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건(방송인)

 

<colbgcolor=#2e2e2e><colcolor=#fff> '''성명'''
김동건 (金東鍵)
'''출생'''
1938년 11월 25일[1] (85세)
황해도 사리원시
'''학력'''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 초등학교 (졸업)
경기중학교 (졸업)
경기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교육심리학과 / 학사)
'''현직'''
프리랜서 아나운서
[image] MC
'''경력'''
동아방송 1기 공채 아나운서
TBC 아나운서
KBS 아나운서
KBS TV본부 국장 대우 방송위원
연세대학교 농구후원회 회장
한국아나운서클럽 부회장
삼천리 사외이사
여성유권자연맹 홍보대사
한국아나운서클럽 회장
'''데뷔'''
1963년 동아방송 입사
1. 개요
2. 생애
2.1. 경력
3. 출연 프로그램
4. 수상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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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BS아나운서이자 현재는 프리랜서 아나운서이다. 다만 프리 선언 이후에도 주로 출연하는 방송은 레귤러인 가요무대를 비롯하여 KBS의 프로그램들이다. 명실상부 KBS의 간판 아나운서.

2. 생애


1938년 11월 25일,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났다. 8.15 광복 이후 월남하여 서울에서 성장했다. 경기고등학교연세대학교 교육심리학과를 졸업했다. 수송초등학교에 다니던 중 6.25 전쟁으로 대구로 피난을 떠나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 초등학교[2]로 전학하여 졸업했고, 이후 서울로 돌아온 후 쭉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다.

2.1. 경력


1963년 동아방송에 입사했고, 이듬해 동양방송으로 이적했다가 1973년 다시 KBS로 옮겨 1993년에 프리랜서 선언을 할 때까지 KBS의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진행한 프로그램으로는 뉴스파노라마, 11시에 만납시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등이 있다.
김동건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월요일 밤 10시 KBS 1TV에서 방송 중인 "가요무대"를 꼽을 수 있다. 2003년부터 한동안 가요무대의 진행을 전인석 KBS 아나운서에게 넘겼다가, 2010년 5월 10일에 복귀했다. 그 이유는 가요무대의 주 시청층인 중장년 시청자들이 김동건의 복귀를 강력히 요구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기간동안 방송을 쉰 건 아니고 KBS1에서 '한국, 한국인'이라는 토크쇼를 진행했다. 이 프로그램은 방송시간대가 심야시간대였던데다가 재방송도 안 해서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
1985년부터 2002년까지 18년 동안 'KBS 가요대상' MC를 맡기도 했다. KBS의 대표 아나운서였기도 했지만 당시 KBS가 방영했던 3 대중음악 프로그램의 MC였기 때문에 그에게 가요대상 MC 마이크가 주어졌다.[3] 참고로 이 당시에 가요톱10 진행을 맡았던 손범수 아나운서도 1993년부터 2001년, 2003년부터 2004년, 2007년 가요대상 MC를 맡았는데 1993년부터 9년간 김동건 아나운서와 호흡을 맞췄다.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송에서 메인MC 4명 중 한 사람이었으며 이 때문에 1985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 당시에는 무대 진행MC이자 실향민의 한 사람으로서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 당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송을 진행하다가 충격으로 쓰러져 혼절한 출연자에게 응급처치를 하며 "이 무슨 비극입니까..." 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현재도 방송자료 화면으로 자주 인용되고 있다.
또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TV 지상파로 중계되던 때에는 KBS에서 무려 30년간이나 거의 전담으로 진행을 맡았던 경력이 있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진행은 이후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1994년과 1995년 MBC에서 생중계할 때에도 진행을 맡았다. 사실상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의 대명사.

