쑨지하이

 

'''Manchester City Football Club Ambassador'''
'''이름'''
'''쑨지하이
孫繼海 / Sūn Jìhǎi'''
'''출생'''
1977년 9월 30일 (47세) /
중국 랴오닝 성 - 다롄
''' 국적'''
[image] 중국
''' 신체'''
183cm
''' 직업'''
축구선수(수비수[1] / 은퇴)
축구코치
''' 소속 '''
<colbgcolor=#98c5e9> ''' 선수 '''
'''다롄 완다/다롄 스더 (1995~2002)'''
크리스탈 팰리스 FC (1998~1999 / 임대)
'''맨체스터 시티 FC (2002~2008)'''
셰필드 유나이티드 FC (2008~2010)
청두 톈청 (2009 / 임대)
구이저우 런허 (2010~2014)
충칭 리판 (2014~2015)
베이징 런허 (2016)
''' 지도자 '''
중국 U-21 대표팀 (2018~2019 / 코치)
''' 국가대표'''
80경기 1골(중국 / 1996~2008)
1. 소개
2. 선수 경력
3. 중국으로 복귀한 이후
4. 국가대표 경력
5. 평가
6. 수상
6.1. 클럽
6.2. 개인


1. 소개


중국의 전 축구선수. '''중국 축구 역사상 가장 성공한 선수이자 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이다.'''[2] 대부분의 중국 선수들이 적응에 실패하고 쫒겨나다시피 했던 유럽 프로축구에서 유일하게 자리를 잡고 인정받은 인물이다. 경력만 놓고 보면 향후 중국에서 쑨지하이를 넘어설 만한 선수는 없을 정도. 그나마 2020년 현재는 우레이가 그 아성에 도전하는 중이나, 아직 부족하다. 주포지션은 측면 수비수였다.
그는 2002년부터 2008년까지 맨체스터 시티 FC에서 활약하며 역대 중국 선수들 중 EPL에서 가장 오랫동안 활약한 중국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데려온 선수일 뿐이라는 오해도 있지만, EPL에서 130 여경기나 출장하며 쏠쏠한 활약을 한 것을 보면 단순히 마케팅용 선수라고 볼 수는 없다. 사실 박지성도 처음 맨유에 입단했을 때 비슷한 소리를 듣기도 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인성이 훌륭해서 중국의 후배 선수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으며 같은 아시아계 선수들에게도 귀감이 되었다. 한국에서의 이미지도 비교적 좋은 편이다.

2. 선수 경력



2.1. 다롄 스더/크리스탈 팰리스 FC (1995~2002)


[image]
선수생활 초기의 다롄 완다시절의 쑨지하이
쑨지하이는 1995년 18살의 나이에 중국 슈퍼리그의 명문 구단인 다롄 완다에 입단했다.(이 구단은 스더그룹에 넘어가서 2000년부터 다롄 스더라고 이름을 바꾼다.) 1995년 5월 28일에 데뷔전을 치렀다. 다른 뛰어난 중국 선수들이 그랬듯 이 그도 브라질의 중국 유스 트레이닝 캠프에 들어가서 가르침을 받고 싶어했다. 그러나 잠재 기량이 부족하다는 판정을 받고 캠프에 입소하지 못했다.
이에 쑨지하이는 크게 실망했지만 곧 보란듯이 성공하겠다는 생각으로 악착같이 연습했다. 이러한 노력은 빛을 발휘했고 얼마 안가 리그 최고의 탑풀백으로 거듭났다. 그는 좌우측 풀백을 모두 소화하며 4년간 71경기를 소화하고 1골을 기록했으며 매 시즌 10개 이상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에이스로 거듭났다. 다롄 스더는 쑨지하이의 활약을 앞세워 리그에서 2번 연속 우승했고(1996년, 1997년) 중국 슈퍼컵도 1997년에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이렇듯 엄청난 활약을 선보인 쑨지하이를 맨처음 주목한 팀은 크리스탈 팰리스 FC였다. 1998년 8월, 쑨지하이는 크리스탈 팰리스와 1년 임대 계약을 체결했다. 프리미어 리그 역사상 최초의 중국 선수였다. 1998-99 시즌 리그컵 대회에서의 데뷔전을 시작으로, 크리스탈 펠리스에서 전반기 23경기를 모두 선발 출전하여 좋은 활약을 해줬다.
그러던 중 다롄이 리그에서 꼴지로 추락하자, 쑨지하이는 1999년 1월에 임대 복귀하여 팀을 꼴지에서 구원했고 이후 2000년에 24경기 2골, 2001년에 28경기 3골을 기록하며 팀의 2연패에 절대적으로 공헌했으며 중국 FA컵에서도 2001년에 우승을 차지했다.

