씽
1. 개요
팬카페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던 남성 아이돌 그룹. SM엔터테인먼트를 반쯤 말아먹을 뻔했던 프로듀서 김경욱이 세운 '씽 엔터테인먼트'에 속해 있었다. 그룹명 '''XING'''은 중국어로 '별(星)'을 의미하는 동시에 X(Cross) In New Genre(크로스 인 뉴 장르)의 이니셜로 ‘새로운 장르와의 결합’을 뜻한다. 항상 새로운 공연 문화를 창조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는 팀명이다.
노예계약, 경영진의 횡포 등 대한민국에서 연예인을 꿈꾸는 청춘들이 얼마나 시궁창같은 환경에서 일하는지를 여실히 드러낸 흑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서의 대부분은 이 블로그 글(현재는 삭제됨), 이 글을 참고하여 작성됨.
언제부터인가 '기수마다 멤버를 바꾸는 프로젝트 청소년 그룹'을 공식 이미지로 밀었다.[1] 실제로 데뷔 나이가 매우 어리다.[2]
1999년에 데뷔해서 2006년에 해체했던 4인조 그룹 X-ing과의 연관성은 없으며 이쪽은 엑싱으로 읽는다.[3]
2. 역사
2.1. 김경욱과 이수만
씽의 역사는 SM엔터테인먼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SM은 이수만이 중심이었고 그 다음으로 김경욱 프로듀서가 큰 권한을 쥐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H.O.T., 신화 팬들에게는 이수만과 함께 김경욱이 공공의 적으로 꼽혔다. 원래 SM의 2인자 자리는 정해익 대표이사가 맡았으나, 김경욱이 정해익을 몰아내고 2인자 자리에 오른 것이다. SM에서 쫓겨난 정해익은 이후 싸이더스HQ로 가서 god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했다.관련 내용
그러던 2001년, 이수만이 증권업협회 운영규정이 곧 개정된다는 사실을 알고 개정 직전 회사 돈으로 급하게 유상증자를 하면서 5000만원이던 자본금을 12억원으로 늘렸다. 코스닥 등록 이후 유상증자로 회사의 가치을 뻥튀기했기때문에 주가조작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된다. 이수만은 수사를 받던 도중 미국으로 도피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SM엔터테인먼트의 전권은 김경욱 사장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김경욱 체제 하에서 SM은 밀크, 이삭 N 지연, TraxX, 천상지희, 블랙비트 등을 데뷔시켰다. 하지만 이수만이 사라진 SM은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회사 구조도 불안정해지는 등 환경이 매우 좋지 않았다. 게다가 김경욱의 능력 부족으로 인해 새롭게 데뷔시킨 가수들은 이렇다할 성과를 얻지 못하고 사라져갔다.
이수만 사장은 2002년 9월 징역 2년에 집유 3년을 선고받았으나, 3년 후인 2005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 4주년 특별 사면 대상자에 올라, 가까스로 일선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 뒤 데뷔시킨 슈퍼주니어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SM은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한편 이 시기 김경욱은 SM에서 외국인 멤버를 넣은 남성 아이돌 그룹을 추진했지만 무산되었고, 김경욱은 SM에서 퇴사했다. 자진 사퇴였지만, 사실상 쫓겨난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 때 김경욱은 '동방신기를 꼭 망하게 하고 만다'라며 객기를 부렸다.
2.2. 1기
SM에서 독립한 김경욱은 '씽 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를 세웠다. 이 때 SM에 있던 연습생들을 상당수 데리고 나왔다. 당시의 SM은 가계약 이후 트레이닝과 추가 심사를 통해 연습생들을 걸러내는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연습생들만 50명에 달했다. SM의 경쟁적인 데뷔시스템하에서 데뷔가 어렵겠다고 생각했던 멤버들이 김경욱을 따라 나섰다.(이때 슈퍼주니어에 합류전이던 규현을 김경욱이 눈여겨본후 데려가려 했는데 sm의 강력한 제지로 무산되었다고 한다. 규현은 다행히 씽의 마수를 피해 2006년 5월 슈퍼주니어에 합류한다)
이렇게 해서 2006년 12월에 데뷔한 것이 1기 씽 멤버들인 천혜성(최성수), 케빈, 마루미르(김기범[4] ), 유메(김영경)이었다. 2006년 12월 미니 앨범 <In Your Hands>로 데뷔했다.
곡은 실제로 나름대로 반응이 괜찮았으나 씽은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SM에서 안 좋은 꼴 다 보고 나간 김경욱이 키운 씽을 받아줄 곳이 없었다. 각종 방송사들은 SM의 눈치를 보느라 씽을 출연시키지 못했고, 씽은 콘서트와 지방 축제를 전전하는 신세가 되었다.