3. 출연 프로그램



4. 수상


  • 1979년 한국방송대상 아나운서상
  • 1993년 국민훈장 목련장
  • 1993년 위암 장지연상
  • 1993년 대통령 표창
  • 2001년 MBC 명예의 전당 방송인부문
  • 2013년 한국아나운서연합회 한국아나운서대상 특별상

5. 여담


  • 중후하고 안정된 이미지를 풍기는 베테랑 아나운서이고 이 이미지 덕에 1990년대 중반 쌍용그룹의 이미지 광고도 찍은 적이 있다.
  • 고령이 되기 이전에도 가발을 쓰고 있었다고 한다. 가끔씩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나오는 KBS 아나운서 후배들이 고정 레퍼토리처럼 가발 비뚤게 쓴 아나운서의 에피소드를 얘기하는데, 그 에피소드의 주인공이다.
  • 상당한 동안이다. 1938년생으로 2020년 현재 만 82세며 꽤나 정정하고 목소리도 상대적으로 젊다.
  •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인해 TBC 동양텔리비전KBS 2TV로 넘어간 후 최초의 쇼 프로그램인 버라이어티쇼 KBS 새가족을 방영하였는데 이 방송에서 KBS의 대표 아나운서 자격으로[5] MC를 맡았다.
  • 2020년 9월 3일 '방송의 날' 특집회차로 편성된 KBS 다큐멘터리 다큐인사이트 - 모던코리아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6] 편에서는 김동건 아나운서의 인터뷰를 토대로 그 시절 KBS의 영상을 입혀 KBS가 걸어온 영욕의 세월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방송보기 방송을 보면 1970~1980년대 굵직한 한국 현대사의 순간에는 어김없이 이 분이 마이크를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7] 이 방송 인터뷰에서 김동건 본인 왈 "무려 58년을 방송했다"고 한다. 모던코리아의 책임CP인 염지선 PD는 이후 페이스북에서 "K 공장의 포레스트 검프"라고 표현했다(...) 현실판 포레스트 검프처럼 온갖 역사의 모멘트에 다 나타나는 인물이기 때문에...
  • 2020년 9월 30일 추석특집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콘서트를 진행했다. 나훈아와 인터뷰를 주고 받는데 가장 인상깊은 노래를 '명자'로 꼽았다. 노래 내용이 이북 출신 피란민인 명자의 부모님께서 자신들의 부모님(명자의 친조부모, 외조부모)을 평생 그리워하다 돌아가시는 내용으로, 김동건의 어머니 또한 당시 그의 나이 3세에 돌아가셔서 이후에 고향인 황해도에 못 찾아뵙고 있어 공감이 간다고 밝혔다. 여담으로 나훈아가 방송에 출연하지 않던 기간에도 사석에서 자주 만나던 인물 중 한 명이 김동건이라고 한다.


[1] 호적상으로는 1939년생이나, 실제로는 1938년생이 맞다.[2] 수성초등학교로 언급되는 경우도 있는데, 당시에는 수성초등학교 자리에 경북대 사범대 부설 초등학교(당시에는 대구사범학교 부속 초등학교)가 있었던 탓. 1952년에 봉산동으로 옮겨와 현재에 이르고 있다.[3] 이 당시 시대상을 알 수 있는 부분으로, 김동건 아나운서가 1992년 가요대상을 진행하며 서태지와 아이들의 팬덤이 내지르는 함성소리에 어쩔 줄 몰라하는 장면이 있다. 팬덤 자체는 1980년대 소방차박남정김완선도 있었지만 연말 시상식 음향에 지장이 갈 정도로 강력한 화력을 보인 것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처음이었기 때문(...) 이런 변화된 관객반응은 이 다음 세대인 H.O.T.젝스키스, S.E.S., 핑클 등 1세대 아이돌그룹이 등장하며 완전히 정착했다.[4]JTBC 뉴스룸의 전신이다.[5] 함께 진행한 이영혜 아나운서는 전날 TBC 석간[4]을 진행한 TBC의 대표 여자 아나운서였다.[6] KBS의 공식 슬로건 문구이자 로고송 가사다.[7] KBS의 주말 메인뉴스였던 뉴스파노라마 진행을 비롯, 1980년 언론통폐합 이후 첫 쇼 프로그램 진행, 1981년 국풍81 개막식 중계, 1983년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생방송, 1985년 남북 예술단 교환방문, 1986년 평화의 댐 건설 국민 성금 모금방송 등등 여러 중요 프로그램들의 진행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