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칸젤로 코렐리

 


'''볼로냐 악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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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프란스 반 두벤(Jan Frans van Douven) 작, 1713년경
'''Arcangello Corelli'''
'''출생'''
1653년 2월 17일 [image] 교황령 푸지냐노
'''사망'''
1713년 1월 8일(60세) [image] 교황령 로마
'''직업'''
작곡가, 바이올리니스트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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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2.1. 말년
3. 업적
4. 음악세계
5. 주요 작품
6. 기타 일화


▲ 합주 협주곡 Op.6 No.4 전악장. 연주는 보이스 오브 뮤직.

▲ 바이올린 소나타 Op.5 No.3. 바이올린에 레미 보데(Remy Baudet)

'''....(코렐리의 음악의) 전체적 분위기는 무척 웅장하고, 엄숙하면서도 경건해서 그에 대한 모든 비판을 잠재우기 충분했다.'''

― 찰스 버니(Charles Burney)

'''코렐리만큼 열정적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이는 본 적이 없다. 그의 눈은 종종 불처럼 붉게 타올랐다.'''

― 프랑수아 라게네(François Raguenet), 『음악과 오페라에 대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비교''Parallèle des Italiens et des Français en ce qui regarde la musique et les opéras''』 中, 1702년


1. 개요


아르칸젤로 코렐리는 이탈리아 지역의 바로크 기악곡 작곡가이다. 중기 바로크 시대에 이탈리아 기악곡 음악세계를 크게 넓힌 인물이지만, '''성악곡은 단 한 곡도 쓰지 않았다'''는 특이한 이력이 있다. 대신에 음악학적으로는 기악곡에 있어서의 많은 공헌을 인정받고 있는 상태. 작품으로는 네 권의 트리오 소나타와 한 권의 바이올린 소나타, 한 권의 합주 협주곡집밖에 남기지 않았지만, 적은 작품 수는 코렐리의 명성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못하였다.
당시에도 '우리 시대의 오르페우스'라는 칭송을 받는 등, 서양음악사 최초의 바이올린 비르투오소로 평가받으며, 바이올린의 테크닉과 예술성을 경지에 이르도록 올려놓은 인물이기도 하다.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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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피에트로 오토보니 추기경
푸지냐노에서 태어나 근처의 성직자로부터 처음 바이올린을 배워 십대시절부터 바이올린을 꾸준히 했다고 한다. 1666년에 볼로냐에서 여러 저명한 음악가들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고 1670년에는 로마의 아카데미아 필라르모니카(Accademia Filarmonica)의 입학이 허가되었다.
1675년에 로마에서 연주자로 정식으로 데뷔했으며 로마 고위 성직자들을 위한 연주회를 여러 차례 가지면서 입지를 굳혔다. 코렐리는 거장 작곡가들의 여러 작품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는데, 대표적으로 1676년 알레산드로 스트라델라의 새로운 오라토리오 세례 요한 초연 때 연주하게 된다.
1679년에는 스웨덴 왕위를 양위하고 로마에 정착한 크리스티나 여왕의 개인 악단에 들어갔고 자신의 첫 작품집 Op. 1을 여왕에게 헌정한다. 이후에 로마의 저명한 베네데토 팜필리 추기경이 주최하는 연주회에서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고 이곳에서 여러 작품을 선보인다. 1687년 7월 추기경의 정식 음악 감독으로 채용되었고 추기경궁 안에 자신의 방도 가지게 되었다. 이후 팜필리 추기경이 볼로냐로 옮겨가자 이번에는 피에트로 오토보니 추기경과 가까워지게 되며 추기경에게 자신의 작품을 헌정하고 1769년 추기경의 음악감독으로 정식 임명된다.

2.1. 말년


야사에 가까운 이야기이지만, 1702년 코렐리는 오페라 연주를 위해 나폴리로 갔게 됐는데 이곳에서 코렐리의 자존심이 크게 상하는 일이 벌어졌다. 코렐리는 나폴리의 연주자들의 수준을 얕잡아보고 로마에서 두 명의 연주자들을 데리고 나폴리로 갔는데 이 나폴리 연주자들은 어려운 기교 패시지를 코렐리보다 더 훌륭하게 해냈다고 한다.
이후부터는 계속 로마로부터 여생을 보내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며 타지 작곡가들의 작품을 직접 지휘하기도 한다. 1706년 일류 문학 아카데미였던 아카데미아 델리 아르카디(Accademia degli Arcadi)의 회원이 되었다.
이후 1713년 건강악화로 사망하며 코렐리는 판테온에 안치되었다.

3.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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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세의 코렐리. 휴 하워드 작, 1697년
무엇보다 그는 '''합주 협주곡'''(Concerto Grosso)이라는 장르를 처음으로 대중화시킨 인물이다. 합주 협주곡이란 협주곡에서 독주악기가 여러 대가 모여서 구성된 악기군 콘체르티노(Concertino)와 협주악기군 리피에노(Ripieno)를 대비시키는 형식이다. 본디 이 용어는 코렐리가 창안한 것은 아니지만, 최초로 음악사에서 합주 협주곡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합주 협주곡집 작품번호 6번(Op.6)을 출판하기도 했다.
당대의 다른 이탈리아 작곡가들과 많은 음악적 교류를 하며 큰 영향을 끼친 대부(大父)이기도 해서,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 등과 많은 교류를 나누었으며, 안토니오 비발디에게도 영향을 끼쳐서 그가 유명한 《조화의 영감》(Op.3) 협주곡집을 합주 협주곡 형식으로 출판하기도 했으며 조지 프레드릭 헨델 또한 코렐리 양식을 본딴 협주곡집을 출판한다. 이 외에도 당시의 많은 음악가들이 코렐리 양식을 귀감으로 삼고 작품을 써냈으며, 문하에는 피에트로 로카텔리, 프란체스코 제미니아니, 프란체스코 가스파리니, 주세페 토렐리 등 이탈리아 바로크의 한다 하는 인물들이 포진해 있었다. 실제로 제미니아니, 바흐 같은 작곡가들은 코렐리 작품의 선율을 따서 새로 작곡하거나 편곡하는 경우가 많았다

