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벨

 

'''앤디 벨
Andy Bell
'''

[image]
'''오아시스 멤버로 활동할 당시 사진[1]'''
'''본명'''
Andrew Piran 'Andy' Bell
'''출생'''
1970년 8월 11일(54세), 영국 [image]
'''직업'''
음악가
'''악기'''
보컬, 기타, 베이스 기타
'''성별'''
남자
'''신체'''
183cm
1. 소개
2. 음악
2.1. 라이드 그리고 허리케인 #1 (1988~1999)
2.3. 비디 아이 (2009~2014)
2.4. 라이드의 재결합(2015~)
2.5. GLOK(2017~)
2.6. 글록을 제외한 솔로 활동(2009~)
3. 국내의 인식
4. 관련 항목


1. 소개


슈게이징 밴드 라이드의 기타리스트 겸 보컬이자 메인 작곡가. 라이드 해체 이후 허리케인#1의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로 활동했다. 이후 오아시스의 베이시스트로 자리매김했고, 오아시스가 해체한 뒤에는 라이드 재결합 전까지 비디 아이기타리스트로도 활동했었다.
국내에는 대부분 오아시스의 베이시스트로 알려져 있으나 실은 기타 경력이 비교할 수 없이 길기 때문에 베이시스트보다 기타리스트에 더 가깝다. 스스로도 기타리스트라고 생각하는듯.
번외 활동으로 디제잉과 일렉트로닉을 GLOK[2] 이라는 예명으로 하고 있다. 2019년 첫 일렉트로닉 앨범 Dissident를 내놓았다. 클럽에서 종종 디제잉을 하기도 한다. 스웨덴[3] 자기 소유의 작은 클럽이 있다 카더라. 동명의 일렉트로니카 장르의 뮤지션 앤드류 이반 "앤디" 벨[4]은 다른 사람이니 검색에 주의. 비디 아이 믹스클라우드에 직접 선곡한 믹스테잎이나 디제잉 셋리스트를 비정기적으로 올리기도 했으나 비디아이 해체 이후론 멈춘 상태. 대신 앤디 벨 믹스클라우드에서 비교적 최근까지의 믹스테잎, 디제잉 셋리스트 등을 만날 수 있다. 2019년 3월 14일부터 8월 15일까지 매주 앤디가 호스트로 진행했던 부갈루라디오 RESONANCE도 일부 올라와있다.
이외에도 2019년 10월 23일 처음으로 앤디 벨 솔로 싱글 Plastic Bag이 7인치 바이닐 형태로 발매됐다. B사이드는 The Commune.
2020년 8월 11일, 본인의 50번째 되는 생일날 싱글 Love Comes In Waves 공개와 함께 첫 솔로 앨범 The View from Halfway Down[5]의 발매 소식을 알렸다. 이어 9월 16일에 두 번째 싱글 I Was Alone 을 공개했다. 10월 9일 전체 앨범이 공개된다.
겜 아처과 함께 채식주의자였지만 지금은 그만두었다고 한다.

2. 음악



2.1. 라이드 그리고 허리케인 #1 (1988~1999)


[image]
앤디 벨은 영국 슈게이징 씬의 전설로 통하는 밴드 라이드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이자 메인 작곡가 출신으로, 이 때문에 "슈게이징의 황태자"라고도 불린다. 사실상 앤디 벨 최고의 황금기라고 볼 수 있으며, 이와 관련된 '''라이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해당 항목을 참고.'''
라이드 해체 이후 뭐라도 해 봐야겠다는 생각에[6] 솔로 앨범을 위해 데모 테이프를 만들었고, 이 데모를 들은 알란 맥기의 제안으로 멜로디메이커에 밴드 멤버 모집 공고를 낸다.[7] 허리케인#1의 보컬 알렉스 로우는 당시 카라반 차량에서 살고 있었는데, 알렉스의 여자친구가 이 공고를 보고 상의 없이 알렉스의 데모 테이프를 보내 버린다. 그런 뒤 크리에이션 레코드에서 알렉스에게 연락을 취해 1997년 브릿팝 밴드 허리케인#1을 결성하게 된다. 결성한지 채 6개월도 지나지 않아 싱글 Step Into My World가 29위로 차트인, 꽤 좋은 성적을 거두어 월드투어까지 돌게 된다. 다만 허리케인#1에서는 더이상 슈게이징 색채는 찾아볼 수 없었고, 브릿팝 밴드를 표방하고 있었는데, 오아시스, 그리고 스톤 로지즈 출신의 기타리스트 존 스콰이어의 밴드 시호시즈(Seahorses)와의 음악적 유사성을 지적받게 된다. 이와 관련해 당시 앤디 벨은 "허리케인#1은 오아시스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 오아시스에서 영감을 받은 밴드였다"고 말했지만 결국 라이드에 비해 그다지 좋지 않은 평가를 받게 된다.[8] 허리케인 #1은 2집 Only the Strongest Will Survive의 UK 차트 55위 랭크를 끝으로 뚜렷한 음악적 성과는 보이지 않았다.[9][10] 앤디는 허리케인#1에서는 노래를 전혀 하지 않고 작곡과 기타만 담당했는데, 언론은 라이드 출신의 그에 대해 여러가지 추측과 루머를 양산해내며 허리케인#1의 음악성을 비난했고, 이에 2집 활동 이후 앤디는 슬럼프에 빠진다. 슬럼프 극복을 위해 휴식을 취하며 세 번째 앨범을 쓰고자 영국을 떠나 스웨덴으로 거처를 옮긴다.
이후 앤디는 Gay Dad라는 밴드에서 기타리스트로써 투어를 같이 다니는 등[11] 밴드 활동에는 다소 정체된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 오아시스 가입을 이유로 1999년 허리케인 #1을 그만둔다.[12]