원년 멤버 김기범이 2007년 7월 13일자로 그룹을 떠났는데, 친모에 의하면 연예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다. 다만 당시 본인은 그에 대한 아무 의사표현도 없었고, 이후 유키스로 데뷔했다.
2.3.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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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 당시 히든 멤버였던 팝핀드래곤(용준형)과 젠(남진현)을 정식 멤버로 채용하여 2기로 활동시켰다. 2007년 8월 두 번째 미니 앨범 <My Girl>을 발매하였다. 타이틀 곡 <My Girl>은 용준형이 직접 안무를 만드는 등 상당부분 참여했고, 심지어는 멤버들 춤 지도까지 용준형이 맡았다고 한다.
데뷔 후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방송 활동은 못 했다. 씽 엔터테인먼트에서는 지상파를 포기하고 'xing TV'라는 자체 컨텐츠를 만들어서 장사를 하겠다고 나섰는데, 멤버들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이 돈만을 보고 세운 계획이었다. 멤버들은 아마추어 댄스 경연 대회에 나가는 등 고생을 했다. 이 시기에 나온 것이 하이라이트의 팬들 사이에서 금지 영상으로 통했던 '소망 아리랑'이다.
2007년 12월 29일, 쇼케이스로 첫 태국 진출이 이루어졌다.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공연을 다니며 활동했다.
활동 도중 멤버 천혜성이 성대결절로 인해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소속사에서는 연습생 허스키(우현민)을 대체 멤버로 투입시켰는데 허스키에 대한 반응이 괜찮자 천혜성 대신 허스키를 정식 멤버로 앉혔다. 후에 천혜성은 보이스코리아에서 말하길, 음악적 견해 차이로 팀을 나왔다고.
멤버들은 이 시기 월급 이외에 활동을 통한 수익을 전혀 지급받지 못했다. SM에서 문제가 되었던 '노예계약'을 만든 중심 인물이 바로 김경욱이었는데, 김경욱은 SM을 나와서 세운 새 회사에서도 노예계약의 굴레를 이어갔다. 행사 출연료는 유지 비용이라는 명목으로 전부 회사가 챙겨갔고, 음반 수익 역시 멤버들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방송 활동은 커녕 돈도 못 버는 상황에서 멤버들은 씽을 떠나기 위해 발버둥쳤다. 결국 천혜성, 유메, 용준형은 씽을 완전히 나갔다. 이후 김경욱을 상대로 단체 소송을 걸었고, 1심에서 김경욱 측이 패소했다.
용준형은 씽 엔터테인먼트를 나가겠다고 발표하자 술집에서 김경욱 사장으로부터 협박을 들었다. 김경욱은 갓 20살이 된 용준형 앞에서 술병을 깨는 등 폭력적으로 위협을 했다.기사 용준형은 이후 비스트의 멤버가 되어 승승장구했지만, 이 시기의 일에 대해서는 기억하기조차 싫어하는 듯. 그래서 하이라이트의 팬들 사이에서도 '씽'은 금지어로 통한다.[5]
2.4. 3기
멤버 세 명이 한꺼번에 빠져나가자 김경욱은 나머지 멤버라도 잡아보려고 애를 썼다. 연습생이라도 많이 투입시켜서 그룹이 무너지는 것을 막으려 했던 것. 기존의 젠, 케빈에 3기 멤버인 건(신광철), 화이트(이수훈), 윤(김지상), 기파랑(전지환)을 투입하여 7인조로 재편하였다. 어처구니 없게도 2기 시절 발표했던 <My Girl> 앨범을 그대로 새로 녹음해서 마치 신보인양 발표했다. 그 이후에 발표한 곡은 놀이공원 롤러코스터의 테마곡 <T Express>.
케빈은 연예계 활동을 위해 꿋꿋이 참았지만, 결국 포기하고 천혜성, 유메, 용준형과 함께 소송에 동참했다. 이들 네 명은 1심에서 승소하여 씽 엔터테인먼트의 마수로부터 벗어났다. 유메, 천혜성, 용준형 3명의 소송은 2009년 1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케빈의 소송은 2010년 3월 서울고법에서# 각각 무효로 판결이 났다. 씽 엔터테인먼트에서는 항소를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기각되었다. 김경욱 대표는 중앙일보와의 취재에서 '이런 식이면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어려워진다'고 주장했다.#
멤버들이 씽엔터테인먼트와 맺은 계약은 다음과 같다.
- 10년간 씽엔터테인먼트에 전속
장기국외출장, 군복무, 건강상 활동 휴지 등이 있을 경우 그 기간만큼 연장
- 음반 수익은 50만 장이 넘을 때만 지급
50만 장이 넘으면 앨범은 5000만원, 싱글은 2500만원 지급. 2000년대 중반 한국 음반산업의 현실을 고려하면, 아예 음반 수익금을 안 주겠다고 작정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 방송 고정 출연시 출연료는 40%, 게스트 출연시에는 100%를 회사가 가져감
- 계약 위반시 총 투자액의 3배+잔여 계약기간의 예상 이익금 2배+1억원 배상
배상액이 불합리하게 높다.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도 투자 실패의 위험성은 투자자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라면서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였다.
