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원류고

 

滿洲源流考
1. 개요
2. 상세
3. 신뢰성 문제
4. 참고


1. 개요


'''만주'''족의 '''원류'''를 '''고'''찰한 책. 만주족의 청 제국 황제 건륭제의 명으로 편찬되었다. 만주원류고 혹은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 만주사이 다 서키옌히 킴친 비트허)라고 한다. 흠정(欽定)은 황제의 판단, 또는 판단한 것을 가리키는데 흔히 책의 명칭에 붙이곤 했다. 즉 '흠정'이란 단어가 제목에 들어간 책은 황제가 내용에 직접 관여하여 편찬한 것이다.

2. 상세


만주의 여러 부족 및 풍속·지리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선 만주의 원류로 읍루, 물길, 완안 같은 숙신계 종족들은 물론 친척뻘인 옥저, 부여, 발해도 다루고 있고, 심지어 백제, 신라를 포함한 삼한까지 만주의 원류 중 하나로 고찰하고 있다. 대강 구성에 대해 설명하자면 여지껏 작성된 사료들을 모조리 모아놓고, 청 제국의 사고전서 학자들이 이를 통해 자신들의 견해를 밝히는 형식이다.
헌데 특이하게도 이 책에선 거란이나 선비, 몽고몽골계 부족이나 '''고조선, 고구려는 자신들의 원류로 보고 있지 않다.'''[1] 거란, 선비, 몽고야 만주족과 치고 박은 몽골계이니 그렇다쳐도 삼한까지 끌어오는 판에 만주 한복판에 자리잡았던 고조선과 고구려가 안나온다는 점은 좀 특이하다. 이에 대해 여진족의 조상격인 말갈족이 고구려에게 복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설이 있다. 즉, 고조선과 고구려를 포함시켰다가는 만주사를 자신들 중심으로 풀어나갈 수 없기 때문에 배제했다는 것이 논리적으론 그럴듯해 보인다.[2] 그리고 당시 청나라의 제후국인 조선 때문에, 조선이라는 이름의 유래인 고조선[3]과 바로 전 왕조인 고려[4]의 유래인 고구려[5]를 다루기가 껄끄러웠을 것이다. 고조선과 고구려를 만주족의 원류로 인정하면 제후국 조선과 자신들의 서열이 뒤집히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반대로 발해는 굳이 만주원류고가 아니더라도 만주족의 역사로 자주 다루어진다. 건국과정에서 대걸걸중상과 함께 싸운 걸사비우가 말갈을 이끈 것으로 나오는 것은 물론, 말갈 7부가 고구려의 천하관 안에 속해있던 것과 달리 발해는 건국자 대조영속말말갈이자 고구려의 별종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말갈이 주체가 된 역사로 해석할 여지가 있으므로 발해도 만주의 원류로 고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6]

3. 신뢰성 문제


만주원류고는 비록 청나라 황실의 주도하에 편찬된 관찬사서이기는 하지만, 아직 현대 역사학이 발달하기 이전 전근대에 무리하게 짜맞춘 여러 내용들이 현대에 들어서는 그 역사적 진실성을 크게 의심받고 있다.
일부에선 삼한까지 만주의 원류로 적은 일종의 역사왜곡 때문에 원조 동북공정으로 보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 숙신, 읍루, 말갈 등에서 보듯 만주족은 읍루 시절에는 부여의 종속세력이었다가, 말갈 시절에는 고구려의 종속세력[7]이었다가 하다보니, 삼한을 자기네들 역사라 우기게 된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혹은 반대로 만주의 길림이라는 지명이 신라의 계림이라는 식으로 지나치게 음상사에 치중하기도 하고, 요서경략설, 삼한이 만주에 있었다는 설 등을 지지하고, 금나라의 시조 완안함보신라 출신이니 금나라 국호도 신라 왕성인 김(金)에서 유래한 것 아니냐는 추측 등을 쏟아내 한국의 환빠들을 취하게 하기도 했다.
다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만주족 사관 입장에선 당시 한족 역사를 어느정도 깎아내릴 필요가 있었을테고, 조선 역시 당시엔 자신들에게 조공을 바치는 나라였으니 맘껏 이용해먹은 측면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일종의 만주족 버젼 국빠짓을 했던게 아니냐는 것. 사실 후술되어있지만 만주원류고에 나온 상당수 주장들은 이를 뒷받침할 고고학적 증거가 없다는 취약점이 있다. 비록 현대의 위서는 아니지만, 이런 성격 때문에 만주원류고는 환빠들의 단골집 중 하나다.[8][9]
특히 이는 중국 학계에서 만주원류고를 주요 사서로 많이 다루지 않는 이유이기도 한데, 우선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고고학적 성과가 거의 없고, 편찬 과정에서 청 황실에 의해 많은 기록 왜곡과 삭제가 이뤄진 정황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청은 이전 시기 여진족에 대한 기록들을 정리하면서 여진족이나 청 황실에 불리한 내용들은 상당수 축소하거나 개찬하는(혹은 반대로 한족 역사는 상대적으로 폄하하는) 과정을 거쳤는데, 만주원류고도 이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허나 어찌됐든 청나라란 국가 주도하에 편찬한 사서기 때문에 아예 언급할 가치도 없다고 이야기하긴 무리라는 의견도 있다. 적어도 건륭제가 직접 지으라 지시한 청 시기 주요 서적이라는 것. 또 한족 중심 사관에서 벗어나 만주족 시각으로 편찬된 책이라는 부분은 일정 부분 의의가 있어 보인다. 물론 가장 객관적인 것은 제3자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겠지만.
애초에 역사책이라기보단 여러 주장을 다 실어둔 연구 논문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 고대사도 마찬가지지만 자료가 부족하다 보니 당시 있던 자료는 일단 다 긁어모은 것일 뿐이라는 것.
다만 고구려를 퉁구스계 만주족 역사로 주장하는 것을 반박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한반도 국가조차 만주족 역사로 짜깁기할 정도로 범위를 넓게 잡은 만주족 측 기록에서조차 고구려를 만주족의 역사로 보지 않는다는 점은 고구려 = 퉁구스계 만주족이라는 주장을 반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만주원류고는 만주의 패권국인 고구려의 흔적을 지우고 그 빈자리에다가 신라를 끼워 넣기도 했다.
그리고 만주족들이 부여,백제[10],신라,삼한을 자신들의 조상일 수 있다는 논의를 했다는 것을 통해 이들 국가를 한족들의 속국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나름 가치있는 역사로 보았다는 당시 만주족의 인식을 분석할 수 있다.[11]