2.2. 오아시스 (베이시스트, 2000~2009)


2000년대(정확히 말하자면 1999년도)에 접어들어, 초기 멤버였던 본헤드와 귁시가 탈퇴하고 빈 자리를 채울 멤버를 찾고 있었던 오아시스노엘 갤러거의 연락을 받고, 앤디는 '''베이시스트로''' 밴드에 가입하게 된다. 그가 오디션을 볼 당시 오아시스는 이미 제2 기타리스트로 겜 아처가 가입한 상태였고, 애초에 기타리스트였던 앤디에게 들어온 제안도 '베이스' 파트였으며, 결국 앤디는 오아시스에서 처음으로 베이스 기타를 잡기로 결정한다.[13] 그 이전까지는 베이스를 단 한 번도 연주해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오디션을 봐야 하는데 베이스 기타가 없어서 빌려야 했다고 한다. 기타로 베이스 연주의 느낌이 어떨지 될지 대충 상상만 해 보며 연습했다고. 이후 한 달간 하루에 열 시간씩 베이스를 연습하며 베이스 파트를 전부 숙달하게 된다. 당시의 그가 말하기를 "나는 그냥 빈자리를 채우는 주변인의 역할이었대도 즐겁게 일했을 거야. 하지만 노엘과 리암은 그 이상을 원했어. 다시 진정한 밴드를 만들고 싶어했지. 그게 중요했어." (Q Special Edition 2002. 7) 합류 전부터 이미 앤디는 오아시스 공연을 스무 번 쯤은 본 오아시스의 큰 팬이었으므로 놓칠 수 없는 기회였을 것이다.
4집 투어 때는 과 함께 공연당 85파운드를 받아가며 무대에 섰다. 그리고 5집 Heathen Chemistry부터는 본격적으로 작곡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스스로 밴드의 '조력자' 포지션에 충실하려 했기 때문에 특별히 부각되지 않았다.[14] 사실 허리케인 #1 시절 슬럼프를 겪은 이래로 아예 작곡을 하고 있지 않았는데, 오아시스 합류 당시 노엘의 제안으로 다시 작곡을 시작했다. 여기에 몇 개월이 걸렸고, 자신의 곡을 연주하는 데는 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고 한다. 이후 점점 안정권에 접어들어 6집 Don't Believe the Truth에서는 첫 번째 트랙으로 앤디가 작곡한 곡인 Turn Up The Sun[15] 이 선택받기도 하고, 앤디가 작곡한 다른 여러 트랙들도 이전에 비해 호평을 받는 등 다시 작곡 능력이 그 빛을 발하게 되어, 7집에 이르기까지 점차 대중들에게 '오아시스 멤버로서' 앤디 벨의 존재감을 알리게 된다.[16]
'''작곡한 곡 일람'''
Heathen Chemistry
Don't Believe the Truth
  • Turn Up the Sun
  • Keep the Dream Alive
Dig Out Your Soul
  • The Nature of Reality

2.3. 비디 아이 (2009~2014)


