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씨

 


1. 표현
2. 드라마
3. 이미자의 노래
3.1. 가사
3.2. 안성훈 버전
3.3. 김용임 버전


1. 표현


  • 젊은 처자를 높이는 말. 한자로는 음차해서 阿氏로 표기한다. 거기에서 더 높이면 아씨님이 된다.

2. 드라마


1970년 3월 2일부터 1971년 1월 9일까지 동양방송(JTBC의 전신)에서 일일극으로 방송되어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하였던 드라마. 1년 뒤에 KBS에서 방영한 여로와 비슷한 주제를 다룬 드라마로 시월드로 고통받음에도 그것을 견뎌서 해피엔딩을 맛보는 며느리를 다룬다는 점에서 비교되지만 바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편단심 부인을 사랑하는 남편이 주역으로 나오고 코미디씬도 심심치 앟게 나오는 여로보다 분위기가 어둡다. 애초에 남편이 기생과 대놓고 외도를 하고 다니고 며느리는 남편이 외도하는것을 참고 꿋꿋하게 자식을 키워나간다는 것이 주된 스토리이니 어느정도로 히트쳤냐면 드라마가 방영된 시간에 수도권과 PK일대 지역의 길거리가 조용해졌고, TV가 몹시 귀했던 시절이었기에 아씨가 방영되는 날에 TV가 있는 집안으로 몰려들려서 발디딜틈이 없었다는 증언이 나돌 정도였다.
이미자가 부른 드라마의 주제곡도 유명해서 1970년에 지구레코드에서 음반이 발매되기도 하였다.[1] 참고로 현재는 마지막회만 남아있는데 여기서 볼수있다. 테이프 가격이 비싸다 보니까 죄다 돌려써서 그런것이다. 그나마도 당대 TBC(JTBC) 드라마 가운데서는 잘 보존된 편이라고 하며, 해당 테이프는 윤성현 전 기술감독이 소장해왔다.
참고로 KBS에 보관된 드라마 영상물 가운데 가장 오래 보존된 드라마이기도 하다. 역으로 따진다면 아씨 이전에 제작된 드라마는 영상으로 남아있는 것이 한 편도 없다는 것이다. 해당 드라마는 같은 해에 영화로도 제작되었고 1997년 10월 11일부터 1998년 3월 29일까지 KBS 2TV에서 주말극으로 리메이크되어 방영되였다. 38회까지는 9시, 39~50회는 8시에 방영. 97년 11월 15일은 11~12회 연속으로 방영되었다.[2] 참고로 아씨 리메이크작은 원래 KBS 1TV 인기 TV 아침 소설 초원의 빛 후속으로 기획되었지만 주말드라마로 편성이 바뀌는 바람에 296회(원작)를 주말드라마 성격에 맞게 50회로 축소시켰다.
<아씨> 리메이크작의 캐스팅은 난항을 많이 겪었다. 일단, 주인공인 아씨 역은 당초 김혜수, 심은하, 이영애 등에게 제안이 갔지만 모두 개인사정으로 고사하자[3] 김혜선이 아씨 역으로 확정됐으나 노역까지 하는 역할에 대한 부담감 탓인지 캐스팅 제안을 뿌리쳤으며 사족으로 수만의 아내 미순 역으로 나온 장서희도 KBS 2TV 장희빈의 장희빈 역으로 거론이 되었는데 그녀는 장희빈 대신 인어 아가씨를 선택하였다.
이와 함께, 아씨의 못된 남편 긍재 역에는 물망에 올랐던 이재룡 손창민 등이 모두 능력 부족을 이유로 고사하였고 최재성이 긍재 역으로 최종 확정되는 듯 했지만 아씨 소작인의 아들인 수만 역으로 거론됐던 허준호[4] 대신 수만 역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자 <아씨>의 담당 PD 김재현은 새 인물들을 찾는 것에 초점을 두어 캐스팅을 진행하여 이응경이 아씨 역으로, 선우재덕이 긍재 역으로 발탁되었으며 수만 역으로 낙점된 최재성은 1990년 KBS 사태 이후 한동안 타 방송사 드라마에 출연해 오다가 <아씨>로 KBS 복귀를 했다.
