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제(유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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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중국 남북조시대 유송(劉宋)의 제8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 묘호는 없고, 시호는 순황제(順皇帝).[2] 휘는 유준(劉準). 재위 기간 내내 승명(昇明)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문제는 이 아이가 송 황실 중에서 개념인인 편이었다는 것. 물론 꼭두각시 황제가 개념이 있어봤자 답이 없었겠지만.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혼란기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황제다.
2. 생애
태시 5년(469년) 7월에 태어났으며 명제 유욱의 3남으로 의모는 진씨[3] 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계양왕 유휴범의 아들이었다. 소도성은 후폐제 유욱의 동생이자, 송 명제 유욱의 셋째 아들이었던 안성왕, 양주 자사, 표기장군이던 유준을 옹립했다. 하지만 호칭만 거창했지 꼴랑 8세의 어린아이에 불과하였다.
송 순제 유준은 용모가 단아하고 눈썹이 마치 그린 것처럼 멋이 있었는데 문제는 표기대장군, 사공, 녹상서사였던 소도성의 허수아비이자, 꼭두각시였다는 것. 소도성은 제공(齊公)에 올라 구석을 하사받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제왕(齊王)이 되었다. 중서감 원찬과 상서령 유병은 소도성이 권력을 장악하자 거사를 하려다가 패전하여 자살했다. 이렇게 해서 소도성에게 맞서는 세력은 없어졌다.
승명 3년(479년) 4월에 강압에 의해 선양한다는 조서를 내렸다. 결국 선양하던 날 불상 아래에 숨어 있다가 수색당하자 나오며 '''나를 죽일 건가?'''라고 물었는데 군대를 인솔하던 직각장군 왕경칙은 '''죽이진 않을 겁니다. 사실 폐하의 조상도 사마씨에게 이러지 않았습니까?'''라고 했다. 이에 순제는 '''아니, 그대들은 반드시 날 죽일 것이야. 내가 내세에 태어난다면 천자의 가문에서 태어나지 않기를 바란다(願後身世世, 勿復生天王家).'''[4] 라고 하니 궁중 사람들이 슬프게 울었다.[5] 결국 선양한 다음 여음왕으로 강등되어 단양궁에 유폐되었다가 한 달도 안 되어 10세에 살해당했다.
비록 7월에 황제의 예로 수녕릉에 안장되었으나 제(齊)나라로 이어진다.
3. 둘러보기(계보)
[1] 삼국시대 오의 초대 황제 손권과 자가 같다.[2] 반항하거나 유혈사태 없이 평화적으로 순순히 선양해 줬다는 의미이지만 결과는 안습.[3] 이름은 진법용.[4] 딱 800년 후인 1279년 남송의 마지막 황제 소제 역시 '''내 다시는 제왕의 핏줄로 태어나지 않으리라'''는 말을 남기고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공교롭게도 나라 이름도 같은 송(宋)나라에, 나이(유송 순제 만 9세, 남송 소제 만 7세), 죽기 전에 남긴 말까지 비슷하다.[5] 자치통감에 주석을 단 원나라 호삼성은 '''이때부터 선양한 임금이 천수를 누린 사례는 없었다'''라고 기록했다. 사실 정확히는 유준의 증조 할아버지 무제 유유가 동진 공제를 죽인 것부터 봐야 된다. 물론 이 문장은 길게 봐서는 틀린 문장이다. 송나라(조송)의 예가 있었으니까. 후주의 공제 시종훈은 단명했으나, 남송이 망하는 날까지 그의 후손은 후대를 받았다. 하지만 이것도 완전 사실은 아니니, 공제 시종훈은 자손도 못 남기고 마음고생 하다가 20세에 죽고, 그 동생들도 모두 성을 바꾸었다. 아래의 시씨 가문은 공제의 할아버지 시수례의 자손들이다. 어쨌든, 이 시씨 일족은 남송 최후의 전투인 애산 전투에까지 함께 하다가 남송과 함께 몰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