2.2. 맨체스터 시티 FC (2002~2008)


[image]
중국에서 이룰 걸 다 이뤘다고 판단한 쑨지하이는 2002년 2월 2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했다. 그는 코벤트리 시티를 상대로 4:2로 승리한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뤘다. 그는 이 경기에서 탁월한 수비력과 공격적인 태클을 선보이며 시티 팬들을 만족시켰다. 이후 그는 '''로테이션급 선수'''로서 간헐적으로 출전하였고 그때마다 좋은 경기력을 선보여 맨시티 팬들로부터 2002년 9월 이달의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쑨지하이는 이 시기에 버밍엄 시티와의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며 팀의 2:0 승리에 기여했다. 이로서 그는 EPL 역사상 최초로 골을 기록한 중국 선수로 기록되었다.
쑨지하이는 2002-03 시즌에 리그 28경기, FA컵 1경기, 리그 컵 2경기를 포함하여 총 31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하며 '''훌륭'''한 활약을 선보였다. 또한 2003-04 시즌에, 그는 이전 시즌보다 더욱 좋은 활약을 선보였다. 리그 33경기, FA컵 3경기, 리그컵 1경기, 그리고 유럽 대회에 5경기를 출전하여 총 42경기에서 2골을 기록했다. 경기 수만 봐도 알겠지만 그는 이 시기 로테이션을 넘어 주전 멤버로 자리잡았고 팀내 수비진 중 수비력이 좋은 편에 속했으며 성실한 플레이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2004-05 시즌 리그 6번째 경기에서, 그는 선수 경력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첼시의 공격수 아이두르 구드욘센이 깊은 태클을 가하는 바람에 십자인대가 끊어지고 만 것이다. 그는 결국 리그를 조기 마감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쑨지하이는 '''부모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으며 재활훈련을 무사히 치르고 2005-06 시즌에 로스터에 합류하는데 성공했다.
쑨지하이는 2005-06 시즌에 리그 29경기에 출전하였지만 이전에 비해 기량이 많이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3] 이후 쑨지하이는 2006-07 시즌에 주로 '''교체'''로 13경기 출전했고 2007-08 시즌에도 '''교체 멤버'''로서 14경기에 출장했다. 2007-08 시즌이 끝난 뒤 그는 재계약 불가라는 팀의 통보를 받고 2008년 6월 2일에 챔피언십 팀인 셰필드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했다.

맨체스터 시티 시절 영상으로는, 풀햄과의 경기에서 공격 가담에 나선 GK 데이비드 제임스가 상대 페널티 박스에서 클리어링 미스를 내자 전력질주 후 다이빙 발리로 상대의 슈팅을 걷어낸 장면이 있다. 조 하트의 우사인 하트 사건보다 먼저 있었던 일. 맨시티 TV와의 인터뷰에서 쑨지하이 본인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2.3. 셰필드 유나이티드 FC (2008~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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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지하이는 셰필드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뒤 카드를 많이 받아 출전 정지 징계를 몇번 받은 것 빼고는 어느 정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11월 이후 부상이 재발하는 바람에 제대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후반기에 들어서는 경기를 거의 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리그에서 겨우 12경기를 출전했다. 이후 쑨지하이는 중국으로 복귀하기를 희망했고 2009년에 중국 슈퍼리그 소속 클럽인 청두 톈청으로 임대를 간후 1년간 활약하고 2010년에 셰필드와 계약이 만료되자 중국으로 돌아갔다.

