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샤쿠니 왕조

 


'''대 아르메니아'''
'''Մեծ Հայք'''

''Mets Ha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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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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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경 시절의 아르샤쿠니 왕조의 영토
54년 ~ 428년 (375년간)
위치
아르메니아, 시리아, 킬리키아, 알바니아[1]
수도
아르타샤트, 바가르샤파트, 두인(다빌)
국가원수

주요 국왕
트르다트 3세(287~330?)
언어
고대 아르메니아어, 아람어,
파르티아어, 중세 페르시아어
종교
아르메니아 종교(주신: 아라마즈드)
조로아스터교(3세기)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301년 이후)
종족
아르메니아인
성립 이전
아르탁세스 왕조
로마 제국
멸망 이후
동로마 제국
사산 제국
1. 개요
2. 역사
2.1. 1차 병합(114년 ~ 117년)
2.2. 2차 병합(252년 ~ 287년)
2.3. 3차 병합(368년 ~ 370년)

언어별 명칭
고대 아르메니아어
Հայք (''Haykʿ'')
코이네 그리스어
Ἀρμενία (''Armenía'')
파르티아어
𐭀𐭓𐭌𐭍𐭉 (''Armín'')
중세 페르시아어
𐭠𐭫𐭬𐭭𐭩 (''Armin'')
라틴어
Armení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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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Արշակունի (아르샤쿠니)
로마파르티아사산조 페르시아가 한창 대립하던 시절에 건국된 파르티아계 아르메니아 왕조.

2. 역사


파르티아 왕 볼로네스 2세의 아들이자 볼로네스 2세의 뒤를 이은 볼로가세스 1세의 동생인 티리다테스 1세(트르다트 1세)가 건국하였다. 파르티아와는 우호적이었으나 페르시아를 계승한 사산조 페르시아와는 사이가 좋지 않아 수 차례 병합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후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아르샤쿠니 왕조는 역사상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가 되었다.

2.1. 1차 병합(114년 ~ 1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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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를 병합한 트라야누스 시절 로마 제국의 영토
파르티아의 오스로에스 1세가 로마와의 상의 없이 아르메니아의 왕을 멋대로 갈아치우자, 이를 기회로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는 아르메니아와 파르티아수도권이었던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파르티아는 배후에 있는 거대한 이란 고원을 상실하지 않았고, 당장 점령한 영토에서도 토착민의 저항에 부닥치게 되었다. 결국 트라야누스 사후에 즉위한 하드리아누스는 메소포타미아, 아르메니아를 포기하였다.

2.2. 2차 병합(252년 ~ 287년)


2번째 병합은 사산조 페르시아샤푸르 1세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로마 황제 데키우스가 전사한 이후 샤푸르 1세는 로마가 아르메니아에 침입했다는 구실을 이용해 252년에 아르메니아를 점령하였다. 이후 샤푸르는 253년 바르바리소스 전투에서 6만 명의 로마군을 궤멸시키고, 260년에는 에데사 전투에서 황제 발레리아누스를 생포한 샤푸르 1세는 아르메니아 통치를 확고히 할 수 있었다. 이런 상태는 티리다테스 3세(트르다트 3세)가 287년에 페르시아를 몰아낼 때까지 지속되었다.

2.3. 3차 병합(368년 ~ 370년)


이번에도 페르시아 쪽에서 샤푸르 1세 못지 않은 명군인 샤푸르 2세에 의해 점령되었다. 유능했던 샤푸르 2세였지만 군사적인 재능은 부족했기 때문에 당시 로마 황제였던 율리아누스에게 고전했지만, 크테시폰 사수에 성공하고, 이후 샤푸르 2세는 율리아누스의 사망을 기회로 로마와 유리하게 강화를 맺어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탈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샤푸르 2세는 368년 아르메니아를 점령했으나, 쿠샨 왕조와의 전쟁으로 370년에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387년 Peace of Acilisene를 로마-페르시아 간에 맺었는데, 로마는 아르메니아의 서쪽 일부를 할양받아서 아예 합병하고, 그 나머지는 페르시아가 가져가지만 완전히 합병하지는 않고 자치상태로 남겨두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조약 이후로 종전의 속국이나 번국 정도에서 자치령 정도로 페르시아에 대한 종속의 정도가 더욱 강해졌으며 아르샤쿠니 왕조의 권위는 더욱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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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년 Acilisene 평화조약 이후. 로마 쪽은 별도의 색깔로 구분되어 있지 않고 완전히 합병되었지만, 페르시아 쪽은 아직 완전한 영토로 합병되지는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428년, 아르탁시아스 4세 치세에 귀족 나카라르가 당시 사산조의 황제였던 바흐람 5세 시절때 임금을 축출해달라고 요청했고, 이를 받아들인 바흐람 5세는 아르샤쿠니 왕조를 멸망시키게 된다. 이로써 속국으로나마 명맥을 이어나가던 것도 끊어졌고 페르시아의 영토로 완전히 합병되었다.
이후 800년이 흐른후 아르샤쿠니 왕조의 아주 먼 후손인 헤툼가문이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위에 오른다.

[1] 유럽의 알바니아가 아니라 당시 캅카스에 있었던 한 지역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