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곤 왕국

 



'''아라곤 연합 왕국'''
'''Corona d'Aragón'''
(아라곤어)
'''Corona d'Aragó''' (카탈루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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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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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6년 알리폰소 5세(Alifonso V)의 영토
(1035년[1])1162년[2] ~ 1516년
위치
카탈루냐, 아라곤, 남이탈리아
수도
하카(1035~1096)
우에스카(1096~1118)
사라고사(1118~1516)
정치체제
봉건군주제
국가원수

주요 국왕
차이메 1세(1213~1276)
페로 3세(1276~1285)
알리폰소 5세(1416~1458)
추안 2세(1458~1479)
페란도 2세(1479~1516)
언어
아라곤어, 카탈루냐어, 라틴어
종족
아라곤인, 카탈루냐인
종교
가톨릭
주요 사건
1035년 아라곤 왕국 건국
1162년 바르셀로나와 연합 왕국 수립
1442년 나폴리 왕국 획득
1479년 카스티야와 연합 왕국 수립
1516년 스페인 군주국 수립
1716년 스페인에 최종 통합
성립 이전
프랑크 왕국
계승 국가
스페인 왕국
아라곤어
Corona d'Aragón
카탈루냐어
Corona d'Aragó
라틴어
Corona Aragonum
스페인어
Corona de Aragón
프랑스어
Couronne d'Aragon
이탈리아어
Corona d'Aragona
영어
Crown of Aragon
1. 개요
2. 역사


1. 개요


피레네 산맥 중부 아라곤 지방과 카탈루냐, 발렌시아에 걸쳐 존재했던 국가. 1162년부터 아라곤 연합 왕국이 정식 명칭이다.

2. 역사


프랑크 왕국이 피레네 산맥을 무슬림들에게서 탈환한 이후 이베리아 반도 북부에 설치한 변경백령[3]이 시초다. 프랑크 왕국의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쇠락한 이후에는 나바라 왕국의 통치 아래에 있었다. 그러나 1035년 나바라의 막내 왕자 레미로 1세(Remiro I, 라미로 1세)가 국왕을 자처하면서 백국에서 왕국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이처럼 시작은 나바라에서 갈라져 나온 자칭 왕국이었지만 1076년 나바라 국왕 안초 4세(Antso IV)가 동생들에게 암살당한 틈을 타 옆 국가 카스티야 국왕과 함께[4] 나바라 왕국의 영토를 분할해 이베리아 반도 북부의 강국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후 적극적인 레콩키스타를 통해 1118년 사라고사를 함락시켰고 1151년에는 바르셀로나 백국과 혼인을 통한 국가 통합을 이뤄내며 카탈루냐 지방을 통한 해양 출구를 확보했다.
아키텐 공작, 푸아 백작, 툴루즈 백작과 아라곤은 오시타니아의 여러 지역들을 획득하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 한때는 프랑스와 전쟁을 벌여 프로방스 지방을 획득하기도 하고 피레네 산맥 이북으로 진출하려고 했지만, 알비 파의 반란으로 남부 프랑스의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고, 그후 필리프 2세가 알비십자군을 일으켜 오시타니아 지역을 점령하였다.
그후 페드로 2세가 1212년 이슬람군과의 전투에서 돌아오던중 레스터 백작 시몽 드 몽포르가 페드로 2세의 매형인 툴루즈 후작 라몬 6세를 추방하자, 페드로 2세는 피레네를 넘어 라몬 6세의 군대와 합류하여 시몽과 맞섰지만, 페드로 2세는 만용으로 인해 1213년 9월에 벌어진 뮤헤 전투에서 전사하고, 아라곤군은 완패했다. 결국 뮤헤 전투로 인해 아라곤은 오시타니아 지역의 영유권이 프랑스에 있음을 완전히 인정해야했다.
정복왕으로 불리는 차이메(Chaime) 1세 시기에는 바르셀로나 상업 계층의 요구에 따라 본격적인 해양 진출을 단행해 1235년에 발레아레스 제도를 확보하고, 발렌시아 왕국의 대부분을 점령했다. 1258년 프랑스와 아라곤은 협정을 맺어 프랑스는 카탈루냐의 영유권을, 차이메 1세는 피레네 이북에서의 영향력을 포기하기로 하였다. 1266년 아라곤은 계속해서 레콩키스타를 벌여 무르시아까지 점령하고, 카졸라 협약에 따라 카스티야 왕국에 넘겼다.
1282년에는 시칠리아인들이 앙주 왕가에 반란을 일으켜 주둔군을 격파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아라곤의 왕이였던 페드로 3세는 시칠리아인들의 요청을 받아 성대한 환영을 받으며 시칠리아에 상륙했다. 이에 분노한 교황 마르티노 4세는 시칠리아에 성무금지 조치를 내리고, 페드로 3세를 파문했다.
차이메 2세는 발렌시아를 완전히 정복하여 아라곤을 강대국으로 끌어올렸다.1297년 교황 보나파시오 8세는 사르데냐-코르시카 왕국을 아라곤 연합 왕국에 추가시켰으나, 이는 1세기도 가지못했다. 프랑스와 또 다시 전쟁을 벌여 이번에는 승리해 시칠리아 섬의 지배권을 확보했다. 프랑스, 나폴리, 교황은 서로 동맹을 맺고 아라곤 왕 페드로 3세(Pedro III)를 파문한 뒤 맞서 싸웠지만 아라곤 왕국의 군대는 그들을 모조리 격파하면서 위엄을 떨쳤다. 이후 그리스까지 진출해 아테네 공국(1311)과 네오파트라이 공국(1318)을 접수했다. 한때는 몰타사르데냐 섬도 잠깐이나마 지배했고 1442년에는 남부 이탈리아를 모조리 관할하는 나폴리 왕국의 왕위 계승권까지 차지하면서 거대한 지중해 제국을 건설했다.
그렇지만 오스만 제국에 의해 동로마 제국이 멸망당하고 그 직후 아테네-네오파트라이 두 공국이 오스만의 공격을 받아 무너졌다. 이후 아라곤은 중부 지중해에서 오스만 세력의 서진을 막느라 허덕이고 아라곤의 핵심 계층인 해양 상업 계층 역시 레반트 무역권의 상실로 큰 타격을 입었다.
결국 아라곤은 이러한 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베리아 반도의 중부에 있던 다른 가톨릭 국가인 카스티야 연합 왕국의 여왕과 결혼해 국가 통합을 이루고 스페인을 형성했다. 이후 아라곤의 해양 상업 계층들은 대항해시대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3. 역대 국왕




[1] 아라곤 왕국의 건국[2] 연합왕국 수립[3] 현재의 우에스카 일대로 고지 아라곤(Alto Aragon)이라고 불린다.[4] 이들은 전부 사촌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