그러나 2009년 오아시스가 갤러거 형제간의 불화로 극적인 해체를 하게 되면서, 앤디 벨은 이번에는 리암 갤러거의 밴드 비디 아이의 기타리스트로써 거의 10년만에 다시 기타를 잡게 되고, 예전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던 시절에 인정받은 노련한 실력을 다시 한번 드러내기 시작한다.
다만 라이드 때에 비하면 음악적으로 슈게이징스러운 부분은 많이 없어지고[17] 60년대 클래식 록 음악의 영향을 상당히 받은 상태. 사실 이런 모습은 이미 후기 라이드 곡을 쓸 때부터 드러나기 시작했고 음악적으로 60년대의 신고전주의적 분위기와 밥 딜런의 영향이 드러났다고 한다. 비틀즈도 좋아하지만 롤링 스톤즈를 더 사랑하는 편이며, 스톤 로지즈의 원로 팬이기도 하다. 또한 지미 헨드릭스와 그의 음악을 굉장히 사랑하는 듯 하다.
이번 비디 아이의 데뷔로 그의 음악적 역량이 다시 한번 증명되었는데, 데뷔 앨범 수록곡 중 호평을 받는 트랙으로 꼽히는 Four Letter Word, Millionaire, Kill For A Dream, The Beat Goes On이 모두 그의 손 아래 만들어졌다.
'''작곡한 곡 일람'''
Different Gear, Still Speeding (리암 갤러거/겜 아처/앤디 벨 공동 작곡)
  • Four Letter Word
  • Millionaire
  • Kill For A Dream
  • The Beat Goes On
  • World Outside My Room (Four Letter Word 싱글 B-side)
BE (리암 갤러거/겜 아처/앤디 벨 공동 작사/작곡)
  • Face the Crowd
  • Soon Come Tomorrow (크리스 샤록과 공동 작곡)
  • I'm Just Saying
  • Dreaming Of Some Space (Second Bite Of The Apple 싱글 B-side/BE 디럭스반, 일본반 보너스 트랙)
2014년 10월 25일 리암이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비디아이의 해체를 알렸다. 그리고..

2.4. 라이드의 재결합(2015~)


2014년 11월 18일에 스페인의 인디 관련 매체에서 2015년에 열릴 스페인의 Primavera Sound에서 라이드가 재결합을 할 것이라 밝혔다. 라이드와 해당 페스티벌의 홈페이지에 관련 발표를 하지 않았지만 같이 참가하는 스트록스의 로고가 같은 자리에 걸렸었던 것을 생각할 때 낙관적으로 볼 수 있을 듯.
그리고 현지 시간 11월 18일에 2015년 5월 재결합을 하고 영국 투어를 할 것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이후 꾸준히 앨범 발매를 하고 투어를 도는 중. 한국에는 2015년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 2018년 단독 콘서트로 내한했다. 2018년 팬에게서 태극기 스티커를 받아서 기타에 붙였는데, 2020년 기준 여전히 붙어 있다.[18]

2.5. GLOK(2017~)


Bell을 뜻하는 독일어의 Klok에서 앞글자만 바꿔 예명을 지었다. 글록 앨범 수록곡에 kolokol 이라는 곡이 있는데 이게 러시아어로 bell인 걸 생각하면 이름 장난을 어지간히 좋아하는 모양.[19]
제대로 활동을 하기 시작한 건 최근이지만 사실 글록이라는 예명을 쓴지는 좀 됐다. 예명을 쓴 이유는 ‘사람들이 기존 이미지에 끼워서 생각하게 되지 않았으면 해서’ 이다. 대중에게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는 역효과가 있었지만, 오히려 그게 본인이 원한 바라고. 몇 년 전 이미 글록으로 계약을 맺은 회사가 있었으나 디지털 싱글을 몇 개 발매한 것 외에는 이렇다 할 활동이 없었는데, 아날로그 음반을 내자고 다른 곳에서 연락이 왔고 이에 2019년 첫 일렉트로닉 앨범 Dissident를 발매하게 된다. 이 때는 이미 글록=앤디 벨이라는 사실이 어느정도 알려진 뒤이기 때문에[20] 망설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해당 레이블 대표는 글록이 앤디인지 알기도 전부터 글록 이름으로 낸 음원을 좋아했다고 한다. 먼저 글록으로 계약을 맺었던 회사와는 여전히 ‘작곡가 앤디 벨’ 로서 계약관계라고.
일렉트로닉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비디아이 시절 데이브 시텍이 스튜디오에서 신디사이저를 쓰는 모습을 보고서다. 데이브가 사용하던 신디사이저가 사용법이 쉽기도 했고, 무엇보다 신디사이저가 내는 다양한 사운드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이후 조금씩 장비를 사 모으고 Logic Pro9을 독학했는데,[21] 로직9에서 로직 X로 넘어가자 더 이상 독학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런던 소재의 학원에서 로직X를 6개월간 수강한다.
학원에서 로직X에 조금 익숙해지자 곧바로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노래를 리메이킹하기 시작했고, 수준이 올라가고부터는 자연스레 일렉트로닉 작곡을 시작했다. 다만 이 때까지는 아직 라이드나 다른 프로젝트를 위한 데모를 만들거나 곡을 쓸 때 이용하는 쪽에 더 가까웠다. 그냥 취미 삼아 계속 일렉트로닉을 조금씩 썼는데, 음악계 종사자이다보니 자연스레 다른 사람들과 연이 닿아 본격적으로 곡을 내게 된 것. 앞으로 글록으로서의 라이브 활동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직 계획한 건 없다고 한다. 글록 이름으로 종종 디제잉을 하기도 한다.

