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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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상징
아르메니아어
Հայ Առաքելական Եկեղեցի
(Hay Aṙakʿelakan Yekeghets’i)
Հայաստանեայց Առաքելական Սուրբ Եկեղեցի
(Hayastaniayts Aṙakʿelakan Surb Yekeghetsi)
영어
Armenian Apostolic Church
1. 개요
2. 아르메니아 총대주교
3. 교회 문화의 교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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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독교, 그 중에서도 오리엔트 정교회의 한 종파. 아르메니아에 기원을 두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공존과 속성의 교류[1]를 인정한 칼케돈 신경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단성론파로 불린다. 하지만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는 단성론파로 취급되는 것을 부정하는데, 그 이유는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에서도 단성론의 기반으로 취급되는 에우티케스의 주장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에서는 그리스도가 "신성과 인성을 모두 지닌 하나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합성론(Miaphysitis)을 따르고 있다고 말한다.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측의 주장으로는 칼게돈 신경을 부인하는 것은 단지 문장상의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20세기 이후로는 가톨릭이나 정교회에서도 기존에 단성론으로 여겨지던 교회와의 대화가 진행되어 쌍방의 차이가 결정적인 것이 아니고 표현의 문제라는 주장이 고려되고 있다.[2]
전례는 대체로 시리아 정교회콥트 교회와 유사하다. 전례 언어로는 아르메니아어를 사용한다. 신자 수는 전 세계적으로 약 800만 명 추정.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는 동로마 제국이 몰락하고, 이슬람 세력 치하에서 극도로 탄압받으면서도 끝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은 아르메니아인들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남았으며, 터키(오스만 제국) 치하에서도 살아남았다.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는 동서분열 이전에 떨어져 나간 종파가 다 그러하듯, 이슬람과 기독교의 충돌 속에서 고통받으면서도 끝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으며 기독교 세계의 방파제가 되어주었기에 엄밀히 말해서 기독교 세계 전체가 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아무튼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392년)하기 90년 전(아르메니아 측 주장으론 서기 301년)에 이미 아르메니아의 국교로서 존재했던 교회니 다분히 전통 있는 교회이다.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화했다고 아르메니아 사람들 자부심도 엄청나다. 덕분에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를 믿는 아르메니아인을 다른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것은 엄청나게 어렵기로 소문이 자자하다.[3]
그런데 자신들이 노아의 직계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점 때문에 이스라엘과 많은 충돌을 벌여 아제르바이잔이나 터키와의 여러 문제에 이스라엘이 노골적으로 터키 편을 들어준다. 게다가, 아르메니아가 외교적으로 친이란 정책을 취하기에 더더욱 이스라엘이 적국인 아제르바이잔과 정치, 외교,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래도 예루살렘에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교구가 있다.
정작 아르메니아 본토에서는 소련의 영향으로 급감했다가 1990년대부터 늘어났다.

2. 아르메니아 총대주교


특정 민족 교회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음에도 세계에 의외로 많이 퍼진 아르메니아인 디아스포라 덕분에 은근히 넓은 교세와 교계제도를 가지고 있다. 당장 아르메니아 교회에는 총대주교가 넷이나 있다.
현재 실질적인 교회 최고 의장 주교의 역할을 수행한다. 에치미아진에만 있었던 건 아니고 시대에 따라 여러 번 총대주교좌를 옮겼고, 1058년에는 아르메니아 총대주교좌를 킬리키아로 완전히 옮기기까지 했다. 1441년에 다시 아르메니아 본토로 돌아왔지만, 킬리키아 총대주교 자리는 계속 유지시키고 있다.
동로마 제국 마케도니아 왕조 시절, 아르메니아인들은 동로마 제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고 그 연으로 점차 원래 살던 캅카스 땅에서 지금의 터키 동남부 지역의 킬리키아 지방으로 많이 내려와 살았다. 만지케르트 전투 - 십자군 전쟁으로 아나톨리아 반도가 어수선하던 시절에는 여기에 아르메니아인의 왕국을 세우기도 했다. 이곳에 아르메니아인이 점점 많아지자 아예 아르메니아 본토의 총대주교좌가 이곳으로 이전했고, 아르메니아 교회의 수장 역할을 했다. 지금도 그 전통적인 권위에 힘입어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아르메니아인 대학살로 인해 근대 터키에서 교회가 완전히 무너지다시피 했다는 점. 지금도 총대주교좌는 레바논 안텔리아스로 옮겨가 버렸다.