1997년 10월 11일 첫 회부터 38회(1998년 2월 15일)까지 9시 주말극으로 방영되었던 아씨는 드라마가 방영될 당시에 25%대의 높은 시청률로 인기몰이를 하며 승승장구했지만 여성단체로부터 "시대에 맞지 않는 인고의 여인상만 강조한다"는 항의를 받자(신문에 헤드라인으로 실릴 정도였다.) 방송국 측에서는 "주말극이 너무 많다", "제작비가 많이 든다"는 명분 아래 제작진측에 당초 50부작으로 기획된 드라마를 34회로 조기종영하거나 드라마 자체는 시청률이 높으니 4편 늘린 38회까지 9시 주말극으로 방송하다가 그 이후에는 시간대를 옮겨 계속 방영하는, 두가지 안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업무명령을 내리게 되었다. 즉, 조기종영과 시간대 변경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아씨>는 39회(98년 2월 21일)부터 <웨딩드레스> 후속으로 밤 8시 시간대로, 시간대를 바꾸어서 계속 방영되었는데[5] 당시 5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던 그대 그리고 나에 대적하기 위해 <아씨> 제작진은 너무 일찍 늙어버린 아씨(이응경 분)와 그 주변 인물들의 로맨스와 질투, 삼각관계란 선택을 했다. 초반에는 갑자기 과도한 분위기의 변화로 전보다[6] 16%대로 떨어지는 수모를 겪었지만 시청자들로부터 "2TV의 공영성 강화에 가장 적절한 드라마다" "IMF 시대에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호평을 받으면서 1998년 3월 초부터 20%대로 시청률이 상승했다. 이에 <아씨>는 후속작 캐스팅 문제로 어러움을 겪어 연장방송을 결정했던 <그대 그리고 나>와 종영시기를 똑같이 맞추기 위해 애초 기획된 50부작에서 8편 늘린 58회로 끝낼 계획이었으나 KBS 측에서 "시청률이 오르는 시점에서의 연장방영은 자칫 시청자들에게 시청률 상승에 따른 연장이란 오해를 살 수 있는 등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라 판단하여 처음 기획(50회)된 대로 막을 내렸다.
게다가, 옮기기 전 25%대를 유지하던 것이 시간대를 변경하면서 억지스런 설정들이 드러나며 16%대로 떨어졌다가 시청자들의 호응에 힘입어 98년 3월 초부터 20%대로 올라간 '시청률 널뛰기' 현상이 담당 연출자한테 있다고 해서 <아씨>의 담당 PD 김재현은 드라마가 종영된 직후 98년 4월 드라마국 제작위원에서 심의평가실 심의위원으로 발령이 났다.[7]
여담으로 1970년작과 1997년 리메이크작 모두 출연한 인물이 배우 김세윤여운계이다. 김세윤은 1970년작에서는 나쁜 남편으로 나왔는데, 27년 후에는 며느리를 아끼는 시아버지로 나온다는 점이 재미있다. 여운계는 1970년작에서는 아씨의 지극한 몸종으로 출연했는데, 리메이크작에서는 아씨를 괴롭히는 치매걸린 시할머니를 연기했다.
1970년작 당시에는 배우와 배역을 따로 구분하지 못하던 사람들(특히 어르신들)이 워낙 많던 시기라 김세윤은 길을 가다가 괜히 억울하게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에게 얻어맞은 적이 꽤나 있었다고 한다.[8]
참고로 1970년작을 연출했었던 원로 PD 고성원은 1997년 리메이크작에 대해 별로 좋은 감정을 가지지는 않았었다고 하는데, 심지어는 리메이크작의 대본을 쓴 이철향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 작품을 망쳐놓았다고 쌍욕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9]
또한 방송사고가 2번 있었다. 1970년 3월 27일 방영분에서, 여운계와 김희준이 연기 도중 자신의 대사에 웃는 장면이 방영되어 비난을 받은바 있고[10] 6월 17일, 전날 방송된 필름을 다시 내보내서 시청자들이 당황한 바 있다.
이후 2012년에 JTBC에서 TBC추억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1971년에 제작된 아씨의 마지막회를 방영하였다. 2021년 1월에는 1997년판이 엣지TV에서도 방영됐다.