2.6. 글록을 제외한 솔로 활동(2009~)


본격적인 솔로 활동은 2019년부터였지만 실은 꾸준히 자잘한 솔로 작업을 해왔다. 다만 온전한 ‘솔로’ 작업이라기보다는 타 아티스트들의 곡을 프로듀싱한다든지, 기타 부분에 참여한다든지, 작곡을 한다든지 하는 콜라보레이션의 형태에 가까웠다. 2007년에는 시드 바렛을 기리는 트리뷰트 공연에 베이스로 참여해 핑크 플로이드와 함께 공연하기도. 2009년에는 소니뮤직을 통해 일본에서만 발매된 One by One: KZK Adidas Originals by Originals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에 Grapefruit이라는 제목의 곡을 Grapefruit 이라는 예명으로 수록했다.[22] 보컬이 얹어진 노래가 아니고 OST에 가깝다. 2019년 10월 처음으로 첫 솔로 싱글 바이닐 Plastic Bag을 공개했고, 해당 싱글의 B사이드는 The Commune으로 음원은 한참 공개되지 않다가 2020년 7월이 되어서야 정식으로 공개됐다. 이후 2020년 8월 11일에 솔로 앨범 The View from Halfway Down의 발매 소식을 알린다.
솔로 앨범에 대해서는 늘 긍정적인 태도였다. ‘언젠가는 내고 싶다’ 정도로 일관하다가 2016년 데이비드 보위가 세상을 뜨면서 이에 자극받아 본격적으로 솔로 작업에 임하게 된다. 이미 오아시스, 비디 아이를 통해 절친이 된 겜 아처의 스튜디오에서 작업했던 오래된 곡들이 있었지만[23], 라이드와 글록 등의 활동으로 아주 바쁜 시간을 보낸 탓에 제대로 마무리를 하고 있지 못하다가 역설적이게도 코로나바이러스로 영국에 락다운이 내려지며 집에 머물게 되어 앨범을 마무리할 여유를 얻게 됐다.
첫 번째 솔로 앨범 제목은 애니메이션 보잭 홀스맨의 에피소드에 등장한 시에서 따 왔다. 2019년 가을 라이드 미국 투어 도중 TV에서 해당 에피소드를 접했는데 느낀 바가 컸던 모양. 간단히 설명하면, 다리에서 투신자살한 등장인물이 ‘반쯤 떨어졌을 때’ 스치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서야 후회하지만 이미 늦어 있었다는 내용. 앤디는 반대로 이 어두운 내용에서 자살 예방의 메시지를 읽었다. 인생 전부를 죽음으로의 투신에 빗댄다면 정확히 오십 살을 살아온 지금 보는 것들이 ‘반쯤 떨어졌을 때 보이는 풍경’ 일거라는 생각에 앨범 제목으로 정했다고. 발매예정일은 2020년 10월 9일.

3. 국내의 인식


영국 90년대 기타 팝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기타리스트이자 작사가, 작곡가로 꼽히는 실력있는 뮤지션이지만, 국내에는 라이드가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슈게이징 장르를 아는 사람이 아닌 이상 알고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드문 편.
특히 오아시스 팬덤에선 밴드 활동 당시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면서 노엘 갤러거리암 갤러거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적었던 편이기에 저평가 되는 경향이 있었다....[24] 겜 아처는 정적으로 기타를 치는 노엘과 달리 비교적 동적으로 기타를 치는데다가 노엘과 리드기타 리듬기타를 바꿔서 치며 어쿠스틱 버전 라이브에는 항상 노엘 옆에서 리드기타를 잡았기에 비중이 그나마 나았지만 앤디 벨은 안그래도 베이스인데다 어쿠스틱 라이브에는 아예 등장도 잘 안하기에 더더욱 돋보이지 않았었다. 사실 앤디 벨은 기타리스트였다가 오아시스 가입으로 베이시스트로 전향한 케이스라서 주목받지 못했던 것도 당연하다.
그래도 오아시스 활동 때문에 라이드로 유입된 한국 팬들이 제법 있다. 라이드는 슈게이징 밴드 중에서도 멜로디와 연주가 강하고, 3집부터는 슈게이징보다 브릿팝 색채가 강해져 진입장벽이 낮은 편에 속했기에 역유입되기도 수월하다.

