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동(강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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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특별시 강남구의 법정동 겸 행정동이다.
서울특별시 은평구의 법정동 겸 행정동, 관악구의 행정동에 동일 지명이 있으나 거기 동네들의 비해서는 인지도가 압도적으로 높다. 신사동하면 대부분 이곳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니....
명칭은 한강변에 있었던 자연 마을인 새말(新村)의 '신'자와 사평(沙平)의 '사'자가 합쳐진 것에서 유래되었다. 새말은 한남대교 남쪽에 새로 형성된 마을[2] 이라고 해서 명칭이 붙었다. 사평은 한강변에 모래가 펼쳐져 있어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이 지역에 고려시대부터 사평원[3] 이라는 주막이 있었고 시장이 있었으며 한강 건너편으로 가는 나룻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마을은 사라지고 모래벌만 남아 모래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962년까지는 경기도 광주군(현 광주시) 언주면 소속이었다. 1963년 1월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었다. 1975년 10월부터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속하였다. 1980년 행정동 압구정동이 분동되었다.
압구정동과 법정동 경계(압구정로), 행정동 경계(논현로)가 다르므로 주의를 요한다.
2. 생활
주거지역보다는 상업지역의 이미지가 강한 곳으로, 일반적인 아파트 단지는 거의 없으며 주거용 건물도 고급빌라나 단독주택, 원룸 건물이 주를 이룬다. 아파트 단지는 바로 옆의 압구정동에 밀집해 있다.
라까사 호텔이 한남대교 남단에 자리잡고 있다. 신사역 8번 출구 주변에는 음식점이 많이 위치해 있다. 가로수길(IBK 기업은행 신사동 지점에서 신사동 주민센터까지의 도로)은 압구정 로데오 상권의 임대료 상승으로 상점들이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본래 소규모 카페, 의류상점이 있던 소소하고 조용한 곳이었으나 상업화가 진행되면서 프랜차이즈 카페, SPA 매장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소규모 상점들은 세로수길로 불리는 가로수길 양 옆의 골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전에는 갤러리들도 꽤 있었으나 상업화 이후로는 거의 사라졌다. 핸드백 전문 제조업체인 시몬느사에서 설립한 시몬느 핸드백 박물관이 가로수길 내에 있다. 앙드레 김의 샵도 신사역에서 을지병원 방향으로 가다 보면 찾을 수 있다. 이곳에 위치한 학교는 신구초등학교가 유일하며, 압구정역 4번 출구에서 논현로를 따라 성형외과가 밀집해 있다. 광림교회 건너편에 뮤지컬 전용극장인 BBC씨어터가 2013년 11월 개관했다. 국대떡볶이 신사본점(1호점)도 이곳에 있다. 야구선수 박찬호의 빌딩이 강남을지병원 건너편에 있다.
국내 Apple Store 1호점인 Apple 가로수길이 이곳 신사동 가로수길에 문을 열었는데, 무려 '''20년치 임대료로 600억을 일시불로''' 지불했다고 한다. 원래도 가뜩이나 임대료 비싼 동네였는데 이로인해 덩달아 주변 상가 건물 임대료도 미친듯이 폭등할 기세를 보이고 있으며,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이 우려되고 있다고 한다.
도산공원이 있다.
안다즈 강남 호텔이 들어섰고 블루보틀 압구정 카페는 1층에 입점하였다.
3. 주요 시설
3.1. 기업
3.2. 주거
- 중앙건설 압구정하이츠파크 - 2004년 4월 입주 86세대
- 대원건설 대원칸타빌아파트 - 2001년 7월 입주 130세대
- 신성건설 압구정신성아파트 - 1996년 10월 입주 55세대
- 삼성물산 래미안신사 - 2008년 10월 입주 63세대
- 현대건설 현대맨션 - 1981년 9월 입주 138세대
4. 사건사고
1998년 사바이 단란주점 살인사건이 일어난 지역이다. 잔혹하고 충격적인 범행으로 3명이 사망하고 1명이 중상을 입은 사건이다. 2016년 2월 27일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해당 사건을 다루었다.영상
5. 기타
신사동호랭이(본명 이호양)의 이름 유래가 된 곳이다. 김건모와 온라인 게임을 할 때 김건모의 별명이 양재동 건모였는데, 당시 작업실이 신사동에 있었던 것을 감안해서 예명을 그렇게 지었다고...
주현미의 히트곡 '신사동 그사람'에 등장하는 장소도 이 강남구 신사동이다.
[1] 2021년 1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2] 지금의 신사동보다 서쪽 지역에 마을이 있었는데 홍수로 침수되어 동쪽에 새로 마을을 지었다고 해서 새말이라고 한다. 한자로 음차하여 신촌이다.[3] 고려 후기 이규보가 남긴 시도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