3. 이미자의 노래



2번 문단의 드라마의 주제곡이다.

3.1. 가사


옛날의 이 길은 꽃가마 타고
말 탄 임 따라서 시집가던 길
여기든가 저기든가 복사꽃 곱게 피어있던 길
한 세상 다하여 돌아가는 길
저무는 하늘가에 노을이 섧구나
옛날의 이 길은 새색시 적에
서방님 따라서 나들이 가던 길
어디선가 저만치서 뻐꾹새 구슬피 울어대던 길
한 세상 다하여 돌아가는 길
저무는 하늘가에 노을이 섧구나

3.2. 안성훈 버전



내일은 미스터트롯 직장부 B조 참가자 안성훈본선 2차전 데스매치에서 커버했다.

3.3. 김용임 버전



나는 트로트 가수다 9회 5-1라운드에서 김용임이 커버했다.

[1] 아울러, 리메이크작에도 이 곡이 주제곡으로 사용되었는데 같은 방송사 월화사극 장녹수 주제가를 부른 전미경이 불렀다.[2] 97년 11월 15일 11회, 다음 날(16일) 12회 예정이었으나 97년 11월 16일 오후 9시 40분부터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3위 결정전 '이란 VS 일본' 중계가 편성되어 그 날 10시 10분 방송 예정이었던 '추적 60분'이 8시 40분, 'KBS 2TV 스포츠뉴스'가 8시 55분에서 8시 35분으로 이동하면서 전날인 97년 11월 15일에 11~12회 연속 방영되었다. 97년 11월 16일은 결방.[3] 공교롭게도 이 여배우들은 모두 KBS 2TV 장희빈 캐스팅 제안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김혜수를 제외한 모두가 능력 부족을 이유로 고사하였다.[4] 허준호는 97년 9월 28일 올린 결혼식 스케줄과 드라마 촬영일이 겹쳐 해당 배역을 고사하였다.[5] 원래 이 시간대의 후속작으로 정해진 드라마는 야망의 전설이었다.그러나 이 드라마는 '현대사 속에서 한 가족이 겪게 되는 아픔과 사랑 이야기'라는 기획의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스케일이 워낙 거대해서 이미 한번 제작이 무산될 위기에까지 올랐던 작품이고 KBS 측에서도 "대본 캐스팅을 전체적으로 수정하는 조건"으로 드라마의 제작을 허락한 것이었기에 야망의 전설을 방송시간에 맞춰 내보내기엔 시간이 부족하다"라고 판단한 KBS측에서 중장년층 여성 시청자가 많이 보는 시대극인 <아씨>를 39회부터 웨딩드레스의 후속으로 옮겨심었다.[6] 시간대를 옮기기 전에는 25%대를 유지.[7] 90년 1월부터 91년 3월까지 예능국 차장으로 재직했다가 91년 4월 드라마국으로 돌아온 뒤 <TV 문예극장> 위주로 연출을 맡아오다가 93년 4월 드라마국 부주간으로 발령되면서 현장을 떠났으며 97년 4월 드라마국 제작위원으로 발령됐다.[8] 비슷한 사례로 배우 윤여정이 장희빈 역을 연기했을 당시에 길거리에서 돌을 맞았다는 이야기도 있다.[9] 이철향은 1970년작에도 참여했었는데, 1970년작의 집필을 맡았던 임희재의 건강이 악화되자 임희재를 대신하여 결말 부분을 집필하였다.[10]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출연한 김동건 아나운서의 말에 의하면 저 당시 편집 기능이 없었기 때문에 실수하면 처음부터 다시해야 했다고 한다. 아마도 다시 녹화하기가 그랬는지 그대로 내보낸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