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에곤 3세
1. 소개
타르가르옌 왕조의 7대 왕.
생몰년은 120AL ~ 157AL(37년), 재위 기간은 131AL ~ 157AL(26년).
라에니라 공주에겐 4남, 그녀의 작은아버지인 '불한당' 다에몬 왕자에겐 장남이 되는 아들.[1] 죽은 가족들을 추모하려는 의미인지 항상 검은 옷만 입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통치기에 타르가르옌의 마지막 용이 사망했기에, '멸룡왕(Dragonbane)'이란 별칭을 갖고 있다.
불운했던 어린 시절 때문에 성격이 음침하고 사람과의 접촉 자체를 꺼렸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부서진 왕(Broken king)'이라고도 불렸다. 자식들이 죽은 뒤 미쳐버려 가슴 달린 마에고르 취급 받던 어머니나, 불한당스러운 면모가 강하던 다에몬 왕자에게서 난 아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돌연변이 수준이다.
둘째 왕비 다에나에라 벨라리온과의 사이에 2남 3녀(다에론 1세, 바엘로르 1세, 다에나 타르가르옌, 라에나 타르가르옌, 엘라에나 타르가르옌)을 두었다.
2. 생애
2.1. 유년기
용들의 춤 당시 라에니라는 자신의 두 아들 아에곤과 비세리스를 전쟁의 화가 미치지 않을 에소스 대륙의 펜토스로 보내 펜토스 군주의 보호를 받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드래곤스톤에서 펜토스로 향하던 중 걸렛 해전에서 녹색파의 동맹이기도 했던 리스-미르-티로시 삼두정의 해군과 마주친다. 이때 이부형인 자카에리스 벨라리온은 전사했으며 아에곤 3세는 아직 미성숙한 개체였던 자신의 드래곤 스톰클라우드의 목을 움켜잡고 탈출해 드래곤스톤으로 간신히 귀환했다. 아에곤 3세는 이때 처음으로 드래곤을 타고 날아봤지만, 불행히도 그것이 아에곤의 마지막 드래곤 탑승이 되고 말았다. 아에곤 3세의 드래곤 스톰클라우드는 여러발의 화살과 스콜피온[2] 까지 맞아가면서도 죽을 힘을 다해 아에곤 3세를 대롱대롱 메단채 드래곤스톤에 도착했고 결국 죽고 말았다. 그리고 아에곤 3세는 동생인 비세리스 2세를 그 배에 남겨두고 자신만 살아돌아왔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이후 존경하는 이부형들도 전부 전사하면서 라에니라의 자식들 중 사실상 유일하게 살아남았고[3] , 모친인 라에니라는 아에곤 3세마저 잃을까봐 아들을 항상 옆에 끼고 다녔다.
아에곤 2세가 드래곤스톤에서 증오하던 누나 라에니라를 붙잡자 그는 그의 드래곤 선파이어로 하여금 조카 아에곤 3세 앞에서 라에니라를 산채로 먹게 했다. 하지만 아에곤 3세는 흑색파들이 쳐들어올 때를 대비하여 인질로서 살려두었다.
2.2. 섭정기
아에곤 2세가 결국 아들없이 죽자 조카인 아에곤이 아에곤 3세로서 즉위하게 되는데, 타르가르옌 가문의 근친혼 전통 때문에 가계도가 복잡하고 계승되는 이유도 난해하다. 우선 혈통을 보면 어머니는 선선대 왕인 비세리스 1세의 장녀이자 맏이인 라에니라 왕녀이고, 선대 왕인 아에곤 2세의 누나로서 왕위를 두고 내전을 벌인 사이이며, 아버지는 선선대 왕인 비세리스 1세의 아우인 다에몬 왕자다. 이 때문에 부계계승에 따르면 선왕인 아에곤 2세가 아들들을 모두 잃고 동시에 비세리스 1세의 부계 후손이 없으니 비세리스 1세의 아우인 다에몬 왕자의 아들, 즉 사촌으로서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하지만 모계계승 혹은 장자계승의 원칙으로 보면 아에곤 3세는 비세리스 1세의 맏이인 라에니라 왕녀가 칠왕국의 적법한 여왕이고, 아에곤 3세는 라에니라 여왕의 맏이로서 왕위를 계승한 것이 된다. 라에니라 왕녀와 아에곤 2세 서로 장자계승, 부계계승을 주장하며 내전을 벌였는데, 기가 막히게도 아에곤 3세의 계승은 부계계승, 모계계승(혹은 장자계승) 모두 충족시키는 셈이다.[4]
열한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나 이복누이들을 제외하면 왕족들이 거의 다 죽어버린지라 정치적으로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였다. 많은 야심가들이 그의 섭정이 되기 위해 암투를 벌였으며, 이를 섭정 전쟁(Regent war)이라고 부른다. 133년의 대협의회에서 다음 일곱 섭정들이 선출되었다. 자세한 것은 아에곤 3세의 섭정 참조.
아에곤 2세의 유일한 딸 자에하에라 타르가르옌과 둘다 어린 나이에 결혼하였는데 용들의 춤으로 두동강난 타르가르옌 세력을 어떻게든 다시 화합시키려는 정치적 노력에 가까웠다. 아에곤의 아버지가 부하를 시켜서 그녀의 오빠를 죽였다는 것, 자에하에라의 아버지가 아에곤의 어머니를 죽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 결혼이 잘 되기나 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자에하에라는 1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의문사한다. 자에하에라의 사인은 그녀의 어머니 헬라에나와 같은 투신자살로 공표됐지만 자기 딸이나 조카를 왕비로 만들고 싶은 누군가에게 암살당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유력한 용의자는 자신의 딸을 왕비로 만들고 싶어했던 수관 언윈 피크였다.