그야말로 노예계약이다! 대놓고 날강도라고 시인하는 수준. 케빈과 용준형은 이후 각각 유키스와 비스트의 멤버로 활동하고 기범은 유키스로 데뷔해서 지금은 솔로로 활동중이다.2.5. 4기
기존 3기 멤버에 라이징(박현철), 소울(이인준)을 영입했다. 이 때부터 '씽 오페라'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씽 오페라는 씽 비트, 씽 하모니, 씽 아리아, 씽 레시타티브라는 유닛을 포함한다는 뜻으로 팀명을 바꿨다고 한다.
2008년 10월 29일 싱글 <Memorize>를 발표했다. SBS '12월의 파워루키'에 응모하여 뽑혀서 최초로 지상파 2주간 방송활동도 이루어졌다.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선정한 이달의 우수음반으로도 뽑혔다.
2009년 6월 19일 디지털 싱글 2009 Hi-Five Xing Opera를 내고 Hi-Five로 활동했다. 이 싱글이 나오기 전에 리더였던 젠이 탈퇴하고 8인조에서 7인조가 되었다. 리더는 화이트로 변경. 방송활동은 위 메모라이즈와 같다.
씽 엔터테인먼트는 이 시기 사정이 어려워졌는지 멤버 다섯 명을 강제로 탈퇴시키고 다른 회사로 이적시켰다. 남아있던 모든 3·4기 멤버가 탈퇴했다. 이때 5명은 다른 소속사로 갔다. [6]
2.6.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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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5기 멤버를 영입했다.쇼케이스 직찍 사진[7] 황두환, 김완철, 진현진, 김진완 등 네 명의 멤버를 추가하였다. 5기 멤버들은 초기곡 '눈물에 추억에'를 Tears라는 이름으로 커버한 티저를 발표하였으나 음반데뷔가 무산되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김진완과 진현진은 그놈의 오픈월드엔터테인먼트에 가서 'X-5'라는 아이돌로 데뷔했으나, 1년 후 그룹이 해체되었다. 진현진은 해체 직후 군대를 간 후 연예계를 떠난 것으로 추정되고, 김진완은 루커스(현 L.A.U)로 데뷔했다...가 탈퇴. 근황은 알려지지 않는다. 황두환과 김완철은 김경욱의 새 회사인 '골든구스엔터테인먼트'로 이적, 에이피스로 데뷔하였다.
정기적으로 전 현역 멤버들이 모여 대형 패밀리 콘서트를 여는 계획이 있었으나 당연히 무산되었다. 관련 계획 설명에 의하면 10대부터 50대까지의 씽 멤버들이 모두 모여서 하는 거라고 한다. 10대 자식과 부모가 모두 같이 볼수 있는 거라면서 홍보. 당연히 제대로 될 리가 없었으며, 1기부터 5기까지의 나이차가 10살도 안 난다. 애초에 초창기 멤버들은 김경욱과 완전히 척을 졌고.
2.7. 그 이후
이렇게 수많은 젊은이를 울리고 고생시킨 김경욱은 여전히 연예 기획사를 운영하고 있다. 기존의 씽 엔터테인먼트 대신 "골든구스 엔터테인먼트"라는 새 회사를 차려 버젓이 활동하고 있는 것.[8]
김경욱은 골든구스엔터테인먼트에서 Apeace라는 그룹을 데뷔시켰다. 2011년 이후로 한국에서의 활동은 철수하고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고. 인원수가 꽤 많다. 참고로 씽 5기를 제외하고라도 씽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을 꽤나 데려왔다.
2009년 탈퇴한 전지환, 이수훈, 박현철, 이인준, 우현민은 이후 대국남아라는 이름으로 데뷔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 회사란 곳이 2012년 성폭행 사건으로 논란이 된 오픈월드엔터테인먼트라는 것. 어둠을 피해 도망쳤더니 더 큰 시궁창이 기다리고 있던 꼴이었다. 대국남아도 이 사건과 관해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지만, 어쨌건 일본에서 나름대로의 팬층을 확보하며 활동하다가 품엔터테인먼트로 새 둥지를 틀고 다시 한국 활동을 재개했다. 그러다 2015년 다시 씽엔터로 돌아왔다가 2017년 공식적으로 활동 휴지에 들어갔다. 씽엔터 홈페이지도 사라졌다.
한편 2016년, 김경욱이 몸담았던 회사에서도 이러한 포맷을 차용한 팀이 나오게 된다.[9][10]
2.8. 연습생?