4. 음악세계


그의 음악세계는 독주 바이올린에 치중하면서도 상당히 기교적으로 절제되어 있는데, 특히 더블스톱 기법을 완전히 배제했으며 심지어 솔로 바이올린 독주 파트에서도 고음역은 가급적 피하는 게 일반적이었다.[1] 그 때문인지, 비발디가 이탈리아의 열정을, 로카텔리가 굇수급의 기교를 보여주었다면, 코렐리의 음악은 오늘날까지도 '''중후하고 럭셔리하고 품격 있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그야말로 훌륭한 '''시크 왜곡계.''' 사용 예시[2]
코렐리의 상당수 작품들은 3악장제는 찾아보기 힘들고 대부분 4악장 이상의 다악장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별도의 코다(coda)가 마련된 경우도 있다. 규모 자체도, 비록 협주곡이라 할지라도 작은 현악 4중주급의 앙상블에서부터 대규모 오케스트라까지 상당히 자유로운 편.
한편 코렐리의 작품들은 연주자에게는 '''뜻밖의 난관'''을 선사하는데, 대위법이 굉장히 괴랄하게(…) 적용되어 있다는 게 문제다. 귀로 듣기에는 분명 하나의 성부로 연주되는 것 같지만, 사실 알고보면 두 개 이상의 성부가 하나의 중심 선율을 연주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것. 잘 모르겠다면, 모차르트의 《반짝반짝 작은 별》 처음 선율을 바이올린 두 대가 함께 연주하는데, 한 대는 "반, 반, 작, 별" 만 연주하고 다른 한 대는 "짝, 짝, 은" 만 연주한다고 상상해 보자.(…) 그렇기 때문에 개별 주자들의 기교 자체는 크게 요구되지 않을지라도 엄청난 팀워크를 기반으로 하여 '''손발이 척척 맞아야 한다.'''

5. 주요 작품


  • 바이올린 소나타 Op.5 No.3. 바이올린에 Sigiswald Kuijken. 반주 악기는 하프시코드. 듣기
  • 합주 협주곡 Op.6 No.8 "크리스마스 협주곡". 부제와는 달리 전반적으로는 단조풍의 건조한 분위기이다. 따라서 캐럴 느낌을 기대하고 듣는다면 곤란하다. 실제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성탄의 밤을 위하여" 라는 부제가 붙은 마지막 악장인 6악장[3]에서 비로소 표현된다. 거꾸로 말하면 1~5악장은 사계절용(…) 듣기

이 협주곡과 비슷한 다른 곡으로는 만프레디니(F.Manfredini)의 합주 협주곡 Op.3 No.12 "축복받은 성탄을 위한 파스토랄" 이 있다. #듣기 그 외에도 피에트로 로카텔리 역시 같은 주제로 합주 협주곡을 썼다. 번호는 Op.1 No.8. 이 곡 역시 마지막 악장이 캐럴로 되어 있다. #듣기 주세페 토렐리의 경우 합주 협주곡 Op.8 No.6이 크리스마스 협주곡이다. #듣기
  • La Folia(라 폴리아), 쯔꾸르 게임 이브(Ib)에서 미술관 BGM으로 많이 알려진 곡 듣기, Folia라는 율 자체는 본래 15세기 스페인 지방의 무곡에서 시작해 17세기부터 많은 음악가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관현악용으로 해석이 되던 것이다.

6. 기타 일화


브뤼겔이나 푸생같은 거장들이 그린 명화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다고 한다. 이는 자신의 후원자인 피에트로 오토보니 추기경에게 유산으로 남겼다.
체구가 작았지만 예의범절이 바르고, 겸손하고 화술이 뛰어났다고 전한다.
잦은 위작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프리츠 크라이슬러(F.Kreisler)가 《타르티니의 주제에 의한 코렐리의 바이올린 변주곡》 이라는 작품을 썼다. 물론 이 작품은 타르티니와는 하등의 관련성이 없고 코렐리의 바이올린 소나타 10번의 가보트 선율을 전주부분에서 따 온 것은 사실이다. 크라이슬러가 직접 작곡한 것이지만, 적어도 주제선율 자체는 바로크 색채를 짙게 띠고 있으며 나름대로 유명하기까지 하다. 들어보기

[1] 그렇긴 하지만 독주 파트에서의 자잘한 꾸밈음 같은 것은 도리어 많이 사용되는 편이다.[2] 해당 백화점 광고에 삽입된 코렐리의 작품은 바이올린 소나타 Op.5 No.9 2악장이다.듣기. 오케스트라로 편곡한 것.[3] 영상 약 10분 25초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