3. 중국으로 복귀한 이후


2010년 1월 8일, 쑨지하이는 중국 슈퍼 리그의 팀인 구이저우 런허에 입단했다. 그는 즉시 팀의 주장이 되었고 2010년부터 2014년까지 4년간 매년 20경기 이상 출전하여 팀의 정신적인 지주로서 활약했다.
그러다 2015년, 구이저우 런허가 중국 갑급 리그로 강등되자 팀을 리빌딩하는 차원에서 고액 급료를 받고 있던 쑨지하이를 슈퍼리그로 올라간 충칭 리판으로 이적시켰다. 쑨지하이는 2015년 한해 동안 충칭 리판에서 플레잉 코치로 일하면서 28경기를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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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생활 말년의 베이징 런허(2016) 시절.
2016년부터는 임대에서 복귀하여 구이저우에서 베이징으로 연고지를 옮긴 베이징 런허에서 뛰었다. 맨시티의 레전드였고, 베이징 런허가 2부리그에 있긴 했지만, 체력의 한계 때문에 결국 9경기 출전에 그쳤는데, 2016년 12월 10일에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중국 U-21 대표팀에 부임한 거스 히딩크 감독 사단에 코치로 합류할 예정이라는 시나닷컴의 보도가 나왔다.

4.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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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중국 축구 대표팀의 해외파들. 왼쪽부터 둥팡줘, 샤오자이[4], 쑨지하이
쑨지하이는 1996년 12월 6일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다. 1999년에는 2000 시드니 올림픽 대표로 뽑혔지만, 한국과 예선 1차전에서 거세게 판정 항의[5]를 하다 FIFA로부터 1년간 국제경기 출전금지, 1개월간 국내경기 출전금지 처분을 당했다.
2002 한일 월드컵 명단에 포함되어 월드컵 경기를 치렀다. 그러나 조별 예선 1차전인 코스타리카에서, 그는 상대 선수의 깊은 태클로 인해 무릎 부상을 입었고 결국 그는 월드컵에서 더 이상 뛰지 못했다. 쑨지하이는 그 후에도 중국 대표팀에서 활약했지만 2008년 6월 7일, 그는 카타르와의 2010 남아공 월드컵 지역 예선 경기에서 출전했으나 무리한 태클을 가하는 바람에 퇴장을 당했고 결국 1:0으로 지고 말았다. FIFA는 그에게 5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고 이후 더 이상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5. 평가



2012년 맨시티 홈구장을 방문해 올드팬들의 환영을 받는 쑨지하이
어떤 이들은 쑨지하이가 둥팡줘처럼 마케팅용으로 영입된 선수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하지만, '''실제로 그와 둥팡줘를 비교하는 것은 매우 큰 실례다.''' 둥팡줘는 친선 경기 몇번에 리그에선 고작 '''한 경기''' 뛴 게 전부지만 쑨지하이는 맨시티에서 무려 6년간 130여 경기를 출전했으며, 그 중 2002년부터 2004년까지는 팀의 핵심 멤버로서 활약했다. 만약 그가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지 않았다면 그의 EPL 인생은 더욱 훌륭했을 지도 모른다. 위에도 나와있다시피 부상 전에는 시즌 30경기~40경기 이상을 소화했기 때문이다.
쑨지하이는 맨시티가 승격 이후 중위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는데 상당부분 기여했다. 그가 막 입단했을 당시의 맨시티는 EPL에서 이제 막 승격하여 강등권이나 다름없는 약체팀 취급을 받고 있었다. [6]그러한 상황에서 쑨지하이는 6년간 꾸준히 출전하며 오랜 시간동안 꾸준한 활약을 선보였다. 물론 그가 뭔가 맨시티를 이끄는 크랙 플레이어라고 할 순 없겠으나, EPL에서 그만한 경력을 쌓았다는 것은 분명 그의 역할이 양호했음을 증명하는 부분이며 만약 그의 헌신이 없었다면 맨시티는 다시 밑바닥이 보이지 않을 강등의 늪으로 굴러떨어져, 이후 만수르 구단주의 선택을 받아 전폭적인 지원 속에 성장하게 될 클럽은 지금의 맨시티가 아닌 다른 EPL 중위권 팀이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맨시티의 보드진은 2015년 그를 엠버서더로 임명하여 팀의 레전드 중 한 명으로 대우했고, 현지 팬들 역시 그에게 성대한 갈채를 보내주었다. 팀에 그만한 기여를 해준 한 명의 선수로 인정한 것이다. 실제로 쑨지하이는 가장 성공한 아시아 출신 축구선수중의 한 명이다. 단순히 박지성보다, 나카타 히데토시보다 식의 줄세우기로 평가할만한 선수가 아니다.
또한, 그는 인간성에 대해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물론, 심판판정에 거칠게 항의하거나 상대 선수 머리 끄댕이를 쥐어 흔들거나 살인태클을 날리다가 징계를 먹기도 했다. 다만, 필드 밖에서 그는 자신의 성공은 스스로가 잘나서가 아니라 팀이 막 승격한 약체였기에 더 많은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었던 것이라면서 겸손함을 잃지 않았고 중국인 선수들이 EPL에 들어올 때면 각별하게 대접을 해주고 EPL에서 살아남는데 필요한 조언도 많이 해줬다.
또한, 그는 박지성이영표에게도 존경의 뜻을 밝히기도 했는데 박지성을 아시아 최고의 축구 선수로 칭송했고 이영표 또한 훌륭한 선수라고 평가했다. 그래서인지 중국 스포츠선수에 대한 감정이 대체로 좋지 않은 한국인들에게도 쑨지하이는 비교적 좋은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다. 실제로 같은 연고지의 서로 다른 팀 소속인 박지성과 친분이 있기도 했다.
현재는 프리미어 리그를 호령하는 맨체스터 시티의 암울했던 시절을 극복할 수 있게 한 헌신에도 불구하고 정작 최근 맨시티의 레전드 예우에서 쑨지하이가 빠졌다는 점과 정작 중국 국대에서 쑨지하이를 존경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외면받는 모습이 매우 안타까운 선수라고 할 수 있다.[7]