둘째 왕비는 다에나에라 벨라리온으로 이복 누나들[5] 이 아에곤 앞에 그녀를 처음 데려왔을 때 겨우 여섯 살이었으며, 천 명의 처녀들 중 아에곤이 왕비로 직접 간택했다고 한다. 참고로 다에나에라의 아버지는 바에곤 벨라리온이었는데 아에곤의 아버지 다에몬에게 내가 진짜 벨라리온이라고 따지다가 죽었다.
어린 나이에 가족들을 전부 잃어버린데가 본인은 섭정들의 꼭두각시 행세를 하다 보니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죽은 줄 알았던 동생 비세리스는 리스의 명문가인 로가레 가문에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신원이 확인되자 그 집의 딸 라라 로가레과 결혼했었는데, 용들의 춤이 끝나고 리스에 갔던 알린 벨라리온이 그를 발견하고서 상당한 사례금을 주고 다시 귀국시켰다. 아에곤은 비세리스가 돌아왔을 때 울면서 끌어안았을 정도로 기뻐했다고 한다. 이후 언윈 피크의 친위 쿠데타로 큰 위협을 받기도 했으며 사실상 감금 상태에 처하는 바람에 당시 어렸던 왕비 다에나에라조차 밥을 굶어서 울 만큼 고생했지만 무사히 이겨내서 성년기에 도달했다.
2.3. 성년이 된 후
장성하자마자 섭정들을 전부 해임시키고 동생인 비세리스(훗날의 비세리스 2세)를 수관으로 삼아 본격적으로 정치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의 치세에 그나마 남았던 드래곤들마저 모조리 죽어버리는 비극이 벌어졌다. 마지막 드래곤은 기형이었고 개 크기 정도였다고 하는데, 아에곤 3세가 드래곤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독을 먹여서 그렇게 만들었다는 소문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아에곤 3세는 드래곤을 키우기 위해, 그리고 마지막 드래곤이 죽고서는 알을 부화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망망대해에서 죽을 뻔한 자신을 구한 것도 드래곤이어서 드래곤을 무서워할망정 증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모친을 산체로 태워서 잡아먹은 것도 드래곤인지라 쌍둥이 누나들이 드래곤과 함께 자신을 만나러 왔을 때 당장 치우라고 지시했다는 기록도 있다. 게다가 동생인 비세리스 2세가 먼 땅에서 로가레 가문과 수년간 생활할 때에도 정신적 지주로 삼으며 계속 가지고 있던 드래곤의 알을 레드 킵에는 못 들이니 드래곤스톤으로 보내라고 명령하는 바람에, 화가 난 비세리스가 한동안 형인 아에곤 3세에게 말을 걸지 않았던 일도 있었다. 이를 볼 때 드래곤에 대해 두려움과 증오의 경계선에 가까운 감정을 품은 것은 사실로 보인다.
딱히 특출한 업적은 없었지만 큰 실책 또한 없이 무난하게 나라를 다스렸다. 특히 사치를 하지 않고 검소하게 살며 백성들을 상당히 신경썼다.[6] 사실 드래곤들을 전부 잃은 칠왕국이 바로 공중분해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에곤과 비세리스 형제가 왕국을 꽤 잘 다스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남과의 접촉을 꺼리는 음침한 성격과 자식들의 특이한 행적 때문에 별로 기억되지는 않는 편이다.
36세에 결핵으로 사망했으며 사는 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아에곤 3세의 신하들은 그가 실제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고 했다.
[1] 라에니라는 자신의 칠촌 고종 당숙이기도 한 라에노르 벨라리온과, 다에몬은 라에노르의 누나 라에나 벨라리온과 결혼했다가 둘 다 사별했다. 다에몬도 전처인 라에나와 자식이 없었던 건 아니었는데, 쌍둥이 딸 뿐이었고 아에곤 3세가 태어나기 전까진 아들이 없었다.[2] 기계식 대형 활 발리스타와 비슷한 것.[3] 동생 비세리스 2세가 간신히 살아남아 리스의 로가레 가문에서 의탁하고 있었지만, 이때 당시의 칠왕국은 비세리스가 죽을 걸로 간주하고 있었다.[4] 나중에 훗날 다에몬 블랙파이어는 자신이 아에곤 3세의 맏이인 다에나 타르가르옌의 유일한 아이이니 모계계승으로서 왕위를 주장할 근거가 되고, 모계계승을 지지하는 가문들의 원조를 받게 된다.[5] 다에몬 타르가르옌이 두 번째 결혼에서 얻은 두 딸들인 라에나와 바엘라.[6] 모토가 '배불리 먹이고 춤추는 곰을 보여주마'였다고 한다. 어찌보면 우민화 정책인 빵과 서커스와 개념이 비슷하지만, 얼음과 불의 노래 세계관상 유럽 중세와 비슷한 배경의 왕인 만큼(둘 다 안 주는 군주가 수두룩한 와중에) 백성들에게 빵과 서커스를 제공하려한 것만으로도 성군의 자격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