤법으로는 '다시 만날 거야'가 맞다[20] 맞춤법으로는 '말해 줄 거야'가 맞다[21] 당시에는 등룡기획이라는 이름이었다. 당연히 소속사 대표이사인 윤등룡의 이름을 땄다.[22] 1집 앨범의 뒷자켓 사진을 재탕하였다.[23] 앨범을 들어보면 창법이 강수지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