2010년 재데뷔한 대국남아 멤버들은 연습생이라고 칭한다. 기사 또한 젝시도 마찬가지다.[11]
소속사가 홍보성으로 편집한 Apeace 문서의 과거 버전을 보면 씽을 두고 「물론 이 그룹은 일본의 자니스주니어처럼 연습생그룹이다 」라고 한다. 이게 비록 크게 발표하듯이 한건 아니지만, 정말 씽이 공식적으로 연습생으로 칭해짐을 알 수 있다. 아니면 연습생으로 칭해짐을 넘어서 정말 흑역사급이라던가..
물론 1~2기 멤버들은 예외다. 멤버가 많이 교체되었으므로 사실상 다른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포털사이트 프로필에서는 4기 싱글인 Memorize를 공식 데뷔로 칭하고 있다.
3. 음반
- In Your Hands (2006년 12월 14일)
1기 멤버들의 음반. 음원 구입이 모두 막혀있다.
- My Girl (2007년 8월 9일)
2기 멤버들의 음반.
- 씽 싱글2 My Girl (2008년 3월 14일)
3기 멤버들의 음반으로, 엽기적이게도 7개월 전 발매한 음반을 녹음만 멤버들을 바꿔 다시 한 재탕 앨범이다. 케빈의 솔로 버전이 두 곡이나 있는데, 김경욱이 케빈을 얼마나 잡고 싶어했는지 알 수 있다.
- T Express (2008년 3월 17일)
3기 멤버들의 디지털 싱글.
- Memorize (2008년 10월 29일)
4기 멤버들의 음반. '씽 오페라'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타이틀곡 Memories는 유원[12] 의 '기억을 지우다'라는 노래를 리메이크한 곡이다. 3곡 모두 뮤비가 있다. 정말 괜찮아요는 보컬 유닛 씽 하모니가 불렀다. 그리고 하루하루는 데뷔전 2007년 서울창작가요제[13] 에서 금상을 수상했던 Singing in the Rain이라는 유닛[14] 이 원곡이다.
- 사랑 (2009년 1월 7일)
유닛 씽 아리아의 디지털 싱글. 부활의 곡을 번안했다. 이 곡은 부활25주년 헌정앨범 <<사랑. 이별. 그리움...>>에도 수록되었다.
- 2009 Hi-Five Xing Opera (2009년 6월 19일)
4기 멤버들의 디지털 싱글이자 씽의 마지막 음반. 5기 멤버들은 음반을 내지 못했다.
3.1. 씽 하모니
- 인 유어 핸즈(In Your Hands) (2008년 12월 11일)
유닛 씽 하모니 멤버들의 디지털 싱글.
4. 역대 멤버 목록
나이 순대로 정리한다.
[1] 초기 멤버들은 좋은 계기로 나간 게 아니라는 게 함정이다.[2] 케빈과 김진완 14세. 전지환 13세.[3] 이 팀의 대표곡으로는 천음률과 relive과 있으며, 이쪽 팀은 인지도가 거의 없다.[4] 슈퍼주니어의 김기범, 샤이니의 키와는 동명이인. 유키스의 전 멤버이자 SS501 김형준의 동생이다.[5] 그리고 이제는 용준형이 버닝썬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금지어가 되어버렸다.[6] 상막장 회사로 저명이 난 '''오픈월드 엔터테인먼트'''이며, 대국남아로 재데뷔.[7] 사진에 보면 김동근이라는 멤버가 있다. 이 멤버는 역시 씽 5기였고, 같이 활동하였으나 공식적으로 씽에 영입되기 전에 팀을 탈퇴하였다. [8] 홈페이지는 씽 엔터테인먼트와 골든구스 엔터테인먼트 두 가지 다 있었다.[9] 단 무한확장 이라는 부분한정.[10] XING과 NCT의 차이라면 NCT는 기수제가 없다는 것이며, 도시 거점 팀의 단위로 이루어진다는 것[11] 재데뷔 싱글의 음원사이트 소개란 참고[12] 본명 이건형. 현재 사인방 소속. 진형이라는 예명으로 활동중[13] 아마 연습생으로 소속사에게 곡을 받고 출전했을 확률이 높다.[14] 멤버는 미카, 현민, 김지상, 신광철[15] 2014년 시트콤 멘탈사수에 출연하는 등 연기자로 활동하고 있다.[16] 2011년 보이스 코리아 1에 출연했다.[17] 현대무용가로 활동 중. 2013년 댄싱9에 참가하였다.[18] 2014년 XXXY(젝시)라는 이름으로 솔로 데뷔했다.[19] ‘딩동댕 유치원’ 밴드 출신. 그리고 얼짱시대 출연자이다. 해당 방송에서 씽이 라이브를 하는 등 그룹을 꽤나 알렸다.[20] 1992년 8월 13일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