전술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로 터키 동쪽 옛 아르메니아 땅의 아르메니아인들은 씨가 마르다시피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터키에서 가장 큰 기독교 공동체는 다름아닌 아르메니아 교회이다. 가장 융성했던 정교회가 전체 터키의 3~4천 명으로 쪼그라들다시피한 것에 비하면 엄청난 규모이다. 신자 수 총 4만 5천 명. 이스탄불에서 아르메니아인들은 쿠르툴루시(Kurtuluş) 지역에 많이 모여 사는데, 많은 이들이 장의사업에 종사하거나 이슬람 국가에서 기독교식 장례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3. 교회 문화의 교차점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는 지리적으로나 교리적으로는 동방에 속해 있으면서도 전례적, 실천적 측면에서 서방교회의 모습이 매우 강하게 나타난다. 특히 아르메니아 교회의 전례를 보면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를 단순히 '동방교회'라는 카테고리로만 묶기에는 힘들 정도로 서방교회의 문화가 많이 녹아 있다. 이는 중세부터 동로마 제국과 이슬람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서방 세력과 많이 제휴했기 때문. 심지어 십자군 전쟁 시절에는 십자군 국가들과 동맹을 맺어 잠시 가톨릭으로 귀일했던 적도 있다.
예를 들면, 첫 번째, 기도손 전통. 서방 교회에서는 기도손을 하지 않고 기도하는 걸 정말 매우 이상하게 보지만 동방 교회에서는 원래부터 그런 거 없다. 제대 앞에선 성직자들 모두 서서 차렷 자세를 하거나 손을 가지런히 앞으로 모으는 정도다.[4] 하지만 아르메니아 교회에서는 기도손 전통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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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성체성사 때 동방교회 중 유일하게 무교병을 사용한다. 즉,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하얀 제병이 성체성사의 봉헌물로 바쳐지는 것이다. 단, 여기 역시 다른 동방교회들처럼 양형 영성체를 고수하고 있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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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제대나 전례복이 서방과 거의 비슷하다. 제대 역시 제대를 탁자처럼 꾸미는 정교회와 달리 가톨릭의 전통적인 벽제대 형태를 취함은 물론 층까지 쌓음이 기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가톨릭 교회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닫집(천개天蓋)까지 있기도 한다.[5] 물론 이러한 특징은 시리아 정교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단순한 서방 교회 문화라고만 하기에도 힘들다.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주교관은 세로로 좀 더 길쭉하고 뒤에 술이 없을 뿐, 서방 교회 주교관과 완전한 판박이다!
네 번째,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전례는 트리엔트 미사와 성찬기도(전문典文, Anaphora) 부분을 제외하고는 초입경, 층계경 및 고백기도 등 전례요소에서 공통점이 있다. 시편 42편을 외우며 층계경을 하고, 동방교회에서 따로 찾을 수 없는 Confiteor(고백기도)를 한다. 심지어 트리엔트 미사처럼 미사가 끝난 후 마침 복음경(요한 복음서 1장)을 낭독하는 전통도 있다. 물론 핵심부분인 성찬기도에서 동로마 전례나 콥트 전례처럼 성찬제정사를 한 뒤 성령청원기도 후 성체성사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는 동방 전통 전례로 분류함이 맞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전례 역시 안티오키아 전례에서 유래하여 동로마 전례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1] 이 뜻은 예수 그리스도의 두 본성이 공존을 함과 동시에 같이 붙어다니며 각 속성은 서로의 특징을 공유해 그리스도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동시와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다는 뜻이다. 칼케돈 공의회는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한 논쟁이었지, 결코 니케아 공의회에서 의결된 삼위일체론에 대한 논쟁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이들은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2] 사실 이는 오리엔트 정교회들이 모두 견지하고 있는 관점이다. 때문에 현대 신학에서는 오리엔트 정교회들의 그리스도론을 위와 같은 단어로 표현하는 용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당사자들도 자신들을 단성론이라고 지칭하는 것에 대해 크게 반발한다. 자세한 내용은 단성론을 참고.[3]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믿는 시리아, 에티오피아이집트 콥트 정교회 신자들도 마찬가지이긴 하다.[4] 기도손 전통서유럽봉건제에서 봉신이 주군에게 충성을 바칠 것을 맹세할 때 취하는 자세에서 비롯된 전통이다. 따라서 서유럽 기독교 계통이 아닌 교파에서는 기도손을 보기 힘든 것이다. [5]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되려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1970년대부터는 탁자형 제대를 사용하는 일이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