4. 참고


  • 네이버 책정보: 목차를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상기되어 있듯 이 책에 나온 상당수 주장들의 경우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에 그 주장을 그대로 차용한 듯한 추천평은 걸러듣는 것이 좋다.

[1] 다만 만주족의 원류로 보기 힘든 탁발선비의 경우 자신들의 선조 아닐까 하는 간접적인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다.[2] 참고로 말갈족 항목에도 있지만, 말갈족이라고 다 같은 동질성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고구려에 동화된 백산말갈, 속말말갈 부족도 있었고, 반대로 끝까지 동화를 거부한 흑수말갈 부족도 있는 등 각각 케이스가 달랐다. 금나라는 후자쪽.[3] 유래 정도를 넘어서 고조선의 원래 이름이 그냥 조선이다. 현대인들이 시대를 구분하기 위해 고조선, 단군조선, 위만조선 등의 표현을 만들어 낸 것이다.단 고조선이란 표현은 고려말 일연대사가 저술한 삼국유사에서 최초로 언급된다. 옛조선이란 의미로 파악된다.[4] 고려가 망하고 조선으로 바뀐 뒤에도 이웃나라들은 계속 고려라고 부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조선의 전신이 고려라는 건 명백하게 인지되고 있었다. 청나라 때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현재도 중국 한족들 사이에서 한반도 사람들이나 조선족을 비하하는 말이 가오리방쯔(고려봉자)인 것만 봐도 중국에서 고려라는 이름이 명백하게 한반도 국가를 가리킨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5] 게다가 고구려는 장수왕 이래로 국호가 '고려'로 바뀌었다는 게 정설이다. 장수왕 때부터 중국 사서에 고구려가 아닌 고려로 기재되고 충주 고구려비처럼 당대 고구려인이 세운 비석에도 국호가 떡 하니 고려로 기재돼 있다. 그래서 당대 중국인들은 (실제론 일종의 착각이지만) 고주몽이 세운 고구려와 왕건이 세운 고려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진 한 나라인데 단지 왕의 성씨가 고씨에서 왕씨로 교체된 걸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송나라 사신이 쓴 고려도경, 청나라 때 편찬된 명사에도 조선의 전신인 고려에 대해 그렇게 적어 놨을 정도로 이 관념은 매우 뿌리가 깊었다. 따라서 청나라가 고구려를 만주족의 원류로 거론하면 자연히 당대에 조공을 바치는 나라였던 조선을 연상시키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 (한국사를 잘 모르는 당대의 중국인들 시각에서) 조선과 역사적으로 바로 연결이 안 되는 신라를 거론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6] 하지만 말갈족 가운데서도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세력(백산,속말)과 고구려의 영향과 동떨어진 세력(흑수)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전자는 발해, 후자는 여진->만주족이라는 것.[7] 문자명왕 시기 북벌을 통해 말갈의 복종을 받아냈다. 또한 그 이전에도 문화&경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8] 비슷하게 이용당하는 책으로 요사가 있다.[9] 하지만 만주원류고를 이용해서 만주족과 한민족의 연관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한민족에게 딱히 유리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한민족의 역사가 만주족의 역사에 종속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애초부터 그러한 목적으로 만든 서적이기도 하고.[10] 물론 이들은 예맥계고 만주는 숙신계열이다.[11] 과거 한국인이나 일본인들이 자신들을 중국인들의 후예라는 식으로 주장했다는 것을 통해 중국 문명을 동경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