4. 관련 항목


[1] 사진의 기타는 베이스 기타로, 오아시스의 멤버로 활동했을 때에는 베이시스트로 활동을 했다.[2] ‘종’이란 뜻의 독일어 Klok에서 따와 앞글자만 바꿨다. 본인의 성인 Bell을 가지고 장난친 셈이다.[3] 한동안 스웨덴에서 살았다고 하며, 전 부인도 스웨덴 가수였다고 한다. 지금은 이혼.[4] 디페시 모드의 빈스 클라크와 이레이저라는 듀오로 활동하였다.[5] 제목은 애니메이션 보잭 홀스맨 의 에피소드에 등장한 시에서 따왔다.[6] 해체 이후 충격에 휩싸인 채 집으로 향하며 '나 운전 배워야겠다... 6개월 내로 택시 운전사가 돼 버릴 지도 몰라.' 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7] 당시 공고 이미지. [image][8] “우리가 하려는 건 스톤로지스와 오아시스 사이 어딘가 자리잡는 것이다” -펫사운즈 매거진 97년 5월호[9] 당시 언론의 부정적 평 그리고 대중음악계에서의 성과와는 별개로, 성적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1, 2집 모두 싱글이 탑차트 안에 들었고, 특히 일본에서 인기가 좋아 7000명 규모 공연장을 한시간 반만에 매진시키기도 했다.[10] 허리케인 #1은 2014년 원년멤버는 한 명만 남은 채 완전히 다른 라인업으로 재결합했다.[11] 게이 대드에 밴드 멤버로 가입했던 것은 아니다. 게이 대드 측에서 먼저 독일 투어를 함께하자며 앤디에게 연락을 취했고, 앤디가 동의.[12] 당시 허리케인 #1의 프론트맨이던 알렉스 로우가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밴드의 해체를 알렸다.[13] 훗날 인터뷰에서 당시 기분이 어땠느냐는 질문에 답하길 “씨발 쩐다! 내가 오아시스에 들어가다니!” - 2019. 7월 happymag.tv[14] “나는 한 해에 두 곡 남짓 쓰는 조지 해리슨 정도의 위치에 만족한다. 운이 좋다면야 그것보다 더 쓸 수 있겠지.” -디자이너 매거진 2001. 9월호[15] 오아시스 시절 쓴 곡 중 본인이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곡이다.[16] 여담이지만 오아시스 시절 인터뷰에서 ‘리암이 처음 곡을 쓰면서 노엘에게 타인의 곡을 앨범에 넣어도 된다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고, 그 이후 내가 밴드에 합류했기 때문에 작곡에도 참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고 말한 적이 있다.[17] 사실 라이드도 초창기 1집때는 슈게이징밴드였지만 2집이후부터 밴드 스스로 슈게이징에서 벗어나고자 했고, 3집부터는 슈게이징이 아닌 브릿팝 밴드로서 완전히 탈바꿈해버렸다.[18] 원래 스티커 한 번 붙이면 잘 안 뗀다.[19] 앤디 벨 이름으로 낸 솔로 싱글의 패키지 봉투에는 아예 이름 옆에 성을 쓰는 대신 종 픽토그램을 그려 놓기도 했다[20] 라이드 5집 수록곡 All I Want를 글록 이름으로 리믹스하며 자연스레 알려졌다.[21] 로직을 독학하게 된 계기가 우습다. 비디아이 시절 앤디가 개러지밴드로 데모를 만드는 것을 보고 제프 우튼이 ‘애들이나 쓰는 프로그램을 쓰고 있어!’ 라며 경악한 것이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 간접적 영향으로는 겜 아처가 있다. 겜이 스튜디오에서 프로툴즈를 다루곤 했던 것이 영향을 줬다.[22] 해당 앨범엔 이안 브라운, 해피 먼데이즈도 참여했다.[23] 겜은 앤디의 첫 솔로앨범에 엔지니어로 큰 역할을 했다.[24] 심지어 가입 초기에는 귁시와 비교 당하면서 '귁시보다도 베이스를 못 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었다...