6. 수상



6.1. 클럽


  • 다롄 스더
    • 중국 슈퍼 리그 우승: 1996, 1997, 2000, 2001
    • 중국 FA컵 우승: 2001
    • 중국 슈퍼 컵 우승: 1997
  • 맨체스터 시티
    • 챔피언쉽 우승: 2001-02
  • 구이저우 런허
    • 중국 FA 컵 우승: 2013
    • 중국 슈퍼 컵 우승: 2014

6.2. 개인


  • 중국 축구협회 주관 올해의 영 플레이어 상 수상: 1998
  • 중국 슈퍼리그 올해의 팀에 선정: 1997, 2001
  • 중국 FA슈퍼컵 MVP 수상: 2014
  • 잉글랜드 명예의 전당 입성: 2015
[1] 주 포지션은 풀백이며(오른쪽 풀백이 주 포지션이고 왼쪽도 소화가능하다.) 센터백도 소화할 수 있었고 이외에도 공격형 미드필더를 제외한 모든 미드필더 포지션도 뛸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이기도 하였다.[2] 그 다음으로 성공한 선수로는 정즈가 있으나, 정즈도 쑨지하이의 클라스를 못따라간다[3] 홈에서 열린 웨스트햄과의 FA컵 8강전에서 보복행위로 퇴장당해 1-2 패배로 탈락의 원인을 제공했다.[4] TSV 1860 뮌헨에서 3년간 활약한 미드필더이다. 이후 FC 에네르기 코트부스로 이적해서 2011년까지 뛰었으나, 이 팀이 입단 초기에 강등당하는 바람에 그다지 주목받지는 않았다.[5] 심지어 경기 끝날 무렵에는 쓰러져 있던 이동국의 머리를 쥐어 뜯고 흔들었다.[6] 멀리 갈것도 없이 불과 3년전 지역 라이벌 맨유가 잉글랜드 최초의 트레블의 기쁨을 누리던 그 때 시티는 유럽클럽 우승팀 최초로 3부리그 행이라는 대굴욕을 맛봐야 했다.[7] 쑨지하이의 국적이 '''중국'''이라는 점이 아무래도 크다. 한국이 반중정서 때문에 '''니네 레전드 중국인이라며??'''라는 식으로 타팀 팬들이 놀려대면 뭐라 할 말이 없기 때문에 은근히 레전드 대우에서 빼고 있다. 만수르 이후 맨시티가 자신들의 암흑기를 알게 모르게 묻어버리고 싶어하는 것도 있고. 다만 그거와는 별개로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